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죽어야 합니다! 반드시 죽여주세요!”말을 하면서 소장경은 소강승에게로 기어가 그의 두 뺨을 세게 때렸다. 다 때리고 나서야 그는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대장님, 대장님, 강승이는 죽어야 합니다! 때려 죽여 주세요!”“우리 소가는 절대로 이 일로 추궁하지 않을 겁니다……”“아니, 아니, 아니, 저희 소씨 가문은 따질 자격이 없습니다. 지금부터 우리 소씨 가문은 대장님의 개입니다. 저희를 부르시면 짖고, 누구를 물라 하시면 물겠습니다!”하현은 웃을 듯 말 듯 소장경을 보며 말했다.“네가 어울린다고 생각해?”“아니면 네가 그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소장경은 처량한 얼굴로 쓴 웃음을 지었다. 그는 하현이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소씨 집안은 확실히 자격이 없었다. 권력에 대해 말하자면, 대장에 비할 권세가 없었다. 재물로 말하자면, 하 세자는 부로 나라를 상대할 정도였다. 이런 존재 앞에서 소씨 집안이 무슨 자격이 있겠는가?전에 소장경은 항성 이씨 집안에 기대어 하 세자를 상대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때 그는 항성 이씨 가문이라도 소용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대장 앞에서 그들은 아무것도 아닌 셈이었다!항성 이씨 집안이 생각나자 소장경은 갑자기 끊임없이 절을 하며 말했다.“대장님, 저에게 아주 중요한 정보가 있습니다. 다만 말씀 드린 후 대장님께서 개 같은 목숨을 살려 주시길 바랍니다.”“말해.”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소장경이 어디 감히 흥정을 할 수 있겠는가? 이때 재빨리 말했다.“항성 이씨 집안 이장성이 남원에 왔습니다. 그는 이미 정식적으로 이씨 가문의 이슬기 비서에게 청혼을 한 상태입니다!”“그와 맞추기 위해 구가, 나가, 최가, 그리고 저희 소가까지 차례로 청혼을 했습니다!”“이슬기 집안부터 손을 대기 시작해 천일그룹을 내부적으로 와해시키자는 게 저의 네 집안의 전략입니다!”“또 하씨 가문 하은수가 아직
소장경은 갈망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 역시 한 세대의 효웅이라 할만 했다. 하지만 그는 정말 죽고 싶지 않았다. 일단 죽으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하현은 재미있게 소장경을 바라보다가 무릎을 꿇은 채 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있는 홍인조를 보며 담담하게 말했다. “홍인조, 소장경은 죄를 용서받기 위해 가산을 다 나에게 줬는데 너는 나한테 뭘로 보상할거야?”감히 입을 열지 못하고 있던 홍인조는 대사면을 얻은 듯 이때 와들와들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만약 원하신다면 오늘부터 강남 길바닥의 모든 것을 변백범에게 넘기겠습니다. 지금부터 그가 강남 길바닥의 새로운 왕입니다.”홍인조도 하현이 길바닥 세력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변백범은 하현의 휘하에 있는 사람이니 그의 아랫사람에게 이 모든 것을 맡도록 하는 것이 더 좋을 것이다. 하현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돌아섰다. 보잘것없는 소가와 하찮은 홍인조가 만약 그의 마지노선을 건드리지 않았다면 그는 원래 이런 것들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재로선 강을 건너온 항성 이씨 집안의 맹룡이 골칫거리였다.게다가 상대방이 이슬기부터 손을 쓴다니 이미 하현의 마지노선을 건드린 것이다. 현장의 다른 작은 일은 당인준과 변백범에게 맡기면 된다. 곧 당도대의 대군은 물러 났고, 결국 변백범만 별장 입구에 남아 모든 것을 처리했다. 하현은 산기슭에 왔다. 임기석과 사람들은 그가 떠나는 것을 보고 감히 막지 못했다. 잠시 후 한 수사관이 의문스러운 얼굴로 말했다.“부 수사반장님, 저는 이 사람이 왜 이렇게 낯이 익지요? 지난번 최가 할머니 생신잔치 때 뵌 적이 있지 않나요?”임기석은 뺨을 후려치며 낮은 목소리로 욕설을 퍼부으며 말했다.“그게 너랑 상관이 있어?”“기억해! 오늘 보고! 들은 거! 누구든 한 마디라도 뻥끗하면 주둥이를 찢어버릴 거야!”말을 마치고 임기석은 몸을 파르르 떨었다. 왜냐하면 그는 방
하현은 스마트 밸리로 돌아왔다. 묘지 가격을 알아보려고 전화를 걸던 희정과 재석은 그를 보고 놀란 얼굴이었다. 한참 후에야 희정은 반응을 하며 차갑게 말했다.“너 뭐 하러 왔어? 어떻게 안 죽고 살아있어!”“내가 경고하는데, 우리 집은 너를 환영하지 않아!”“매일 빈둥거리는 것도 그만 해! 맨날 사고만 치고!”“소가 세자가 무슨 신분이야? 네가 건드릴 수 있는 거야?”“너 때문에 유아는 아직도 침대에 누워있고 은아는 눈물로 얼굴을 씻고 있어!”희정은 말을 할수록 화가 치밀어 올랐고 이때 자리에서 일어나 갑자기 하현의 뺨을 때렸다. “퍽_____”큰 소리와 함께 하현은 두 발짝 뒤로 물러났지만 이번에는 피하지도 화를 내지도 않았다. 희정이 이 일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든 한 가지는 틀림이 없었다. 그것은 은아와 유아가 어려운 일을 겪게 된 것이다. 이것은 확실히 그와 관계가 있었다. 하현이 돌아온 것을 보고 재석은 드디어 은아의 방문을 열어 주었다. 하현이 거실에 멀쩡하게 서 있는 것을 보고 은아는 가슴을 쓸어 내렸다. 유아도 방안에서 머리를 내밀고 눈을 깜박이며 자신이 하현의 신분을 드러내지 않았음을 표시했다. “일은 어떻게 됐어?”은아가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소씨 잡안은 그녀가 보기에 너무 도도한 집안인데 하현이 오늘 이렇게 온전한 모습으로 돌아오다니, 도대체 이게 무슨 개똥 같은 운인지 모르겠다. 하현은 미소를 드러내 보였다. “아버지, 어머니, 은아야, 우리와 소씨 집안의 원한은 이미 해결됐어요.”“뭐? 진짜 해결됐어?”“너 어떻게 한 거야?”“설마 소씨 집안의 그 파렴치한 조건에 동의하고 우리 두 딸을 팔아 먹은 건 아니겠지?”희정은 의심스러운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 그녀는 부귀영화를 간절히 바라고 자기 사위가 부자이기를 원했지만 자신의 딸들과 돈을 바꿀 생각은 절대 없었다. 하물며 판다고 쳐도 그녀가 팔아야지 언제 데릴사위가 이런 일을 할 군번
은아와 유아 때문에 희정과 재석은 오늘 밤 스마트 밸리는 떠나지 않고 그들을 잘 보살피고 싶었다. 결국 아침 일찍 희정은 장을 보러 내려 갔다가 돌아와서는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여보, 빨리 와 봐. 우리 동네 입구에 정신병자들이 너무 많아!”재석은 그녀의 시선을 따라 바라보다가 스마트 밸리 입구에서 수십 명이 걸어 오는 것이 보였다. 그들은 세 걸음씩 걸을 때마다 무릎을 꿇고 질서 정연하게 세 번씩 절을 했다. 많은 행인들은 벌써 그들에게 시선이 집중돼 있었고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안에 있는 적지 않은 사람들의 신분을 알아냈다. “이……이분은 소씨 집안의 소 대선생 아니야? 유명한 사람이잖아? 어떻게 여기서 이렇게 몇 번이고 절을 하는 거야!?”“스마트 밸리에 무슨 귀인이 사는 건 아니겠지? 소씨 집안 사람들을 이렇게 모두 정중하게 찾아 오도록 하다니!”“이 얘기 하니까 생각이 나네. 너희들 기억나? 얼마 전 남원 공항이 봉쇄됐었잖아? 내 기억으론 그때 롤스로이스 백대가 왔었는데, 그 장면이 기억나네!”“항성에서 왔다는 그 거물 때문이었겠지!”“소씨 집안 사람들도 참 대단하다! 이번 고비만 잘 넘기면 아마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을 거야!”“어쩌면 앞으로 소씨 집안은 남원에서 최고 가문이 될 지도 몰라!”사람들의 여러 이야기를 들은 희정과 재석 두 사람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재석은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마 우리 쪽으로 오는 건 아니겠지?”희정은 눈을 희번덕거리며 말했다.“너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너 하현 그 폐물처럼 꿈 좀 그만 꿀래?”“너 못 들었어? 소씨 집안이 항성의 귀인을 만나러 왔다잖아!”“너는 하현 그 폐물이 항성의 귀인처럼 보여? 하현은 용포를 입혀놔도 황제 같지가 않아!”재석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건 그렇지!”그러자 그는 약간의 두려운 마음을 가지고 말했다.“여보, 방금 밖에서 그 사람들이 당신 못 알아봤지? 오늘 우리는 밖에 나가면 안
“실례합니다만……”은아는 들것에 실려 있는 소강승을 보고 안색이 좋지 않았다. 재석과 희정은 이 모습을 보고 똑바로 서서 불가사의한 표정을 지었다.그들은 다소 식견이 있어 소씨 집안 가주 소장경을 알고 있었다. 그런데 소장경이 이렇게 무릎을 꿇는다고?그들이 반응을 하기도 전에 다른 소씨 집안 사람들도 ‘털썩’ 무릎을 꿇고 절을 하기 시작했다. 뒤쪽에 한 위엄 있어 보이는 남자도 앞으로 나와 ‘탁’ 무릎을 꿇었다. “설 아가씨, 오늘 저 소장경이 소씨 집안 사람들을 모두 데리고 사과하러 왔습니다!”“어제 소강승의 어리석은 행동으로 당신들을 다치게 했네요. 모두 저희의 잘못입니다!”소장경이 먼저 입을 열었다. 홍인조도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저 홍인조 역시 어제 일에 대해 사과하러 왔습니다. 아가씨를 잡아갔던 홍철이는 제가 이미 두 손 두 발을 다 부러뜨려놨습니다.”말을 하면서 홍인조가 손을 흔들자 뒤에서 들 것 하나가 더 올라왔다. 지금 소강승과 홍철 두 사람은 난형난제처럼 나란히 들것에 누워있었다. 이때 은아와 유아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 두 놈들은 어제 얼마나 날뛰었는지 모른다. 그들은 목적이 아주 뚜렷했다. 그런데 지금 이 두 놈 다 손발이 다 부러져 있었다. 아직 다 싸매지 않아 보기만 해도 끔찍해 보였다. “퍽______”소강승은 턱밑으로 자신을 응시하며 들것을 뒤집었다. 그런 뒤 비틀거리며 입을 열었다.“설 아가씨, 제가 잘못했습니다……”“제가 정말 잘못 했어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홍철이도 기어가 말했다.“제가 눈이 멀어서 태산을 몰라 보고 두 분께 미움을 샀습니다!”“만약 저를 때려서 화가 풀리신다면 얼마든지 때리셔도 됩니다. 때려서 죽이셔도 괜찮습니다!”이때 설은아 일가는 멍한 표정으로 머리가 텅 비었다. 그들은 어쨌든 소씨 집안이 사과는커녕 이렇게 행동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두 원흉이 불구가 된 건 그렇다 쳐도 병원에도
은아는 어림짐작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때 차마 입을 열지 않았다. 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나도 뭘 시킨 건 아닌데, 이 사람들이 알아서 절하고 사과 한 거예요.”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제 소장경과 홍인조가 자진해서 사과를 하러 오겠다고 강력하게 말했던 것이다. 하현이 그들에게 오라고 했다면 그들은 벌써 감동을 받고 집에 돌아가 잔치를 벌렸을 것이다. 이때 설은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현, 하 세자를 만날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고맙다고 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어제 너는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어.”“그리고 앞으로 일을 할 때는 반드시 결과를 생각해야 돼. 절대 함부로 해서는 안돼.”“이번에는 네가 운이 좋아서 하 세자가 기꺼이 손을 써줬지만, 다음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야.”은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하현은 어이가 없었다. 재석은 찬 기운을 내 뿜었다. “은아야, 네 말은 이번에 이 큰 문제를 해결한 게 하 세자가 손을 대서 그랬다는 거야?”희정은 이전과 다름없는 표정을 지었다.“나는 이 폐물이 쓸모없는 놈인 줄 알았어!”“하 세자가 강남의 1인자인데 그가 나섰으니 홍인조와 소씨 집안 사람들이 와서 사과할 만도 하지!”“하현, 너 정말 뻔뻔하다. 방금 네가 해결한 것처럼 굴었잖아!”“만약 은아가 털어놓지 않았으면 우리는 아마 너한테 속았을지도 몰라.”은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빠, 엄마. 그만 해. 나는 하현을 탓할 생각이 아니었어.”“나는 하현이 나중에 미리 생각을 좀 하길 바랬던 거뿐이야!”희정은 불쾌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참지 못하고 은아를 끌어당겨 구석진 곳에 가서 신비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은아야, 너 엄마한테 솔직히 말해봐. 너 하 세자와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야?”“괜찮으니까 엄마한테 말해 봐. 엄마는 네가 바람을 폈다 해도 네 편이야.”은아는 지금 어이없다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은아는 희정이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응! 돌아왔어. 지금 소항에 있는 한 회사의 사장이 됐어!”“해민이는 참 대단하다!”희정은 해민이를 높이 평가하는 기색이었다. “놀러 오라고 해. 남원에 놀러 오면 엄마가 밥 사준다고!”말을 마치고 희정은 흐뭇해하며 떠났다.그녀는 자신이 은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육해민은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육해민은 은아를 설득하는데 성공하기만 하면 된다. 희정은 자신이 앞으로 부귀영화를 못 누릴까 여전히 걱정이 되었다. 이 생각에 미치자 희정은 하현이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지 않았다. 떠날 때 그녀는 하현을 매섭게 노려보면서 인사도 하지 않았다. 희정과 재석 두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은아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하현, 이 일은 마음에 담아두지 마. 엄마 성격이야.”하현이 웃으며 말했다.“익숙해.”그는 원래 하 세자의 일을 해명하려고 했지만 방금 은아의 태도를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안 될것 같다.이런 상황에서는 설명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 더구나 그는 은아를 명문집안 사람으로 만들 작정이었다. 지금 미리 신분을 드러내는 것도 별로 좋은 일은 아니다.……다음날. 하현은 천일그룹에 도착해 슬기한테 호출을 했다. 슬기는 요 며칠 잠을 못 이뤄 얼굴이 약간 초췌해 보였다. 이때 하현을 보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하 회장님, 소항 쪽 일은 어떻게 처리가 되셨나요?”하현이 웃으며 말했다. “엉망진창이야. 지사장 육해민은 인재니까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지 뭐.”“어쨌든 우리 주요한 업무는 강남 쪽에 있고, 소항은 이남 쪽에 있으니 지금 당장 급할 건 없어.”“참, 최근에 무슨 일 있어? 왜 그렇게 안색이 안 좋아?”하현이 관심을 가지고 입을 열었다. 그는 비록 이미 항성 이씨 가문에서 청혼한 일을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슬기가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 모른다는
블랙 티 레스토랑. 그랜드 하얏트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으로, 듣기로 한끼에 몇 천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일반인들은 이 식당을 지나칠 자격도 없었다. 그러니 들어가서 식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이때 슬기와 그 멋진 남자는 함께 블랙 티로 들어갔고 하현은 그 뒤를 이어 인상을 쓰며 빠른 걸음으로 따라 들어갔다. 입구에 도착했을 때 하현은 슬기가 홀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블랙 티는 오늘 대절된 것이 분명했고, 홀 전체가 황궁처럼 꾸며져 있었다. 슬기 앞 쪽에 멀지 않은 곳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부인이 있었고 중년 몇 명, 젊은 여인 몇 명이 있었다. 그리고 방금 슬기와 함께 온 멋진 남자가 그 노부인에게 인사를 하고는 바로 옆에 섰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슬기에게로 떨어졌는데 일부는 차가운 얼굴이었고, 일부는 비웃는 얼굴이었다. 하현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이렇게 보면 이 남자는 분명 슬기의 남자친구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눈앞의 이 상황은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이때 슬기의 사촌 새 언니 주리아가 차갑게 말했다.“이슬기, 괜찮네! 연경 이씨 가문의 할머니가 연경에서부터 먼 길을 오셔서 3번이나 청했는데도 오지 않다니!”“허, 너 지금 강남에 와서 네 날개가 굳은 줄 안 거야? 연경 이씨 집안은 네 안중에도 없어?”그러자 옆에 있던 슬기의 사촌오빠 이안성도 차갑게 말했다.“이슬기! 너 이번에는 바쁘다는 핑계는 대지 마!”“내가 진작 알아봤는데 네가 지금 맡고 있는 천일그룹에 부회장이 한 명 더 생겼다며. 그 사람이야 말로 모든 일을 주관하는 사람이지!”“그런데 너는? 너는 하 세자 곁에 그렇게 오랫동안 있으면서도 결국은 비서일 뿐이잖아!”“당당한 이씨 집안 사람이 다른 사람 비서나 하고 있다니, 그만 둬! 거기다 그렇게 오랫동안 있으면서 직분도 없고! 너 연경 이씨 가문을 연경에서 웃음 거리로 만들려고 그러는 거야?”“이슬기, 너 잊지마! 강남 이씨 가문은 연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