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그들을 더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뒤돌아서 은아를 보며 부드럽게 말했다. “전화 걸고 스피커 모드로 바꿔. 날 믿어!”핸드폰이 울렸다.전화벨 소리에 시끌벅적했던 설 씨들은 이내 서로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았다. 이후, 그들은 곧 조용해졌다.항상 민혁이를 아끼던 설 씨 어르신도 그 순간만큼은 놀랍게도 망설였다. 투자금 600억이 그만큼 무척 중요했기 때문이다. 만약 그들에게 그 투자금이 없다면, 설씨 집안은 망할 수도 있다.“안녕하십니까? 하엔 그룹 대표님의 비서 이슬기입니다. 혹시 누구신지…” 잠시 후, 그들은 상냥하지만 차가운 목소리를 들었다.은아의 아름다운 얼굴은 걱정과 어색함으로 가득 찼다. 이어 은아는 말했다. “이 비서님, 안녕하세요. 저는 SL 그룹 설은아입니다. 저희 어제 만났는데…”“아! 설은아 씨군요!” 슬기의 말은 더더욱 차갑게 들렸다. “사실 저희 대표님께서 설 씨들을 불청객 리스트에 올렸습니다. 심지어 대표님께서는 설은아 씨가 완전히 파산하길 원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더 이상 저에게 전화하지 말아 주세요. 매우 불편하네요…”그 이야기를 듣자, 설 씨들은 모두, 특히 설 씨 어르신이 차가운 숨을 들이쉬었다. 어르신의 얼굴은 심하게 일그러졌다. 그 순간, 그는 감히 어떤 말도 하지 못했다.그 이유는 바로 하엔 그룹은 강남의 제일 큰 집안인 하씨 집안의 소유였기 때문이다. 그런 집안은 당연히 설씨 집안같이 권위가 덜 한 집안을 손쉽게 파산하게 만들 수 있었다.“이 비서님, 염치없는 거 압니다. 근데 제발 먼저 끊지는 말아주세요.” 이 순간, 은아는 아주 긴장했다. 한 번 밖에 만나지 않은 이 비서님은 매우 무서웠다!“하나만 물어볼게요. 우리는 어제 분명히 계약서에 서명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당신 회사는 왜 이렇게 가차 없는 거예요? 우리와의 협력을 취소했을 뿐만 아니라, 우리를 파산하게 하려고…” 은아가 파산 얘기를 꺼내자, 설씨 집안 사람들 모두 얼굴이 창백해졌다.만약 설 씨들이 파산한다면
SL 빌라에서.설씨 집안 사람들은 서로를 무력하게 쳐다보았다. 잠시 후, 많은 이들이 민혁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지금까지 진실은 전부 밝혀졌다.하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구석으로 물러났다. 이다음에 일어날 일은 그가 상관할 바 아니었다. 설 씨들이 멍청하지 않다면, 무엇을 해야 할 지 그들은 알고 있을 것이다.짝, 뺨을 내리치는 소리가 들려왔다.설 씨 어르신은 앞으로 나서더니 민혁을 향해 걸어갔다. 이어서 어르신은 곧바로 민혁의 뺨을 세게 때렸다. 하지만 그 순간 민혁은 얼굴을 만지는 것 밖에 할 수 없었고,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런 쓸모없는 놈! 정말 실망이야! 너를 후계자로 키운 게 아깝다. 너는….” 설 씨 어르신은 몸이 계속 떨릴 정도로 단단히 화가 났다.“할아버지, 이럴 의도는 없었어요. 저는 그냥 잠깐 프런트 여자 직원이랑 말을 나눈 것뿐이에요. 그 여자가 대표님의 여자친구일지 누가 알았겠어요?” 이 순간, 민혁은 깊이 후회했다.“그럼 못 써. 가서 해결해야지. 아직 상황을 바꿀 기회가 있어. 그냥 서서 아무것도 안 하느니 움직여야 해!” 설 씨 어르신의 표정이 변했다. 잠시 후, 어르신은 느닷없이 고개를 들더니 은아를 향해 미소 지었다. 그리고 그는 그녀에게 말했다. “은아야, 아까 이 비서가 너한테 꽤 친절하게 대하더라. 네가 내일 하엔 그룹에 가서 용서를 빌면 어떻겠니?”“말도 안 돼요!”은아가 뭐라 말하기도 전에, 사람들은 또 다른 소리를 들었다.그들은 뒤돌아서더니 이내 혐오감으로 가득 찼다. ‘이 불운 덩어리는 왜 또 온 거야? 여기가 데릴사위가 의견을 낼 자리인가?’“하현, 네가 뭔 상관이야? 너는 그냥 데릴사위야. 지독하게도 쓸모없어!” 누군가 하현을 꾸짖었다.“어딘가에서 영상 하나를 찾아와 증거로 썼다고 우리가 네 말을 들을 거라고 착각하지 마. 우리는 쓰잘머리 없는 놈의 의견 따위는 필요 없어!”“맞아. 할아버지는 은아한테 말하고 있잖아. 네가 무슨 상관인데?”“왜 제가 상관할
“하현, 너는 일말의 자존심도 없어? 네 가족한테 빌붙을 뿐이잖아. 어떻게 네가 집안의 어른인 척을 해? 여기가 정말 네가 의견을 낼 자리라고 생각해?” 동수는 앞으로 나서더니 하현을 차갑게 노려보았다.하현이 많은 사람 앞에서 그의 사랑하는 아들을 망신시켰기 때문이다. 그 순간, 동수는 하현이 너무나도 싫었다.“은아 대신 말하고 싶어? 은아가 그래도 된대? 얘가 그래도 된다고 해도 네 장인이랑 장모가 아직 말을 안 했어. 네가 무슨 자격으로 여기서 떠들어? 너는 서열이랑 예절이 뭔지도 몰라. 꺼져!” 동수는 경멸의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아주버님, 하현이 한 말이 맞아요. 이번에 은아는 안 갈 거예요!” 희정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제수씨… 뭐라고 했어요?” 동수는 손가락을 뻗더니 희정을 가리켰다. 그는 몹시 화가 나 이제 손가락까지 떨고 있었다.“아주버님이랑 저는요? 아주버님은 은아한테 누명을 씌우고 해명하지도 않았잖아요. 심지어 우리를 설씨 집안에서 쫓아내야 한다고 했어요. 근데 지금 우리 딸만이 설 씨들을 살릴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우리한테 용서를 구하고 싶지도 않아 하고, 놀랍게도 이렇게 건방지게 굴다니요. 잊었어요? 우리 설씨 집안이 지금 왜 이 모양이 됐는지? 다 아주버님의 그 사랑하는 아들 때문이잖아요!”희정은 가끔 성질이 고약했다. 은아의 엄마는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그날, 희정은 분노로 가득 차 화풀이할 다른 곳이 마땅히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녀는 드디어 화풀이할 기회를 찾았다.하현은 헷갈려 희정을 힐끗 쳐다보았다. 희정이 자신의 편을 들어 그를 대변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동수는 잠시 말문이 막혔다. 따지고 보면 희정이 한 말은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동수가 말을 잇기도 전에, 설 씨 어르신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리고 어르신은 말했다. “희정아, 잘못을 한 건 민혁이 맞아. 하지만 우리는 같은 가족이고 한배에 탔어. 만약 설씨 집안이 망한다면, 네가 과연 무사할까?”“설씨 집
희정은 잠시 고민하더니, 이는 아주 논리적인 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그것이 설씨 집안을 파산하게 한 이유라면, 희정은 즐거운 삶을 살 수 없게 될 것이다.“알았어요.” 잠깐 생각한 후, 희정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안 돼요!” 결국 옆에 서 있던 하현이 또다시 입을 열었다.그 순간, 희정을 포함한 설씨 집안 사람들 모두 하현을 매섭게 노려보았다.설 씨들은 의논을 잘 마무리했다. ‘왜 이 데릴사위는 또 와서 난리를 피우는 거야? 조금의 자각심도 없나?’희정은 차갑게 말했다. “하현, 나가! 여기는 네가 의견을 낼 자리가 아니야!”“장모님, 저는 은아 대신 말하는 겁니다! 은아에게 쓰인 누명을 벗기고 싶어요! 처음에 하엔 그룹과 계약을 진행한 사람은 은아예요. 그런데 설 씨들은 그걸 전혀 신경 쓰지 않았고, 곧바로 담당자를 바꿨어요. 그래서 지금 기업 전체가 망했고, 설 씨들은 은아가 가서 직접 해결하기를 바라고 있어요. 이게 대체 무슨 뜻인가요?”하현은 차갑게 말했다. “은아에게 해명을 해야 하지 않나요? 설마 은아가 가서 다시 투자를 받아오면 또 담당자를 바꾸는 건 아니겠죠? 은아가 무슨 당신 심부름하는 여자아이인가요?”“하현, 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아나요? 어딜 감히 할아버지를 의심해요!” 드디어 민혁에게 기회가 찾아왔고, 그는 화난 채 하현에게 소리치며 꾸짖었다. 그러나 사실 민혁은 그럴 생각이 있었다. 설 씨 어르신은 민혁을 가장 아꼈기에, 만약 은아가 투자금을 회수한다면 그는 다시 담당자가 될 것이다.이 순간, 희정은 머릿속에 무언가를 떠올리고 있었다. 사실 그녀는 아까 그럴 가능성을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하현, 너는 여기서 말할 권리가 없어. 지금 당장 나가는 게 좋을 거야. 그렇지 않으면 너한테 무례하게 대했다고 탓하지 마!” 동수는 단호하게 말했다. 그는 하현이 그렇게 행동한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 순간 동수는 매우 겁먹었다.하현은 그들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는 설 씨 어르신에
은아는 투자금을 회수하기만 하면 사장으로 임명된다. 그 소식은 설씨 집안 전체에 퍼졌다.많은 이들이 놀랐다. 하지만 그들은 투자금이 없으면 설 씨들이 파산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별말을 안 했다.그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계속 화려하고 사치스러운 삶을 살 수 있는 한 누가 권력을 쥐든 상관 안 했다.민혁의 가족은 아빠와 아들이 마주 앉아 무력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민혁은 위협적으로 보였다. 이어 그는 말했다. “아빠, 삼촌의 가족들은 전부 아무것도 아닌 그저 머저리들이야. 모두 외부인 편을 드는 배은망덕한 사람들이야. 그냥 서서 하현이 날 모욕한 모습을 지켜봤을 뿐만 아니라, 무슨 한심한 투자 때문에 사장 자리를 넘봤어. 우리를 최대로 괴롭히고 있잖아!”동수는 집중하고 말했다. “설 씨 어르신께서 한가지는 옳으셨어. 그 투자는 우리한테 굉장히 의미 있고 중요한 거야. 그리고 우리는 하엔 그룹이랑 관계를 회복할 방법을 찾아야 해. 투자만 받을 수 있다면, 그 자리를 넘겨주는 게 뭐 어때서?”“하지만…” 민혁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렇다면 저 여자들이 우위를 점하고 권력을 쥐게 해주는 거 아니야?”“권력을 쥐면 뭐가 어때서? 잊지 마. 저 사람들은 뭘 하든 간에 아무것도 아닌 그저 머저리야. 여자가 우리 설씨 집안을 이끄는 게 말이 돼? 어르신이 그런 약속을 하신 이유는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여 있어서 그런 거야. 우리가 그 투자금을 얻기만 하면, 어르신께서 분명 최후의 결정을 하실 거야. 어르신이 진짜 그렇게 멍청한 줄 알아? 그런 중요한 자리를 여자한테 넘기겠어?”“그래도 내가 잘못을 책임지고 물러날게. 지금 시기에 처신 똑바로 해야 한다는 거 기억해. 사장 자리를 포기해도 좋아. 근데 이 프로젝트의 담당자 자리를 꼭 차지해야 해. 그 프로젝트를 차지하기만 한다면, 설 씨들은 반드시 우리의 손아귀에 쥐게 될 거야.” 동수는 차갑게 말했다.그 말을 듣자 민혁은 기뻐했다. 그리고 민혁은 말했다. “그럼 우리가 그 600억 원
겨울의 화장은 아주 정교했고, 그날 겨울은 아주 아름다워 보였다. 처음에 석진은 그녀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나 겨울이 선글라스를 벗자, 석진은 이내 뼛속까지 흔들렸다. 그의 얼굴도 창백해졌다.겨울은 석진이 전화번호를 따기 실패한 여신님이었다. 그녀는 하엔 그룹에서 부장으로 일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포르쉐도 타고 다녔다. 반면 석진은 거기서 고작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었다…석진은 매우 놀라 침을 아주 조금만 삼키는 것조차 버거워했다.두 사람 옆에 서 있던 하현은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그는 겨울에게 걸어가서 웃으며 말했다. “남아있는 주차 공간이 꽤 좁아. 내 자리에 주차할래?”겨울은 충격 받았다. ‘대표님이 오셔서 나한테 말을 걸었어!”겨울은 냉큼 문을 열고 차에서 내렸다. 그리고 그녀는 말했다. “괜찮습니다. 방금 주차하셨잖아요.”이 말을 하며 겨울은 그 주차 공간을 쳐다보았다. 그녀는 곧 말문이 막혔다. ‘우리 대표님은 참 검소하셔. 이렇게나 넓은 주차 자리인데 거기에 전기 자전거를 주차하시다니…”“그럼 너는…” 하현이 말했다.“저는 경비원에게 대신 주차해달라고 할게요.” 겨울은 재빨리 말했다.“알았어. 나는 지금 사무실로 올라갈게.” 이후, 하현은 석진을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 그는 뒤돌아서 떠났다.석진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겨울이 자신을 알아보지 않기를 바랐다. 겨울은 그다지 신경을 안 쓰고 그에게 열쇠를 넘겼다. 그녀는 말했다. “주차한 다음에 그냥 프런트에 열쇠를 맡기세요. 그리고…”말을 마치기 전에, 겨울이 오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잠시 머뭇거리더니 말했다. “우석진… 과대… 왜 우리 회사에서 경비원으로 일하고 있어?”석진의 표정이 몹시 험악해졌다. 그는 이어서 말했다. “뭐 좀 체험하려고 왔어…”“그래?” 겨울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녀는 석진에 대해 큰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어쨌든 간에 석진은 겨울의 오래된 동기였으니, 그녀는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보안팀장이 며칠 전에 대표님한테
겨울은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대표님께서 최근에 손님을 만날 시간이 없을 거라고 하셨어요. 하지만 SL 그룹 사건에 관해서는 대표님께서 순전히 제게 맡기셨습니다. 그래서 요청사항이 있으시면 저에게 바로 말씀해주세요.”은아는 서류 더미를 꺼내 겨울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 “그럼 솔직하게 말씀드릴게요. 김 부장님, SL 그룹 쇼핑몰 프로젝트는 분명 특출한 자산입니다. 이전에 저희를 두 번 거절하셨지만, 저희는 여전히 투자를 진행하고 싶습니다."겨울은 서류를 찬찬히 읽었다. 이어서 그녀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설은아 씨, 직접 방문하셨으니 어렵고 곤란하게 하지는 않을게요. 저희는 SL 그룹에 투자할 수 있습니다…”“정말요?” 은아는 헷갈렸다. 그녀는 난처한 입장에 놓일 줄 알았지, 일이 그렇게 쉽게 풀릴지는 상상도 못 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우선 제 이야기를 들어보세요.” 겨울이 말했다. “그런데 이전에 하엔 그룹에 결례를 범하셨으니 이번에 저희는 투자금으로 300억 원만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동의하신 저희가 받을 수익은 10%로 늘리고 싶습니다. 이건 저희가 다시 작성한 계약서입니다. 가져가셔서 읽어 보셔도 됩니다. 아무 문제없다면 서명하시고 돌려주시면 돼요. 물론, SL 그룹 측에서 계약 조건이 너무하다 싶으시면 저희와 협업을 안 하셔도 됩니다. 어쨌거나 이 프로젝트에 하엔 그룹이 필요한 건 아니잖아요.”은아는 진지하게 계약서를 읽어보았다. 그러나 그녀는 이번에 계약서에 적힌 조항들이 지난번 집에 가지고 간 것보다도 더 혹독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전 계약에서 가장 많은 이득을 볼 사람들은 설 씨들이었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달랐다. 설 씨들은 많은 이득을 누리지 못하고, 조금의 손실을 겪을지도 모른다.그렇지만 은아는 더 말할 엄두를 못 냈다. 이번에 계약을 성사시킬 수 있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상당히 운이 좋았다고 할 수 있다.겨울은 급할 게 없었다. 이어서 그녀는 말했다. “설은아 씨, 그냥 계약서를
“알겠습니다, 대표님!” 슬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와 동시에 그녀는 설 씨들을 불쌍하게 여겼다. 어떻게 대표님의 부인을 괴롭힐 수가 있나? 설 씨들은 정말 얌전하게 구는 법을 몰랐다.“그리고 백범이한테 오늘 오후에 와서 나랑 만나자고 전해줘요.” 순간, 하현은 누군가가 떠올랐다.슬기는 깜짝 놀랐다. 백범은 서울에서 활동하는 폭력배였고, 그는 그 일을 하면서 잘살고 있었다. 백범은 하엔 그룹과 어떠한 연락도 한 적이 없다. 그런데 대표님은 왜…“오라고 전해줘요.” 하현은 한 번 더 말했다.슬기는 머릿속에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도 그녀는 깍듯하게 고개를 끄덕이고 사무실을 나갔다. 어쨌거나 무슨 일이 있든 하엔 그룹에서는 하현의 모든 지시를 따라야 한다. 슬기는 그저 업무를 충실히 수행하면 되고, 이유를 물을 필요가 없었다.…백범이 도착했다. 하지만 그는 슬기의 예상을 뛰어넘었다. 백범은 원래 서울에서 다소 무섭고 힘 있는 사람이었다. 백범은 슬기의 전화를 받은 후 30분도 안 걸려 하엔 그룹에 도착했다. 그런 다음 그는 거기서 공손하게 기다렸다. 가장 중요한 것은 시간이 아직 안 됐을 때 백범은 감히 하현의 사무실로 들어가지 못했다.백범은 오후 3시까지 기다렸다. 그러고 나서 그는 슬기의 안내 하에 하현의 사무실로 갔다. 백범은 불안한 마음으로 사무실 안에 들어갔다. 그는 하현을 보자 두 손을 양옆에 놔두고 고개를 들지 못했다.이후, 하현은 슬기를 향해 손을 흔들어 그녀에게 나가라고 했다. 그러고 나서야 하현은 직접 백범에게 물 한 잔을 부어줬다. 그리고 그는 차분하게 말했다. “편하게 앉아. 우린 친구잖아. 뭘 그렇게 공손하게 굴어? 네 부하한테 이런 모습을 보이면 앞으로 어떻게 대장 노릇을 하려고?”“도련님, 제가 어딜 감히 도련님 앞에서 대장 행세를 하겠습니까? 저는 한낱 부하입니다.” 백범은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런 다음 그는 양손에 물컵을 쥐고 말했다. “그날 설씨 집안에서 일어난 일은 의도한 게 아닙니다.
하현 일행이 집복당으로 돌아왔을 때 문 앞에는 이미 십여 대의 관용차가 서 있었다.이 차들은 경찰서 소속인 것도 있었고 주택건설부 소속인 것도 있었고 동사무소 소속인 것도 있었다.말하자면 정부 차원의 합동 집행부가 다 모인 것이다.수십 명의 제복을 입은 남녀들이 집복당을 둘러싸고 저마다 삿대질을 하며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였다.채굴기를 몰고 와서 위세를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맨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은 대머리 남자였고 한 사람은 키가 좀 크고 다른 한 사람은 좀 뚱뚱했다.키가 큰 사람은 주택건설부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며 가슴에 새겨진 명패에는 이홍파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뚱뚱한 사람은 경찰서의 황택호 형사였다.두 사람은 관청 동기로 알려져 있으며 항상 함께 출동해 각종 불법 건축물과 불법 매장을 소탕했다.오늘 그들의 목표는 바로 집복당이었다.고명원은 앞에 나서진 않았지만 부하들을 시켜 집복당 문을 막도록 하여 이홍파와 황택호 두 사람이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합동 단속반은 기세가 등등해서 뭐라도 하나 걸리기만 한다면 내부 인테리어 전부를 깡그리 부술 태세였다.이렇게 되면 일이 더 커진다.고명원은 연합 단속반에게 미움을 사는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오직 하현의 집복당이 잘못되어 뭐라고 설명할 말이 없게 될까 그것이 두려웠다.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는 왕인걸도 와 있었다.그는 집복당에 와서 아첨이라도 좀 해 볼까 했는데 마침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하현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왕인걸과 고명원이 뭐라고 설명하려고 했지만 하현은 얼른 손을 흔들며 그들을 제지했다.하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나박하가 합동 단속반에서 나온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인사를 건넸다.“아이고, 이거 이홍파 팀장님과 황택호 형사님 아닙니까?”“무슨 바람이 불어서 두 분이 함께 우리 집복당엘 다 오셨습니까?”“이 누추한 곳에 두 분이 자리를 빛내주시니 영광입니다.”말을 하면서 나박하
”전부?”이 말을 듣고 강우금의 얼굴에는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여자한테 빌붙어 살면서 꼴에 자기가 재벌 2세인 줄 아나?”“정말 요즘 사람들은 자기 분수를 너무 몰라!”“전부는 고사하고 그의 전 재산을 다 부어도 소남가인 옷 한 벌 못 살 거야. 아니, 양말 한 켤레라도 산다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지겠어!”금정의 스타트업 사장이나 재벌 2세들도 소남가인 브랜드의 옷을 함부로 사지 못한다.그런데 한낱 한량에 불가한 하현이 돈이 어디 있어서 저런 비싼 옷을 산단 말인가?매장의 직원들과 손님들이 좋은 구경거리를 보려고 시선을 집중했다.소남가인 직원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살짝 망설였지만 결국 황보정에게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었다.곧 황보정은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옷을 모두 골랐다.수십 개의 옷 가방들이 순식간에 매장에 늘어섰다.이게 다 얼마인가?몇십억은 되어 보였다!“삑!”하현은 별일 아닌 듯 단번에 카드를 긁었다.그러자 승인되었다는 소리가 나면서 영수증이 좌르륵 쏟아져 나왔다.“어머?!”순간 소남가인 매장 안팎에선 수군거리는 소리로 소란스러워졌다.주변에 있던 직원들과 손님들은 하현을 쳐다보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황보정에게는 질투와 부러움의 시선들이 쏟아졌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하현이 저 많은 옷을 한 번에 결제하다니!그야말로 거부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 이럴 수 없어! 절대로!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강우금과 그녀의 매장 직원들은 모두 넋이 나간 듯 멍해졌다.뒤늦은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와 그녀들을 단번에 쓰러뜨렸다.그들은 도저히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방금까지 그들은 입만 열면 하현을 비난하는 말을 퍼부었다.노점상에나 가서 옷을 사라고 쫓아냈다.그런데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들의 얼굴이 화끈화끈거렸다.역시 가장 난처해하는 사람은 강우금이었다.그녀는 도저히 믿기지
강우금의 말을 들은 손님들은 하나같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옷도 안 사고 민폐만 끼치다니!덜떨어진 저런 사람이 이런 가게를 드나들 수는 없다!정말 재수없어!황보정은 슬쩍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강우금, 당신 같은 점장이 어디 있어요?”“정말로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우할 거예요?”“우리가 정말로 못 살 거라고 생각해요?”“이런 식으로?”강우금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황보정,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에요?”“내가 일부러 이러는 거예요? 당신이 그럴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요?”“난 금정 쇼핑몰 판매율 10위 안에 드는 사람이에요! 연봉이 일억이 넘는다고요!”“흥! 그런데 당신은 뭐죠? 하얗게 세탁한 싸구려 티셔츠 한 장 입고 와서 무슨 부자 행세를 하고 그래요?”“그리고 정말로 옷을 사고 싶으면 다른 데 가서 사세요! 여긴 당신이 살 수 있는 옷이 없어요!”말을 하면서 강우금은 바깥을 가리키며 냉소를 흘렸다.“1킬로미터 정도 나가면 많은 노점상들이 있을 거예요!”“거기 가면 한 벌에 몇 천 원짜리가 널렸을 거라고요!”“그래도 당신이 우리 가게에서 옷을 사고 싶다면 내가 특별히 기회를 주겠어요. 당신이 그래도 집복당 아가씨니만큼 이월된 재고 상품들 중 쓸 만한 것을 권해 줄 수는 있어요.”“하지만 문제는 살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아무리 이월 상품이라고 해도 값이란 게 있는 건데 당신이 살 수 있겠어요?”하현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손을 뿌리치며 물건을 카운터에 올렸다.그리고 나서 황보정의 손을 잡고 말했다.“다른 데 가서 사자고!”황보정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바로 하현을 따라 가게를 나섰다.강우금은 이 광경을 보고 냉소적인 목소리로 직원들을 불렀다.“그들이 만진 물건들과 지나간 자리 얼른 소독하고 방향제 뿌려!”“저런 싸구려 인간들이 우리 가게를 더렵히게 놔두면 안 되지!”“뭐라고?”“다른 가게에 가서 산다고? 흥! 아무리 둘러
강우금의 말을 듣고 갑자기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찾은 듯 주변에서 쇼핑하던 사람들이 하현에게 눈을 힐끔거렸다.남자가 돈을 벌어서 가족들 부양할 생각은 하지 않고 부잣집 여자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다니?!정말 염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남자야!“강우금?”황보정은 순간 누군가가 하현을 조롱하는 소리를 듣고 낯빛을 흐리며 말했다.“우리는 여기 옷을 사러 온 것이지 당신의 비아냥 따위를 들으러 온 게 아니에요!”“이런 식으로 손님을 대한다면 당장 당신 회사에 불만을 제기할 거예요!”황보정에게 있어 자신이 모욕당하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하지만 하현이 모욕당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불만을 제기한다고요?” 강우금은 어이없다는 듯 입꼬리를 들썩였다.“황보정, 머리가 어떻게 된 거예요?”“내가 금정 쇼핑몰에서 판매율 10위 안에 드는 점장이라는 걸 몰라서 그래요?”“불만을 제기한다고요? 그게 무슨 소용이라도 있을 것 같아요?”“문제가 뭔지 알아요? 여자한테 빌붙어서 사는 이런 남자들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흥! 당신이 어떻게 불만을 제기하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볼게요!”“난 당신을 위해서 이러는 거예요!”“아마 당신이 이 사실을 안다면 나한테 불만을 제기하기는커녕 잘했다고 상이라도 줄 거예요!”“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집복당은 이제 한물간 거 아니에요? 내 앞에서 이럴 자격이나 돼요?”“이 옷, 정말 살 수 있어요?”이를 듣던 몇몇 손님들은 더욱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황보정 일행을 쳐다보았다.그녀들은 하현이 여자한테 빌붙어 있는 것뿐만 아니라 몰락해 가는 집안의 여자의 고혈을 쪽쪽 빨아먹고 있을 줄은 몰랐다.아마 오늘 그의 작전은 십중팔구 실패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은 강우금 같은 여자와 쓸데없는 입씨름을 하며 기분 상하기 싫어서 황보정의 손을 붙잡고 그녀가 마음에 들어 했던 옷을 집어 냉랭하게 말했다.“이 옷으로 합시다. 다른 건 나중에 사죠.”강우금은 하현의 손에
”손님, 아무렇게나 만지면 안 됩니다. 이 옷은 너무 비싸서 더러워지면 팔 수가 없거든요!”황보정이 옷을 꺼내 보려고 손을 뻗었을 때 점장으로 보이는 거만한 여자가 하이힐을 앞세우며 다가와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황보정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정신을 번쩍 차리며 말했다.“아, 죄송합니다. 저 옷 사고 싶은데 좀 꺼내 봐 주세요.”“꺼내 봐 달라고요?”점장은 황보정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깨끗하게 세탁한 셔츠에 눈길을 모으며 말했다.“정말 살 수 있어요? 꺼내 봐 달라고요?!”“그게 무슨 말이에요?”“우리 황보정이 집복당 손녀인 걸 몰라요?!”황보정 곁에서 가방을 들고 있던 나박하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버럭 했다.“집복당 손녀?”점장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얼굴 가득 미소를 떠올렸다.부자가 망해도 삼 년은 간다고 했던가!비록 집복당 명성이 예전만 못했지만 점장은 함부로 황보정을 건드릴 용기는 없었다.점장의 목소리를 듣고 하현은 약간 귀에 익다는 생각이 들어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다.그는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진홍민의 절친 중 한 명인 게 분명했다.예전에 진홍헌이 대대적으로 고백했을 때도 이 여자는 현장에 있었다.하현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녀의 가슴에 ‘강우금’이라는 명찰이 붙어 있었다.하지만 이 여자는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것을 눈치채고 하현도 더는 쓸데없는 말씨름을 하기 싫어 아예 입을 다물었다.“손님, 어떤 색이 마음에 드시는데요?”“우리 매장에는 다양한 색상들이 있어서 선택할 수 있어요.”강우금은 미소를 지으며 한껏 판매에 열을 올렸다.황보정은 강우금의 말을 듣고 돌아서서 하현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하현, 여기 와서 좀 봐줘요. 어떤 색이 더 예쁜지.”“예?”“하현?!”강우금은 그제야 하현을 알아보았고 처음에는 살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이내 냉소 가득한 얼굴을 보였다.비록 그날 하현이 진홍헌의 청혼식에서 크게 한판 벌였지만 나중에
황보정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현은 앞에 놓인 다과를 말끔하게 먹은 뒤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아. 그럼 이 일은 이렇게 잘 마무리되었으니 나중에 쇼핑몰에 가서 옷이나 몇 벌 사자고!”“앞으로 내 대변인이 될 사람이니 말끔하게 보여야지.”“우리가 하려는 프로젝트는 대단히 수준 높은 프로젝트거든. 당신이 앞으로 접촉할 사람들은 모두 부유하거나 지위가 높거나 하니까 절대 무시당하지 않도록 준비를 단단히 해야지!”하현은 오늘의 이 결정을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내린 것이 아니었다.현재 임단은 이미 금정 화원에 있는 쓰레기 매립장 인수 일을 착수했다.비록 세간에서는 임단이 머리가 나쁘다는 소문이 돌고 있지만 하현은 금정 화원의 유적지가 발굴되는 순간 프로젝트 전체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 것이라는 걸 확신했다.이러한 전제하에 황보정이 자신의 대변인이 되어 일하겠다는데 멋진 옷 몇 벌 사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황보정이 비록 풍수사로서 인정은 받았지만 방값이 꽤나 비쌌고 수입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이전에 저축해 두었던 돈은 의사를 구하는 데 거의 써 버렸기 때문에 정말로 수중에 남은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황보정은 한참 예쁘게 꾸밀 나이였지만 제대로 된 번듯한 옷도 몇 벌 없었다.하현은 이 기회를 빌어 황보정에게 옷도 몇 벌 장만해 주고 살아갈 발판도 마련해 주고 싶었다.황보정은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나지막이 말했다.“하현, 아직 입을 만한 옷이 있어요. 살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하는데요...”“왜? 안 사게?”옆에 있던 나박하는 차를 마시며 껄껄 웃었다.“하현이 옷을 사 준다고 하잖아!”“우리가 말끔하게 차려입지 않으면 하현의 체면이 깎여!”“이제 하현은 금정 제일의 풍수지리사로 불리게 되었어!”“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너무 허름하게 입으면 손님들이 우리 대사님의 실력을 의심할 거야!”“그러니 사양하지 마. 잠시 후에 우
다음날 아침 일찍 하현은 방을 나섰다.설은아의 방문을 지나칠 때 그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두 사람이 또다시 다투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거실에 와 보니 최희정은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하현이 지나가자 그녀는 눈을 흘기며 슬쩍 곁눈질할 뿐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았다.미간에는 그를 향한 마뜩잖은 기색이 가득했다.최희정은 어젯밤 설은아와 하현의 말다툼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그의 뻔뻔함과 노여움을 눈빛으로 드러낸 것이다.하현도 최희정을 힐끗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문을 나서려는 순간 최희정이 우다금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소리를 들었다.하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최희정이 우다금과 연락을 하고 있다고?지난번 저지른 일로 우다금은 따끔하게 혼이 나야 했었다.하지만 그다지 큰일이 아니라서 하현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차를 타고 집복당으로 갔다.“하현, 아침은 먹었어요?”집복당 입구에 도착해 보니 언제 일어났는지 벌써 황보정이 나와 있었다.그녀의 눈은 이미 완전히 회복되었고 이제는 집복당 일을 하기 시작했다.하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황보정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다과를 좀 만들었는데 한번 먹어 볼래요?”황보정은 오늘 짧은 잔꽃 무늬 치마를 입고 긴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고운 자태였고 걸을 때 슬쩍슬쩍 보이는 하얀 다리는 눈부시게 빛났다.특히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하현은 싱그러운 젊은의 기운을 물씬 느꼈다.아찔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그가 말했다.“그럼 감사히 먹어 볼게.”“감사할 사람은 나예요. 내 눈을 낫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몸도 정상으로 돌려놓았잖아요!”황보정은 동작이 재빨랐다.“안타깝게도 할아버지는 내가 남들 관상을 봐주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세요. 내가 박명해서 다른 사람들의 관상을 계속 봐준다면 결국 내가 천기를 누설할 거라고 하셨어요.”“이번엔 다행히 당신을 만나서 살았지만 다
”풍수?”“하 대사?”“풍수관?”설은아는 명함을 움켜쥐고 노기 어린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제대로 된 일을 하지는 않고 강호의 사기꾼이 되겠다는 거야?”“내가 당신을 이렇게나 오래 알고 지냈는데 당신이 풍수지리술을 안다는 걸 어떻게 몰랐을까?”“풍수를 보는 일이 얼마나 진지하고 엄숙한 일인지 알아?”“몇 마디 말로 사람들을 속이며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니야!”“자칫 잘못하다간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기도 하는 거야! 알기나 해?”하현의 명함에 적힌 직함을 보면서 설은아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집복당, 아홉 대째 내려오는 대단한 실력, 주역 대사...하현은 자신의 본업에는 조금도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남원이나, 무성, 대구에서는 하현이 정말로 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금정에 와서 하현과 간민효가 친밀하게 지내더니 지금 눈앞에 내놓은 명함이라는 것을 보고 설은아는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이전에 하현이 보여준 모든 것은 자신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닐까?지난 모든 것은 하현이 설 씨 가문을 설득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허상 같은 것이었다!그리고 이 허상을 만든 장본인은 하현이 밖에서 만나고 있는 간민효임이 틀림없다!금정 간 씨 가문의 간민효는 이 모든 것을 해낼 능력이 있는 여자이다.바닥에 널브러진 사진들이 그것들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증거들이다!분노한 설은아를 보며 하현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우선, 그런 눈빛으로 날 쳐다볼 필요가 없어.”“난 당신한테 말할 수 있어. 나와 간민효는 금정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처음 알게 되었어.”“과거의 모든 일은 그녀와 아무 상관이 없어.”“둘째, 그녀와 난 그저 평범한 친구일 뿐이야. 당신한테 하나하나 말하긴 어렵지만 지금 함께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있어.”“셋째, 내가 풍수관을 연 것은 나름의 목적이 있어서야. 내가 개업을 할 수 있다는 건 나 스스로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 있다는 걸 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만약 내가 간민효랑 그냥 평범한 친구 사이라고 한다면 당신 믿겠어?”설은아의 두 눈에 찬서리가 내려앉았다.“그럼 내가 김탁우랑 그냥 친구 사이일 뿐이라고 한다면 당신 믿겠어?”“그거랑 이거랑은 달라.”설은아의 말을 듣자마자 하현이 되받아쳤다.“뭐가 달라?”설은아도 지지 않고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긴장감을 올렸다.“김탁우가 이 사진을 주었을 때 우리 부부간의 감정을 해칠 수 있다며 약간 망설였었어.”“하지만 지금 보니 이 사진들이 아니었어도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더 이상 훼손될 감정도 없는 것 같아!”“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 둘 게 있어!”“내 차는 정비한다고 당신 비서 이시운이 가져갔어.”“그래서 일이 끝난 후 김탁우가 마침 가는 길에 날 데려다준 것뿐이야!”“나와 그 사람은 결백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고! 누구와는 정말 다르지!”하현은 설은아의 말에 다소 화가 치밀어 올라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난 당신을 믿어. 하지만 김탁우는 믿지 않아.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 설마 당신이 그것을 눈치 못 챌 리가 없을 텐데?”“하현, 함부로 말하지 마! 김탁우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해!”설은아는 얼굴 가득 노기를 띠며 말했다.“내가 이 사진들을 당신 앞에 내놓은 것은 적어도 당신이 조금이라도 반성하길 바래서였어!”“앞으로 이 들개 같은 여자랑 엮이지 말라고 말이야!”“하지만 당신은 결국 나의 호의는 전혀 헤아리지도 못하고 이런 무의미한 질투까지 하고 있어!”“만약 당신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우리의 재혼에 대해 엄마한테 잘 말할 수 있는지 그런 거나 궁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들이 조건을 내걸었잖아?”“당신을 대구 정 씨 가문 수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그래서 나도 그쪽으로 노력하고 있어...”“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