핸드폰 화면에는 ‘경박한 노인’이라는 다섯 글자가 나타났다. 방금 하현이 걸었던 전화번호였다. 하현은 아무렇지 않게 수신버튼을 눌렀고 곧 영상이 연결되었다. 한 노인이 화면에 나타났고, 생김새가 분명하게 드러났다. 선풍도골하며 박학다식한 느낌이 났다. 그는 방금 잠에서 깬지 얼마 안되어 지금 잠옷을 입고 있었지만 활기찬 느낌이었다.세상에!이 분은…한국의 명의!의학계의 살아있는 신!한상현!한 선생님!이 순간 하현의 핸드폰을 본 주위의 많은 사람들은 모두 깜짝 놀라 숨을 멈추었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이분은… 정말 한상현 선생님. 내가 기억하기로 한상현 선생님은 이마에 점이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역시 맞네요…”누군가 중얼거렸지만 지금 이 순간에는 평지에 울리는 천둥소리처럼 들렸다. 그 순간 현장은 폭발했다. 이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모를 이 놈이 정말 한상현 선생님과 연락을 하다니?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정말 사실일까?지금 이 순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의 뺨을 한 대 때렸다. 매우 아프다는 것을 알고 나서야 자신이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니라는 것을 비로소 확신했다. 강천의 얼굴 표정은 순식간에 굳어졌고 모래를 씹어 먹은 듯 얼굴이 일그러졌다. 한쪽의 황천수는 강천의 표정을 주의 깊게 보지 못하고 무의식적으로 한 걸음 앞으로 나와 말했다. “한 선생님. 접니다. 황천수요. 저 기억하세요?”영상 맞은편의 한상현은 무의식적으로 황천수를 잠시 훑어본 뒤 잠시 생각하고 나서야 입을 열었다. “너구나. 내가 20여 년 전에 서울대 의대에서 강의 할 때 내 강의 몇 개 들었었잖아. 나한테 질문도 많이 하고 그랬었는데! 그때는 중년이었는데 지금은 어르신이 됐구나!”한상현은 감탄하는 얼굴이었다. 황천수는 공손하게 말했다. “선생님 앞에서 감히 어르신이라니요. 어르신이야 말로 의학계의 대선배이십니다.”황천수의 말을 들은 일부 전문가와 교수들은 말문이 막혔다. 보아하니 영상
모두들 지금 눈을 부릅뜨고 한 마디도 할 수 없었다. 강천은 머리가 ‘웅’하면서 마비가 된 것처럼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거지?이 하씨는 한상현 선생을 잘 알 뿐만 아니라 두 사람은 보기에 망년지교 같았다. 아직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한상현은 웃으며 말했다.“좋아. 자네 시간 있을 때 언제든지 이리로 오게. 나는 언제든지 환영이야”“본론으로 들어가 볼까? 이 한밤중에 전화를 다하고 무슨 일인가?”분명 한상현 역시 훤히 들여다 보는 사람이었다. 하현이 이렇게 늦게 전화를 하자 분명 무슨 일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이제 막 옛날 일을 얘기했을 뿐이고 지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하현은 군말 없이 손에 들고 있는 자료를 카메라에 비추고는 뒤지기 시작했다. 십여 분 뒤 한상현은 의심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현아, 자네가 어떻게 이 연구 프로젝트 자료를 가지고 있어?”“이 연구 프로젝트 그 당시에 저에게 말씀하신 적 있지 않으세요?”하현이 말했다.“그런 일이 있었지. 근데 내가 검토해본 결과 이 연구 프로젝트는 실현 가능성이 없는 것으로 확인이 됐고, 만약 실제로 진행이 되면 중증환자가 질식해서 사망할 확률이 높아.”“그래서 5년 동안 봉인해 둔거야.”“근데 현아, 너 이 자료 어디서 찾아낸 거야? 내 기억이 틀리지 않다면 내가 청담동에 있는 내 연구실에다 자물쇠로 잠가뒀는데. 그리고 내가 거기엔 한 5년 동안 가보지도 못했는데.”한상현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자신이 포기한 프로젝트의 자료가 어떻게 지금 하현의 손에 있는지 궁금해했다. “노인네야. 그 연구실은 누가 제공 한 거야? 지금 누가 관리하고 있어?”“보자, 아마 남원에 있는 한 강씨 의학계 집안으로부터 기증을 받은 거 같아. 하지만 내가 남원을 떠날 때 사용권한을 다 그들에게 돌려줬지…”“자, 그나저나 현아, 자네가 이 자료를 어디서 얻었든지 간에 이건 실패한 연구야. 실수로 다른 사람한테 해를 끼칠 수 있으
하현은 냉담하게 황천수를 쳐다보며 말했다.“황천수씨 방금 당신이 말했듯이 만약에 제가 증거를 찾는다면 강천을 여기서 쓸어내 버리실 거라고 하셨죠? 황천수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난처함이 극에 달했다. 그가 방금 그런 말을 한 것은 사실이지만, 문제는…강씨네 집안은 강남에서의 지위가 보통이 아니었다. 이런 의학계 집안 사람을 쓸어버리는 것은 비록 황천수라 할지라도 얼마간의 대가를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그를 문밖으로 쫓아내지 않으면 자신의 가풍이 무너질 것이다.그러나 하현은 황천수에게 망설일 시간을 주지 않고 담담하게 말했다. “방금 나는 이미 당신의 체면을 세워줬어요. 이 일을 한 선생님께 말하지 않았어요.”“하지만 당신이 강천의 교수인 이상, 이 일은 당신이 책임져야 해요.”“파기해야 할 자료는 파기해야 하고, 포기해야 할 프로젝트는 포기해야 해요.”“그렇지 않고 일단 이 일이 알려지면 그 후에는 황천수 당신도 같이 책임져야 할 거예요.”황천수의 표정이 일순간에 변했고 확실히 결정을 내렸다. 그는 바로 안색이 변했고 노기 어린 눈으로 강단에 있는 강천을 보며 큰 소리로 꾸짖었다.“강천! 넌 도대체 뭐 하는 녀석이야?”“우리가 수십 년 동안 아무런 학문적 성과도 이루지 못했다 해도 이상할 게 없어!” “너의 헛된 명성을 위해 다른 사람의 연구 결과를 훔치고 빼앗다니! 넌 조금의 염치도 없는 거야?”황천수는 평소 강천을 매우 좋아했다. 강천은 많은 학생들 중에 의학적 재능이 가장 뛰어나고 가정 형편이 가장 좋았기 때문이다. 이런 학생을 받아 준 후 황천수도 강남의학계에서 위상이 상당히 높아졌다. 강씨 집안의 도움을 받아 의학계에서 모든 것이 다 순조로웠다. 이전에 황천수도 강천의 인품에 조금 흠집이 있음을 간파했었다. 그러나 그가 보기에 이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천부적인 의술이며 인품은 갈고 닦을 수 있었다. 속담에 옥을 다듬지 않으면 그릇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있는데 강천은
“선생님, 죄송해요. 죄송합니다. 제가 충동적으로 그랬어요. 제가 죽일 놈입니다. 제가 죽일 놈 이예요…”서연은 본래 이 선배를 존경했었다. 하지만 이 순간 탄식하는 빛이 역력했다. 학문적인 일에 서연은 누구보다 진지했다. 강천은 이런 수법으로 명리를 챙겼다. 잘못 되도 너무 잘못되었다. 이런 비열한 방법을 쓰면 언젠가 드러날 것이라는 걸 몰랐단 말인가? 강천은 자신을 벌레 보듯 쳐다보는 서연을 보자마자 더 부들부들 떨었다. 대학시절 서연이 처음 입을 여는 것을 보았을 때 그는 서연에게 빠져 꼭 서연을 얻어내야겠다고 결심했었다. 그는 이 후배가 가장 중요시 하는 것이 학문인 것을 알고 그는 다년간의 고심 끝에 오늘에까지 이른 것이다. 오늘 이 미인을 품에 안을 수 있을 것 같았는데 뜻밖에도 이렇게 될 줄이야!“선생님, 도와주세요. 제발 도와주세요!”강천은 황천수가 계속 자신을 무시하자 기다리지 못하고 다시 애원했다. 그는 황천수의 마음이 이렇게 단단하리라고 생각지 못했다. 죽어도 구원받지 못할 것 같았다. 하지만 문제는 이번 일이 너무 커서 황천수는 강천 때문에 자신의 체면을 다 잃게 되었다고 여겼다는 것이다. 그는 자신의 학생들이 무능해서 성과가 없는 것은 받아들일 수 있었지만 학문적으로 조작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강천, 나는 원래 너의 인품에 약간의 흠집이 있다고 여겼었어. 하지만 조금만 다듬는다면 어느 정도 성과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 나는 네가 이렇게까지 멍청할 거라고는 생각지 못 했어.”황천수는 이를 악물고 입을 열었다. 황천수의 말을 듣고 강천은 곧 쓰러질 것 같았다.강천도 이렇게 작은 일이 이렇게 심각한 결과를 초래하리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이 때 홀 문이 열리면서 위엄 있는 노인들이 들어왔다. “강씨네 주인!”“그가 왜 왔지?”“설마 그가 맨 뒤에 앉아 있었나?”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충격을 받았다. 뜻밖에도 강씨 집안의 주인이 오다니!
강천은 얼굴을 가린 채 몹시 원망스러운 듯 말했다. “아버지 저는 이미 최선을 다했어요. 몇 년 전에 준비했던 것까지 다 꺼냈다고요!”“이 논문은 한상현이 죽고 나서야 꺼낼 생각이었어요!”“하지만 지금 이 일을 위해 저는 모든걸 바쳤어요. 이래도 모자란 가요?”“우리 강씨 집안은 호족인데 왜 하인처럼 굴어야 해요? 하민석은 개뿔…”“퍽!”강씨 집안 주인은 다시 한 번 손바닥을 내던지며 강천이 하려던 말을 막았다.“이 불효자 녀석. 너 맨 마지막에 한 말을 기억해라. 만약에 하 도련님이 없었더라면 우리 강씨 집안은 벌써 무너졌을 거야!” “하씨 도련님을 위해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에겐 영광이야! 이번에 우리가 실패한 건 우리가 감수해야 할 결과야!”강씨 주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이 말을 마치자 강씨 주인의 큰 몸이 무의식적으로 벌벌 떨렸다. ‘하민석’ 이 세 글자는 그에게 엄청난 위압감을 안겨줬다. 강천은 시큰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하민석이 정말 능력이 있다면 내가 그 하현과 상대하게 해볼까요? 그는 하현을 무조건 제주로 돌려보내고 싶어하는데, 이런 쓸모없는 데릴사위가 무슨 가치가 있다고 이렇게 신중을 기하는지 전 이해가 안돼요.”강씨 주인은 한숨을 쉬며 안색이 어두워진 채 말했다.“강천, 나는 네가 자부심이 강해 지지 않으려고 하는 거 알아. 하지만 우리 강씨 집안은 하 도련님의 하인에 불과해. 사실 이건 반박할 수 없는 사실이야. 이번에 하 도련님의 분부대로 하지 않으면 그는 하루 아침에 우리 강씨 집안의 모든 것을 잃게 할 수도 있어.”“지금은 우리가 임무에 실패했으니 어쩌면 이 일 후로 우리 강씨 집안은 없어질지도 몰라.”여기까지 말하고 강씨 주인은 한숨 섞인 표정을 지었다. 강천은 처음엔 시큰둥했지만 지금은 오들오들 떨며 말했다.“아버지. 강씨 집안이 파산할 수 있다고…?”“그래. 이게 가장 가벼운 거야.”강씨 주인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최대한 빨리 너를 유
산책로에서 서연은 하현의 뒤를 따라 걸었는데 머리가 핑핑 도는 것 같았다. 오늘 일어난 일이 너무 많아 그녀는 거의 반응을 하지 못했다. 옆에 있는 하현을 보면서 서연은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몰랐다.눈앞에 있는 이 남자는 거의 모든 것을 안다. 도대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가!그러나 하현 자신은 오히려 이 일을 그다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는 서연과 함께 식사를 한 후 바로 집으로 돌아갔다. ……하현이 집에 막 도착하자 마침 설은아 모녀 두 사람이 황급히 걸어 나와 하현을 보았다. 희정의 얼굴빛이 확 바뀌더니 욕을 퍼부으며 말했다. “한밤중에 어디를 다녀오는 거야!”하현은 말했다.“친구랑 밥 먹으러 갔었는데요.”“먹고 먹고 먹고 맨날 먹는 것만 알고, 네 아버지가 돌아 오신 건 알고 있니?” 희정은 욕을 했다. “그가 이미 설씨네 별장에 있으니 얼른 가봐. 할아버지께서 너무 오래 기다리시게 하지 말고!”하현은 멍하니 있었다. 내 아버지라고?하지만 그는 바로 반응을 했다. 희정이 설은아의 아버지를 말하는 거구나. 자신의 장인. 설재석. ……설씨네 별장. 지금 정장 차림의 의기양양한 중년 남자가 설씨 할아버지 밑에 앉아 있다. 얼굴엔 웃음을 띠고 있었다. 설동수는 그의 맞은편에 앉아 있었는데 지금 안색이 좋지 않았다. 이 사람이 바로 설은아의 아버지. 설씨 집안의 셋째. 설재석. 설재석은 원래 설씨 가문의 2세 중 가장 걸출한 인물로 설씨 가문의 회장 자리를 맡을 차기 주자로 내정되기도 했었다. 이전에 설씨 어르신은 어린 아들을 매우 총애했지만 그가 연이어 두 딸을 낳자 그를 멀리 했다. 그가 아들을 못 낳는 다는 것은 가업을 이어갈 후손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설 어르신이 아무리 그를 아끼고 사랑해도 후계자가 될 수 없었다. 그래서 설재석은 10여 년 전 남원으로 파견되었었다. 하지만 남원 그쪽 지역은 진정한 암흑의 숲이라 보통 세력으로는 발붙일 수 있는 곳이
“어? 우리 설씨가 제주에 진출할 수 있는 좋은 프로젝트와 자원?” 설씨 어르신은 눈썹을 치켜 올리며 말했다.“어디 한 번 들어나 보자!”나머지 설씨 가족들도 하나같이 숨을 죽이고 귀를 기울였다. 제주의 2류 가문은 설씨 가문의 부를 10배 이상 늘릴 수 있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 설재석을 무너뜨리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모두가 기대하는 눈치였다. 설재석이 웃으며 말했다. “아버지, 왕씨 집안에 대해 들어보신 적 있죠?”설씨 어르신은 언짢은 기색을 보이며 말했다. “재석아 너 설마 그 일류 가문의 왕씨 가문 말하는 거냐?”“맞아요! 바로 그 왕씨 가문이요!” 설재석은 뿌듯한 얼굴로 말했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그 왕씨 가문은 구시대의 왕족이고 실제 당시 왕으로부터 작위도 받은 조상이 있어요!”“훗날 전란 속에 성을 왕으로 지었어요.”“하지만 이 가문은 하씨 가문보다는 뿌리가 깊지는 못해요.”“그래도 왕씨 가문과 견줄 만한 집안은 몇이 안 돼요…”“왕씨 가문과 안씨 집안을 비교하면 어때?” 설씨 어르신은 약간 흥분했다. 그는 아직도 안씨 가문에서 받은 모욕을 기억하고 있었다. 안씨 집안이 작은 프로젝트를 들고 나와 설씨네와 합작하려고 했지만 설씨 어르신은 감히 표현하지 못했을 뿐이지 마음속으로는 계속 원망스러웠다. 설씨 가문의 가능성이 우뚝 솟을 거라는 것을 듣자 그는 순간 흥분했다. “안씨네 가문?” 설재석은 웃으며 말했다. “안씨 집안이 확실히 강하죠. 하지만 안씨 집안은 골동품 집안이라 비록 다른 사업에 진출을 하긴 했지만 아무리 잘해도 한계가 있어요.”“하지만 왕씨 집안은 그렇지 않아요. 부동산 사업을 하거든요. 남원에 있는 부동산의 절반 정도가 그들과 연결되어 있어요.”“우리 설씨 집안의 주 사업 역시 부동산인데 왕씨 집안이 원하기만 하면, 그들의 손가락에서 흘러나오는 것만으로도 우리 집안은 먹고 살 수 있어요.”설씨 어르신은
뭐?이렇게 좋은 일이?모두들 코웃음을 쳤다. 왕씨 집안이 바보인가? 이런 계약을 하게?설재석은 많은 사람들이 불신하는 얼굴을 보고 웃었다. 들고 있는 공문서 봉투에서 고급 서류를 한 장 꺼내어 테이블 위에 던졌다. “자, 계약서를 좀 보세요.”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에워싸고는 계약서를 자세히 살펴보았다. 과연 계약서에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었다. 남원 신도시 기획의 한 구역 1000평은 설씨 가문에게 넘겨주었다. 상업 중심지를 제외하고 주거용 건물들도 있었다. 1000평의 프로젝트 사업을 할 수 있다면 설씨 가문의 재산은 최소 10배는 족히 넘기게 된다. 게다가 계약서에는 이것도 분명히 말하고 있었다. 이번 합작에서는 설씨 가문이 51% 지분을 가지고 주도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으며, 사업이 실패하면 이 땅은 설씨 집안에 대한 보상으로 간주한다. 당연히 투자하는 과정에서 왕씨 가문은 땅을 내놓고 설씨 가문은 자본금을 책임져야 한다. 이 금액은 적지 않았는데 첫 지불 금액이 200억이 필요했다. 설씨 집안이 이 돈을 모으려고 한다면 아마 서울에 있는 산업을 모두 팔아야 할 것이다. 위험부담이 있긴 했지만 이쪽의 이윤은 엄청났다. 적지 않은 사람들의 마음이 설레고 있었다.설씨 집안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빛이 번뜩였다. 설재석은 의기양양하게 말했다. “아버지, 제가 이번에 서울에 돌아와서 3가지 일을 하려고 해요.”“첫째, 제가 말씀 드린 것처럼 우리 설씨 가문이 남원에서 성공하는 거에요.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어요!” “둘째, 저는 아버지가 하현을 싫어하신다는 것을 알아요. 그래서 이번에 돌아왔을 때 반드시 은아와 하현을 이혼시킬 겁니다!”“셋째, 왕씨 가문의 왕정민 도련님은 아직 결혼을 안 하셨으니 만약 우리 설씨 집안이 이번 기회에 높은 지위로 올라갈 수 있다면 설씨 집안의 발전을 위해, 불리한 일을 당하지 않도록 할게요.” “뭐! 설씨 집안과 혼인관계를 맺겠다고!?”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