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추준인 건가?’조연아가 다시 액셀을 밟으려던 그때.“연아 씨, 저 오 비서입니다!”다급한 오민의 목소리에 핸들을 꽉 부여잡았던 핸들을 손에 힘이 턱 풀렸다.“연아 씨, 저희 대표님 만나셨습니까?”차에서 내린 오민이 다급하게 물었다.“지금 제 옆에 있어요. 다쳐서 얼른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네? 대표님께서 다치셨다고요?”조수석 문을 벌컥 여니 창백한 안색의 민지훈이 모습을 드러냈다.피로 물든 흰 셔츠를 바라보던 오민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런 표정 짓지 마. 별일 아니니까.”“대표님, 얼른 병원으로 가시죠.”오민이 그를 부축하려던 그때, 민지훈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식은땀으로 차갑게 식은 조연아의 손을 살짝 잡았다.“아직 완전히 안전해진 건 아니야. 그러니까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마.”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해주는 듯한 그의 눈빛에 조연아의 가슴이 파르르 떨려왔다.“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한시가 다급한 상황에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다급해진 오민이 조연아를 설득했다.“연아 씨, 부탁드릴게요. 저희 대표님 성격 아시잖아요. 지금 거절하시면 저희 대표님 절대 치료 안 받으실 거예요. 제발... 제가 무릎이라도 꿇겠습니다.”조연아가 무릎을 꿇으려는 오민의 팔을 붙잡았다.“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일단 병원으로 가요.”“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아 씨...”의사가 총알을 꺼낼 때까지 민지훈은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의사도 살다살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지만 환자가 민하그룹 민지훈 대표이니 안 된다는 소리는 못하고 애원어린 눈으로 조연아를 바라볼 뿐이었다.“휴.”한숨을 내쉰 조연아가 어린 아이를 달래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민지훈, 이 손 좀 놔. 선생님께서 곤란해 하시잖아.”“꼭 놓아야 해? 나 무서워. 아프면 어떡해?”이게 무슨 억지란 말인가?어이가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그녀를 구하려다 다쳤으니 이를 악물고 애써 짜증을 밀어냈다.“마취
이에 조연아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확신해요. 사촌오빠의 목소리를 착각할 리가 없으니까요.”지하주차장에 울리던 그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해 조연아의 몸이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네, 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부터는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부탁드리겠습니다.”경찰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조연아가 여전히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민지훈을 노려보았다.“도대체 언제까지 잡고 있을 건데?”“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민지훈!”짜증을 내는 모습도 어쩜 이렇게 귀여운지.민지훈이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똑똑똑.이때, 오민이 병실로 들어왔다.“대표님.”“어떻게 됐어?”민지훈의 질문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대포폰이라 신분을 알아내는 데는 실패했습니다.”두 사람의 대화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조연아가 물었다.“대포폰? 그게 무슨 소리예요?”“아, 아직 모르셨습니까? 오늘 정체불명의 남자가 대표님께 전화를 걸어 연아 씨가 위험하다고. 어서 임천병원 지하주차장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상대가 총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고요. 그래서 대표님께서 그렇게 여러 번 전화를 거셨던 겁니다.”“그랬군요...”‘그래서 부재중통화가 그렇게 많이 와있었던 거구나. 그리고 내가 문자로 위치를 보내자마자 바로 도착한 것도 미리 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어. 누구지? 그 사람은 내가 위험해질 거라는 걸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지?’이때 오민이 말을 이어갔다.“전화번호를 추적해 봤는데 대포폰이더군요. 꽤나 신중한 상대인 것 같습니다. 뭐, 연아 씨가 무사하니 다행이지만요.”이때 조연아를 잡은 민지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추준이 널 죽이려는 이유가 뭐야?”“그러니까요. 가족끼리 서로 죽고 죽인다는 게 말이 됩니까?”기막힌 사건에 경찰들도 혀를 끌끌 차던 모습을 떠올리며 오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연아 씨... 왜 그렇게 가족운이 없으실까.’“연아 씨가 스타엔터를 빼앗은 게 고까워서 그런 걸까요?”오민의 질문에 조연아
“오 비서님.”민지훈의 시선이 오민에게로 향했다.“추준, 그 사람의 행적에 대해 조사해 보세요.”“네.”고개를 끄덕인 오민이 돌아서던 그때, 190센치의 거구가 병실 문을 벌컥 열어제쳤다.“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백장미 ... 그러니까 하율 씨 어머니께서... 병실에서 자살했답니다.”“뭐라고요?”충격적인 소식에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조연아가 휘청거리고 민지훈이 그녀를 부축했다.순간 안색이 창백해진 조연아를 걱정스레 바라보던 만두가 말을 이어갔다.“저기... 병원 주차장에서 하마터면 큰일 나실 뻔했다면서요.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전 괜찮아요.”고개를 저은 조연아는 애써 이성의 끈을 부여잡았다.“언제... 발견된 건데요?”“15분 전, 병실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하율이는? 하율이는 이 사실 알고 있어요?”이에 만두가 고개를 저었다.“아직 하율 씨에겐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경찰도 도착했으니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겠죠.”“알겠어요.”고개를 끄덕인 조연아가 백장미의 병실로 향하려던 그때, 민지훈이 그녀를 붙잡았다.“같이 가.”“아니야. 당신은 푹 쉬어. 그리고... 오늘 구해줘서 고마워.”“널 혼자 보내고 내가 두 다리 뻗고 쉴 수 있을 것 같아?”지하주차장에서 하마터면 사촌오빠 손에 죽을 뻔한 것도 모자라 새엄마의 자살 소식까지.너무 많은 일이 벌어진 하루, 지금 사건 현장을 목격한 조연아가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고집 좀 그만...”민지훈의 고집을 꺾을 시간 따위 없다는 생각에 조연아는 말끝을 흐리고 돌아섰다.‘뭔가 이상해.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그럴 리가 없어.’잠시 후, 조연아 일행이 6층에 도착했을 땐 먼저 온 경찰이 복도 전체를 봉쇄한 뒤였다.“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죠... 전 스타엔터 조연아 대표입니다. 사망자... 가족이기도 하고요.”“아, 현장 상황만 봐서는 자살로 보입니다. 유서에 조연아 씨의 어머니인 추현 회장님을 살해한 과정이 적혀
절망적인 순간, 민지훈의 따뜻한 위로에 애써 쌓았던 마음의 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장미야! 장미야!”이때, 역시 소식을 듣고 달려온 조학찬이 흰 천으로 덮혀 실려나오는 백장미의 시체를 향해 달려들었다.“이러지 마세요. 현장 보호해야 합니다. 진정하세요.”“내일 아침에... 내가 따뜻한 아침 가져다주기로 했잖아.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경찰에 가로막힌 조학찬은 한참을 오열하다 스르륵 주저앉았다.“서랍장에서 백장미 씨의 유서를 발견했습니다. 그중에는 전 아내인 추현 씨의 사인도 적혀있었고요.”경찰의 말에 고개를 파묻고 눈물을 흘리던 조학찬이 번쩍 머리를 쳐들었다.“뭐라고요? 추현이 죽은 거랑 장미가 무슨 상관인데요!”“백장미 씨가 유서에 본인이 추현 씨를 밀어 살해했다고 자백했습니다.”“지... 지금 그게 무슨...”경찰의 말에 충격을 받은 조학찬이 뒷걸음질 치며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장미가 추현을 죽일 리가 없잖아. 그리고... 애초에 장미가 무슨 수로 스타엔터 건물 내부로 들어가. 추현은 자살이야. 우리 장미한테 뒤집어 씌우지 마!”“백장미 죽은 것만 슬프고... 우리 엄마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슬프지도 않은가 보지?”조학찬의 앞으로 다가간 그녀가 따져 물었다.“엄마가 왜 돌아가셨나고... 혹시 백장미 저 여자가 한 거 아니냐고 물었을 때 아버지 뭐라고 하셨어요. 말 좀 해보세요!”그제야 조연아를 발견한 조학찬이 부들거리는 손으로 그녀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네, 네가 왜 여기에. 너지. 네가 우리 장미 죽인 거지. 그래. 네가 죽인 거야...”이미 이성을 잃은 조학찬은 미친 사람처럼 경찰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형사님, 저 계집애 당장 체포하세요. 우리 장미가 자살일 리가 없어요. 쟤가 바로 용의자라고요!”“지...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기막힌 상황에 조연아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그녀를 미워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대로 친딸을 살인 용의자로 몰 줄이야...
“어디까지나 현장에 타살 흔적이 보이지 않아 자살로 추정될 뿐입니다. 혐의가 없으면 조사는 곧 끝날 테니 협조해 주십시오.”“알겠습니다.”조금은 이성을 되찾은 조학찬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체면이고 뭐고 울부짖는 조학찬의 모습과 몇 년 전, 추현이 세상을 떴을 때 너무나 무덤덤하던 그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조연아의 가슴이 저려왔다.‘왜... 우리 엄마한테는 그렇게 매정했던 건데... 그래도 한때는 부부였잖아.’조학찬이 경찰과 함께 자리를 뜨고 그제야 고개를 돌린 조연아는 묘한 눈빛으로 민지훈을 바라보았다.‘아까... 날 지켜준 건가?’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 깊이 묻어두었던 감정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잠시 후 주위에 몰려들었던 구경꾼들도 흩어지고 다시 조용해진 복도에 달콤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언니,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어떻게 된 거야?”병원복 차림의 조하율이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하율 씨!”벌떡 일어선 만두가 그녀를 막아서려 했으나...병실 내부의 참상을 목격한 조하율은 입을 틀어막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기 누워있는 게 우리 엄마라고?”“하율아...”“엄마!”만두도 이성을 잃고 병실로 뛰어들어가려는 조하율의 앞을 가로막았다.“하율 씨, 이러지 마세요.”“이거 놔요...”조하율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저게 우리 엄마일 리가 없잖아요. 지금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잖아요. 내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거니까 이거 놓으라고요!”“하율아, 진정해.”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고개를 돌린 조하율이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언니, 다 거짓말이지? 거짓말이라고 해줘. 저기 누워있는 사람 우리 엄마 아니지? 나 언니 말이라면 믿을 수 있어. 그러니까 제발...”지금 이 상황에서 거짓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조연아는 고개를 저었다.“미안해, 하율아...”“아니야... 아니야...”다시 병실로 고개를 돌린 조하율이 울부짖었다.“엄마! 엄마! 눈 좀 떠
“동생”급박한 순간이긴 했지만 너무나 자연스럽게 동생이라는 말이 튀어나오는 순간, 조연아는 비로소 피가 물보다 진하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죽도록 미운 백장미의 딸이지만 어느새 조하율을 동생으로 생각하고 있는 조연아였다.조하율이 병실로 옮겨지고 그 옆에 서있던 조연아는 잔뜩 굳은 얼굴로 생각에 잠겼다.‘지율이랑 백장미가 교통사고를 당한 것도 모자라 추준이 날 죽이려 했고... 백장미는 결국 자살했어.’단 하룻 동안 일어난 세 건의 사고.‘이게 우연일 리가 없어.’“선생님, 저희 동생 괜찮은 거예요?”“충격으로 인한 일시적인 기절입니다. 별 문제 없으니 푹 쉬고 안정을 취하세요.”한숨을 푹 내쉰 의사가 말을 이어갔다.“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아무렇지 않은 자식이 어디 있겠어요. 이럴 때일수록 다른 가족들이 더 마음을 보듬어주셔야 합니다.”“네, 감사합니다, 선생님.”의사가 병실을 나서고 조연아는 깊게 잠든 조하율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았다.“대표님, 여긴 제게 맡기시고 얼른 들어가서 쉬세요. 대표님도 많이 놀라셨잖아요. 하율 씨는 제가 지키겠습니다.”“그럼... 잠깐 집에 들렀다 올게요.”탁.병실을 나선 조연아의 시야에 다친 몸으로 내내 그녀의 곁을 지켰던 민지훈의 모습이 들어왔다.“오늘... 고마웠어.”‘운 건가?’민지훈의 손이 조연아의 얼굴을 향했지만 그녀는 매정하게 고개를 돌려버렸다.어색하게 허공에 멈춘 손을 거둔 그가 말했다.“내가 데려다줄게.”“아니야. 내가 알아서...”“어머님 유품, 내 차에 있어.”“...그래.”잠시 후, 민지훈이 그녀를 위해 조수석 문을 열어주었다.“타.”“운전 내가 할게. 당신 다쳤잖아.”“별거 아니야. 운전 내가 할 수 있어.”“아니, 그냥 내가 한다니까...”“말 들어.”억지로 조수석으로 그녀를 밀어 넣은 민지훈은 안전벨트까지 매주었다.“우리 엄마 물건, 얼른 줘.”“앞에 열어봐.”달칵.조심스레 나무상자를 연 조연아의 입가에 어느새 미소가 서렸다
오랜만에 보는 추현의 손때가 묻은 물건들.그녀에겐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졌다.“민지훈.”상자를 닫고 고개를 든 조연아가 미간을 확 찌푸렸다.‘여긴 우리 집으로 가는 길도 민지훈 집으로 가는 길도 아니잖아.’“지금 어디 가는 거야?”“가보면 알아.”애매한 대답에 조연아의 의아함은 더 커져만 갔다.두 사람을 실은 차량은 약 30분 정도를 달려 해변가에 멈춰섰다.“바다? 여긴 왜 온 거야?”서늘한 새벽 바닷바람에 조연아의 머리카락이 살랑였다.“너 때문에 다쳤으니까 나랑 같이 일출 보자.”‘일출?’잠시 후. 어두운 저 하늘 너머가 점차 밝아지더니 눈부신 태양이 점차 모습을 드러냈다.“예쁘다.”햇살을 맞으며 자유롭게 하늘을 나는 갈매기, 어딘가 비릿한 바다내음을 느끼던 조연아는 씨익 미소를 짓고 민지훈은 넋을 잃고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모든 걸 다 가진 남자, 완벽한 남자라 불리는 민지훈이 이렇게 순수한 사랑의 감정으로 설렐 수도 있다는 거 사람들은 알고 있을까?“네가 훨씬 더 예뻐.”갑작스러운 고백에 어색하게 고개를 돌린 조연아가 물었다.“그런데 갑자기 일출은 왜?”“일출은... 새로운 시작을 의미하니까.”‘새로운 시작...’민지훈의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고 있기에 방금 전까지 조금 들떠있던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았다.“우리 둘 사이에 시작 같은 건 없어. 난 널... 다시 사랑하지 않을 거야.”“그럼 내가 널 짝사랑할게.”‘널 위해 죽게 된다고 해도... 아낌없이 널 사랑할게.’한 번 뱉은 말은 꼭 지키는 민지훈에게 이 한 마디가 얼마나 큰 무게를 가지고 있음을 알고 있기에 조연아는 더 마음을 독하게 먹었다.“나 주혁이 오빠랑 결혼할 거야. 그래도 나 좋아할 거야?”“응.”‘아니, 넌 고주혁 그 자식이랑 결혼 못할 거야. 무슨 일이 있어도 내가 막을 테니까.’아무것도 못 들은 척 고개를 돌린 조연아는 한동안 조용히 일출을 바라보았다.“빌라로 돌아가고 싶어.”집으로 가고 싶다고 말하려던 그녀는 또 민지훈이 괜
할 말을 마친 민지훈이 어느새 먼저 운전석에 탑승했다.“타.”하룻밤 사이에 너무나 많은 일을 겪은 조연아에게 운전까지 맡기고 싶지 않은 민지훈이었다.게다가 여긴 그가 데리고 온 거니까.‘하여간 고집은...’고개를 저은 조연아는 결국 조수석에 올라탔다.돌아가는 내내 두 사람은 서로 단 한 마디도 나누지 않았다.“어머님을 살해한 범인... 잡힌 거나 마찬가지니까 이 일은 그만 파.”방금 전 민지훈이 했던 말이 끝없이 머릿속을 맴돌았다.‘왜...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지?’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에 무릎에 올려둔 나무상자가 더 무겁게 느껴졌다.“당신이 날 구한 대가로 일출 보러 온 거니까 이제 서로 쌤쌤인 거지? 이제 서로 연락하지 말자.”잠시 후, 빌라 앞에 도착한 조연아가 먼저 입을 열었다.“들어가는 거 보고 갈게.”동문서답인 민지훈의 모습이 답답했지만 조연아는 더 고집을 부리지 않고 아파트로 들어섰다.이때, 아침운동을 하러 나오는 아주머니들이 그녀를 발견하고 묘한 미소를 지었다.“아이고, 이제 오는 거야?”“안녕하세요.”평소 오며 가며 안면을 튼 데다 흉흉한 요즘 세상과 어울리지 않게 너무나 따뜻하게 대해주는 아주머니들이라 조연아는 환하게 웃어 보였다.“안녕하세요.”“그런데... 저기 저 총각은 남자친구인가? 어쩜 인물이 저렇게 훤해!”“...”말문이 막힌 조연아가 괜히 눈치만 살폈다.“어머, 차도 좋고... 얼굴도 완벽해. 저런 남자 꽉 잡아야 해.”“그러니까. 우리 아가씨랑 같이 서면 아주 선남선녀겠네.”“그럼 우린 청접장만 기다리고 있을게.”“아, 아주머니들. 얼른 약수터로 가보셔야죠. 안 그럼 좋은 기구 다 빼앗기세요.”조연아가 자연스레 화제를 돌리자 아주머니들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어머, 어머. 우리 정신 좀 봐. 그럼 다음에 다시 얘기해!”서둘러 문을 나서던 아주머니들은 민지훈을 향해 손을 젓는 것까지 잊지 않았다.“총각, 힘내!”“총각, 우리 아가씨 인기 아주 많아! 얼른 낚아채야지!”“결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