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센터 밖으로 나오자 설유아는 그제서야 반응을 보였다. 신기한 듯 하현을 보며 말했다.“형부, 나 집 생긴 거예요?”“이제 나랑 네 언니랑 살려고. 꼭대기 층은 많이 넓지 않아? 너도 거기서 살아.”설유아는 흥분하며 말했다.“그럼 형부, 나 기숙사에 안 살아도 돼? 기숙사가 너무 작아서 거기 살기 싫거든……”사실 그녀는 이렇게 하면 매일 형부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그와 언니가 부부생활을 하지 못하게 막을 생각이었다. 하현은 이 계집애가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집은 네 꺼야. 네가 오고 싶으면 오는 거지. 나는 관여 안 해.”설유아는 방긋 웃는 얼굴로 국경절 연휴가 지나면 바로 이사오기로 했다. ……곧, 3일째가 되었다. 이 날은 설은아의 생일이기도 하다. 설재석과 희정 두 사람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설은아의 생일을 챙겼다. 요 며칠 동안 그들도 비밀스럽게 여러 가지 준비를 했다. 이른 아침, 하현은 설은아에게 생일 파티를 준비했다고 말하는 것을 깜빡 했다.희정이 말했다. “은아야! 오늘 누가 널 위해 네 생일 파티를 준비했어!”“이따가 분명 깜짝 놀랄 거야!”설재석도 웃으며 말했다.“장소는 W호텔이야!” 두 사람이 신비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자 설은아는 참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W호텔? 거긴 한 끼 식사에 몇 백만 원 정도야. 너무 비싸. 내 생일엔 그냥 집에서 아무거나 한끼 먹으면 돼.”설재석은 웃으며 말했다.“은아야! 이건 우리가 정한 게 아니야. 누군가 정성껏 준비한 거야.”“게다가 W호텔 최고 럭셔리한 세트래. 한 테이블 당 2천 몇 백만 원 정도 든대!이 소식을 듣자 설은아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설마 이 사람인가!희정은 설은아의 동작을 보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걱정 마. 그 사람은 아니야. 그 사람은 너 데리고 가서 밥을 먹고 싶어도 그럴만한 능력이
문을 열어준 설은아는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뜻밖에도 왕태민이 손에 꽃을 들고 자기 집에 찾아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설재석과 희정 두 사람은 사위를 쳐다 보는 장인 장모의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저씨 아주머니, 지난번 일은 오해였어요. 크게 개의치 마시기를 바랍니다!”“오늘 온 건 한편으로는 정식으로 사과를 드리고, 또 한편으로는 은아씨의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왔어요!”이때 왕태민의 얼굴은 미소를 가득 띠고 있어 온화해 보였고 풍채 또한 멋있었다.만약 그를 잘 아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면 감히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맞아요. 왕 도련님이 이번에 성의를 다해 오셨어요. 셋째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 영광스럽게 생각하셔야 해요. 어쨌든 우리 설씨 가문의 지위로 말하자면 아직 왕씨 집안의 높은 지위에까지는 오르지 못했잖아요.”설민혁이 뒤편에서 직접 한 마디 거들었다.말하는 중에 왕태민이 손을 흔들자 두 사람이 선물상자 몇 개를 들고 따라 들어왔다.설재석에게는 고급 명주 몇 병을 주었고 희정에게는 명품 가방을 주었다. 이 전문가들은 손만 한 번 대면 이런 물건의 가격이 얼마인지 알 수 있었다. 이 물건들은 아마 2천만 원 정도 될 거 같다. 설재석과 희정 두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비록 전에 왕태민에 대한 오해가 조금 있긴 했지만 지금 이런 물건들 앞에서 그런 사소한 오해가 뭐 그리 대수겠는가? 비교해보면 자기 데릴사위는 무슨 소용이 있는가? 실질적인 이득은 하나도 없었다. “은아씨, 이번에 나도 선물을 하나 준비했어요. 제 마음이에요.”왕태민은 위풍당당하게 설은아의 손을 끌어 당기며 악수를 하려고 했다.결국 설은아는 무의식적으로 반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으악______”하현이 저지하려고 손을 내밀었고 마침 왕태민은 그 위에 입을 맞추었다. 갑자기 하현은 구역질이 나서 죽을 거 같았다.“너 징그럽지 않니?”
이때 설재석은 너무 흥분했다. 자기 막내딸은 하 세자가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였다. 그들 부부는 이 일 때문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몇 번이나 잠을 설쳐댔는지 모른다.만약……만약 왕 세자가 자신의 큰 딸을 마음에 들어 한다면, 그럼 바로 하현 이 데릴사위를 쫓아내버리고 그들 두 사람은 앞으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 두 명의 큰 세자를 사위로 삼으면 그들은 원하는 대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 물론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왕태민이 자신의 큰 딸을 마음에 들어 하긴 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절대적인 건 없고 모든 일에는 기회가 있으니까!결국 왕 세자가 큰 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도 모든 일에는 기회가 있으니까, 그것으로도 충분하다!이런 생각이 들자 설재석의 표정은 오히려 조금 굳어졌다. 그는 왕태민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주판을 두드린 셈이다. 왕씨 집안에서 왕태민이 차지하는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어쨌듯 이 분도 자신의 사윗감 후보니 좀 더 알아보면 뭐 어떤가?그들 쪽에서는 이야기가 뜨거워졌고 그 밖의 하현과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면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이 장면은 너무 교묘하게도 일치했다. 자신의 아내 생일 당일에 특별히 왕태민이 튀어나온 것은 일부러 자신을 찾아온 것과 다름 없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계획한 것인가?하수진 아니면 하민석?토끼를 한 마리 잡으려 해도 사자는 전력질주를 하는데 지금 이 순간 하현은 감히 이 두 사람을 얕보지 못했다. 하지만 만약 하씨 가문에서 왕씨 집안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면 재미있겠군. 최근 몇 년 동안 왕씨 집안은 발전했고 하씨 집안과도 조금 가까워졌다. 심지어 왕씨 집안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강남에서 최상급 2류 가문이 될 거란 소문도 떠돌았다. 그러나 만약 왕씨 가문도 지난 몇 년 동안 하씨 가문 측에서 보살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비록 이
“왜? 무슨 일이야?”모두들 일제히 몸을 돌려 하현을 바라보았다. 하현은 설은아에게 말했다.“여보, 사실 내가 미리 생일 파티를 예약해뒀어. 내가 데리고 갈게.”그러자 희정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흥! 네가 어떻게 예약을 해? 왕 도련님이 예약 하신 곳은 W호텔이야. 한 테이블에 2천 몇 백만 원짜리야! 너는 뭘 예약했는데?”왕태민은 이때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 선생님, 당신이 예약한 곳은 안 가도 돼요!”“어쨌든 내가 예약한 곳은 한 테이블에 2천 몇 백만 원인데 안 가면 손해가 너무 커요!”말을 하면서 그가 손을 흔들자 어떤 수행원 한 사람이 돈다발을 꺼내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쏟아놓았다. 하현은 눈길도 주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내가 당신보다 손실이 더 커!”“어? 너는 어디를 예약했는데? 나는 W호텔 1호룸으로 최저 소비 기준으로 3천만 원이야!”왕태민은 지금 정말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어수선하게 하현을 쳐다봤다. 그가 도대체 어떤 곳을 예약했는지 알고 싶어했다. “나는 남원 타워에 있는 회전식당을 예약했어.”하현은 말했다.“뭐? 거기? 한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데 너 언제 예약했어? 우리 남원에 온지 며칠밖에 안됐는데?”왕태민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사실 그는 전에 남원타워 회전식당을 예약하고 싶었지만 오늘 자리가 없어서 할 수 없었다. “하현, 그 곳에서 식사 한끼 하려면 내가 듣기로는 수천만, 수억 정도는 있어야 한다던데, 너 정말 거기에 예약한 거 맞아?”설민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왕태민도 가볍게 웃었다.“너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니야? 남원 타워 회전식당은 너 같은 사람이 예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말해봐, 몇 테이블이나 예약했는데?”“나 전석 다 예약했어.”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푸하하하하_____”하현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들 웃었다. 특히 설민혁은 야유하는 기색이
“응. 왕 도련님 말이 맞아. 우리 집 데릴사위가 회전 식당에 전세를 내놨으니 우리도 꼭 한번 가봐야지.”오늘 설민혁이 온 목적은 왕태민과 설은아가 잘 어울리게 하는 것이었다. 하현 이 폐물을 공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그가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지금 그와 왕태민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뜻을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이런 우스갯소리와 그들의 정성 어린 준비를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설재석과 희정 두 사람은 가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왕태민의 태도는 강경했다. 비록 온화한 모습이었지만 위압감이 있어 설재석 부부는 지금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다. 이 장면을 지켜보는 설은아는 착잡한 심정이었다. 왕태민의 목적이 무엇인지 하현은 모르는 건가? 이렇게 얼굴을 들이밀고 자기가 얼른 설씨 집안에서 쫓겨나기를 바라고 있는데?지금 하현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설은아는 하현을 붙잡고 한바탕 야단을 치고 싶었다. “셋째 작은 아버지, 어머니, 제 차에 타세요.”“오늘 은아가 주인공이니 벤츠G 타고 가라고 하세요.”설민혁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왕태민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었다. 마침내 그는 설재석 부부를 데리고 갔고, 설은아와 설유아는 왕태민의 벤츠G에 올라탔다. “하 선생님, 당신은 귀하신 분이세요. 회전식당을 전세를 내실 수 있는 분이신데 제 벤츠를 타시는 건 너무 겸손하신 일입니다. 제가 보기에 혼자 타고 가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왕태민은 비록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탁’하는 소리와 함께 차 문을 잠갔다. “나 혼자 갈게.”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고 동시에 설유아를 한 번 쳐다보았다. 설유아는 하현에게 윙크를 하면서 내가 우리 언니를 불리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 대의 차가 먼저 떠난 후에야 하현은 돌아서서 아파트 2층의 복도를 바라보았다. 잠시 쳐다본 후에야 그는 비로소 천천히 말했다.“네가 나를 끌어낼 준비를 한 것인가? 아니면 내
하현은 웃었다. 정말 웃겼다. 남원이라는 곳에서는 비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직접 땅에 묻어버리길 간절히 원하고 있었지만, 이 사람들은 남몰래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할 뿐이었다. 하민석은 지금 감히 자신과 정면으로 충돌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을 잡을 수 있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길바닥에서 뒹굴던 놈이 감히 남원이라는 세계에서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정말 웃기는 소리다. 하현이 웃는 것을 보고 상대방은 오히려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보아하니 너는 관을 못 봐서 눈물을 안 흘리는 거 같은데, 내 소개를 하지.”“나는 창빈이라고 해.”하현은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모르겠는데, 보아하니 남원 길바닥 거물은 아닌 거 같은데?”하현의 이 말을 듣자 창빈의 눈빛은 살짝 차가워졌다. 그는 확실히 무슨 큰 인물은 아니었다. 거물이었다면 이렇게 작은 일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비록 큰 인물은 아니었지만 자부심은 아주 충만했다. 지금 창빈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귀를 후비면서 말했다. “누군가 나한테 이런 얘기 하는 걸 못 들어 본지 오래됐네. 지난번에 내 앞에서 이런 말을 했던 그 재벌 2세는 어떻게 됐더라?”창빈 뒤에 있던 한 동생이 말했다.“형님, 지난 번 그 재벌 2세의 혀를 잘라버리셨잖아요.”“들었지? 이게 바로 나에게 이렇게 말한 결과야.” 창민은 계속 말했다.“너 좀 재미있어 보인다. 나한테 지금 무릎 꿇고 내 바짓가랑이 붙들고 사과하면 용서해줄게.”“그래.”하현이 말했다. “너 무릎 꿇어. 나 급해.”“너!” 이 말을 듣자 창빈은 갑자기 헛웃음을 지었다. “데릴사위, 너 허세가 대단하구나. 네가 나보다 허세를 많이 부릴 줄은 몰랐다!”“나는 너한테 기회를 주고 있는 거야.”하현은 간곡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는 정말 쓸데없는 말을 하기도 귀찮았다. “풉, 하하하하……”“미안해, 참을 수가 없었어. 너 정말 웃기는 소리를 잘한다!
“나는 기회를 줬어.”담담한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고, 방금 전까지 날 뛰던 창빈은 지금 자신도 모르게 몸을 부르르 떨고 있었다. 그는 정신 없이 돌아봤지만 자신의 부하들이 엎드려 꼼짝도 못하고 있는 것을 눈의 끝자락으로 볼 수 밖에 없었다. “데릴사위, 너 뭐 하려고 그래? 날 건드렸다간 너는 말할 것도 없고, 너희 설씨 집안도 다 망하게 될 줄 알아.” 창빈은 겁을 먹었지만 그는 필경 길바닥에서 지냈던 사람이라 지금 이 순간에도 시치미를 떼며 입을 열었다.“누가 너를 보냈는지 말해.”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흥, 넌 알 자격이 없어!”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손에 힘을 더 가하기 시작했다.이때 창빈은 자기 목에 쇠사슬이 묶인 듯 점점 조여와 숨을 쉬기가 어려워졌다. 그 와중에 지난 날이 떠올라 그의 눈에는 당황한 빛이 역력했다. 그는 이 데릴사위가 독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만약 자신이 죽을 줄을 알지 못했다면 다음 순간은 정말 죽을 수도 있었다. “너……먼저 놔줘, 말해줄게……”창빈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하현은 마음대로 손을 흔들며 냉담한 표정으로 창빈을 보고 있었다. 창빈은 자신의 목을 문지르며 잠시 머뭇거리는 표정을 짓다가 잠시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데릴사위, 나는 네가 보통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 하지만 내 배후에 어떤 귀인이 있는지 네가 모르는 게 너에게 가장 좋을 거야. 너한테 좋을 게 없어……”“하씨 가문?” 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하민석이야 하수진이야?”“하씨 대문호?” 창빈의 눈에는 자조 섞인 빛이 스쳤다.“나는 이런 거물과 접할 자격이 없지만 그 귀인의 신분은 확실히 높아. 이번에 너만 잘 해결되면 나는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었을 텐데 아쉽게 됐네……”하현은 담담히 그를 바라보다가 창빈의 핸드폰을 꺼내 번호를 눌렀다.“창빈아, 그 사람 해결 됐어?” 상대방의 목소리는 차가웠다. 하지만 입을 열면 많은 것들을 인정하는 셈이 되었
하현이 택시를 타고 남원 타워에 도착했을 때 설은아와 사람들은 이미 한참을 기다리고 있었다. 왕태민은 지금 설은아에게 그냥 가자고 부추기고 있었다. 하현은 아마 겁에 질려 감히 오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하현이 나타나는 것을 본 순간 그의 눈빛은 약간 당황하는 듯 했지만 곧 냉정을 되찾았다. 하현은 그를 힐끗 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설은아는 방금 무슨 일이 있었는지 몰랐다. 지금 이 순간은 오히려 약간 조마조마하며 설유아의 팔을 잡았는데 머리카락이 살짝 떨렸다. 그녀는 가면서 하현이 그녀에게 어떤 놀라움을 가져다 줄지 매우 기대하고 있었다. 하지만 모든 것이 헛수고가 될까 봐 걱정이 되었고 그 때가 되면 그녀도 자신이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하현을 보고 옆에 있던 설민혁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참, 내가 방금 찾아봤는데, 듣기로는 회전 식당은 예약한 다음에 식당에서 도금된 멤버십 카드를 줘서 다음에 갈 때 그 카드를 사용해야 이용할 수 있다던데, 그런가요?”왕태민은 웃으며 말했다. “그거야 나도 알지. 이런 카드는 해외에서 핸드 메이드로 주문 제작 받아서 만드는 거라 가치가 엄청나서 일종의 기념품인 셈이지. 적지 않은 스타와 인플루언서들이 인터넷에 많이 띄워놨어. 일종의 신분의 상징이지.”“그렇구나!”설민혁은 갑자기 큰 깨달음을 얻은 것 같은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하현, 너 이미 식당 전세 냈다고 했지? 그럼 그 멤버십 카드 좀 보여줘 봐.”설재석도 지금 입을 열었다.“그래, 나도 이런 얘기 들어 본적 있어. 멤버십 카드 꺼내서 보여줘 봐.”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점점 더 긴장했다. 그녀는 재빨리 핸드폰을 꺼내 검색해 보더니 바로 알게 됐다. 이 곳은 예약하려면 정말 한 달 정도가 걸리고 항상 인기가 많아서 자리를 얻기가 어려웠다. 설씨 집안이 남원에 온지 보름도 안 됐는데, 미리 예약할 시간이 어디 있었겠는가?하현에게 그 멤버십 카드를 꺼내라고
”여수혁?”하현은 여음채를 쳐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그가 이 병원 대주주인 동시에 당신의 뒷배라고?”“그래! 알고 나니 이제야 겁이 나?”“무서운 줄 알면 이제 무릎 꿇고 내 신발 밑창을 핥아!”“그리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이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여수혁도 당신한테 살길을 열어줄지도 모르지!”“그렇지 않으면 당신 오늘 재수 없을 줄 알아!”여음채는 경멸하는 기색을 한껏 드러내었다.하현이 남양 무맹과 여수혁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 분명했다.강옥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여수혁은 남양 무맹주가 총애하는 제자야.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의 부문주라서 건드리기가 쉽지 않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어릿광대일 뿐이야.”“뭐? 어릿광대?”하현의 말에 여음채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한테 그런 용기를 줬는지 모르겠군! 흥!”“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이 사람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 아들이야!”“이 사람은 페낭 무맹 장로가 아주 아끼는 제자라구!”“게다가 남양 무맹이 페낭 무맹에 파견한 제자라고!”“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거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뿐만 아니라 실력도 비할 데 없어!”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예닐곱 명이 걸어와 소리치며 하현을 향해 멸시하는 눈빛을 보이며 비아냥거렸다.“야, 너 오늘 큰일 났어! 아주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우리가 당신 목숨뿐만 아니라 가죽까지 싹 벗겨버릴 거거든! 하하하!”이 사람들은 하현이 무슨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원하는 대로 칼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은 더욱 경멸하는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같은 외지인이 감히 그들 같은 거물들한테 입을 놀리다니 정말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망나니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외지인 관광객 주제에 너무 오만하고 포악하지 않는가?진 반장이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려는데 여전히 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려고 하다니, 이건 지나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진 반장은 얼굴을 가리고 일어나 하현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뭔지 알 길이 없어 진 반장은 순간 분노했지만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젊은이,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니야?”“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또다시 뺨을 때리며 냉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대단하게 나한테 큰소리쳤다는 건 잘못을 하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도리도 잘 안다는 뜻 아니셨나?”“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몰라?”진 반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았다.생각 같아서는 하현을 죽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소리 없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미안해! 잘못했어!”그는 하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구봉이 전화를 건 정종화 총경이 두려운 것이 분명했다.감히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그가 하현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상대방의 사과를 들은 후에야 하현은 앞으로 나와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진 반장은 그의 무리들을 데리고 쏜살같이 꽁무니를 뺐다.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은 하현이 진 반장을 내쫓을 만큼 강력한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진 반장 일행이 꽁무니를 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진 반장의 얼굴까지 때렸다.“내가 당신을 얕잡아 본 것 같군. 당신이 이렇게 큰 뒷배를 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진 반장이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여음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냉소를 흘렸다.“그렇지만 똑똑히 들어. 당신 뒤에 얼마나 큰 거물이 있든 간에!”“페낭 병원의 뒷배가 훨씬 강할 거야!”“날 건드려?! 흥! 두고 봐! 당신은 죽
선두에 선 남자를 보자 여음채는 안색이 환해졌다.그리고 나서 얼른 다정하게 남자의 팔짱을 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진 반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바로 저 자식이에요. 저 자식은 우리가 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때린다고 호도하고 있어요.”“게다가 내 아랫배까지 걷어찼다구요!”“저놈을 반드시 감옥에 가둬 주세요. 그 안에서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요.”여음채는 하현을 가리키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부일민 일행도 모두 큰소리로 맞장구를 치며 하현이 억지를 부린다고 한마디씩 보탰다.“뭐? 감히 병원에서 원장님을 때려요?”“대낮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법도 뭣도 없답니까?”진 형사는 하현의 얼굴을 주시했고 곧바로 그가 남양인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그러자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며 비아냥거렸다.“이봐, 어서 저놈을 데려가! 모질게 심문해! 지독하게 조사해!”“감히 반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법으로 다스려!”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 형사를 쳐다보았다.“당신은 어쨌든 형사반 반장이면 경찰서를 대표해서 일을 해야죠. 무슨 일이 생겼으면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일을 어떻게 하든 당신 같은 사람이 날 가르칠 건 아니지!”“당신이 먼저 사람을 치고 법을 어겼어. 그러니 법 집행자로서 당신을 연행하는 건 당연한 거야!”“물론 당신도 저항하는 길을 택할 수 있어!”“하지만 저항한 결과는 내가 당신을 한 방에 죽이는 거야!”진 반장은 언성을 높였고 눈을 부릅뜨고 하현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려고 손을 내밀었다.하현은 손을 들어 진 반장의 오른손을 막은 뒤 담담하게 하구봉을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걸어.”하구봉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곧바로 하현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건너편에 냉랭한 목소리가 전해오자 하구봉은 핸드폰을 진 반장에게 건네주었다.“당신의 직속 상사가 전화를 받아
하현은 여음채의 말을 듣고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페낭은 정말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곳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이렇게 공공연하게 정경유착이 만연할 줄이야!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여음채는 순간 하현이 겁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자 여음채는 다시 의기양양한 기운을 내뿜으며 이를 악물고 하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왜? 무서워?”“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어?”“지금이라도 용서를 빌면 봐줄 수도 있어. 아직 늦지 않았다구.”“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기다리는 건 억세게 불행한 일들뿐일 거야!”말을 하는 동안 여음채는 부일민에게 손짓을 하며 다른 의료진과 경호원들을 모두 불러들여 하현 일행을 겹겹이 에워쌌다.기세등등하게 하현 일행을 노려보고 있는 그들 무리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사나운 모습이었다.이 광경을 본 여음채는 더욱 득의만만해져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이봐, 이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어서 사과하고 내 신발 밑창을 개처럼 깨끗이 핥아!”“그렇지 않으면 당장 오늘 밤부터 감옥에서 썩어야 할 거야!”강옥연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떠올랐다.하구봉은 콧방귀를 뀌며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주위의 구경꾼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현에게 다가올 불운을 생각하며 탄식했다.아무리 거세게 싸운다고 해도 경찰관들 앞에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설마 하현 일행은 법이라도 어기려는 건가?하현은 냉담한 얼굴로 여음채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평온한 표정이 되었다.“내가 감옥에 갈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 그런데 어떻게 이익만 챙기고 인명을 돌보지 않는 거야?”“멀쩡한 병원이 사기꾼 소굴이 되어 관광객을 속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군.”“당신들 오늘 잘 만났어. 당신들은 이제 좋은 날 끝났어.”“이 병원, 망하게 해 줄게.”하현의 말을 들은 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그녀들은 허
잠시 후 넋이 나간 듯 멍하던 여음채는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일어나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개자식! 감히 날 걷어차?”“내 엄마가 누군지 알아?”“당신은 누구야? 의료 윤리를 저버린 원장 아니야?”하현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때린 건 당신이야.”“뭐?”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현의 목소리와 행동에 여음채는 화가 치밀어 올라 하현을 가리키며 호통쳤다.“모두 저놈을 죽여!”“일이 터지면 내가 다 수습할 거야!”그녀의 말에 수십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이 사납게 웃으며 하현을 에워쌌다.강옥연은 이런 막무가내 인사를 본 적이 없었다.병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라니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강옥연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조심해!”그녀의 말을 들은 부일민은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우리 원장님한테 미움을 산 사람은 살아남지 못해!”예쁘장한 간호사들은 앳된 얼굴로 눈을 흘기며 거들었다.“흥! 조심해 봤자 소용없어! 죽어야 해!”주위를 둘러보던 환자와 의료진들도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하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여음채의 인품이 별로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영향력과 인맥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이 페낭 병원에서 누가 감히 그녀한테 대들 수 있겠는가?아무 물정 모르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하필 여음채를 건드리다니!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이때 선두에 선 경호원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하현에게 다가왔다.그는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꺾으며 광분한 사냥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이놈아!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워? 여기가 어디라고? 눈을 어디다 둔 거야?”“퍽!”“앗!”경호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듣기 귀찮다는 듯이 손바닥을 휘둘러 그를 내동댕이쳤다.맨 앞에 있던 경호원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기절하고 말았다.기절했어?!이 광경을 보고 놀
앞뒤 사리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음채의 모습에 강옥연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뭐가 모욕이에요?”“당신들은 환자를 구하고 비용을 청구해야 하는데 환자를 구하기는커녕 무슨 스타가 나타났다고 부리나케 쫓아다니지 않았냐구요?!”“응급실에 30분씩이나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보증금은 돌려주지 못하겠다니요?”“당신들 같은 병원이 무슨 의료 윤리 의식이 있겠어요?”“병원이 아니라 사기 소굴이에요!”강옥연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식약청에 고소할 거예요!”하현은 침착한 눈빛으로 여음채의 표정을 살피다가 하구봉에게 원가령의 안전을 보호하라는 손짓을 했다.아마도 강옥연의 강경함에 여음채는 일을 처리하기가 좀 곤란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여음채는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달려오는 수십 명의 경비원들에게 하현 일행을 포위하라고 손짓하며 지시했다.이어 그녀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긴 다리를 뻗으며 다가와 말했다.“우리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고 잘못을 하면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해.”“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해. 그리고 내 신발 밑창을 깨끗이 핥아. 그뿐만 아니라 우리 부일민 의사에게 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이 일은 이대로 덮어 두겠어!”“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지 마.”“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칠흑 같은 남양 감옥에 갇히게 될 거야!”“1년 반 동안 안에서 통곡만 하다가 세월을 보내게 될 거라고!”분명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여음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능수능란했다.어떤 외국인이라도 감히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모두 이런 꼴을 당했을 것이다.부일민 일행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린 채 고소하다는 듯 히죽거렸다.큰소리 뻥뻥 치더니 하현이 아주 제대로 걸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페낭 거물도 아닌데 감히 페낭 병원에 와서 행패를 부려?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는 거지!강옥연은 한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은 아주 법도 뭣도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