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군아,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냐?”황지군은 담배에 불을 붙여 연기를 가득 내뿜으며 찡그린 얼굴로 말했다.“어느 미친놈이 너희들을 이렇게 만든 거야? 심지어 아복마저 만신창이가 되다니!”그는 자신의 동생과 동생의 약혼녀가 만신창이가 되었다는 것만 알 뿐 다른 구체적인 상황은 아직 모르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입니다! 국술당의 하현!”“그의 곁에는 힘센 여자 보디가드, 그리고 우리 황금궁의 배신자 남궁나연이 있어요!”“그 여자 보디가드는 너무 막강해서 아복도 막지 못했어요.”황소군은 황금궁 별장에서 있었던 일을 차근차근 얘기했다.그러나 하현이 왜 거길 왔었는지는 설명하지 않았고 하현의 오만함과 교만한 수법만 강조했다.“하현? 용문대회 무성 도 대회 우승자 말이야?”“그놈이 인도인을 건드리는 것도 모자라 감히 우리 황금궁을 건드려?!”“그리고 뭐? 우리 황금궁에서 배신자가 하나 나왔다고?!”“재미있군. 정말 재미있어!”구평도는 냉소를 흘리며 눈동자를 살벌하게 굴렸다.그의 딸을 건드린 자는 천왕노자라고 해도 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황지군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너랑 제수씨가 무슨 잘못을 했든 간에 우리는 황금궁 집안사람이야!”“외부인이 감히 우리 황금궁 머리 꼭대기에 앉으려 하다니!”“죽고 싶어 환장한 놈이지!”“이건 내가 해결할게.”황지군이 날카로운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황금궁이 매년 무맹한테 어마어마한 회비를 내고 있으니 이제 거길 써먹을 때가 된 거야.”황지군도 똑똑하기로는 누구 못지않은 사람이었다.비록 하현의 행동에 분노하긴 했지만 그는 다른 사람들을 시켜 벌써 하현의 정체를 알아보라고 지시한 터였다.“자, 자네 뜻에 따르겠네!”구평도 역시 무맹이 어떤 수단을 쓸지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의사가 두 환자를 특수 병동으로 옮기자 황지군과 구평도 두 사람은 비로소 병원 입원 병동 옥상으로 올라갔다.측근들을 주변에 배치한 뒤 주위에 외부인이
이튿날 아침, 하현은 결전이 이루어질 경기장에 도착했다.손엄명, 구양연, 천정국 등은 이미 와 있었다.하지만 군중 속에 하현의 눈길을 끄는 여자가 있었다.스물일곱, 여덟쯤으로 보이는 여자는 통통한 몸매에 긴 머리를 휘날리며 세련되게 화장한 얼굴을 하고 있어서 한 번 보면 쉽게 잊히지 않을 스타일이었다.여성미가 물씬 풍기는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에 주위의 남자들이 모두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이런 여자를 보는 남자들의 부류는 둘 중 하나였다.거칠게 그녀를 정복하고 싶어 하거나 아니면 그녀 앞에 무릎을 꿇고 사랑을 구걸하거나.그러나 손엄명 일행은 이 여자에게는 눈도 돌리지 않고 뭔가 언짢은 기분에 사로잡힌 듯 잔뜩 얼굴을 찌푸리고 있었다.“손엄명 부문주, 구양연 부지회장, 천 장로, 다들 왜들 그런 얼굴을 하고 있어요?”하현은 진주희가 준비해 준 커피를 받아 마시면서 의아한 듯 눈썹을 들썩이며 입을 열었다.“오늘 이 경기가 걱정돼서 그러는 겁니까?”“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있는 한 인도인들은 더 이상 날뛸 수 없을 거예요.”“어차피 원래 계획도 나 혼자 저들을 상대하는 거였으니까요.”하현은 손엄명 일행이 남선을 비롯한 세 사람이 독살 공격을 받고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걸 알고 한껏 걱정에 사로잡혀 있다고 생각했다.“하현, 오늘 경기에 당신은 참가하지 않아도 돼!”이때 옆에 있던 한 장로가 하현을 쳐다보며 침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우리 쪽에 14명의 선수가 더 있으니 용문에서 선발해 출전시킬 거야.”“자네는 일이 바쁘니 집에 가서 좀 쉬어.”“지금까지 당신의 공로가 얼마나 큰지 우리가 잘 기억하겠네.”구양연이 얼굴빛이 싸늘하게 변하며 입을 열었다.“용 장로, 당신은 비록 용 씨 가문 사람이지만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없지 않습니까?”“우리 모두 아직 결정하지 못한 일인데 왜 당신이 하현에게 참가하라 마라 하는 겁니까?”“그게 공평한 처사라고 생각하는 거요?”“제 성격이
”무엇보다 난 용문대회 도 대회 우승자입니다!”“인도인에게 진 적도 없어요!”“내가 출전하길 원하지 않는다면 그 이유를 설명해 줘야 하지 않습니까?”하현은 마음에 품었던 의혹을 제기했다.특히나 인도인들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도록 제대로 된 설명을 요구한 것이다.조가흔은 하현을 곁눈으로 쳐다보며 차갑게 웃었다.“하현, 우리가 모두 알다시피 당신이 도 대회 우승한 거 맞아. 실력도 아주 출중하지. 기대해도 좋을 정도로.”“하지만 문제는 우리가 지금 당신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거야.”“믿을 수 없는 사람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내보내는 건 우리 방식이 아니야. 그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이 기회를 양보하는 게 낫다고 생각해.”“그럼 모두들 걱정도 덜 할 테고.”“날 신뢰하지 않는다고?”하현은 눈꼬리를 가늘게 움츠린 후 말을 이었다.“조 대표가 제대로 설명을 해 줄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군.”조가흔이 냉랭한 눈빛으로 말했다.“도대체 당신은 왜 생각이 없는 거야?”“미안하지만 난 정말 모르겠어. 그러니까 내가 충분히 설득할 만한 이유를 댄다면 기권할게!”하현은 어리둥절한 눈빛으로 말했다.“날 설득하지 못하면 당신은 나한테서 멀리 사라져 줘야 할 거야!”“용문의 일은 당신이 결정하는 게 아니야!”“뭐?”하현이 조금도 위축되지 않고 당당하게 쏘아붙이자 조가흔의 안색이 일그러졌다.“난 원래 손 부문주의 체면을 봐서 얼굴 붉히지 않고 물러설 여지를 남겨두려고 했었어!”“하지만 하현 당신이 고집을 꺾지 않고 이렇게 막무가내로 대드니 나도 어쩔 수가 없어! 나중에 날 원망해도 소용없어!”“어젯밤 브라흐마 로샨을 만났지?”하현이 당당하게 대답했다.“맞아. 그게 뭐 어쨌다는 거야?”“만난 일은 이미 용문에 다 보고했어.”“인도인을 대표해 날 매수하려 왔지만 단칼에 거절했지. 그게 뭐가 문제가 된다는 거야?”손엄명은 좋지 않은 안색을 보이며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이 확실히 보
조가흔이 가벼운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하현, 우린 당신이 직접 인도인한테 돈을 받았다고 말하지 않았어.”“외부의 적과 내통해 대하를 배신했다는 말도 하지 않았고!”“어쨌든 우리는 당신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지.”“그러니 당신도 우리를 이해해 줘야 해. 안전을 위해 우리가 당신을 출전시키지 않는 것은 당연해!”“생각해 봐. 당신이 브라흐마 로샨과 만난 이후 남선 일행이 의식을 잃었고 당신 계좌에는 이천억 달러라는 거액이 입금되었어!”“길거리에 지나가는 아무나 잡고 물어봐! 이런 사람을 믿을 수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지!”“대승적 차원에서 오늘은 당신이 출전하지 않는 게 좋겠어!”“모든 조사가 끝날 때까지 기다려!”“우리에겐 아직 출전하지 않은 선수가 14명이나 있어. 그들이 인도의 상대가 되지 못하더라도 닷새는 버틸 수 있어.”“그동안에 우리는 충분히 조사를 마칠 수 있을 거야.”“하현, 우린 지금 당신한테 부탁을 하는 게 아니라 명령하는 거야.”“당신이 어떻게 생각하든 우린 관심없어. 우린 단지 남선 일행이 독살을 당한 일에 대한 진실을 알고 싶을 뿐이야.”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진실을 원한다면 황소군한테 물어봐. 그가 다 알고 있을 거야!”“뭐라고?! 어젯밤에 황금궁 별장에 가서 당신이 소란을 피운 일을 우리가 모를 것 같아?”조가흔의 얼굴이 살짝 비틀어졌다.“이 일 때문에 황금궁의 황지군한테 아침 일찍부터 전화가 왔었어!”“하지만 그는 내 체면을 봐서 당신을 귀찮게 하지는 않았어!”“그런데 뭐? 황금궁 사람을 찾아가서 물어보라고?”“하현, 당신이 브라흐마 로샨과 만난 후에 일어난 일을 두고 황소군한테 누명을 뒤집어씌울 셈이야? 그걸 우리가 믿을 거라고 생각해?”“당신 실력이 대단하건 말건 지금은 그런 것을 논할 필요도 없어. 어쩌면 우리 14명의 선수들이 이번에는 부끄러움을 알고 분발해서 용감하게 인도인들을 뭉개버릴지도 몰라.”“그렇게 되면 무성 도 대회 우승자 따위
구양연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물었다.“그게 무슨 말이야?”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제가 무성에 재산이나 가족이 얼마나 많은지 이 사람들이 알아낼 수 없었을까요?”“인도인이 이천억에 날 매수한다구요?”“말도 안 되죠!”“브라흐마 커크를 없앴던 건 말할 필요도 없고 어떤 시각으로 보든지 간에 내가 그들의 복수를 아무리 두려워할손 치더라도 인도인들은 감히 날 매수하고 받아들일 수는 없을 거예요.”“그래서 매수하려던 수작은 그냥 음모일 뿐이에요.”“내가 출전하는 게 위험하다고 딱 잘라 막아버리는 건 분명 뒤에서 누군가가 날 눌러버리려고 하는 수작일 뿐이죠.”“특히 남선을 비롯한 세 사람이 인도의 젊은 실력자들을 휩쓸고 나니 인도인들의 실력이 생각보다 강하지 않다는 걸 알았겠죠.”“한편으론 내가 용문대회 최종 우승자가 되어 용문 문주의 강력한 후보자가 되는 게 싫었을 것이고.”“또 한편으론 나머지 14명 중에 그들이 심어 놓은 사람들이 있는 거죠.”“그들이 심어 놓은 사람이 혹시 기세를 몰아 우승한다면 그들 사람이 용문 문주 후계자가 되는 거니 그들에게도 많은 이익이 돌아가지 않겠어요?”“인도인들이 날 매수했다는 건 핑계에 불과해요.”“기세를 몰아 날 억압하는 게 진짜 목적이죠.”구양연은 잠시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한숨을 깊이 내쉬었다.“하현, 자네 말이 맞아.”“곧 출전할 사람 중에 손정하라는 사람이 있는데 바로 손엄명 부문주의 조카야.”“그리고 또 다른 조 씨 성을 가진 사람은 서북 조 씨 가문 사람일 거야.”“그렇게 보니 확실히 그들은 자네를 못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사람들을 자리에 앉히고 싶었던 거야.”“이번에 누가 가장 큰 공을 세우느냐에 따라 용문 문주의 강력한 후보자가 될 가능성이 높으니까.”“특히 현재 세 명의 젊은 실력자들이 의식을 잃고 언제 깨어날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 거지...”“용문 문주 강력한 후보자라면 권세가 높고 미래의 4대 초
말을 마친 하현은 결전이 이뤄지는 그 자리를 훌쩍 떠났다.조가흔 일행이 반쯤 죽어나가는 것도 그에게 있어서는 그리 나쁜 일이 아닐 수도 있다.적어도 그동안은 남선 일행을 구할 시간을 버는 것이기 때문이다.변약수는 이상한 독약이다.독약이라고 하기도 애매했다.세 사람을 잠에 빠뜨려 그냥 잠재운 것이다.그날 그 까칠한 여자의 손가락이 하룻밤 동안 변약수에 담겨 있었다고 해도 그 손가락에 독이 스며든 양은 아주 제한적일 거라고 하현은 추정했다.하지만 지금은 이런저런 궁리를 할 시간이 없으니 하현은 자신이 직접 나서서 남선 일행을 살릴 수 있는지 없는지 시험해 볼 생각이었다.한편 그는 루돌프 팀에게 세 사람의 위세척을 지시한 후 세 사람에게 링거를 달아 주었다.그리고 그는 직접 손을 써서 몸에 있는 특별한 혈에 손을 대어 그들의 왕성한 생기를 북돋아 주었다.시간은 빠르게 흘러 낮시간이 금방 지나갔다.하현은 몸이 조금 피곤해서 남선 일행이 있는 방에서 잠시 나왔다.그때 결전장에 남아 있던 진주희한테서 전화가 걸려왔다.사실 전화를 받든 받지 않든 그는 이미 결과를 짐작하고 있었다.오늘 세 경기를 위해 조가흔과 손엄명은 자신들이 엄선한 선수를 내보냈지만 결국 브라흐마 로샨과 다타 구쉬에게 맥도 추지 못했다.세 번의 경기를 모두 져서 용문의 체면이 말이 아니었다.그리고 반대로 인도인들은 대하를 완전히 제압했다고 아주 기세가 등등해졌다.하현은 전화를 끊은 후 인터넷에 떠도는 각 방면의 여론을 살펴보았다.인터넷은 아주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어떤 사람들은 용문 쪽에서 천 리 밖을 내다보는 전략을 짜서 일부러 경험이 부족한 선수들을 내보냈고 그들이 경험을 쌓을 때까지는 실패하더라도 상관없다고 말했다.어떤 사람들은 남선 일행이 용문과 사이가 틀어져서 큰 이익을 요구했을 것이고 그게 받아들여지지 않자 출전하지 않았을 거라고 말했다.또 다른 사람들은 아마 용문이 권력을 차지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고 있을 거라며 이
불과 한 시간 만에 하현은 시궁창을 전전하는 쥐만도 못한 신세가 되었다.국술당 입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고 썩은 채소 잎과 썩은 달걀들이 곳곳에 버려졌다.만약 만천우 쪽에서 즉시 많은 경찰들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아마 국술당은 벌써 폭파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이런 조치도 하현이 욕을 먹고 만신창이가 되는 것은 막지 못했다.사람들은 하현을 대하에서 내쫓거나 스스로 떠나거나 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나흘 동안 계속된 실패의 모든 책임은 하현에게 던져졌다.욕을 먹던 도 대회 우승자 십여 명은 오히려 진정한 영웅이라고 추켜세우는 사람도 생겼다.그들은 자신들이 브라흐마 로샨 일행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심지어 하현이 남선 일행을 해하려 했다는 걸 의심하면서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서서 싸웠다!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영웅 중의 영웅이다!남궁나연과 조남헌 등은 이에 분노하며 인터넷상에서 사람들과 온라인 설전을 벌였다.하지만 두 사람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수없이 많은 대중들이었다.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는 싸움이었다.그들이 고군분투했지만 들끓어 오른 민심을 바꿀 수는 없었다.설은아와 설유아도 조심스럽게 하현에게 전화를 걸어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물었다.하현은 몇 마디 건성으로 그녀들을 안심시키고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각별히 몸조심하라고 일렀다.오히려 최희정은 하현의 신변은 안중에도 없고 정말로 인도인들이 미화 이천억 달러를 주었는지 물었다.만약 그렇다면 인도인들이 이랬다저랬다 할 수 있으니 만전을 기하기 위해 자신에게 맡겨두라고 말했다.하현은 또 한 번 최희정의 뻔뻔함에 혀를 내둘렀다.하지만 그는 이런 감정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사이버 폭력에 일일이 대응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그가 나서서 인도인들을 제압하기만 하면 인터넷상의 이런 비난은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하현은 자신이 이제 출전할 때가 되었는
석수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뒤를 쳐다보았지만 별다른 말은 없이 대열을 이끌고 국술당 안으로 발을 들여놓더니 기세등등하게 걸어갔다.예쁜 두 여제자가 그녀의 곁에 서서 하현에게 시선을 돌린 다음 그를 가리켰다.“바로 저 사람입니다. 저 사람이 하현이에요!”“우리 후배와 다른 어린 두 사람을 독살한 자가 저 사람이에요!”“그 때문에 우리 용문이 이번 국전에서 체면을 완전히 구겼구요!”“내일 대결에서 또 지면 우리 용문은 국가의 적이 되는 거예요!”“그 장본인이 바로 저 자식이라구요!”전당의 여제자들은 모두 하현을 가리키며 한바탕 비난을 퍼부었고 이를 갈며 하현을 못 뜯어먹어 안달 난 승냥이처럼 으르렁거렸다.사람들은 하현이 비난받는 모습을 보고 꼴좋다며 혀를 끌끌 찼다.하현이 감히 외부의 적과 내통하고 나라를 팔아 개인의 부귀영화를 꾀하려 하더니 저런 말을 들어도 싸지!원래 질서 유지를 위해 현장에 왔던 경찰 수사팀장조차도 눈만 꿈뻑거리며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커다란 홀 안에서 모든 시선들이 하현에게 쏠린 가운데 하현은 태연스럽게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석수혜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그는 원래 용문 고위층이 자신을 귀찮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천심낙의 선배가 먼저 올 줄은 몰랐다.그런 점에서 이 석수혜라는 여자는 대범하고 강단이 보통이 아닌 것이다.적어도 원수 앞에서 제대로 반기를 들어 손을 쓸 생각을 했으니!다른 사람들처럼 인터넷의 익명에 숨어서 헐뜯고 비난하며 실제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나았다.“재미있군!”하현은 석수혜에게 던졌던 시선을 다시 찻잔으로 모은 뒤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차를 마셨다.이런 하현의 모습을 보고 석수혜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이내 냉정한 얼굴을 되찾았다.“당신이 아무리 용문대회 무성 우승자라고 해도 우리 전당 앞에서 센 척하는 건 너무 유치한데!”“용문을 안다면 적어도 내외 팔당의 신분과 지위가 서른여섯 개 지회보다는 높다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