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자포자기한 듯한 노부인은 원래 같으면 입에 발설하지 않았을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그녀는 능력도 없는 하현이 감히 양 씨 가문을 갈라놓으려 한다는 것에 격분하며 비웃음을 쳤다.지금 무슨 장난하는 거야?!노부인의 치밀한 계략 아래 한 세대를 쥐락펴락하는 전신들도 함부로 그녀 앞에서 날뛰지 못했는데 하물며 대하 외지인이 감히?거칠 것 없는 노부인의 말에 원천신과 원가령도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어쨌든 하현이 아무리 잘난 척해도 양 씨 가문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는 없다.양 씨 가문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이다!그리고 양 씨 가문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인물이 노부인이었다!이런 가문의 후계자가 양호남이었다!오늘 이 정도 체면이 깎인다고 뭐 어떻게 되겠는가?!자산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그렇습니까?”노부인의 말에 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며 말했다.“어르신, 어르신 짐작이 맞으신 듯합니다.”“어르신께 약을 먹은 사람은 어르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하현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후방에서 희미한 탄식과 피로가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독사의 입에 있는 독, 말벌 꼬리에 있는 침. 둘 다 지독한 독이지만 가장 지독하고 치명적인 독이 여자의 마음이라더니.”목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하구봉과 강옥연이 휠체어를 밀고 천천히 나오고 있었다.휠체어에 앉은 사람을 보자마자 양유훤은 감정에 격한 표정으로 달려 나왔다.“할아버지, 깨어나셨군요!”그녀는 양제명에게 달려들었고 미소 띤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양제명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깨어나지 않았으면 주변 사람들의 추악한 몰골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느냐?”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남양의 전신이 회복된 것인가?이는 앞으로 남양이 여전히 그의 천하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양 씨 가문 사람들은 눈꺼풀을 펄쩍였고 입가에 경련
”꺼져!”하현이 손을 쓸 필요도 없이 양유훤이 얼른 눈물을 닦으며 손바닥을 휘둘러 양신이를 날려버렸다.“그만 망신당하고 저리 꺼져!”“양유훤, 감히 날 때려?”“네가 뭔데 날 때려?”양신이는 더욱 분노에 치를 떨며 몸부림치다가 앞으로 나와 양유훤에게 대들었지만 양유훤은 가볍게 손바닥을 휘둘러 양신이의 얼굴을 후려갈겼다.양신이는 다른 양 씨 가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양제명의 서슬 퍼런 시선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양제명은 전쟁의 신이었다.비록 몇 년을 꼼짝 않고 힘을 쓰지 못했지만 그가 뿜어내는 아우라와 위엄은 여전했다.만약 이번에 노부인이 악의로 그를 음해하지 않고 브라흐마 바찬에게 패배하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양 씨 가문의 지존으로 자리했을 것이다.“그만!”양유훤에게 뺨을 맞고도 망신스럽게 달려드는 양신이를 보고 노부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망신 그만 당하고 이제 돌아와!”“늙은 영감탱이, 수완 한 번 좋군!”“하현, 나도 자네를 기억하네!”노부인이 음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런데 이렇게 해서 우리가 무너질 줄 알아? 우리가 모든 걸 잃고 망할 줄 알아? 그렇다면 당신은 너무 순진한 거야!”“그동안 난 이미 충분한 자산을 빼돌려 미국으로 보냈어.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하게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어.”추악한 노부인의 행태를 목격한 양제명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말했다.“홍매, 내가 당신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 당신과 난 오랜 세월 부부의 연을 맺었어. 난 모든 면에서 당신의 뜻을 존중했어.”“당신이 원하는 걸 내가 주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왜 이 지경까지 된 거야?!”“왜 이렇게까지 된 거냐고?”노부인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당신은 깨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양 씨 가문은 진작에 내 손안에 있었어. 내가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의 진정한 주인이라고!”“나야말로 양 씨 가문의 유일한 주인이야!”“그런데 당신이 왜
”할머니!”양호남이 쏜살같이 달려갔다.“할머니, 괜찮으세요?!”양신이는 소리를 지르며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당신이 사람이야?!”“이렇게까지 우리 집안을 괴롭혀야 되겠어? 그래도 우리는 당신을 관대하게 봐줬다구!”“그런데 당신은 배은망덕하게도 우리 할머니를 쓰러지게 만들었어!”“은혜도 모르는 버러지 같은 놈!”양신이가 자신에게 마구 악담을 퍼붓자 하현은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미동도 하지 않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양 씨 가문에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내일 이맘때 양 씨 가문의 주인 자리를 양유훤에게 내어 주지 않는다면!”“그리고 노부인이 직접 양호남과 양신이의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는다면!”“미안하지만 양 씨 가문은 이대로 끝나는 거야!”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서슬 퍼런 하현의 말에 노부인은 눈앞이 캄캄해졌다.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흉악한 낯빛으로 말했다.“네놈이 감히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양제명, 어떻게 외지인 놈과 손을 잡고 집안 식구들을 괴롭힐 수가 있어?!”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양제명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유지할 뿐이었다.“하현, 당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원가령이 참지 못하고 하현을 향해 소리쳤다.“사람을 이렇게 몰아붙이면 안 돼! 너그럽게 용서할 줄도 알아야지!”“노부인이 뭐라고 하시든 당신한테는 어르신이잖아!”“대하 사람들은 어른을 공경할 줄도 몰라?!”“그러고도 당신이 오천 년 역사를 앞세워 큰소리칠 수 있는 거야?”원천신도 매서운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그렇게 속이 좁아서 어떻게 남자가 큰일을 이룰 수 있겠어?”“사람이 대범해야지!”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원천신을 쳐다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원 사장님. 제가 기회를 드리죠. 악인을 옆에서 부추기며 나쁜 짓을 한 거, 당장 사과하세요!”“사과?”원천신은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우리 원 씨 가문을 뭘로 보고 이래? 나한테
현장에는 얼굴이 사색이 된 페낭 TV 기자, 일간 신문 기자, 인플루언서, 사자춤, 용춤을 준비하는 팀들이 양가백약 앞에 도착했다.어쨌든 이들은 오늘 하현과 양유훤에게 미움을 잔뜩 샀으니 이 기회를 빌려 흥이라도 돋워주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하현은 이런 사람들과 왈가왈부하기 싫어서 적당한 보상을 해 주며 조용히 넘겼다.어쨌든 이 사람들은 많은 시민을 대표하기 때문이었다.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마음이 극도로 불안했다.많은 사람들이 이 중요한 순간에 어느 쪽에 서야 할지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군중 속에서 넋이 나간 얼굴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양호남의 어깨가 축 처졌다.그는 마치 마지막 희망의 끈이라도 되는 듯 원가령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원가령은 양호남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며 뿌리치듯 그의 손을 내버리고 하현 앞으로 걸어와 창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 내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어.”그녀는 하현의 무덤덤한 표정을 보고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달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하현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그럼 우리 이전처럼 친구가 되는 거지?”“우리 좋은 친구였잖아, 안 그래?”하현은 한발 물러서며 원가령의 손을 뿌리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시간은 말이야.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니야.”“우린, 되돌아갈 수 없어.”원가령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눈빛이 얼어붙었다가 순간 통곡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자신이 이미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자신이 놓친 게 고작 사람 한 명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보니 자신이 놓친 것은 자신의 소중한 일생이었다.바로 그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전화를 받자마자 전화기 맞은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형부, 어디세요? 왜 우리랑 같이 금정에 안 오셨어요?”전화를 건 사람은 설유아였다.하현이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남양 쪽에 볼 일이 있어서 여기
”그리고 엄마가 금정에 있는데 며칠 동안 여행을 간다고 하길래 내가 코스 짜 줬어. 아마 기분 좀 나아질 거야.”“날 봐서라도 나중에 엄마 만나면 너무 충돌하지 말고, 응?”“그래, 그럼.”하현은 부드러운 미소를 띠며 설은아에게 물었다.“아, 당신 뭐 잊은 거 없어?”설은아는 어리둥절해하며 되물었다.“뭔데?”“사흘 뒤면 우리 결혼기념일이잖아.”“우리 이번 참에 혼인신고 다시 할까?”설은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얼굴이 볼그레지며 허둥지둥 영상통화를 끊었다....오후 3시, 페낭 종합병원 VIP 병동.양 씨 가문 노부인은 한참 전에 정신이 돌아와 있었다.그녀는 지금 병상에 기대어 앉아 차가운 눈빛으로 전방을 주시하고 있었다.그녀의 얼굴에 깊고 날카로운 주름이 움푹 패어 있었다.그녀는 그렇게 한참을 멍하니 앞만 바라보며 화를 내기는커녕 그 어떤 말도 입 밖에 내지 않았다.그녀 주위로 살벌한 기운이 자욱이 맴돌았다.방에 모인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서로를 멀뚱멀뚱 쳐다볼 뿐 노부인만 쳐다보고 있었다.다들 노부인이 뭐라도 얼른 생각을 정해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하지만 노부인은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할머니, 우린 이제 어떻게 해야 해요?”한참이 지나 양호남이 도저히 더는 참을 수 없었던지 침묵을 깨고 나왔다.하현이 내건 조건들을 노부인이 들어줄까 봐 양호남은 마음 가득 불안한 심정을 감출 수가 없었다.하현의 조건을 들어준다면 자신의 다리도 부러질 뿐만 아니라 양 씨 가문은 모든 것을 잃게 되고 다시는 부귀영화를 누리지 못하기 때문이다.“무슨 방법을 생각해야 해요.”“맞아요. 할머니는 우리 양 씨 가문 기둥이잖아요.”“이럴 때일수록 할머니가 정신 바짝 차리셔야 해요. 그리고 우리한테 지시를 내려주셔야 해요. 그래야 우리가 일치단결해서 싸울 수가 있어요.”양신이가 얼얼한 얼굴을 감싸며 입을 열었다.“우리 양 씨 가문은 기개가 있는 집안이에요. 남양 3대 가문 중
”노부인, 큰일 났습니다. 기업청 사람들이 갑자기 들이닥쳐 우리 가문의 장부와 납세 명세서를 살펴보겠다고 합니다!”“노부인, 노동청에서도 우리 양 씨 가문 공장에 와서 그동안 직원들 월급을 주지 않은 일이 발각되었으니 공정하게 처리하라고 했습니다.”“노부인, 큰일 났습니다. 몇몇 주주들이 자발적으로 양유훤과 접촉하여 아주 낮은 가격으로 우리 가문의 주식을 넘겼습니다!”“그리고 지금 공급업체에서는 대금 상환을 재촉하고 있습니다.”“그뿐만이 아닙니다. 은행에서는 만기도 도래하지 않은 대출을 상환하라고 독촉하고 있습니다.”“노부인, 원 씨 가문에서 소식이 왔습니다. 원천신이 가문에서 쫓겨났다구요. 이제 더 이상 원 씨 가문 사람이 아니랍니다...”나쁜 소식들이 줄을 이어 들어와 양 씨 가문 사람들의 정신을 흔들어 놓았다.모두들 어안이 벙벙한 채 뭘 어떻게 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노부인, 남양 무맹은 양씨백약을 불량품이라 선포하고 앞으로 양가백약 제품만 사용할 거라고 합니다...”“우리 가문은 완전히 망했습니다!”이 소식을 들은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놀라서 넋을 잃은 듯 초점 없는 눈빛으로 바닥에 주저앉았다.지금 같으면 하현은 정말로 1분 만에 양 씨 가문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한순간에 모든 부귀를 잃고 길거리에 나앉을 상황이 되자 그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어떻게 해요? 이 일을 어떻게 하냐구요!”“하현은 지금 급소를 찌르며 우리 가문을 공격하고 있어요. 이러다간 우리 가문이 금방 마비될 수 있다구요!”“하현이 이렇게 밀어붙이다가 쌍방이 모두 손실을 입는다고 해도 꿈쩍도 하지 않을 거예요!”“우리가 완전히 무너지면 그때 하현은 양유훤과 손을 잡고 양가백약으로 시장을 완전히 점령할 수 있어요.”“노부인, 생사의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뭐라도 한 마디 하시죠!”“아니면 양유훤 앞에 가서 무릎이라도 꿇고 빌어요. 어쨌든 양유훤도 양 씨 가문 사람이니까 우리가 용서하면
”맞아요. 노부인이 양제명과 양유훤을 이렇게 대하지 않았더라면 우리 가문은 이미 많이 발전했을 것이고 일찍이 남양 제일 가문이 되었을 거예요!”“맞습니다. 이건 노부인이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어야 할 일입니다!”“양유훤이 노부인의 체면을 봐주지 않는다고 해도 양제명 어르신이 오랜 부부의 정을 생각해 주신다면!”“우리는 그들 덕분에 앞으로 수십 년은 더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어요!”양 씨 가문 사람들이 저마다 한마디씩 떠들었다.그들은 지금껏 쌓였던 불만을 털어놓는 한편 수십 년 동안 더 누릴 수 있는 부귀영화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그런 기회를 내동댕이칠 사람이 몇이나 있겠는가?그들은 사회로 나가 일할 능력을 잃은지 오래였고 가문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면 정말 밖에 구걸하러 갈 수밖에 없었다.그래서 그들은 양제명과 양유훤 앞에 기꺼이 무릎을 꿇을 각오가 되어 있었다.말하자면 양 씨 가문의 노부인의 지위가 흔들렸고 더 이상 노부인이 양 씨 가문의 주인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이를 본 양호남이 입을 열었다.“무슨 말이야?!”“당신들 무슨 말을 하는 거야?”“지금 할머니를 의심하는 거야? 당신들 살고 싶지 않아?”“살기가 지겨워?!”양신이도 옆에서 거들었다.“오늘날 우리가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었던 건 다 할머니 덕분이야. 그런데 지금 그런 할머니를 몰아붙인다니, 당신들은 양심도 없어?”“당신들 나중에 우리 할머니 얼굴을 어떻게 보려고 그래? 어떻게 이렇게 배은망덕할 수 있어?”양호남과 양신이는 다른 사람들이야 양유훤에게 머리를 조아리면 용서를 받을 기회가 있다는 걸 알고 있었다.하지만 두 사람에겐 그런 기회가 절대로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하현과 양유훤이 내건 첫 번째 조건이 양호남과 양신이의 다리를 부러뜨리는 것이었다.하 씨 저놈은 정말로 악랄하기 그지없어!“닥쳐! 모두 입 닥쳐!”이 광경을 보고 노부인은 냉랭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이 일은 내가 알아서 할 일이야.
노부인은 기꺼이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태도를 보였고 그 후 자신의 뺨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축 처진 그녀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올랐다.양제명은 한숨을 내쉴 뿐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양유훤에게 자신을 가게 안으로 데려가 달라는 듯 손을 휘저었다.그는 노부인 일행은 그대로 바깥에 무릎을 꿇도록 내버려두었다.십수 년 동안의 부귀영화를 생각한다면 지금 무릎 꿇은 한 시간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양제명이 이대로 아무것도 묻지 않은 것으로 보아 부부의 정은 여전히 깊다고 할 수 있었다.한 시간 후 노부인은 비틀거리며 일어나 조심스럽게 지팡이를 짚고 차 안으로 들어갔다.뒷좌석에 앉는 순간 그녀의 얼굴에는 말로 표현하지 못할 서늘함과 밀려오는 원한이 뒤엉켰다.노부인은 운전기사에게 어서 출발하라는 듯 손을 휘저었고 사적인 프라이버시를 위해 보호 유리를 완전히 올린 뒤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전화가 연결되자 노부인이 은밀한 목소리로 말했다.“하 씨 그놈이 왜 아직도 죽지 않았지?”“내가 이미 금액을 올려서 입금했을 텐데?!”“언제 죽일 작정이야?!”전화기 너머에서 대답했다.“노부인, 하현의 신분이 우리가 상상했던 것 이상이라서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습니다.”“만반의 계획을 세웠지만 도무지 손을 쓸 기회가 없었어요...”노부인은 갑자기 몸을 곧게 세우며 입을 열었다.“나는 그놈이 어떤 신분이든 얼마나 대단하든 상관없어!”“당신들이 어서 빨리 그놈의 숨통을 끊어주기만 하면 돼!”“돈이 더 필요하면 더 주지! 천억 더 줄게!”“그놈만 죽여 준다면 우리 양 씨 가문 재산의 절반까지도 떼어 줄 테니까 명심해!”노부인은 이 모든 일의 주범이 하현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했다.오지랖 넓게 감히 양 씨 집안일에 방해를 놓는 그놈만 죽인다면 양제명과 양유훤이 어찌 그녀의 행보를 막을 수 있겠는가?그녀는 자신의 계략으로 얼마든지 양제명을 죽일 수 있다고 믿었다.“좋습니다. 노부인께서 이렇게 대범하시니 저희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