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과 한 시간 만에 하현은 시궁창을 전전하는 쥐만도 못한 신세가 되었다.국술당 입구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모였는지 헤아릴 수 없을 지경이었고 썩은 채소 잎과 썩은 달걀들이 곳곳에 버려졌다.만약 만천우 쪽에서 즉시 많은 경찰들을 보내지 않았더라면 아마 국술당은 벌써 폭파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이런 조치도 하현이 욕을 먹고 만신창이가 되는 것은 막지 못했다.사람들은 하현을 대하에서 내쫓거나 스스로 떠나거나 해야 한다고 소리를 높였다.나흘 동안 계속된 실패의 모든 책임은 하현에게 던져졌다.욕을 먹던 도 대회 우승자 십여 명은 오히려 진정한 영웅이라고 추켜세우는 사람도 생겼다.그들은 자신들이 브라흐마 로샨 일행을 이길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심지어 하현이 남선 일행을 해하려 했다는 걸 의심하면서도 이에 아랑곳하지 않고 나서서 싸웠다!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영웅 중의 영웅이다!남궁나연과 조남헌 등은 이에 분노하며 인터넷상에서 사람들과 온라인 설전을 벌였다.하지만 두 사람이 상대하고 있는 것은 수없이 많은 대중들이었다.도저히 감당해 낼 수 없는 싸움이었다.그들이 고군분투했지만 들끓어 오른 민심을 바꿀 수는 없었다.설은아와 설유아도 조심스럽게 하현에게 전화를 걸어 도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냐고 물었다.하현은 몇 마디 건성으로 그녀들을 안심시키고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니 각별히 몸조심하라고 일렀다.오히려 최희정은 하현의 신변은 안중에도 없고 정말로 인도인들이 미화 이천억 달러를 주었는지 물었다.만약 그렇다면 인도인들이 이랬다저랬다 할 수 있으니 만전을 기하기 위해 자신에게 맡겨두라고 말했다.하현은 또 한 번 최희정의 뻔뻔함에 혀를 내둘렀다.하지만 그는 이런 감정적인 상황에 대해서도 아무런 타격이 없었다.사이버 폭력에 일일이 대응해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그가 나서서 인도인들을 제압하기만 하면 인터넷상의 이런 비난은 자연스레 사라질 것이다.하현은 자신이 이제 출전할 때가 되었는
석수혜는 눈을 가늘게 뜨고 뒤를 쳐다보았지만 별다른 말은 없이 대열을 이끌고 국술당 안으로 발을 들여놓더니 기세등등하게 걸어갔다.예쁜 두 여제자가 그녀의 곁에 서서 하현에게 시선을 돌린 다음 그를 가리켰다.“바로 저 사람입니다. 저 사람이 하현이에요!”“우리 후배와 다른 어린 두 사람을 독살한 자가 저 사람이에요!”“그 때문에 우리 용문이 이번 국전에서 체면을 완전히 구겼구요!”“내일 대결에서 또 지면 우리 용문은 국가의 적이 되는 거예요!”“그 장본인이 바로 저 자식이라구요!”전당의 여제자들은 모두 하현을 가리키며 한바탕 비난을 퍼부었고 이를 갈며 하현을 못 뜯어먹어 안달 난 승냥이처럼 으르렁거렸다.사람들은 하현이 비난받는 모습을 보고 꼴좋다며 혀를 끌끌 찼다.하현이 감히 외부의 적과 내통하고 나라를 팔아 개인의 부귀영화를 꾀하려 하더니 저런 말을 들어도 싸지!원래 질서 유지를 위해 현장에 왔던 경찰 수사팀장조차도 눈만 꿈뻑거리며 함부로 나서지 못했다.커다란 홀 안에서 모든 시선들이 하현에게 쏠린 가운데 하현은 태연스럽게 의자에 앉아 차를 마시고 있었다.그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석수혜를 흥미로운 눈빛으로 쳐다보았다.그는 원래 용문 고위층이 자신을 귀찮게 한다고 생각했는데 천심낙의 선배가 먼저 올 줄은 몰랐다.그런 점에서 이 석수혜라는 여자는 대범하고 강단이 보통이 아닌 것이다.적어도 원수 앞에서 제대로 반기를 들어 손을 쓸 생각을 했으니!다른 사람들처럼 인터넷의 익명에 숨어서 헐뜯고 비난하며 실제로는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들보다 훨씬 나았다.“재미있군!”하현은 석수혜에게 던졌던 시선을 다시 찻잔으로 모은 뒤 유유자적한 모습으로 차를 마셨다.이런 하현의 모습을 보고 석수혜는 적잖이 당황했지만 이내 냉정한 얼굴을 되찾았다.“당신이 아무리 용문대회 무성 우승자라고 해도 우리 전당 앞에서 센 척하는 건 너무 유치한데!”“용문을 안다면 적어도 내외 팔당의 신분과 지위가 서른여섯 개 지회보다는 높다
천심낙을 위해 날뛰는 전당의 여제자들을 흥미로운 눈빛으로 바라볼 뿐 하현은 가타부타 말이 없었다.천심낙을 위해 나서는 것도 좋은 일이다.적어도 젊고 기력이 왕성하다는 것은 인정할 만했다.하지만 이렇게 쉽게 이용당하고 이리저리 휘둘리는 모습은 석수혜와 그녀의 사람들이 아직 너무 어리석다는 것을 보여주기에 충분했다.하현의 얼굴에 희미하게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도는 것을 알아차린 석수혜는 안색이 점점 더 일그러졌다.그녀는 다시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서 입을 열었다.“하현, 만약 당신이 무성에서 죽고 싶지 않다면 모든 것을 분명하게 털어놓는 게 좋을 거야!”“우리 전당을 만족시킬 만한 설명이어야 할 거라고!”“그렇지 않으면 평생 무성을 벗어나지 못하게 할 거야!”“내 말 잘 들어. 우리 전당이니까 이 정도로 예의를 갖춰서 말을 하는 거야.”“암당이나 외오당 같았으면 벌써 당신의 얼굴을 잡아 뜯었을 거야!”“그러니 우리가 당신한테 이렇게 해명할 기회를 주는 것에 감사해야지! 알아들었어!”“하지만 우리 전당이 당신한테 기회를 준다고 해서 당신이 우리 앞에서 거드름을 피워도 좋다는 뜻은 아니야!”“우리 전당의 이런 호의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귀머거리인 척 벙어리인 척 잘못을 뉘우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면 각오해! 절대 봐주지 않을 테니까!”“그러니 얼른 무릎 꿇고 설명해!”“이 기회를 놓치면 앞으로 영영 기회는 없어. 우리가 무자비하다고 탓하지나 말라구!”석수혜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져서 분노를 감추지 않았다.그도 그럴 것이 그녀는 자신의 타고난 신분으로 지금까지 어디서 무엇을 하든 상대는 항상 고분고분했다.게다가 그녀는 하현에게 이렇게 많은 기회를 주었으니 자신이 참을성이 한없이 좋다고 여겼다.그런데 하현 이 개자식이 시종일관 차만 마시며 히죽거리고 있다니!이게 말이 되는가?전당을 뭘로 보고 이런 행동을 한단 말인가?전당의 위신이 떨어진 걸까?아니면 외부의 적과 내통한 이놈이 눈에 보이는 것이
하지만 남궁나연은 이 여자를 무시하고 하현의 곁으로 다가와 그에게 차를 따랐다.“이것들이! 지금 우리 말을 못 알아듣는 거지?”여자도 분노에 찬 얼굴로 말했다!전당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얘기하는데 감히 무시해?허리가 굽도록 굽신거려도 모자랄 판에 지금 누구 얼굴에 자꾸 생채기를 내려는 것인가?여자는 눈썹을 찡그리며 갑자기 석수혜에게 말했다.“이 여자는 황금궁 외문 제자인 남궁나연이에요. 이놈의 보디가드인 셈이죠!”“남궁나연?”석수혜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전설의 그 황금궁 외문의 실력자?”“좋아. 아주 건방이 하늘을 찌르는군. 감히 하 씨 저놈의 편을 들다니! 같이 죽고 싶은 거지?!”“하현!”남궁나연은 석수혜가 말하는 것에는 아랑곳하지 않고 하현에게 차를 따르며 입을 열었다.“방금 확인했습니다. 이 자들은 충동적으로 쳐들어온 거예요. 배후에는 누구의 지시도 없었습니다.”“전당 당주 쪽에서는 아직 이 일을 모를 거예요.”“이들도 자기 후배를 위해 나섰고 충동적이긴 했지만 잘못한 거라고는 볼 수 없어요.”“그러니 그냥 가라고 하고 끝내시죠.”남궁나연이 하현을 설득하며 나섰다.석수혜 일행이 천심낙을 위해 자발적으로 나선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었다.단지 사람들의 속임수에 속아 충동적으로 행동한 것을 하현이 관대하게 봐주길 바랐던 것이다.하현은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배후에서 누가 시킨 적도 없고 충동적으로 행동한 것이니 여기서 그만하지.”“어서 저 사람들을 정리해!”“예!”남궁나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서서 차가운 표정으로 석수혜 일행을 쳐다보며 말했다.“하현께서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는다고 하시니 이만 물러가!”석수혜는 마뜩잖은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들썩였다.“개자식! 우리가 누군지 알기나 해?”“우리한테 더 이상 책임을 묻지 않겠다고? 물러가라고? 흥!”“당신이 뭐라도 돼?”“똑똑히 들어.”“이렇게 큰 무성에서 용문 집법당 사람만
석수혜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그녀는 하현의 손에 용문 집법당 영패가 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가짜라고?”하현은 어이가 없어서 껄껄 웃었다.순간 그의 손에 있던 찻잔이 영패 위로 떨어지면서 영패는 눈부신 빛을 발하며 석수혜 앞으로 날아들었다.“아가씨, 잘 봐.”“스스로 일 망치지 말고.”석수혜는 전설 속에서만 전해져 오던 영패를 눈앞에서 유심히 쳐다보며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하다가 갑자기 화들짝 놀란 기색을 띠더니 다리에 힘이 빠진 사람처럼 무릎을 쿵 하고 꿇었다.그녀는 더 이상 침착함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영패가...영패가 진짜였기 때문이다.순간 석수혜의 몸이 한겨울 바람 속의 사시나무처럼 파르르 떨었다.그녀는 하현이 정확히 어떤 신분인지는 모르지만 상대가 집법당의 영패를 들고 있는 한 그의 신분이 말할 수 없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신이 감히 건드릴 만한 성격의 거물이 아니란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만약 그녀가 지금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까딱 잘못하다간 그녀뿐만 아니라 전당 전체가 쑥대밭이 될지도 모른다.“하현, 죄, 죄송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오, 오해했습니다...”“부디 저희에게 사죄의 기회를 주십시오!”석수혜뿐만 아니라 그녀 주변에 있던 여제자들도 하나같이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빌었다.하현은 잠시 그녀들을 실눈으로 바라본 뒤 담담하게 말했다.“당신들은 초범이고 악의적인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았어.”“누군가에게 이용당해 충동적으로 행동했을 뿐이야.”“그러니 나도 더는 문제삼지 않을 거야. 하지만 당신들이 뉘우칠 기회는 줘야지. 후원으로 가서 남선 일행을 돌봐줘. 그들 곁에 24시간 동안 딱 붙어서 시중을 들어야 해. 그런 다음엔 가도 좋아.”“하아!”여제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리둥절해하다가 잠시 후 뭔가 알아차린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현은 그녀들에게 벌이라고 내렸지만 실제로 그들에게 시간과 기회를 주면서 전당 후배와 함께 할 수 있
천정국도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하현, 며칠 전 우리가 당신을 오해했어!”“당신이 오늘 석수혜한테 하는 거 다 봤어!”“내 이 좁은 소갈머리로 군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네!”“당신 같은 인물이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외부의 적과 내통했을 리가 있겠나?”“용문 내외 팔당을 대표해 사과할게. 부디 내일 최선을 다해 임해주길 바라.”하현은 웃으며 말했다.“구양연 부지회장님, 천 장로님. 두 분 이러지 마십시오!”“솔직히 말해서 남선 일행이 독살의 희생양이 된 것은 제 책임입니다. 제가 약속대로 그들을 돌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절 의심하고 경기에 내보내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어요.”“두 분이 아울러야 할 것은 대국이지 제 개인의 체면이 아닙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특수해서 저도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 출전하기로 한 것입니다.”“이번에는 두 분이 저를 믿어주셨으면 합니다.”“결국 우리 모두는 대하 사람입니다. 오로지 대하의 적을 물리치는 데 힘을 합쳐야 합니다!”“뒤에서 발목 잡는 사람만 없다면 인도의 어떤 실력자가 와도 뭉개버릴 수 있습니다!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습니다!”구양연과 천정국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의만을 생각했다.이런 넓은 마음이야말로 큰일을 할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었다.보통 사람들은 절대 섣불리 가질 수 없는 태도였다.보통 실력자들은 교만함이 하늘을 찌른다.그런 사람이 의심을 받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절대로 이렇게 선뜻 나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하현은 오해와 의심을 받았으면서도 자진해서 적을 위해 나선 것이다.이런 마음가짐 자체야말로 그가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그러자 구양연과 천정국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본 후 입을 모아 말했다.“하현, 자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아무도 자네의 발목을 잡을 사람은 없을 거야!”“잠깐!”바로 그때 줄곧 의자에 앉아 있던 조가흔이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조가흔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이 상황에서 져도 상관없어요.”“하지만 만약 우리가 하현을 출전시켰다가 적과 내통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면 그땐 정말로 망하는 거예요!”“그 이후로는 일이 어떻게 될지 저보다 더 잘 아실 거 아니에요?!”구양연과 천정국은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던 손엄명이 입을 열었다.“맞아요. 지금 우리가 질 것 같은 상황이긴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겐 희망이 있어요!”“하지만 하현이 이렇게 큰 혐의를 받고 있고 그 의혹이 점점 더 커지고 있어요.”“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난 그를 믿을 수가 없어요.”“차라리 남은 두 명의 선수가 지는 게 나아요.”“하현이 나서는 걸 원치 않습니다.”“상황을 만회하기는커녕 우리 얼굴에 먹칠을 할 거예요.”“그래서 난 용문이 질지언정 하현이 출전하는 건 반대입니다.”손엄명과 조가흔은 그 어느 때보다 정의롭고 늠름한 사람처럼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런 두 사람을 하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매섭게 쳐다보았다.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외부인이 소란을 피우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그들은 용문 문주의 강력한 후보자 자리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는 걸 원치 않았다.그래서 하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이 두 사람의 노력이 정말 가상하기 짝이 없었다!하현은 손엄명과 조가흔에게 뺨이라도 쳐서 정신을 차리게 하고 싶었다.그때 회의실 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다.뒤이어 담담하면서도 위엄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난 오히려 하현이 싸워도 좋다고 생각하는데요.”하현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렸고 아름다운 여성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10대 최고 가문, 영 씨 집안 공주, 영지루였다.“영지루!”영지루가 나타나자 손엄명과 천정국이 벌떡 일어섰다.분명 그들은 영지루의 정체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늘 고개를 빳빳
”우리가 예라는 성을 가진 사람을 출연시키지 않은 이유는 그의 실력이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사실 외에도 있습니다.”“또 다른 이유는 그에 대한 의혹이 너무 무겁고 짙기 때문입니다!”“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어요.”“그가 잘못을 저지르면 우리 모두가 그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죠.”“당신도 거기서 벗어날 순 없구요!”조가흔은 노파심이 가득 어린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동시에 그녀의 말속엔 뼈가 실려 있었다.무슨 일이 생기면 그 누구도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한 것이다.영지루는 웃으며 부하들에게 문을 닫으라는 손짓을 했다.그리고 나서 조가흔, 손엄명을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여러분, 이미 다 아는 사이니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우선 한 가지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게 있어요.”“당신들이 하현의 출전을 막는 것이 하현과 용 씨 가문, 서북 조 씨 가문 사이의 원한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이 말을 듣고 손엄명과 조가흔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들은 영지루가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두 사람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무, 물론입니다!”“그럼요!”영지루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다면 우리 실리를 따져서 얘기해 보자구요!”“당신들이 하현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으니 내가 설명해 드리죠.”“하현은 남원에 천일그룹이라는 회사를 소유하고 있어요.”“대구에는 대성그룹이 있구요.”“항성과 도성에는 대구 엔터테인먼트가 있어요.”“무성에는 도끼파를 장악했고 국술당을 소유하고 있죠.”“시총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나도 잘 모르니 알아서들 인터넷으로 찾아보세요.”“하현 같은 사람을 인도인이 이천억으로 매수할 수 있겠어요?”“인도인도 정말 옹졸한 족속들이에요. 진심으로 매수를 하려고 했든 아니든 이천억은 너무 인색한 액수예요.”“하현은 여기서 이기면 용문의 강력한 문주 후보가 되는 겁니다.”“훗날 4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