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천히 발걸음을 늦춘 조연아는 옆에 주차된 차량 사이드미러로 뒷쪽을 살폈다.검은색 모자, 검은색 마스크.딱 봐도 수상한 차림의 남자가 그녀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어딘가 눈에 익은데. 누구지?’불안감에 심장이 쿵쾅대기 시작하고 조연아는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척 걸음을 옮겼다.그리고 코너를 도는 순간, 하이힐을 다른 쪽으로 벗어던진 조연아는 주차장 기둥 뒤로 몸을 숨겼다.역시나 남자는 다른쪽으로 달려가고 그 틈에 조연아는 빠르게 차를 세워둔 차를 향해 맨발로 달려갔다.‘어서... 어서 여기서 나가야 해.’하지만 그녀가 차문을 열려던 순간.탕!귀청이 찢어질 듯한 총소리와 함께 급박한 발걸음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입술을 깨문 채 그녀를 향해 돌진하는 남자를 바라보던 조연아는 차를 방패막 삼아 날카로운 총알을 막아냈다.‘상대는 총을 가지고 있어. 어쩌지... 어떻게 하지...’급박한 와중, 조연아는 운전석 문을 일부러 크게 연 뒤 미친 듯이 뒤편ㅇ르 향해 달려가기 시작했다.‘저 앞이 바로 관리실이야. 경비원한테 이 사실을 알려야 해.’한편, 총을 든 채 차문을 벌컥 연 남자는 텅 빈 차안을 발견하고 욕설을 내뱉었다.“젠장.”주차장 주위를 둘러보던 그가 말을 이어갔다.“이 건방진 계집애가 날 가지고 놀아? 좋아. 숨바꼭질을 하시겠다? 그래, 한번 도망쳐 봐.”하지만, 불이 켜져있는 관리실을 향해 달려가던 조연아는 천천히 걸음을 멈추었다.유리창에 가득 묻은 피와 의자에 앉은 채 꿈쩍도 하지 않는 경비원을 발견한 조연아는 손으로 입을 틀어막으며 비명소리를 삼켜냈다.‘그래. 아까 총소리를 듣고도 경비원이 달려오지 않았을 때 진작 눈치채야 했어야 했는데...’깊은 한숨을 내쉰 조연아는 일단 급한 대로 경비실 뒤편에 몸을 숨겼다.경찰에 신고를 하려고 휴대폰을 꺼낸 조연아는 이미 수십통의 부재중전화가 와있음을 발견했다.바로 그때, 또다시 전화가 걸려오고...오래전 지웠지만 익숙한 번호에 조연아의 눈동자가 흔들렸다.‘민지훈...’하
“조연아, 네가 여기서 도망칠 수 있을 것 같아? 괜히 힘 빼지 말고 나와. 넌 오늘 무조건 죽을 테니까.”남자의 목소리가 텅 빈 주차장에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고...그 소리에 조연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추준?’방금 전 어딘가 눈에 익은 그 남자가 그녀의 사촌오빠 추준일 줄이야.충격에 몸이 덜덜덜 떨리는 와중에도 조연아는 소리를 내지 않으려 입을 꽉 틀어막았다.한편, 추준은 지하주차장을 이리저리 누비며 혼잣말을 이어갔다.“조연아, 내 자랑스러운 사촌동생. 이쁘고 똑똑한 내 동생. 널 죽이려니까 이 오빠도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아. 그런데 어떡해. 너 때문에 내가 백억이 넘는 빚을 지게 생겼는데. 게다가 날 상대로 소송? 하, 널 죽이고 내가 스타엔터 대표가 될 거야. 그럼 빚도 갚을 수 있겠지.”깊은 숨을 들이쉬던 추준의 눈동자가 살기로 번뜩였다.“그래. 넌 어려서부터 재수가 없었어. 뭐라도 된 것처럼 고고한 그 눈빛이 얼마나 역겨웠는 줄 알아? 너도, 네 엄마처럼 재수가 없어서 그렇게 빨리 뒤지는 거야.”추준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소송 소식을 입수했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지금은 그런 것 따위를 생각할 여유가 없었다.초조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던 조연아의 시야에 스위치가 눈에 들어왔다.천천히 몸을 옮긴 조연아가 스위치를 내리고...탁 하는 소리와 함께 지하주차장은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에 빠졌다.‘지금이야.’추준이 어둠에 익숙해지지 않은 지금이 최적의 기회라고 생각한 조연아는 빠르게 출구를 향해 달려갔다.한편, 그녀의 발걸음 소리를 들은 추준은 어둠 속에서 망설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탕! 탕!“꺄악!”죽음의 공포에 참았던 비명소리가 결국 터져 나오던 그때, 누군가 그녀의 팔목을 홱 잡아당겼다.그리고 그녀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따뜻한 입술이 그녀의 입을 틀어막았다.익숙한 향기에 휘둥그레진 그녀의 시야에 어렴풋이 민지훈의 모습이 들어왔다.우습게도 그의 존재만으로 공포로 경직되어 있던 몸에 힘이 풀렸다.“이제 괜찮아.”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이제 곧 오민이 경호원들과 함께 도착할 것이다.그 사이에 시간을 벌려면 추준을 유인해야 할터, 민지훈은 기꺼이 자신을 미끼로 사용하기로 다짐했다.하지만 두 손으로 그의 팔을 꼭 잡은 조연아가 고개를 저었다.“안돼... 너무 위험해. 저 자식 총까지 가지고 있다고.”두려움으로 떨리는 그녀의 손을 바라보던 민지훈은 어이없게도 미소가 흘러나왔다.‘그래도... 내가 걱정되긴 하나 보지?’“괜찮으니까 얼른 놔.”아무렇지 않은 척 얘기해도 민지훈을 기다리고 있는 건 죽음의 위협이라는 걸 알고 있는 조연아는 눈물 섞인 눈동자로 고개를 저었다.“민지...”하지만 애써 그녀의 손을 뿌리친 민지훈은 단호하게 문을 닫아버렸다.새카만 통제실, 조연아는 좁디좁은 문틈 사이로 멀어져가는 민지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울지 마... 지금 울면 민지훈의 노력이 전부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거야.’조연아는 아직 민지훈의 체온이 남아있는 손으로 다시 입을 틀어막았다.바로 그때.타다닥.민지훈의 인기척에 이끌린 추준이 어느새 그를 향해 달리기 시작했다.‘안돼. 여기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수만은 없어. 추준이 죽이려는 건 나야.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다치는 건 죽어도 싫어.’뭔가 결심한 듯 입술을 굳게 깨문 조연아는 휴대폰으로 차량의 위치를 확인했다.발걸음소리가 점점 멀어지는 걸 확인한 조연아는 허리를 숙인 채 빠르게 차가 주차된 방향으로 달려갔다.“후우.”놀라운 직감으로 단번에 차에 탄 조연아가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시동 버튼으로 향하는 조연아의 손이 부들부들 떨려왔다.여기서 시동을 거는 순간, 그녀의 위치가 바로 노출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더는 망설일 여유가 없었다.부르릉.차에 시동을 건 조연아는 있는 힘껏 엑셀을 밟았다.지하주차장을 질주하던 조연아의 시야에 드디어 민지훈의 모습이 들어오고...조수석 문을 연 조연아가 그를 향해 외쳤다.“어서 타!”탕! 탕!추준의 짧은 욕설과 함께 총소리가
‘설마... 추준인 건가?’조연아가 다시 액셀을 밟으려던 그때.“연아 씨, 저 오 비서입니다!”다급한 오민의 목소리에 핸들을 꽉 부여잡았던 핸들을 손에 힘이 턱 풀렸다.“연아 씨, 저희 대표님 만나셨습니까?”차에서 내린 오민이 다급하게 물었다.“지금 제 옆에 있어요. 다쳐서 얼른 병원에 가봐야 할 것 같아요.”“네? 대표님께서 다치셨다고요?”조수석 문을 벌컥 여니 창백한 안색의 민지훈이 모습을 드러냈다.피로 물든 흰 셔츠를 바라보던 오민이 미간을 찌푸렸다.“그런 표정 짓지 마. 별일 아니니까.”“대표님, 얼른 병원으로 가시죠.”오민이 그를 부축하려던 그때, 민지훈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그리고 식은땀으로 차갑게 식은 조연아의 손을 살짝 잡았다.“아직 완전히 안전해진 건 아니야. 그러니까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마.”진심으로 그녀를 걱정해주는 듯한 그의 눈빛에 조연아의 가슴이 파르르 떨려왔다.“왜...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한시가 다급한 상황에 말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두 사람의 모습에 다급해진 오민이 조연아를 설득했다.“연아 씨, 부탁드릴게요. 저희 대표님 성격 아시잖아요. 지금 거절하시면 저희 대표님 절대 치료 안 받으실 거예요. 제발... 제가 무릎이라도 꿇겠습니다.”조연아가 무릎을 꿇으려는 오민의 팔을 붙잡았다.“알겠어요. 알겠으니까 일단 병원으로 가요.”“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연아 씨...”의사가 총알을 꺼낼 때까지 민지훈은 꼭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의사도 살다살다 이런 상황은 처음이었지만 환자가 민하그룹 민지훈 대표이니 안 된다는 소리는 못하고 애원어린 눈으로 조연아를 바라볼 뿐이었다.“휴.”한숨을 내쉰 조연아가 어린 아이를 달래 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민지훈, 이 손 좀 놔. 선생님께서 곤란해 하시잖아.”“꼭 놓아야 해? 나 무서워. 아프면 어떡해?”이게 무슨 억지란 말인가?어이가 없었지만 어찌 되었든 그녀를 구하려다 다쳤으니 이를 악물고 애써 짜증을 밀어냈다.“마취
이에 조연아는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확신해요. 사촌오빠의 목소리를 착각할 리가 없으니까요.”지하주차장에 울리던 그 목소리가 다시 들리는 듯해 조연아의 몸이 저도 모르게 움찔거렸다.“네, 협조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지금부터는 저희가 처리하겠습니다.”“부탁드리겠습니다.”경찰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인 조연아가 여전히 그녀의 손을 꼭 잡고 있는 민지훈을 노려보았다.“도대체 언제까지 잡고 있을 건데?”“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민지훈!”짜증을 내는 모습도 어쩜 이렇게 귀여운지.민지훈이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똑똑똑.이때, 오민이 병실로 들어왔다.“대표님.”“어떻게 됐어?”민지훈의 질문에 그가 고개를 저었다.“대포폰이라 신분을 알아내는 데는 실패했습니다.”두 사람의 대화에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던 조연아가 물었다.“대포폰? 그게 무슨 소리예요?”“아, 아직 모르셨습니까? 오늘 정체불명의 남자가 대표님께 전화를 걸어 연아 씨가 위험하다고. 어서 임천병원 지하주차장으로 가라고 했습니다. 상대가 총기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까지 알고 있었고요. 그래서 대표님께서 그렇게 여러 번 전화를 거셨던 겁니다.”“그랬군요...”‘그래서 부재중통화가 그렇게 많이 와있었던 거구나. 그리고 내가 문자로 위치를 보내자마자 바로 도착한 것도 미리 정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어. 누구지? 그 사람은 내가 위험해질 거라는 걸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지?’이때 오민이 말을 이어갔다.“전화번호를 추적해 봤는데 대포폰이더군요. 꽤나 신중한 상대인 것 같습니다. 뭐, 연아 씨가 무사하니 다행이지만요.”이때 조연아를 잡은 민지훈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추준이 널 죽이려는 이유가 뭐야?”“그러니까요. 가족끼리 서로 죽고 죽인다는 게 말이 됩니까?”기막힌 사건에 경찰들도 혀를 끌끌 차던 모습을 떠올리며 오민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연아 씨... 왜 그렇게 가족운이 없으실까.’“연아 씨가 스타엔터를 빼앗은 게 고까워서 그런 걸까요?”오민의 질문에 조연아
“오 비서님.”민지훈의 시선이 오민에게로 향했다.“추준, 그 사람의 행적에 대해 조사해 보세요.”“네.”고개를 끄덕인 오민이 돌아서던 그때, 190센치의 거구가 병실 문을 벌컥 열어제쳤다.“대표님! 큰일 났습니다. 백장미 ... 그러니까 하율 씨 어머니께서... 병실에서 자살했답니다.”“뭐라고요?”충격적인 소식에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린 조연아가 휘청거리고 민지훈이 그녀를 부축했다.순간 안색이 창백해진 조연아를 걱정스레 바라보던 만두가 말을 이어갔다.“저기... 병원 주차장에서 하마터면 큰일 나실 뻔했다면서요. 어디 다치신 데는 없으십니까?”“전 괜찮아요.”고개를 저은 조연아는 애써 이성의 끈을 부여잡았다.“언제... 발견된 건데요?”“15분 전, 병실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었습니다.”“하율이는? 하율이는 이 사실 알고 있어요?”이에 만두가 고개를 저었다.“아직 하율 씨에겐 말씀드리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경찰도 도착했으니 언제까지 숨길 수는 없겠죠.”“알겠어요.”고개를 끄덕인 조연아가 백장미의 병실로 향하려던 그때, 민지훈이 그녀를 붙잡았다.“같이 가.”“아니야. 당신은 푹 쉬어. 그리고... 오늘 구해줘서 고마워.”“널 혼자 보내고 내가 두 다리 뻗고 쉴 수 있을 것 같아?”지하주차장에서 하마터면 사촌오빠 손에 죽을 뻔한 것도 모자라 새엄마의 자살 소식까지.너무 많은 일이 벌어진 하루, 지금 사건 현장을 목격한 조연아가 이 상황을 감당할 수 있을지 걱정이 앞섰다.“고집 좀 그만...”민지훈의 고집을 꺾을 시간 따위 없다는 생각에 조연아는 말끝을 흐리고 돌아섰다.‘뭔가 이상해. 이 모든 게 우연이라고? 그럴 리가 없어.’잠시 후, 조연아 일행이 6층에 도착했을 땐 먼저 온 경찰이 복도 전체를 봉쇄한 뒤였다.“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죠... 전 스타엔터 조연아 대표입니다. 사망자... 가족이기도 하고요.”“아, 현장 상황만 봐서는 자살로 보입니다. 유서에 조연아 씨의 어머니인 추현 회장님을 살해한 과정이 적혀
절망적인 순간, 민지훈의 따뜻한 위로에 애써 쌓았던 마음의 벽이 와르르 무너지는 기분이었다.“장미야! 장미야!”이때, 역시 소식을 듣고 달려온 조학찬이 흰 천으로 덮혀 실려나오는 백장미의 시체를 향해 달려들었다.“이러지 마세요. 현장 보호해야 합니다. 진정하세요.”“내일 아침에... 내가 따뜻한 아침 가져다주기로 했잖아. 그런데... 그런데 어떻게...”경찰에 가로막힌 조학찬은 한참을 오열하다 스르륵 주저앉았다.“서랍장에서 백장미 씨의 유서를 발견했습니다. 그중에는 전 아내인 추현 씨의 사인도 적혀있었고요.”경찰의 말에 고개를 파묻고 눈물을 흘리던 조학찬이 번쩍 머리를 쳐들었다.“뭐라고요? 추현이 죽은 거랑 장미가 무슨 상관인데요!”“백장미 씨가 유서에 본인이 추현 씨를 밀어 살해했다고 자백했습니다.”“지... 지금 그게 무슨...”경찰의 말에 충격을 받은 조학찬이 뒷걸음질 치며 고개를 저었다.“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장미가 추현을 죽일 리가 없잖아. 그리고... 애초에 장미가 무슨 수로 스타엔터 건물 내부로 들어가. 추현은 자살이야. 우리 장미한테 뒤집어 씌우지 마!”“백장미 죽은 것만 슬프고... 우리 엄마가 살해당했다는 사실은 슬프지도 않은가 보지?”조학찬의 앞으로 다가간 그녀가 따져 물었다.“엄마가 왜 돌아가셨나고... 혹시 백장미 저 여자가 한 거 아니냐고 물었을 때 아버지 뭐라고 하셨어요. 말 좀 해보세요!”그제야 조연아를 발견한 조학찬이 부들거리는 손으로 그녀를 향해 삿대질을 했다.“네, 네가 왜 여기에. 너지. 네가 우리 장미 죽인 거지. 그래. 네가 죽인 거야...”이미 이성을 잃은 조학찬은 미친 사람처럼 경찰의 옷자락을 부여잡았다.“형사님, 저 계집애 당장 체포하세요. 우리 장미가 자살일 리가 없어요. 쟤가 바로 용의자라고요!”“지... 지금 뭐라고 하셨어요?”기막힌 상황에 조연아가 말없이 고개를 저었다.그녀를 미워한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아무리 그대로 친딸을 살인 용의자로 몰 줄이야...
“어디까지나 현장에 타살 흔적이 보이지 않아 자살로 추정될 뿐입니다. 혐의가 없으면 조사는 곧 끝날 테니 협조해 주십시오.”“알겠습니다.”조금은 이성을 되찾은 조학찬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체면이고 뭐고 울부짖는 조학찬의 모습과 몇 년 전, 추현이 세상을 떴을 때 너무나 무덤덤하던 그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조연아의 가슴이 저려왔다.‘왜... 우리 엄마한테는 그렇게 매정했던 건데... 그래도 한때는 부부였잖아.’조학찬이 경찰과 함께 자리를 뜨고 그제야 고개를 돌린 조연아는 묘한 눈빛으로 민지훈을 바라보았다.‘아까... 날 지켜준 건가?’이러면 안 된다는 걸 알면서 깊이 묻어두었던 감정이 다시 요동치기 시작했다....잠시 후 주위에 몰려들었던 구경꾼들도 흩어지고 다시 조용해진 복도에 달콤한 여자의 목소리가 울렸다.“언니, 우리 엄마... 우리 엄마 어떻게 된 거야?”병원복 차림의 조하율이 비틀거리며 다가오고 있었다.“하율 씨!”벌떡 일어선 만두가 그녀를 막아서려 했으나...병실 내부의 참상을 목격한 조하율은 입을 틀어막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저... 저기 누워있는 게 우리 엄마라고?”“하율아...”“엄마!”만두도 이성을 잃고 병실로 뛰어들어가려는 조하율의 앞을 가로막았다.“하율 씨, 이러지 마세요.”“이거 놔요...”조하율의 커다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저게 우리 엄마일 리가 없잖아요. 지금 나한테 거짓말하는 거잖아요. 내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할 거니까 이거 놓으라고요!”“하율아, 진정해.”눈물로 범벅된 얼굴로 고개를 돌린 조하율이 그녀를 와락 껴안았다.“언니, 다 거짓말이지? 거짓말이라고 해줘. 저기 누워있는 사람 우리 엄마 아니지? 나 언니 말이라면 믿을 수 있어. 그러니까 제발...”지금 이 상황에서 거짓말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조연아는 고개를 저었다.“미안해, 하율아...”“아니야... 아니야...”다시 병실로 고개를 돌린 조하율이 울부짖었다.“엄마! 엄마! 눈 좀 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