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설동수와 설민혁 두 사람은 쫓겨났다.회사 밖 큰 길에 서 있는 두 부자의 안색은 극도로 안 좋아졌다. “설은아 이년은 분명 그 하 세자와 한통속 일거야. 그렇지 않고서야 이 담당자가 왜 그녀의 체면을 세워주려고 하겠어!?”“은아가 슬기의 절친이라고? 귀신을 속여라!”설민혁은 지금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 설동수는 머리를 쥐어짜며 말했다. “이번에 일이 아주 성가시게 됐네. 설은아가 새롭게 권력을 잡지 않는 이상 그녀는 분명 우리 사정을 들어주지 않을 거야.”“우리가 그 식구들을 짓밟는 것도 쉽지 않았는데 이렇게 쉽게 포기해야 하는 건가?”“하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설씨 회사는 내일 바로 파산하게 되고 우리의 재산을 빼돌릴 겨를도 없어……”두 부자는 서로 눈을 마주치며 서로 씁쓸해 했다.남원에 온 후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생각했다. 설은아가 다시 그들 머리 위에서 이래라 저래라 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하게 그녀를 설씨 집안에서 쫓아낸 지 하루도 안돼서 그들은 또 설은아에게 부탁을 하러 가야 하게 생겼다. 그들은 남원에 세 들어 살고 있는 별장으로 돌아갔다. 설씨 어르신은 계속 거기에 머무르며 지금 설민혁 부자가 돌아오는 것을 보고는 바로 다가가 물었다. “민혁아, 일은 어떻게 됐어? 천일그룹이 너희들을 곤란하게 한 건 아니지?”설동수는 허탈한 표정을 지으며 방금 일어난 일을 모두 말할 수밖에 없었다.“뭐? 우리 설씨 집안이 파산 절차를 밟아야 한다고?”“게다가 사정을 하려면 설은아만 보내야 한다고?”이때 설씨 어르신의 안색이 어찌나 안 좋아 졌는지 말도 말아라. 설동수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아버지, 그 책임자가 확실하게 말했어요. 만약 내일 설은아를 보내지 않으면 우리는 파산절차를 밟게 될 거에요. 그렇지 않으면 남은 49%도 지킬 수 없어요!”“설씨 회사를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설은아가 가서 사정하는 것 밖에는 없어요! 다른 사람은 안돼요!”“오늘
이 모습을 본 설재석과 희정 두 사람은 모두 의아한 얼굴이었다. TV를 보던 설유아는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언니 지금 집에 없어요.”설지연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유아야, 은아 언니가 어디 갔는지 말해줄래?”유아는 고개를 가로 저으며 말했다.“몰라요. 아침 일찍 하현이랑 나갔어요. 어디 갔는지 몰라요.”“그렇구나. 삼촌, 숙모, 그리고 유아야. 우리 먼저 갈게요.”“은아가 돌아오면 우리에게 전화하는 거 잊지 마세요!”비록 어색하기 그지 없었지만 세 사람은 고개를 끄덕였고, 그들은 물건을 두고 바로 떠났다. 설유아는 별 생각 없이 설재석과 희정 두 사람과 마주 보고는 온통 의문스러운 얼굴빛을 띄었다. “이게 무슨 일이야? 우리에게 선물까지 보내고? 우리한테 아부하는 거야?”설재석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설마 이번에 또 그 폐물이 말한 대로 딱 들어맞은 건가? 설씨 어르신이 우리한테 구걸을 하다니? 나는 조금도 그를 꿰뚫어보지 못하겠어!”희정은 궁금한 얼굴이었다. 그녀는 선물 상자를 열어보고 놀랐다. “여보, 이건 금장식, 양주, 그리고 제비집 요리, 상어 지느러미, 동충하초……”“이것들을 다 합치면 2천만 원은 넘을 거야. 그 집 사람들이 언제 이렇게 시원스러워졌지?”“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야?”부부 두 사람은 백 번 생각해도 이해가 안됐다. 은아에게 전화를 했더니 어젯밤 충전을 안 해놔서 지금 핸드폰이 꺼져있었다. 그러나 은아도 핸드폰이 꺼져있었는지는 알지 못했다. 하현에게 전화를 했는데도 받지 않자 두 부부를 더 안개 속으로 들어가게 했다. ……이때, 하현과 은아는 이미 가장 번화한 쇼핑몰, 그랜드 하얏트에 왔다. 그랜드 하얏트, 부자들의 쇼핑천국으로 불리는 곳. 듣기로 돈만 있으면 어떤 사치품이든, 당신이 꿈꾸며 바라왔던 물건들을 그랜드 하얏트에서 살 수 있었다. 설은아는 줄곧 이곳에 대해 들어왔었는데 직접 온 것은 처음이었다. 지금 그녀는 호기
설은아의 핸드폰은 꺼져있었고 하현은 전화를 끊었다. 이쯤 되자 설민혁과 사람들은 조금 어이가 없었다. 이런 일이 생길 줄 진작 알았더라면 그들은 분명 설은아 식구들에게 조금 잘 해주었을 것이다. 그렇게 했으면 오늘 이 지경까지 떠들썩하게 할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이때 설씨 어르신에게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설민혁은 안 좋은 기색이었지만 전화를 받고 상황을 보고해야 했다. “할아버지. 우리가 일 처리를 안 하려고 하는 게 아니라요. 그 폐물 녀석이 은아를 어디로 데리고 갔는지를 모르겠어요.”“전화를 했는데 받지도 않고, 핸드폰이 꺼져있어요!”“삼촌과 숙모도 어디 갔는지 모른데요!”이 말을 듣자, 설씨 어르신의 핸드폰을 든 손이 부르르 떨렸다. 만약 설은아를 찾지 못하면 설씨 집안은 파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일단 이렇게 되면 그의 반평생 노력은 모두 물거품이 된다!“빨리 찾아와! 다 나가서 찾아. 내일 아침 전까지 그녀가 반드시 돌아와야 해!”“만약 그녀를 찾지 못하면 우리 설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서북풍을 마시러 가야 해!”“이 결과를 네가 감당할 수 있겠어?”설민혁은 당연히 이런 결과를 감당할 수 없었다. 설씨 집안이 일단 파산하고 나면 그가 어떻게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겠는가!그에게는 하인 같은 생활을 하라고 하느니 차라리 강물에 빠지라고 하는 편이 낫다! 계속해서 설씨 집안 사람들은 벌떼처럼 설은아와 하현 두 사람을 찾으러 다녔다. 하지만 그들은 남원이 낯설었고 또 남원은 너무 컸다.이런 곳에서 짧은 시간에 어디서 사람을 찾을 수 있겠는가? 설씨 집안 사람들을 보았을 때 하나같이 어두운 얼굴이었다. “설은아가 홧김에 일자리를 구하러 남원을 떠난 건 아니겠지? 우리가 그녀를 해고시켜 버려서?”어떤 사람이 무거운 얼굴로 입을 열었다. 그럴 가능성도 없지 않을 뿐 아니라 오히려 그럴 가능성이 컸다. 집세가 끊겼으니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이때 그는
이날 밤 설은아가 둘러본 가게는 백 군데가 넘었다. 마음에 드는 옷을 모두 입어 보았지만 가격표를 보고는 포기했다.그랜드 하얏트 물건들은 다 고가 브랜드라 싼 물건들이 없었다. 하지만 설은아는 이런 옷을 입어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고 말했다. 하현은 계속 참을성 있게 설은아 곁에 있었고, 설은아가 입어본 옷들을 다 기록해 두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마지막 가게를 둘러 보았을 때 설은아는 일종의 미션을 끝낸 기분이었다. 그녀는 하현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 옷만 입어보고 돌아가자.”“그러자.”하현은 웃으며 거절하지 않았다. 그들이 가게에 들어가 옷을 입어보려고 할 때였다. 이때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들어오는 게 보였다. 여자의 몸매는 요염하고 얼굴은 화장이 두꺼워 원래의 얼굴을 볼 수가 없었다. 남자는 슬리퍼 차림에 열쇠 꾸러미를 허리에 두르고 있었는데 딱 봐도 남원 토박이 일수꾼 같아 보였다. 여자가 들어 와서는 마음에 드는 옷은 가격표도 보지 않고 바로 구매하도록 시켰다. 이런 대범한 모습은 자연히 그곳의 점원들의 얼굴에 어색한 웃음을 짓게 하면서도 친절한 서비스를 하도록 했다. “이 옷 나도 할래!”요염한 여자가 설은아 앞으로 오더니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그녀가 입고 있는 옷을 보며 차갑게 입을 열었다. 안내원은 고개 끄덕이며 굽실거렸다. 필경 설은아는 벌써 여러 벌의 옷을 입어봤지만 하현이 돈 있는 사람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자연히 설은아를 안중에 두지 않았다. “손님, 옷 좀 빨리 벗어주세요. 이쪽 여자분께서 마음에 들어 하시네요!”이 안내원은 비록 공손한 표정을 지었지만 말 속에는 일종의 의심의 여지가 없는 맛이 배어 있었다. 설은아는 여전히 거울을 보고 있었는데 이때 눈썹을 살짝 찡그렸다. 솔직히 이 옷은 마음에 들긴 했지만 아까 가격표를 보고는 살까 말까 고민을 하고 있었다. 결국 이 안내원이 옷을 벗도록 했다. “이 옷이 마음에 드는데 아니면 창고에
설은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 이렇게 속물이에요? 이 여자는 손님이고, 나는 손님이 아닌가요?”솔직히 이 옷은 설은아가 아주 마음에 들어 했는데 거기다 그녀에게 직접적으로 옷을 벗으라고 하니 그녀는 정말 굴욕감을 느꼈다. 맞은편 안내원은 입 꼬리를 치켜 올리며 가볍게 웃었다. “아가씨, 손님들도 상중하로 나뉜다는 걸 아셔야 해요. 다른 건 말할 것도 없고 이 분의 구매력을 당신과 견줄 수 있겠어요?”“아마 이 분이 한 번 사는 옷이 당신이 평생 사는 것보다 더 많을 걸요!”이 말을 듣고 그 요염한 여자도 자신만만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사람들은 자신의 분수를 확실히 알아야 돼요. 망신당하지 않으려면……”“자신의 분수를 좀 가늠해보고 다시 나랑 비교해 볼 수 있는지 한 번 보자구요!”이때 그 열쇠를 허리에 차고 있는 남자가 요염한 여자 곁으로 다가가 담담하게 말했다. “이 가난뱅이들과 이렇게 쓸데없는 말을 많이 해서 뭐해?”“요즘은 돈이면 다 돼!”“이놈들 아무리 봐도 돈이 없어 보이는데, 그렇게 날뛰고 싶다면 돈이라도 좀 보여줘봐!”설은아는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이 여자는 딱 봐도 셋째 마누라 같아 보였는데 이지경이 되도록 날뛰고 있다니. 그녀 역시 한숨을 쉬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집안이 이런 상황이라 옷 한 벌 사고 나면 끝이다. 그 다음 방세와 숙식은 어떻게 하지?“당신……”설은아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이 갑자기 일어서서 담담하게 말했다. “이 가게에서는 누가 많이 사냐에 따라 물건을 누구에게 팔지 결정합니까?”아까 그 남자가 하현을 경멸하듯 쳐다보며 말했다. “왜? 너 나랑 겨뤄볼래?”“이 어르신이 가진 집 한 채는 너희 같은 가난뱅이들이 평생 고군분투해도 얻을 수 없는 거야!” 이렇게 말하면서 그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열쇠 꾸러미를 흔들자, 찰랑거리는 소리가 났다. 남원의 집값으로 따지면 이런 집 한 채는 적어도 6억에서 10억 정도 됐는데 이
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이 하얗게 질렸지만 그녀는 이 때도 이를 악물고 참았다. 이 요염한 여인은 오래 전부터 이런 모습에 익숙했던 것 같았고 그녀는 재미있다는 얼굴로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한숨을 쉬며 말했다.“이 가난뱅이야. 내 남편은 아주 대범한 사람이야. 4천 만원이면 네 몇 년치 월급이지.”“만약 내가 너라면 지금 당장 이 여동생은 놔두고 돈 받고 꺼지겠다!”한쪽에 있던 안내원도 일이 생길까 싶어 지금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아이고, 저도 저의 이런 불쌍함을 알아봐 줄 수 있는 큰 오라버니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 왔었어요……”“아가씨, 오늘 운 좋은 줄 알아. 이 오빠가 너를 위해서 4천 만원을 낼 테니까.”하현은 점점 표정이 싸늘해지더니 안내원과 집 부자를 담담히 쳐다보며 천천히 말했다. “기왕 쇼핑몰에 왔으니 당신들 규정에 따라서 하지.”“돈만 있으면 되는 거죠? 이 상점에 있는 옷 전부 살게요……”“그리고 당신! 4천만 원은 내가 줄게. 근데 네 여자한테 관심이 있어서 이러는 게 아니야. 나는 단지 이 여자가 내 여자한테 무릎 꿇고 사과하기를 바랄 뿐이야……”하현의 말투는 담담하기 그지 없었지만 오히려 의심할 여지 없이 압도적이었다. 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가슴이 살짝 두근거렸다. 그녀는 하현이 의외로 이런 기세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가장 관건은 그가 뜻밖에도 전부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그는 이 가게의 물건들이 얼마나 비싼지 알고 있을까?전부 다 산다면 몇 천만 원으로도 안될 것이다. “하현, 너 너무 정신이 없는 거 아니야? 너 여기 있는 옷들이 얼만지 알아?”설은아가 서둘러 입을 열었다. 그는 그저 데릴사위일 뿐이었다!이전에 서울에서 일할 때 모아둔 돈이 있다 해도 문제는 빌린 돈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가 어떻게 가게 안의 그런 물건들을 살 수 있을까? 그 집 부자는 잠시 어리둥절해 하다가 잠시 후 너털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
“선생님, 돈이 없으시면 지금 돌아가셔도 늦지 않습니다.”안내원도 하현과 낭비하는 시간을 계속 기다려 주지는 못했다. 거기다 직접적으로 나가라며 쫓아냈다. “전화 한 통 하겠습니다.” 하현은 말하면서 가게를 나왔다. “허허허, 전화를 한다고? 돈이 없으면 돈 있는 척을 하질 말지, 무슨 전화를 하겠다는 거야? 내가 보니 이 전화는 오래 걸릴 거 같은데?”요염한 여자는 팔짱을 끼고 시큰둥한 표정을 지었다. 그녀가 보기에 하현은 전화한다는 핑계로 도망간 거 같았다. 설은아도 민망한 얼굴이었다. 돈이 없으면 없다고 말을 하면 되지. 왜 전화한다는 핑계를 대는 건지. 지금 그녀는 옷을 갈아입지도 못하고 한 동안 어쩔 줄을 몰라 했다. 한 30분쯤 지나자 가게 안에서 누군가 하이힐을 신고 급한 표정으로 걸어 나오는 소리가 들렸다. 뒤이어 그 가게 점장이 빠른 걸음으로 나와 핸드폰을 쥐고 사방을 두리번거렸다. “점장님, 여기 어떤 사람이 소란을 피우고 있는데……”그 안내원은 자신의 점장을 보자 마자 알랑거리는 얼굴로 건너갔다. “탁_____”쟁쟁거리는 소리가 나자 점장은 안내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뺨을 한 대 갈겼다. 그리고는 설은아 앞으로 달려가 고개를 숙이고 허리를 굽히며 말했다.“아가씨, 저희 안내원의 서비스가 좋지 않아 쇼핑에 불편을 끼쳐 드린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변상하는 뜻으로 지금 입고 계신 옷은 저희가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이 말을 마치고 점장은 온몸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랜드 하얏트 역시 이전에 하현이 사들인 것으로 최근 천일그룹에 통합되고 있었다. 방금 그랜드 하얏트의 총매니저가 이 점장에게 전화를 걸어 회장이 그 가게에 쇼핑을 하러 갔는데 카드를 놓고 왔으니 알아서 잘 처리하라고 하였다. 이 점장은 줄곧 뒤에서 지켜보고 있었으니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당연히 알 수 있었다. 딱 봐도 집 부자인 남자는 아무리 봐도 그들의 회장일 리가 없었다. 이 남자 말고 가게에
지금 이 집 부자는 점장과 눈이 마주쳤다.두 사람이 이 순간만큼은 서로 마음이 통하는 느낌이었다. 지금 당장이라도 이 요염한 여자를 목 졸라 죽이고 싶었다. 한 사람은 하현의 신분을 추측하고 있었다. 한 사람은 하현의 신분이 보통이 아니라는 것을 직감했다. 지금 이 큰 일이 별일 아니길 바라고 있었다. 그런데 이 미련한 여인은 아직도 여기서 이러쿵저러쿵 떠들어대고 있었다!이건 그들을 죽이려는 거다! 그런데 그들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이 벌써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지금 그 역시 그 졸부는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 점장을 보면서 담담하게 말했다. “내가 방금 천주환씨한테 전화를 했는데 조금 있으면 와서 결제 해줄 거예요.”‘천주환’이 세 글자를 들었을 때 이 점장의 머리가 ‘쿵’하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은 이 세 글자가 무엇을 의지하는지 몰랐지만 그는 분명히 알고 있었다!사장님, 이건 그 그랜드 하얏트 사장의 이름이었다!웬만한 사람은 사장의 성도 뭔지도 모른다. 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사장의 이름을 그대로 말할 수 있다니.게다가 방금 사장님에게 전화를 걸다니, 이건 모든 것은 자신의 추측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빠짐없이 설명해 주고 있었다. 이때만 해도 이 점장은 겨우 냉정함을 유지하고 있었다. 그는 이마에 식은 땀을 흘리며 말했다. “선생님, 마음에 드시는 물것이 있으시면 가져가셔도 됩니다. 제 성의라고 봐주세요……”“성의?”하현은 웃었다.“내가 돈이 모자라서?”“네네, 안 부족하시죠, 저저……”점장은 ‘저’라는 말만 한참 하다가 이 한 글자 밖에는 한 마디도 하지 못했다. 이때 바로 양복 차림에 하현과 비슷한 젊은이가 가게로 들어오는 것을 보았다. 하현 앞에 이르자, 그는 황송한 얼굴로 말했다. “하……”하현은 담담하게 그를 힐끗 쳐다보았다. 이 젊은이는 숨을 깊이 들이 쉬며, ‘세자’라는 두 글자는 머릿속으로만 생각하고 난 후 곤란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여수혁?”하현은 여음채를 쳐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그가 이 병원 대주주인 동시에 당신의 뒷배라고?”“그래! 알고 나니 이제야 겁이 나?”“무서운 줄 알면 이제 무릎 꿇고 내 신발 밑창을 핥아!”“그리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이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여수혁도 당신한테 살길을 열어줄지도 모르지!”“그렇지 않으면 당신 오늘 재수 없을 줄 알아!”여음채는 경멸하는 기색을 한껏 드러내었다.하현이 남양 무맹과 여수혁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 분명했다.강옥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여수혁은 남양 무맹주가 총애하는 제자야.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의 부문주라서 건드리기가 쉽지 않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어릿광대일 뿐이야.”“뭐? 어릿광대?”하현의 말에 여음채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한테 그런 용기를 줬는지 모르겠군! 흥!”“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이 사람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 아들이야!”“이 사람은 페낭 무맹 장로가 아주 아끼는 제자라구!”“게다가 남양 무맹이 페낭 무맹에 파견한 제자라고!”“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거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뿐만 아니라 실력도 비할 데 없어!”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예닐곱 명이 걸어와 소리치며 하현을 향해 멸시하는 눈빛을 보이며 비아냥거렸다.“야, 너 오늘 큰일 났어! 아주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우리가 당신 목숨뿐만 아니라 가죽까지 싹 벗겨버릴 거거든! 하하하!”이 사람들은 하현이 무슨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원하는 대로 칼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은 더욱 경멸하는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같은 외지인이 감히 그들 같은 거물들한테 입을 놀리다니 정말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망나니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외지인 관광객 주제에 너무 오만하고 포악하지 않는가?진 반장이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려는데 여전히 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려고 하다니, 이건 지나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진 반장은 얼굴을 가리고 일어나 하현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뭔지 알 길이 없어 진 반장은 순간 분노했지만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젊은이,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니야?”“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또다시 뺨을 때리며 냉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대단하게 나한테 큰소리쳤다는 건 잘못을 하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도리도 잘 안다는 뜻 아니셨나?”“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몰라?”진 반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았다.생각 같아서는 하현을 죽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소리 없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미안해! 잘못했어!”그는 하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구봉이 전화를 건 정종화 총경이 두려운 것이 분명했다.감히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그가 하현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상대방의 사과를 들은 후에야 하현은 앞으로 나와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진 반장은 그의 무리들을 데리고 쏜살같이 꽁무니를 뺐다.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은 하현이 진 반장을 내쫓을 만큼 강력한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진 반장 일행이 꽁무니를 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진 반장의 얼굴까지 때렸다.“내가 당신을 얕잡아 본 것 같군. 당신이 이렇게 큰 뒷배를 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진 반장이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여음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냉소를 흘렸다.“그렇지만 똑똑히 들어. 당신 뒤에 얼마나 큰 거물이 있든 간에!”“페낭 병원의 뒷배가 훨씬 강할 거야!”“날 건드려?! 흥! 두고 봐! 당신은 죽
선두에 선 남자를 보자 여음채는 안색이 환해졌다.그리고 나서 얼른 다정하게 남자의 팔짱을 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진 반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바로 저 자식이에요. 저 자식은 우리가 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때린다고 호도하고 있어요.”“게다가 내 아랫배까지 걷어찼다구요!”“저놈을 반드시 감옥에 가둬 주세요. 그 안에서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요.”여음채는 하현을 가리키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부일민 일행도 모두 큰소리로 맞장구를 치며 하현이 억지를 부린다고 한마디씩 보탰다.“뭐? 감히 병원에서 원장님을 때려요?”“대낮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법도 뭣도 없답니까?”진 형사는 하현의 얼굴을 주시했고 곧바로 그가 남양인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그러자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며 비아냥거렸다.“이봐, 어서 저놈을 데려가! 모질게 심문해! 지독하게 조사해!”“감히 반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법으로 다스려!”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 형사를 쳐다보았다.“당신은 어쨌든 형사반 반장이면 경찰서를 대표해서 일을 해야죠. 무슨 일이 생겼으면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일을 어떻게 하든 당신 같은 사람이 날 가르칠 건 아니지!”“당신이 먼저 사람을 치고 법을 어겼어. 그러니 법 집행자로서 당신을 연행하는 건 당연한 거야!”“물론 당신도 저항하는 길을 택할 수 있어!”“하지만 저항한 결과는 내가 당신을 한 방에 죽이는 거야!”진 반장은 언성을 높였고 눈을 부릅뜨고 하현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려고 손을 내밀었다.하현은 손을 들어 진 반장의 오른손을 막은 뒤 담담하게 하구봉을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걸어.”하구봉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곧바로 하현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건너편에 냉랭한 목소리가 전해오자 하구봉은 핸드폰을 진 반장에게 건네주었다.“당신의 직속 상사가 전화를 받아
하현은 여음채의 말을 듣고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페낭은 정말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곳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이렇게 공공연하게 정경유착이 만연할 줄이야!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여음채는 순간 하현이 겁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자 여음채는 다시 의기양양한 기운을 내뿜으며 이를 악물고 하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왜? 무서워?”“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어?”“지금이라도 용서를 빌면 봐줄 수도 있어. 아직 늦지 않았다구.”“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기다리는 건 억세게 불행한 일들뿐일 거야!”말을 하는 동안 여음채는 부일민에게 손짓을 하며 다른 의료진과 경호원들을 모두 불러들여 하현 일행을 겹겹이 에워쌌다.기세등등하게 하현 일행을 노려보고 있는 그들 무리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사나운 모습이었다.이 광경을 본 여음채는 더욱 득의만만해져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이봐, 이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어서 사과하고 내 신발 밑창을 개처럼 깨끗이 핥아!”“그렇지 않으면 당장 오늘 밤부터 감옥에서 썩어야 할 거야!”강옥연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떠올랐다.하구봉은 콧방귀를 뀌며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주위의 구경꾼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현에게 다가올 불운을 생각하며 탄식했다.아무리 거세게 싸운다고 해도 경찰관들 앞에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설마 하현 일행은 법이라도 어기려는 건가?하현은 냉담한 얼굴로 여음채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평온한 표정이 되었다.“내가 감옥에 갈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 그런데 어떻게 이익만 챙기고 인명을 돌보지 않는 거야?”“멀쩡한 병원이 사기꾼 소굴이 되어 관광객을 속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군.”“당신들 오늘 잘 만났어. 당신들은 이제 좋은 날 끝났어.”“이 병원, 망하게 해 줄게.”하현의 말을 들은 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그녀들은 허
잠시 후 넋이 나간 듯 멍하던 여음채는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일어나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개자식! 감히 날 걷어차?”“내 엄마가 누군지 알아?”“당신은 누구야? 의료 윤리를 저버린 원장 아니야?”하현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때린 건 당신이야.”“뭐?”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현의 목소리와 행동에 여음채는 화가 치밀어 올라 하현을 가리키며 호통쳤다.“모두 저놈을 죽여!”“일이 터지면 내가 다 수습할 거야!”그녀의 말에 수십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이 사납게 웃으며 하현을 에워쌌다.강옥연은 이런 막무가내 인사를 본 적이 없었다.병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라니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강옥연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조심해!”그녀의 말을 들은 부일민은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우리 원장님한테 미움을 산 사람은 살아남지 못해!”예쁘장한 간호사들은 앳된 얼굴로 눈을 흘기며 거들었다.“흥! 조심해 봤자 소용없어! 죽어야 해!”주위를 둘러보던 환자와 의료진들도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하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여음채의 인품이 별로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영향력과 인맥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이 페낭 병원에서 누가 감히 그녀한테 대들 수 있겠는가?아무 물정 모르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하필 여음채를 건드리다니!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이때 선두에 선 경호원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하현에게 다가왔다.그는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꺾으며 광분한 사냥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이놈아!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워? 여기가 어디라고? 눈을 어디다 둔 거야?”“퍽!”“앗!”경호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듣기 귀찮다는 듯이 손바닥을 휘둘러 그를 내동댕이쳤다.맨 앞에 있던 경호원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기절하고 말았다.기절했어?!이 광경을 보고 놀
앞뒤 사리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음채의 모습에 강옥연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뭐가 모욕이에요?”“당신들은 환자를 구하고 비용을 청구해야 하는데 환자를 구하기는커녕 무슨 스타가 나타났다고 부리나케 쫓아다니지 않았냐구요?!”“응급실에 30분씩이나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보증금은 돌려주지 못하겠다니요?”“당신들 같은 병원이 무슨 의료 윤리 의식이 있겠어요?”“병원이 아니라 사기 소굴이에요!”강옥연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식약청에 고소할 거예요!”하현은 침착한 눈빛으로 여음채의 표정을 살피다가 하구봉에게 원가령의 안전을 보호하라는 손짓을 했다.아마도 강옥연의 강경함에 여음채는 일을 처리하기가 좀 곤란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여음채는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달려오는 수십 명의 경비원들에게 하현 일행을 포위하라고 손짓하며 지시했다.이어 그녀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긴 다리를 뻗으며 다가와 말했다.“우리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고 잘못을 하면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해.”“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해. 그리고 내 신발 밑창을 깨끗이 핥아. 그뿐만 아니라 우리 부일민 의사에게 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이 일은 이대로 덮어 두겠어!”“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지 마.”“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칠흑 같은 남양 감옥에 갇히게 될 거야!”“1년 반 동안 안에서 통곡만 하다가 세월을 보내게 될 거라고!”분명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여음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능수능란했다.어떤 외국인이라도 감히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모두 이런 꼴을 당했을 것이다.부일민 일행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린 채 고소하다는 듯 히죽거렸다.큰소리 뻥뻥 치더니 하현이 아주 제대로 걸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페낭 거물도 아닌데 감히 페낭 병원에 와서 행패를 부려?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는 거지!강옥연은 한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은 아주 법도 뭣도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