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팀장이라는 남자는 겁에 질린 얼굴로 하현을 힐끔 쳐다보았다.방금 걸려온 전화는 서장실에서 온 것이었다.내용은 간단했다.하현은 주향무와 호형호제하는 사이라는 것이다.경찰서장과 호형호제하는 사이라고?수사팀장이 아무리 마음을 크게 먹는다고 해도 도저히 움직일 수 없는 노릇이었다.하지만 수사팀장의 말에 이정양의 안색은 급격히 일그러졌다.“지금 뭐라고 하는 거야?”“뭐? 관여할 수가 없다고?”“당신은 경찰이고 법을 수호하는 사람인데 왜 관여할 수가 없다는 거야?”“이런 범죄자를 체포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우리 선량한 서민들을 보호하고 금정 발전에 기여하겠다는 거야?”수사팀장은 이정양의 말을 듣고도 별다른 말을 내놓지 않았고 그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부하들을 데리고 떠날 채비를 했다.이정양은 수사팀장의 행동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어이가 없어 눈이 휘둥그레진 이정양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하현이 담담하게 먼저 입을 열었다.“누가 당신더러 가도 좋다고 했어?”수사팀장은 눈꺼풀이 펄쩍 뛰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이봐, 젊은이. 당신 지금 뭐라고 했어?”“사람이 잘못을 했으면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지...”“방금 당신은 옳고 그름을 가리지도 않고 선량한 시민인 나를 겁박하며 체포하려고 했어.”“그런데 이제 와서 사과도 없이 그냥 가겠다고?”하현은 수사팀장에게 다가가 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당신이 언제 날 시민으로서 존중해 준 적 있어?”“왕법을 존중한 적 있냐고?”“촥!”맑고 낭랑한 소리가 울리며 수사팀장의 얼굴이 날아갔다.이윽고 그의 얼굴엔 시뻘건 손자국이 떠올랐다.너무나 거침없는 행동이었다.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사람을 때리다니?!감히 수사팀장의 얼굴을 때리다니?!후 팀장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다 화가 치밀어 오르는지 버럭 소리를 질렀다.“이봐!”“퍽!”하현은 손바닥으로 또 한 번 그의 얼굴을 때렸다.“그래, 나 여기 있어!
십여 명의 사내들은 한 걸음씩 다가와 허리춤에 찬 쇠파이프와 총을 꺼내들기 시작했다.하지만 바로 그때 이정양의 손안에서 갑자기 심한 진동이 느껴졌다.진동이 어찌나 큰지 이정양은 온몸이 흔들리는 것 같았다.무시하려던 그는 핸드폰에 떠오른 이름을 본 순간 받지 않을 수 없었다.상대방의 음성을 듣던 이정양은 갑자기 눈가에 경련을 일으켰고 눈꺼풀이 쉴 새 없이 떨리며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는 통화를 마치고도 한참 동안 숨을 깊이 들이마신 뒤 하현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내가 잘못 봤어.”“사람을 잘못 봤다고.”순간 진홍민과 강우금의 마음속에 불길한 예감이 떠올랐다.방금 후 팀장도 그런 표정을 보였기 때문이다.“아버지, 왜 그러세요...”양복 차림의 사내들은 모두 이를 악물고 말했다.“사장님, 말씀만 하십시오! 우리가 죽여 버릴 겁니다!”“도망가는 건 나중에라도 할 수 있습니다!”그들도 하현의 배경이 결코 작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그렇지 않았다면 이정양 같은 거물이 이런 표정을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그들은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하현을 해치우고 윗전의 체면을 살려 주는 것을 기꺼이 자처하고 나섰다.이정양의 안색은 여전히 좋지 않았다.그는 주먹을 꽉 쥐며 불만 가득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지금 당장이라도 하현을 목 졸라 죽이고 싶었지만 오늘은 화를 참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방금 전화가 온 사람은 다름 아닌 주광록이었기 때문이다.내용은 단 한 줄이었다.하현은 그와 호형호제하는 사이이니 적당히 하라는 것이었다.주광록은 금정 관청 주택건설부 부장이었다.금정의 모든 부동산 개발을 관리하는 수장이었다.이정양이 아무리 대담한 성격이라 할지라도 이런 상황에서 하현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하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주광록이 움직일 것이고 그러면 진화개발이 하는 일에도 상당한 영향을 받게 된다.그 시각 후 팀장에게서 메시지가 왔다.이양표가 감옥에 갇혔고
개자식!나쁜 놈!어디라고 함부로 날뛰는 거야!이정양의 경호원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손에 든 총으로 하현을 겨누었다.“내가 죽이고 말 거야!”아쉽게도 그들이 손을 쓰기 전에 하현은 테이블 위의 젓가락을 날려 그들의 손목을 뚫어 버렸다.“으악!”고통에 몸부림치는 비명이 난무했다.경호원들은 손에 든 총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여기저기 피가 튀기는 모습을 보고 진홍민과 강우금은 귀신이라도 본 양 눈이 휘둥그레졌다.무시무시한 하현의 실력과 결단력은 그녀들이 상상하는 것 이상이었다.남은 경호원들도 모두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며 이를 꽉 깨물었지만 발이 땅에 붙은 듯 함부로 움직이지 못했다.그제야 그들은 알아차렸다.하현 앞에서 그들의 실력은 태풍을 앞에 두고 나아가려는 겁 없는 모기의 헛된 꿈에 불과하다는 것을.“왜? 아직도 안 꺼지고 뭐 하는 거야?”하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당신들의 사정을 봐 줬다고 해서 내가 당신들을 죽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어?”하현의 말은 아무것도 무서울 것이 없다는 말처럼 들렸다.진홍민 일행은 이 말을 듣고 또 한 번 얼어붙지 않을 수 없었다.하현이 이렇게까지 거침없이 행동할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가장 어이없고 받아들이기 힘든 것은 재산이 어마어마한 이정양도 하현의 이런 행동 앞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모두 하현에게 길을 비켜 줘!”순간 이정양은 심호흡을 하고 이를 갈며 입을 열었다.이 지경이 되어서까지 강경하게 행동하면 분명 손해 보는 쪽은 자신이라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푸른 산은 변하지 않고 푸른 물은 오래도록 흐르지. 우리는 어딘가에서 똑 다시 만나게 될 거야!”“그땐 이렇게 끝나지 않을 거야!”이정양은 어금니를 꽉 깨물며 매서운 눈빛으로 말했다.지금이라도 당장 하현을 잡아뜯고 싶어 안달난 눈빛이었다.그는 반드시 복수할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몇 번이나 맹세했다!“개자식! 그렇게 허세
아들의 말에 이정양의 얼굴에도 잔혹한 미소가 번졌다.이여웅의 말이 맞았다.양측의 신분과 지위가 이미 모든 것을 말해 주었다.하현이 아무리 뛰어난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뒷배를 믿고 호가호위하는 존재일 뿐이다!그리고 자신이 주향무과 주광록 두 형제와 맞설 수 있는 뒷배를 찾는다면 누가 하현을 지켜줄 수 있겠는가?그야말로 썩은 동아줄일 뿐이다!영원히 이런 신분의 차이는 뒤집을 수 없다!진홍민과 강우금은 마침내 회심의 미소를 주고받았다.그녀들도 이정양과 마찬가지 심정이었다.아무리 하현이 날고 기는 실력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한 방에 날아갈 종이호랑이에 불과했다!비록 이런 생각들이 자기만족일 수 있지만 이런 식의 정신적 승리는 마음속의 평안을 가져다 주었다.그 자리를 떠나려고 마음먹었던 하현은 이여웅의 말을 듣고 발걸음을 뚝 멈췄다.그는 고개를 돌려 이여웅을 힐끔 쳐다보았다.“아직도 가르침이 부족한 건가? 내 말 못 알아들었냐고?”“내 아내를 건드리겠다고?”“내 가족까지 건드리겠다고?”“진심이야?”이여웅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어쨌든 당신은 실력이 좀 있으니까 처리하기 좀 어려울지도 모르지!”“하지만 당신 가족들을 건드리는 건 아무 문제없어!”“난 그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어. 그것도 모든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아주 처참히 죽여 버릴 거야.”“결국 당신은 혼자 남아 외롭게 남은 인생을 살다 죽겠지!”지금 이 순간 이여웅은 온몸에 광기가 흘러넘쳤다.흉악한 속내를 보이며 마음속의 원한을 가감 없이 모두 드러내 놓았다.“가족들한테 잘해 줘!”“어쩌면 그날이 가족들과 만나는 마지막 날일 테니까.”“마지막을 잘 보내.”말을 마친 후 이여웅은 하얀 이를 드러낸 채 흉악한 악마의 모습을 보였다.그가 내뱉는 숨결에 피비린내가 진동했다.이여웅은 오늘 손과 발이 부러졌을 뿐만 아니라 체면도 구겼다.가장 중요한 것은 진화개발과 그의 아버지 이정양조차도 하현에게 얼굴을
하현은 싸늘하게 입을 열었다.“당신 아들은 나한테 안 돼요. 그럴 깜냥이 못 된다고.”“이거나 받아요. 부의금이에요.”“다음 생에는 당신 가족 모두 좀 선량한 사람이 되어 태어나길 바라요.”말을 하면서 하현은 지갑을 열어 오만 원권 한 장을 꺼내 ‘휙’하고 이정양의 얼굴에 던졌다.이정양은 엉겁결에 지폐를 받아들고 흰자위를 드러내며 분노를 가득 드러냈다.그가 큰 소리로 호통을 치려고 하던 순간 하현이 계단을 내려갔고 언제 나타났는지 구석에서 한 남자가 불쑥 튀어나왔다.남자는 마치 영화의 주인공처럼 쌍권총을 쥐고 미친 듯이 방아쇠를 당겼다.뜻밖의 총탄에 미처 반응하지 못한 이여웅과 진홍민이 그대로 땅바닥에 주저앉았다.이정양이 놀라서 몸을 돌린 순간 총탄이 그의 미간에 박혔다.지페를 손에 쥔 채 도저히 이 상황을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불뚝 튀어나온 그는 하늘을 향해 그대로 쓰러졌다.강변의 한적한 카페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저녁 6시 정각.하현은 뻣뻣한 목을 문지르며 금정 경찰서로 나왔다.오늘 증인으로서 조사를 받기 위해 경찰서에 나와 앉아 있는 것이다.그와 이여웅 부자 사이에 갈등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범인은 따로 있었다.바로 진홍헌이었다.진홍헌의 중천그룹과 진화개발 사이에는 격렬한 갈등과 응어리진 원한이 있었다.그 연유로 진홍헌은 투신할 생각도 했었고 진홍헌의 아버지도 이 씨 부자로 인해 온몸이 마비되어 식물인간이 되었다.이런 상황에서 진홍헌이 급히 담을 뛰어넘어 사람을 죽이고 복수를 감행한 일이 이해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다.하현과 진홍헌 사이는 물과 불처럼 사이가 좋지 않았다.양측은 설유아의 문제로 꽤나 갈등이 깊었다.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하현은 이 일과 전혀 관련이 없었다.하현이 잘못한 것이라면 남들 앞에서 이여웅의 손발을 부러뜨린 것이었다.하지만 그들이 모두 죽었으니 잘잘못을 따지는 것도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결국 하현은 풀려났다.하지만 진홍
하현의 말에 간민효의 예쁜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당신 생각은 어때?”환하게 웃는 간민효의 얼굴, 온몸을 덮고 있는 원피스로도 감춰지지 않는 매끈한 몸매, 그리고 구름 사이로 슬쩍슬쩍 모습을 비추는 보름달 같은 눈부신 다리를 보며 하현은 잠시 정신이 아득해졌다.이 여자는 그야말로 요물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했다.정상적인 남자라도 조금만 정신줄을 놓으면 출구 없는 그녀의 매력에 완전히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할 것이다.“사실 오늘 많은 사람들이 당신을 데리고 가서 환영회라도 열어주려고 벼르고 있어.”“신사 상인 연합회, 형 씨 그룹, 금정은행 모두 주 씨 형제들이 장악하고 있는 조직이야. 모든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밖에 없는 사람들이지.”“그들이 나타나면 언론에 쉽게 띌 수 있고 예상치 못한 나쁜 여론도 불러일으킬 수 있어.”“그래서 소식을 듣고 내가 이렇게 당신을 데리러 온 거야. 정말 대단한 우정이지 않아?”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람들이 이렇게 신경 써 주니 몸 둘 바를 모르겠군.”하현이 아침에 몇 군데 전화를 돌리면 쉽게 끝나는 일이었다.하지만 부득이한 경우가 아니라면 일일이 세세한 내용까지 다 말하고 싶진 않았다.그래서 그는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은 채 그냥 경찰서를 나섰고 진홍헌에게 모든 화살이 돌아가도록 내버려두었다.보아하니 많은 사람들이 이 일에 눈과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듯했다.간민효는 하현을 힐끔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하현, 난 가끔 당신이 이해가 되지 않을 때가 있어.”“당신은 분명 보통 인물이 아닌데 한 여자를 위해 기꺼이 데릴사위 신세를 마다않고 있어.”“지금 우리가 장생전을 소탕하기 위해 힘을 모으고 있는데 왜 혼자, 그것도 자발적으로 이런 큰 위험을 감수한 거야?”“자꾸 이런 식이면 내 마음이 안 좋을 거라는 거 몰라?”여자는 작정하고 하현을 나무라고 있었다.잠자코 듣고 있던 하현은 무심한 듯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물론 장생전의 일이 중요한
”콜록콜록!”“앞에 뭔가 일이 생긴 거 같아. 나 내려가서 좀 볼게.”하현은 꿈에서 벌떡 깨어난 듯한 어색한 표정을 지으며 화제를 돌렸고 빠르게 자신의 왼손을 그녀의 허벅지에서 거둬들여 차 문을 열고 달려나갔다.간민효는 십년감수한 듯 심호흡을 하고 운전석 앞 천장에 장착된 거울을 내려 얼굴 매무새를 정리한 후 하현을 따라 내렸다.하현과 간민효는 도로의 가장자리에 다다랐다.포르쉐 718 차체는 거의 90도로 꺾여서 변형되었고 운전석에는 얼굴이 잘 보이지 않는 젊은 여성이 앉아 있었다.얼굴에는 핏자국이 가득했고 사람은 이미 의식이 없어 보였다.현장에서는 매캐한 냄새도 났다.유심히 코끝을 집중해 보니 휘발유 냄새였다.이때 도요타 엘파 안에서 서너 명의 화려한 옷차림의 남자들이 문을 박차고 내렸다.그중 한 명은 가슴팍이 아픈 듯 얼굴을 쥐어짠 채 차체를 기대며 욕설을 퍼부었다.또 다른 사람들은 무심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어딘가로 전화를 하려고 했다.몇몇 여자들은 얼굴 가득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사고 현장을 지켜보았다.교통사고가 난 것에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않았다.오늘 밤 외출에 적잖은 지장이 생긴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어서 좀 도와주세요! 차 안에 부상자가 있고 휘발유가 새고 있어요!”하현이 무리들을 향해 소리쳤다.“차가 터지면 모두가 죽어요!”“개자식! 당신이 뭔데 쓸데없이 참견이야?”“당신이 뭐라도 돼?”어딘가로 전화를 걸던 남자는 우락부락한 얼굴로 전화를 끊었다.“당신 도로교통법 몰라?”“난 이미 112에 신고했어. 경찰서 사람들이 곧 들이닥쳐서 처리할 거야.”“그전에는 누구도 현장을 건드려선 안 돼. 책임 분담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까 당신 손 하나 까딱하지 마!”남자의 말을 듣고 그의 일행들은 시시껄렁한 표정을 지으며 히죽거렸다.다들 하현이 오지랖 넓은 헛똑똑이라고 생각했다.“안 들려요?! 도와달라고요!”“지금 손쓰지 않으면 차가 폭발할 거예요. 그러면 부
간민효는 군소리 없이 차를 움직여 하현이 포르쉐 차량을 바로 뒤집을 수 있도록 도왔다.“개자식! 차 움직이지 마!”전화를 건 남자는 이 광경을 보고 달려들었다.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남자를 날려 버렸다.“이 자식이! 또 날 때렸어? 내가 누군지 알아?”“날 건드리면 어떤 결과가 있을 거라는 거 알기나 해?”남자는 험악한 표정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넌 이제 끝장이야!”“딱 기다려!”곱상한 여자들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당신들이 지금 무슨 짓을 한 건지 알아?”“나 지금 당신 겁주려고 이런 말 하는 거 아니야!”“지금 당장 멈추지 않으면 정말 후회하게 될 거야!”“이 남자는 대단한 사람이라고!”하현은 냉랭하게 쏘아붙였다.“꺼져! 사람 구하고 있는데 방해하지 말고! 어서!”“휘익! 휘익!”남자가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려고 했을 때 땅바닥에 새고 있던 휘발유에 갑자기 불이 올라 포르쉐 차량 쪽으로 퍼졌다.바람이 불자 불길은 순식간에 번졌고 여기저기 닥치는 대로 집어삼킬 듯 화마는 기세를 높였다.남자는 얼이 나간 표정으로 놀라서 뒷걸음질쳤다.자동차가 폭발한다면 그들도 무사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두려움에 벌벌 떨며 얼른 몸을 피했다.하현은 그들의 행동에는 눈길도 주지 않고 간민효에게 계속해서 차를 움직이라고 신호를 보냈다.그런 다음 그는 두 손으로 차를 잡아당겨 겨우 곧게 세운 다음 안전벨트를 풀고 조심스럽게 여자를 끌어냈다.그제야 하현은 여자의 수려한 얼굴을 마주할 수 있었다.그녀의 손에는 신분증 한 장이 쥐어져 있었다.아마도 신분증을 꺼내려다 전방을 주시하지 못해 사고를 당한 것 같았다.하현은 신분증을 힐끔 쳐다보았다.왕자혜라는 세 글자가 보였다.하현은 별생각 없이 신분증을 자신의 주머니에 넣고 의식을 잃은 왕자혜를 안고 수십 미터 뒤로 물러섰다.왕자혜를 보도블록 위에 천천히 내려놓은 후 그녀의 상황을 빠르게 체크했다.에어백의 충
람보르기니 조수석에 앉은 하현은 누군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수상한 시선을 알아차렸다.그는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려 방금 차창을 내린 포르쉐를 쳐다보았다.“은아...”하현은 얼굴을 살짝 찡그렸고 뭐라고 설명하려고 했지만 포르쉐는 이미 쌩하니 지나간 뒤였다.화가 잔뜩 난 여자의 옆모습을 본 하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기회를 봐서 잘 설명하는 것 외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그렇지 않으면 서로 이런 불필요한 오해가 쌓이게 될 것이고 두 사람의 재혼은 아마도 요원해질 것이다.하현이 뭔가 걱정하고 있는 것을 알아차린 간민효는 더 이상 그를 놀라게 하지 않고 조용히 집복당으로 데려다준 후 얼른 그곳을 떠났다.하현도 간민효를 붙잡지 않았고 그저 따뜻한 차를 끓인 후 손님들을 맞이하기 시작했다.한편으로는 마음을 진정시키기 위한 것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집복당이 개업을 한 목적, 장생전이라는 대어를 낚기 위해서였다.문을 열고도 영업을 하지 않으면 장생전 사람들이 어떻게 찾아올 수 있겠는가?얼마 지나지 않아 장용호가 소식을 듣고 로비에 나타났다.두 사람은 서로 협력하며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점을 보러 온 고객들이 들이닥쳤고 몇몇 고객들은 손이 꽤 큰 손님들이었지만 대부분 기본적으로 풍수를 보거나 자녀들의 사주나 이름을 지어 주는 등의 사소한 일들이었다.바쁜 오전 시간이 훌쩍 지나갔고 두 사람은 점심을 겨우 먹고 잠시 쉬었다.그리고 다시 문이 열었을 때 골목 어귀에서 꽹과리와 북소리가 들려왔다.동시에 폭죽 소리가 여기저기서 귀를 찢을 기세로 온 동네를 북적거리게 만들었다.하현은 문 앞에 다가가서 밖을 내다보았다.멀지 않은 골목 어귀에 풍수관이 개업한 것이 보였다.풍수관의 이름은 음양관이었다.음양을 두루 잘 볼 수 있다는 뜻이었다.집복당보다 외관도 더 크고 인테리어도 매우 화려했다.게다가 입구에 몇 명의 귀빈을 맞이하는 아름다운 여자들도 있었다.그들은 몸에 촥 달라붙는 옷을 입었고 옆으로 트여진 스커트
하현의 말에 주향무는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웃으며 말했다.“제가 당신을 과소평가했군요.”“그럼 본론으로 들어가시죠.”“이양범의 사건에서는 당신의 흔적을 지웠긴 하지만...”“이양표의 일에 대해선 뭔가 해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 어떻게 생각하세요?”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어차피 이렇게 된 이상 마지못해서라도 저에게 좋은 시민상을 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주향무는 눈꺼풀을 펄쩍 뛰었다가 헛웃음 지으며 말했다.“그건 좀 어렵겠는데요...”하현이 정의를 위해 용감하게 행동했지만 그가 구한 사람은 다름 아닌 그의 전 부인이었다.그래서 이 일을 걸고넘어지면 여기저기서 자꾸 잡음이 나올 것이다.이것이 주향무조차도 함부로 하현에게 좋은 시민상을 수여하지 못하는 이유였다. 주향무가 난처한 표정을 짓자 하현은 웃으며 말했다.“됐어요. 당신을 난처하게 만들 생각 없습니다.”“사건은 어떻게 처리되는 겁니까?”“내 쪽에서는 최선을 다해 협조하겠습니다.”“보석금을 낼 사람을 찾아야 될까요?”주향무는 서둘러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그건 제가 이미 당신을 위해 다 준비해 뒀죠.”“하현, 부디 이 일로 노여워 마시길 바랍니다.”주향무도 하현이라는 사람이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부하들의 부주의로 하현을 조사에 임하게 했지만 절차가 합법적이었기 때문에 하현이 억울한 상황에 놓인 걸 어쩔 수가 없었다.“괜찮아요. 당신 같은 사람이라면 기꺼이 가까이 두고 싶습니다. 개인적인 감정과는 상관없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는 것이 공무원이 된 도리고 임무이죠.”하현은 전혀 화를 내지 않고 손을 뻗어 주향무의 어깨를 두드린 후 취조서에 서명을 했다.얼마 후 하현은 주향무와 함께 경찰서 문을 나섰다.이어서 람보르기니 한 대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다가와 경찰서 입구에 멈췄다.익숙한 차 번호를 보고 하현은 눈을 찡긋 올렸다 내렸다.주향무는 자신이 하현을 귀찮게 한 것이 계속 신경 쓰였는지
”그리고 김탁우가 그놈의 공을 가로챈 건 다 우리 은아를 위해서였어!”“은아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라고!”“그럴 만도 한 일이야!”최희정은 아예 대놓고 김탁우를 감싸며 해명했다.“지금 이 시대에 한 여자를 위해 모든 대가를 치르려는 남자가 몇이나 돼?”“내가 보기엔 천하에 김탁우 한 사람밖에 없어!”“천하를 버릴지언정 가장 소중한 한 사람을 버릴 수 없었던 거야!”“예전에 로미오가 있었다면 지금은 김탁우가 있어!”설은아가 김탁우의 행동을 받아들이도록 하기 위해 최희정은 안면몰수하고 억지를 주장하고 있었다.그녀는 김탁우가 보인 치사함과 비겁함을 그대로 미화하여 마치 사랑에 빠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친 순정남으로 둔갑시켜 놓았다.설재석은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자신의 아내이지만 도저히 그녀의 말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최희정은 설재석이 자신의 말에 설득된 것으로 생각하며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은아야, 그러니까 넌 내 말 들어. 지금 넌 법적으로 이혼한 상태잖아? 절대 김탁우 같은 보석을 놓치면 안 돼!”“김탁우한테 시집가면 넌 하현이라는 골칫덩어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금정 김 씨 가문의 도움도 받을 수 있어!”“그러면 아홉 번째 집안이 대구 정 씨 가문에서 상당히 강력한 존재가 될 수 있어!”“네가 대구 정 씨 가문 수장이 되는 날도 머지않을 테고 말이야!”설은아는 마음이 복잡하고 정신이 혼란스러웠다.“엄마, 그만해.”“난 정말 김탁우한테 아무런 감정이 없어!”“감정?”최희정이 가소롭다는 듯 피식 웃었다.“딸아, 네가 아직도 지금 열여덟 살이라고 생각하니?”“지금 결혼 얘기를 하는 건데 감정은 무슨 감정?”“잘 들어. 요즘은 그런 감정 따위 중요한 시대가 아니야. 돈이 가장 중요한 시대야!”최희정은 자신의 관점을 직접적이고도 명확하게 말했다.설은아가 자신의 말에 따라 하현이라는 놈과 완전히 결별하고 얼른 최고의 명문가
하현이 떠나는 모습을 보고 김탁우와 김나나 두 사람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허둥지둥 떠났다.어쨌든 오늘 이 모든 상황이 너무 창피했다.그들은 남의 공을 가로챈 것을 발뺌하다가 결국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김탁우가 아무리 뻔뻔해도 더 이상은 그 자리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설은아는 멍하니 병상에 앉아 밀려오는 후회에 얼굴이 어두워졌다.하현을 완전히 믿지 못한 자신이 너무나 후회스러웠다.동시에 자칫 자신에게 있을 우려스러운 뒷일을 없애기 위해 하현이 사람을 죽이기라도 할까 봐 두려웠다.비록 하현에 대한 경찰들의 태도는 공손했지만 어쨌든 하현은 경찰서로 끌려가게 되었다!“은아야, 너 정말 정신 좀 차려!”“데릴사위가 어쩌다가 널 한번 구해 준 것까지고 너무 감사해하는 거 아니야?”자신의 딸이 넋이 나간 듯한 태도를 보이자 최희정은 갑자기 기분이 상했다.“데릴사위가 뭐 그렇게 신경 쓸 필요가 있다고 그래?”“솔직히 말해서 넌 지금 이혼한 걸 기회로 삼아 최고 명문가에 시집갈 궁리를 해야 해!”“최고 수준의 명문가들은 널 뒷받침해 줄 힘이나 역량이 뛰어나기 때문에 대구 정 씨 가문도 이제 널 홀대할 수 없을 거야!”“아홉 번째 집안을 관리하면서 네가 수모만 받았지 무슨 실질적인 이익을 얻었어?”후회스러운 생각에 마음이 답답해서 안색이 일그러졌던 설은아가 말했다.“엄마, 그런 거 아니야!”“하현은 나한테 너무 잘했어!”“잘하면 뭐해?”최희정이 냉소를 흘렸다.“서울에서 남원, 남원에서 대구까지, 또 무성까지, 그리고 금정까지...”“넌 매번 그놈이 너한테 잘해준다고 하지만 자세히 생각해 보면 무슨 혜택을 받았니?”“장모인 날 존중해 주었길 하니?”“무성에 있을 때, 그놈이 그렇게 돈이 많으면서도 왜 나한테는 한 푼도 주지 않았던 거야?”“매번 내 일에 초를 친 것 외에 그놈이 한 게 뭐냐고?”“똑똑히 들어. 그놈은 너와 김탁우의 결혼을 막았어. 네가 김탁우와 좋은 결실
김나나의 아름다운 얼굴에 잠시 멈칫하던 경찰이 입을 열었다.“이양표의 진술에 따르면 그에게 뇌진탕을 일으킨 사람은 바로 그날 밤 사람들을 데리고 와 그의 동생을 죽인 사람입니다.”“현재 이양표는 뇌신경이 눌려 눈이 먼 상태입니다.”“그렇지만 상관없습니다.”“어쨌든 증거는 충분하니까요!”“우리 법의 양형 기준에 의하면 사형도 피할 수 없습니다.”“그러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말을 마치며 경찰은 유감스러운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영웅이 미녀를 구했는데 오히려 결과가 지경이 된 것에 안타까움을 느끼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이양표가 눈이 멀었다고?!이양표를 이렇게 만든 사람이 이양범을 죽인 사람이라고?사형도 피할 수 없다고?!김나나의 눈이 튀어나올 듯 휘둥그레졌다.끝났다!완전히 망했다!사람을 구한 공을 가로채려다 이 지경에 이를 줄 누가 알았겠는가?“이봐! 어서 연행해!”경찰들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고 동료들에게 손짓을 했다.그들은 넋이 빠져 있는 김탁우에게 다가가 수갑을 채우고 데려가라는 신호를 보냈다.“경찰관님, 오해입니다. 정말 오해라고요!”김나나는 혼비백산한 얼굴로 경찰들에게 달려들었다.“그날 밤 사람을 구한 건 우리 오빠가 아니었어요...”최희정과 설재석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김탁우가 아니라고?”“네, 아니에요! 정말이에요!”김나나는 혼신의 힘을 다해 고개를 저었다.“우리 오빠가 한 게 아니에요. 하현이에요! 하현이 사람을 구했어요!”“하현이 이양표를 때려 뇌진탕에 걸리게 한 거라고요!”“이시운! 어서 말해! 당신이 거짓 진술했다고 어서 사실대로 말하라고!”“우리가 당신한테 입막음용으로 십억을 줘서 그렇게 말한 것뿐이라고!”“우리 오빠 같은 거물이 어떻게 하현 대신에 모든 죄를 덤터기 쓸 수 있어? 절대 그럴 수 없어!”“농담하는 거야?!”이시운은 머릿속이 완전히 하얘졌다.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빨리 변할 수
김나나는 잠시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가 이내 입을 열었다.“이양범이 죽었다고요?”“이여웅 부자가 죽었어요?”경찰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실입니다.”“게다가 우리는 이양표를 다치게 한 사람이 이 두 사건과 어느 정도 관련이 있다고 심각하게 의심하고 있습니다!”“하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우린 증거에 근거하여 수사를 하니까요.”“수사에 협조해서 조사해 보면 꼭 유죄는 아닐 수도 있습니다.”김탁우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뜬 뒤 경찰들을 노려보았다.“당신들, 이 사건의 범인이 누구라고 생각하는 겁니까?”김탁우는 경찰들이 자신을 잘못 겨냥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결국 경찰서 측이 이양표의 진술을 받아 보면 자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알게 될 것이다.하지만 도대체 누가 이렇게 대단한 능력을 가졌길래 경찰서 사람들이 모든 단서들을 무시하고 감히 자신을 범인으로 몰게 만들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설마 하현 이놈이 이 사건의 모든 흔적을 지울 만큼 엄청난 능력을 가진 건 아니겠지?자신이 그의 공을 가로채려 할 때를 기다려 모든 혐의를 자신에게 덮어씌우려는 건가?설마?순간 김탁우의 머릿속에 이런 생각이 스쳤지만 그는 이내 이런 생각을 지웠다.하현이 건방지고 거침없기는 했지만 경찰서와 관청을 쥐락펴락할 정도의 인물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게다가 경찰서와 관청은 주 씨 가문이 쥐고 있었다.주 씨 가문은 항상 공명정대를 중시한 집안이었다.그런데 어떻게 하현이 그런 주향무를 매수해 사건의 흔적을 다 지우게 할 수 있겠는가?경찰들은 근엄한 얼굴로 김탁우에게 예의를 갖춘 뒤 입을 열었다.“김탁우, 우리도 당신이 억울하다는 걸 압니다.”“하지만 어쩔 수가 없습니다. 죄송하지만 우리와 함께 경찰서에 가서 조사에 협조해 주셔야겠습니다.”“설은아의 증언이나 이시운의 증언이나 모두 당신이 로열 회관에 들어와 사람을 구하고 이양표를 때려 뇌진탕을 일으킨 것에는 변함이 없습니다!”“나중에 이양표
하현은 자조 섞인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다른 사람 말은 믿고 내 말은 안 믿는 거야?”“당신을 믿으라고? 어떻게 당신을 믿으라는 거야?”설은아는 달려들어 하현을 뚫어져라 쳐다보았다.“지금 내 앞에 이런 사진이 있는데!”“내 비서도 자기 입으로 진실을 말했는데!”“나더러 어떻게 당신을 믿으라는 거야?”“하현!”“내가 전에 당신을 너무 많이 믿었던 거지!”하현은 무슨 말을 더 하려고 입을 떼었으나 그때 누군가 노크하는 소리가 들렸다.이어 제복을 입은 몇몇 경찰들이 심각한 표정으로 들어왔다.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뒤를 돌아보았다.“여러분, 저희는 금정 경찰서에서 왔습니다. 우리 신분증입니다.”최희정은 그들의 신분증을 힐끔 쳐다보았고 일개 직급 낮은 경찰일 뿐이라는 걸 알게 되자 갑자기 냉랭한 태도로 돌변했다.“무슨 일이죠?”“이양표 사건이라면 어제 다 조사하지 않았어요?”설재석도 입을 열었다.“맞아요. 우린 이미 어제 사실을 다 말했는데.”“또 무슨 문제가 있습니까?”선두에 선 경찰은 냉랭한 표정으로 사무적인 딱딱한 어조로 말했다.“한 가지 더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이양표는 사람을 능욕하려고 했으니 마땅한 대가를 치를 겁니다.”“하지만 구조자가 다른 사람들 앞에서 이양표를 때리고 뇌진탕까지 일으켰어요. 중상에 해당하는 상해를 입었죠.”“이양표의 동생 이양범은 시신으로 발견되었고요.”“그래서 우리는 구조자인 김탁우를 이양범을 죽인 용의자로 보고 있습니다.”“김탁우, 당신은 저희와 경찰서로 가서 수사에 좀 협조해 주셔야겠습니다.”김탁우의 얼굴빛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수사에 협조를 해달라고요?”최희정의 얼굴이 얼어붙었다.“이양범이 죽은 건 그가 죄를 저질렀기 때문이에요!”“이양표가 뇌진탕을 입은 건 우리와 전혀 상관이 없어요!”“우리는 양해 각서에 아직 서명도 안 했어요!”“그런데 지금 우리 사람을 경찰서에 데려가 수사하겠다니?! 농담
이시운은 얼굴이 창백해졌고 계속 뒤로 물러서다 벽에 몸이 가로막혔다.그럼에도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하지만 당신이 그랬다고 해도 난 당신을 탓하지 않아.”“그날 밤 당신은 은아를 위해 앞장서다가 얻어맞았어. 하마터면 그놈들한테 끌려가 고초를 당할 뻔했지.”“그래서 난 당신을 용서했어.”“이 일이 이렇게 끝나면 나와 은아는 당신한테 아무것도 빚진 게 없게 되지.”“김 씨 남매가 당신한테 준 것으로 충분할 테니까.”하현은 화도 내지 않고 아주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지만 한마디 한마디가 이시운의 아픈 곳을 콕콕 찔렀다.이시운의 얼굴은 더욱더 창백해지고 핏기를 잃어갔다.김탁우는 핏기 잃은 이시운의 모습을 보고 김나나에게 눈짓을 했다.김나나는 얼른 앞으로 나서며 하현을 향해 호통쳤다.“하 씨! 자꾸 사실을 왜곡하며 진실을 흐려놓지 마!”“이시운은 현장에 있었던 장본인이야. 그녀 입으로 우리 남매야말로 은아를 구한 영웅이라고 말했잖아!”“당신은 이미 은아를 보호할 능력도 자격도 없어. 그러니 우리 남매처럼 능력 있는 사람한테 은아를 맡겨!”최희정도 이때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정말 다시 한번 똑똑히 자네 민낯을 봤네!”“이게 자네가 바라던 건가?!”“난 자네가 정말 능력이 있는 줄 완전히 착각했어!”“보아하니 내 생각이 틀리지 않았어. 능력이 있었다면 애초에 우리 집에 데릴사위가 되지도 않았을 거야!”“퉤!”설은아는 눈살을 잔뜩 찌푸렸다.그녀는 이시운이 뭔가 의심스럽다는 걸 알아차렸지만 김탁우가 그 사이에 주위 사람들을 구워삶았을 줄은 몰랐다.자신을 구한 공로를 선점하기 위해 김탁우가 이시운을 매수할 줄은 정말 몰랐다.설은아가 의문을 제기하려고 하자 김탁우가 눈치를 채고 선수를 쳤다.“은아, 한 가지 더 말할 게 있었는데 깜빡했어요.”“난 그날 우연히 사진을 몇 장 찍었어요. 원래는 꺼내지 않으려고 했었어. 괜히 당신과 하현의 감정만 상하게 하니까!”“하지만 하
”자네, 은아한테 아무 일이 없으니 우리도 이쯤에서 그만하겠네!”“하지만 경고하는데 앞으로 함부로 날뛰지 마!”“질투 난다고 별짓을 다 하고 그래!”최희정은 화를 내지는 않았지만 분명 협박의 의미가 가득 담긴 말이었다.“자네가 아무리 능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금정 김 씨 가문 김탁우의 능력을 능가하겠어?”“그러니 당장 김탁우한테 사과해. 그러면 없던 일로 칠 거야!”“그렇지 않으면 다시는 우리 앞에 나타날 생각도 하지 마!”설재석도 차갑게 말했다.“자네, 우리가 자네 체면을 생각해서 하는 말이니 소중히 새겨들어, 알겠어?”“자네 따위가 김탁우보다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그래서 이렇게 사람을 때린 건가?”설은아의 마음속이 갈팡질팡했다.비록 그녀의 이성은 하현의 능력이 그녀를 구하기에 충분하다고, 그건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고 말하고 있었다.하지만 문제는 이 사건의 증거가 모두 확실하니, 하현이 중간에서 다른 사람의 공을 가로채려는 것처럼 들릴 법한 발언을 하기는 쉽지 않았다.뭔가 망설이고 있는 듯한 설은아의 표정을 보고 하현은 설은아도 김탁우에게 속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그래서 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는 집어치우고 담담하게 이시운에게 말했다.“이시운, 들어와!”이시운은 최희정 일행을 따라 들어왔지만 하현을 보고도 들어오지 못하고 머뭇거렸다.하현의 목소리를 들은 이시운은 화들짝 놀라며 의아한 표정으로 병실 안으로 들어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안녕하세요.”“이시운, 마침 잘 왔어!”김나나가 이시운의 곁으로 다가와 그녀를 감싸는 듯한 자세를 취하며 말했다.“그날 밤 우리 오빠가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 은아를 이양표에게서 구했잖아? 그렇지?”“당신은 하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우리 오빠에게 도움을 요청했잖아!”“그래서 우리 오빠는 모든 일을 제쳐두고 달려왔지!”“영웅이 미녀를 구한 거야!”“이시운, 모든 걸 다 털어놓고 말해 봐!”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