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씨네 별장을 나서자 설은아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졌다. 하현이 빠른 걸음으로 따라붙으며 말했다.“여보, 억울하지 않아?”“억울?”설은아는 한숨을 쉬었다.“나는 설씨 집안 사람이야. 이 집안 놈들이 얼마나 꼴불견이고 미물이든지 다 내 가족이야.”“난 단지 애석할 뿐이야. 왜 잘하고 있는 쇼핑몰 프로젝트를 그만두고 남원으로 가려고 하는 거지?”“쇼핑몰 프로젝트를 시작하게 된 건 우리 설씨 집안이 자립하는데 중요한 기초가 된다고 판단했기 때문이거든!”“설씨 집안은, 이 프로젝트에 기대면 서울의 일류 가문에 들어설 수 있는데 왜 그렇게 욕심을 내는 걸까?”설은아는 더없이 괴로워했다. 쇼핑몰 프로젝트를 위해 그녀가 지불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눈앞에 있는 이 결말을 그녀는 받아들이기가 힘들었다. 그러나 납득할 수 없다고 또 뭐가 달라지나?그녀 혼자 힘으로 바꿀 수 있나? 불가능하다. “만약에 당신이라면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 거 같아?” 하현은 잠시 생각에 빠졌다. 그는 한마디도 나오지 않았다. 설씨 집안이 남원에 가는 일은 배후에 어떤 사람이 밀어붙이고 있는 것이었다. 눈앞의 이익이 설씨 집안을 움직이게 할 수 없다면 상대방은 다른 방법을 생각해 낼 것이다. 이익을 많이 볼수록 이후 설씨 집안은 갈수록 더 비참해지고 끝 또한 봐줄 수 없을 것이다. 하현은 이 점을 분명히 생각했지만 직접 지적하지는 않았다. “현재로서는 쇼핑몰 프로젝트를 매각하려고 하지만 이미 그건 불가능한 일이야.”설은아는 탄식했다.“하엔 그룹의 인맥으로도 지금 당장은 어떤 은행도 우리에게 대출을 해주지 않을 거야.”“현재로서 유일한 방법은 쇼핑몰 프로젝트를 계속 유지하면서 후에 남원의 새로운 프로젝트를 가지고 와서 하엔 그룹에 지분을 제공하는 거야.”설은아는 지금 당당하고 차분하게 말했다.“남원에 가는 게 맞지만 왕씨 가문은 너무 강해. 우리가 이번엔 명목상으로라도 주도권을 차지하긴 했지만……”“왕씨
오후, 하엔 그룹. 회장 사무실.하현은 최근에 회사에 별로 오지 않아서 서명해야 할 서류들이 많았다. 하현이 제시한 1조 계획은 지금까지도 얼마 내놓지 않았다. 오히려 이전의 일부 좋지 못한 투자금은 하현이 회수하였다. 이렇게 일을 하다 보니 하엔 그룹의 장부의 금액은 이전에 비해 더 많아졌고 당연히 수익률이 높은 편은 아니었다. 하지만 회사의 개혁기간의 진통이기에 하현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서류에 모두 서명을 한 후 하현은 의자에 기대어 앉았고, 그제서야 천천히 말했다. “회사 고위층 몇 명에게 가서 얘기 좀 해야겠어. 사람을 뽑아서 남원에 가서 지사를 하나 만들어야 하거든……”“앞으로 우리 업무는 남원에다 많이 둘 테니 우리와 함께 갈 사람은 처우도 30% 높게 해주고……”슬기의 아름다운 얼굴에는 경악하는 빛이 역력했다. 그녀는 기다리지 못하고 말했다.“회장님, 하지만 남원은 하씨 가문의 터전인데……”“명목상 우리는 하씨 가문의 산하 기업이에요. 이렇게 지사를 차리게 되면 하씨 가문의 얼굴에 손상을 입히게 되는 거 아닌가요?”하현은 일어서며 손을 뻗어 슬기의 어깨를 두드렸다. 슬기는 온 몸이 뻣뻣해졌지만 다른 표정은 보이지 않았다. 하현도 이것에 개의치 않았고, 창가 쪽으로 가서 아래 쪽에 빌딩이 숲을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며 천천히 말했다.“이게 한 수야. 우리가 가지 않아도 가게 될 거야.” “하씨 가문에서 지금 누군가 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어.”“만약 내가 계속 서울에 둥지를 틀고 싶으면 연거푸 끊임없는 탐색과 끊이지 않는 핍박이 계속 있을 거야. “수동적이기 보다는 능동적으로……”“3년이 됐어. 꼬박 3년……”“나는 3년을 기다렸고, 그건 기회를 기다렸다는 거야……”“내가 얼마나 강한지를 증명하려는 게 아니라……”“다만 나는 모두에게 알리려는 거야……”“내가 잃어버린 건 내가 반드시 직접 찾아올 거야!”여기까지 말하고 하현은 살짝 웃었고 비할 데 없이 멋있었
설민혁은 무의식적으로 엉뚱한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국은 꾹 참으며 말했다. “내가 특별히 사과를 하면 회장님이 분명 기뻐하실 거니까 한 번만 물어 봐주세요.”“특별하게요? 얼마나 특별한데요?”안내 데스크 아가씨는 눈썹을 찡그렸다. 그녀는 설민혁을 아래위로 훑어본 뒤 문득 깨달아졌다. “생각났어요. 며칠 전 설씨 가문의 부회장이 골동품 품평회에서 무릎을 꿇었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그 사람이 당신인가요?”“만약 당신이 우리 회장님께 무릎을 꿇을 거라면 제가 전해드릴게요.” 설민혁은 얼굴이 ‘싹’ 새카맣게 되었다. 젠장! 전부 하현 네 잘못이야! 어르신의 명성은 서울 전역에 퍼졌다. 이제 남원에 가게 돼서 다행이다. 남원에서는 자신이 망신 당한 일을 아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우리 설씨 가문은 남원에서는 2류 가문이지만 어르신이 되었을 때 반드시 서울로 돌아와 너희 이 놈들 뺨을 다 때려주겠어! 하지만 지금은 이 안내 데스크 아가씨가 비꼬는 표정을 한다 할지라도 와신상담하며, 사죄의 마음을 안고 자신 스스로에게 억지 웃음을 짓도록 하고 있었다. “그래요! 제가 그렇게 준비할게요……”“무슨 준비요?”“무릎 꿇을 준비요……”안내 데스크 아가씨는 경멸하는 표정을 지었지만 그래도 말한 대로 책임을 지고 슬기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슬기는 전화를 받은 후 재빨리 회장 사무실로 들어가서 기괴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회장님, 안내 데스크 직원이 하는 말이 설씨 집안의 설민혁씨가 왔는데 회장님 계신 곳에서 무릎을 꿇겠다고 합니다……”“정말 왔구나?”하현은 웃을 듯 말 듯한 표정을 지었다. 설씨 어르신이 정말 이렇게까지 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설씨 집안이 파산하지 않기 위해서 그의 애지중지하는 손자를 내보내 망신을 당하게 하다니. 하현도 설씨 어르신의 마음을 짐작하고 설민혁으로 하여금 와신상담하게 했다. 만약 정말 어떤 효과를 얻는다면 설씨 집안에서 설민혁의 공은 커질 것이다. 훗날
설씨네.한 무리의 설씨네 식구들이 지금 모두 서로를 쳐다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방법이 없었다. 하엔 그룹은 서울의 하늘이었다. 그 집안 사람들은 실력과 자질을 갖추고 있었다.하지만 설민혁은 능력이 없지 않은가?결국 너는 로비에서 무릎을 꿇으라고 하면 꿇어야 되는 거 아니겠어?너는 우리가 모른다고 생각하니?서울 전역에 이미 다 퍼졌어.“됐어!”설씨 어르신은 손을 흔들었다.“내가 듣기로 하씨 새 회장이 네가 무릎 꿇은 거에 만족했다고 하더라!”“하엔 그룹은 하씨 가문의 후원을 받고 있어. 설령 우리 설씨 집안이 왕씨 가문에 걸쳐 있어도 여전히 그 집안 보다는 못해.”“비록 그가 너를 모욕했다고 해도 나는 네가 무릎 꿇은 것이 큰 공을 세운 거라고 생각해. 양측의 충돌을 줄여줬잖아!”“그 다음에 사람을 한 명 보내서 다시 하엔 그룹과 얘기를 나누면 일이 아마 완화될 여지가 있을 지도 몰라.”“민혁아. 너 다시 한 번 가보지 않겠니?”설씨 어르신은 바라는 얼굴이었다. 설민혁이 만약 이 일을 해낸다면 그의 공은 엄청 클 것이다.하지만 설민혁은 계속 고개를 저었다.지금 장난하나?오후에 그는 이미 서울의 웃음거리가 되었는데 다시 가라고?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아무도 모른다.설민혁이 하는 행동을 보고는 설씨 어르신은 한숨을 쉰 후 다른 설씨 가족들에게 시선을 옮겼다.설씨네 식구들은 하나같이 얼굴빛이 변했다. 아무도 설씨 어르신과 눈조차 마주치려고 하지 않았다.농담하나? 설민혁이 가도 이런 일이 났는데, 만약 다른 사람이 다시 가서 운이 좋으면 다행이지만 만약 운이 안 좋으면 그날 하루 무릎을 꿇는 정도로는 끝이 나진 않을 것이다.설씨 어르신 역시 한숨을 쉬었다.그는 비록 방금 이것이 좋은 일이라고 말했지만 그도 마음속으로는 이 일이 까다롭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누가 두꺼운 낯짝으로 가서 이런 고생을 하고 싶겠는가?설민혁은 고개를 떨구더니 갑자기 일어서서 차갑게 말했다.“할아버지, 제
요 며칠 서울시는 유난히 들썩였다. 하엔 그룹의 회장이 새로 바뀌고 난 후, 과거의 밑지는 장사들은 이미 대부분 취소가 됐다는 것을 누구나 다 알고 있었다. 거기다 새 회장은 1조원을 가져와 좋은 프로젝트와 합작할 준비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프로젝트들을 찾았지만 얻지 못했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지만 문밖에서 거절을 당했다. 하지만 2류 가문 설씨 집안이 하엔 그룹과 좋은 합작 관계를 세우고, 투자금을 가져오는데 성공할 줄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하지만 문제는 설씨 집안이 이렇게 좋은 카드를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뜻밖에도 이것을 조금도 소중히 여기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들 집안의 뇌를 누가 뽑아냈는지는 모르겠지만 뜻밖에도 그 합작 프로젝트를 팔려고 했다. 결국 하엔 그룹의 강세로 봤을 때 당연히 설씨 가문은 합작 계약에 따라 배상해야 할 것이다. 설씨네 집안은 단념하지 않고 부사장 설민혁을 보냈고 결국 오후에 로비에서 무릎을 꿇었다. 보아하니 설씨 집안 사람은 머리가 고장 났을 뿐만 아니라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낯가죽도 두꺼웠다. ……다음날 아침 일찍 하엔 그룹 아래층에 적지 않은 고급 차들이 멈춰 섰다. 많은 가문과 기업들이 모두 웃음거리를 보려고 준비하고 있었다. 하엔 그룹이 설씨 가문에게 준 기한이 내일로 다가왔다. 오늘 설씨 집안은 틀림없이 죽을 힘을 다해 싸울 것이다. 누가 올지 몰랐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반나절을 기다렸으나 오히려 어떤 설씨 집안 사람도 오지 않았다. 왜냐하면 설은아가 나설 때 슬기에게 전화를 받았기 때문이다. 이슬기가 말하길 그녀는 오늘 저녁 직접 설씨 집에 들르겠다고 했다. 회장이 해결책을 제시했는데 설씨 집안이 만약 잡지 못한다면 죽기를 기다리는 것 밖에는 방법이 없었다…………그날 저녁 설씨 집안 사람들은 다시 모였다. 하나같이 줄을 맞춰 앉아 과일을 먹고 있었다. 설씨 집안으로 말할 것 같으면 요 며칠 너무 처참했다. 집안 사람들은
설씨 어르신은 분명 자신의 성과를 이루었다고 들었다. 설민혁은 기뻐서 지금 설씨 어르신을 향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허리를 굽혀 절을 하며 말했다. “할아버지, 저는 설씨 가문의 장손이잖아요. 우리 설씨 집안의 미래를 위해 억울한 일 좀 당하면 뭐 어때요?”“앞으로 남원에 가면 제가 우리 설씨 집안을 위해 더 열심히 일 할게요. 최선을 다 할게요!”“그래! 할아버지가 너를 아낀 게 과연 헛되지 않구나!”설씨 어르신은 흐뭇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바로 이때, 설씨네 별장의 대문 밖에서 발소리가 들려왔다. 곧이어 슬림한 여성 정장을 입은 여인이 천천히 걸어 들어왔다. 순간 설씨네 사람들의 눈빛이 슬기에게로 쏠렸다. 슬기 같은 거물이 뜻밖에도 다시 찾아온걸 보니, 하엔 그룹의 회장의 화가 풀렸나 보다. 정말 기쁘고 축하할 일이었다!“이 비서님, 우리가 오래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어서 앉으세요!”설씨 어르신은 웃는 얼굴로 입을 열었다. 슬기는 분명 하엔 그룹의 입장을 대표해서 온 것이다. 하엔 그룹이 봐줘야만 그제서야 설씨 집안은 해결 방법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슬기가 신분을 무릅쓰고 다시 설씨네로 온 것은 정말 설씨 집안에 기회를 주기 위함이 아니겠는가?설씨 어르신은 지금 하씨가 아마 이번에 설씨 집안에게 큰 프로젝트를 줄 것이라 상상해보았다. 어쨌든 설씨 집안은 지금 인기가 있구나. 생각지도 못하게 슬기는 담담하게 웃으며 공손하게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 “설 회장님, 앉을 필요 없습니다. 오늘 제가 여기 온 것은 설씨 집안에게 기회를 주러 온 것뿐입니다.”“와_____” 이 말이 나오자 그곳에 있던 설씨 집안 사람들을 모두 정신을 집중했다. 설씨 어르신은 무의식적으로 일어섰고 눈가는 계속 떨리고 있었다. 설씨 집안에게 기회를, 설씨 집안에게 하나의 기회를! 도대체 어떤 기회를 준다는 것인가? 일이 이렇게 잘못됐는데도 설마 설씨 집안이 오히려 큰 기회를 얻은 건가? 그
뭐!?2천억!?슬기의 가벼운 말투를 들으며 주변에 있던 설씨 집안 사람들은 모두 다시 한 번 놀라 숨을 헐떡였다. 하엔 그룹, 과연 부자는 콧김이 거칠구나!설씨 집안은 이 2천억 원을 위해 밤마다 걱정하느라 밤을 설쳤었다. 그런데 결과는?하엔 그룹이 손을 한 번 흔들자, 아무렇지 않게 2천억 원이 생겼다. 모든 설씨 집안의 자산을 전부 다 합쳐서 매각한다고 해도 자산이 얼마나 됐겠는가? 아무리 많아야 2천억 원 정도일 뿐이었다. 심지어 거기에 못 미칠 수도 있다. 놀라움에 슬기를 보는 적지 않은 사람들의 눈빛이 이글이글 타오르기 시작했다. 2천억 원이 생기면 설씨 집안은 어떤 자산도 프로젝트도 매각할 필요가 없다. 가볍게 남원에 가서 살 수 있었다. 이렇게 하면 대대적인 정비를 할 필요가 없었다. 서울의 기초산업도 남겨둘 수 있었다! 이때, 설씨 어르신은 흥분해서 중풍에 걸릴 지경이 됐다. 다른 설씨 집안 사람들은 하나같이 더 감격해서 울기도 하고 웃기도 했다. 감격하는 사람들을 보며 하현의 지시에 따라 슬기는 다음 말로 모든 사람을 바로 현실로 끌어들였다. “이 2천억 원으로 설씨 집안의 발전을 도우려고 해요.”“당신들 설씨 집안 사람들이 무엇에 투자하든지, 무엇을 하든지 상관하지 않습니다.”“하지만 조건이 있습니다.”슬기는 방긋 웃었다. 설씨 어르신은 당연한 듯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무슨 조건인가요? 이 비서님이 말씀하신 대로 저희 설씨 집안이 반드시 그대로 지키겠습니다.”“우리 하엔 그룹은 당신들 설씨 집안아래 있는 모든 재산의 51%의 지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뭐!?이 말을 듣자, 설씨 어르신의 웃던 얼굴이 바로 경직되었다. 설씨 집안의 많은 사람들 역시 모두 멍해졌다. 51%의 지분, 게다가 모든 재산의 51%의 지분. 이건 거의 설씨 집안의 결정권을 하엔 그룹에게 판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앞으로 설씨 집안은 여전히 설씨 집안으로 보이겠지만, 아무리 발
설씨 어르신이 말을 마치기도 전에 슬기는 그의 말을 자르며 담담하게 말했다. “설 회장님, 묻지 말아야 할 일은 묻지 마십시오…...”“지금 눈앞에 있는 일이나 잘 생각해보세요. 제 시간은 소중합니다. 당신에게 5분의 시간을 드리겠습니다.”“어떻게 할지 상의해보세요. 5분 후에 다시 오겠습니다.”슬기는 말을 마치고 돌아서서 자리를 떠났다. 설씨 집안에게 상의할 시간을 준 셈이다.설씨 어르신은 얼굴이 새까맣게 됐다. 이 순간, 설씨 집안의 정세는 정말 막다른 골목에 몰렸다. 6천억 원을 배상하든지 아니면 땅을 잃든지.아니면 회사의 소유권을 잃든지.어느 모로 보나 결정하기 어려운 선택이었다. 이때, 설지연이 갑자기 냉랭하게 말했다. “설은아, 네가 그 회장이랑 도대체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너 정말 우리 설씨 집안이 궁지에 몰린 걸 빤히 보고만 있을 거야?”“맞아! 설은아, 너 어쩜 그렇게 양심도 없냐?”“설은아, 이게 네가 생각해낸 해결 방법이야?”“은아야, 너 다시 우리를 도울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없겠니?”설씨 어르신도 지금 방법이 없어 어색한 얼굴로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설은아도 이 말을 듣고 화가 나 웃음이 났다. 방금 전까지 나는 없는 사람이나 마찬가지였는데 이제 와서는 또 나보고 방법을 생각하라고?이번엔 설은아가 한숨을 쉬며 말했다. “할아버지, 제가 나서지 않으려는 게 아니라 저는 회장의 얼굴도 본적이 없어요. 제가 어떻게 사정할 수 있겠어요?”설지연은 괴상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설은아, 아마 네가 마음에 드는 가본데? 아니면 네가 자진해서 침실로 들어가보든가, 아마 일이 생길지도……”“탁_____”설지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하현이 손에 있던 물컵을 내려쳤다.물론 그녀의 몸에 내리친 것은 아니었고 그녀 주변 바닥에 내리쳤다. “설지연, 함부로 해서는 안 될 말이 있어.”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비록 자신이 하엔 그룹의 새 회장이었지만 문제는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