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정국도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하현, 며칠 전 우리가 당신을 오해했어!”“당신이 오늘 석수혜한테 하는 거 다 봤어!”“내 이 좁은 소갈머리로 군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네!”“당신 같은 인물이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외부의 적과 내통했을 리가 있겠나?”“용문 내외 팔당을 대표해 사과할게. 부디 내일 최선을 다해 임해주길 바라.”하현은 웃으며 말했다.“구양연 부지회장님, 천 장로님. 두 분 이러지 마십시오!”“솔직히 말해서 남선 일행이 독살의 희생양이 된 것은 제 책임입니다. 제가 약속대로 그들을 돌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절 의심하고 경기에 내보내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어요.”“두 분이 아울러야 할 것은 대국이지 제 개인의 체면이 아닙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특수해서 저도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 출전하기로 한 것입니다.”“이번에는 두 분이 저를 믿어주셨으면 합니다.”“결국 우리 모두는 대하 사람입니다. 오로지 대하의 적을 물리치는 데 힘을 합쳐야 합니다!”“뒤에서 발목 잡는 사람만 없다면 인도의 어떤 실력자가 와도 뭉개버릴 수 있습니다!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습니다!”구양연과 천정국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의만을 생각했다.이런 넓은 마음이야말로 큰일을 할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었다.보통 사람들은 절대 섣불리 가질 수 없는 태도였다.보통 실력자들은 교만함이 하늘을 찌른다.그런 사람이 의심을 받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절대로 이렇게 선뜻 나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하현은 오해와 의심을 받았으면서도 자진해서 적을 위해 나선 것이다.이런 마음가짐 자체야말로 그가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그러자 구양연과 천정국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본 후 입을 모아 말했다.“하현, 자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아무도 자네의 발목을 잡을 사람은 없을 거야!”“잠깐!”바로 그때 줄곧 의자에 앉아 있던 조가흔이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조가흔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이 상황에서 져도 상관없어요.”“하지만 만약 우리가 하현을 출전시켰다가 적과 내통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면 그땐 정말로 망하는 거예요!”“그 이후로는 일이 어떻게 될지 저보다 더 잘 아실 거 아니에요?!”구양연과 천정국은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던 손엄명이 입을 열었다.“맞아요. 지금 우리가 질 것 같은 상황이긴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겐 희망이 있어요!”“하지만 하현이 이렇게 큰 혐의를 받고 있고 그 의혹이 점점 더 커지고 있어요.”“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난 그를 믿을 수가 없어요.”“차라리 남은 두 명의 선수가 지는 게 나아요.”“하현이 나서는 걸 원치 않습니다.”“상황을 만회하기는커녕 우리 얼굴에 먹칠을 할 거예요.”“그래서 난 용문이 질지언정 하현이 출전하는 건 반대입니다.”손엄명과 조가흔은 그 어느 때보다 정의롭고 늠름한 사람처럼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런 두 사람을 하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매섭게 쳐다보았다.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외부인이 소란을 피우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그들은 용문 문주의 강력한 후보자 자리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는 걸 원치 않았다.그래서 하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이 두 사람의 노력이 정말 가상하기 짝이 없었다!하현은 손엄명과 조가흔에게 뺨이라도 쳐서 정신을 차리게 하고 싶었다.그때 회의실 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다.뒤이어 담담하면서도 위엄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난 오히려 하현이 싸워도 좋다고 생각하는데요.”하현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렸고 아름다운 여성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10대 최고 가문, 영 씨 집안 공주, 영지루였다.“영지루!”영지루가 나타나자 손엄명과 천정국이 벌떡 일어섰다.분명 그들은 영지루의 정체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늘 고개를 빳빳
”우리가 예라는 성을 가진 사람을 출연시키지 않은 이유는 그의 실력이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사실 외에도 있습니다.”“또 다른 이유는 그에 대한 의혹이 너무 무겁고 짙기 때문입니다!”“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어요.”“그가 잘못을 저지르면 우리 모두가 그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죠.”“당신도 거기서 벗어날 순 없구요!”조가흔은 노파심이 가득 어린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동시에 그녀의 말속엔 뼈가 실려 있었다.무슨 일이 생기면 그 누구도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한 것이다.영지루는 웃으며 부하들에게 문을 닫으라는 손짓을 했다.그리고 나서 조가흔, 손엄명을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여러분, 이미 다 아는 사이니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우선 한 가지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게 있어요.”“당신들이 하현의 출전을 막는 것이 하현과 용 씨 가문, 서북 조 씨 가문 사이의 원한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이 말을 듣고 손엄명과 조가흔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들은 영지루가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두 사람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무, 물론입니다!”“그럼요!”영지루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다면 우리 실리를 따져서 얘기해 보자구요!”“당신들이 하현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으니 내가 설명해 드리죠.”“하현은 남원에 천일그룹이라는 회사를 소유하고 있어요.”“대구에는 대성그룹이 있구요.”“항성과 도성에는 대구 엔터테인먼트가 있어요.”“무성에는 도끼파를 장악했고 국술당을 소유하고 있죠.”“시총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나도 잘 모르니 알아서들 인터넷으로 찾아보세요.”“하현 같은 사람을 인도인이 이천억으로 매수할 수 있겠어요?”“인도인도 정말 옹졸한 족속들이에요. 진심으로 매수를 하려고 했든 아니든 이천억은 너무 인색한 액수예요.”“하현은 여기서 이기면 용문의 강력한 문주 후보가 되는 겁니다.”“훗날 4
”민심을 거스를 수도 없다고요?”손엄명이 거듭 반대하자 영지루의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인터넷에서 떠들어대는 사람들만 국민이고 하현은 국민이 아닙니까?”“대하에 대한 충성심은 말할 것도 없고 억울한 누명을 쓴 마당에도 스스로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고 나선 사람이에요!”“이런 사람을 두고 우리가 뭘 걱정한단 말이에요? 주저하는 게 말이 돼요?”“하현이 졌다고 해도 그가 잃는 건 고작해야 자신의 자리일 뿐이에요. 당신들은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죠?”“하현은 먼저 출전시키고 당신들이 그렇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두 사람을 뒤에 배치에 진을 치면 됩니다!”“게다가 하현이 반드시 이길 것이기 때문에 난 그 두 사람도 필요없다고 생각해요!”조가흔이 무거운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영지루, 만약 닷새 전 민심이 들끓지 않았을 때 당신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그건 맞았을 거예요.”“하지만 지금은 온 국민이 들끓고 있어요. 하현이 여기서 나가면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지면 끝장이에요!”“그가 진다면 정말 상상하지도 못할 반란이 일어날지도 몰라요!”“우리도 모두 끝장이고요!”“난 하현의 실력을 믿어요!”영지루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그는 반드시 이 경기에서 승리할 겁니다!”“반드시?!”조가흔이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영지루, 하 씨에 대한 그런 믿음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당신 체면을 봐서, 그리고 용문 체면을 봐서 내가 줄곧 꺼내지 않은 말이 있어요!”“하지만 당신이 이렇게 고집을 부리고 나오니 나도 더 이상 어쩔 수 없어요. 당신 체면을 건드렸다고 원망이나 하지 마세요!”“이 세상에는 ‘반드시’ 그래야 하는 일은 없어요.”“인도의 젊은 실력자들 수준을 당신도 보아서 알 거예요.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실력자들인지 말이에요!”“하현 정도의 실력은 남은 우리 두 선수보다도 못 해요.”“실제로 출전해 보면 아마 인도인들한테 맥도 추지 못할 거예요.”“일이 그렇게 되면 모든
기고만장해하는 조가흔을 보고 하현은 손을 내저으며 무슨 말을 하려던 영지루를 말렸다.이어 무덤덤한 표정으로 조가흔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 희미한 비아냥거림이 담겨 있었다.조가흔은 하현의 표정을 보고 그가 겁을 먹은 줄 알고 냉소를 띠며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하현,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걸 빨리 인정하는 게 어때?”“사람은 자신의 분수를 잘 아는 게 중요해!”“링 위에 올라 경기를 치른다는 건 평소 활개 치던 것과 달라!”“지금까지 당신은 그 대단한 최측근 여자에 의지해 여기저기 쟁쟁한 집안들과 충돌할 수 있었어!”“하지만 링 위에서는 오직 당신 자신의 실력에만 의지해야 해!”“당신의 실력이 별 볼 일 없다는 걸 알아야지.”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조가흔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용문대회 규칙에 따르면 내가 도 대회 우승자이니까 난 출전할 수 있는 거야.”“예로부터 무술 시합에서는 항상 승패가 있지. 그건 당연한 거야.”“조 대표한테 한 가지만 묻고 싶어.”“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함부로 나한테 뭘 묻는다는 거야?”조가흔은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이 개자식! 아직도 감히 고집을 부리고 있어!”“당신 같은 이름 없는 용문 나부랭이가 무슨 자격으로 인도 실력자들을 뭉개버린단 말이야?”“지금까지 상대를 무찌른 게 당신 실력 때문인 줄 알아?”“내 말 잘 들어. 당신이 나의 공격을 막는다면 내가 인정하지.”“딱 한 번만 막는다고 해도 당신 실력을 인정할게!”“그런데 조심해. 나한테 맞아서 죽을 수도 있거든!”“감히 덤빌 수 있겠어? 흥! 그럴 용기도 없거든 당장 꺼져!”하현은 이 말을 듣고 하마터면 웃다가 넘어질 뻔했다.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조 대표,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할 필요없어.”“당신이 내 공격을 받아친다면 내가 알아서 꺼질게. 당신이 받아치지 못한다면 당신이 당장 꺼져 줘야겠어!”“하하하하! 뭐? 당신이 날 받아쳐?”조가흔이 냉소
”퍽!”“우리 손엄명 부문주는 내 실력이 형편없다고 감히 말도 하지 못하는데 외부인 따위가 감히 입을 놀리다니! 여기 어르신들은 죽었다고 생각하는 거야?”“퍽!”“내 실력도 모르면서 감히 무맹 서남 대표를 자처해? 당신 같은 사람이 무맹의 체면을 깎는 거야!”“퍽!”“이제 내 손맛을 봤으니 무릎 꿇어야 하는 거 아니야?!”하현은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조가흔을 야단치면서 손바닥을 마구 휘갈겨 그녀의 얼굴을 때렸다.조가흔은 코와 얼굴이 부풀어 오르고 정신이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퍽!”하현은 마지막으로 손바닥을 조가흔의 얼굴에 휘갈긴 뒤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앞으로 명심해. 사람은 겸손해야 해.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또 누군가가 당신한테 참된 가르침을 내릴지도 몰라.”말을 하면서 하현은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닦으며 손엄명을 향해 희미한 미소를 보냈다.“부문주님,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용문을 욕하는 사람을 손 좀 봐줬습니다. 괜찮으십니까?”“하현, 당신 너무 건방진 거 아니야?”손엄명이 마침내 책상을 치며 버럭 화를 냈다.“무맹 서남 대표를 감히 때리다니! 당신 하늘이 무섭지도 않아?!”“당신한테는 법도 뭣도 없어?”“무슨 뒷배라도 있는 거야?”하현이 가벼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부문주님, 연세가 많지 않으신데 귀가 안 좋으십니까?”“자신의 공격을 받아쳐 보라는 조가흔의 말 못 들었습니까? 내가 그녀를 받아치면 내 실력을 인정해 출전을 허가해 준다는 말 못 들었냐고요?”“난 쌍방이 약속한 걸 이행했을 뿐이에요.”“뭐가 잘못됐습니까?”“설마 부문주님은 지금 와서 조가흔과 나와의 약속이 무효라고 주장할 생각입니까?”“그렇다면 부문주님도 직접 날 시험해 보세요.”“내가 출전할 자격이 있는지 확인해 보시겠습니까?”손엄명은 순간 눈꺼풀이 펄쩍 뛰며 황급히 내뱉었다.“당신이 출전하려거든 해!”“당신과 무맹 사이의 원한은 우리 용문과는
이미 나흘이 지났다.장소는 변함이 없었고 경기 규칙도 변하지 않았으며 사회자도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유일하게 바뀐 점은 양측의 사기가 하늘과 땅 차이가 된 것이다.몇 명 되지 않았던 인도 측 쉼터 뒤편에는 어느새 수천 명이 더 들어서 있었다.모두 인도 쪽에서 응원하러 달려온 사람들이었다.인도인이 나흘 동안 연승을 거둔 덕분에 인도인들의 패기는 하늘을 찔렀고 모두 대하를 발밑에 짓밟아 버리겠다고 아우성이었다.대하 쪽에서는 용문 일부 고위층, 무성의 일부 거물들이 와 있었고 그보다 훨씬 많은 기자와 군중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손엄명, 조가흔, 구양연, 천정국, 영지루, 만진해, 만천우와 만천구 등도 와 있었다.하현의 눈길을 가장 강하게 모은 사람은 장내에 앉아 있는 세 남자였다.서북 조 씨 가문 조한철.용 씨 가문 용천두.김 씨 가문 김준걸.이 세 사람은 무성, 더 나아가서는 서남 지역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고 불렸다.세 사람이 함께 나타나는 장면은 보기 드물어서 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이는 용천두의 표정과는 달리 김준걸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서북 조 씨 가문 조한철은 더욱 오만한 표정으로 일관했다.하현이 쉼터로 들어오는 것을 본 조한철은 바로 달려와 직접 하현과 악수를 나누며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하현, 용문의 영광, 대하의 영광은 당신한테 달렸어.”“나라를 빛내주길 바라.”“당신도 널리 이름을 알리고 말이야!”여기까지 말한 조한철은 천천히 하현에게 다가와 단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매섭게 내뱉었다.“어젯밤 내 사촌 누나 조가흔의 얼굴을 때렸다고? 우리 조 씨 가문이 화가 단단히 났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꼭 이겨. 이겨야 해.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절대 국술당으로 올 수 없어. 명심해.”하현은 웃음 속에 칼을 품고 있는 조한철을 담담하게 쳐다보며 말했다.“조한철, 당신이 날 죽이고 싶어 하는 마음은
하현에게 있어 그와 서북 조 씨 가문 사이의 갈등은 이미 화해할 수 없는 강을 건넌 것이었다.조한철이 이런 때에 감히 시비를 걸었으니 체면을 구기는 일이 어떤 것인지 그에게 따끔하게 일깨워 주는 것쯤 하현에게는 아무렇지도 않은 일이었다.차가운 기운이 가득 서린 하현의 얼굴을 보고 조한철은 정신이 멍해졌고 화가 났지만 원망스러운 눈빛만 보낼 뿐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돌아섰다.그는 그 자리에서 더 이상 하현을 건드리지 못했다.아무리 오만방자한 조한철이라도, 서북 조 씨 가문이 아무리 권력이 상당하다고 해도 지금 이 순간 그는 자신의 감정을 억누를 수밖에 없었다!하현의 손바닥 몇 방이 대하 사람들을 조용하게 만들었다.그들이 겁을 먹어서 그랬는지 충격을 받아서 그랬는지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하현이 나타나기 전에는 누구도 이런 행동을 하지 못했다.그러나 하현을 바라보는 용천두와 김준걸의 눈빛엔 끓어오른 분노가 극에 달했다.하현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진주희가 따라준 차를 마시며 한숨을 돌리며 인도인 진영으로 시선을 돌렸다.브라흐마 로샨의 시선이 줄곧 하현에게 와 있었다.그러나 정작 그와 시선이 마주치자 그녀는 당황한 듯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브라흐마 파만, 샤르마 카비 등은 모두 험악한 얼굴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오늘 첫 번째 경기 시작하겠습니다!”사회자도 오늘 경기에 모든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체하지 않고 경기 시작을 알렸다.“용문 쪽에서는 무성 대회 우승자 하현!”“인도 쪽에서는 3대 실력자 중 한 명인 다타 구쉬!”사회자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하현과 다타 구쉬가 거의 동시에 나와 천천히 링 위로 올라갔다.하현은 흔들림 없는 얼굴로 등장했다.머릿속엔 지금까지 수집한 다타 구쉬에 대한 정보들로 가득 찼다.다타 구쉬는 인도 천수사에서 온 실력자로 표창 같은 무기로 상대를 제압하는 암살법의 고수였다.실력도 재주도 이전에 나온 인도인들보다 월등히 뛰어났다.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
다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버티면서도 조 행장의 표정을 보고 사과하지 않으면 상황이 곤란해진다는 걸 알게 되었다.“미안해.”“미안하다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날 조롱하고 모욕했으며 내 아내를 불러서 내 체면을 뭉개버리려고 했지.”“지금 와서 마지못해 사과하면 모든 것이 다 없던 일로 될 거라고 생각하는 거야?”“정말로 사과 한마디로 해결될 것 같냐고?”김나나는 눈썹을 잔뜩 찌푸리며 차갑게 내뱉었다.“하현! 설령 이 돈이 당신 계좌에 있다고 해도 결국 빌린 돈일 뿐이잖아!”“돈을 빌린 것뿐이야! 결국 갚아야 되는 돈이라고! 알기나 해!”“자기가 정말로 뭐 거물이라도 된 줄 아는 모양이지?!”“적당히 해! 한 치 앞도 내다보지 못하고 날뛰는 꼴이라니!”설은아는 잠시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됐어. 이건 오해였어.”“나나는 김 씨 가문 사람이니까 화해한 걸로 치고 좋게 생각해.”“김 씨 가문 사람?”하현은 헛웃음을 지었다.“김 씨 가문이든, 간 씨 가문이든 내 앞에서 함부로 행동할 자격은 없어!”그는 말을 하면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조 행장님. 제가 기회를 드렸는데도 당신들은 잘못을 진심으로 인정하지 않는군요.”“그렇다면 다시 한번 선택의 기회를 드리죠.”“지금 이 자리 당신이 꺼지든지, 아니면 저 여자가 꺼지든지.”“결정하시죠!”김나나는 죽일 듯이 하현을 노려보았다.“당신 뭐 잘못 먹었어?”“정말 당신이 뭐 대단한 거물이라도 된 줄 알아?”“내가 꺼지든지, 아니면 행장님이 꺼지든지 하라고?!”“허! 드라마는 아주 많이 본 모양이지! 어디서 갑질 회장님 흉내를 내려고 해?!”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천일그룹을 이용해 이들을 밀어붙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전화 한 통으로 끝날 일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조 행장은 천일그룹을 경외시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마냥 두려운 대상은 아니었다.어쨌든 천일그
”뭐라구요?”김나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안색이 말할 수 없이 일그러졌다.“행장님, 뭔가 잘못 알고 계신 거 아니에요?”“우리가 알고 있는 그 천일그룹이 하현한테 이천억을 보냈다구요?”“그럴 리가요?”“말도 안 돼요!”조 행장은 싸늘해진 얼굴빛으로 차갑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 사람은 당당한 풍채에 실력까지 갖춘 사람으로 보입니다. 그러니 천일그룹 회장님도 믿고 돈을 보낸 거겠죠!”“하 세자가 하현에게 이천억을 빌려준 건 절차상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말도 안 돼요!”김나나가 버럭 화를 냈다.“데릴사위이자 여자한테 빌붙어 벌어먹는 놈이 어떻게 천일그룹 하 세자와 인연이 있겠어요?”“아니에요! 절대 아니에요!”김나나는 하현이 블랙골드 카드의 소유자에 그렇게 많은 돈을 가진 사람이라는 사실을 절대 받아들일 수가 없었다.“조 행장님, 다시 한번 전화해서 분명하게 물어보세요. 뭔가 착오가 있을 거예요!”설은아는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신분이 상당하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자신에게 여전히 뭔가 숨기는 게 있는 것 같았다.게다가 하현이 이천억을 준비했다니!설은아는 자신을 향한 그의 마음을 알게 되었다.“김나나, 하현과 천일그룹의 하 세자는 몇 번 만난 적이 있어.”“게다가 하 세자를 도와주었으니 그가 이 사람한테 돈을 빌려주는 건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야.”“됐어! 설은아, 이 쓰레기 같은 남자 두둔하려고 애쓰지 마. 하현이 무슨 속셈으로 이러는지 모르겠어?”김나나는 아예 믿으려 하지 않았다.“하 세자가 누구야? 강남에서 손꼽히는 거물인데 그가 못할 일이 뭐 있겠어?”“하현같이 쓸데없는 인물이 하 세자한테 무슨 도움이 되겠어? 무슨 애들 장난도 아니고!”말을 마치자마자 김나나는 진지하고 엄정한 얼굴로 조 행장을 쳐다보았다.“행장님, 다시 한번만 더 확인해 보세요.”“정말 이 쓰레기 같은 남자가 이천억을 받은 게 맞다면 우리가 모든 책임을 떠안을게요!”
김나나는 하현이 가지고 있던 블랙골드 카드의 발행연도가 몇 년 전일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설마 데릴사위가 신분을 숨긴 거물인 건가?그러자 김나나는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벌벌 떨다가 이내 정신을 다잡았다.대단한 거물이 뭐 하러 남의 집 데릴사위를 해?말도 안 되지!김나나는 실상을 다 알고 있다는 듯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알겠어. 분명 몇 년 전에 어디서 돈을 훔친 거야. 틀림없어!”“사건이 탄로 날까 봐 몇 년 동안 쓰지도 못하고 감춰둔 거고.”“이제 모든 것이 잠잠해지자 움직일 준비를 한 거지!”“정말 음흉하고 간교한 놈이야!”김나나는 비아냥거리는 태도로 일관하며 말을 이었다.“그런데 왜 이렇게 어리석었을까?”“블랙골드 카드에서 돈을 출금하게 되면 은행은 그 돈의 출처를 조회한다는 사실은 몰랐던 모양이지?”“당신이 그 돈을 함부로 썼다가는 아주 끝장나는 거야!”“이 정도면 감옥에 처넣기 충분해!”설은아는 무심결에 하현에게 시선을 휙 돌렸다.“하현, 이게 도대체...”하현은 설은아를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며칠 전 밥을 먹다가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 자금난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어. 그래서 부랴부랴 돈을 좀 준비해 두라고 했어. 오늘 그 돈이 잘 입금되었는지 확인하러 온 거야.”“이 안에 이천억이 들어 있으니 당신이 겪고 있는 자금난은 충분히 해결할 수 있을 거야.”하현은 이 일을 설은아에게 선뜻 말하기 어려워 일부러 잠자코 있었던 것이다.기회를 봐서 말하려고 했는데 결국 이런 자리에서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게 되었다.“은아의 자금난을 해결해?”“이천억을 단번에 준비했다고?”김나나는 코웃음을 쳤다.“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이천억을 어떻게 마련할 수 있어? 지금 드라마 찍는 줄 알아?”“당신 바보야? 아님 우리를 바보로 아는 거야?”이때 조 행장은 충격에 휩싸인 얼굴로 말했다.“어제 이천억이 우리 은행에서 발행된 블랙골드 카드에 입금된 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