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생각에 미치자 유소미의 마음은 탄식과 하현을 얕보는 마음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인간적이어서 지금 이 순간에도 표정으로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웃으며 말했다. “참, 하현, 너 집 사러 왔다고 했지?”“동창이니까 만약 사고 싶다면 내가 많이 할인해줄게.”“하지만 내가 여기서 충분히 할인을 해줘도 2백억은 넘을 거야……”“아니면 시골에 있는 열 몇 평 정도 되는 집들 몇 채 소개 시켜줄까? 그건 4억 정도면 살 수 있을 텐데.”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고마워. 근데 나는 여기에 있는 집에만 관심이 있어서.”“푸하하……”다른 판매원 아가씨들이 참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거 끝까지 뻐기고 있네?유소미도 웃으며 말했다.“친구야. 네가 여기서 사는 게 불가능 한 건 아니지.”“하지만 우리는 담보대출은 안 받아. 전액 다.”“너……괜찮겠어?”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전액 다? 별 문제 없어.”“전액, 확실해? 이건 몇 만원이 아니야. 최소한 2백억이야!”유소미는 하현의 말투에 놀랐다. 이 놈은 자기 앞에서 지금 죽어도 체면을 살리려고 하는 건가? 이런 말까지 하다니?유소미는 이제 약간 화가 나기 시작했다.그녀는 이미 하현의 체면을 세워 주었고 그를 모욕하지도 않았다. 그런데 이 녀석은 여전히 좋고 나쁜 게 뭔지를 모른다. 그녀는 오늘 하현이 집을 살 수 있는지 없는지 볼 것이다. 그녀는 하현이 도대체 얼마나 망신을 당하는지 보고 싶었다. 그녀는 이미 오늘 밤 대학 친구들 사이에서 하현이 오늘 망신당한 일을 말해줄 생각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현의 다음 말이 그들을 놀라게 했다. 그들은 하현이 담담하게 말하는 것을 듣고만 있었다. “여기서 가장 비싼 건 아무래도 꼭대기 층이겠지?”이 말이 나오자 온 장내가 쥐 죽은 듯 조용해졌다. 스마트 밸리는 특별한 점이 있었다. 그것은 층이 높을수록 가격이 비싸다는 것이다. 가격이 비싸면 비쌀수록 그 곳
4백억짜리 집을 말해서 뭐할까? 분명 좋겠지! 하지만 중요한 건 살 수 있냐는 것이다.유소미는 웃을 듯 말 듯 하현을 쳐다보다 오늘 하현을 망신시키려 마음을 먹었다. 맨 마지막에 하현이 무슨 핑계로 안 사겠다고 하는지 보고 싶었다. “친구야, 오래된 동창이니 우리 실제로 가서 한 번 보는 건 어때? 네가 만족하면 오늘 밤에라도 입주할 수 있어.”유소미는 웃으며 입을 열었다. 그녀는 하현 같은 촌뜨기가 지금 데릴사위가 되었으니 현장에 가면 순식간에 탄로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하현은 건물 모형을 계속 보면서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 “안 가도 돼……”“왜? 감히 못 가겠어? 아니면 돈이 없어? 돈이 없으면 그냥 말을 하지! 뻐기기는 뭘 뻐기고 있어!”처음에 그 판매 아가씨가 이상야릇한 표정을 지으며 입을 열었다. 하현은 그녀를 쳐다보기도 귀찮았다. 그리고 자신의 아멕스 블랙카드를 꺼내 유소미에게 건네주었다. “이 집으로 할게. 그냥 카드로……”하현은 비할 데 없이 무미건조하게 말을 했지만, 지금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눈이 멀었다. “뭐? 그냥 카드를 긁으라고?”1분 정도 멍하게 있다가 그제서야 그 판매원 아가씨들이 반응을 보였다. 그녀들도 이렇게 집을 사는 사람은 처음 봤다. 현장도 한 번 안가보고 바로 카드를 긁다니?“하현…… 너 확실해……?”이때 유소미는 손에 든 카드를 알아보고 너무 놀랐다. 이건 전설의 아멕스 블랙카드!이 카드를 가진 사람의 몸 값은 최소한 2조원 정도는 되겠지?이 카드 진짠가?“좀 빨리 해줄래? 나 일이 있어서.”하현은 한마디 재촉을 했다. 유소미는 안절부절 못하는 얼굴로 카드를 긁기 시작했고 잠시 후 ‘띵’하는 소리가 들렸다. 한번에 4백억 결제가 완료되었다. 그 판매 아가씨들은 하나같이 입이 떡 벌어져서 오리 알을 입에 다 쑤셔 넣을 수 있을 정도였다. 여태껏 이런 사람은 만나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마음대로 집을 보고 아무렇
분양센터 밖으로 나오자 설유아는 그제서야 반응을 보였다. 신기한 듯 하현을 보며 말했다.“형부, 나 집 생긴 거예요?”“이제 나랑 네 언니랑 살려고. 꼭대기 층은 많이 넓지 않아? 너도 거기서 살아.”설유아는 흥분하며 말했다.“그럼 형부, 나 기숙사에 안 살아도 돼? 기숙사가 너무 작아서 거기 살기 싫거든……”사실 그녀는 이렇게 하면 매일 형부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었다. 게다가 그와 언니가 부부생활을 하지 못하게 막을 생각이었다. 하현은 이 계집애가 이렇게 많은 생각을 하고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는 잠시 생각하더니 말했다.“집은 네 꺼야. 네가 오고 싶으면 오는 거지. 나는 관여 안 해.”설유아는 방긋 웃는 얼굴로 국경절 연휴가 지나면 바로 이사오기로 했다. ……곧, 3일째가 되었다. 이 날은 설은아의 생일이기도 하다. 설재석과 희정 두 사람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설은아의 생일을 챙겼다. 요 며칠 동안 그들도 비밀스럽게 여러 가지 준비를 했다. 이른 아침, 하현은 설은아에게 생일 파티를 준비했다고 말하는 것을 깜빡 했다.희정이 말했다. “은아야! 오늘 누가 널 위해 네 생일 파티를 준비했어!”“이따가 분명 깜짝 놀랄 거야!”설재석도 웃으며 말했다.“장소는 W호텔이야!” 두 사람이 신비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자 설은아는 참지 못하고 웃으며 말했다.“W호텔? 거긴 한 끼 식사에 몇 백만 원 정도야. 너무 비싸. 내 생일엔 그냥 집에서 아무거나 한끼 먹으면 돼.”설재석은 웃으며 말했다.“은아야! 이건 우리가 정한 게 아니야. 누군가 정성껏 준비한 거야.”“게다가 W호텔 최고 럭셔리한 세트래. 한 테이블 당 2천 몇 백만 원 정도 든대!이 소식을 듣자 설은아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설마 이 사람인가!희정은 설은아의 동작을 보고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걱정 마. 그 사람은 아니야. 그 사람은 너 데리고 가서 밥을 먹고 싶어도 그럴만한 능력이
문을 열어준 설은아는 어리둥절했다. 그녀는 뜻밖에도 왕태민이 손에 꽃을 들고 자기 집에 찾아올 거라고는 꿈에도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설재석과 희정 두 사람은 사위를 쳐다 보는 장인 장모의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아저씨 아주머니, 지난번 일은 오해였어요. 크게 개의치 마시기를 바랍니다!”“오늘 온 건 한편으로는 정식으로 사과를 드리고, 또 한편으로는 은아씨의 생일을 축하해 주려고 왔어요!”이때 왕태민의 얼굴은 미소를 가득 띠고 있어 온화해 보였고 풍채 또한 멋있었다.만약 그를 잘 아는 사람이 여기에 있다면 감히 그를 알아보지 못했을 것이다. “맞아요. 왕 도련님이 이번에 성의를 다해 오셨어요. 셋째 작은 아버지, 작은 어머니, 영광스럽게 생각하셔야 해요. 어쨌든 우리 설씨 가문의 지위로 말하자면 아직 왕씨 집안의 높은 지위에까지는 오르지 못했잖아요.”설민혁이 뒤편에서 직접 한 마디 거들었다.말하는 중에 왕태민이 손을 흔들자 두 사람이 선물상자 몇 개를 들고 따라 들어왔다.설재석에게는 고급 명주 몇 병을 주었고 희정에게는 명품 가방을 주었다. 이 전문가들은 손만 한 번 대면 이런 물건의 가격이 얼마인지 알 수 있었다. 이 물건들은 아마 2천만 원 정도 될 거 같다. 설재석과 희정 두 사람은 지금 이 순간에도 함박웃음을 짓고 있었다. 비록 전에 왕태민에 대한 오해가 조금 있긴 했지만 지금 이런 물건들 앞에서 그런 사소한 오해가 뭐 그리 대수겠는가? 비교해보면 자기 데릴사위는 무슨 소용이 있는가? 실질적인 이득은 하나도 없었다. “은아씨, 이번에 나도 선물을 하나 준비했어요. 제 마음이에요.”왕태민은 위풍당당하게 설은아의 손을 끌어 당기며 악수를 하려고 했다.결국 설은아는 무의식적으로 반 발자국 뒤로 물러났다.“으악______”하현이 저지하려고 손을 내밀었고 마침 왕태민은 그 위에 입을 맞추었다. 갑자기 하현은 구역질이 나서 죽을 거 같았다.“너 징그럽지 않니?”
이때 설재석은 너무 흥분했다. 자기 막내딸은 하 세자가 마음에 들어 하는 여자였다. 그들 부부는 이 일 때문에 너무 흥분한 나머지 몇 번이나 잠을 설쳐댔는지 모른다.만약……만약 왕 세자가 자신의 큰 딸을 마음에 들어 한다면, 그럼 바로 하현 이 데릴사위를 쫓아내버리고 그들 두 사람은 앞으로 편안한 삶을 살 수 있다. 두 명의 큰 세자를 사위로 삼으면 그들은 원하는 대로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 물론 현재 상황으로 볼 때 왕태민이 자신의 큰 딸을 마음에 들어 하긴 했다. 하지만 모든 일에는 절대적인 건 없고 모든 일에는 기회가 있으니까!결국 왕 세자가 큰 딸을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아도 모든 일에는 기회가 있으니까, 그것으로도 충분하다!이런 생각이 들자 설재석의 표정은 오히려 조금 굳어졌다. 그는 왕태민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하면서 주판을 두드린 셈이다. 왕씨 집안에서 왕태민이 차지하는 위치가 어디인지 알아보기 시작했다. 어쨌듯 이 분도 자신의 사윗감 후보니 좀 더 알아보면 뭐 어떤가?그들 쪽에서는 이야기가 뜨거워졌고 그 밖의 하현과 두 사람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면서 뭔가 이상한 점을 느꼈다. 이 장면은 너무 교묘하게도 일치했다. 자신의 아내 생일 당일에 특별히 왕태민이 튀어나온 것은 일부러 자신을 찾아온 것과 다름 없었다. 이것은 우연의 일치인가? 아니면 누군가가 계획한 것인가?하수진 아니면 하민석?토끼를 한 마리 잡으려 해도 사자는 전력질주를 하는데 지금 이 순간 하현은 감히 이 두 사람을 얕보지 못했다. 하지만 만약 하씨 가문에서 왕씨 집안 사람을 조종할 수 있다면 재미있겠군. 최근 몇 년 동안 왕씨 집안은 발전했고 하씨 집안과도 조금 가까워졌다. 심지어 왕씨 집안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강남에서 최상급 2류 가문이 될 거란 소문도 떠돌았다. 그러나 만약 왕씨 가문도 지난 몇 년 동안 하씨 가문 측에서 보살펴주는 사람이 있었다면?비록 이
“왜? 무슨 일이야?”모두들 일제히 몸을 돌려 하현을 바라보았다. 하현은 설은아에게 말했다.“여보, 사실 내가 미리 생일 파티를 예약해뒀어. 내가 데리고 갈게.”그러자 희정은 짜증 섞인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흥! 네가 어떻게 예약을 해? 왕 도련님이 예약 하신 곳은 W호텔이야. 한 테이블에 2천 몇 백만 원짜리야! 너는 뭘 예약했는데?”왕태민은 이때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온화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 선생님, 당신이 예약한 곳은 안 가도 돼요!”“어쨌든 내가 예약한 곳은 한 테이블에 2천 몇 백만 원인데 안 가면 손해가 너무 커요!”말을 하면서 그가 손을 흔들자 어떤 수행원 한 사람이 돈다발을 꺼내 땅바닥에 아무렇게나 쏟아놓았다. 하현은 눈길도 주지 않고 웃으며 말했다.“내가 당신보다 손실이 더 커!”“어? 너는 어디를 예약했는데? 나는 W호텔 1호룸으로 최저 소비 기준으로 3천만 원이야!”왕태민은 지금 정말 궁금했다. 다른 사람들 역시 어수선하게 하현을 쳐다봤다. 그가 도대체 어떤 곳을 예약했는지 알고 싶어했다. “나는 남원 타워에 있는 회전식당을 예약했어.”하현은 말했다.“뭐? 거기? 한 달 전에 예약을 해야 하는데 너 언제 예약했어? 우리 남원에 온지 며칠밖에 안됐는데?”왕태민은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 사실 그는 전에 남원타워 회전식당을 예약하고 싶었지만 오늘 자리가 없어서 할 수 없었다. “하현, 그 곳에서 식사 한끼 하려면 내가 듣기로는 수천만, 수억 정도는 있어야 한다던데, 너 정말 거기에 예약한 거 맞아?”설민혁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왕태민도 가볍게 웃었다.“너 잘못 알고 있는 것 아니야? 남원 타워 회전식당은 너 같은 사람이 예약할 수 있는 곳이 아니야! 말해봐, 몇 테이블이나 예약했는데?”“나 전석 다 예약했어.”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푸하하하하_____”하현의 말이 떨어지자 모두들 웃었다. 특히 설민혁은 야유하는 기색이
“응. 왕 도련님 말이 맞아. 우리 집 데릴사위가 회전 식당에 전세를 내놨으니 우리도 꼭 한번 가봐야지.”오늘 설민혁이 온 목적은 왕태민과 설은아가 잘 어울리게 하는 것이었다. 하현 이 폐물을 공격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는데 그가 어찌 놓칠 수 있겠는가?지금 그와 왕태민은 서로 눈을 마주쳤다. 뜻을 반드시 이루고야 말겠다는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이런 우스갯소리와 그들의 정성 어린 준비를 무엇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설재석과 희정 두 사람은 가고 싶지 않았지만 지금 왕태민의 태도는 강경했다. 비록 온화한 모습이었지만 위압감이 있어 설재석 부부는 지금 어쩔 수 없이 가야 했다. 이 장면을 지켜보는 설은아는 착잡한 심정이었다. 왕태민의 목적이 무엇인지 하현은 모르는 건가? 이렇게 얼굴을 들이밀고 자기가 얼른 설씨 집안에서 쫓겨나기를 바라고 있는데?지금 하현의 체면을 생각하지 않았다면 설은아는 하현을 붙잡고 한바탕 야단을 치고 싶었다. “셋째 작은 아버지, 어머니, 제 차에 타세요.”“오늘 은아가 주인공이니 벤츠G 타고 가라고 하세요.”설민혁은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는 왕태민에게 더 많은 기회를 주고 싶었다. 마침내 그는 설재석 부부를 데리고 갔고, 설은아와 설유아는 왕태민의 벤츠G에 올라탔다. “하 선생님, 당신은 귀하신 분이세요. 회전식당을 전세를 내실 수 있는 분이신데 제 벤츠를 타시는 건 너무 겸손하신 일입니다. 제가 보기에 혼자 타고 가시는 게 좋을 것 같네요.”왕태민은 비록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탁’하는 소리와 함께 차 문을 잠갔다. “나 혼자 갈게.”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고 동시에 설유아를 한 번 쳐다보았다. 설유아는 하현에게 윙크를 하면서 내가 우리 언니를 불리하게 만들지 않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두 대의 차가 먼저 떠난 후에야 하현은 돌아서서 아파트 2층의 복도를 바라보았다. 잠시 쳐다본 후에야 그는 비로소 천천히 말했다.“네가 나를 끌어낼 준비를 한 것인가? 아니면 내
하현은 웃었다. 정말 웃겼다. 남원이라는 곳에서는 비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직접 땅에 묻어버리길 간절히 원하고 있었지만, 이 사람들은 남몰래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할 뿐이었다. 하민석은 지금 감히 자신과 정면으로 충돌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그는 자신을 잡을 수 있는 확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길바닥에서 뒹굴던 놈이 감히 남원이라는 세계에서 자신에게 이런 말을 하다니? 정말 웃기는 소리다. 하현이 웃는 것을 보고 상대방은 오히려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보아하니 너는 관을 못 봐서 눈물을 안 흘리는 거 같은데, 내 소개를 하지.”“나는 창빈이라고 해.”하현은 잠시 생각하고 말했다.“모르겠는데, 보아하니 남원 길바닥 거물은 아닌 거 같은데?”하현의 이 말을 듣자 창빈의 눈빛은 살짝 차가워졌다. 그는 확실히 무슨 큰 인물은 아니었다. 거물이었다면 이렇게 작은 일을 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비록 큰 인물은 아니었지만 자부심은 아주 충만했다. 지금 창빈은 살짝 미소를 지으며 귀를 후비면서 말했다. “누군가 나한테 이런 얘기 하는 걸 못 들어 본지 오래됐네. 지난번에 내 앞에서 이런 말을 했던 그 재벌 2세는 어떻게 됐더라?”창빈 뒤에 있던 한 동생이 말했다.“형님, 지난 번 그 재벌 2세의 혀를 잘라버리셨잖아요.”“들었지? 이게 바로 나에게 이렇게 말한 결과야.” 창민은 계속 말했다.“너 좀 재미있어 보인다. 나한테 지금 무릎 꿇고 내 바짓가랑이 붙들고 사과하면 용서해줄게.”“그래.”하현이 말했다. “너 무릎 꿇어. 나 급해.”“너!” 이 말을 듣자 창빈은 갑자기 헛웃음을 지었다. “데릴사위, 너 허세가 대단하구나. 네가 나보다 허세를 많이 부릴 줄은 몰랐다!”“나는 너한테 기회를 주고 있는 거야.”하현은 간곡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는 정말 쓸데없는 말을 하기도 귀찮았다. “풉, 하하하하……”“미안해, 참을 수가 없었어. 너 정말 웃기는 소리를 잘한다!
이때 왕인걸은 남을 괴롭히던 습성을 드디어 드러내며 사나운 진면목을 가감 없이 표출했다.그의 말이 떨어지자 몇몇 사나운 친구들은 모두 맥주병을 들고 다가와 하현의 머리를 깨뜨릴 준비를 했다.설은아는 깜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지금 뭐 하는 거야?”“당신들, 함부로 굴면 관청에 신고할 거야!”“신고?”예쁜 종업원이 냉소를 흘렸다.“신고가 먹힌다면 내가 성을 갈겠어!”“경찰서는 모두 우리 왕 도련님 사람들이야!”“경찰서에 신고는커녕!”“당신 할아버지 할머니한테 부탁해 봐도 아무 소용없어!”“설은아, 괜찮아. 내가 처리할게.”하현은 전화를 걸려던 설은아를 제지했고 냉담한 시선으로 왕인걸을 쳐다보았다.“스스로 용서를 구할 기회를 정말로 포기할 작정이야?”왕인걸은 냉소를 지으며 피가 섞인 침을 바닥에 내뱉었다.“용서를 구하라고? 당신이 나한테 그런 말할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그래? 내가 그런 자격이 없는 건가?”하현은 심드렁한 표정으로 품에서 명함 한 장을 꺼내 손가락으로 튕겨 한 번에 왕인걸의 이마에 올려놓았다.“이젠 어때? 이만하면 내가 자격이 되는 건가?”“무슨 허튼수작이야?!”왕인걸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마를 찌푸렸다.“이게 뭐야?”“명함?”“이게 날 밟을 수 있는 자격이라는 거야?”“당신은 당신이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세자라도 돼? 아님 부잣집 도련님?”이번엔 예쁜 종업원이 나섰다.“명함 한 장으로 우리 왕 도련님을 겁주려고?”“막장 드라마를 너무 본 거 아니야? 당신이 막장 드라마 주인공인 줄 알아?”왕인걸은 시큰둥한 표정으로 이마에 있던 명함을 집어 들어 찢을 준비를 했다.그러나 그가 찢으려고 했을 때 눈가에 예기치 못한 잔광이 비치기 시작했다.그가 유심히 명함을 보는 순간 전선에 온몸이 닿은 것처럼 찌릿하고 전율이 솟아올랐다.간민효.간결하고 명료한 이 이름 석 자가 왕인걸의 온몸을 벌벌 떨게 만들었다.간민효의 명함을?!게다
”개자식! 감히 날 때려?!”이때 왕인걸이 얼굴을 가린 채 비틀거리며 기어올랐다.그는 얼굴 가득 원망과 흉악함으로 뒤덮인 채 하현을 향해 이를 갈며 격노했다.“넌 이제 죽었어!”“넌 이제 끝이야!”몇몇 불량한 친구들도 잡아먹을 듯 눈빛을 사납게 이글거리며 하현과 설은아를 노려보았다.분명 이 두 사람은 오늘 여기서 죽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예쁜 종업원도 얼른 양복 차림의 사나운 남자 십여 명을 불렀다.아마도 식당 경비원들인 것 같았다.하현은 이 사람들을 쳐다보지도 않고 테이블 위에 있는 차를 집어 들고 단숨에 들이마신 후 아무런 표정 변화도 없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아직도 무릎을 꿇고 사과할 기회가 있어.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당신들 손은 부러질 거야!”하현의 말을 듣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사람들은 모두 하현처럼 허여멀건한 사람이 감히 자신들을 제압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금정이란 곳은 힘이나 능력 좀 있다고 함부로 굴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금정 같은 대도시에서는 역량, 인맥, 배경, 출신, 권력, 지위 그 모든 것이 갖춰져야 어느 정도 어깨에 힘깨나 줄 수 있다.하현이 감히 부잣집 도련님을 건드렸으니 아마 목숨을 부지하긴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다.“촌뜨기! 넌 이제 죽었어!”예쁜 종업원이 노여움을 금치 못하는 표정으로 말했다.“네가 무슨 자격으로 우리 왕 도련님이랑 싸운단 말이야!”“왕 도련님이 누군지 알기나 해?”“왕 도련님은 금정 간 씨 가문 산하의 명성 필름 사장님이야.”“그는 금정 간 씨 가문의 먼 친척이야. 어떻게 당신 같은 촌놈이 모욕을 줄 수 있겠어?!”“못 들어봤어?”“옛날 왕사당 앞에 평범한 백성들이 드나들었다는 말 말이야!”예쁜 종업원은 화가 난 표정으로 말했다.왕인걸은 탑클래스 인물이었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금정 사 씨 가문과 관계가 있는 사람이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얼뜨기 한 놈이 왕인걸을 함부로 발로
하현의 말이 떨어지자 장내가 조용해졌고 모두들 멍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잘못 들은 것이 아닌가 의심하며 자신의 귀를 후벼팠다.이 말이 왕인걸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모두가 지극히 정상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그런데 어디서 튀어나왔는지도 모를 촌뜨기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다니!어불성설 아닌가?왕인걸도 놀라서 잠시 어리둥절하다가 이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재미있군. 내 앞에서 이렇게 날뛰는 사람은 오랫동안 없었어.”“당신이 처음은 아니지만, 단연코 가장 재미있는 사람이야.”“이렇게 하지. 무릎 꿇고 머리를 세 번 조아리고 물러가.”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거기에 세 번 더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어.”하현의 말을 들은 왕인걸의 얼굴에는 더욱더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더해졌다.이 촌뜨기가 지금 누구랑 말을 하고 있는지 알기나 한 건가?“왕인걸, 이놈이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는군!”“뭐? 왕인걸한테 머리를 세 번 조아리라고? 네놈이 무덤에 들어가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없을 거야!”“왕인걸, 이놈이 이렇게 뻔뻔스럽게 나오니 하늘과 땅이 얼마나 무서운지 죽는 게 뭔지 직접 알려줘야 할 것 같은데?!”한 무리의 불량배들이 모두 호들갑을 떨며 한마디씩 덧붙였다.그들은 조금도 거리낄 것이 없는 사람처럼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왕인걸은 무리들의 비아냥거리는 말을 듣고 이대로 있는 것은 너무 창피하다고 생각했다.결국 왕인걸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바라보며 차갑게 말했다.“개자식! 더 이상 네놈 체면 따위 생각할 필요 없어! 당장 네놈을 죽여버릴 거야!”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왕인걸은 손바닥을 휘둘러 하현의 얼굴과 코를 때리려고 했다.그러나 그의 손바닥이 막 튀어나왔을 때 하현이 재빨리 손바닥을 휘둘렀다.“퍽!”낭랑한 소리가 울려퍼짐과 동시에 왕인걸은 얼굴이 따끔거리고 눈앞이 캄캄해지며 온몸이 멍해져 오는 것 같았다.그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다른
친구를 하자는 말을 특히 강조하며 왕인걸은 흐뭇하게 웃으면서 자신의 존재감을 확실히 알렸다.그 말속에는 친구 이상의 음흉한 관계를 의미하는 낌새가 다분히 느껴져 그를 따르던 짐승 같은 남자들이 히죽히죽 웃었다.하지만 왕인걸은 마치 해야 할 말을 정상적으로 했을 뿐이라는 듯 태연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자신감 넘치는 얼굴로 하현의 존재를 완전히 무시했다.설은아는 왕인걸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하현을 향해 차가운 눈빛만 쏘았다.“이제 다 먹었어? 그럼 가자.”이 광경을 본 여자 종업원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고약한 년! 왜 이렇게 자꾸 잘난 척하는 거야?!”“왕인걸이 스스로 발걸음을 했는데 아직도 고고한 척 콧대를 세우는 거야?!”“당신 옆에 있는 그 사람이 그렇게 값어치가 나가는 인물이라고 생각하는 거냐고!”“왕 도련님이 화를 내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 상상도 하지 못할 만큼 무서운 일이 벌어질 거야!”“자자,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해. 위협하지 마. 미녀 앞에선 상냥하게 굴어야지!”왕인걸은 여자 종업원에게 손을 내저은 다음 손에 든 와인잔을 흔들며 소금에 절인 채소와 생선볶음을 뒤적거리고 있던 하현을 보고 웃었다.“저기 선생님, 난 당신의 여자가 마음에 들어요!”“대충 다 먹었으면 저리 썩 꺼져 주시죠! 어서요!”“이렇게 예쁜 여자는 못 참죠!”“사람은 자기 분수를 알아야 해요!”말을 하면서 왕인걸은 자신의 포르쉐 열쇠와 금정 별장 출입카드를 꺼내어 하현 앞에 놓았다.이 모습을 본 한 무리의 불량배들은 모두 껄껄 웃으며 하현을 비웃었다.한 방에 보내버리는군!완전히 더는 큰소리치지 못하도록 쇄기를 박는 거지!눈앞의 얼뜨기는 아마 800년을 분투해도 저런 물건은 손에 넣지 못할 거야!예전에 왕인걸이 이렇게 나오자 보통 남자들은 아무 소리도 하지 못하고 순식간에 겁에 질렸었다.사회 경험이 좀 있는 남자라면 다 알 것이다.이런 물건을 가진 남자에게 함부로 저항할 수 없다는 걸 말
”손님, 다시 한번 자세히 보세요!”“손님 옆에 있는 남자가 밥 먹는 거 말고 뭘 할 줄 알겠어요?”“보세요! 지금도 아무 거절도 못 하잖아요!”“그런데 왕 도련님은 어때요? 손님 옆에 있는 저 남자보다 몇천 배는 더 좋죠! 만약 손님이 이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할 거예요!”말을 하면서 여자 종업원은 하현에게 눈을 내리깔았다.그녀는 줄곧 하현의 존재를 알고 있었지만 궁상스럽기 짝이 없는 이 남자를 무시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녀의 눈에 금정에서 가장 가치가 있는 남자는 오직 왕인걸이었다.설은아는 더 이상 여자 종업원과 쓸데없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아 홧김에 버럭 소리를 질렀다.“저리 꺼져요!”여자 종업원도 냉소를 흘리며 지지 않고 대꾸했다.“손님, 정말 어지간하시네요!”“그렇게 있는 척하면 뭐가 좋아요? 무슨 소용이 있냐구요?”설은아는 찬바람이 쌩쌩 부는 목소리로 말했다.“자꾸 이런 식으로 나오면 당신 사장한테 말해서 당신을 해고해 버릴 거예요! 두고 보세요!”바로 그때 이들의 모습을 흐릿한 눈빛으로 쳐다보고 있던 왕인걸이 와인잔을 움켜쥐고 천천히 걸어왔다.걸을 때 뿜어져 나오는 기세가 얼마나 당차고 당당한지 보는 사람들마저 숨이 막힐 정도였다.그의 길을 막고 있던 일부 손님들은 얼른 길을 내주었다.그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일을 일부러 만들 필요가 없다고 느낀 것이다.왕인걸은 마치 원하는 것은 모두 손에 넣겠다는 듯 거만하고 당당하게 걸어왔다.그를 따르던 무리들도 지금 히죽히죽 웃으며 다가왔다.“쯧쯧쯧, 결국 왕인걸이 이렇게 여자를 빼앗는군!”“자고로 왕인걸의 눈에 띈 여자가 도망갈 곳이 어디 있겠어? 순순히 그의 품에 안기는 게 능사지!”“예전에 청순미녀라고 이름을 날리던 어린 스타가 처음에는 왕인걸한테 시큰둥한 태도를 보였었지.”“그러다가 나중에 어떻게 되었어? 왕인걸이 모든 지원을 끊자 결국엔 그에게 기어들어왔지.”“그리고 자기가 여신급 여자를 데리고 다니는 줄 알고 왕
”안녕하세요.”하현과 설은아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 곱게 화장을 한 종업원이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들고 다가왔다.“저분이 두 분께 드리는 것이니 받아주세요.”종업원은 설은아와 하현이 거절할 틈도 주지 않고 귀한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술을 보냈어요? 82년산 라피트를?”하현과 설은아는 모두 약간 어리둥절해하면서 종업원이 가리키는 곳을 쳐다보았다.지방시에서 옷을 맞춰 입은 멋진 남자가 와인잔을 살짝 들어 보였다.그는 젊고 멋있고 부유해 보였다.딱 봐도 금정에서 성공한 사람 같았다.그리고 그의 곁에는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몇 명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었다.순간 그들은 하현과 설은아를 바라보며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이었다.하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설은아가 주저하지 않고 냉랭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난 저분을 몰라요. 그러니 이거 가져가세요!”“그게...”설은아의 차가운 눈빛에 여자 종업원은 눈썹을 찡그리며 불만스러운 표정을 지었다.“손님, 손님 뜻은 알겠지만 왕 씨 가문 도련님이 다른 사람한테 이렇게 대하는 건 아주 드물어요. 그러니 저분의 호의를 받아들이는 게 좋을 거예요.”“어쨌든 금정에 왔으니 저분이 젊고 잘생기고 부유하다는 걸 모르진 않을 테니까요!”“많은 여자들이 저분한테 시선 한 번 받으려고 해도 좀체 기회가 없었다구요!”“저분이 와인을 한 병 주셨어요. 그것도 82년산 라피트 한 병을요! 설마 당신들은 이게 얼마나 영광스러운지 모르는 건 아니겠죠?”“정말 이해가 안 되네요. 왜 거절하시는 거예요?”예쁜 종업원은 설은아가 배려라는 걸 너무 모른다고 생각한 듯했다.보아하니 왕 씨 가문 도련님은 이곳의 단골이고 신분이 범상치 않으며 이 여자 종업원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모양이었다.이것은 어린아이라 하더라도 단번에 알 수 있는 것이었다.하현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앞에 있는 안줏거리를 씹었다.계속 먹자니 맛이 나쁘지 않았다.방금 비행기
저녁 6시, 금정 쇼핑센터 맞은편에 있는 금정 포장마차.포장마차라고는 하지만 사실 이곳은 금정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 중 하나이고 매일 수천 번까지 번호가 매겨진다고 한다.그리고 입구에 있는 주차장에는 모두 각양각색의 고급 차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었다.설은아는 진작부터 하현을 이곳에 데리고 와서 식사를 하려고 마음먹었다.그래서 그녀는 가방에서 번호표를 꺼냈을 때 적잖이 놀랐다.두 사람이 차를 세우고 금정 포장마차 안으로 들어서자 저녁 식사가 절정인 이때 화려한 옷을 입은 손님들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설은아는 종업원에게 번호표를 제시했고 두 사람은 미리 남겨둔 자리로 안내되었다.이 과정에서 설은아는 사람들의 시선을 확 끌었다.화장을 곱게 하고 팔과 허벅지를 드러낸 여자들과 달리 설은아는 별로 화장기도 없지만 외모나 기질로 보아 모든 사람들을 압도하기 충분했다.예쁜 여자를 옆에 둔 남자들도 설은아를 힐끔힐끔 쳐다보았고 눈에선 뜨거운 시선이 광선처럼 빛났다.이 사람들 중에는 금정의 부잣집 2세들도 있었고 이제 막 사업에 분투해 성공 가도에 진입한 사람들도 있었다.물론 의기양양하고 패기 넘치는 스타트업 종사자들도 많았다.기질과 스타일로 볼 때 이 사람들은 하현을 앞서 나가는 것처럼 보였다.그래서 설은아 옆에 있는 하현을 보고 많은 사람들은 야유를 보냈다.그러나 설은아는 이 사람들을 무시하고 자리에 앉은 후 테이블 사이사이를 지나가는 주문 기계에 몇 가지 특별 요리를 주문한 다음 손을 뻗어 하현에게 차를 따라주었다.모처럼 부드러운 여인의 손길을 느끼며 하현은 술을 한잔 마신 뒤 설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샤넬의 코트를 입은 그녀는 늘씬하고 매력적인 몸매를 가졌다.여기에 옥처럼 빛나는 외모와 가끔 다리를 꼴 때마다 흘러내리는 미끈한 각선미는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안달나게 했다.하현은 설은아가 사업에서 성공 가도를 달리면서 더욱 눈부시게 빛나는 슈퍼우먼이 되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그는 찻잔
이때 간민효는 하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서 잔뜩 호기심이 솟아올랐다.그녀는 다시 하현에게 조금 더 다가가 그의 귀에 대고 입김을 불어넣으며 말했다.“하현, 오늘 밤 시간 있어? 같이 밥 한 끼 할까?”“고맙지만 오늘 밤 하현은 시간이 없어!”냉랭한 표정으로 일관하던 설은아가 마침내 더는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그녀는 하이힐을 신고 당당하게 걸어와 하현을 자신 쪽으로 잡아당겨 팔짱을 끼고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며 말했다.“하현은 오늘 밤 나와 함께 저녁을 먹을 거거든.”간민효는 설은아를 보고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말했다.“설은아, 이 사람이 그 능력 없는 네 전남편이야?”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비슷한 외모에 비슷한 나이대의 두 여인을 쳐다보았다.설은아와 간민효가 아는 사이?하지만 두 사람이 아는 사이인 것이 정상이었다.모두 금정에서 내로라하는 정상급 인물들이었기 때문에 모를 수가 없었을 것이다.하지만 설은아는 간민효에게 무슨 설명을 하기도 귀찮아서 얼른 하현을 끌고 VIP 출구로 나와 자신의 빨간 페라리로 들어갔다.그 후 그녀가 가속페달을 밟자 차는 굉음을 내며 쌩하니 그 자리를 떠났다.갑자기 혼자가 된 간민효는 멍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조수석에 탄 하현은 안전벨트를 매면서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오랜만에 만난 전처, 아니 와이프라고 해야 하나?이런 어색하고 떨떠름한 자리라니!차는 금정 국제공항을 빠져나왔고 하현이 금정의 가을빛을 감상할 사이도 없이 설은아는 거칠게 차를 몰았다.그리고 가속페달을 사정없이 밟으며 그녀는 떠보는 듯 입을 열었다.“간민효, 예쁘고 상냥하지?”맞는 말이었다.간민효는 전신급에 달하는 독술을 가졌으면서도 아름답고 성격도 시원시원했다.그리고 몇 시간 동안 함께 지내면서 하현은 그녀의 기질이 참 따뜻하고 상냥하다는 것도 알았다.그러나 차 안을 뒤덮은 질투의 불길을 느끼며 하현은 정색을 하고 말했다.“간민효가 어느 정도 사람 좋고 매력적이라는
두 사람 사이에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비행기는 어느새 금정 국제공항에 무사히 도착했다.하현과 간민효는 함께 VIP 통로를 걸었다.얼핏 보면 두 사람이 한 쌍의 연인처럼 보였다.이에 간민효의 뒤를 따르던 양복 차림의 남자는 못마땅한지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두 사람은 공항의 VIP 출구에 다다랐고 간민효는 하현을 향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현, 어디로 가는지 모르겠지만 가는 길까지 내가 데려다줄게.”하현은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야. 비행기 탔을 때 이미 아내한테 내 일정을 보냈어.”“아마 마중 나올 거야.”“아내?”‘아내’ 라는 말을 들은 간민효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네 번째 손가락을 쳐다보았다.반지가 없었다.간민효의 눈빛을 알아차린 하현이 입을 열었다.“아, 이제 전처라고 봐야지.”하현의 말을 듣고 간민효는 그제야 소리 없이 웃었고 한층 더 하현에게 관심이 생기는 것 같았다.“하현, 당신에게 아내가 있든 없든 간에 내가 말했듯이 무슨 일 있으면 나한테 전화해. 금정에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도와줄게.”“자, 우리 작별의 포옹이라도 해!”이 말을 들은 몇 명의 사내들이 모두 순식간에 고개를 빳빳이 들고 하나같이 험악한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자, 다음에 또 봐!”하현도 험악한 표정의 남자들의 시선을 무시한 채 앞으로 나가 간민효와 포옹을 나누고 그녀의 귀에 대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참, 마침 내가 무학에 어느 정도 연구를 하고 있었는데 당신 몸에 뭔가 병이 있다는 걸 알고 있어. 아마 십중팔구는 입신에 이르는 독술과 관련이 있을 거야.”“그래서 말인데 내가 필요할 땐 언제든 연락해. 내가 도와줄 수 있는 일이 있으면 얼마든지 도와줄게.”말을 하면서 하현은 쪽지 한 장을 여자의 가슴에 쑤셔 넣었다.이 행동은 예의가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런 행동을 함으로써 하현은 침착하게 기운의 광선을 통과해서 여자의 심맥을 보호했다.“내 병을 눈치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