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맞아요, 민혁이는 젊고 부유해요. 그는 어떤 여자도 쉽게 차지할 수 있어요. 민혁이는 그런 일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하현, 이 영상은 네 아내의 책임을 벗는 것을 돕기 위해 조작한 건가?""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확실히 당신을 과소 평가했어!"설씨 집안 사람들은 하현을 별로 신뢰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들은 설 씨 어르신이 민혁의 편을 드는 것을 보자, 그들 역시 바로 민혁의 편을 들었다."당신은 그것을 원하고 있군요…" 하현이 비웃었다. 이어 그는 순간 살짝 멍해진 은아를 힐끗 쳐다보며 말했다. "여보, 이 비서님의 전화번호를 알고 있어요?""응? 응, 전에 나한테 명함을 줬어." 은아가 무의식적으로 말했다."그럼 쉬워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이 비서에게 전화해서 왜 우리와 협력하지 않았는지 물어볼게요. 그러면 우리는 답을 알 수 있을 거예요!" 하현이 재촉였다."좋아!" 은아의 눈이 반짝였다. 그녀는 이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었다.그 순간 민혁의 얼굴은 더욱 창백해졌다. 그는 소리쳤다. "누나! 이번에는 설씨 집안에게 큰 굴욕입니다! 아직도 망신을 당하고 싶어요? 누나는 그런 모욕을 받아들일 수 있지만, 우리 설씨 집안은 그럴 수 없다고요!"은아는 하현을 힐끗 쳐다보았다.하현은 웃으며 말했다. "만약 여러분이 하지 않은 일로 평생 동안 벌을 받게 된다면, 여러분은 이 전화를 하지 않을 건가요?!""하현, 어떻게 감히 설씨 집안의 일을 간섭할 수 있어요? 죽여버릴 거예요!" 민혁은 이번에 더 이상 참지 못했다. 그는 황급히 달려와 하현이 서 있는 방향을 향해 발길질을 했다.빡!하현은 곧바로 민혁의 무릎을 걷어찼다. 도박과 술만 잘하던 이 부유한 청년은 비명만을 지르고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러고 나서 그는 크게 울부짖었다. "하현! 어딜 감히!""너무 멀리 갔다!"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하현을 반대하는 목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하현의 발길질이 그들을 겁에 질리게 했고, 심지어 경비원들도 앞으로
하현은 그들을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뒤돌아서 은아를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전화 걸고 스피커 모드로 바꿔. 날 믿어!”핸드폰이 울렸다.전화벨 소리에 시끌벅적했던 설 씨들은 이내 서로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았다. 이후, 그들은 곧 조용해졌다.항상 민혁이를 아끼던 설 씨 어르신도 그 순간만큼은 놀랍게도 망설였다. 투자금 600억이 그만큼 무척 중요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에게 그 투자금이 없다면, 설씨 집안은 망할 수도 있다.“안녕하십니까? 하엔 그룹 대표님의 비서 이슬기입니다. 혹시 누구신지…” 잠시 후, 그들은 상냥하지만 차가운 목소리를 들었다.은아의 아름다운 얼굴은 걱정과 어색함으로 가득 찼다. 이어 은아는 말했다. “이 비서님, 안녕하세요. 저는 SL 그룹 설은아입니다. 저희 어제 만났는데…”“아! 설은아 씨군요!” 슬기의 말은 더더욱 차갑게 들렸다. “사실 저희 대표님께서 설 씨들을 불청객 리스트에 올렸습니다. 심지어 대표님께서는 설은아 씨가 완전히 파산하길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저에게 전화하지 말아 주세요. 매우 불편하네요…”그 이야기를 듣자, 설 씨들은 모두, 특히 설 씨 어르신이 차가운 숨을 들이쉬었다. 어르신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 순간, 그는 감히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그 이유는 바로 하엔 그룹은 강남의 제일 큰 집안인 하씨 집안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그런 집안은 당연히 설씨 집안같이 권위가 덜 한 집안을 손쉽게 파산하게 만들 수 있었다.“이 비서님, 염치없는 거 압니다. 근데 제발 먼저 끊지는 말아주세요.” 이 순간, 은아는 아주 긴장했다. 한 번 밖에 만나지 않은 이 비서님은 매우 무서웠다!“하나만 물어볼게요. 우리는 어제 분명히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당신 회사는 왜 이렇게 가차 없는 거예요? 우리와의 협력을 취소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파산하게 하려고…” 은아가 파산 얘기를 꺼내자, 설씨 집안 사람들 모두 얼굴이 창백해졌다.만약 설 씨들이 파산한다면
SL 빌라에서.설씨 집안 사람들은 서로를 무력하게 쳐다보았다. 잠시 후, 많은 이들이 민혁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지금까지 진실은 전부 밝혀졌다.하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구석으로 물러났다. 이다음에 일어날 일은 그가 상관할 바 아니었다. 설 씨들이 멍청하지 않다면, 무엇을 해야 할 지 그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짝, 뺨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설 씨 어르신은 앞으로 나서더니 민혁을 향해 걸어갔다. 이어서 어르신은 곧바로 민혁의 뺨을 세게 때렸다. 하지만 그 순간 민혁은 얼굴을 만지는 것 밖에 할 수 없었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런 쓸모없는 놈! 정말 실망이야! 너를 후계자로 키운 게 아깝다. 너는….” 설 씨 어르신은 몸이 계속 떨릴 정도로 단단히 화가 났다.“할아버지, 이럴 의도는 없었어요. 저는 그냥 잠깐 프런트 여자 직원이랑 말을 나눈 것뿐이에요. 그 여자가 대표님의 여자친구일지 누가 알았겠어요?” 이 순간, 민혁은 깊이 후회했다.“그럼 못 써. 가서 해결해야지. 아직 상황을 바꿀 기회가 있어. 그냥 서서 아무것도 안 하느니 움직여야 해!” 설 씨 어르신의 표정이 변했다. 잠시 후, 어르신은 느닷없이 고개를 들더니 은아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은아야, 아까 이 비서가 너한테 꽤 친절하게 대하더라. 네가 내일 하엔 그룹에 가서 용서를 빌면 어떻겠니?”“말도 안 돼요!”은아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또 다른 소리를 들었다.그들은 뒤돌아서더니 이내 혐오감으로 가득 찼다. ‘이 불운 덩어리는 왜 또 온 거야? 여기가 데릴사위가 의견을 낼 자리인가?’“하현, 네가 뭔 상관이야? 너는 그냥 데릴사위야. 지독하게도 쓸모없어!” 누군가 하현을 꾸짖었다.“어딘가에서 영상 하나를 찾아와 증거로 썼다고 우리가 네 말을 들을 거라고 착각하지 마. 우리는 쓰잘머리 없는 놈의 의견 따위는 필요 없어!”“맞아. 할아버지는 은아한테 말하고 있잖아. 네가 무슨 상관인데?”“왜 제가 상관할
“하현, 너는 일말의 자존심도 없어? 네 가족한테 빌붙을 뿐이잖아. 어떻게 네가 집안의 어른인 척을 해? 여기가 정말 네가 의견을 낼 자리라고 생각해?” 동수는 앞으로 나서더니 하현을 차갑게 노려보았다.하현이 많은 사람 앞에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망신시켰기 때문이다. 그 순간, 동수는 하현이 너무나도 싫었다.“은아 대신 말하고 싶어? 은아가 그래도 된대? 얘가 그래도 된다고 해도 네 장인이랑 장모가 아직 말을 안 했어. 네가 무슨 자격으로 여기서 떠들어? 너는 서열이랑 예절이 뭔지도 몰라. 꺼져!” 동수는 경멸의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아주버님, 하현이 한 말이 맞아요. 이번에 은아는 안 갈 거예요!” 희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제수씨… 뭐라고 했어요?” 동수는 손가락을 뻗더니 희정을 가리켰다. 그는 몹시 화가 나 이제 손가락까지 떨고 있었다.“아주버님이랑 저는요? 아주버님은 은아한테 누명을 씌우고 해명하지도 않았잖아요. 심지어 우리를 설씨 집안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했어요. 근데 지금 우리 딸만이 설 씨들을 살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우리한테 용서를 구하고 싶지도 않아 하고, 놀랍게도 이렇게 건방지게 굴다니요. 잊었어요? 우리 설씨 집안이 지금 왜 이 모양이 됐는지? 다 아주버님의 그 사랑하는 아들 때문이잖아요!”희정은 가끔 성질이 고약했다. 은아의 엄마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날, 희정은 분노로 가득 차 화풀이할 다른 곳이 마땅히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드디어 화풀이할 기회를 찾았다.하현은 헷갈려 희정을 힐끗 쳐다보았다. 희정이 자신의 편을 들어 그를 대변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동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따지고 보면 희정이 한 말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동수가 말을 잇기도 전에, 설 씨 어르신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어르신은 말했다. “희정아, 잘못을 한 건 민혁이 맞아. 하지만 우리는 같은 가족이고 한배에 탔어. 만약 설씨 집안이 망한다면, 네가 과연 무사할까?”“설씨 집
희정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는 아주 논리적인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그것이 설씨 집안을 파산하게 한 이유라면, 희정은 즐거운 삶을 살 수 없게 될 것이다.“알았어요.” 잠깐 생각한 후, 희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안 돼요!” 결국 옆에 서 있던 하현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그 순간, 희정을 포함한 설씨 집안 사람들 모두 하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설 씨들은 의논을 잘 마무리했다. ‘왜 이 데릴사위는 또 와서 난리를 피우는 거야? 조금의 자각심도 없나?’희정은 차갑게 말했다. “하현, 나가! 여기는 네가 의견을 낼 자리가 아니야!”“장모님, 저는 은아 대신 말하는 겁니다! 은아에게 쓰인 누명을 벗기고 싶어요! 처음에 하엔 그룹과 계약을 진행한 사람은 은아예요. 그런데 설 씨들은 그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곧바로 담당자를 바꿨어요. 그래서 지금 기업 전체가 망했고, 설 씨들은 은아가 가서 직접 해결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이게 대체 무슨 뜻인가요?”하현은 차갑게 말했다. “은아에게 해명을 해야 하지 않나요? 설마 은아가 가서 다시 투자를 받아오면 또 담당자를 바꾸는 건 아니겠죠? 은아가 무슨 당신 심부름하는 여자아이인가요?”“하현,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아나요? 어딜 감히 할아버지를 의심해요!” 드디어 민혁에게 기회가 찾아왔고, 그는 화난 채 하현에게 소리치며 꾸짖었다. 그러나 사실 민혁은 그럴 생각이 있었다. 설 씨 어르신은 민혁을 가장 아꼈기에, 만약 은아가 투자금을 회수한다면 그는 다시 담당자가 될 것이다.이 순간, 희정은 머릿속에 무언가를 떠올리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아까 그럴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하현, 너는 여기서 말할 권리가 없어. 지금 당장 나가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한테 무례하게 대했다고 탓하지 마!” 동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하현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순간 동수는 매우 겁먹었다.하현은 그들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는 설 씨 어르신에
은아는 투자금을 회수하기만 하면 사장으로 임명된다. 그 소식은 설씨 집안 전체에 퍼졌다.많은 이들이 놀랐다. 하지만 그들은 투자금이 없으면 설 씨들이 파산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별말을 안 했다.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계속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한 누가 권력을 쥐든 상관 안 했다.민혁의 가족은 아빠와 아들이 마주 앉아 무력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민혁은 위협적으로 보였다. 이어 그는 말했다. “아빠, 삼촌의 가족들은 전부 아무것도 아닌 그저 머저리들이야. 모두 외부인 편을 드는 배은망덕한 사람들이야. 그냥 서서 하현이 날 모욕한 모습을 지켜봤을 뿐만 아니라, 무슨 한심한 투자 때문에 사장 자리를 넘봤어. 우리를 최대로 괴롭히고 있잖아!”동수는 집중하고 말했다. “설 씨 어르신께서 한가지는 옳으셨어. 그 투자는 우리한테 굉장히 의미 있고 중요한 거야. 그리고 우리는 하엔 그룹이랑 관계를 회복할 방법을 찾아야 해. 투자만 받을 수 있다면, 그 자리를 넘겨주는 게 뭐 어때서?”“하지만…” 민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다면 저 여자들이 우위를 점하고 권력을 쥐게 해주는 거 아니야?”“권력을 쥐면 뭐가 어때서? 잊지 마. 저 사람들은 뭘 하든 간에 아무것도 아닌 그저 머저리야. 여자가 우리 설씨 집안을 이끄는 게 말이 돼? 어르신이 그런 약속을 하신 이유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어서 그런 거야. 우리가 그 투자금을 얻기만 하면, 어르신께서 분명 최후의 결정을 하실 거야. 어르신이 진짜 그렇게 멍청한 줄 알아? 그런 중요한 자리를 여자한테 넘기겠어?”“그래도 내가 잘못을 책임지고 물러날게. 지금 시기에 처신 똑바로 해야 한다는 거 기억해. 사장 자리를 포기해도 좋아. 근데 이 프로젝트의 담당자 자리를 꼭 차지해야 해. 그 프로젝트를 차지하기만 한다면, 설 씨들은 반드시 우리의 손아귀에 쥐게 될 거야.” 동수는 차갑게 말했다.그 말을 듣자 민혁은 기뻐했다. 그리고 민혁은 말했다. “그럼 우리가 그 600억 원
겨울의 화장은 아주 정교했고, 그날 겨울은 아주 아름다워 보였다. 처음에 석진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겨울이 선글라스를 벗자, 석진은 이내 뼛속까지 흔들렸다. 그의 얼굴도 창백해졌다.겨울은 석진이 전화번호를 따기 실패한 여신님이었다. 그녀는 하엔 그룹에서 부장으로 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포르쉐도 타고 다녔다. 반면 석진은 거기서 고작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었다…석진은 매우 놀라 침을 아주 조금만 삼키는 것조차 버거워했다.두 사람 옆에 서 있던 하현은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그는 겨울에게 걸어가서 웃으며 말했다. “남아있는 주차 공간이 꽤 좁아. 내 자리에 주차할래?”겨울은 충격 받았다. ‘대표님이 오셔서 나한테 말을 걸었어!”겨울은 냉큼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괜찮습니다. 방금 주차하셨잖아요.”이 말을 하며 겨울은 그 주차 공간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곧 말문이 막혔다. ‘우리 대표님은 참 검소하셔. 이렇게나 넓은 주차 자리인데 거기에 전기 자전거를 주차하시다니…”“그럼 너는…” 하현이 말했다.“저는 경비원에게 대신 주차해달라고 할게요.” 겨울은 재빨리 말했다.“알았어. 나는 지금 사무실로 올라갈게.” 이후, 하현은 석진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는 뒤돌아서 떠났다.석진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겨울이 자신을 알아보지 않기를 바랐다. 겨울은 그다지 신경을 안 쓰고 그에게 열쇠를 넘겼다. 그녀는 말했다. “주차한 다음에 그냥 프런트에 열쇠를 맡기세요. 그리고…”말을 마치기 전에, 겨울이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우석진… 과대… 왜 우리 회사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어?”석진의 표정이 몹시 험악해졌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뭐 좀 체험하려고 왔어…”“그래?” 겨울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석진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석진은 겨울의 오래된 동기였으니,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보안팀장이 며칠 전에 대표님한테
겨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대표님께서 최근에 손님을 만날 시간이 없을 거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SL 그룹 사건에 관해서는 대표님께서 순전히 제게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요청사항이 있으시면 저에게 바로 말씀해주세요.”은아는 서류 더미를 꺼내 겨울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김 부장님, SL 그룹 쇼핑몰 프로젝트는 분명 특출한 자산입니다. 이전에 저희를 두 번 거절하셨지만, 저희는 여전히 투자를 진행하고 싶습니다."겨울은 서류를 찬찬히 읽었다. 이어서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설은아 씨, 직접 방문하셨으니 어렵고 곤란하게 하지는 않을게요. 저희는 SL 그룹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정말요?” 은아는 헷갈렸다. 그녀는 난처한 입장에 놓일 줄 알았지,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지는 상상도 못 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우선 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겨울이 말했다. “그런데 이전에 하엔 그룹에 결례를 범하셨으니 이번에 저희는 투자금으로 300억 원만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동의하신 저희가 받을 수익은 10%로 늘리고 싶습니다. 이건 저희가 다시 작성한 계약서입니다. 가져가셔서 읽어 보셔도 됩니다. 아무 문제없다면 서명하시고 돌려주시면 돼요. 물론, SL 그룹 측에서 계약 조건이 너무하다 싶으시면 저희와 협업을 안 하셔도 됩니다. 어쨌거나 이 프로젝트에 하엔 그룹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은아는 진지하게 계약서를 읽어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에 계약서에 적힌 조항들이 지난번 집에 가지고 간 것보다도 더 혹독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전 계약에서 가장 많은 이득을 볼 사람들은 설 씨들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설 씨들은 많은 이득을 누리지 못하고, 조금의 손실을 겪을지도 모른다.그렇지만 은아는 더 말할 엄두를 못 냈다. 이번에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상당히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겨울은 급할 게 없었다. 이어서 그녀는 말했다. “설은아 씨, 그냥 계약서를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
하현의 몇 마디에 모든 문제가 줄줄이 해결되었다.손님들은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서 하현이 자신의 문제도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들이 믿고 떠받들던 황보동은 한켠에 방치되었다.하현은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등을 빠른 속도로 설명하며 근본적인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한 번에 술술 늘어놓았다.다들 놀란 표정으로 하현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문제가 해결되자 감격스러운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하현이 붉은 주사 광물을 가지고 각종 부적을 그려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이웃들은 모두 집복당에 젊은 신선이 왔다고 말하며 달려 나갔다.심지어 일부 아줌마들은 자기 딸이 몇 년 동안 시집도 못 가는 일까지 하현에게 도움을 청하고 나섰다.하현은 한 명 한 명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많은 의견과 해결책들을 제시했다.즉석에서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당사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았다.소위 풍수지리사들이 대부분 이와 같은 일을 한다.이 과정에서 황보동은 옆에서 하현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그는 들으면 들을수록 표정이 엄숙하고 경건해졌다.하현이 하는 말들은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서로 다 알고 지내는 이웃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평소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누구보다 황보동이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침착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황보동의 눈빛은 어느새 그에 대한 경의로 가득 찼다.황보동의 기억 속에 그가 이런 광경을 본 적은 어린 시절뿐이었던 것 같았다.그래서 하현의 모습을 보자 황보동은 아련한 설렘마저 느끼게 되었다.결국 황보동은 자발적으로 책상 옆으로 가서 하현의 조수로 변신해 부적 그리는 것을 도왔다.“하 대사, 당신이 진정한 대사일세!”손님들이 모두 떠난 뒤에야 황보동은 하현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자네는 나를 훨씬 능가하는 재주를 가졌어!”“자네가 이 집복당을 이어간다면 그건 모든 사람들이 복을 얻는 것과 같아!”그의 인생에서 가
하현의 말을 들은 황보동은 미간에 깊게 팬 주름의 골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하현이 무슨 말을 하는지 유심히 보려는 것이 분명했다.하현은 아줌마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아주머니, 앞으로 옷을 입을 때 주의해야 합니다.”“티셔츠를 거꾸로 돌려서 입으면 계속 목을 조이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숨쉬기도 힘들고 잠도 푹 잘 수 없습니다!”“그것만 주의하면 십중팔구는 아무 어려움 없이 푹 잘 수 있을 거예요.”“물론 계란은 잘 챙겨 먹어야 합니다.”하현의 말을 듣고 온 장내가 정적에 휩싸였다.모두 어리둥절해져서 아무 말도 못 하다가 잠시 후 엷은 미소가 얼굴에 번지기 시작했다.가만히 눈을 들어 아줌마를 보니 역시나 옷을 거꾸로 입고 있었던 것이다.이렇게 목을 조르고 있으니 당연히 호흡이 곤란해지고 밤에 잠도 잘 수 없었을 것이다.황보동은 이 아줌마보다 하현이 더욱 궁금해졌다.황보동은 일단 아줌마에게 부적을 써서 건네주었고 이윽고 두 번째 손님이 다가왔다.두 번째 손님은 팔십이 넘은 노인이었는데 머리가 좀 헝클어져 있었고 미간에 약간 거뭇거뭇한 빛이 돌았다.몸에는 약취가 풍겨서 보기만 해도 구역질이 날 것 같았다.황보동은 눈썹을 살짝 찡그리며 나침반을 꺼내 잠시 바라본 뒤 담담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자네, 이분이 지금 어떤 상황인지 말해 보게.”하현은 노인을 유심히 쳐다보고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이 노인은 아마 며칠 전에 외출할 때 개똥을 밟았고 실수로 또 시궁창에 빠졌을 겁니다.”“그로부터 며칠 동안 운이 없게도 외출할 때마다 크고 작은 재해를 입었습니다.”“물만 마셔도 이가 시릴 지경일 겁니다.”“요즘 아주 운이 나쁜 일 연속이었을 거예요.”“해결책은 간단합니다.”“집으로 돌아가 목욕재계하고 사흘 밤낮으로 쉬면 문제가 없을 겁니다.”“그리고 앞으로 외출할 때는 하늘만 쳐다보지 마세요.”“척추에 문제가 있으면 의사를 찾아가 물리치료를 해야 합니다. 하늘만 쳐다본다고 병이
”제가 사기꾼일까 봐 집복당의 이름을 빌려 함정에 빠뜨릴 생각이셨던 거죠.”“그래서 이천억이란 금액을 불러 절 놀래켰고요.”“만약 제가 이천억을 낼 수 있다고 한다면 돈이 부족하지 않다는 얘기가 되니 안심할 수 있는 거죠.”“만약 제가 이천억을 낼 수 없다면 대사님의 손녀를 구하려고 할 테고요. 혹시라도 제가 구한다면 풍수지리에 조예가 깊다는 얘기가 되니 집복당의 새 주인이 되어도 걱정할 일이 없는 거죠.”“한마디로 황보대사님이 매우 고심하고 계시다는 뜻이고 그 마음 충분히 이해합니다.”“결국 대사님 같은 분은 스스로 최소한의 지켜야 할 도리 같은 게 있는 겁니다. 돈 때문에 그 도리를 저버릴 수는 없었던 거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황보동을 바라보았다.풍수를 보러 온 십여 명의 손님들이 하현의 말을 듣고 화들짝 놀랐다.어쩐지 평소 붙임성 좋고 환하게 사람들을 대하던 황보대사가 이상하리만큼 싸늘하게 대하더라니, 이런 이유가 있었던 거로군!하현의 말을 듣고 황보대사의 의도를 간파한 간민효는 고개를 살짝 숙이고 미소를 떠올렸다.그녀도 분명 황보동의 인품을 믿고 싶었던 게 틀림없었다.“이보게.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보는 것도 능력이지만 풍수지리사는 입만 번지르르하다고 되는 게 아니야. 진짜 실력이 좋아야 하는 거야.”“만약 자네가 입만 번지르르한 사기꾼이라면 남을 살리고 도와주는 건 어림도 없는 일이고 그 입 조심하지 않으면 목숨도 잃을 수가 있어.”황보동은 냉담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니까 내 일 방해하지 말고 어서 썩 꺼져!”말을 하면서 그는 손에 들고 있던 나침반을 내려놓고 붉은 종이를 꺼내 부적을 쓰려고 했다.“제 추측이 맞다면...”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대사님은 이 아줌마가 악습에 깊이 마음을 다쳤다고 판단해 이 부적을 들고 집으로 돌아가 차분하게 마음을 진정시키라고 할 겁니다.”나침반을 든 황보동의 손이 살짝 흔들렸다.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듯 하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
하현은 예의 바르게 인사를 했지만 황보동은 냉담한 눈빛으로 얼굴도 들지 않고 매몰차게 말했다.“우리 집복당은 시장에서 파는 허드레 물건이 아니야. 이천억! 다른 가격으로는 안 팔아!”“어때? 살 거야? 말 거야?”차갑고 매마른 말투였다.하현은 눈동자를 살짝 움츠렸다.상대는 분명 뭔가 못마땅한 구석이 있는 것 같았다.간민효는 여전히 눈을 가늘게 뜨고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황보대사님, 우리 장사꾼들은 신용을 중시합니다.”“정직이 천하를 이긴다는 말이 있습니다!”“제 기억이 맞다면 어제 분명 이백억에 하기로 한 것 같은데요?”“왜 갑자기 이천억이 된 거죠?”“전 이미 유명한 부동산 전문가를 고용해 이곳에 대한 평가를 꼼꼼히 진행했어요.”“이곳은 많아 봐야 백오십억 정도의 값어치가 있어요. 손볼 곳도 너무 많고요.”“어르신이라 아주 후하게 쳐서 이백억을 제시한 거예요.”“제 호의를 무시한 채 이렇게 얼토당토않는 가격을 제시하는 건 상도에 어긋나지 않습니까?”간민효는 돈이 많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함부로 버릴 만큼 많지는 않았다.특히 황보동은 그녀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도 않았다.“이백억은 어제 가격이고.”“이천억은 오늘 가격이야.”“집복당은 우리 황보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건물이야. 내가 원하는 만큼 받아야 팔 수 있어.”“당신이 아무리 부동산 전문가를 대동해 감정을 했다고 해도 나한테는 아무런 의미가 없어.”“물론 당신이 돈을 내지 않고 사고 싶다고 하면 그것도 방법이 없는 건 아니야.”“내 손녀만 치료해 준다면 공짜로도 줄 수도 있어.”황보동은 차가운 표정으로 입을 열면서 뭔가 잔뜩 기대에 찬 눈빛으로 들어온 아줌마에게 무엇 때문에 왔냐고 물었다.아줌마는 최근 밤마다 악몽을 꾸고 낮에는 숨이 턱턱 막혀서 생활하기 힘들다고 말했다.그녀의 설명을 들은 황보동은 나침반을 꺼내 빙빙 돌리며 계속 미간을 찌푸렸다.황보동이 자신에게 냉담한 태도를 보이자 간민효도 화가 나기
하현은 갑자기 머리가 저릿해져 와서 아무 대답도 하지 못했다.“흥!”난처해하는 하현의 모습을 보고 간민효는 차갑게 콧방귀를 뀌며 언짢은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집복당은 금정에서 이미 백 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한때 금정에서 가장 인기가 있었던 곳이었어.”“옛날에는 이곳에 드나드는 사람도 많았고 다들 어마어마한 재력과 지위를 가진 사람들이었지.”“내가 어릴 때는 태어나는 것 자체가 뭔가 운명적으로 정해져 있다고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안타깝게도 지금 집복당의 주인인 황보동은 한동안 가업을 이어받으려 하지 않고 과학의 길만 좇았지.”“그러다가 나중에 그의 아들이 사고를 당해 아무도 이 가업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게 되자 다시 돌아왔어.”“하지만 그의 풍수지리술은 그의 조상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형편없어서 결국 점점 몰락하게 되었지.”“10여 년 동안 이곳에 드나든 사람은 대부분이 이 근처 오래된 이웃뿐이야.”“첫째는 가까이 있으니까 오는 것이고 둘째는 가끔 좋은 날과 길일을 보는 데는 아주 뛰어난 풍수지리술이 필요한 건 아니었기 때문이야. 셋째는 아주 싸다는 매력 때문이지.”“다만 이렇게 되었어도 많은 사람들이 찾지는 않아서 아마 결국 사라질 거야.”“참, 반년 전 황보동의 유일한 손녀이자 집복당의 9대 계승자, 황보정이 갑자기 두 눈을 잃고 온몸에 힘이 빠졌지 뭐야.”“황보정은 집복당을 계승할 만큼 풍수지리사의 자질이 뛰어났어. 그래서 집복당의 영광을 재현할 가능성이 높았다고 해.”“금정 일부 명문가들도 관심을 가졌고.”“그런데 그녀가 공부를 마치고 출사를 했을 때 갑자기 실명하게 되었어. 온몸에 힘이 쭉 빠져서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아 봤지만 어떤 원인도 찾을 수가 없었지.”“집복당 일가가 여러 해 동안 천기를 누설한 결과라는 말도 있어.”“황보동도 풍수지리술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지만 여전히 원인을 찾을 수가 없었대.”“그래서 지금 황보동도 많이 낙담한 상태야.”“이 집복
”해결되었으면 됐어.”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세상 일에 대해 그는 그다지 흥미가 없었다.어떤 일에 개입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다.이런 사소한 일들은 소꿉놀이 같아서 정말로 안중에도 없는 것이다.“다른 무슨 일이 있어도 당신과의 일이 가장 중요하지. 다른 일은 아무것도 아니야.”간민효는 마음의 응어리가 풀린 듯 홀가분한 모습으로 하현에게 다가와 자연스럽게 팔짱을 끼며 말했다.“우리 금장 간 씨 가문의 다른 하찮은 일보다 당신과의 일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어차피 우린 연대한 사이잖아?”“참, 당신의 풍수관이 생기면 내가 첫 고객이 되고 싶어...”하현은 웃으며 말했다.“장난치지 마.”“내가 뭘 얼마나 잘 하는지 알지도 못하면서 그런 말을 해?”간민효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내가 말하고 싶은 건 인연, 인연이야...”“이 일은 당신만이 대답할 수 있는 문제 같은데...”하현은 간민효의 말을 듣고 눈꺼풀을 펄쩍거리며 얼굴빛이 붉어졌다.“자, 장난치지 말고 당신이 선택한 곳부터 둘러보자고.”하현은 궁색한 변명을 늘어놓았고 이 모습을 본 간민효는 빙긋 웃으며 하현의 팔짱을 끼고 집복당 안으로 들어갔다.차에 타고 있던 나박하는 고민에 빠진 모습이었다.이런 상황을 보고 당연히 설은아에게 바로 고자질해야 했다.하지만 문제는 그가 이미 하현의 사람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주인 격인 그를 배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나박하가 고민에 빠진 그 시각 하현 일행은 이미 집복당 안으로 들어갔다.집복당 안 넓은 부지 앞쪽에는 큰 홀이 있고 한쪽에는 서재가 있었으며 그 안에는 각종 풍수 설비가 갖춰져 있었다.뒤편에는 사랑채 몇 개와 커다란 마당이 있었다.다만 이곳은 겉으로 보기엔 그럴듯했지만 내부는 꽤나 낡아 보였고 바닥의 청석도 파손된 곳이 적지 않았다.종이로 칠한 창문에는 여기저기 구멍이 많아서 괴기스러운 영화를 찍거나 스릴러물을 촬영하기 딱이라는 생각마저
설은아의 말을 들은 하현은 잠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김탁우가 감쪽같은 위장으로 사람을 속이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설은아는 그의 과거에 대해 조금도 의심하지 않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자신이 뭐라고 말을 하면 그녀를 혼란스럽게 만들 뿐이다.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뭐, 어쨌든 우린 재혼할 거니까.”“남자들을 많이 접촉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왜? 다른 뛰어난 사람을 보면 내가 홀딱 빠져 버릴까 봐 걱정되어서 그래?”설은아는 웃는 듯 마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당신은 간민효랑 그렇게 붙어 다니면서 난 다른 남자랑 같이 있으면 안 된다는 거야?”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일이 이렇게 흘러 버렸는데 자신이 설명을 한들 무슨 소용 있겠는가?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설은아의 얼굴에 득의양양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녀는 실눈을 뜨고 웃으며 말했다.“자자, 질투하지 마.”“내가 한 번 본 남자한테 사랑에 빠질 여자로 보여?”“김탁우는 오늘 밤 나한테 사람을 소개해 주려고 온 것뿐이라고.”“그러니 당신도 다른 여자들과는 접촉하지 않는 게 좋을 거야.”“그렇지 않았다가 내가 알기라도 하면 당신 곤란해질 거야.”“어쨌든 우린 아직 이혼한 사이니까!”말을 마친 설은아는 하현을 향해 말로 주먹을 한 방 날리고 곧장 방으로 들어갔다.하현은 이 광경을 보고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그는 지금 누구도 두려운 사람이 없었다.모든 것을 다 장악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그러나 한 여자 앞에서는 자신도 스스로를 통제하지 않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게다가 이 여자는 지금 이 기회를 빌려 자신과 다른 여자 사이의 애매모호한 관계에 경고장까지 날리며 그를 압박했다.이런 생각이 들자 하현의 얼굴에 씁쓸한 표정이 떠올랐다.이튿날 아침 하현은 일어나서 설은아와 얘기라도 좀 나눠 보려고 했다.하지만 설은아는 어제 일은 다 잊은 듯 씨익 웃으며 일이 있다고 말한 뒤 홀연히 집을 나섰
소란은 여기서 끝났다.하현은 임수범과 이산들을 더 이상 압박할 생각이 없었다.그가 해야 할 일은 두 사람의 기세를 제압하는 것이었다.자신의 앞에 놓인 곤궁한 처지를 헤치고 운명을 바꿔 나가는 일은 오로지 나박하가 감당할 몫이었다.소란스러운 상황을 계속 지켜보고만 있던 왕인걸은 등줄기에 오싹한 느낌을 받았다.앞으로 무슨 일이 있어도 하현을 건드리지 말아야겠다고 또 한 번 다짐한 순간이었다.그렇지 않으면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을 수가 있다.소란이 끝난 후 왕인걸은 임수범 일행을 내쫓고 하현과 나박하의 테이블에 반찬 몇 가지를 더 제공해 준 뒤 나박하의 멤버십 기간을 1년 연장해 주었다.오늘 밤 그는 완벽하게 하현의 체면을 세워 주었다고 할 수 있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왕인걸의 어깨를 툭 건드릴 뿐이었다.간단한 동작이었지만 왕인걸의 마음은 충분히 흡족했다.식사가 끝나자 하현은 나박하에게 자신을 설 씨 집안으로 데려다 달라고 부탁했고 다음 날 다시 와서 적당한 가게를 찾는 데 좀 도와달라고 했다.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설은아는 아직 돌아와 있지 않았다.그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설은아의 성격상 중요한 일이 아니면 그다지 외출을 하지 않기 때문이다.하현은 미간을 살짝 찌푸리고 전화기를 들었다.그때 문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마세라티 한 대가 대문 앞에 멈춰 섰다.덩치가 크고 잘생긴 남자가 운전석에서 내려 설은아의 차 문을 멋스럽게 열어주며 에스코트했다.이 과정에서 그는 설은아와 어떤 신체 접촉도 없었지만 의미심장한 미소를 내걸었다.하현의 시선을 눈치챈 듯 남자는 그가 있는 곳을 향해 알 수 없는 미소를 보이며 돌아섰다.하현의 눈동자에는 매서운 겨울바람이 불기 시작했다.그때 갑자기 하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항성에서 원가령과 약혼을 하려다가 자신에게 뺨을 얻어맞은 김탁우였던 것이다!그의 얼굴을 보아하니 아마도 성형을 한 뒤 완전히 회복한 것 같았다!그리고 그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