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우리 하 세자와 그의 여인을 위해 가장 진심 어린 축복을 해주시길 바랍니다!”이 말이 나오자 장중에는 순간 박수 소리가 끊임없이 울려 퍼졌고 모두들 흥분한 표정으로 남녀 주인공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하 세자의 눈에 들어 그의 여인이 된다는 것은 선산에서 연기가 나는 것처럼 간단한 것이 아니었다!이전에 설씨 집안의 딸이라는 소문이 돌았었지만 아직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다. 이제 그 여주인공이 누군지 모두가 지켜보고 있었다!이때 우윤식이 손뼉을 치자 흰색 양복을 입은 스태프 18명이 모두 무대 뒤에서 걸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 스태프들도 모두 당도대에서 온 군사들이고 게다가 대하 각지의 명문 귀족 출신들이라 놀라운 기개를 가지고 있었다. 군복을 입지 않았어도 여전히 늠름한 자태였다.스태프들이 이 정도니 하 세자는 또 얼마나 세상을 놀라게 할 기세를 가졌을 지 상상하기가 어려웠다. 이 스태프들은 하나같이 선물 상자를 들고 있었다. 열려 있진 않았지만 분명 선물 상자 안에서 보석들이 휘황찬란하게 빛을 뿜어대고 있었다. 이 선물 상자 속에 있는 선물의 가치가 얼마나 대단하지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다!우윤식의 인솔하에 18명의 스태프들은 천천히 설씨 가족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바로 이때 설씨 가족 맨 앞에 서 있던 설지연은 감격에 겨워 눈물을 흘렸다. 반면 설은아 일가는 한쪽 자리에 앉아 안색이 극도로 안 좋아졌다. 설은아의 표정은 어두웠다. 그녀는 결코 다른 사람에게 아첨하며 빌붙는 여자가 아니다. 하지만 어느 여자가 자신이 마음에 들어 하는 사람에게 프러포즈 받는 것을 원하지 않겠는가? 게다가 하 세자의 청혼은 설은아 일가를 완전히 몰락하게 만드는 것이었다. 설지연의 편협한 마음으로는 설은아 일가가 잘 지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설은아는 잠시 몸을 가누지 못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한 손이 그녀를 부축하며 속삭였다.“겁내지 마.”하현이었다!그가 언제 돌아왔는지 모르겠다.
“윙______”이때 설지연은 자신의 머리가 터지는 것을 느꼈다. 하 세자가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가 자기가 아니었나?순간 그녀는 정신이 나갔다. 자기도 모르게 설은아를 쳐다보았고 계속해서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설은아!?설마, 하 세자가 청혼하려고 한 사람이 설은아!?만약 이것이 정말이라면 자기는 죽는 게 더 나을 것이다!지금 설지연은 땅에 머리를 쳐 박고 죽고 싶은 생각뿐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용기가 없었다. 설은아는 지금 이 순간에도 어리둥절하고 귀여운 얼굴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이때 우윤식이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설은아에게 다가가 다시 90도로 절을 하며 공손한 얼굴로 말했다.“형수님, 세자를 받아 주십시오!”“이것은 세자가 오늘 당신을 위해 준비한 작은 선물들입니다!”“대모산 자락 별장 한 채!”“롤스로이스 팬텀 한 대!”“현금 2천억! “보석 옥석 88점!”“……”우윤식이 한번 입을 열 때 마다 군중들은 한번씩 진동했다. 이건 예물도 아니고 프러포즈 당일의 작은 선물들일 뿐이었다. 이러한 선물들은 어느 가문의 손에 들어가더라도 일류 가문 하나를 만들어 낼 수 있었다!역시 강남의 1인자답다고 밖에는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역시 3년 전 수 많은 그룹을 만들어낸 하 세자! 은아가 드디어 반응을 했다. 그녀는 어리둥절한 얼굴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했다.“우 대표님, 하 세자가 청혼하는 대상이 저라는 말씀이세요!?”우윤식은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네, 형수님. 고개를 끄덕이시기만 하면 이제부터 천일그룹의 안주인이 되시는 겁니다!”“저……”설은아는 그 자리에서 돌처럼 굳어버렸다. 갑자기 닥친 이 상황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 “저저저저……”재석은 감격에 겨워 제대로 입을 열지도 못하고 무슨 수상 소감이라도 말하려는 듯 했지만 말을 잇지 못했다. 하지만 이것도 설재석 탓은 아니었다. 1초 전까지만 해도 설지연에
게다가 은아는 우윤식이 말하고 있는 그 사람이 지금 그녀의 옆에서 그녀의 승낙을 기다리고 있을 거라고는 도저히 생각할 수 없었다. 심호흡을 하더니 그녀는 마치 어떤 결심을 한 것 같았다. 곧 이어 은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우 대표님, 귀하신 세자의 마음은 감사히 받겠습니다!”“죄송하지만 돌아가서 저와 그 분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말씀해주세요. 그러니 저는 거절하겠습니다.”“콰르릉______”한바탕 심한 천둥 소리가 땅에서 일어났다. 온 장내가 아연실색했다.사람들마다 얼굴이 경직됐고, 도무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요즘 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나뭇가지에 올라 봉황이 되고 싶어 하는가?얼마나 많은 여자들이 이런 최정상 호족에게 시집 가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싶어 하는가?그런데 설은아가 뜻밖에도 거절을 하다니?이건 정말 말도 안 되는 얘기다!현장에 있던 많은 여자들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 자리를 대신 할 수 없는 것이 한스러웠다. 우윤식도 어리둥절해서 자기도 모르게 하현을 한번 쳐다본 후 재빨리 말했다. “형수님. 왜 거절하시는 건지 모르겠네요!?”은아가 웃으며 말했다.“저와 세자는 아는 사이도 아니고 아무런 감정도 없어요!”“게다가 세자가 저에게 감사해하는 마음은 결코 진정한 사랑이 아니에요. 이건 제가 원하는 게 아니에요!”“거기다, 우리 둘은 원래 다른 세상 사람이에요. 전혀 어울리지 않아요!”“가장 중요한 건 저는 이미 남편이 있고 벌써 결혼 한지 3년이나 됐어요!”말을 하면서 은아는 따뜻하게 하현을 쳐다보았다. 우윤식은 금방이라도 3년 만에 가장 큰 비밀을 폭로하고 싶었지만 곧이어 하현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제지했다. 왜 갑자기 하현이 마음을 바꿨는지는 모르겠지만 우윤식은 좋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그래 좋아요. 기왕 이렇게 된 거 우리도 설 아가씨의 선택을 존중할게요!”“하지만 이것과 별개로 아가씨는 우리 천일그룹의 귀하신 분입니다!”말을 하면서 우윤식은 손은
“그렇게 호의호식하면서 산다고 해도 내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하현이 빙긋 웃으며 자기만 들을 수 있는 소리로 중얼거렸다.“기왕 이렇게 된 거, 그럼 내가 너를 높은 사람으로 만들어서 네가 큰 인물이 되면 되겠네.”“이렇게 하면 너와 나 사이에 더 이상 신분에 방해되는 건 없잖아.”“그리고 우리 두 사람 감정은 점점 더 좋아질 거야……”이때 희정과 재석이 마침내 반응을 했다.그들 두 사람은 방금 까지도 멍한 상태로 있었다. 어쨌든 오늘 그들은 인생의 기복을 아주 심하게 겪어서 지금 이렇게 회복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이때 희정이 은아를 노려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은아야, 너 어쩜 이렇게 멍청할 수가 있어!”“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얻고 싶어하는 기횐데! 얻고 싶어도 쉽게 얻을 수 없는 거야!”“네 눈 앞에 기회를 갖다 줘도 그걸 거절하다니!”여기까지 말하고 희정은 어쩔 수 없이 자신의 마음을 억눌렀다. 정말 마음이 아팠다!방금 그 순간, 희정은 자신의 신분이 최가 할머니를 능가할 수 있을 것이라 여겼다!재석도 금방 피를 토할 것 같은 표정이었다.“은아야, 너 산채로 우리를 화나 죽게 만들려고 그래!”“너 잘 생각해봐. 이 폐물을 따라다녀서 어떻게 잘 살 수 있겠어!?”“너 지금이라도 우 대표 찾아가봐. 아직 늦지 않았을 지도 몰라!”“나는 하 세자가 분명 좋은 사위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우리는 지금 이미 설씨 집안에서 쫓겨났어. 기회를 놓쳤으니 우리는 이제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할 거야!”은아가 진지하게 말했다.“아빠, 엄마, 절 믿으세요. 저에게 기대셔도 부귀영화 누릴 수 있게 해드릴게요!”“아이고!”재석도 가슴이 답답했다. “너 정말 우리 두 사람을 무참하게 죽일 작정이야!”이때 재석과 희정은 정말 화가 나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특히 희정은 지금 은아의 자리를 빼앗아 자기가 하 세자에게 시집을 가고 싶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 사람은
지금 이 상태로는 차마 볼 수가 없었다!보고 앉아 있다가는 화가 나서 죽을 지경이었다! 재석과 희정 두 사람이 굳이 가려 하자 은아는 어쩔 수 없이 따라 가야 했다. 하현은 비록 아직 일이 남아있었지만 먼저 지금은 그들과 함께 일어나 백원외원 정문으로 가서 다시 이야기를 나눴다. 설은아 일가가 밖으로 나왔을 때 생각지도 못하게 이미 버려진 설씨 가족들이 이때 가지런한 모습으로 길 한 켠에서 걸어 나왔다.“너희들 원하는 게 뭐야? 우리 일가는 이제 설가와는 아무런 관계도 없어!”은아는 설씨 어르신과 사람들이 아직도 자기 집안을 귀찮게 하려고 하는 줄로 생각하고 재석과 희정의 앞을 가로 막으며 입을 열었다. 이때 좀 먹은 얼굴을 한 설씨 어르신이 웃음을 짜내며 말했다.“은아야, 전에는 할아버지가 실수했어! 할아버지도 이 멍청한 지연이에게 속아 넘어갔던 거야!”“지금 할아버지가 먼저 지연이를 가르치고 너 대신 혼내줄게!”말을 마치고 은아가 반응을 하기도 전에 설씨 어르신은 벌써 손을 흔들었다. 설동수와 설민혁이 창백한 얼굴의 설지연을 앞세우고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설씨 어르신은 뺨을 한대 후려쳐 설지연의 이빨을 모두 날려 버렸다. 그리고 나서 그는 계속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은아야, 할아버지가 너 대신 혼내 주는 거 봤지!”“만약 네가 만족하지 못하면 네가 직접 손을 대도 돼. 죽이지만 않으면 이 일은 할아버지가 다 책임질게!”은아는 복잡한 얼굴이었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는 설지연을 보며 그녀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래도 한 식군데 됐어요.”하현은 이 장면을 보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원래 그의 성격상 이런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하지만 은아가 이미 입을 열었으니 그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은아가 고집을 부리지 않는 모습을 보고 설씨 어르신은 전에 하현이 서명한 그 계약서를 꺼내 은아 앞에서 찢어 버린 후 웃으며 말했다. “은아야, 봤지? 너는 여전히
만약 설씨 어르신이 은아의 마음을 바꿀 수만 있다면 그들은 분명 이견이 없을 것이다. 마음이 조금 흔들렸던 은아는 이때 안색이 변하며 천천히 말했다.“할아버지, 할아버지가 말씀하신 대로 라면 제가 설가로 돌아가는 조건으로 하현과 이혼하고 하 세자에게 시집 하는 거 아닌가요?”설씨 어르신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은아야, 너 함부로 말하지 마. 할아버지가 다 너 생각해서 하는 말이야!”은아는 순식간에 더할 나위 없이 싸늘해진 표정으로 차갑게 말했다. “설씨 집안 주인님, 이 조건은 제가 허락할 수 없는 조건입니다.”“우리가 이미 계약서에 사인을 한 이상 설씨 집안과는 인연이 없습니다!”말을 마치고 은아는 더 이상 설씨 어르신을 쳐다보지 않고 발길을 돌려 떠났다. 지금 그녀는 실망감이 극에 달했다. 결국 무슨 의도였는지 알아차린 셈이다.설씨 가족은 식구들의 마음에는 전혀 관심이 없었다. 오직 그들이 신경 쓰는 것은 그들의 이익뿐이다. 만약 오늘 하 세자가 청혼한 사람이 설지연이었다면 어르신이 여전히 이렇게 나왔겠는가?아니다!아닐 뿐만 아니라 함께 나서서 그들 일가를 완전히 짓밟아 죽였을 것이다!이런 가문은 지체 없이 끊어내야 한다!“이건……”재석과 희정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은아는 지금 단단히 화가 나 그들이 무슨 말을 해도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이때 재석은 하현을 매섭게 노려보며 호통을 쳤다.“나는 은아가 다시 잘 생각했으면 좋겠어. 너 따라오지 마.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네 다리를 부러뜨려 버릴 거야!”하현이 웃었는데 그도 원래 따라갈 생각이 없었다. 이때 그는 돌아서서 백원외원으로 들어가려고 했다.“퍽______”바로 그때 뒤에서 돌멩이 하나가 날아와 하현의 등에 떨어졌다. 돌을 던진 사람은 설씨 어르신이었다. 지금 그는 하현을 가리키며 분노를 쏟아내고 있었다.“이게 다 너 같은 쓰레기 때문이야! 그렇지 않았으면 은아는 우리 설가를 떠나지 않았을
그들 대부분은 이미 남원에 부동산을 구입하기 시작했고 그 예물은 개인적으로 사용해버렸다. 지금 그들에게 다시 뱉어내라고 하면 그야말로 그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것이었다!“할아버지, 이거 어쩌죠!? 우리 완전히 파산하는 건 아니겠죠! 밥 생각도 없네요!”민혁은 평소 같은 부잣집 기운이 없어졌다. 이때 그는 곧 무너질 것 같았다.“잘못을 인정하고 처분을 기다려야죠. 지금 유일한 방법은 은아의 마음을 돌리게 하는 것뿐이에요!”“그렇지 않으면 설씨 집안은 끝장이에요!”하현이 백운외원으로 홀로 돌아오자 오늘 행사의 두 번째 순서가 벌써 준비되어있었다. 첫 번째 순서는 은아에게 청혼을 하는 것이었고, 두 번째는 자산 합병식이었다. 현재 각 언론사 기자들이 모두 도착해 조용히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건 방금 하 세자가 청혼에서 거절당한 일보다 더 떨리는 일이었다. 하현은 원래 계획대로 무대에 오르지 못했다. 그는 은아를 데리고 올라가 무대에서 그녀가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여인이라고 말하려고 했었다. 하지만 지금 은아가 이미 하 세자의 청혼을 거절한 이상 자신이 나서는 것은 무의미했다. 그래서 하현은 이 모든 주도권을 우윤식에게 맡겼다. 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우윤식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망설임 없이 무대위로 올라갔다. 이때 하현은 주변에 신비한 인물들이 많이 왔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 사람들은 남원의 일류 가문에서 파견된 사람들이었다. 하 세자의 청혼을 보고 싶다는 것을 핑계 삼아 사실은 하 세자의 정체를 알아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들은 오늘 실패할 운명이었다. 시간이 다 되어 무대에 있던 우윤식이 손뼉을 치자 강남의 큰 거물 두 사람이 창백한 얼굴로 무대 단상에 올랐다. 하나는 하씨 가문 산하 하씨 그룹의 총 매니저였고, 또 다른 한 사람은 하민석 대신 왕씨 그룹을 관리하던 곽양택이었다. 지금 이 두 사람의 안색은 비할 데 없이 안 좋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하 세자는 하 세자이고, 하씨 가문은 하씨 가문이니 앞으로는 하 세자와 하씨 가문을 동일시 하지 말아주시기 바랍니다!”이 말은 아주 듣기 좋은 소식이었다. 한편으로는 천일그룹은 확실히 하 세자가 설립했다는 것을 알리려는 것이었고, 또 한편으로는 하 세자와 하씨 가문은 전혀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천일그룹이 하씨 가문을 삼킨 것은 또 뭘 말해 주는가?우윤식은 직접 대답하지 않았고 기자들이 스스로 맞춰 보도록 했다. 기자들은 하나같이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다들 결국 하 세자가 대단하다는 것에 동의했다! 곧 기자들의 질문이 끝났다. 가장 중요한 단계가 남았다. 천일그룹이 새롭게 간판을 달고 설립되는 것이었다.이 새 간판을 걸어야 오늘의 의식이 끝나는 셈이다. 그런데 우윤식이 간판을 들려고 하는 순간 홀 중앙에서 갑자기 소동이 벌어졌다. 검은 양복을 입고 있는 무리들이 어디선가 튀어나왔다. 마스크를 쓴 채 손에는 쇠 파이프와 회칼을 들고 있는 것을 보고 모두 깜짝 놀랐다. 앞장 선 남자가 이때 냉소하며 말했다. “천일그룹이 간판을 내걸고 출범을 하겠다고? 우리 없이 그렇게는 못하지!”“부숴버려! 아무것도 남겨두지 말고!”이 남자의 폭음과 함께 사방에서 1, 2백명의 사람들이 사나운 기세로 손을 쓰려고 했다. 현장에 있던 귀빈들은 몹시 놀랐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가 있지?분명 이 길바닥 사람들이 이 곳에 온 목적은 단 하나였다. 천일그룹이 간판을 내거는 의식을 진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이렇게 하면 방금 자산을 합병한 천일그룹의 체면을 구길 수 있고 소위 하 세자를 망신시킬 수 있다. 지금 1, 2백명의 사람들이 매섭게 들이 닥쳐 손에 들고 있던 무기들을 휘두르기 시작했고 군중들과도 가까워졌다. 이때 수십 명의 스태프들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이 광경을 보고 스태프들은 할 말을 잃었다. 지금 앞장 선 스태프들은 싸늘한 반응을 보였다. “무슨
”맞아, 설은아. 잘 생각해 봐. 금정에서 아무런 깊은 인맥이 없는 네가 그 많은 돈을 빌리는 건 결코 쉽지 않은 일이야!”“고성양이 지금 요구하는 건 조금 지나친 면이 없진 않지만 누구보다 현실적이라고도 할 수 있어!”임민아도 마뜩잖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눈 한 번 딱 감고 넘어가면 되잖아? 그럼 거액을 융통할 수 있다고!”“가장 중요한 것은 고성양과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거야. 너한테는 정말 좋은 일이야!”“앞으로 네가 금정 비즈니스계에서 고성양과 인맥을 맺게 되면 너한테 절대 불리할 게 없어!”진서기와 임민아 두 사람 모두 고성양에게 돈을 빌렸다.그들은 그에게 몸을 맡겼을 뿐만 아니라 이자도 제대로 갚지 못하고 있었다.그래서 오늘 그녀들은 설은아를 희생양 삼아 자신들의 일을 여기서 정리하길 바란 것이다.다행히 고성양이 설은아를 아주 만족스러워했고 설은아와 연결만 잘 시켜준다면 이자 문제는 없던 일로 하겠다는 약속도 받은 터였다.간단히 말해서 오늘 설은아가 그에게 돈을 빌리지 않으면 그녀들은 고성양에게서 빌린 돈과 이자를 갚을 방법이 없었다.이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녀들이 이 불구덩이에 얼마나 더 있어야 할지 모른다는 것이다.자신들은 설은아한테 자매 같은 친구인데 친구를 위해서 이 정도도 희생해 주지 못한다는 것인가?사람 됨됨이가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진서기, 임민아. 너네들 무슨 말을 그렇게 하는 거야?”설은아는 그들이 이번 일에 어떤 역할을 맡았는지 모를 만큼 바보가 아니었다.순간 설은아의 얼굴에 단호함이 가득 퍼졌다.“난 그 요구를 들어줄 수 없습니다.”“고성양, 죄송합니다. 오늘은 아무래도 헛걸음한 것 같군요.”“오늘 밥은 제가 사는 걸로 하죠.”나박하는 이 말을 듣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설은아가 다행히 나쁜 구렁텅이에 빠지지 않아서 천만다행이라 생각했다.“빌리지 않겠다고?”고성양의 눈빛이 일순 싸늘해졌다.그는 금테 안경을 살짝 만지작거리다가
이때 임민아는 재빨리 달려와 자신의 가슴을 고성양에게 바짝 붙이며 말했다.“고성양, 이렇게 오느라 수고 많았어.”“이렇게까지 체면을 세워 주니 내가 몸 둘 바를 모르겠어!”“됐어! 당신들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고성양은 귀찮은 듯 짜증스럽게 말했다.“절세미인이 돈을 빌려달라고 해서 왔는데 어디 있는 거야?”“고성양, 바로 여기야!”진서기는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설은아를 얼른 끌어당겼다.“은아, 이 분이 바로 고성양이야.”설은아는 이제 고성양의 횡포에 대해서 어느 정도 알게 되었다.나박하가 방금 한 말이 거의 사실일 거라는 판단이 선 것이다.하지만 아홉 번째 방주로서 부족한 이천억 원의 자금을 떠올리며 억지로 웃음을 떠올렸다.“고성양, 안녕하세요.”“저, 제가 돈을 좀 융통하고 싶은데요.”“아하! 전설적인 미녀가 여기 계셨군요! 게다가 대구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방주라구요. 신분도 있고 지위도 상당한 데다 아주 인물도 빼어나시군요. 딱 내 스타일이에요!”고성양은 분명 설은아의 신분을 알고 있는 것이 틀림없었다.하지만 신비에 휩싸인 왕 씨 가문을 등에 업은 그는 10대 최고 가문에 대해서는 별로 크게 경외심을 갖지 않았다.“설 사장님. 다들 보는 사람들도 많으니 쓸데없는 말은 더 이상 하지 않겠어요.”“이천억이 다른 사람들에겐 융통하기 어려운 금액일지 모릅니다.”“하지만 나한테는 큰 문제가 아니죠!”“강호의 법칙에 따라 선이자 10%를 떼고 드립니다. 이자는 30%.”“2000억을 빌리면 우선 선이자를 떼고 1800억을 가져가면 됩니다. 한 달 후에 이자와 원금을 합쳐 2600억을 갚으세요!”“돈이 없으면 안 갚아도 됩니다. 하지만 아홉 번째 방주의 자산은 모두 저당 잡히게 됩니다.”“문제없죠?”설은아는 고성양이 말하는 조건을 듣고 미간을 찌푸렸다.소문으로만 들리던 그 사악함을 이제야 알 것 같았다.한 달에 이자만 800억이었다!내뱉는 말마다 사람을 깜짝깜짝 놀라게
”이렇게 하자구.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이천억이 모이지 않을 수 있어!”“하지만 내가 가진 걸 다 내놓으면 아마 이백억은 될 거야!”나박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단호하게 말했다.“이백억에 대한 이자는 줄 필요없어. 우선 급한 불부터 꺼!”“나머지 금액은 내가 방법을 생각해 볼게!”잠시 어리둥절했던 설은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나박하, 당신 돈은 받을 수 없어!”“당신이 있는 것 없는 것 다 팔아버리면 다시는 재기할 가능성이 없게 돼! 당신한테 그런 짐을 지울 수는 없어!”나박하는 흔들림 없는 표정으로 당당하게 말했다.“설은아, 내가 어려울 때 당신이 도와줬던 거 지금 갚는 거야!”“가장 어려웠던 시기에 나한테 돈을 빌려줬는데 내가 어떻게 배은망덕할 수 있겠어? 절대 나한테 짐 지우는 거 아니야!”“아무튼 그렇게 해결하자구!”“그렇게 해!”“날 봐서 그렇게 해줘!”진서기는 결국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 돈으로 당신 묫자리 하나 못 사는데 뭘 얼마나 된다고 다른 사람한테 빌려준다는 거야?”“은아가 관장하는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방주 자리가 얼마나 씀씀이가 큰 줄 알아? 그 돈 이백억, 금방 없어질 거야!”“잘 들어! 은아를 위해 마련한 이 좋은 자리를 당신이 망친다면 난 다시는 당신 얼굴 안 볼 거야!”나박하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뭐가 좋은 자리라는 거야? 뭐가 좋은 일인데? 내가 보기엔 당신은 좋은 먹잇감을 준비해 놓고 옆에서 이익이나 보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사람에 불과해!”“퍽!”나박하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굳게 닫혀 있던 룸의 문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이 걸어 들어왔다.그들 뒤에는 양복 차림에 사나운 표정을 한 남자들이 뒤따라왔다.보아하니 위풍당당한 경호원 같았다.맨 앞에 선 사람은 입생로랑 셔츠를 입고 있었다.금테 안경을 쓰고 머리를 깔끔하게 빗어넘긴 그의 모습은 겉보기로는 상당
나박하는 고성양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깜짝 놀랐다.“진서기, 당신이 말한 그 사람... 중천 그룹만큼이나 유명한 장청 캐피털 로얄패밀리 고성양 말이야?”“오호! 뭘 좀 아는 모양이군!”진서기는 콧방귀를 뀌며 나박하를 쳐다보았다.“맞아. 바로 그 장청 캐피털이야.”“자산은 수조 원이 넘는 그룹이지. 그러니 현금 이천억 정도 조달하는 데는 아무 문제가 없어!”“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장청 캐피탈이 중천 그룹과 마찬가지로 배후에 금정에서 가장 신비에 싸인 왕 씨 가문을 두고 있다는 거야!”“이제 내가 왜 이 거물을 소개하는지 알겠지?”나박하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난 별로 아는 건 없지만 중천 그룹과 장청 캐피털의 배후에 금정의 유명한 가문이 있다는 건 알고 있어. 뭔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가문이라고 들었어. 5대 문벌인 금정 간 씨 가문이나 10대 가문인 금정 김 씨 가문과도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하더군.”“들려오는 얘기에 따르면 예전에는 왕 씨 가문도 5대 문벌 중 하나로 꼽혔다고 해.”“그런데 그 가문은 너무 조용하고 은밀하게 움직이는 집단이라 승부조작을 많이 일삼아서 지금은 5대 문벌에 들지 못한다고 해.”“그렇다고 해도 금정에 있는 왕 씨 가문의 역량은 어마어마해.”“어쭈! 촌뜨기인 줄 알았더니 꽤나 식견이 깊은데?”임만아는 비아냥거리며 코웃음을 쳤다.“이왕 이렇게 고성양의 출신 배경도 알게 되었으니 잠시 후에 그가 오면 다들 영리하게 잘 행동해야 해. 그게 설은아를 돕는 길이야.”임민아의 말에 현장에 있던 남녀들이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장청 캐피털은 원래도 유명한 데다가 배후에 힘이 막강한 왕 씨 가문까지 있다니!역사와 전통이 깊은 금정에서 이 왕 씨 가문에 대적할 수 있는 세력은 정말로 손에 꼽을 정도였다.장청 캐피털과 고성양의 도움을 받는다는 건 왕 씨 가문을 배후에 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이것이 여기 모인 모든 사람들이 바라는 바였다.그래서 지금 많은 남자들
설은아의 말을 들은 진서기는 황급히 임민아에게 눈을 찡긋하며 말했다.“임만아, 너도 너무해. 어떻게 그런 말을 자꾸 함부로 할 수 있어?!”“여기 왔으니 됐어! 우리 다 친구잖아!”“자, 이제 그 얘기는 그만해. 우리 고성양이 언제 오시려나?”“어차피 우리가 오늘 여기 온 목적은 설은아가 고성양한테서 투자를 끌어내기 위한 거야.”하현은 살짝 어리둥절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자신이 이미 설 씨 집안을 도와 오백억의 빚을 받아주었는데 설은아가 또 누군가에게서 투자를 받으려고 하다니?!나박하도 고개를 살짝 갸우뚱거리며 말했다.“설은아, 무슨 일이야?”“당신은 대구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방주잖아?! 이번에 금정에 온 것도 더욱 그 자리를 공고히 하기 위해 시장을 넓혀 보려고 온 거고!”“그런데 돈이 잘 안 도는 거야?”“음. 문제가 좀 생겼어.”설은아는 입꼬리를 살짝 가라앉히며 멋쩍은 듯 눈을 내리깔았다.그녀는 하현에게 이런 일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하현에게 알려지더라도 할 수 없었다.나박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무겁게 입을 열었다.“설은아, 얼마나 부족한데 그래? 말해 봐!”“내 체면도 좀 세워 주면 안 되겠어?”임민아는 나박하를 보며 냉소를 흘렸다.“쓰레기 처리 회사가 이미 멈췄는데 어떻게 은아를 도와줄 수 있다는 거야?”나박하는 조금 억울한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내 회사가 동결되긴 했지만 물려받은 것을 포함해서 아직 내 이름으로 된 집이 몇 채나 있어. 만약 필요하다면 그걸 팔면 돼!”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나박하를 쳐다보았다.파산 직전에 자기 앞길도 막막할 텐데 이렇게 도와주겠다고 나서는 걸 보면 의리는 꽤 있는 놈인가?조상의 집마저 팔려고 하다니?!설은아는 미소를 머금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나박하, 그 집은 당신 어머니가 당신한테 넘겨준 마지막 자산이잖아!”“그걸 판다고 해도 난 절대 그 돈 못 받아!”“이
나박하의 말에 설은아는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나박하, 그런 농담 그만해. 누가 보면 오해하겠어!”“오해? 누가 오해할 수 있겠어?”나박하는 껄껄 웃었다.“금정에서 우리 설 사장의 미모와 인품이 빼어나다는 걸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내가 당신을 쫓아다니고 싶어 했던 일도 어제오늘 일이 아닌 걸 뭐!”“됐어! 쓸데없는 소리 그만해!”옆에 있던 진서기가 자신도 모르게 퉁명스럽게 내뱉었다.“은아는 이미 임자가 있어!”“이분이시지. 바로 소문난 그 데릴사위 하현. 설은아의 남편이야!”“곧 혼인신고한다고 들었어!”“그러니 당신들한텐 기회가 없다니까!”생각지도 못했던 진서기의 발언에 현장에 있던 남자들은 갑자기 된서리를 당한 듯 어안이 벙벙해졌다.나박하를 비롯해 모든 사람들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고 눈동자에는 도저히 믿기지 않는다는 의구심이 가득했다.이 볼품없는 남자가 설은아가 결혼했던 전설의 그 데릴사위라니!다들 전혀 생각지도 못한 것 같았다.“그런데 최 여사님이 아주 싫어한다던데 재결합이 과연 성사될 수 있을까?”진서기는 웃는 듯 마는 듯한 오묘한 표정으로 말했다.“내 말인즉슨 설은아 정도의 조건이라면 이 데릴사위를 당장 발로 걷어차야 한다는 거야.”“지나가는 아무 남자나 잡아도 이 데릴사위보다는 낫지 않겠어?”“진서기!”설은아는 눈살을 잔뜩 찌푸리며 나무라듯 진서기를 노려보았다.모두가 좋은 친구 사이이고 진서기가 자신을 걱정하는 마음에 한 말이라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건 너무 무례했다.그러나 하현은 진서기의 말에 조금도 개의치 않으며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안녕하세요. 하현입니다.”화려한 옷차림을 한 십여 명의 사람들은 저마다 입을 삐죽거리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심지어 몇 명의 여자들은 하현의 더러운 시선에 자신의 긴 다리가 눈에 들까 얼른 다리를 모았다.그러나 나박하는 잠시 어리둥절했다가 오히려 자신의 명함을 꺼내 하현에게 공손히 건네
소항 회관 2층 888호 룸.하현 일행이 럭셔리한 문을 열고 들어서자 안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십여 명이 쳐다보았다.그들은 하나같이 화려하고 의기양양한 표정이었다.여자들의 목에는 커다란 보석이 달려 있었고 남자들의 손목에는 금빛이 도는 커다란 시계가 걸쳐 있었다.한 마디로 이 사람들한테서는 부귀하고 사치스러운 분위기가 풍겼고 낯선 사람에 대한 경시가 몸에 짙게 베어 있는 것 같았다.설은아 일행이 들어서자 그들은 모두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사람들은 설은아를 보자마자 눈동자에 희미한 빛을 반짝였다.머리를 매끈하게 뒤로 빗어 넘긴 젊고 유능한 남자들의 눈동자엔 설은아를 향한 음흉한 기운이 가득했다.설은아 같은 미녀는 이곳 금정에서도 매우 드문 게 분명했다.“설은아, 서기, 민아! 당신들 다 같이 왔네?”그때 머리가 약간 벗겨진 남자가 싱긋 웃으며 성큼성큼 다가왔다.그의 용모는 잘생기지도 훤칠하지도 않았지만 온몸은 명품으로 뒤덮여 있었다.얼굴에 기름기가 줄줄 흐르고 손가락에 커다란 금반지도 여러 개 끼어 있는 것으로 보아 졸부임이 분명했다.“나박하, 옷차림이 어떻게 아직도 이래?! 이제 육지로 올라왔으면 물속에서 놀던 티는 벗어나야지!”“좀 신경 써주면 안 돼?”“우리 모임에 자꾸 이런 식으로 오면 우린 당신이 우리의 품위까지 떨어뜨린다고 생각할 거야!”임민아는 차가운 눈길로 비아냥거리며 얼굴 가득 곱지 않은 시선을 보냈다.이 틈을 타 설은아는 하현을 향해 말했다.“이 사람은 나박하야. 금정 토박이지. 원래는 그렇게 거물급은 아니었는데 쓰레기 분류 사업에 뛰어든 뒤로 수조원의 자산가가 되었어.”“모두들 그를 두고 쓰레기 왕이라고 칭하지.”“그런데 듣기로는 최근 금정 관청에서 자체적으로 이 사업을 처리하려고 해서 나박하의 사업이 자칫 도산할 수도 있다고 했어.”하현이 이 말을 듣고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임민아가 왜 그렇게 무시하는 투로 그를 대했는지 그제야 알 것 같았다.만약
하현은 두 여자의 차가운 시선을 느끼며 그녀들에게 힐끔 시선을 떨어뜨린 뒤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안녕하세요.”“은아, 우린 들어가자. 사람들이 당신을 기다리고 있을 거야!”진서기는 소항 회관으로 들어가려는 하현의 앞을 가로막으라는 듯 임민아에게 슬쩍 눈짓을 했다.하현은 무심코 발을 떼려다가 줄곧 자신을 무시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던 임민아가 갑자기 앞을 막자 흠칫 놀랐다.“나한테 무슨 볼 일 있어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현, 더 이상 설은아한테 찝쩍대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당신은 이미 설은아와 헤어졌어요. 그럼 깔끔하게 물러서요.”임민아는 차가운 말투로 내뱉었다.“사람은 눈치가 있어야 하는 거예요. 설 씨 집안사람들은 당신을 전혀 반기지 않아요. 모르겠어요?”“이제 알았으면 썩 꺼져요! 어서!”“이곳은 우리 같은 상류층 사람들이 오는 곳이지 당신 같은 얼뜨기가 오는 곳이 아니에요!”하현은 냉담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나와 설은아 사이의 일은 당신들이 왈가왈부할 일이 아니지 않나요?”“설은아는 내 친구예요. 그러니 친구로서 당연히 이 정도는 할 수 있죠!”임민아는 턱을 치켜들고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은아가 마음씨가 고와서 당신이 이러는 것도 가만히 놔두는 거예요!”“그렇지 않고서 당신같이 능력도 없고 돈도 없고 역량도 부족한 사람이 무슨 자격으로 은아와 함께 있을 수 있겠어요?”“은아는 타고난 미모에 붙임성까지 있는 사람이에요. 봉황이 노는 곳에 어찌 꿩이 알짱거릴 수 있겠냐구요?”“당신이 그럴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요?”여기까지 말한 임민아는 콧대를 잔뜩 치켜세우며 위엄을 과시하려 했다.그녀의 말을 들은 하현은 한쪽 입가를 살짝 말아올리며 냉소를 흘렸다.이윽고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임민아를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임민아 씨, 맞죠?”“당신은 스스로가 너무 잘난 줄 아는 사람이군요.”“내가 어떤 사람이든, 자격이 있든 없든 그건 당
”아니야.”하현은 설은아가 갑자기 간민효를 언급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기 때문에 얼른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엄도훈이 나한테 메시지를 보냈어.”“우리 쪽이 계약할 의향이 있는지 없는지 물어본 거야.”“그래서 회사 법무팀에 직접 물어보라고 연락한 거야.”하현의 설명을 들은 설은아는 수줍은 표정을 지으며 화제를 돌렸다.“아, 갑자기 생각났어. 엄도훈이 당신한테 이러는 걸 보니 간민효가 당신한테 엄청 많은 도움을 줬었나 봐, 그렇지?”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이런 조그만 일에 간민효를 들먹일 필요는 없어.”설은아는 결국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만약 무성이나, 혹은 남원이나, 대구였다면 그녀도 그의 말을 믿었을 것이다.그러나 금정은 역사와 유서가 깊은 곳이었다.다른 곳과 비교할 곳이 아니었다.금정에 아무런 연고도 없는 하현이 이런 말을 하니 설은아는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고 생각했다.그러나 그녀는 억지로 자신의 마음을 위로할 수밖에 없었다.왜냐하면 하현의 능력은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이다.분명 금정에도 그의 포석을 두었음이 틀림없다.하지만 문제는 아무리 이렇게 생각하려고 해도 그녀는 자신의 마음속에서 끓어오르는 인정하기 싫은 질투심을 떨칠 수가 없었다.이런 생각에 사로잡히자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이슬기를 떠올렸고 왕주아를 떠올렸고, 동리아를 떠올렸다.그녀의 마음은 더욱더 갈피를 잡지 못하고 이리저리 휘청거렸다.질투의 불꽃이 활활 타오르는 그들의 차는 그렇게 달리고 달려 으리으리한 소항 회관에 다다랐다.화려한 불빛이 눈앞에 일렁거렸고 많은 차들이 오갔다.곳곳에서 향기로운 바람이 퍼졌고 많은 미남미녀들이 드나들었다.차가 멈춘 후 하현은 설은아를 따라 걸어 나왔고 곧이어 마세라티가 멈추어 서는 것이 보였다.빼어난 몸매에 세련된 메이크업을 한 두 여자가 눈앞에 모습을 드러내었다.두 여자는 설은아가 금정에서 안 지 얼마 안 된 비즈니스 파트너였다.한 사람은 진서기이고 다른 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