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현은 두 손을 뒷짐지고 무덤덤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마뜩잖은 얼굴로 브라흐마 아티를 발로 걷어찼다.하현은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닦았고 비틀거리면서 일어선 브라흐마 아티를 향해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았다.브라흐마 아티 일행은 기가 꺾여 슬금슬금 뒤로 물러섰다.그들도 이제야 일이 이 지경에 이르렀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가만히 있다가는 그들도 하현에게 뺨을 맞고 발로 걷어차일 수도 있다.그들이 여기서 죽는다고 해도 그들 뒤에 있는 무맹은 감히 하현을 상대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은 그들의 가장 큰 허점을 손에 쥐고 있기 때문이다.강한 기세로 몰아붙이는 하현을 보고 브라흐마 아티 일행들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원래 그들은 대하에 와서 위세를 떨치며 대하무맹을 발아래 놓으려고 왔다.그런데 지금 이 상황은 정말 옴짝달싹도 못하는 꼴이 되었다.예상했던 것과 실제 상황이 너무나 달랐다.브라흐마 아티는 심호흡을 한 뒤 힘겹게 입을 열었다.“하현, 앞으로 우리가 어디서 어떻게 만날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야. 이쯤에서 적당히 해.”하현은 바로 손바닥을 휘둘렀다.“당신 체면은 살려주지.”브라흐마 아티가 얼굴을 가리고 뒤로 물러서자 미야모토 잇신이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하현, 관용을 베풀어.”“퍽!”“알았어. 당신 가족들한테는 관용을 베풀어 주지.”원청산이 입술을 파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하현, 푸른 산은 변함이 없고 푸른 강물은 영원히 흘러! 우리 모두 남양과 극동과 경계를 맞대고 생활하고 있는데 우리 사이가 틀어질 필요가 없잖아? 이렇게 하면 쌍방 모두에게 좋지 않아...”“퍽퍽퍽!”“지금 날 협박하는 거야?”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또 한 발로 원청산을 발로 차서 넘어뜨렸다.이어 그는 강진남에게 시선을 던지며 차갑게 말했다.“어르신! 당신은 별로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으니 내가 친히 당신한테 경로사상이 뭔지 알려줄게요.”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또 한 번 ‘퍽'하고 손바닥을 휘둘러
”둘째, 해외에 있는 대하인들에게 전액 손해 배상해.”“때리고 빼앗은 것 모두 제대로 배상해. 한 푼도 빼놓지 말고 전부!”“이 밖에 당신들은 각자 천억씩을 위로금과 위자료로 국경에 있는 대하인들에게 배상해야 해.”“이 일을 어떻게 집행할지는 내 조수 사청인이 사람을 보내 계속 추적할 거야.”브라흐마 아티 일행은 눈꺼풀을 파르르 떨었다.하현이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을 죽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그러나 이 조건은 그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범위 내에 있었기 때문에 달갑지 않았지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알았어. 이 조건도 받아들이지.”“세 번째 조건이자 마지막 조건이야.”하현은 냉랭하고 무덤덤한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들이 5년 동안 다시는 우리 대하무맹을 제재하지 않겠다는 말은 믿을 수가 없어.”“그래서 말이야. 극동지역과 남양지역의 무맹이 우리 대하무맹을 공동 추전해 올려서 세계 다섯 번째 무맹이 될 수 있도록 해 줘야겠어!”“어쨌든 우리 대하무맹이 상석에 올라야 앞으로 당신들이 함부로 행동하지 못할 거 아니야?!”하현의 마지막 조건을 듣고 지금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던 만진해와 구평도의 눈이 휘둥그레졌다.이 일이 실제로 실현된다면 대하무맹에게는 더없이 큰 도움이 될 것임은 자명했다.앞으로 대하무맹은 전 세계 무도계에서 충분히 막강한 발언권을 갖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5대 상임이사는 세계무맹에서 가장 높은 지위를 대표한다.“말도 안 돼!”하현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브라흐마 아티와 미야모토 잇신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극동무맹과 남양무맹은 이 조건을 받아들이기 어려웠지만 그렇다고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하지만 인도무맹과 섬나라 무맹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현재 세계무맹은 마지막 상임이사 자리 하나를 비워 두고 있었다.그 한 자리를 놓고 인도무맹과 섬나라 무맹이 치열하게 그 자리를 차지하려고 각축전을 펼치고 있었다.그런데 어떻게 대하무맹
조한철이 한 말도 허투루 들을 말은 아니었다.미국무맹과 노국무맹을 필두로 세계무맹의 4대 상임이사들은 줄곧 한몸과 같이 진퇴를 겪어 왔다.그들은 세계 무도 자원의 대다수를 독점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주 손을 잡고 다른 나라의 무맹을 제압하며 호흡이 척척 맞았다.세계무맹은 거의 4대 상임이사의 입맛대로 움직인다고 할 수 있다.즉 극동지역과 남양지역의 정세는 복잡하고 변화무쌍하기 때문에 세계무맹은 일반적으로 이 두 지역의 일에는 개입하지 않았다.다른 지역에서는 세계무맹이 압도적으로 모든 것을 좌지우지했다.이런 전제 아래에서 이들 대표가 어떻게 4대 상임이사를 설득할 수 있겠는가?권력자가 한 명 더 늘어나는 일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두의 보조를 맞추지 못하게 될 수도 있는 일이었기 때문이다.이렇게 된다면 4대 상임이사가 어떻게 세계무맹을 쥐락펴락할 수 있겠는가?브라흐마 아티 일행이 분개하는 모습을 보며 하현은 희미하게 웃으며 말했다.“이 조건에 동의하지 않는 게 확실한 거야?”브라흐마 아티 일행은 주저하지 않고 고개를 가로저었다.“받아들일 수 없어!”“그렇게 단호하게 거절할 필요는 없잖아!”하현은 엷은 미소를 띠며 말을 이었다.“당신들 뒤에 거물이 있지 않아? 한 번 물어보지 그래?”“필요없어! 이 일은 우리가 충분히 결정할 수 있는 일이야!”“당신이 조건을 바꾸든지 아니면 죽기 살기로 싸우든지!”“더구나 조 세자 말이 맞아. 우리가 대하를 추천한다고 해도 4대 상임이사가 동의할 리 없어!”하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난 오히려 4대 상임이사가 이 일을 승낙할 것으로 보는데.”“지금 필요한 것은 당신들의 추천뿐이야!”“추천이 있다면 거절할 명분도 없으니까!”“만약 대하무맹이 성공적으로 입성할 수 있다면 난 당신들 앞에 무릎을 꿇고 당신들을 아버지라 부를 거야!”하현은 입을 움실거리며 담담하게 말했다.“무릎 꿇는 것쯤 얼마든지 할 수 있어. 아버지라 부르면 되지
이 말을 들은 조한철은 안색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그는 어떻게 일이 이렇게 우연하게 일어날 수 있는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이 중요한 시기에 세계무맹이 임시 회의를 소집하고 대하무맹을 상임이사로 지명할 줄은 몰랐다.이럴 수가?!게다가 어떻게 하현이 말한 것과 똑같은 상황이 일어날 수 있는가?설마 그가 전부터 미리 계획한 것이었던가?!이런 생각이 조한철의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자 지금까지 일어났던 모든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떠올랐다.그러나 이내 정신을 다잡은 조한철은 절대 그런 일은 있을 수 없다며 스스로에게 당조짐하듯 말했다.하현 같은 하찮은 사람이 어떻게 세계무맹을 움직일 수 있겠는가?단지 이 모든 것은 우연의 일치일 뿐이다!조한철은 사나운 눈빛을 띠며 말했다.“대표 여러분, 하현한테 겁먹으면 안 됩니다!”“그는 오늘 세계무맹이 임시 회의를 소집하고 노국이 대하무맹을 5대 상임이사로 지명할 것을 미리 안 겁니다. 어떤 경로로 알게 되었는지는 분명치 않지만요.”“그래서 이런 조건을 우리에게 제시한 거예요!”“그러니 절대 동의하면 안 됩니다!”“대하는 대하 사람들이 제일 잘 압니다. 대하는 절대 그 자리에 앉을 자격이 없어요!”조한철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브라흐마 아티 일행은 핸드폰을 내려놓았다.브라흐마 아티와 미야모토 잇신 두 사람의 얼굴이 흙빛이 되었고 못마땅한 표정으로 이를 악물었다.오히려 원청산과 강진남은 얼른 하현 앞으로 달려 나와 고개를 숙이며 말했다.“하현, 어젯밤에 잘 쉬지도 못하게 해서 미안해. 우리가 태산을 알아보지 못했어. 정말 죽을 죄를 졌어!”“방금 우리 극동무맹과 남양무맹은 모두 결의안을 통과시켰어.”“극동지역과 남양지역의 모든 무맹을 대표해 세계무맹 5대 상임이사 중 하나로 대하무맹을 추천했어!”“인도무맹과 섬나라 무맹이 반대를 하든 말든 우리의 결정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야!”“우리 극동무맹과 남양무맹은 진심으로 대하무맹을 지지해!”굽신거
원청산 일행도 이러고 싶지 않았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하현에게 큰소리로 호통치던 그였다.그러나 지금은 이런 비굴한 모양새가 되었다.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방금 그들의 실세한테서 전화가 왔기 때문이다.공포에 질린 거물 한 명이 세계무맹의 4대 상임이사 중 3 개의 상임이사가 이 조건을 수락했으니 우리 같은 소국의 무맹이 뭘 할 수 있겠냐며 소리쳤다.원청산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멍하니 서 있었다.구평도 일행도 아연실색하기는 마찬가지였다.일이 이렇게까지 발전했기 때문에 그들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그러나 그때 광기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반대! 반대! 난 대하무맹이 세계무맹에 가입하는 걸 반대해!”“우리 스스로 우리를 잘 알고 있어. 우리 대하무맹은 아직 그 정도 자격이 없어!”“하현, 당신이 이렇게 몰아붙이는 건 대하무맹을 나락으로 몰아넣고 극동지역과 남양지역의 다른 무맹들과 대립각을 세우는 꼴이 될 거야!”“대하무맹을 죽일 셈이야?”“그래서 난 절대 동의 못 해!”말을 하는 동안 조한철은 더욱 악랄한 표정으로 브라흐마 아티와 미야모토 잇신을 노려보았다.이 두 사람까지 나서서 반대하겠다는 뜻이 분명했다.조한철도 자신이 제시한 조건과 이유들이 전혀 타당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할 수 없었다.그러나 이때 브라흐마 아티와 미야모토 잇신은 조한철의 시선을 애써 피하며 머뭇거리기만 했다.“조 세자, 당신은 혼혈인인데 언제 이렇게 대하무맹을 대표한다고 반대 의사를 표명할 수 있어?”하현이 냉담한 표정으로 조한철을 노려보며 말했다.“당신 그럴 자격 있어?”“개자식! 난 도저히 동의할 수 없어!”조한철이 하현에게 손가락질하며 소리를 높였다.“하현, 당신 도대체 뭣 때문에 이런 비열한 짓을 하는 거야? 4대 상임이사 중 3개국이 이 일에 동의했다니!”“얼마나 많은 국익을 그들에게 팔아넘겼길래 그들이 동의를 하냔 말이야?!”“우리 대하가 당신의 이런 얼토당토않는 일을 벌이는 데
다른 사람들도 이 상황을 보면서 눈이 휘둥그레졌다.이번 사건의 주동자로 의심되는 조한철이 원청산에게 뺨을 맞을 줄은 아무도 상상하지 못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개자식 감히 날 건드려?!”조한철은 원청산을 죽이려고 달려들었지만 뻗어 올린 손을 멈출 수밖에 없었다.원청산 같은 놈은 언제든지 죽이려면 죽일 수 있었다.그러나 원청산의 배후에 있는 남양무맹은 조한철이 절대 건드릴 수 없는 존재였다.“왜? 우리가 당신을 세자라고 불러 주니 아주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나까지 건드리려고?”원청산은 경멸하는 눈빛으로 조한철을 밀어젖혔다.“쓰레기 같은 놈! 소리만 지르는 쓰레기 같은 놈!”“잘 들어. 아무리 힘들더라도,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반대하고 나서더라도 우리 남양무맹과 극동무맹은 대하무맹의 편에 단단히 설 거야!”“소위 회원국인 무맹이 일찌감치 서명해 대하무맹을 5대 상임이사로 추대했어!”원청산은 이를 부득부득 갈며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조한철을 무시한 채 만진해 앞으로 나와 입을 열었다.“맹주 어르신, 먼저 축하의 인사 올립니다.”“앞으로 우리 남양무맹은 대하무맹을 누구보다 우선시 여기겠습니다!”강진남도 얼른 앞으로 나와 환한 얼굴로 말했다.“어르신, 축하드립니다. 앞으로 극동지역에서 우리는 대하의 의견을 경청할 것입니다!”“두 분 대표께 감사드립니다!”만진해는 일이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지 얼떨떨했지만 껄껄 웃으며 감사의 인사에 화답했다.“우리 대하무맹이 5대 상임이사가 될 수 있어서 아주 영광입니다. 앞으로 우리 대하무맹은 극동지역과 남양지역의 이익을 함께 고려할 것이니 걱정하지 마십시오!”“탁!”조한철은 이 광경을 지켜보다 손바닥을 책상에 탁 쳤다.하현은 조한철에게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이 탁자는 황화목으로 만든 거야. 일억이 넘는 탁자라고.”“하현, 당신 앞으로 두고 봐...”조한철은 비틀거리면서도 이를 악물고 수표에 서명한 뒤 분노로 이글거리는
그로부터 3일 동안 하현은 만진해와 함께 대하무맹의 일상 업무를 처리했다.극동무맹과 남양무맹의 공동 천거와 함께 대하무맹은 세계무맹 5대 상임이사국이 되었다.대하무맹 입장에서는 이보다 더 완벽한 결말은 없었다.또한 대하 국경에서 벌어졌던 약탈은 하루아침에 사라졌을 뿐만 아니라 다양한 손해 배상도 순차적으로 이루어졌다.이 일을 처리한 후 하현은 진주희 일행에게 무성에 남아 설은아와 힘을 합쳐 무성 황금회사의 업무를 처리하도록 당부했다.국술당의 일은 사청인과 남궁나연에게 일임했다.인맥이 두터운 사청인과 실력이 뛰어난 남궁나연이 함께 일을 하게 되니 시너지 효과가 상당할 것이다.게다가 배후에서 만 씨 가문이 비호해 주고 있으니 국술당의 발전도 점차 궤도에 오를 것이다.모든 일을 차근차근 처리한 후 하현은 진주희에게 비행기 티켓을 예약해 달라고 한 뒤 바로 공항으로 향했다.며칠 전에 양제명이 브라흐마 바찬에게 부상을 입었는데 아직 회복이 되지 않은 채로 시간이 흘렀다.양제명이 중상을 입은 것은 어느 정도 하현과도 관계가 있었기 때문에 하현은 늘 마음에 걸렸다.그래서 오늘 일련의 일들을 다 처리하고 가뿐한 마음이 되자 그는 마음의 짐을 털어내려고 제일 먼저 남양으로 가는 향하게 된 것이다.하현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갑자기 설은아에게서 전화가 몰려왔다. 잠시 망설이던 하현이 전화를 받았고 맞은편에서 설은아의 목소리가 들렸다.“방금 당신 직원들이 말하길 남양의 페낭으로 간다던데, 사실이야?”하현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응. 며칠만 다녀올게.”“무슨 일 있어?”“아는 어르신 한 분이 나 때문에 조금 다치셨어.”“도리상 안 가 볼 수가 없어서.”잠시 침묵이 흐른 뒤 설은아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우리 둘 사이에 할 얘기가 있다는 거 기억하지?”하현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그녀가 이어서 말했다.“무성의 일을 다 처리하고 나면 잠시 여길 떠날 거야. 금정에 좀 다녀오려고.”
양유훤과 통화를 마친 후 하현은 하수진과 최영하에게 각각 전화를 걸었다.그가 이번에 페낭에 가는 주된 목적이 사람을 구하는 것이고 양유훤도 틀림없이 제 역할을 잘 하고 있겠지만 페낭은 해외이기 때문에 언제든지 무슨 변고가 생기지 않도록 만반의 준비를 해 둬야 한다.하수진에게 전화를 건 이유는 남양쪽 사람들이 대하에서 항성과 도성에 일정한 구역을 이뤄 살고 있었기 때문에 대구나 남원에서 사람을 차출하는 것보다 항성과 도성에서 사람을 차출하는 것이 훨씬 편리했기 때문이다.하수진과 통화를 마친 후 하현은 귀빈 통로를 이용해 비행기에 올랐다.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정신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시간 후 비행기가 무사히 착륙하기를 기다렸다.몇 시간 후 하현이 다시 눈을 떴을 때 비행기 안에는 이미 남태평양의 따뜻하고 습한 바람이 느껴지는 듯했다.다음 날 아침 9시가 넘어 비행기는 페낭 상공에 진입하며 슬슬 착륙 준비를 했고 승객들은 소지품을 챙기기 시작했다.하현은 며칠 동안 못 본 양유훤을 만나려면 우선 어느 정도 예의는 차려야겠다고 생각했다.그는 간단히 세수를 마치고 자리로 돌아왔다.그때 무심코 코끝에서 남양인 체취가 느껴졌다.스쳐 지나가는 누군가가 하현의 짐을 슬쩍 만진 후 고개도 돌리지 않고 쓱 지나가는 것이었다.“잠깐만요.”하현은 상대방이 그냥 지나가도록 내버려두지 않고 불러 세웠다.“내 물건 돌려줘요!”비록 남양 청년의 손이 아주 빨랐지만 하현은 자신의 트렁크 아래 둔 지갑을 슬쩍하는 청년의 손놀림을 놓치지 않았다. 요즘은 모바일 결제가 대세지만 페낭은 해외이기도 하고 여러모로 아직 현금 사용에 익숙한 곳이었다.그래서 하현은 미리 지갑에 현금을 두둑이 준비했었다.그런데 비행기가 착륙도 하기 전에 누군가가 자신의 지갑에 손을 댈 줄은 몰랐다.“뭐 하는 겁니까?”남양 청년은 겉으로는 다부지고 강한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는 심약한 사람이었다.그는 하현의 손에서 얼른 벗어나고 싶었지만 도저히 빠져나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
”확실히 이 외지인놈은 실력이 보통이 아니야!”“하지만 실력이 있다고 해도 뭐?”“우리 황천화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야.”“맞아! 하현이 부 사장 무릎을 꿇게 한 능력은 확실히 인정해. 하지만 그런 능력이 무슨 의미가 있겠어?”“땅강아지가 운이 아무리 좋다손 치더라도 그것도 한두 번이지!”“진짜 실력자를 만나면 아무 힘도 못 써!”“결국 실력 없는 자가 스스로 무능함에 분노하는 것밖에 안 되는 거야!”“황천화와 자신의 실력이 얼마나 차이가 나는지 이제 곧 알게 되겠지!”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업신여기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대하에서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하더라도 페낭에서는 이신욱의 저력을 능가할 수 없다.“형님!”“황 선생!”“황 도련님!”무리를 지은 사람들이 황천화에게 몰려들었고 선두에 선 이신욱은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이신욱, 도대체 무슨 일이야? 나까지 나서서 체면을 세워 줘야 할 일이 도대체 뭐냐구?”황천화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소매를 걷어붙이며 거들먹거렸다.마치 세상에는 그의 관심을 끌 만한 것이 없다는 듯.이신욱은 차가운 눈초리로 비아냥거리며 하현을 노려보았다.“감히 외지인 주제에 우리 페낭에 와서 허세를 부리고 사람을 때리다니!”“그래?”황천화는 실눈으로 눈썹을 치켜세우며 이신욱을 힐끔 쳐다보았다.그의 코는 푸르덩덩한 빛을 띠고 있었고 얼굴은 퉁퉁 부어올라 있었다.얼굴에는 손바닥 자국이 선명하게 나 있었고 이빨도 두어 개 비어 있었다.안색이 나쁜 건 말할 것도 없었다.비록 황천화는 이신욱을 그리 높이 보진 않았지만 이신욱은 일찌감치 황천화의 가능성을 보고 명절 때마다 그에서 그득한 선물을 보낸 덕분에 꽤 황천화 덕을 보고 있었다.그래서 황천화도 이신욱에 대해 슬슬 좋은 감정이 생겼다.그런데 지금 그런 후배가 누군가에게 괴롭힘을 당하고 얼굴이 퉁퉁 부어 있는 것이다.황천화의 안색이 어둡게 일그러졌다.이신욱을 이렇게 만들었다는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