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는 얼굴이 사색이 된 페낭 TV 기자, 일간 신문 기자, 인플루언서, 사자춤, 용춤을 준비하는 팀들이 양가백약 앞에 도착했다.어쨌든 이들은 오늘 하현과 양유훤에게 미움을 잔뜩 샀으니 이 기회를 빌려 흥이라도 돋워주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하현은 이런 사람들과 왈가왈부하기 싫어서 적당한 보상을 해 주며 조용히 넘겼다.어쨌든 이 사람들은 많은 시민을 대표하기 때문이었다.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마음이 극도로 불안했다.많은 사람들이 이 중요한 순간에 어느 쪽에 서야 할지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군중 속에서 넋이 나간 얼굴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양호남의 어깨가 축 처졌다.그는 마치 마지막 희망의 끈이라도 되는 듯 원가령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원가령은 양호남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며 뿌리치듯 그의 손을 내버리고 하현 앞으로 걸어와 창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 내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어.”그녀는 하현의 무덤덤한 표정을 보고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달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하현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그럼 우리 이전처럼 친구가 되는 거지?”“우리 좋은 친구였잖아, 안 그래?”하현은 한발 물러서며 원가령의 손을 뿌리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시간은 말이야.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니야.”“우린, 되돌아갈 수 없어.”원가령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눈빛이 얼어붙었다가 순간 통곡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자신이 이미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자신이 놓친 게 고작 사람 한 명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보니 자신이 놓친 것은 자신의 소중한 일생이었다.바로 그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전화를 받자마자 전화기 맞은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형부, 어디세요? 왜 우리랑 같이 금정에 안 오셨어요?”전화를 건 사람은 설유아였다.하현이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남양 쪽에 볼 일이 있어서 여기
서울시 SL빌라. 오늘은 설씨 어르신의 칠순 잔치가 열리는 날이다. 집안에는 이미 손님들로 북적거리고 있었다.설씨 집안의 자손들은 너나 할것없이 준비해온 선물을 어르신께 드리면서 이구동성으로 웨쳤다."어르신, 항상 건강하시고 만수무강하세요."의자에 앉아있는 설씨 어르신은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그래 그래, 아가들아. 오늘 내 기분이 참 좋으니 너희 소원을 각각 하나씩 들어주도록 하자꾸나! 갖고 싶은 것을 말해 보도록 하거라.""할아버지, 저는 바다 근처에 있는 아파트 한 채를 갖고 싶어요. 그리 비싸지 않아요. 2억 정도밖에 안 돼요...""할아버지, 저는 한정판 샤넬 백을 갖고 싶어요...""할아버지, 저는 BMW 스포츠카 한 대를 갖고 싶어요...""할아버지, 저는 롤렉스 시계를 갖고 싶어요...""...""좋아. 내가 너희 소원을 하나 하나 다 이루어주마!" 설 씨 어르신은 망설임 없이 약속했다.선물을 요구한 설씨네 젊은이들은 너무 기뻐 엎드려 절이라도 하고싶은 분위기였다.이때, 설 씨 집안 데릴 사위 하현이 갑자기 앞으로 한걸음 나서며 말했다. "할아버지, 저 스쿠터 하나만 사주시면 안 될까요? 제가 시장에 채소 사러 갈 때 사용하려고 그러는데.."하현의 말이 끝나자, 설 씨 집안 사람들은 전부 경악을 금치 못했다. 모두들 어안이 벙벙해 진채로 하나같이 바보 쳐다보듯 하현을 바라봤다.저 데릴사위 녀석 정신이 나간 건가? 이게 무슨 경우지? 어떻게 고작 데릴 사위 따위가 입을 뻥긋할 수 있지?게다가 하현은 설 씨 어르신의 칠순 잔치에 선물 하나 준비하지 않았다. 그런 신세에 어쩜 저토록 뻔뻔하게 설 씨 어르신께 무언가를 요구하는 걸까? 심지어 다른 것도 아니고 스쿠터였다. 일부러 모욕하려고 그런건가?3년 전, 설 씨네 할머니가 거지같은 몰골인 하현이라는 자를 집안에 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맏손녀인 은아를 강제로 하현에게 시집보냈다. 그러나 결혼 당일, 설 씨네 할머니는 손녀딸의 결혼
“하엔 그룹에서 보낸 문자잖아.” 하현은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하 씨 집안은 강남에서 영향력이 제일 큰 집안이었다. 원래 하현은 가문의 황태자이자 상속자였다.3년 전, 하현은 자기 힘으로 쇠퇴해져가는 가문을 이끌고 천만조에 달하는 대그룹 정상 자리에 다시 등극했었다.그가 하엔 그룹을 이끌고 전국 10위권에 드는 재벌 가문의 서열에 들어설 무렵, 집안 사람 누군가가 하현에게 회사 자금을 횡령했다는 누명을 씌었다. 그래서 하현의 후계자 신분은 박탈되었다.그후, 하엔 그룹은 하현을 아예 호적에서 파버렸고, 그의 부모님은 곧바로 얼토당토 않는 모 인수계획이라는 명목으로 해외에 이송되었다. 그 이후로 하현은 부모님을 만나보지 못했다.3년 전에 하현이 하 씨 집안에서 쫓겨날 때, 그에게는 단 한 푼도 없었다. 그 엄청난 타격으로 인해 하현은 심하게 앓아누웠다.그무렵, 다행히도 설 씨네 할머니가 하현을 집안의 데릴 사위로 받아들였다. 이로써 하현은 거리바닥을 헤매는 거지신세는 면하게 되였다.그러나 하현과 은아는 이제 결혼 3년 차임에도 불구하고 둘은 명목상의 부부일뿐 잠자리를 가진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설 씨네 가문에서 이미지에 신경쓰지 않았다면 하현은 아마 서재에서 잠을 잘 기회조차 없었을 것이다.벌써 3년이 지났다. 하현은 자신이 이런 삶에 익숙해져 있는 줄 알았다. 데릴 사위면 데릴 사위답게 사는게 정상 아닌가?하지만 하현에게는 말못할 고충이 있었다.그건 바로 그의 아내 은아때문이였다.비록 은아는 늘 무례했고 하현의 체면을 봐준적 없었지만, 그녀는 너무 특출하게 아름다웠다. 3년 동안 은아와 함께 지내다 보니, 하현은 자신이 어느새 그녀를 몰래 사랑하게 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였다.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핸드폰에 또 여러 통의 문자가 왔다.“도련님, 하엔 그룹이 최대의 위기에 봉착했습니다. 현재 파산 직전에까지 이르렀습니다.""간절히 부탁합니다. 제발 도와주세요! 도련님이라면 방법이 있으리라 믿습니다.
30분 후, 하현은 은아의 회사에 도착했다. 하현이 입구로 들어가려던 순간, 갑자기 경호원 한 명이 그를 호신봉으로 막아섰다. 경호원이 차갑게 말했다. “썩 꺼져! 여기는 거지들을 반기지 않아.”하현은 일어나자 마자 구멍난 티셔츠에 반바지 하나를 걸쳐입고 씻지도 않고 나왔기에 거지처럼 보이긴 했다. 하현은 그런 거에 익숙해져 있었다. 그는 웃으며 말했다. “아저씨, 전 제 아내한테 서류를 전해주러 온 사람이에요.”“그 꼴에 아내가 있다고?” 경호원은 의심했다. “청소부 희진이야 아니면 뒤에 주방에서 일하는 직원 수빈이야?”“제 아내는 은아에요.” 하현이 말했다.경호원은 순간 벙져 있 이내 웃음을 터뜨렸다. “아 그렇구나. 당신이였구나. 말로만 듣던 설 씨 집안 데릴사위님...하하하하하.” 경호원은 웃음을 멈추지 못했다.하현은 고개를 저었다. 그가 이렇게 유명한 줄은 전혀 몰랐다.“알았어, 알았어. 서류를 내놔. 설 씨 아가씨께서 당신이 오면 서류를 받아달라고 했어.” 경호원은 말했다.“아니요.” 하현은 고개를 저으며 고집스레 말했. “우리 처제가 꽤 중요한 것이라고 했으니 제가 직접 아내한테 전해줘야 겠어요. 잠깐 비켜주시겠어요?”“당신!” 경호원은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 ‘미친 거 아니야? 설 씨들이 얼마나 자기를 싫어하는지 모르나? 게다가 이렇게 옷을 입고 나오다니. 회사 이미지를 망칠까 걱정은 안 하나?’그들이 이야기하던 중, 갑자기 뒤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부릉부릉 크게 들렸다. 얼마 후 BMW 5 시리즈 하나가 빠른 속도로 드리프트를 하며 하현의 스쿠터 옆에 주차했다. 그리고 그들은 이준이 한 손에 장미 다발을 든 채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았다.“강 부장님! 안녕하세요.” 이준을 본 건방진 경호원은 어느 친절한 얼굴로 돌변하더 알랑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경호원은 말했다. “강 부장님, 이쪽으로 모시겠습니다. 정사장님 사무실에서 부장님을 기다리고 계십니다.이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 하현에게 눈길 한
“설명? 내가 왜 당신한테 설명해야 해?” 하현은 차갑게 말했다. “은아는 내 아내야. 은아한테서 떨어져. 발정난 거라면 다른 곳으로 가!”“그리고, 내 아내가 장미를 좋아한다면 내가 직접 사줄 거야! 외딴 남자에게서 받을 이유가 없어!”"은아는 아름다운 여자야. 이따위 장미가 어떻게 은아에게 어울리겠어? 오늘밤 내가 프라하에서 장미를 사서 내 아내에게 선물할거야!"“너 미친거 아니야! 지능이 낮은 거야 아니면 그냥 멍청한 거야? 너 돈 있냐? 어제 설 씨 어르신한테 스쿠터 사달라고 하는 거 다 들었어. 당신같은 가난뱅이는 신장을 판다고 해도 프라하 장미 한송이 못사. 왜 이렇게 뻔뻔하게 여기서 쇼를 하는 거야?”이준의 눈빛은 차가워졌다. 그는 하엔 그룹에서 높은 직위를 가지고 있는 고위층이다 . 어떻게 저따위 데릴사위 따위가 나한테 감히 이렇게 말을 하지?’그리고 이준을 제일 화나게 한 것은 하현이 이준의 꽃을 짓밟아 버리고 은아를 엘리베이터로 끌고 간다는 것이다. ‘저 자식은 도대체 뭘 믿고 저러는 거야?’잠깐 머리를 굴리던 이준은 뜬금없이 입가에 피식 냉소를 지으며 자신만만한 어투로 소리질렀다. 이준은 확신에 찬 듯했다. “은아씨, 60억 원 투자가 필요하지 않으세요?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요.”“네?” 은아는 어안이 벙벙했다.이준은 차분히 말했다. “은아씨, 당신 회사에 60억 원이 필요하다고 알고 있어요. 마침 제 수중에 그 정도 액수의 돈이 있어서 투자금으로 사용할수 있어요. 저와 함께 오늘 점심을 먹어준다면 그건 당신 몫이 될 거에요.”“정말이에요?” 은아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의 손을 내팽개쳐 버렸다. 그녀의 회사는 그 돈이 필요했다.“저는 한입에 두말하지 않는 성격입니다.” 이준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말했다.“좋아요.” 잠시 고민 후, 은아는 결국 이준의 점심 초대에 응하기로 했다. 솔직히 자금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회사가 망할 가능성이 제일 컸기 때문이다.“가요, 은아 씨. 프로젝트에 관한 상세한 얘기를
“도련님, 제가 본부장님에게 얼른 보고하겠습니다. 도련님께서는...”“저랑 흥정할 생각하지 마요. 안 그러면 하엔 그룹 전부 망가뜨릴 거예요!”수화기 너머의 사람이 뭐라고 대꾸도 하기 전에, 하현은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골든 빌라 지역의 모든 빌라는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디자이너가 특별히 디자인한 것으로 세라믹 타일 종류부터 나무 종류까지 다 각별히 신경 써서 고른 것이었다. 돈만 있다고 해서 아무나 살수 있는 곳이 아니였다.이 시각, 하현은 베란다 소파 위에 여유롭게 앉아있었다. 하현의 맞은편에는 하엔의 현 본부장 하태규가 있었다. 태규는 하현의 삼촌이자, 자신의 기사를 불러 하현을 픽업해서 빌라로 데려오라고 시킨 사람이었다.하태규, 하엔 그룹의 현직 오너.직접 눈으로 확인하지 않고는 평범해 보이는 이 노인네가 하엔 그룹의 일인자라는 실감이 나지 않을수도 있다.이런 하태규 뒤에는 포스가 남다르고 눈빛이 날카로운 두명의 경호원이 서있었다.여유로운 하현의 얼굴을 보며 태규는 웃으며 말했다. “역시 우리 현이, 전임 오너다운 포스는 여전하네. 우리가 안 본 지 3년이나 됐나? 너 더 잘생겨진것 같다야 ...”“삼촌, 빙빙 돌려 말 안 해도 돼요. 본론으로 들어가시죠?” 하현은 태규의 말을 끊으며 직설적으로 말했다.하태규 뒤에 서있던 두 경호원은 하현의 태도에 얼굴색이 하얗게 질렸다. 그들은 오랫동안 태규를 섬기면서 그래도 안목이 많이 넓은 편이라고 생각해왔는데 오늘 처음으로 천하의 하태규에게 이런 태로도 나오는 사람을 봤다. 감히 어디라고! 살기 귀찮아 진건가?두 경호원은 하현을 독기있는 눈으로 바라보며 하태규의 명령을 기다렸다. 그러나 다음 순간, 태규의 반응은 그들의 예상을 뒤엎었다. "얘들아, 얼굴 표정 풀어. 이분은 예전에 하씨 가문에서 만인지상 일인지하의 중요한 위치에 계셨던 분이야. 옛날같았으면 너희 둘다 죽었어.""어르신, 그래도 저 사람이 어르신한테 대하는 태도가..."하태규는 웃으며
“강이준?”하현은 잠시 멍해졌다. 그리고나서 웃었다. ‘그 xx는 그저 하엔그룹에서 키운 개 한마리일 뿐이야. 강이준이 쫓겨나고 말고는 내 한마디 말에 달린거 아닌가.'“어머님, 저는 이혼 안 합니다. 설령 저희가 정말 이혼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건 어머님과는 아무 상관 없는 일입니다. 참견하지 말아 주시길 바라요.” 하현은 가볍게 웃고나서 이 한마디를 내뱉은 뒤 스쿠터를 타고 떠났다.“하현, 너 이 자식이 어딜 감히!” 희정은 분노에 치를 떨었다. 마음 같아서는 하현을 차로 들이받고 싶었다. 하지만 주위에 사람들이 둘러싸인 걸 보고 그녀는 화를 억누르며 얼른 떠날 수밖에 없었다.…어느덧 퇴근시간이 되어 은아는 회사 안내 데스크로 걸어갔다.안내 데스크에는 여직원 두명이 뭐가 좋은지 까르르 웃어대며 얘기하고 있었고 그 주변에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있었다.“설 대표님 남편은 머저리야. 프라하 장미들을 선물하네 마네 떠벌이다니. 평소 거울은 안 보고 다니나봐? 스쿠터를 타고 다니는 주제에.심지어 슬리퍼까지 해졌잖아. 그런 거지는 구걸이나 하는게 적성에 맞아…”“맞아, 설 대표님은 왜 저런 머저리랑 결혼했는지 몰라!”“머저리가 아니라면 데릴사위도 안됐겠지!”“나였으면 한참 전에 이혼했겠다…”“설 대표님에게 마음있는 사람이 어디 한둘이니…그 많은 남자들을 제쳐두고 뭐하는 짓이래...”은아는 할 말을 잃었다.“당신들…” 은아는 의논 소리에 빨간 입술을 깨물며 얼굴을 붉혔다. 그 순간 그녀는 너무너무 쪽팔렸다.“설 대표님…” 안내 데스크에 있던 두 여자는 은아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랐다.“대표님, 저희는 그냥 헛소리하고 있었습니다. 부디 화내지 마세요…”“닥쳐!” 은아는 몸을 살짝 떨며 소리쳤다.두 눈 빨개진 은아는 금세 울것만 같았다. 왜 자신은 이렇게 쓸모없는 남편을 둔 걸까?다른 여자들 남편은 비즈니스 엘리트거나 부유한 집안 출신인데 자신의 남편은 아무것도 아닌 그저 데릴사위였다. 그런 하현은 은아를
“너는...하현?”우석진은 하현을 의심스럽게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픽 웃고는 주차를 하고 호텔로 바로 걸어갔다.하현은 뻘쭘했다. 석진에게 먼저 말을 걸었는데 그렇게 무시당할 줄은 몰랐다.그 둘은 한 명씩 차례대로 프라이빗 룸으로 들어갔다. 이 시각 동기들은 이미 다 도착해있었다. 문이 열리자 모두의 시선이 그리로 쏠렸다.“이거 과대 아니야? 소문대로 성공했네! 인물이 훤하다!” 누군가 분위기를 띄우며 말머리를 뗐다. 슈트 차림에 가죽 구두 한 쌍을 신고 있는 석진은 허리에 아우디 차 키까지 걸고 있어 그 순간 정말 잘생겨 보였다.얼마 안 지나, 석진 뒤에 하현이 뒤따라 들어오는 것을 누군가 발견했다. 비록 하현이 입고있는 슈트가 잘 어울리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고급스럽고 유명한 명품 브랜드임을 알수 있었다.동기생 한 명이 그걸 보고 웃었다. "하현, 너도 잘 지내나 봐! 일로 와, 이 두 메인 자리는 너랑 과대를 위해 미리 찜을 해두었어!"석진은 하현을 슬쩍 바라보고는 픽 웃으며 고개를 흔들었지만, 그래도 더이상 뭐라고 하지는 않았다. 석진은 하현이 스쿠터를 타고 다닌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았다.하현은 "어" 하고 대답했지만, 자리에 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그는 주변을 한번 휙 둘러보았다. 대학시절, 과에는 예쁜 여자들이 별로 없었다. 그러나 대학여신 김겨울은 변함없이 예뻤다. 역시 여신은 여신이다. 그녀는 비즈니스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 무르익은 복숭아같은 그녀의 완벽한 몸매를 한껏 돋보이게 하였다. 이는 매우 고혹적이고 매력적이었다.심지어 멋쟁이 석진의 시선도 겨울에게 꽂혔다. 그녀의 미모에 혹한 석진은 틈을 비집고 다가가 웃으며 말했다. "오, 너였네, 우리 여신님. 안본지 진짜 오래됐다. 왜 날 찾지도 연락하지도 않았어? 지금은 어디서 일해?"겨울은 쑥스러운듯 웃으며 나즈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난 너만큼 잘 지내지는 않아. 넌 아우디도 타잖아."그 소리에 석진의 두 눈이 반짝했다. 그에게 기회가
현장에는 얼굴이 사색이 된 페낭 TV 기자, 일간 신문 기자, 인플루언서, 사자춤, 용춤을 준비하는 팀들이 양가백약 앞에 도착했다.어쨌든 이들은 오늘 하현과 양유훤에게 미움을 잔뜩 샀으니 이 기회를 빌려 흥이라도 돋워주면 용서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하현은 이런 사람들과 왈가왈부하기 싫어서 적당한 보상을 해 주며 조용히 넘겼다.어쨌든 이 사람들은 많은 시민을 대표하기 때문이었다.시민들의 모습을 보고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마음이 극도로 불안했다.많은 사람들이 이 중요한 순간에 어느 쪽에 서야 할지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군중 속에서 넋이 나간 얼굴로 이 광경을 지켜보던 양호남의 어깨가 축 처졌다.그는 마치 마지막 희망의 끈이라도 되는 듯 원가령의 손을 꼭 잡고 있었다.원가령은 양호남의 손가락을 하나하나 펴며 뿌리치듯 그의 손을 내버리고 하현 앞으로 걸어와 창백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 내가 잘못했어. 정말 잘못했어.”그녀는 하현의 무덤덤한 표정을 보고 자신의 마음을 이해해달라는 듯 미소를 지으며 하현의 손을 잡으려고 했다.“그럼 우리 이전처럼 친구가 되는 거지?”“우리 좋은 친구였잖아, 안 그래?”하현은 한발 물러서며 원가령의 손을 뿌리친 뒤 천천히 입을 열었다.“시간은 말이야. 다시 되돌릴 수 있는 게 아니야.”“우린, 되돌아갈 수 없어.”원가령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눈빛이 얼어붙었다가 순간 통곡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그녀는 자신이 이미 가장 소중한 것을 잃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자신이 놓친 게 고작 사람 한 명일 뿐이라고 생각했는데 이제 와 보니 자신이 놓친 것은 자신의 소중한 일생이었다.바로 그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진동하기 시작했다.전화를 받자마자 전화기 맞은편에서 낯익은 목소리가 들렸다.“형부, 어디세요? 왜 우리랑 같이 금정에 안 오셨어요?”전화를 건 사람은 설유아였다.하현이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남양 쪽에 볼 일이 있어서 여기
”할머니!”양호남이 쏜살같이 달려갔다.“할머니, 괜찮으세요?!”양신이는 소리를 지르며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당신이 사람이야?!”“이렇게까지 우리 집안을 괴롭혀야 되겠어? 그래도 우리는 당신을 관대하게 봐줬다구!”“그런데 당신은 배은망덕하게도 우리 할머니를 쓰러지게 만들었어!”“은혜도 모르는 버러지 같은 놈!”양신이가 자신에게 마구 악담을 퍼붓자 하현은 냉담한 표정을 지으며 미동도 하지 않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양 씨 가문에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내일 이맘때 양 씨 가문의 주인 자리를 양유훤에게 내어 주지 않는다면!”“그리고 노부인이 직접 양호남과 양신이의 다리를 부러뜨리지 않는다면!”“미안하지만 양 씨 가문은 이대로 끝나는 거야!”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 서슬 퍼런 하현의 말에 노부인은 눈앞이 캄캄해졌다.그녀는 자신의 가슴을 쥐어뜯으며 흉악한 낯빛으로 말했다.“네놈이 감히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양제명, 어떻게 외지인 놈과 손을 잡고 집안 식구들을 괴롭힐 수가 있어?!”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양제명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유지할 뿐이었다.“하현, 당신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원가령이 참지 못하고 하현을 향해 소리쳤다.“사람을 이렇게 몰아붙이면 안 돼! 너그럽게 용서할 줄도 알아야지!”“노부인이 뭐라고 하시든 당신한테는 어르신이잖아!”“대하 사람들은 어른을 공경할 줄도 몰라?!”“그러고도 당신이 오천 년 역사를 앞세워 큰소리칠 수 있는 거야?”원천신도 매서운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그렇게 속이 좁아서 어떻게 남자가 큰일을 이룰 수 있겠어?”“사람이 대범해야지!”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원천신을 쳐다보며 심드렁하게 말했다.“원 사장님. 제가 기회를 드리죠. 악인을 옆에서 부추기며 나쁜 짓을 한 거, 당장 사과하세요!”“사과?”원천신은 기가 막혀서 헛웃음이 나왔다.“우리 원 씨 가문을 뭘로 보고 이래? 나한테
”꺼져!”하현이 손을 쓸 필요도 없이 양유훤이 얼른 눈물을 닦으며 손바닥을 휘둘러 양신이를 날려버렸다.“그만 망신당하고 저리 꺼져!”“양유훤, 감히 날 때려?”“네가 뭔데 날 때려?”양신이는 더욱 분노에 치를 떨며 몸부림치다가 앞으로 나와 양유훤에게 대들었지만 양유훤은 가볍게 손바닥을 휘둘러 양신이의 얼굴을 후려갈겼다.양신이는 다른 양 씨 가문 사람들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눈빛을 보냈지만 양제명의 서슬 퍼런 시선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양제명은 전쟁의 신이었다.비록 몇 년을 꼼짝 않고 힘을 쓰지 못했지만 그가 뿜어내는 아우라와 위엄은 여전했다.만약 이번에 노부인이 악의로 그를 음해하지 않고 브라흐마 바찬에게 패배하지 않았다면 그는 여전히 양 씨 가문의 지존으로 자리했을 것이다.“그만!”양유훤에게 뺨을 맞고도 망신스럽게 달려드는 양신이를 보고 노부인은 버럭 소리를 질렀다.“망신 그만 당하고 이제 돌아와!”“늙은 영감탱이, 수완 한 번 좋군!”“하현, 나도 자네를 기억하네!”노부인이 음흉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런데 이렇게 해서 우리가 무너질 줄 알아? 우리가 모든 걸 잃고 망할 줄 알아? 그렇다면 당신은 너무 순진한 거야!”“그동안 난 이미 충분한 자산을 빼돌려 미국으로 보냈어. 그것만으로도 난 충분하게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 수 있어.”추악한 노부인의 행태를 목격한 양제명은 한숨을 내쉬며 천천히 말했다.“홍매, 내가 당신한테 묻고 싶은 게 있어. 당신과 난 오랜 세월 부부의 연을 맺었어. 난 모든 면에서 당신의 뜻을 존중했어.”“당신이 원하는 걸 내가 주지 않은 적이 있었던가?”“왜 이 지경까지 된 거야?!”“왜 이렇게까지 된 거냐고?”노부인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당신은 깨어나지 말았어야 했어!”“양 씨 가문은 진작에 내 손안에 있었어. 내가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의 진정한 주인이라고!”“나야말로 양 씨 가문의 유일한 주인이야!”“그런데 당신이 왜
거의 자포자기한 듯한 노부인은 원래 같으면 입에 발설하지 않았을 말을 거리낌 없이 내뱉었다.그녀는 능력도 없는 하현이 감히 양 씨 가문을 갈라놓으려 한다는 것에 격분하며 비웃음을 쳤다.지금 무슨 장난하는 거야?!노부인의 치밀한 계략 아래 한 세대를 쥐락펴락하는 전신들도 함부로 그녀 앞에서 날뛰지 못했는데 하물며 대하 외지인이 감히?거칠 것 없는 노부인의 말에 원천신과 원가령도 그제야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어쨌든 하현이 아무리 잘난 척해도 양 씨 가문을 완전히 무너뜨릴 수는 없다.양 씨 가문은 누가 뭐라고 해도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이다!그리고 양 씨 가문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인물이 노부인이었다!이런 가문의 후계자가 양호남이었다!오늘 이 정도 체면이 깎인다고 뭐 어떻게 되겠는가?!자산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다.“그렇습니까?”노부인의 말에 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손가락으로 딱 소리를 내며 말했다.“어르신, 어르신 짐작이 맞으신 듯합니다.”“어르신께 약을 먹은 사람은 어르신의 가장 가까운 사람이었습니다!”하현의 목소리가 떨어지자 후방에서 희미한 탄식과 피로가 섞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독사의 입에 있는 독, 말벌 꼬리에 있는 침. 둘 다 지독한 독이지만 가장 지독하고 치명적인 독이 여자의 마음이라더니.”목소리가 나는 쪽을 보니 하구봉과 강옥연이 휠체어를 밀고 천천히 나오고 있었다.휠체어에 앉은 사람을 보자마자 양유훤은 감정에 격한 표정으로 달려 나왔다.“할아버지, 깨어나셨군요!”그녀는 양제명에게 달려들었고 미소 띤 얼굴로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양제명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깨어나지 않았으면 주변 사람들의 추악한 몰골을 어찌 알 수 있었겠느냐?”주변 사람들은 하나같이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남양의 전신이 회복된 것인가?이는 앞으로 남양이 여전히 그의 천하에 있게 된다는 뜻이다!양 씨 가문 사람들은 눈꺼풀을 펄쩍였고 입가에 경련
정의의 편?정의를 지켜?이 말을 들은 양 씨 가문 사람들은 하마터면 여수혁의 얼굴을 칠 뻔했다.여수혁이 정의를 내걸고 배신을 해?!여수혁은 양 씨 가문 사람들이 입을 열기도 전에 얼른 앞으로 나서며 세상 정의로운 얼굴로 말했다.“당신들 양 씨 가문 사람들은 염치도 모르고 나를 회유해 양유훤의 자산을 동결하게 만들었어. 그리고 은밀하게 그 자산을 이전하길 바랐어!”“하지만 나같이 정의로운 사람이 어떻게 그런 당신들과 한패가 될 수 있겠어?”“당신들이 날 믿도록 하기 위해 난 일부러 고육지책으로 하현을 찾아가 얻어맞기까지 했어!”“결국 당신들은 날 믿었고 난 그 틈을 타 얼른 고소를 취하했지. 동결한 자산이 양유훤에게 돌아간 지 이미 오래야!”“이미 모든 절차는 완료되었어.”하현은 의아한 표정으로 여수혁을 쳐다보았다.그때 분명 여수혁은 자신에게 뺨을 맞고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었다.기꺼이 하현의 개가 되겠다고 했던 여수혁의 입에서 어떻게 ‘정의’라는 말이 나올 수 있는가?정말 여수혁은 보통 얍삽한 놈이 아니었다!하지만 하현은 이 사실을 들추어낼 마음이 없었다.효과가 있으면 된 것이었다.여수혁의 말에 노부인을 비롯한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양유훤도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양 씨 가문 사람들을 바라보았다.그녀가 마음이 약해서 사람들을 괴롭히지 않은 것이 아니었다.아무도 모르게 동결된 자산이 자신의 수중으로 들어왔고 지금은 아무도 가져갈 수 없게 단단히 문단속을 해 놨기 때문이었다.쌍방에서 몰래 뒤를 친 것도 모자라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고 있는 하현을 보니 양호남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양호남은 화를 이기지 못해 벌떡 일어나 튀어나와 악랄하게 악담을 퍼부었다.“양유훤, 무슨 근거로 양 씨 가문 자산을 빼돌린 거야?!”“넌 이제 양 씨 가문 사람이 아니야!”“양 씨 가문의 자산은 우리 양 씨 가문의 것이어야 해!”양신이도 험악한 표정을 지으며 맞장구쳤다.“맞
안타깝게도 양 씨 가문 노부인은 양호남을 자리에 앉히기 위해 양유훤을 모함해 물러나게 만들면서 이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이 일로 그녀는 양 씨 가문의 앞길을 망친 꼴이 되었고 동시에 상상도 할 수 없는 거물에게 미움을 사게 되었다.양 씨 가족들의 시선은 누구랄 것도 없이 자연스럽게 노부인에게로 향했다.그들의 눈동자에 원망의 날이 매섭게 서 있었다.그들은 양 씨 가문 어르신으로서 노부인이 이 상황을 어떻게 대처하는지 알고 싶어 하는 눈빛이었다.노부인은 지팡이를 쥐고 있던 손에 힘을 꽉 주며 이를 악물었다.아무리 해도 지금 이 국면을 만회할 방법이 없다는 것을 노부인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지금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이 얼마나 의기양양한지, 반대로 양 씨 가문은 얼마나 망신스러운지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순간 노부인은 이런 수모를 당하게 한 하현을 죽이고 싶었다.“할머니...”하현의 뒤에 서 있던 양유훤이 조용히 걸어 나왔다.“정말 후회되세요?”양유훤의 말에 노부인의 눈꺼풀은 마치 불에 덴 낙타처럼 펄쩍였고 살의마저 느껴지는 눈빛으로 양유훤을 쏘아보았다.“양유훤, 감히 날 할머니라고 부르다니?!”“네가 우리 양 씨 가문과 무슨 관계가 있다고 날 그렇게 부르느냐? 우리 양 씨 가문에는 너 같은 불효녀를 둔 적이 없어!”“왜? 이렇게 되니까 사람들 앞에서 내 체면을 뭉개버리고 싶으냐? 날 후회하게 만들고 싶으냐?”“허! 어림도 없다!”양유헌이 담담한 눈길로 자신을 쳐다보자 노부인은 화가 나서 참을 수가 없었다.“네가 부귀영화를 누리는 신세가 된다고 해도! 내 앞에서 잘난 척 좀 한다고 해도! 그게 뭐 어쨌다는 거냐?”“우리 양 씨 가문은 너처럼 체면이 당당하게 서진 못하지만 그래도 몇천억의 가산이 있어!”“우리가 지금 문을 닫고 사업을 접는다고 해도 앞으로 몇백 년은 끄떡없어!”“우리 양 씨 가문을 뭉개버리려고? 양 씨 가문 앞에서 잘난 척하고 싶으냐?”“양유훤, 하현. 잘 들어
”하현...”원가령은 망연자실한 듯 멍하니 하현을 쳐다보았다.가만히 쳐다보고 있자니 그곳에는 그녀가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남자가 서 있는 것 같았다....순간 이루 말할 수 없는 무력감이 원가령의 마음속에 무겁게 가라앉았다.양호남은 페낭에서 가장 유명한 사람 중 한 명이지만 하현은 심무해를 자신 앞에서 머리를 조아리게 만들었고 기업청 최고 책임자는 스스로 서류철을 갖다 바쳤다.남양 무맹 대표는 직접 현판을 써서 가져왔다!이런 일이 양호남에게 일어날 수 있을까?일어난다고 해도 몇십 년은 더 걸리지 않을까?아무리 생각해도 양호남의 능력으로는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이 낮았다.아니, 일어나지 않을 확률이 거의 백 퍼센트였다!그가 전신으로 태어난다면 모를까!하지만 양호남 같은 사람이 일대의 전신이 가당키나 한 것인가?그것은 그야말로 헛된 꿈이다!이런 생각이 원가령의 머릿속을 휘젓자 그녀의 마음은 절망과 후회로 가득 찼다.“뭐야? 하현은 진정한 거물이었어!”“남양 3대 가문이 우습게 보일 정도로 강력한 힘을 가진 남자였어!”“그가 지금까지 벌어진 일들에 아무런 화도 내지 않았던 것은 나약하고 무능해서가 아니었어!”“그의 눈에는 이 모든 것이 다 하찮게 보였기 때문이야!”“대하의 촌뜨기라고 생각했는데.”“운 좋게 나를 만나지 않았더라면 그는 벌써 감옥에 갔을 운명이라고 생각했는데.”“하현 같은 사람 백 명 천 명이 와도 양호남한테 안 될 줄 알았는데.”“이제 보니 양호남 같은 사람 만 명, 억 명이 와도 그의 앞에서는 감히 무릎을 꿇을 자격도 없는 거였어.”“잘난 척한 사람은 바로 나였어!”순간 원가령은 자신의 마음속에 소용돌이치는 감정들을 도무지 헤아릴 수가 없었다.충격?후회?현실 부정?아니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는 자신의 모습에 대한 절망?이루 말할 수 없는 복잡한 심경에 원가령의 표정은 극도로 일그러졌다.심지어 목에서 피 냄새가 올라오는 것 같아 하마터면 구역질
노부인의 얼굴은 사흘 밤낮을 지샌 사람처럼 새하얗게 변했다.그리고 환하게 웃는 얼굴로 뒤쪽에서 고개를 내민 원청산을 보았다.“하현, 개업 축하해.”“남양 무맹을 대표해 선물을 하나 가지고 왔는데 마음에 들었으면 좋겠어.”원청산이 손을 흔들자 남양 무맹 제자들이 현판을 들고나왔다.현판 위에는 ‘양가백약’이라는 글자가 쓰여 있었다.“양가백약!”글자 아래에는 낙관이 찍혀 있었다.남양 무맹.구매 계약서도 주문서도 없이 양가백약, 남양 무맹이라는 여덟 글자뿐이었지만 사람들은 이 현판을 보고 모두 깨달았다.남양 무맹의 상처치료제는 모두 하현의 가게에서 구입할 것이라는 것을!가장 중요한 것은 이 현판이 이곳에 있는 한, 양가백약은 계속해서 사업을 확장할 것이고 관청이든 깡패들이건 아무도 감히 양가백약을 건드리지 못한다는 것이다!심지어 이 현판만 있으면 남양 무맹이 뒤에 있다는 걸 만천하에 알리는 꼴이 된다.돈을 넘어서는 천군만마 그 이상이었다!“뭐라고?!”원천신 일행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당연히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그들은 이 광경을 보고 현기증이 난 듯 휘청거렸다.노부인 일행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고 눈앞이 캄캄해졌다.페낭 무맹이 페낭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좌지우지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하물며 남양 무맹이라니!남양에서 남양 무맹의 입김은 실로 말할 것도 없었다.이 현판은 그야말로 천금과도 비견할 만했다.이것만 있으면 하현과 양유훤의 개가죽 연고 가게는 틀림없이 날개 돋친 듯 남양 전역으로 확장할 것이다!노부인 일행은 지금 땅바닥에 머리를 박고 죽고 싶은 심정이었다.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결말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하현과 양유훤이 일어서기만 하면 양 씨 가문 절반이 무너진다는 사실을 그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양 씨 가문의 양씨백약이 어떻게 활로를 찾을 수 있겠는가?양 씨 가문 사람들은 눈앞의 상황이 제발 꿈이길 바랐지만 아무리 눈을 꼬집고 봐도
순간 우덕의는 온몸을 부르르 떨더니 설설 기며 하현 앞으로 굴러와서 연신 머리를 조아렸다.“감찰관님, 정말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눈이 멀어서 하늘 높으신 분을 몰라뵈었습니다!”“제발 대인답게 관대하고 너그럽게 용서해 주십시오. 부디 이 하찮은 놈을 불쌍히 여기시어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말을 하면서 우덕의는 자신의 뺨을 수십 대 후려갈겼다.“제발 기회를 주십시오!”그리고 십여 명의 그의 심복들도 황공히 얼른 무릎을 꿇었다.감찰관의 공적은 다들 어느 정도 들어봐서 잘 알고 있었다.곧이어 하현의 낡은 가게 앞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그대로 무릎을 꿇었다.원천신 일행은 정신이 혼미해졌고 눈가에는 쉴 새 없이 경련이 일어났다.그녀들은 도저히 이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다.방금 우덕의는 하현에게 혼쭐을 내주겠다며 큰소리를 뻥뻥 쳤었다.그런데 왜?왜 갑자기 머리를 조아리고 무릎을 꿇는 것인가?이 무슨 장난 같은 상황이란 말인가?하현은 그냥 대하의 촌뜨기 아니었던가?설마 그에게 또 다른 신분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우덕의를 무릎 꿇릴 만큼?원가령은 이 모든 상황이 화가 나서 미칠 지경이었다.눈앞의 광경은 그녀가 예상했던 것과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그녀는 하현의 가게가 손님은 하나도 없고 파리만 날려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는 모습을 목격하고 싶었다.하현이 목놓아 눈물을 흘리고 몹시 원통해하며 자신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한 번만 더 기회를 달라고 애걸복걸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자신의 행동이 틀렸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해 주고 싶었다.하지만 이런 결과를 보게 될 줄이야!바윗덩이 같은 무거운 좌절감이 원가령의 마음을 짓눌렀다.그녀는 어금니를 와그작 깨물었다.괴로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하현, 순풍에 돛 단 듯 사업 번창하길 바랍니다.”“하현, 이 상처치료제는 정말 효과가 좋은 것 같아요.”“감찰관, 축하하네.”원가령이 이를 악물고 속으로 피눈물을 흘리고 있는 동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