바깥에서 들리는 소리에, 진루안은 귀를 닫았다.조금 어두운 프레젠테이션 룸 안에서 위생 대신은 조금 하얗게 질린 얼굴로 의자에 앉았다. 진루안이 맞은 편에 서서 평온한 눈으로 자신을 노려보자, 그는 조금 당황했다."너 내가 누군지 알아?" 위생 대신은 얼굴을 굳히며 진루안에 대해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진루안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강시의 위생 대신이잖습니까? 말 한마디로 기업의 생사를 결정짓는 분이시죠.""알고 있으면서, 감히 나를 이렇게 대해? 서화 그룹이 하룻밤 새에 무너져도 두렵지 않은 건가?" 자신을 조금 추켜세우기까지 하는 진루안의 대답에 위생 대신은 곧바로 기세가 올라, 거칠게 테이블을 내리치며 외쳤다.진루안은 경멸 어린 눈빛으로 웃음을 흘렸다. "그럼 내가 누군지는 압니까?""너? 네가 누군지 알 게 뭐야!""날 밖으로 내보내기나 해. 그러지 않으면 죽을 줄 알아!"위생 대신은 한껏 불만인 얼굴로 진루안은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진루안은 덤덤하게 웃으며 천천히 품에서 금색의 증명서 한 장을 꺼냈다. 그 위에는 용국의 휘장만 찍혀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런 글도 적혀 있지 않았다."확실히, 제가 죽습니까?" 금색의 증명서를 테이블 위에 놓은 진루안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쳐다봤다.위생 대신은 고개를 숙여 금색 증명서 위의 용국 휘장을 쳐다봤다.휘장의 도안은 특수 제작된 방식이라, 가짜일 리가 없었다.거물이 온 것이다!위생 대신은 심장이 덜컥 내려앉아 조심스럽게 증명서를 들어 올린 뒤 펼쳐봤다.콰당!위생 대신은 엉덩방아를 찧으며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았다. 고통을 느낄 겨를도 없이 벌떡 자리에서 일어난 위생 대신은 공포에 물든 눈으로 이제 막 스물이 넘은 젊은이를 쳐다봤다."당신, 당신은…"진루안은 위생 대신의 반응을 마음에 두지 않았다. 고작 위생 대신이 아니라, 동강시의 고위 인사라도 이 증명서를 보면 혼비백산했다.이것은 임페리얼과 국왕이 연합해서 발급한 증명서였다. 이런 증명서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자네, 어떻게 된 건가?" 복도에 위시해 서 있던 치안 대신은 험상궂은 얼굴로 진루안을 노려보다 위생 대신에게 물었다.위생 대신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다들 그만 돌아가게. 다 오해였네!"조윤은 진루안이 평생 나오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감옥에서 썩게 만들 심산이었다. 이게 바로 그들 남매에게 대든 결과였다.그렇게 옆에 서서 재미난 구경을 하려던 조윤은 위생 대신의 말을 듣자 안색이 확 굳어버렸다. 결국 그는 더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어떻게 오해라고 하실 수 있습니까? 방금 전에 분명…""닥치게!""조 대표, 조사 결과는 이미 나왔네. 내가 보고를 잘못 본 것이야. 그러니까 서화 그룹에는 어떠한 위생 문제도 없네.""그러니 일전에 서화 그룹에 내렸던 영업 금지 처분은 지금 바로 취소하겠네!" 위생 대신은 차가운 눈으로 조윤을 노려보며 그가 보인 추한 꼴에 대해 더는 말을 잇지 못하게 했다.특히 치안 대신의 앞에서 진루안에게 멱살이 잡혔다는 이야기가 새어나간다면, 그는 앞으로 더는 동강시에서 얼굴을 들고 다닐 수가 없었다.그런데 조윤이 하필 그 이야기를 하려고 하니 그는 속에서 얼마나 열불이 이는지 몰랐다.사무실 입구 쪽에 서 있던 서경아는 위생 대신이 영업 금지 처분을 취소한다는 말을 듣자 드디어 한시름을 놓았다. 그리고 옆에 있는 진루안을 보는 그녀의 두 눈에 언뜻 분노가 차올랐다.마음 같아선 진루안을 혼쭐내고 싶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럴 수는 없었다. 남자의 자존심은 챙겨줘야 했다."아무 일도 없다고 하니, 우리는 이만 돌아가겠네." 치안 대신은 이쪽에 별일이 없는 것을 보자 이내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열 몇 명의 경찰들은 순식간에 완전히 종적을 감추었다."미안하네, 소 대표. 내가 요즘 눈이 안 좋아서 보고를 잘못 봤어. 회사에 끼친 안 좋은 영향에 대해서는 내가 적극적으로 해명하겠네." 위생 대신은 서경아에게로 와 미소를 지으며 해명했다.서경아는 과한 대접에 깜짝 놀라 연신 손을 내저었다. "무슨 말씀이세요
서경아는 가라앉은 얼굴로 차에 앉아있었고, 진루안은 여전히 조수석에 있었다. 다만 아무도 입을 열지 않는 탓에 차 안의 분위기는 침울하게 가라앉아 있었다.얼마나 지났을까, 한숨을 쉰 서경아는 실망한 눈빛으로 옆에 앉은 진루안을 쳐다봤다."당신에게 배경이 없다고 해도 전 당신을 절대로 무시하지 않을 거예요. 설령 예전에 폐품을 주워 팔았다고 해도, 그건 당신의 두 손으로 직접 돈을 번 거잖아요.""하지만 덜대로 경솔하게 행동해서는 안 돼요. 당신이 오늘 위생 대신의 멱살을 잡았다가 무슨 일이라도 생겼으면 당신은 아예 끝장났을 거예요!""당신만 끝나는 게 아니라, 서화 그룹도 당신의 경솔함으로 하루아침에 풍비박산 날 뻔했다는 건 알고 있어요?" 서경아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도 차가웠다.서경아는 진심으로 약혼자에게 실망했다. 할아버지가 찾아준 약혼자는 비록 부유하고 대단한 사람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예의는 아는 사람일 줄 알았는데 이렇게 막무가내일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안명섭의 결혼식에서 진루안을 만났을 때부터 그는 한준서의 경호원 둘을 때린 뒤 한준서와 일주일 후에 내기하기로 했고 지금은 또 거칠게 위생 대신의 멱살까지 잡았다.막무가내!경거망동!단순 무식!서경아는 12글자로 진루안을 평가했다."내려요! 앞으로는 너무 가깝게 굴지 마요!" 서경아는 조수석 쪽 문의 버튼을 눌렀다. 차 문이 열리자 밖을 가리키며 진루안에게 한마디도 더 하지 않았다.진루안도 아무런 대꾸 없이 그대로 조용히 차에서 내렸다. 이내 마세라티는 빠르게 떠나갔고 그 자리에는 자동차 배기가스 냄새만 남아있었다.진루안은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참 성격이 불같은 여자였다.자신을 향한 선입견이 있을 때에는 아무리 노력하고 해명을 해도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것을 알기에 진루안은 괜히 해명을 하려 하지 않았다."형님, 저 부탁 하나만 해도 됩니까?"등 뒤에서 조금 긴장한 듯 머뭇거리는 양호석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진루안이 등을 돌리자, 파란색 셔츠에 회색 청바지를 입은
진루안의 물음에 양호석은 곧바로 대답했다. "바로 조금 전에 마 영감의 부하가 저희에게 전화를 걸어서 그렇게 얘기했습니다. 다들 조급해하는 걸 제가 겨우 진정시켰어요."지금 같은 상황에 신고를 해봤자 소용없다는 걸 양호석도 알고 있었다. 게다가 치안 대신과 마 영감은 사이가 끈끈하다 못해 막역한 수준이라 이 일에 끼어들 리가 없었다.만약 정말로 간섭한다면 마영삼도 오늘의 지위까지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곳의 종용과 방임이 오늘날의 그를 만든 것이다.게다가 그는 서 대표에게 폐를 끼치고 싶지는 않았다. 회사의 위기가 이제 막 끝난 탓에 서경아는 지쳐 있을 게 분명한 데다 서경아에게도 뾰족한 수가 없었다.아무리 생각해도 정말 진루안 밖에는 부탁할 사람이 없어, 양호석은 이미 진루안을 문제를 해결해 줄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었다."갑시다. 제가 마영관까지 데려다줄게요. 몸값이라면 준비할 필요 없어요. 제가 마영삼에게 사람들을 전부 풀어주라고 하죠!" 냉담한 말투로 말한 진루안은 양호석의 어깨를 토닥이며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형님, 제가 차로 모셔다드리겠습니다!" 양호석은 그렇게 말한 뒤 주차장에서 몇백만 원 주고 산 소형차를 몰고 나와 진루안에게 타라고 했다.차에 탄 뒤, 진루안은 눈을 감고 휴식을 취했다.양호석은 진루안을 쳐다봤다. 진루안의 얼굴은 평온하고 담담했다. 마 영감을 마주한다는 것에 긴장하거나 조급해하지 않았다.일반인이었다면 마 영감의 이름을 들으면 얼굴이 하얗게 질리고 다리에 힘이 풀렸을 것이다.하지만 진루안에게 그런 기색은 조금도 보이지 않았다. 그것은 진루안이 애초에 마 영감을 안중에도 두고 있지 않다는 것을 의미했다.양호석은 진루안이 점점 더 신기하게 느껴졌지만 감히 묻지는 못했다.30분 뒤, 다시 한번 마영관에 도착했다.진루안이 차에서 내리자 양호석은 길옆에 차를 주차했다.바로 그때, 맞은편에서 검은색 아우디 승용차가 빠르게 다가오더니 차에서 양복을 입고 가죽 가방을 옆구리에 낀 남자가 내렸다. 일행으로 두 사람이 더
주위 사람들은 그 말에 놀라 멍해졌다.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장근수에게 자기 뺨을 세 번 때리라니, 그래 놓고 그러면 그냥 넘어가겠다고?장근수는 비록 동강시의 거물은 아니지만 그래도 입지가 다져진 수백억의 자산을 가지고 있는 한 회사의 대표였다.그런 장근수에게 스스로 뺨을 세 번 때리라니, 너무 우스운 말이었다.함께 왔던 일행 두 사람도 코웃음을 치며 비웃었다. 다들 진루안이 미쳤다고 생각했다."네가 뭔데, 나더러 뺨을 때리라는 거야?" 장근수의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또다시 진루안때문에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당하자 살기가 피어났다.전에도 좋은 마음으로 진루안에게 안정된 직장도 소개해 주었는데 소중히 여기기는커녕 지금은 감히 큰소리를 치다니, 예의는 밥 말아 먹은 태도였다."정말로 네가 서씨 가문의 데릴사위가 되면 내 머리 꼭대기에서 놀 수 있을 줄 아나 보지? 잘 들어, 어림도 없어!""서경아가 뭐? 욕했다 어쩔래? 빌어먹을 년, 뭐 어쩔 건데…"짝!진루안은 곧장 손을 들어 뺨을 내리쳤다. 뺨 한 대에 이까지 하나 날아가자, 장근수는 멍해졌다.그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진루안은 또다시 손을 들었다.짝!세 번째!짝!뺨 세대를 다 때리고 나니, 장근수의 얼굴은 커다랗게 부어올랐다. 주위는 삽시간에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모두 두 눈을 커다랗게 뜬 채 믿기지 않는다는 얼굴로 지켜보고 있었다. 저 자식, 정말로 사람들 앞에서 장근수의 뺨을 세 번이나 때린 거야?양호석도 깜짝 놀랐다. 진루안은 정말로 원한이 있으면 바로 갚는 남자였다. 역시 서 대표의 남자답게 카리스마가 넘쳤다.진루안을 보고 있자니 열정이 들끓는 것 같았다. 만약 자신도 저렇게 일을 해결할 수 잇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지만 양호석은 자신의 신분이 보잘것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이토록 과감히 화를 내고 원한을 갚는 건 분명 믿을많나 구석이 있기 때문이었다. 평범한 사람이 이렇게 장근수를 때린다면, 죽어도 어떻게 죽는지도 알 수 없었다."동창으로서 그냥 넘어
"우현이 형, 저 사람이에요!"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가 시끌벅적해졌다.장근수는 부어오른 얼굴을 부여잡은 채 독기 어린 눈으로 진루안을 가리키며 라이더 재켓을 입은 남자를 향해 말했다.머리를 붉게 물들이고, 양쪽 귀에 모두 피어싱을 한 남자는 진루안을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웃음을 터트렸다."장근수, 너도 영 쓸데가 없네. 이렇게 마른 녀석도 못 이기고.""평소에 힘을 다 여자한테 쓰는 거지?" 최우현은 장난기 어린 눈으로 장근수를 흘겨봤다. 그러자 장근수는 얼른 아부하듯 웃으며 말했다. "그럴 리가요. 저 자식, 되게 수상한 녀석이에요, 부디 형님께서 나서주시길 바라요.""형님은 마 영감님 휘하 4대 부장 중 한 분이시잖아요. 형님께서 나서주시면, 저 자식 맥도 못 출 거예요!" 빨간 머리 청년에게 아부하는 장근수의 모습은 진루안을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다.진루안은 단 한 번도 그 사람들에게 관심을 주지 않은 채 플로어만 뚫어지게 쳐다봤다.진루안의 무시에 최우현의 얼굴은 순식간에 일그러졌다. 이렇게 무시당하는 건 난생처음이었다. 마 영감 휘화로 들어간 뒤로는 더더욱 처음이었다."얘들아, 손 좀 봐줘라!" 최우현이 못마땅해하며 손을 까닥하자, 그의 뒤로 요란한 차림의 남자들이 진루안을 향해 달려갔다.최우현이 손을 봐주라고 했으니 절대로 봐줄 리가 없었다."양호석 씨, 당신에게 맡길게요. 저 넷도 상대 못 하는 건 아니겠죠?" 옆에 앉은 양호석을 흘깃 본 진루안은 씩 웃어 보이며 바텐더를 향해 손을 들어 보였다. "위스키 한 잔, 온더락으로."이윽고 질펀한 소리가 들려왔지만 진루안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그저 환하게 웃으며 바텐더가 건네는 위스키 온더락을 받아들었다.시끌벅적하던 소리가 사라지더니 네 명의 양아치는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양호석도 숨을 헐떡이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직접 네 명을 한꺼번에 상대하고 보니, 홀로 20명을 쓰러트린 진루안이 새삼 대단해 보였다."너 이 자식, 꽤 침착하네. 안 되겠어, 피를 봐야
황지우는 왜 또 이 녀석인지 알 수가 없었다.그는 팔을 부여잡고 고통스럽게 바닥에서 뒹굴고 있는 빨강 머리 청년을 쳐다봤다. 칼은 팔을 완전히 관통하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그의 등골이 오싹해졌다. 칼자루가 자기 팔에 꽂혀 진다고 생각하니 눈앞이 아찔했다."마영삼 어디 있어?" 진루안은 쓸데없는 시간 낭비하기 싫어 노란 머리 청년을 흘깃 보며 물었다.그는 다급히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진루안에게 다가갔다. "형님, 잠시만 기다리세요. 영감님은 지금 여기에 없으세요, 그래도 금방 오실 겁니다.""네가 바로 나한테 전화한 놈이지?" 양호석은 노란 머리 청년을 가리키며 말했다. 목소리가 몹시 익숙했다. 그가 바로 자신을 협박한 놈이었다.휙!진루안의 매서운 눈빛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힌 순간 황지우는 순간 망부석이 되었다."그건 오해예요. 오해." 황지우는 손을 저으며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경비원과 진루안이 관계가 이렇게 가까울 줄은 황지우도 미처 생각을 못 했다. 보아하니 데리고 있는 인질들도 싹 다 풀어줘야겠다고 다짐했다.그도 마영삼도 이번에는 사람을 잘못 건드린 것 같았다.총자루를 손아귀 힘으로 아무렇지 않게 뭉갤 수 있는 사람이라 마영삼이라도 꺼려했다."형님, 저 자식을 무서워합니까?" 황지우의 반응이 장근수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황지우는 저기 바닥에 쓰러져 있는 최우현보다도 한 단계 높은 4대 대장이였다."고작 서씨 가문의 데릴사위인데 무서워할 필요는 없잖아요?""형님! 마 영감님이 뒤를 봐주시는데 뭐가 걱정이에요? 어서 저 자식한테 본때를 보여주세요!""저 자식이 우현 형님을 저 지경으로 만들었는데 이렇게 참을 거예요?"장근수는 뭣도 모른 채 쉴 새 없이 황지우를 부추기며 일그러진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는 진루안이 황지우에 얻어터지고 마영삼에게 살해당하는 행복한 상상을 하고 있었다.생각만 해도 속이 시원한 것 같았다.그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귓가에 바람 소리가 들려왔다.짝! 짝!노란 머리 청년은 연신 뺨을
이내 마영관에는 손님이 전부 다 빠져나가 텅 비었다.황지우는 장근수를 흘기며 버럭 짜증을 내며 말했다. "아직도 안 가고 뭐해? 마 영감님께 식사라도 대접 받게? 당장 꺼져!"장근수가 동강시에서 잘 나간다고 한들 고작 장근수 정도 수준의 사람은 널리고 널렸다. 당연히 장근수는 황지우에게 존재감이 없었다.장근수는 진루안을 쏘아보고는 하는 수 없이 물러갔다. 옛말에 사나이는 눈앞의 손해를 보지 않는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는 꼭 피는 피로 갚겠다며 씩씩거렸다.장근수와 동행한 두 남자는 일찌감치 줄행랑을 쳤는지 온데간데없었다."일 처리가 시원시원하네!" 진루안은 황지우의 수습력을 높이 샀다. 비록 조금 많이 요란스럽긴 하였으나 세세한 부분까지 챙기면서 넓은 시야로 상황을 파악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했다."과찬입니다. 저도 다 마 영감을 위해서 한 것입니다." 황지우는 멋쩍게 웃었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도 조금 뿌듯하긴 했다. 서로 우호적인 관계라고는 할 수 없지만 진루안같이 대단한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니, 황지우도 내심 기뻤다."저 자식이 도대체 누군데 그래요?" 최우현은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며 진루안을 쏘아보며 황지우에게 물었다.황지우는 미간을 찌푸리며 최우현을 흘깃 쳐다보고는 벌컥 화를 내며 말했다. "처신을 잘못해서 찍히는 일이 없게 다시는 장근수랑 엮이지 말아!""마 영감의 눈에 띄어 심기를 건드리지 말고 빨리 병원에 가봐."그는 최우현을 몹시 싫어했다. 못된 짓은 안 하는 짓이 없는 녀석이라 같은 짓을 또 반복한다면 아파 평생 감옥에서 썩을 듯싶었다.그리고 비록 마영삼을 모시고 있는 황지우지만 적당히를 모르는 최우현과는 다르게 그는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펼 줄 알았다."네!" 사람들 앞에서 황지우에게 혼이 난 탓에 최우현의 안색은 좋지 못했다. 자신의 부하들 앞에서 체면이 깎이지 않았는가. 하지만 황지우는 대장 인데 반해 그는 고작 부장에 불과했다.최우현이 떠나려던 그때."마 영감님께서, 오셨어요."밖은 어느새 어둠이 짙게
말없이 침묵이 한참동안 이어졌다.진루안은 맞은편 큰아버지의 숨소리를 들었지만, 먼저 말을 하지 않은 채 아주 자연스럽게 그대로 있었다.그리고 큰아버지 지수천도 침묵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제자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라고 추측하고, 그 사람이 누구인지도 추측한 듯했다.다만 침묵한 뒤에 누군가는 침묵을 깨야 했다.지수천은 진씨 가문 후손의 목소리를 처음 들었다. 진씨 가문의 후손과 연락이 닿은 것도 이번이 처음이었다.“큰아버지, 저는 진루안이라고 합니다. 진봉교 할아버지의 장손입니다!”나지막한 목소리로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한 진루안은 또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원래 자기가 말을 하면 큰아버지가 전화를 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렇지 않았고 지수천도 침묵한 채 말이 없었다.진루안은 큰아버지가 어떤 이유를 대고 전화를 끊을지 고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지금 지수천은 마음속으로 다르게 생각하고 있었다.‘이 아이는 왜 말을 하지 않지? 나보고 어떻게 하라는 거야? 내가 어떻게 침묵을 깨야 하나?’[험험, 신호가 약한가?] 지수천이 의아한듯이 물었다.그 말을 들은 진루안은 순간 마음속으로 한숨을 돌렸다. 큰아버지가 자신의 전화를 끊지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자 계속 말할 수밖에 없었다.“큰아버지, 잘 지내세요?”진규직은 묵묵히 한쪽으로 물러섰다. 그는 스승과 진루안 사이의 친척 관계가 다소 이상하다고 생각했지만, 원인을 모르기에 더 물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진루안의 물음에 지수천은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 후손이 아주 진실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거나 의례적인 말도 하지 않았고 긴장한 목소리로 자신이 잘 지내는지 물어본 것이다.진봉교는 몇 번 본 적이 있었다. ‘그 둘째 삼촌은 좋은 분이셨어. 다만 좀 보수적이라서 낡은 규칙을 고수했지.’‘진씨 가문은 그의 손에서 아마 평생 빛을 보지 못할 거야.’‘이 녀석이 둘째 삼촌의 장손이라면 진태사의 자식이겠지?’‘아쉽게도 제수씨가 복수 때문에 죽었지.’[속세에 있
‘그 분의 신분과 실력으로 용국에 발을 들여놓았다면, 용국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거물이 되었을 거야.’‘R국에 갔다면 R국의 총리의 고위 참모로 존경을 받았겠지. 결국 큰아버지의 어머니는 R국 고위 귀족의 딸이었으니 말이야.’‘오늘날의 이 귀족 가문, 바로 나카무라 가문은 이미 R국 10대 귀족의 으뜸이 되었지.’‘예전에 언급했던 하타다 가문도 10대 가문의 말미에 머물렀을 뿐이야.’‘큰아버지는 본심을 굳건히 지키시고, 당초의 맹세를 굳건히 지키면서 오늘에 이르셨어.’‘이런 분이기에 사람을 탄복하게 하고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해.’“그래서 당신이 그렇게 월급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큰아버지 때문이군요?”진루안은 그제서야 진규직이 월급을 언급할 때 눈에 비쳤던 열띤 기대감을 떠올렸다.‘만약 가난한 나날을 보내지 않았다면, 마치 생명의 근원처럼 그렇게 돈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았을 거야.’“그래요, 월급이 들어오면 사부님께 반을 전해 드리려고 합니다.” 진규직은 전혀 이상하게 여기지 않고 당연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루안의 마음은 오히려 몹시 괴로웠다. ‘솔직히 말해서 내 옷 한 벌을 사는 돈도 진규직의 한 달 월급보다 비싸니, 큰아버지의 생활비는 말할 것도 없어...’“제가 큰아버지와 몇 마디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요?”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갈망하면서 진규직에게 물었다.이 일은 진규직이 동의해야 한다. 결국 그전에는 진루안은 지수천과 만나지 못할 것이다.그리고 진씨 가문에 대한 지수천의 태도는 보통이라서, 만약 거절당한다면 자신의 마음은 더욱 괴로울 것이다.진규직은 스승과 진씨 가문 사이의 문제를 몰랐기 때문에, 진루안의 이 말을 듣고 잠시 망설이다가 승낙했다.“그렇게 하세요!”진규직은 핸드폰을 꺼내 진루안에게 건네주었다.그의 핸드폰은 이미 한참 시대에 뒤떨어진 제품으로, 기능이나 프로그램도 이미 한참 예전의 것이었다.그래서 이 핸드폰을 보자 스승과 제자가 평소 얼마나 청빈하게 생활했는지 가히 상상할 수 있었다.말
“당신 사부님 이름이 뭐라고요? 지수천이라고요?”진루안의 마음속은 놀라움으로 가득했다. 만약 자신의 기억이 틀리지 않는다면, 당초에 스승 백무소와 할아버지 진봉교가 말하길, 자신의 큰할아버지 진봉산과 R국의 여자 사이에 태어난 아이의 이름을 진태동이라고 했고 후에 나카무라 이치로라고 불렀다고 했다.결국 역사적 원인 때문에 발생한 참극 때문에, 그때부터 그는 이름을 쓰지 않고 지수천이라고만 했고 M국으로 간 뒤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지수천, 바로 진루안의 백부가 지금 쓰는 이름인 것이다.진루안은 의문이 가득한 눈빛으로 진규직을 바라보았다. ‘이 20대의 젊은 의사가 뜻밖에도 큰아버지의 제자였어?’‘땅이 하늘을 지킨다는 뜻의 이 이름은 아주 패기 있고 또 천도를 무시한다는 뜻도 있어.’‘그렇지 않고 하늘이 땅을 지킨다면 천수지라고 했을 거야. 지수천이라고 했을 리가 없어.’“왜 그러세요?” 진규직의 표정에는 의아한 기색이 가득했다. ‘스승의 이름을 말했더니 왜 진루안이 이렇게 흥분하는 거야?’‘이렇게 반응이 큰 걸 보면, 설마 스승님과 아는 사이인가?’‘아니면 스승님의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는 건가? 아니야, 스승님은 반평생 아무 명성도 없이 바로 산속에 집을 짓고 오랫동안 조용하게 수행하셨어.’‘명성이 있다 해도, 종종 일반인들을 진찰하기도 해서 단지 사방 수십 리 사이에만 명성이 있을 뿐이야.’‘하지만 만km가 넘는 바다를 가로질러서 명성이 용국에 전해진다는 건 전혀 불가능해.’“특별한 사정이 없다면, 당신의 스승님은 제 큰아버지일 겁니다!”복잡한 눈빛으로 한참동안 진규직을 보던 진루안은 그래도 사실대로 말해주었다.진루안의 말을 들은 진규직도 의아한 표정이었지만 그렇게 큰 충격은 받지 않았다.“어쩐지 그래서 스승님께서 해독해 주라고 하셨군요.”스승은 여태껏 쓸데없는 일에 참견하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에, 진규직은 앞서 스승의 결정을 납득하기 어려웠다. 지금 진루안의 말을 듣고 나서야 비로소 스승과 진루안이 친척 관계
진루안은 표정에는 의아하고 이해할 수 없다는 기색이 가득했다. ‘나는 진규직의 스승을 전혀 알지 못하는데, 왜 진규직의 스승이 나를 해독하라고 지시했는지 정말 이상한 일이야.’‘설마 단지 의사로서의 자애로운 마음일 뿐인 건가?’‘이 시대에 순수한 의사의 자애로운 마음이 어디 있겠어. 단지 돈에 타락한 이익을 추구하는 마음만 있을 뿐이지.’“제 스승님의 마음을 의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스승님이 제게 해독을 하라고 말씀하신 이상 다른 마음은 없습니다!”진루안의 안색이 심상치 않은 것을 본 진규직은, 진루안이 뭘 생각하는지 짐작하고 바로 대답했다.진루안은 비록 마음속으로는 여전히 의심이 들었지만, 진규직의 말을 믿기로 했다. 진규직의 스승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있든 자신의 독은 반드시 해독해야 하기 때문이다.“당신은 어떻게 해독할 계획입니까?” 진루안은 웃으면서 해독에 대한 의학적 소견을 물었다.진루안 자신도 백무소로부터 간단한 의술을 배우긴 했지만, 따로 연구할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그 수준은 그다지 높지 않았다.그러나 진루안은 그 안의 현묘한 이치는 알아들을 수 있다. 만약 진규직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당연히 그 처방도 아주 뛰어날 것이다.진루안이 묻자 진규직은 진루안이 자신을 평가하려는 생각임을 알아차렸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묻지 않았을 것이다.‘지금도 여전히 내 말을 믿지 않는구나.’ 이렇게 생각한 진규직은 마음속으로 좀 불만스러웠다.결국 혈기 왕성한 청년이기에 진루안에게 업신여김을 당하고 싶지 않아서 바로 말했다.“당연히 한약으로 해독할 겁니다. 그러나 한 달은 걸립니다.”“그래서 그동안 내가 당신을 따라가야 합니다.”진규직의 말은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었고 자신의 목적을 숨기지도 않았다.앞서 주한영은 진루안에게 진규직이 진루안의 곁에 있어야 한다고 말할 것이고, 이 역시 진규직의 스승이 지시한 거라고 보고했다. 그리고 진규직이 어떤 수작을 부리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방비해야 한다고 말했다.지금 진규직은 당당하게 이를 제
주한영은 일어난 뒤 바로 떠났다.차분한 표정으로 멀어져 가는 주한영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진루안은 고개를 저었다.“밖에서 그렇게 오래 기다렸는데, 들어와서 차나 한 잔 하세요!”진루안은 계속 병실 문을 주시하면서, 이번에는 주한영이 아니라 문밖에서 오랫동안 기다리고 있던 진규직에게 말했다.그는 진규직의 체내에서 발산하는 아주 희미한 기운을 느낄 수 있었다. 이런 기운은 실력이 아주 높은 고대무술 수련자만이 가질 수 있었다.앞서 진루안이 막 깨어났을 때는, 불패의 일 때문에 자세히 관찰할 수가 없었다.이제서야 진규직이 정말 간단하지 않고 정말 신비에 싸인 인물이라는 것을 깨달았다.‘그렇다면 그의 스승은 더욱 신비로운 인물이겠지.’‘이런 제자를 배출할 수 있다면, 그의 스승은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고 짐작할 수 있어.’“몸은 좀 나아졌습니까?”웃으면서 손에 과일바구니를 들고 병실에 들어선 진규직은, 과일을 테이블 위에 올려 놓은 뒤 바로 진루안에게 물었다.그의 관심은 거짓이 아니었고 위선적인 인사치레도 아니다.진규직의 미소를 보면서, 진루안은 마음속으로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표정으로 드러내지는 않았다. 예전과 다름없이 평온한 표정이었다.“이 테스트 보고서를 한번 보세요!”진루안은 바로 테스트 보고서를 진규직에게 건네주었다.주한영 때문에 진규직이 이 보고서를 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보고서를 본 진규직은 바로 눈살을 찌푸리며 침착하게 말했다.“내 짐작이 맞았군요. 불패 안의 탄소독이 아주 강력합니다.”“만약 괜찮다면 제가 그걸 부수고 안의 구조를 좀 볼 수 있을까요?” 주먹을 불끈 쥔 진규직이 차갑게 불패를 쳐다보았다.그 말에 개의치 않고 진규직의 온몸에서 스며 나오는 기세를 주시하던 진루안은 흠칫 놀랄 수밖에 없었다.‘연골3중의 경지라니.’‘나보다 한 단계가 더 높아.’진루안은 시종 자신이 경지를 돌파할 기회를 보류하면서, 좀 더 착실하게 준비한 뒤에 일거에 연골4중 경지를 돌파하려고 했다.‘그런데 이 진규직은 이렇
진루안은 앞서 주한영의 사무실에 있던 안선유를 떠올리고 화제를 돌렸다.‘그 안선유는 나를 조금도 존중하지 않았고, 심지어 주한영이 말을 했는데도 여전히 존중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어.’‘그러나 주한영이 그 모든 걸 용납한 걸 보면 주한영과 안선유의 관계가 평범하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어.’‘그리고 안선유는 평범한 여자가 아니야.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없어.’‘교만하고 무례한 데다가 제멋대로 설치는 성격이지.’‘권문세가의 여자들만 그렇게 성질을 부릴 수 있어.’‘일반 가정의 여자들은 기껏해야 순진한 척하면서 내숭을 떠는 정도지.’주한영은 순간 흠칫했다. 좀 전에 깨어난 진루안이 안선유에게 관심을 보인 것이다.안선유에 대해서 진루안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몰랐다.진루안에게 말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다.“안선유는 안씨 가문의 장녀입니다!”“안씨 가문의 할아버지가 제 할아버지와 의형제를 맺으셨습니다. 그 어르신이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안선유를 돌봐 달라고 부탁하셨습니다.”주한영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진루안에게 대답했다. 대답은 아주 간결하고 간단했지만, 진루안은 오히려 얼버무리려는 느낌이 가득하다고 느꼈다.진루안은 화를 내는 대신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안선유를 처음 만났을 때, 주한영은 마치 자신에게 이 안선유를 알리고 싶지 않은 것처럼 대충 넘어갔어. 왜 그랬던 걸까?’‘게다가 안선유와 주한영의 관계는 일반적이고 평범한 관계가 아닐 뿐만 아니라, 손윗사람의 부탁이라는 주한영의 말처럼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닐 수도 있어.’“당신이 그 아가씨와 어떤 관계든 나는 상관하지 않아.”“그 아가씨가 어떤 사람인지, 어떤 가문 출신인지도 나와는 상관이 없어.”“하지만 그 아가씨가 정보를 취급하게 해선 안 돼!”“당신의 다음 계승자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해!”진루안이 사실대로 말한 것은 주한영에 대한 일종의 경고라고 할 수 있다.그는 확실히 주한영에게 마음의 가책을 느꼈다. 자신 때문에 주한영의 언니 주경영은 희생을 치러야
불패가 든 주머니를 상자에 넣은 진루안은 일어나서 창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더없이 복잡한 눈빛으로 창밖의 경성 풍경을 바라보았다. 지금 경성은 이미 해질녘에 접어들었다. 붉게 타오르는 구름은 점차 어두워지면서 결국 흔적도 없이 사라질 것이다.“궐주님, 보고할 일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한참 동안 불패를 바라보던 주한영이 계속 말했다.“뭘 보고하려는 거야? 말해 봐!” 고개를 끄덕인 진루안이 주한영을 바라보았다.주한영은 쓸데없는 말은 전혀 하지 않고, 아까 화장실에서 진규직이 그의 스승과 나누었던 통화 내용을 그대로 진루안에게 알려주었다.물론 이는 그녀가 들은 것뿐이며, 잘 듣지 못한 걸 사실처럼 보고할 수는 없었다.그러나 그렇다고 해도, 이 젊은 의사는 분명히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주한영은 100% 확신할 수 있었다. ‘게다가 젊은 의사가 이렇게 뛰어난 의술을 가지고 있다는 것도 비현실적이야. 진루안을 진찰한 두 노교수는 모두 50여 년 동안 의사로 일했다는 것을 알아야 해.’‘그들도 아무것도 알아내지 못했는데, 20대에 불과한 이 진규직이 문제를 알아차렸다는 건 믿기 어려워.’‘다만 믿지 않는다고 했지만, 진규직이 진루안이 혼절한 증거를 찾았고 실증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야.’그래서 주한영은 진규직은 진씨 가문의 멸망과 관계가 있을 가능성이 아주 크고, 설사 이와는 무관하다 하더라도 이 불패와 아주 큰 관계가 있을 거라고 의심했다.‘단정할 수는 없지만, 이 불패는 바로 진규직의 스승 소행일 거야.’그녀는 추측한 내용을 모두 진루안에게 말했다. 오랫동안 멍하니 있던 진루안은 마지막에 주한영을 보고 소리칠 수밖에 없었다.“당신은 그가 나쁜 사람이라고 이렇게 확신하는 거야?”“궐주님, 막을 수밖에 없습니다.” 진루안의 아무렇지 않은 듯한 표정을 본 주한영이 얼른 권유했다.진루안이 이 일을 엄밀하게 대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가능성이 높다고 느낀 것이다.진루안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신 추측은 일리가 있어. 하지
그러나 이 일은 다른 사람에게 말하지 않았고, 진루안에게도 알리지 않았다.하지만 진규직이 자신의 내막과 허실을 한눈에 알아차렸기에, 주한영은 더욱 꺼리면서 경계하게 되었다.‘어떤 계획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진규직에게는 반드시 계획이 있어.’“내가 있는 한 궐주에게 접근할 생각은 버려요!”조용히 경고한 주한영은 진규직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려 나갔다.진규직은 자신에게 경고하고 돌아선 주한영의 뒷모습을 씁쓸하게 바라보았다.이 말뿐인 위협은 당연히 무의미했다.‘그렇다고 해도 이 위협은 나에 대한 주한영의 경각심을 말해 주고 있어. 스승님의 지시에 따르는 건 아마 쉽지 않을 거야.’‘하지만 내가 진루안의 신임을 얻기만 하면 돼.’‘그리고 내가 해야 하는 일은 진루안의 해독을 돕는 거지, 진루안을 해치려는 게 아니야. 이건 스승님의 지시니 당연히 그대로 따라야 해.’고개를 저은 진규직은 주한영의 뒤를 따라 테스트 센터의 홀로 돌아왔다.지금 3번 창구의 간호사는 이미 보이지 않았고 센터장이 직접 지키고 있었다.언제 감정 결과가 나오든 주한영이 떠나야 센터장도 한숨을 돌릴 수 있을 것이다.그렇지 않고 이런 거물이 메디컬 테스트 센터에 계속 남아 있다면, 센터장은 엄청난 압력을 받게 될 것이다.한 시간의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센터장은 테스트 보고서를 직접 주한영에게 건네준 뒤 자루 안에 든 단목불패도 건넸다.주한영은 불패를 꽉 쥔 채 진규직이 접근하지 못하게 했다.마음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면서 테스트 보고서를 대충 훑어본 뒤, 주한영은 진규직을 무시한 채 빠른 걸음으로 테스트 센터를 나섰다.진규직은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건물 밖으로 나와서는 이미 멀어진 아우디 차를 보면서 발을 동동 구를 수밖에 없었다.‘주한영은 스승님과의 통화 내용을 듣고 이미 나를 의심하고 있어.’‘여자의 의심은 쉽게 해결할 수 있는 게 아니야.’‘원래 여자의 마음은 전혀 종잡을 수가 없잖아.’진규직은 택시를 타고 경성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었다.다시
“진루안이라는 청년은 체내의 탄소독이 아주 심각한 수준입니다.”“사부님, 이 일을 조사하라고 하셨는데, 이 일은 이미 잘 파악했습니다. 저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요?”보고를 마친 진규직은 계속 사부에게 어떻게 해야 할지 물었다.사실 그가 용국에 온 것은 이 일 때문이다. 일을 마쳤으니 원래대로라면 이미 M국으로 돌아가도 되었다.그러나 사부의 구체적인 명령 없이는 제멋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전화기에서는 한참동안 말이 없었다. 스승이 뭘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스승이 말을 하지 않으니 그 역시 경솔하게 말을 할 수 없었다.한참 후에 전화기에서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가능하다면 진루안의 곁에 남아서 체내의 독소를 해결해 주도록 해라!]“예, 사부님!” 사부의 말을 들은 진규직은 의아해하면서도 고개를 끄덕이며 승낙했다.[그래, 다른 일이 없으면 끊는다. 국제전화는 비싸!]뚜뚜뚜!진규직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사부님은 여전히 이렇게 고지식하시지. 고지식하면서도 빈틈이 없으셔서 여태까지 잘못을 저지르지 않았고, 쓸데없는 얘기조차 하지 않으셨어.’이 사람이 바로 그를 십여 년 동안 이끌어 준 스승이다.애석하게도 그는 스승의 진짜 이름도 알지 못했고, 단지 자칭 세상을 자유롭게 다니는 분이라는 것만 알고 있다.‘사부님은 생계도 어렵고 궁핍하게 생활해기 때문에, 전화비가 비싸다고 말한 것도 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돈을 아끼려는 거야.’‘그러나 스승님은 생활이 어려웠음에도 나를 십여 년 동안 길러 주셨어. 특히 내 생활비와 영약을 사는 돈은 거의 모두 스승님이 돈을 내셨지.’지금 그는 스승과 떨어져 있어서 만나고 싶어도 쉽지 않았다.원래는 M국으로 돌아가서 스승의 슬하에서 돌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스승은 오히려 진루안과 함께 있을 기회를 찾으라고 지시했다,‘혹시 사부님과 진루안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는 건 아니겠지?’그가 그런 관계를 알 수 없다고 해도 스승의 지시를 거역하지는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