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만해. 여기 비서가 함부로 나서서 말할 자리라고 생각하는 거야?”이때 구평도가 한 걸음 앞으로 나서며 냉랭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어떻게 그런 식으로 말하는 거야?”“평소에 내가 그렇게 가르쳤어?”“우리가 오늘 특별실을 예약했다고 해도 맹주님이 감히 가신다고 한다면 우리로선 맹주님과 경쟁할 재간이 없지.”“이런 일도 있을 수 있다는 걸 알기만 하면 돼.”“그리고 방금 그 말은 뭐야? 맹주님을 끌어내리기라도 하자는 거야?!”“어서 가서 반성이나 해!”구평도는 여비서를 호통친 후 빙긋 웃으며 만진해를 바라보았다.“맹주, 죄송합니다.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는 여비서라 아직 훈련이 덜 되었습니다. 저런 소리를 하다니! 부디 개의치 마십시오.”그리고 그는 여비서를 다시 한번 힐끔 쳐다보며 다그쳤다.“어서 맹주 어르신께 사과하지 않고 뭐해?”여비서는 한껏 비꼬는 표정을 숨기지 않으며 고개를 숙였다.“맹주 어르신, 죄송합니다.”“괜찮네. 신경 쓰지 말게.”“가정교육을 잘못 받은 건 자네 잘못이 아니지. 어차피 개 입에서 상아를 토해 낼 순 없는 일이야.”“개 집에 살면서 어떻게 교양이라는 두 글자를 볼 기회가 있었겠나?”만진해는 조금도 흔들림 없는 얼굴로 냉랭하게 말했다.관직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그가 어떻게 이런 소인배들의 횡포에 넘어가겠는가?만진해는 무덤덤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내가 요즘 일을 잘하지 못해서 국외에 있는 우리 대하 사람들이 힘든 일을 겪었다면 반성해야지.”“반성할 때 반성하더라도 밥은 먹어야지.”“기왕 이곳까지 왔으니 구평도 자네가 아니라 황금궁이 온다고 해도 난 오늘은 양보 못하겠네.”만진해는 구평도를 똑바로 쳐다보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늘은 부맹주 자네가 방을 좀 바꿔주시게.”만진해는 지금 이 순간 단순히 밥 한 끼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양측의 힘겨루기가 걸린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그가 여기서 물러난다면 앞으로 명예 맹주로서 아
”조한철이 서북 조 씨 가문 사람이라면 그도 대하인일세!”“밥 한 끼 덜 먹었다고 대하인에게 불리한 일을 하겠는가?”“그게 아니라면 소문이 틀리지 않았든지. 국외 4대 무맹이 손잡은 무리가 조한철 조 세자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더군.”“그렇다면 이 일은 제대로 조사해 봐야겠어.”“그리고 구평도, 감히 내가 한 마디 하겠네.”“당신네 황금궁은 예전부터 인도인과 가깝게 지냈어. 부디 내가 그 어떤 증거도 찾아내지 못하길 바라야 할 거야.”“그렇지 않으면 자네들 죽을 때까지 책임을 면치 못할 걸세!”말을 마친 만진해는 몸을 돌려 하현을 향해 청하는 손짓을 하며 결연한 목소리로 말했다.“특별실로 들어가세!”“맹주 어르신, 정말 죄송합니다. 특별실은 이미 다른 사람이 차지했어요!”바로 그때 검은 제복을 입은 아름다운 얼굴에 호리호리한 몸매를 가진 여자가 나와 가느다란 눈초리로 만진해의 앞길을 막았다.만진해는 무겁게 가라앉은 어조로 말했다.“이소월, 그게 무슨 뜻이지?”이소월은 식당 지배인이었다.만진해의 말에 이소월은 웃으며 말했다.“무맹에서 지난달 식대비를 지불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 식당에서는 더 이상 맹주님의 편의를 봐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말하자면 이제 특별실은 누구나 먼저 오는 사람이 차지할 수 있다는 얘기죠.”“오늘 공교롭게도 구평도 부맹주가 어르신보다 1분 더 일찍 도착하셨습니다.”“그래서 어르신은 오늘 특별실을 쓰실 수가 없습니다.”“하지만 로비에 따로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사과의 의미로 오늘 식사는 그냥 대접해 드리겠습니다.”굉장히 합리적이고 중립적으로 보였지만 만진해는 이소월이 일찌감치 구평도 뒤에 줄을 섰음을 깨달았다.구평도는 만면에 가득 미소를 띠우며 앞으로 나와 이소월의 잘록한 허리를 와락 끌어당기며 음흉한 미소를 보냈다.“지배인, 농담도 잘 하는군! 당신이 대접을 하다니?”“오늘은 누가 봐도 나 이 구평도가 대접을 해 드려야지!”“이소
만진해는 싸늘하게 웃으며 말했다.“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네.”“물론 그냥 넘어갈 순 없죠.”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프런트 데스크 직원에게 말했다.“당신도 방금 당신 지배인이 하는 말 들었지? 오늘 식사는 그녀가 대신 대접한다고!”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눈을 내리깔고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그녀는 하현이 정말 낯짝도 두꺼운 사람이라고 생각했다.공짜밥을 얻어먹는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그러나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속으로 비웃으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에게 안내했다.“꼭 드시고 싶으시다면 이쪽으로 따라오세요...”“필요없어!”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픽업트럭 열 대만 보내 줘. 여기 포장 좀 하려고.”한 시간 후, 이소월은 술과 밥을 배불리 먹은 구평도와 조한철을 데리고 특별실에서 나왔다.그들의 안색으로 보아 거나하네 술을 마신 모양이었다.특별실에서 이소월 일행이 나오자 프런트 데스크 직원은 까맣게 질린 얼굴로 계산서를 들고 종종걸음을 하며 다가왔다.“부맹주님, 무맹 맹주 어르신께서 드신 음식 계산서입니다.”프런트 데스크 직원의 이마에는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진짜 먹었어?”구평도는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비아냥거렸다.“내가 사 주는 밥을 기어코 먹고 가다니! 정말 낯짝도 두껍군!”“무맹에 들어가면 내가...”계산서에 시선을 떨어뜨린 구평도의 얼굴에 비아냥거리는 기운은 사라지고 순식간에 그의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버렸다.계산서를 바라보던 구평도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일억?!”“그들이 정말 일억 원어치를 먹었어?!”방금까지 여유롭고 당당하던 구평도의 눈동자가 마구 흔들렸다.“그들이 뭘 먹었길래? 일억 원어치를 먹어?!”“하현 그 사람이 픽업트럭 열 대를 불렀어요.”“저희 창고에 있던 마오타이와 양주, 그리고 소중히 보관하던 전복 수백 마리와 방금 공수해 온 이
만진해를 괴롭히는 데는 성공했지만 일억이라는 큰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다.곰곰이 생각해 보면 누가 누구를 괴롭힌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었다!구평도의 눈앞을 가장 막막하게 한 것은 이번에 그가 직접 나서서 만진해를 괴롭히려고 마음먹고 전면에 나섰다는 것이다.그런데 이런 꼴이 되다니!정말 창피해서 참을 수가 없었다!구평도가 이런 꼴을 보이게 되는 동안 건물에서는 사람들이 하나둘씩 나와서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십여 명의 무맹 직원들이 나와 좋은 구경거리라도 구경하듯 눈알을 반짝거리고 있었다.“부맹주님, 흥분하시면 안 됩니다. 혈압이 낮은 편이니 함부로 화내시면 건강에 해롭습니다.”“그러다가 갑자기 혈압이 치솟기라도 한다면 큰일입니다.”“맹주 어르신이 이 사무실을 얼마나 좋아하시는데. 여기서 사람 죽으면 안 되죠.”차를 마시던 하현은 희미한 눈빛으로 고개를 들어 구평도를 힐끔 쳐다보았다.“참, 점심때 일은 맹주 어르신과는 상관없는 일입니다. 술과 식자재는 모두 내 부하 직원들이 옮겼으니까요.”“안 그래도 최근에 그들한테 한턱 거나하게 쏴야 하는데 부맹주 덕에 아주 한턱 제대로 쐈습니다. 고맙습니다.”“내 부하 직원들도 모두 아주 좋아했답니다.”식당 창고에는 아주 그득하게 식자재들이 쌓여 있었기 대문에 하현이 옮긴 마오타이와 양주는 도끼파와 집법당 쪽 사람들이 나누어 먹기 충분했다.그야말로 하현의 부하 직원들은 횡재를 한 것이다.최고급 식재료는 셰프를 모셔 최고 연회를 벌일 수 있을 만큼 충분했다.하현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구평도의 눈꺼풀이 사납게 펄쩍거렸다.그는 노기등등한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자기 앞에서 이렇게 뻔뻔하게 구는 젊은이는 처음 보았던 것이다.하현은 구평도의 사나운 눈빛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나한테 화내도 됩니다. 날 파렴치한 놈으로 몰아도 좋구요.”“하지만 맹주 어르신을 탓해서는 안 됩니다.”“어쨌든 우리가 사 달라고 강요한 것이
”다만 우리가 이 일을 상의하고 있는 중요한 때에 부맹주 당신들이 문을 박차고 들어와서 소란을 피웠잖아요!”“알아요. 당신이 제대로 손님 접대를 하지 못해 이렇게 화났다는 거.”“내가 몰랐다면 부맹주 당신이 인도인과 한통속이라고 생각했을 거예요.”“부맹주님, 내가 충고 한마디 하겠습니다. 성질 좀 가라앉히세요.”“그렇지 않으면 원래 내 책임인 일도 전부 당신 책임으로 돌릴지도 모르니까요.”말을 하면서 하현은 싱글벙글 웃는 얼굴을 보였다.“개자식! 어디 입을 함부로 놀려?! 네가 번지르르하게 말 좀 할 줄 안다는 거 말고 뭐가 있어?”구평도의 얼굴은 분노로 가득 들어찼다.그는 지금 당장이라도 하현을 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하현의 적수가 될 수 없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런 일을 하려면 대중 앞에서 드러내 놓고 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구평도는 끓어오르는 화를 억지로 가라앉혔다.그렇지 않았다면 하현 이 개자식 때문에 심장이 제멋대로 튀어나가 생사를 걱정해야 했을 것이다.“부맹주, 이런 사소한 일로 그렇게 울그락불그락할 필요없어요.”“가서 조한철이랑 잘 상의해 보세요.”“우리는 특별실을 당신들한테 양보했어요. 설마 점심 내내 상의해 놓고 아무것도 상의하지 않았다고 발뺌하지는 않겠죠?”만진해가 시의적절하게 끼어들었다.“만약 당신이 이 일을 잘 해결한다면 점심값의 10배를 돌려드리지.”“좋아요! 당신 입으로 말했어요!”구평도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난 강요한 적 없어요!”“점심때 상의한 내용, 당신들한테 말할 수 있어요!”“내 앞에서 조 세자가 4대 무맹 대표들에게 전화를 걸었고 상대방도 화해의 조건을 내걸었어요.”“첫째, 하현은 반드시 그의 무학 기술에 대해 진술하고 무맹의 조사를 받아야 합니다. 그의 기술에 위반 사항이나 금지된 사항이 없는지 살펴봐야 합니다.”“둘째, 하현은 인도에게 정식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황실에 가서 무릎을 꿇든지 천억을 배상하든지 해야
”부맹주, 너무 가혹하고 황당한 요구라고 생각하지 않습니까?”하현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만약 우리가 그 조건을 들어준다면 우리 대하의 무술 고수들은 존엄성을 잃는 것과 같습니다.”“우리 대하인들이 앞으로 어떻게 외부인들 앞에 똑바로 설 수 있겠습니까?”“게다가 4대 무맹이 감찰관을 보내 우리 대하 무맹에 상주한다니 그들은 사사건건 사안을 부결시키고 모든 자료들에 간섭하려 할 것입니다.”“이렇게 되면 무맹이 어떻게 돌아가겠습니까?”“하물며 그들이 지금 내게 무학의 핵심기술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다니요? 분명 무맹의 권한을 내세워 우리 무학의 성지 비법들을 모조리 가져가겠다는 심산입니다...”“부맹주님은 총명한 분이십니다. 그런데 왜 해외 4대 문맹이 우리 근간을 뽑으려 하는 걸 가만히 보고 있는 겁니까?”하현은 담담하게 냉랭한 표정으로 구평도가 제시한 조건들을 하나하나 지적했다.네 가지 조건 중 세 가지는 하현을 겨냥한 것 같지만 결국은 대하 전역을 탐색하고 감찰하겠다는 속내였다.대하 어딘가에서 조그만 꼬투리라도 잡히면 해외 4대 무맹은 대하인들을 꼼짝도 못 하게 만들 것이다.“하현, 당신이 나한테 감히 이런 말을 해? 그게 먹힐 거라고 생각해?”구평도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난 해외 4대 무맹의 대표도 아닌데 나한테 그런 말을 해 봐야 무슨 의미가 있어?”“난 조한철을 통해서 4대 무맹에 연락을 취했을 뿐이야.”“4대 무맹에 있는 사람이 말하기를 우리 대하가 이 네 가지 조건만 들어준다면 해외에서 대하인들을 상대로 한 모든 행위를 중지할 거라고 했어!”“심지어 피해를 입은 업체들은 보상도 받을 수 있다고 했어.”“하지만 우리가 응하지 않으면 4대 무맹은 부하들이 마음대로 행동하도록 그냥 내버려둘 거야.”여기까지 말한 구평도는 싸늘한 미소를 지으며 능청스럽게 뒷짐을 지며 말을 이었다.“그러니까 이 네 가지 조건을 받아줄지 말지는 당신들이 알아서 해.”“걱정하지 마. 이 네 가지 조건은 생
만진해는 싸늘히 식은 얼굴로 말했다.“이게 바로 불공정 조약인 거야!”“그런데 내가 어떻게 이걸 받아들이겠어?”“내가 이걸 모를 거라고 생각하는 건가? 뭘 어쩌겠다는 거야?”구평도가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지금 발언권은 해외 4대 무맹이 손아귀에 쥐고 있는데 기회를 잡은 이상 불공정 조약을 원하는데 어쩌겠어요?”“설마 사람들을 이끌고 해외 4대 무맹에 가서 그들을 부숴버리고 끝장을 낼 생각입니까?”“이봐요. 당신이 총교관이라도 되는 줄 아십니까?”“무적이라도 되는 줄 알아요?”“게다가 그들이 말하기를 그 당시 총교관이 5대 강국을 휩쓸 수 있었던 것은 무맹 사람들이 손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어요.”“무맹이 나섰다면 대하에서 그런 신화적인 인물이 나올 리 만무하죠!”“우리 대하가 스스로 총교관이 있다고 위세를 떨 만한 처지입니까?”“웃기지 마세요!”“게다가 총교관은 정부가 움직이는 사람입니다!”“지금 우리가 해결해야 할 일은 강호의 일이구요!”“강호의 일, 그 이치를 모르십니까?”“이제 와서 사람들이 몰려가 덤벼들어 봐야 우리는 그들의 적수가 못 됩니다. 그러니 뭘 어떻게 할 수 있겠어요?”“남보다 힘이 약하면 순순히 무릎을 꿇는 수밖에요.”“어차피 전에도 여러 번 무릎을 꿇었잖습니까? 한 번 더 무릎을 꿇는다고 그게 뭐 대수란 말입니까?”여기까지 말한 구평도는 냉소를 지으며 탁자 위에 발을 올려놓았다.“내 말 잘 알아들었습니까?”구평도의 말을 듣고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얼굴을 멀뚱멀뚱 쳐다보았다.구평도가 한 말은 듣기 거북하기 짝이 없었지만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는 현실이기도 했다.비록 총교관 덕분에 지금은 대하가 세계적인 강대국이 되었지만 세계 강대국들이 4대 무맹과 손을 잡는다면 골치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었다.게다가 이번 일은 강호의 일이기 때문에 정부가 쉽사리 나서기도 불편했다.그렇지 않고 정부가 함부로 개입했다가는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젊어서 혈기왕성하다는 게 뭘 말하는지 모르겠군요.”하현은 차갑게 내려앉은 얼굴로 다부지게 말했다.“난 우리 대하가 세상에 우뚝 섰고 누구도 우리에게 함부로 무릎을 꿇으라 할 수 없다는 것만 압니다!”“이것이 바로 우리 대하 반만 년의 긍지죠!”“반만 년의 긍지?”구평도의 얼굴에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그는 잠시 동안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본 뒤 이죽거리며 말했다.“어쨌든 내가 할 말은 이미 다 했어. 할 일도 다 했으니 이제 구체적으로 어떻게 행동할지는 맹주가 결정할 일이야.”“그렇지만 당신이 정말로 이 일을 해결할 수 있다면 무릎 꿇지 말고 해결해 봐. 그럼 우리 사이의 원한은 더 이상 없는 것으로 하지. 나 구평도는 국술당에 가서 기꺼이 당신을 도와줄게!”“하지만 만약 당신이 무릎을 꿇는다면 내 딸 다리를 부러뜨리고 내 아들의 체면을 뭉개버린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거야. 각오해.”말을 마치며 구평도는 냉소를 흘리며 뒤를 돌아 그의 무리들에게 손짓을 한 뒤 유유히 사라졌다.구평도의 모습을 보고 하현은 흥미로운 미소를 떠올렸다.이어 문을 닫고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만진해를 바라보았다.“맹주 어르신, 산전수전 다 겪으신 분이 뭐 이런 일에 얼굴을 붉히십니까?”“이까짓 일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걱정할 것 없습니다.”“이까짓 일이라고?”만진해는 안색이 어두워진 채 한숨을 내쉬었다.“하현, 이 일은 절대 작은 일이 아니야.”“구평도가 한 말은 듣기 거북했지만 틀린 말은 아니었어.”“우리 대하는 최근 몇 년 동안 강해지고 세상에 우뚝 섰지만 두 주먹만으로는 많은 사람들을 당해낼 수가 없어.”“이번에는 정부의 도움도 받을 수 없어. 만약 정부가 개입한다면 강대 세력이 자국의 이익을 위해 수단도 가리지 않는다고 비난할 거야!”“어차피 대하 무맹의 힘만으로는 어려운 일이기도 하고...”“대하 무맹 내부에 우리 발목을 잡는 자가 있든 없든 간에 단순히 여러 무학의 성지들이 제멋대로 행동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다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도 조 행장의 표정을 보고 사과하지 않으면 상황이 곤란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미안해.”“미안하다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날 조롱하고 모욕했으며 내 아내를 불러서 내 체면을 뭉개버리려고 했지.”“지금 와서 마지못해 사과하면 모든 것이 다 없던 일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정말로 사과 한마디로 해결될 것 같냐고?”김나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차갑게 내뱉었다.“하현! 설령 이 돈이 당신 계좌에 있다고 해도 결국 빌린 돈일 뿐이잖아!”“돈을 빌린 것뿐이야! 결국 갚아야 되는 돈이라고! 알기나 해!”“자기가 정말로 뭐 거물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지?!”“적당히 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날뛰는 꼴이라니!”설은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됐어. 이건 오해였어.”“나나는 김 씨 가문 사람이니까 화해한 걸로 치고 좋게 생각해.”“김 씨 가문 사람?”하현은 헛웃음을 지었다.“김 씨 가문이든, 간 씨 가문이든 내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자격은 없어!”그는 말을 하면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조 행장님. 제가 기회를 드렸는데도 당신들은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군요.”“그렇다면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드리죠.”“지금 이 자리 당신이 꺼지든지, 아니면 저 여자가 꺼지든지.”“결정하시죠!”김나나는 죽일 듯이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 뭐 잘못 먹었어?”“정말 당신이 뭐 대단한 거물이라도 된 줄 알아?”“내가 꺼지든지, 아니면 행장님이 꺼지든지 하라고?!”“허! 드라마는 아주 많이 본 모양이지! 어디서 갑질 회장님 흉내를 내려고 해?!”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천일그룹을 이용해 이들을 밀어붙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조 행장은 천일그룹을 경외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다.어쨌든 천일그
”뭐라구요?”김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행장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천일그룹이 하현한테 이천억을 보냈다구요?”“그럴 리가요?”“말도 안 돼요!”조 행장은 싸늘해진 얼굴빛으로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은 당당한 풍채에 실력까지 갖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천일그룹 회장님도 믿고 돈을 보낸 거겠죠!”“하 세자가 하현에게 이천억을 빌려준 건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말도 안 돼요!”김나나가 버럭 화를 냈다.“데릴사위이자 여자한테 빌붙어 벌어먹는 놈이 어떻게 천일그룹 하 세자와 인연이 있겠어요?”“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김나나는 하현이 블랙골드 카드의 소유자에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조 행장님, 다시 한번 전화해서 분명하게 물어보세요. 뭔가 착오가 있을 거예요!”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신분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여전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게다가 하현이 이천억을 준비했다니!설은아는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김나나, 하현과 천일그룹의 하 세자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어.”“게다가 하 세자를 도와주었으니 그가 이 사람한테 돈을 빌려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됐어! 설은아, 이 쓰레기 같은 남자 두둔하려고 애쓰지 마. 하현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어?”김나나는 아예 믿으려 하지 않았다.“하 세자가 누구야? 강남에서 손꼽히는 거물인데 그가 못할 일이 뭐 있겠어?”“하현같이 쓸데없는 인물이 하 세자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말을 마치자마자 김나나는 진지하고 엄정한 얼굴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행장님, 다시 한번만 더 확인해 보세요.”“정말 이 쓰레기 같은 남자가 이천억을 받은 게 맞다면 우리가 모든 책임을 떠안을게요!”
김나나는 하현이 가지고 있던 블랙골드 카드의 발행연도가 몇 년 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설마 데릴사위가 신분을 숨긴 거물인 건가?그러자 김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벌벌 떨다가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대단한 거물이 뭐 하러 남의 집 데릴사위를 해?말도 안 되지!김나나는 실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알겠어. 분명 몇 년 전에 어디서 돈을 훔친 거야. 틀림없어!”“사건이 탄로 날까 봐 몇 년 동안 쓰지도 못하고 감춰둔 거고.”“이제 모든 것이 잠잠해지자 움직일 준비를 한 거지!”“정말 음흉하고 간교한 놈이야!”김나나는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일관하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블랙골드 카드에서 돈을 출금하게 되면 은행은 그 돈의 출처를 조회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지?”“당신이 그 돈을 함부로 썼다가는 아주 끝장나는 거야!”“이 정도면 감옥에 처넣기 충분해!”설은아는 무심결에 하현에게 시선을 휙 돌렸다.“하현, 이게 도대체...”하현은 설은아를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며칠 전 밥을 먹다가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서 부랴부랴 돈을 좀 준비해 두라고 했어. 오늘 그 돈이 잘 입금되었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이 안에 이천억이 들어 있으니 당신이 겪고 있는 자금난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하현은 이 일을 설은아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워 일부러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기회를 봐서 말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런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게 되었다.“은아의 자금난을 해결해?”“이천억을 단번에 준비했다고?”김나나는 코웃음을 쳤다.“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이천억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어? 지금 드라마 찍는 줄 알아?”“당신 바보야? 아님 우리를 바보로 아는 거야?”이때 조 행장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말했다.“어제 이천억이 우리 은행에서 발행된 블랙골드 카드에 입금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