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태규는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와 하민석은 모두 하현이 그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다. 이번에 그들은 하현을 초대할 마음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하객 명단에 이미 올라 와 있었다. “오라고 해!”곧 이어 하태규는 결단을 내렸다.“그가 이미 남원에 돌아 왔으니 그럼 정식으로 만나 봐야지. 생일 잔치라 때가 아주 적당하네……”“물론 그는 3년 동안 그가 줄곧 와신상담해왔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게 해줄 거야……”“외부 사람들은 그가 폐물이 되어 작은 설씨 집안에서 개만도 못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가 은밀히 얼마나 많은 것을 준비해 놨는지를 보면 충분히 알 수 있지……:“이번 생신 잔치는 3년만에 처음으로 그와 정식적으로 만나는 자리가 된 셈이네. 만약 적당한 기회가 있으면 잔치 끝나고 그를 떠나 보내자……”하태규는 무슨 당연한 말을 하는 듯 담담한 표정이었다. 하민석은 웃으며 말했다. “집안에서 명령을 내리시면, 저는 당연히 실행에 옮겨야지요……”“내가 말했잖아. 이제 네가 권력을 잡고 있으니 하씨 가문도 너를 우두머리로 삼고 있다고……”“그 사람을 해결하면, 네 심복의 큰 문제도 해결돼……”“난 널 위해서 그러는 거야……”하태규는 쓴 표정을 지었다. 하민석은 안색이 변하진 않았지만 여전히 웃으며 말했다.“그렇다면 어르신께 감사 드립니다……”“또 제가 벌써 연경쪽에서 수십 명의 전문가를 불러서 수술을 시키고 7일 후에 생신 잔치에 참석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해 놨습니다……”“수고했네, 이번 일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만큼 너무 고마워. 아들 두 놈이 잘 나을 수 있도록 계속 잘 보살펴 줘.”하태규는 감탄하는 기색이 역력했다.“안심하세요. 제가 잘 보살피겠습니다.”……하태규가 방에서 나가자 하민석의 얼굴엔 비로소 싸늘한 표정이 떠올랐다. “늙은 여우, 나보고 그 사람을 상대하라니……”“네가 나를 이용할 지, 아니면 내가 너를 이용할지……”“두고 보자……”……방
천일그룹의 최상층 회장 사무실 안. 하현은 지금 슬기와 일을 상의하고 있다. 당인준은 더할 나위 없이 조용히 이곳으로 와서 하씨 가문이 할머니 백세 생신에 자신을 초대했다는 사실을 보고했다.“늙은이는 몇 년 전부터 강남 군단을 완전히 장악하고 싶어 했어……”“이번에 네가 가는 것은 할머니에게 있어서 아주 큰 의미가 있어. 보아하니 당 군단장이 이번 생신 잔치에 가장 귀한 손님이 될 거 같아!”하현이 비웃는 듯이 말했다.슬기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당 군단장님이 강남 군단에 여러 해 동안 계시면서 일절 연회에는 참석하지 않으셨는데 이번에 참석하시니 아마 하씨 집안은 체면이 많이 섰을 겁니다……”당인준은 쓴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 도련님, 슬기 아가씨, 농담하지 마세요.”이 말을 마치고 당인준은 계속 말을 이어갔다.“또 연경군단에 있는 제 전우에게 방금 메시지가 왔는데요.”“하씨 가문 쪽에서 연경의 최고 의학 전문가 십여 명을 초빙해서 하경원의 병을 치료해 주려고 오늘 밤에 도착한다고 합니다.”“오늘 밤 언제?”하현이 시계를 보니 벌써 밤 10시였다. “오늘 밤 12시쯤 도착할 겁니다. 이 전문가들의 신분은 아주 특별해요.”“다 연경의 대 가문들과 얽히고 설킨 관계예요……”당인준은 대충 하현의 마음을 짐작하고 지금 한 마디 상기를 시켜 주었다. “걱정할 필요 없어. 강한 용이라도 토박이 뱀은 누를 수가 없어. 연경 사람들은 우리 강남에서 날 뛸 수가 없어.”“목숨을 해치지 말고 며칠간 즐기다가 다시 돌아가게 하면 돼……”하현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는 하씨 가문이 하경원을 치료하도록 내버려 둘 생각이 전혀 없었다. 하경원 때문에 이미 그의 최대 한계치가 건드려졌기 때문이다. ……남원 공항, 국내에서 가장 큰 국제공항 중 하나로 이곳은 매우 번화하다. 그런데 오늘 밤 개인 구역 통로 앞에 더 없이 조용한 검은색 승용차 한 대가 도착했다. 선두에는 단연 롤스로이스였다.
큰 굉음이 귀청을 찢을 것 같았고 거의 모든 것이 날아갈 것 같았다. 잠시 후 하얀 불빛을 받으며 모든 사람들은 이것이 군단용 무장 헬기임을 뚜렷하게 볼 수 있었다. “군단 사람들이 갑자기 왜 나타났지?”가족들은 서로 눈을 마주치며 쳐다보았고, 하태규도 살짝 얼굴을 찡그렸다. 그의 군단 인맥으로 봤을 때 어떻게 이런 장면이 나타날 수 있겠는가? 잠시 후 무장한 수십 명의 군사들이 밧줄을 타고 내려왔다. 가장 먼저 젊은 군사 한 명이 장병조 앞으로 재빨리 다가가 경례를 하며 말했다.“장 선생님, 방금 중앙아시아의 전쟁터에서 퇴각한 부상병들이 있는데 현재 모두 중상을 입어 위독한 상태입니다. 군에서 명령이 있었습니다. 제일 먼저 치료를 받아야 하니 양해 부탁 드립니다!”말을 마치고 이 군사는 다짜고짜 장병조를 데리고 자리를 떠났다. 하태규는 버럭 화를 내며 앞으로 나와 큰 소리로 꾸짖었다.“버릇없이! 너 어느 팀에서 왔어? 너는 규칙도 몰라?”“장 선생님은 우리 하씨 가문에서 초청한 거야! 너 우리 하씨 집안과 싸워보겠다는 거야?”“너희들 장관이 누구야? 나 좀 보자고 해! 설마 그가 나 하태규가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어?”하태규는 노기로 가득찼고 저력이 있었다. 그는 강남 군단에서 워낙 인맥이 깊어 어느 군단의 장관이 오든 체면을 세울 수 있다고 자신했다. 뜻밖에도 이 군사는 갑자기 총 자루를 ‘확’ 잡아 당기더니 바로 하태규의 이마에 총구를 들이대며 냉랭하게 말했다.“내가 이번 작전의 임시 책임자다!”“이번에 위에서 내린 명령은 죽음을 불사하는 명령이다. 우리의 전우를 구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 누구든 이것을 방해하면 용서 받지 못한다!”“모셔가!”곧이어 계급도 없는 군사들은 장병조의 팀원들과 장비들을 모두 하씨 가문의 손에서 빼앗아 갔다.그러고는 바로 데리고 헬리콥터로 갔다. 하씨 가문의 호위병들은 지금 감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이 군사들은 하나같이 살기등등한 것이 분명
“주인 어르신, 군단 인맥과 관계가 있으신데 군사 몇 명으로 어떻게 주인 어르신 손에서 사람을 빼앗을 수 있습니까?”하민석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하태규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확실히, 보통 같았으면 강남 군단에서는 나를 괴롭힐 수 있는 사람이 없었을 거야. 근데 이번엔 누군가 손을 쓴 거 같아……”“게다가 신병을 쓴걸 보면 신분을 드러내고 싶어하지 않는 게 분명한데……”하민석이 추측하며 말했다. “아니면 당인준이 우리에게 치우쳐져 있어서 군단 사람들 중에 누가 우리에게 불만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또 아니면 어떤 큰 가문 사람이 우리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을 갖고 있는 걸까요?”“혹시, 그 사람……”하태규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관건은 아무런 증거도 없이 강남 군단의 위급한 병사가 있다면서 말도 안 되는 핑계를 댔다는 거야……” “나중에 나도 알아봤는데, 국경에서 작은 규모의 충돌이 있었는데 주변 국가에서는 수십 명이 죽었고, 우리는 몇 명 다쳤다고 하더라고……”“지금 이 부상당한 군사들은 우리 군단의 영웅들이야. 최고의 의학 전문가들을 불러서 그들을 데려오라는 명령을 위에서 내렸다면……”“그 손을 내민 사람들은 아마 그 부상당한 군사들의 전우일지도 몰라……” “만약 이것이 진짜라면 상대방은 또 군령을 가지고 있으니 우리는 당분간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거야……”하민석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했다.“주인 어르신, 우리가 눈뜨고 보고만 있어야 하는 건 아니겠죠?”“기다려, 장병조 일행이 풀려날 때까지 기다려봐. 상대방이 계속 그들을 붙잡고 있을 리는 없어. 보아하니 이번에 경원이는 생일잔치에 참석하지 못할 것 같은데……”하태규는 안타까운 표정이었다. “어르신 안심하세요. 설령 생일 잔치에 참석하지 못하더라도 우리 하씨 가문에서 경원이의 자리는 어떤 변화도 없을 거예요……”하민석은 몇 마디로 위로하고는 느린 걸음으로 걸어 나왔다. 하지만 떠난 뒤 그는 오히려 살짝 찡그리며
하씨 집안 할머니 백세 생신 잔치가 점점 가까워지자 남원 전역은 큰 명절을 맞이하는 분위기였다.남원 전역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하씨 가문은 남원의 하늘로, 남원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매우 높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남원의 일류 가문 사람들조차 하씨 가문의 생신 잔치 초대장을 가지고 있는 것을 자랑했다. 심지어 초대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은 친구에게 사진을 찍어 보내기도 하고, 자기 SNS에 올려 자기의 위상을 과시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하씨 가문의 할머니 백세 생신 잔치가 얼마나 중요한 자리인 지를 이를 통해 엿볼 수 있었다. 생신 잔치 전 날, 설유아는 별 생각 없이 초대장을 보내왔다. 이것은 그녀가 양부모님께 오래 전부터 부탁해 온 것이다. 하지만 하경원의 일 때문에 설은아는 아직도 걱정이 태산이다. 그래서 그녀는 참석할 수가 없었다. 만에 하나 잔치자리에서 화를 불러일으키기라도 하면 그 결과를 누가 감당할 수 있겠는가?하지만 문제는 이 일을 말을 할 수도 없고, 설유아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너 안 가도, 나는 갈게……”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는 분명 갈 것이다. 남원에 돌아온 후 처음으로 하씨 집안과 정식적으로 만나는 자리인데 자신이 어찌 빠질 수 있겠는가?설유아는 오히려 기뻤다. 설은아가 안 가면 그녀가 볼 때 형부는 혼자 있는 것이었다. 설은아는 하현을 말리지 못하자 자기도 모르게 유아에게 말했다. “너 반드시 형부를 잘 지켜야 돼! 아무도 형부를 건드리게 해서는 안 돼.”설유아는 대답했다.“언니, 걱정 마. 우리 양부모님이랑 같이 가니까. 그분들은 최씨 집안 대표잖아!”“최가는 남원에서 지위가 높아서 하씨 가문이라도 해도 감히 우리한테 함부로 못 해.”이 말을 듣자 그제서야 설은아는 마음이 조금 놓였다. 설씨 집안의 다른 사람들은 분명 이번에 잔치에 참석할 수 있는 자격이 없을 것이다. 다음 날, 남원 컨벤션 센터
아직 잔치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들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이 곳엔 샴페인 타워도 세워져 있었고 서양식 뷔페도 있어서 편하게 먹을 수 있었다. 하현과 설유아도 자리를 잡고 방금 앉았다. “하…… 하현, 너야?”뒤에서 한 줄기 소리가 들려왔다. 하현이 돌아서자 얼음미녀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몇 달간 못 본 사이 분위기가 조금 달라져 있었다. 지금 그녀는 촉촉하고 맑은 눈으로 하현을 쳐다보며 약간 흥분했지만 가까스로 억눌렀다. 남원의 일류 가문 중 하나인 안씨 집안, 안수정. 두 사람은 전에 서울에 있을 때 많이 만났었고, 나중에 안수정이 떠날 때 하현이 특별히 그녀를 배웅해 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서울을 떠난 후 두 사람은 못 만난 지 벌써 거의 석 달이나 되었다. 심지어 남원에 온 이후로 하현은 일이 바빠서 먼저 안수정을 찾아갈 마음이 없었다.“어떻게 남원에 오셨으면서 연락도 안하셨어요?”안수정은 시선을 설유아에게 향하면서 조금 이상한 눈으로 쳐다봤다. “수정아, 이 사람 네 친구야?”옆에서 지금 또 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두운 색 무늬의 양복을 입은 한 남자가 건너와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 보았다. 분명 이 사람은 안수정을 따라다니는 사람이었다. 지금 자기도 모르게 하현을 경쟁상대로 삼았다. 하지만 하현은 그를 상대하기가 귀찮아 안수정을 보고 웃으며 말했다.“남원에 온지 아직 한 달이 안 됐는데 요즘 일이 바빠서 시간이 없었어요……” “제가 한가해지면 꼭 식사 대접 할게요.”“좋아요 좋아. 전 언제든 시간 괜찮아요!”안수정은 재빨리 입을 열었지만 곧 자신이 실언을 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리고는 자신의 입을 틀어막은 채 자신이 말 실수를 했다는 것에 놀란 표정을 지었다. 설유아는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다소 도발적인 표정으로 안수정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원래 형부가 자기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지금 또 형부를 빼앗으려는 사람이 나타날 줄은 생각지도
어두운 무늬의 양복 차림의 이 남자가 아무리 빈정거려도 하현은 전혀 동요하지 않았다. 이 깡충깡충 뛰는 어릿광대들은 그의 눈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틀림없이 한방이면 끝이었다. 그들은 하씨 가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하현의 모습이 안수정의 눈에 들긴 했지만 스타일이 조금 바뀌어 있었다. 그녀가 보기에 석 달 전만해도 그는 안수정의 초대를 충분히 거절할 수 있는 남자였다. 그런데 어떻게 지금 화를 참고 있는 거지? 설마 3개월의 시간이 한 사람을 바꿀 수 있나?안수정은 심호흡을 하고 처음 보았을 때의 그 차가운 모습을 되찾았다. 이때 그녀가 어두운 무늬의 양복 차림을 한 남자를 힐끗 쳐다보며 냉랭하게 말했다.“구지성, 내가 어떤 사람과 사귀든, 어떤 친구랑 지내든 그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 네가 그럴 자격이 있어?”“한 번만 더 내 친구에 대해서 함부로 말하면 내가 너한테 막말을 한다 해도 나한테 뭐라고 하지마!”안수정이 이렇게 입을 열었을 때 카리스마가 넘쳤다. 역시 얼음 미녀답다.구지성은 원래 그녀를 쫓아다니던 사람이었는데, 지금 이 말을 듣고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맞은 편에 있는 하현을 더 경멸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 여자에게 빌붙어 사는 폐물이 어디 쓸데가 있나? 짓밟고 싶은 대로 마음껏 짓밟게 두면 안되나? 이 데릴사위가 이해를 했으면 그만 두겠지만, 만약 이해를 못했다면 나중에는 때려 죽일 수도 있다. “괜찮아요?”안수정은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결국 맨 마지막 문장은 이렇게 바뀌었다. “네, 괜찮아요. 시간 있을 때 식사 대접 할게요.”하현이 대답했다. 그는 오늘 여기에 마음을 두지 않았기에 안수정의 기분이 별로 좋지 않다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지금 하현을 보면서 안수정은 약간 당황스러운 느낌이 들었다. 경매장에서, 골동품평회에서 침착하고 기가 막히게 멋진 남자는 어디 갔지?고작 몇 달 못 봤다고 어떻게 이렇게 변한 거지?
하현이 어디서 튀어 나왔는지도 모르는 이 두 녀석에게 무시를 당하는 것을 보고 설유아는 조금 화가 났다. 그녀는 하현의 팔짱을 끼며 차갑게 말했다.“당신들 어디서 튀어나온 놈들이야!”“당신들은 시야가 좁은 속물들일 뿐이야!”“우리 형부는 대단해! 특히 너 이 옹졸한 녀석아!”“우리 형부가 너를 무서워하는 줄 알아? 우리 형부는 너를 상대하고 싶지 않은 거야!”“왜냐면 형부 눈에 당신은 땅강아지처럼 보이거든!”설유아는 하현이 어떤 신분인지 전혀 알지 못했다.하지만 수백억짜리 부동산을 아무렇지도 않게 그녀의 이름으로 해주고, 남원 타워 회전식당 사람을 마음대로 사들일 수 있는 사람은 분명 구지성 같은 광대가 도발할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하현, 당신 처제, 정말 너무 귀엽네!”구지성은 조금도 개의치 않고 경멸하는 듯한 웃음을 지었다.“내가 땅강아지라고? 그래. 인정해. 높으신 하 세자 같으신 분 앞에서는 나는 확실히 땅강아지 일 뿐이지……”“하지만 나 구지성은 어쨌든 남원 일류가문 구씨 집안 사람이야. 이런 출신은 당신들 같은 보통 사람들이 한 평생 노력한 것과는 비교할 수가 없어……”구지성은 매우 의기양양했다. 그는 비록 구씨 가문의 방계일 뿐이었지만 방계 중에서도 그는 좀 출중한 편이었다. 그렇지 않았으면 감히 그는 안수정을 따라다니지 못했을 것이다. 보잘것없는 데릴사위는 말할 것도 없고 설씨 가문이라 해도 그는 전혀 안중에 두지 않았다. “참, 듣기로 아직 일이 없다고 하는 것 같던데, 수정이의 체면을 봐서 내가 우리 회사에 자리 하나 마련해 줄게.”“우리 회사에서 최근에 마침 경비원을 하나 뽑고 있거든, 월급이 그런대로 괜찮아!”구지성은 의기양양하게 입을 열었다. 만약 안수정이 마음에 들어 하는 이 사람을 자기 수하에 두고 경비원을 시킨다면 얼마나 좋을까?이 말이 나오자 안수정은 인상을 찡그렸다. 그녀는 비록 지금 자신이 하현에게 처음 가졌던 감정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