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한철은 갑자기 안색이 어두워졌고 일그러진 얼굴로 하현을 쏘아보았다.분노가 이글거리는 눈빛이 당장이라도 하현을 잡아먹을 듯했다.아무리 생각해도 하현이 어떻게 다른 무맹들의 허점을 파악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이런 안목에 이런 실력이라니!도저히 상상을 초월하는 능력이었다!조한철의 상식으로는 지금과 같은 현대사회에서 개인이 무학 실력이 아무리 강해도 이렇게 절대적인 실력을 가질 수는 없었다.그러나 하현은 무맹들의 허점을 아주 쉽게 손에 넣고 그것들을 가지고 4대 무맹들을 상대하고 나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누가 감히 하현과 끝까지 싸우려고 덤비겠는가?조한철은 새까맣게 타들어가는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그래, 하현. 이제 어떻게 하겠다는 거야?”“무맹들의 허점을 들춰내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냐고?”“당신이라는 사람이 여기저기서 잔꾀를 부려 정보를 손에 넣었다고 뭐가 달라져?”“이것 때문에 무맹 대표들이 겁먹지는 않을 거야.”“또한 당신을 지지하지 않는 사람들은 당신이 이런 정보를 누설한다고 해서 당신을 두려워하지도 않을 거야!”“당신이 보기에 비장의 무기 같아도 몇몇 대표들 앞에서는 아무 소용도 없어!”“물론 그들은 나를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지.”하현이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내가 내민 자료들이 아무 소용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하지만 방금 보여준 것들을 한 글자도 남김없이 인터넷에 올리면 어떻게 될까?”“당신 생각해 봐. 이 사람들마다 적수가 몇 명이고 원수가 몇 명이나 될까?”“몇몇 무맹 사람들은 평소에 오만방자하게 날뛰며 다니는 데 익숙하니 아마 미움을 산 사람도 적지 않을 거야.”“예전에는 아무도 감히 당신들한테 반항하지 못했겠지.”“그런데 이 자료가 공개되면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지 않을까?”“글쎄. 우리 대하무맹을 제압하고 귀국하는 길에 당신네 4대 무맹이 적들한테 무참히 뒤통수를 맞는 일이 없다고 누가 보장할 수 있을까?”“어차피 시간이 지나면 당신들도
”당신이 정말로 그걸 공표하면 4대 무맹이 멸망할지도 몰라.”“하지만 우리는 온 힘을 다해 당신을 죽일 거야!”미야모토 잇신도 이를 악물고 입을 열었다.원청산과 강진남은 비록 아무 말도 하지 못했지만 안색은 말할 수 없이 침울했다.“흥! 마치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당신네 4대 무맹은 날 죽이지 않을 것처럼 말하는군!”하현의 입가가 한쪽으로 쏠리며 경멸에 가득 찬 눈빛으로 비아냥거렸다.“내가 수련한 모든 무학의 기술을 공개하고 인도 황실에 가서 무릎을 꿇으라고 하지 않았어?”“당신들의 요구와 내가 지금 하고 있는 일과 크게 다른 점이 있어?”“어떻게 당신들이 하는 일을 합당하고 내가 하면 극악무도한 죄가 되는 거야?”“자기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강요하지 말라는 말도 몰라?!”여기까지 말한 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눈빛을 가다듬으며 말을 이었다.“자, 당신들이 감히 날 위협했다는 건 당신들이 날 상대할 수단과 방법이 있다는 거잖아?”“어디, 그게 뭔지 한번 구경이나 하자구! 내가 놀라나 안 놀라나 한번 지켜봐!”하현의 말에 4대 무맹 대표들은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조한철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곧바로 튀어나와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함부로 굴지 마!”“당신이 이렇게 하는 건 우리 대하를 다른 모든 나라의 적으로 만드는 짓이야!”“내 말 똑똑히 들어! 나 조한철! 절대 이 일을 그냥 두고 보지 않을 거야! 절대 허락할 수 없어!”“뭐? 허락할 수 없다고?!”하현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조 세자께서 왜 허락하지 않는다는 거죠? 나리!”“흥! 입으로만? 아니면 날 때리기라도 할 건가?”“자, 자, 자. 오늘 여기 내가 가만히 앉아 있을 테니 어디 한번 마음껏 날 때려 봐! 맹세코 난 절대 당신한테 손도 까딱하지 않을게!”“그렇지만 이것만 알아둬! 날 한 대 때리면 인도의 허점을 공개할 거야!”“두 대 때리면 섬나라의 허점을 공개하겠어!”“세 번 때리면 모두
”퍽!”“당신은 서북 조 씨 가문 후계자에 인도 황실 계승자야!”“당신이 이를 거들먹거리고 온 천지를 기고만장해서 함부로 날뛰더니 이렇게 움츠러들 때도 있어?”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조한철의 얼굴을 사정없이 때려 돼지머리처럼 만들어 놓았다.“개자식!”열몇 대나 맞은 조한철은 얼굴을 감싸쥐고 비틀거리며 물러섰다.그의 얼굴은 부르터서 눈 뜨고 보기 힘들 정도였다.순간 그는 허리춤에 있던 화기를 만지작거리며 하현을 죽이려고 했다.그러나 이를 본 브라흐마 아티 일행은 화들짝 놀라며 그를 말렸다.“조 세자! 안 돼!”조한철이 체면을 잃는 것보다 자신들의 이익이 더 중요한 사람들이었다.그들은 대하에 위세를 떨치러 온 것이지 스스로 죽으러 온 것은 아니었다.“닥쳐! 당신들 모두 입 닥쳐!”조한철은 도저히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당신들 누구의 말을 들어야 하는지 잊었어?”“다 죽여버릴 거야! 오늘 다 죽여버릴 거라고!”하현에게 수십 대나 뺨을 맞은 그였다.조한철은 오로지 하현을 죽이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다.그는 하현의 이마에 총을 겨누려고 안전장치를 풀었다.“그만하라고 했잖아! 내 말 못 들었어?!”브라흐마 아티는 강경하고 냉랭한 목소리로 소리쳤다.“만약 당신이 감히 우리 인도 무맹의 이익을 해치는 행동을 한다면 황실에서 당신을 가만히 두지 않을 거야, 알았어?”“잊지 마. 당신의 후계자 서열 순서로는 황태자 앞에서 감히 입도 뻥긋하지 못할 테니까!”‘황태자'라는 세 글자에 조한철의 오른손이 갑자기 움찔거렸고 방아쇠를 당기려는 그의 손가락에 힘이 풀렸다.의심할 여지 없이 황태자는 그보다 비교할 수 없이 신분이 높은 사람이었다.살상력은 비할 데 없이 어마어마했다.절대로 조한철이 함부로 할 수 없는 상대였다.“쏴? 쏴 보라고?”하현이 실실 웃으며 비아냥거렸다.그는 손을 뻗어 조한철의 총을 잡아채며 다른 한 손으로 조한철의 뺨을 때렸다.“자, 어디 한
”그걸로는 부족해.”하현은 묵직한 목소리로 무표정하게 입을 열었다.하현의 표정을 본 브라흐마 아티는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5년 안에 다시는 이런 제재를 언급하지 않을 거야. 약속해.”“대하인을 겨냥한 해외의 모든 약탈도 지금부턴 완전히 사라질 거야!”미야모토 잇신 일행은 달갑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 이제부터 우리는 서로 평화롭게 공존하는 거야.”조한철은 이 말을 듣자마자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그는 험악한 표정을 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왜냐하면 지금 이 상황에서 입을 열어 반대한다고 말하는 것은 조국과 국민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당초의 대의명분과는 완전히 어긋나기 때문이다.순간 조한철의 마음속엔 하현을 죽이고 싶은 생각으로 가득 찼다.그는 반드시 온갖 방법을 동원해서 하현 이 개자식을 산 채로 도륙내고 말 것이다!“잘 됐다!”현장에 있던 대하무맹 직원들은 이 말을 듣고 환호성을 질렀다.지금까지 대하가 해외 4대 무맹의 연합에게 받은 압박은 말할 수 없이 심했다.이제 그런 스트레스가 사라지자 모두들 한결 마음이 후련하고 편안해졌다.만진해마저도 환한 미소를 지으며 하현이 너무 잘 해내는 모습에 뿌듯해하며 환호를 질렀다.“대하무맹의 살길을 열어준 당신들에게 감사의 말을 전해야겠군!”하현은 흡족한 듯 빙그레 웃으며 입을 열었다.“다만 당신들이 방금 말한 모든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것들이야.”“그리고 내가 보기엔 아직 많이 부족해. 그래서 내가 당신들한테 몇 가지 조건을 제시하기로 결정했어.”“조건?!”“아직도 많이 부족하다고?”막 돌아서서 가려던 브라흐마 아티는 순식간에 안색이 어두워졌다.“하현, 당신도 너무 몰아붙이지 않는 게 좋을 거야!”“우리는 이미 당신의 체면을 충분히 세워 줬어!”조한철도 기회를 엿보다가 언짢은 얼굴로 입을 열었다.“하현, 당신에겐 대하 오천 년 강국의 대국다운 기개가 조금도 없어?”“이렇게 소인배처럼 굴
하현은 두 손을 뒷짐지고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마뜩잖은 얼굴로 브라흐마 아티를 발로 걷어찼다.하현은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닦았고 비틀거리면서 일어선 브라흐마 아티를 향해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브라흐마 아티 일행은 기가 꺾여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그들도 이제야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가만히 있다가는 그들도 하현에게 뺨을 맞고 발로 걷어차일 수도 있다.그들이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그들 뒤에 있는 무맹은 감히 하현을 상대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은 그들의 가장 큰 허점을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강한 기세로 몰아붙이는 하현을 보고 브라흐마 아티 일행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원래 그들은 대하에 와서 위세를 떨치며 대하무맹을 발아래 놓으려고 왔다.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정말 옴짝달싹도 못하는 꼴이 되었다.예상했던 것과 실제 상황이 너무나 달랐다.브라흐마 아티는 심호흡을 한 뒤 힘겹게 입을 열었다.“하현, 앞으로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이쯤에서 적당히 해.”하현은 바로 손바닥을 휘둘렀다.“당신 체면은 살려주지.”브라흐마 아티가 얼굴을 가리고 뒤로 물러서자 미야모토 잇신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하현, 관용을 베풀어.”“퍽!”“알았어. 당신 가족들한테는 관용을 베풀어 주지.”원청산이 입술을 파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하현, 푸른 산은 변함이 없고 푸른 강물은 영원히 흘러! 우리 모두 남양과 극동과 경계를 맞대고 생활하고 있는데 우리 사이가 틀어질 필요가 없잖아? 이렇게 하면 쌍방 모두에게 좋지 않아...”“퍽퍽퍽!”“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또 한 발로 원청산을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이어 그는 강진남에게 시선을 던지며 차갑게 말했다.“어르신! 당신은 별로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으니 내가 친히 당신한테 경로사상이 뭔지 알려줄게요.”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또 한 번 ‘퍽'하고 손바닥을 휘둘러
”둘째, 해외에 있는 대하인들에게 전액 손해 배상해.”“때리고 빼앗은 것 모두 제대로 배상해. 한 푼도 빼놓지 말고 전부!”“이 밖에 당신들은 각자 천억씩을 위로금과 위자료로 국경에 있는 대하인들에게 배상해야 해.”“이 일을 어떻게 집행할지는 내 조수 사청인이 사람을 보내 계속 추적할 거야.”브라흐마 아티 일행은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하현이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그러나 이 조건은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었기 때문에 달갑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알았어. 이 조건도 받아들이지.”“세 번째 조건이자 마지막 조건이야.”하현은 냉랭하고 무덤덤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들이 5년 동안 다시는 우리 대하무맹을 제재하지 않겠다는 말은 믿을 수가 없어.”“그래서 말이야. 극동지역과 남양지역의 무맹이 우리 대하무맹을 공동 추전해 올려서 세계 다섯 번째 무맹이 될 수 있도록 해 줘야겠어!”“어쨌든 우리 대하무맹이 상석에 올라야 앞으로 당신들이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거 아니야?!”하현의 마지막 조건을 듣고 지금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만진해와 구평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이 일이 실제로 실현된다면 대하무맹에게는 더없이 큰 도움이 될 것임은 자명했다.앞으로 대하무맹은 전 세계 무도계에서 충분히 막강한 발언권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5대 상임이사는 세계무맹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대표한다.“말도 안 돼!”하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브라흐마 아티와 미야모토 잇신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극동무맹과 남양무맹은 이 조건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인도무맹과 섬나라 무맹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현재 세계무맹은 마지막 상임이사 자리 하나를 비워 두고 있었다.그 한 자리를 놓고 인도무맹과 섬나라 무맹이 치열하게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각축전을 펼치고 있었다.그런데 어떻게 대하무맹
조한철이 한 말도 허투루 들을 말은 아니었다.미국무맹과 노국무맹을 필두로 세계무맹의 4대 상임이사들은 줄곧 한몸과 같이 진퇴를 겪어 왔다.그들은 세계 무도 자원의 대다수를 독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주 손을 잡고 다른 나라의 무맹을 제압하며 호흡이 척척 맞았다.세계무맹은 거의 4대 상임이사의 입맛대로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즉 극동지역과 남양지역의 정세는 복잡하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세계무맹은 일반적으로 이 두 지역의 일에는 개입하지 않았다.다른 지역에서는 세계무맹이 압도적으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이런 전제 아래에서 이들 대표가 어떻게 4대 상임이사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권력자가 한 명 더 늘어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두의 보조를 맞추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이렇게 된다면 4대 상임이사가 어떻게 세계무맹을 쥐락펴락할 수 있겠는가?브라흐마 아티 일행이 분개하는 모습을 보며 하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 조건에 동의하지 않는 게 확실한 거야?”브라흐마 아티 일행은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받아들일 수 없어!”“그렇게 단호하게 거절할 필요는 없잖아!”하현은 엷은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당신들 뒤에 거물이 있지 않아? 한 번 물어보지 그래?”“필요없어! 이 일은 우리가 충분히 결정할 수 있는 일이야!”“당신이 조건을 바꾸든지 아니면 죽기 살기로 싸우든지!”“더구나 조 세자 말이 맞아. 우리가 대하를 추천한다고 해도 4대 상임이사가 동의할 리 없어!”하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난 오히려 4대 상임이사가 이 일을 승낙할 것으로 보는데.”“지금 필요한 것은 당신들의 추천뿐이야!”“추천이 있다면 거절할 명분도 없으니까!”“만약 대하무맹이 성공적으로 입성할 수 있다면 난 당신들 앞에 무릎을 꿇고 당신들을 아버지라 부를 거야!”하현은 입을 움실거리며 담담하게 말했다.“무릎 꿇는 것쯤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아버지라 부르면 되지
이 말을 들은 조한철은 안색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그는 어떻게 일이 이렇게 우연하게 일어날 수 있는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이 중요한 시기에 세계무맹이 임시 회의를 소집하고 대하무맹을 상임이사로 지명할 줄은 몰랐다.이럴 수가?!게다가 어떻게 하현이 말한 것과 똑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가?설마 그가 전부터 미리 계획한 것이었던가?!이런 생각이 조한철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그러나 이내 정신을 다잡은 조한철은 절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스스로에게 당조짐하듯 말했다.하현 같은 하찮은 사람이 어떻게 세계무맹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단지 이 모든 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조한철은 사나운 눈빛을 띠며 말했다.“대표 여러분, 하현한테 겁먹으면 안 됩니다!”“그는 오늘 세계무맹이 임시 회의를 소집하고 노국이 대하무맹을 5대 상임이사로 지명할 것을 미리 안 겁니다.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요.”“그래서 이런 조건을 우리에게 제시한 거예요!”“그러니 절대 동의하면 안 됩니다!”“대하는 대하 사람들이 제일 잘 압니다. 대하는 절대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어요!”조한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브라흐마 아티 일행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브라흐마 아티와 미야모토 잇신 두 사람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오히려 원청산과 강진남은 얼른 하현 앞으로 달려 나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하현, 어젯밤에 잘 쉬지도 못하게 해서 미안해. 우리가 태산을 알아보지 못했어. 정말 죽을 죄를 졌어!”“방금 우리 극동무맹과 남양무맹은 모두 결의안을 통과시켰어.”“극동지역과 남양지역의 모든 무맹을 대표해 세계무맹 5대 상임이사 중 하나로 대하무맹을 추천했어!”“인도무맹과 섬나라 무맹이 반대를 하든 말든 우리의 결정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야!”“우리 극동무맹과 남양무맹은 진심으로 대하무맹을 지지해!”굽신거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다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도 조 행장의 표정을 보고 사과하지 않으면 상황이 곤란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미안해.”“미안하다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날 조롱하고 모욕했으며 내 아내를 불러서 내 체면을 뭉개버리려고 했지.”“지금 와서 마지못해 사과하면 모든 것이 다 없던 일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정말로 사과 한마디로 해결될 것 같냐고?”김나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차갑게 내뱉었다.“하현! 설령 이 돈이 당신 계좌에 있다고 해도 결국 빌린 돈일 뿐이잖아!”“돈을 빌린 것뿐이야! 결국 갚아야 되는 돈이라고! 알기나 해!”“자기가 정말로 뭐 거물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지?!”“적당히 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날뛰는 꼴이라니!”설은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됐어. 이건 오해였어.”“나나는 김 씨 가문 사람이니까 화해한 걸로 치고 좋게 생각해.”“김 씨 가문 사람?”하현은 헛웃음을 지었다.“김 씨 가문이든, 간 씨 가문이든 내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자격은 없어!”그는 말을 하면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조 행장님. 제가 기회를 드렸는데도 당신들은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군요.”“그렇다면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드리죠.”“지금 이 자리 당신이 꺼지든지, 아니면 저 여자가 꺼지든지.”“결정하시죠!”김나나는 죽일 듯이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 뭐 잘못 먹었어?”“정말 당신이 뭐 대단한 거물이라도 된 줄 알아?”“내가 꺼지든지, 아니면 행장님이 꺼지든지 하라고?!”“허! 드라마는 아주 많이 본 모양이지! 어디서 갑질 회장님 흉내를 내려고 해?!”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천일그룹을 이용해 이들을 밀어붙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조 행장은 천일그룹을 경외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다.어쨌든 천일그
”뭐라구요?”김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행장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천일그룹이 하현한테 이천억을 보냈다구요?”“그럴 리가요?”“말도 안 돼요!”조 행장은 싸늘해진 얼굴빛으로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은 당당한 풍채에 실력까지 갖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천일그룹 회장님도 믿고 돈을 보낸 거겠죠!”“하 세자가 하현에게 이천억을 빌려준 건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말도 안 돼요!”김나나가 버럭 화를 냈다.“데릴사위이자 여자한테 빌붙어 벌어먹는 놈이 어떻게 천일그룹 하 세자와 인연이 있겠어요?”“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김나나는 하현이 블랙골드 카드의 소유자에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조 행장님, 다시 한번 전화해서 분명하게 물어보세요. 뭔가 착오가 있을 거예요!”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신분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여전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게다가 하현이 이천억을 준비했다니!설은아는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김나나, 하현과 천일그룹의 하 세자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어.”“게다가 하 세자를 도와주었으니 그가 이 사람한테 돈을 빌려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됐어! 설은아, 이 쓰레기 같은 남자 두둔하려고 애쓰지 마. 하현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어?”김나나는 아예 믿으려 하지 않았다.“하 세자가 누구야? 강남에서 손꼽히는 거물인데 그가 못할 일이 뭐 있겠어?”“하현같이 쓸데없는 인물이 하 세자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말을 마치자마자 김나나는 진지하고 엄정한 얼굴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행장님, 다시 한번만 더 확인해 보세요.”“정말 이 쓰레기 같은 남자가 이천억을 받은 게 맞다면 우리가 모든 책임을 떠안을게요!”
김나나는 하현이 가지고 있던 블랙골드 카드의 발행연도가 몇 년 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설마 데릴사위가 신분을 숨긴 거물인 건가?그러자 김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벌벌 떨다가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대단한 거물이 뭐 하러 남의 집 데릴사위를 해?말도 안 되지!김나나는 실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알겠어. 분명 몇 년 전에 어디서 돈을 훔친 거야. 틀림없어!”“사건이 탄로 날까 봐 몇 년 동안 쓰지도 못하고 감춰둔 거고.”“이제 모든 것이 잠잠해지자 움직일 준비를 한 거지!”“정말 음흉하고 간교한 놈이야!”김나나는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일관하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블랙골드 카드에서 돈을 출금하게 되면 은행은 그 돈의 출처를 조회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지?”“당신이 그 돈을 함부로 썼다가는 아주 끝장나는 거야!”“이 정도면 감옥에 처넣기 충분해!”설은아는 무심결에 하현에게 시선을 휙 돌렸다.“하현, 이게 도대체...”하현은 설은아를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며칠 전 밥을 먹다가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서 부랴부랴 돈을 좀 준비해 두라고 했어. 오늘 그 돈이 잘 입금되었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이 안에 이천억이 들어 있으니 당신이 겪고 있는 자금난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하현은 이 일을 설은아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워 일부러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기회를 봐서 말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런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게 되었다.“은아의 자금난을 해결해?”“이천억을 단번에 준비했다고?”김나나는 코웃음을 쳤다.“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이천억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어? 지금 드라마 찍는 줄 알아?”“당신 바보야? 아님 우리를 바보로 아는 거야?”이때 조 행장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말했다.“어제 이천억이 우리 은행에서 발행된 블랙골드 카드에 입금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