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아는 어림짐작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짐작은 하고 있었지만 이때 차마 입을 열지 않았다. 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나도 뭘 시킨 건 아닌데, 이 사람들이 알아서 절하고 사과 한 거예요.”이 말도 틀린 말은 아니었다. 어제 소장경과 홍인조가 자진해서 사과를 하러 오겠다고 강력하게 말했던 것이다. 하현이 그들에게 오라고 했다면 그들은 벌써 감동을 받고 집에 돌아가 잔치를 벌렸을 것이다. 이때 설은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하현, 하 세자를 만날 기회가 있으면 반드시 고맙다고 해야 돼. 그렇지 않으면 어제 너는 돌아오지 못했을 수도 있어.”“그리고 앞으로 일을 할 때는 반드시 결과를 생각해야 돼. 절대 함부로 해서는 안돼.”“이번에는 네가 운이 좋아서 하 세자가 기꺼이 손을 써줬지만, 다음에는 꼭 그렇지만은 않을 거야.”은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하현은 어이가 없었다. 재석은 찬 기운을 내 뿜었다. “은아야, 네 말은 이번에 이 큰 문제를 해결한 게 하 세자가 손을 대서 그랬다는 거야?”희정은 이전과 다름없는 표정을 지었다.“나는 이 폐물이 쓸모없는 놈인 줄 알았어!”“하 세자가 강남의 1인자인데 그가 나섰으니 홍인조와 소씨 집안 사람들이 와서 사과할 만도 하지!”“하현, 너 정말 뻔뻔하다. 방금 네가 해결한 것처럼 굴었잖아!”“만약 은아가 털어놓지 않았으면 우리는 아마 너한테 속았을지도 몰라.”은아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아빠, 엄마. 그만 해. 나는 하현을 탓할 생각이 아니었어.”“나는 하현이 나중에 미리 생각을 좀 하길 바랬던 거뿐이야!”희정은 불쾌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 잠시 후 참지 못하고 은아를 끌어당겨 구석진 곳에 가서 신비로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은아야, 너 엄마한테 솔직히 말해봐. 너 하 세자와 무슨 일 있었던 거 아니야?”“괜찮으니까 엄마한테 말해 봐. 엄마는 네가 바람을 폈다 해도 네 편이야.”은아는 지금 어이없다는 듯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설은아는 희정이 갑자기 왜 이런 질문을 하는 지 알 수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응! 돌아왔어. 지금 소항에 있는 한 회사의 사장이 됐어!”“해민이는 참 대단하다!”희정은 해민이를 높이 평가하는 기색이었다. “놀러 오라고 해. 남원에 놀러 오면 엄마가 밥 사준다고!”말을 마치고 희정은 흐뭇해하며 떠났다.그녀는 자신이 은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육해민은 해낼 수 있을 것이다. 육해민은 은아를 설득하는데 성공하기만 하면 된다. 희정은 자신이 앞으로 부귀영화를 못 누릴까 여전히 걱정이 되었다. 이 생각에 미치자 희정은 하현이 보면 볼수록 마음에 들지 않았다. 떠날 때 그녀는 하현을 매섭게 노려보면서 인사도 하지 않았다. 희정과 재석 두 사람이 떠나고 나서야 은아가 미안한 얼굴로 말했다.“하현, 이 일은 마음에 담아두지 마. 엄마 성격이야.”하현이 웃으며 말했다.“익숙해.”그는 원래 하 세자의 일을 해명하려고 했지만 방금 은아의 태도를 생각해 보면 아무래도 안 될것 같다.이런 상황에서는 설명을 해봐야 소용이 없다. 더구나 그는 은아를 명문집안 사람으로 만들 작정이었다. 지금 미리 신분을 드러내는 것도 별로 좋은 일은 아니다.……다음날. 하현은 천일그룹에 도착해 슬기한테 호출을 했다. 슬기는 요 며칠 잠을 못 이뤄 얼굴이 약간 초췌해 보였다. 이때 하현을 보고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말했다. “하 회장님, 소항 쪽 일은 어떻게 처리가 되셨나요?”하현이 웃으며 말했다. “엉망진창이야. 지사장 육해민은 인재니까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지 뭐.”“어쨌든 우리 주요한 업무는 강남 쪽에 있고, 소항은 이남 쪽에 있으니 지금 당장 급할 건 없어.”“참, 최근에 무슨 일 있어? 왜 그렇게 안색이 안 좋아?”하현이 관심을 가지고 입을 열었다. 그는 비록 이미 항성 이씨 가문에서 청혼한 일을 알고 있었지만 문제는 슬기가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는지 모른다는
블랙 티 레스토랑. 그랜드 하얏트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레스토랑으로, 듣기로 한끼에 몇 천만 원이 넘는다고 한다.일반인들은 이 식당을 지나칠 자격도 없었다. 그러니 들어가서 식사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이때 슬기와 그 멋진 남자는 함께 블랙 티로 들어갔고 하현은 그 뒤를 이어 인상을 쓰며 빠른 걸음으로 따라 들어갔다. 입구에 도착했을 때 하현은 슬기가 홀 한 가운데로 걸어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블랙 티는 오늘 대절된 것이 분명했고, 홀 전체가 황궁처럼 꾸며져 있었다. 슬기 앞 쪽에 멀지 않은 곳에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부인이 있었고 중년 몇 명, 젊은 여인 몇 명이 있었다. 그리고 방금 슬기와 함께 온 멋진 남자가 그 노부인에게 인사를 하고는 바로 옆에 섰다. 참석한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슬기에게로 떨어졌는데 일부는 차가운 얼굴이었고, 일부는 비웃는 얼굴이었다. 하현은 살짝 인상을 찡그렸다. 이렇게 보면 이 남자는 분명 슬기의 남자친구가 아닐 것이다. 그런데 눈앞의 이 상황은 도대체 무슨 상황이지?이때 슬기의 사촌 새 언니 주리아가 차갑게 말했다.“이슬기, 괜찮네! 연경 이씨 가문의 할머니가 연경에서부터 먼 길을 오셔서 3번이나 청했는데도 오지 않다니!”“허, 너 지금 강남에 와서 네 날개가 굳은 줄 안 거야? 연경 이씨 집안은 네 안중에도 없어?”그러자 옆에 있던 슬기의 사촌오빠 이안성도 차갑게 말했다.“이슬기! 너 이번에는 바쁘다는 핑계는 대지 마!”“내가 진작 알아봤는데 네가 지금 맡고 있는 천일그룹에 부회장이 한 명 더 생겼다며. 그 사람이야 말로 모든 일을 주관하는 사람이지!”“그런데 너는? 너는 하 세자 곁에 그렇게 오랫동안 있으면서도 결국은 비서일 뿐이잖아!”“당당한 이씨 집안 사람이 다른 사람 비서나 하고 있다니, 그만 둬! 거기다 그렇게 오랫동안 있으면서 직분도 없고! 너 연경 이씨 가문을 연경에서 웃음 거리로 만들려고 그러는 거야?”“이슬기, 너 잊지마! 강남 이씨 가문은 연
계속 입을 열지 않던 슬기가 드디어 고개를 들고 이욱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저 시집 안가요.”이욱은 웃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안성이 이때 쏘아 붙이며 말했다. “이슬기, 할머니 앞에서 네가 할 소리야?”“너는 이씨 가문의 방계일 뿐이야. 항성 이가 세자가 너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잖아. 이미 이렇게 운이 좋은데 네가 무슨 자격으로 거절을 하는 거야?” 주리아는 차가운 얼굴로 슬기에게 고함을 질렀다. “새 언니, 제 일은 제가 알아서 결정해요. 다른 사람이 말할 게 아니에요.”“퍽!”주리아는 한 발 앞으로 나가더니 슬기의 뺨을 갈기며 노호하며 말했다.“방자한 것! 네가 거역을 해! 설마 할머니 말도 듣지 않으려는 거야?”슬기가 얻어맞는 것을 보고 입구에 서 있던 하현은 더 이상 보고만 있을 수가 없었다. 이때 하현이 험상궂은 표정으로 식당으로 들어서며 차갑게 말했다. “시집을 안가고 싶으면 안가도 돼! 왜냐면 슬기는 나 하현의 사람이니까!”“믿을 수가 없네. 아직도 강남에서 내 사람을 감히 못살게 구는 사람이 있다니?”슬기는 몸을 약간 떨며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돌려 하현을 쳐다보며 말했다. “하 회장님, 가세요. 여기는 회장님이 오실 곳이 아니에요. 연경 이씨 집안은 회장님도 건드릴 수 없어요.”슬기는 연경 이씨 집안이 하현에게 화를 낼까 봐 이 일에 대해 하현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 분명했다. 연경 이씨 집안은 대하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로 재력과 권력 모두 비할 바가 안됐다. 하현이 천일그룹의 회장이고 하 세자라고 불린다고 해도 말이다. 슬기가 보기에 그는 여전히 연경 이씨 가문과 상대가 되지 않았다. 하현은 슬기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건드릴 수 있냐 없느냐가 중요한가? 가장 중요한 건 당신은 내 사람이고, 그게 누구든 네가 원치 않는 일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거야.”“나 하현이 만약 주변 사람조차 지켜내지 못한다면 나는 세자라는 호칭이 어울리지 않아.”“넌
“작은 어머니, 이 일은 회장님과 아무 상관이 없어요. 놔주세요.”이때 슬기는 자기도 모르게 하현의 앞을 가로막았다. 그가 다른 사람들에게 해를 입는 것을 원치않았다. 작은 어머니라고 불리는 이 중년 부인의 이름은 이여민으로 이슬기의 계모다. 그녀의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여민은 그의 명목상 육친이 되었다. 이때 이여민은 사정없이 욕설을 퍼부으며 말했다.“망할 년, 너는 아직도 내가 네 작은 어머니냐?” “왜 내가 네 내연남을 때리니 마음이 아파?”“너는 네 뻔뻔한 아비처럼 염치를 모르고 밖에서 사람들을 훔치고 다니는 구나!”말을 마치고 이여민은 또 하현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소위 세자라는 녀석이 감히 여자 뒤에 숨으려고? 역시 전설의 폐물답다!”하현은 이여민을 깊이 쳐다보고 나서 슬기를 그의 뒷 편에 두고는 속삭이며 말했다.“괜찮아. 이 일은 내가 해결하면 돼.”하현과 슬기 두 사람의 젊은 부부와 같은 모습을 보고 이여민은 화가나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좋아! 너희 이 뻔뻔한 놈들, 우리 앞에서 감히 지껄이다니. 너희들 우리를 죽은 사람으로 생각하는 거지?”주리아는 지금 냉담한 얼굴로 비꼬았다. 하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만약 당신들이 이슬기의 가족이 아닌데 이런 식으로 슬기에게 말을 했다면 당신들은 벌써 죽었어.”“허! 다른 재주는 하나도 없으면서 큰 소리 치는 거 하나는 정말 잘 하네! 나는 강남의 3분의 1이나 되는 땅에서 누가 감히 우리 연경 이씨 집안 사람들을 건드릴 수 있는지 한 번 보고 싶네!”“강남의 1인자 이준태도 우리 연경 이씨 집안에서는 중위권에 불과한데 너 소위 세자라는 놈은 뭐 하는 놈이야?”주리아는 시큰둥한 표정으로 하현을 보며 빈정거렸다.“그만해.”바로 이때 홀 한복판에 앉아 손에 염주를 들고 있던 이씨 집안 할머니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그녀가 한 마디를 내뱉자 억척스러운 주리아나 꾀가 많은 이여민이나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 몸서리가 쳐
하현은 결코 앉지 않았다. 이욱도 개의치 않고 아무런 망설임 없이 차를 마시며 말했다. “할머니는 이런 성격이야. 마음에 들지 않은 사람은 상대도 안 하셔.”“슬기는 원래 할머니가 제일 좋아하던 손녀였는데, 당신 때문에 할머니는 이미 연경 상류층에서 웃음거리가 됐어. 당신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말해 봐.” 하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나랑 슬기 사이는 결백해. 우리는……”하현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이욱은 오히려 ‘피식’ 웃음을 터트렸다. “하현, 다 같은 남자들인데 이런 일들을 그렇게 꼭 분명하게 말을 해야 하나?”“비서가 할 일이 있으면 일을 시키고, 할 일이 없으면 비서가 괜찮다는 말은 내가 한 말이 아니야.” 이욱의 말을 듣고 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됐다, 이것도 자업자득이다. 이슬기는 입을 벌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욱은 이어서 말했다.“기왕 너희 둘이 관계를 인정한 이상 너희들이 어떤 관계인지는 상관없어. 하지만 우리 연경 이씨 가문은 체면이 서야 하는 가문이야.”“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건지 말해봐.”“네가 우리 이씨 가문에게 만족할 만한 해명을 한다면, 아마 앞으로 우리 이씨 가문이 너를 하늘로 끌어올려줄 수 있을 지도 모르잖아.”“그렇지 않으면 하 세자는 똑똑한 사람이니 최고의 가문에게 미움을 사면 어떤 결말을 맞게 될지 잘 알 거야.”이 말을 듣고 슬기는 마침내 입을 열었다.“욱이 오빠, 정말 이건 오해에요. 저와 회장님 사이는 남녀관계의 선을 넘어본 적이 없어요.” “우리는 그냥 친한 상사와 부하 직원 사이일 뿐이에요.”“그런데 왜 이장성을 거절한 거야? 설마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 결혼은 우리 책임이라는 걸 모르는 거야? 이씨 가문이 너한테 준 모든 건 다 받아 누리면서 이런 일을 거절할 자격이 있어?” 슬기는 침묵했다. 이것은 대 가문에게는 어쩔 수 없는 점이었다. 슬기의 표정을 보고 이욱은 한숨을 내쉬며 담담하게 말했다.
“슬기야, 하현은 야심이 너무 크다고 내가 진작에 말했었지.”“그런 사람은 남에게 굽히질 않아.” “그런 사람을 선택하면 평생 고생을 많이 할 수밖에 없어.”이준태는 하현을 매우 좋아했기에 감탄하는 얼굴이었다. 왜냐면 그는 하현의 정체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비록 연경 이씨 가문이 하 세자의 신분을 무시하고는 있지만 그가 또 다른 신분으로 밝혀지면 연경 이씨 가문도 도망쳐 가야 할 판이다. 하지만 이준태는 오히려 자신의 손녀가 계속 하현과 엮이는 것을 전혀 원하지 않았다. “할아버지 말씀을 들어보면 할아버지가 선택한 사람은 이장성 이죠? 아니면 할아버지가 다른 사람을 마음에 들어 하면 그 사람이 거지라고 해도, 할아버지가 원하기만 하면 높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잖아요.”“그 사람만은! 왜 안돼요!”이슬기는 차갑게 말했다.“할아버지, 할아버지와 저 사이에 예전부터 약속했던 거 잊지 마세요. 지금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는 약속을 깨는 거 아니에요?”완강한 슬기의 표정을 본 이준태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래, 어쨌든 보름간의 약속은 벌써 얼마 안 남았으니 그때 네가 그를 데리고 올 수 있는 지 두고 보자.”“네가 만약 할 수 있다면 그럼 나도 인정할게!”……남원 호텔 로얄 스위트룸. 이씨 집안 할머니는 부들 위에 반듯이 앉아 불경을 낭송하고 있었다. 그녀 앞에 멀지 않은 곳에서 이욱은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그는 잠시도 웃음이 가시지를 않았다. 30분정도가 지나서야 눈을 뜬 할머니가 천천히 말했다. “일은 어떻게 됐어?”이욱은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벌써 할머니의 뜻을 전달했습니다.”“그런데 하현은 자부심이 강하고 지려고 하지를 않아서 첫 번째 조건은 영원히 들어주지 않을 것 같습니다.”“하지만 두 번째 조건은 손자가 이해가 안됩니다……”할머니는 담담하게 말했다.“뭐가 이해가 안 간다는 거야?”이욱은 조용히 말했다.“대하 10대 최고의 가문 중에 우리 이씨 가문은
천일그룹, 회장 사무실. 슬기가 자리를 비워 회장 사무실이 텅 비어 있었다. 게다가 깨끗했던 책상 위에는 지금 서류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었다. 하현은 이 장면을 보면서 참지 못하고 쓴웃음을 지었다.이전에 그는 자신이 주인이다 보니 슬기가 자신을 위해 얼마나 많은 일들을 떠맡았었는지를 잘 몰랐었다. 슬기의 자리를 바라보며 하현은 중얼거리며 말했다.“걱정 마. 이 세상에서 아무도 어떤 식으로든 널 강요할 수 없어.”“항성 이씨 가문은 그럴 수 없어!”“연경 이씨 가문 역시 안돼.”30분 정도 지났을 때 회장 사무실에 노크 소리가 나더니 우윤식이 공손한 얼굴로 들어왔다.“잘 알아봤어?”하현이 말했다. 우윤식은 굳은 얼굴로 말했다. “세자, 잘 조사해 봤습니다. 근데 사람을 보내서 조사를 했기 때문에 우리가 했다고 아마 눈치챘을 것 같습니다.”“상관 없어. 자료 줘봐.”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 우윤식에게 일을 맡겼을 때 그는 자신이 드러날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상관없다. 곧 우윤식의 자료가 하현의 손에 들어왔고, 대하의 최고 기밀 자료들을 보면서 하현의 표정이 굳어졌다. 대하 10대 최고 가문 중 연경 이씨 집안은 10위였다. 하현은 한 때 대하의 10대 최고 가문들은 부와 영향력, 권력으로 정해지는 것이라 생각했었다. 그런데 이 자료들을 보고 하현은 일이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됐다! 대하의 사령관을 제외하고 9명의 대 장로들이 있는데, 이 9명의 대 장로들은 각각 하나의 분야를 관장했다. 예를 들어 병부 대 장로는 대하 총 병부와 9대 병부를 관장했다. 병부의 진정한 일언천금이었다. 병부 대 장로의 가문은 10대 최고 가문 중 2위였다. 대하 사령관이 있는 가문은 10대 최고 가문의 머리였다. 이씨 가문이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것은 9명의 대 장로 중 최하위에 있던 한 분이 연경 이씨 집안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
여수혁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하현, 나 여수혁이야! 페낭 무맹 무맹주의 여 씨 가문 사람이라구!”“내 스승님은 남양 무맹 맹주야!”“나한테 당신 같은 사람은 목숨도 아니야!”“당신 지금 이런 행동한 거,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땅바닥에 널브러진 여수혁은 힘겨운 얼굴로 남은 힘을 끌어모아 내뱉었다.“퍽!”“저리 꺼져!”하현은 여수혁을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그러자 여수혁은 벽에 몸을 부딪혔고 입에서는 봇물 터지듯 핏물이 솟구치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배후에 누가 있든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어.”하현은 앞으로 나가 손을 뻗어 여음채의 창백한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당신한테 기회를 주겠어. 잠시 문을 닫고 정리하면서 잘 생각해 봐.”“다음에도 또 이런 일로 사기를 치고 있다는 얘기가 내 귀에 들어오면 정말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땐 인정사정없이 완전히 풍비박산을 만들어 버릴 테니까!”...궁지에 빠진 여음채와 여수혁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하현은 길을 막고 있는 페낭 무맹 제자들을 발로 걷어차고 원가령을 부축하며 양유훤의 차에 올라탔다.양유훤은 사람들을 양 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데려갔고 원가령을 응급실 침대에 눕힌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현, 오늘 밤 가령이 일로 귀찮게 해서 미안해.”“어떻게 된 건지 들어서 잘 알고 있어.”“당신이 없었다면 오늘 밤 가령이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하현이 병원 대기실 소파에 앉자 하이힐을 신은 양유훤이 그에게 다가와 생수 한 병을 건넸다.“당연한 일을 한 걸 가지고 뭐. 마침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야.”하현은 어깨를 으쓱하고 난 뒤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오늘 밤 원가령의 일은 아마 십중팔구 당신을 노리고 한 짓일 거야.”“조심하는 게 좋아.”양유훤도 의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나 때문에 온 게 분명해.”“이번에 내가 천억 대금을 순조롭게 회수해서 적자에 허덕이
”퍽!”여수혁은 무맹 사람이고 남양 무맹의 맹주에게서 수련을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 맹주였다.뼈대 있는 집안 자손이었고 천부적인 재능을 겸비했다.그래서 그가 하현과의 거리가 좁힌 지금 한 번에 몸을 날리자 무서운 기세가 펼쳐졌다.방금 양유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던가!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의 계산대로라면 지금 이 주먹으로 하현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대하 촌놈! 죽어!”여수혁은 섬뜩한 미소로 쏜살같이 덤벼들었다.이런 벼락같은 기세라면 소 한 마리도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광경을 보고 여음채와 부일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수혁의 대담한 기세에 깜짝 놀란 것이다.“양유훤, 봤지?!”“이게 당신이 선택해야 할 남자의 모습이야! 이 정도는 되어야 양 씨 가문 데릴사위가 되지!”“입으로만 떠드는 남자가 무슨 소용있어?”“여수혁 같은 고수를 만나면 바로 무릎을 꿇을 거야!”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비아냥거리는 기색을 띠며 하현을 주제넘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주변 구경꾼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왜 여수혁을 감히 도발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이 모든 게 자업자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장내에 오직 양유훤과 하구봉만이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그들은 모두 하현의 실력을 본 적이 있었다.만약 여수혁 같은 사람 한 명도 수습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하현은 헛수고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퍽퍽퍽퍽!”여수형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온몸을 덜덜 떨며 비명을 질렀다.동시에 하현은 그의 두 손을 짓밟아 부러뜨렸다.“이럴 수가?!”여음채와 부일민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여수혁 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그리고 소위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도 지금은 눈가
그러자 여수혁의 옆에 있던 여음채가 얼굴을 가리고 노기를 띠며 말했다.“하 씨! 당신 뭐가 좋은지 나쁜지 몰라?”“양유훤의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과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살길을 마련해 준 거라고!”“좋게 끝났을 때 그만해야 한다는 것도 몰라? 나중에 얼굴이 찢겨 봐야 아는 거야?”여음채의 마음속에는 불쾌함으로 가득 차올랐다.하현은 계속 자신의 뺨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이빨이 부러지도록 만신창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콧대 높은 여음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하현이 도발하며 여수혁을 추궁하는 것을 보고 여음채는 도저히 화를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그녀가 특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자가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쉽게 살려는 자들이다.양유훤을 믿고 호랑이처럼 위세를 부릴 뿐만 아니라 아주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모습이라니!여음채의 상식으로 어떻게 하현 같은 사람을 여수혁과 동급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운이 좋아서 양유훤의 치마폭에 싸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하현은 벌써 수십 번은 죽었을 것이다.“좋은 게 좋은 거라고?”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잘난 척 기고만장한 여음채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여음채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렇지 않아? 똑똑히 들어. 양 씨 가문의 호가호위만 믿고 설치는 짓,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당신이 정말로 양유훤의 남자인 줄 알아? 당신이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도 된 줄 알아?”“당신이 정말로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해도 여자 치마폭에 싸인 남자가 얼마나 대단하겠어?”여음채는 엄청 호의를 베풀 듯이 호기롭게 훈계를 했다.“당신이 어떤 속셈이 있고 무슨 실력이 있든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하현은 여음채가 하는 말을 더는 듣기 귀찮아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자, 닥쳐! 쓸데없는 소린 그만해!”“재잘재잘 너무 시끄럽군!”“뭐?!”여음채는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입에 차가운 재갈을 물리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
남양 무맹 사람들이 나섰음에도 양유훤은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여수혁의 안색이 일그러졌다.그는 자신이 오늘 하현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하 씨, 오늘은 내가 운이 나빴군. 하지만 아직 기회는 많아!”“능력이 있으면 어디 이 여자가 영원히 당신을 비호하도록 만들어 봐!”“이 여자가 당신을 얼마나 지켜줄 수 있는지 얼마나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그는 하현을 노려보다 냉소를 흘리며 돌아섰다.여음채도 한껏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외지인 남자가 여자한테 기대서 큰소리치는 꼴이라니!세상은 좁아서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법이다.이 남자가 괴로워할 때가 분명 올 것이다!“거기 서!”바로 그때 침묵하고 있던 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순간 하현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강하게 감돌았다.비록 양유훤이 나서서 자신을 비호하도록 가만히 놔두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긴 했지만 하현은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현재 양유훤의 처지를 거의 파악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양유훤의 어깨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하현이 한 걸음 내디디며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하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그들은 하현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다.여수혁 같은 거물이 그를 벌하려는 걸 양유훤이 겨우 구해줬는데 뭘 또 바란단 말인가?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여수혁은 발걸음을 뚝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오늘은 운이 나쁜 걸로 친다고 했는데 뭘 또 바라는 거야?”하현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정말 이렇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돈을 받고도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은 권세로 사람들을 자꾸만 괴롭히려고 해.”“날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내 다리를 부러뜨리고 무릎을 꿇게 만들려고 했어.”“이 모든 것에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