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수혜는 이를 부드득 갈았다.그녀는 하현의 손에 용문 집법당 영패가 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가짜라고?”하현은 어이가 없어서 껄껄 웃었다.순간 그의 손에 있던 찻잔이 영패 위로 떨어지면서 영패는 눈부신 빛을 발하며 석수혜 앞으로 날아들었다.“아가씨, 잘 봐.”“스스로 일 망치지 말고.”석수혜는 전설 속에서만 전해져 오던 영패를 눈앞에서 유심히 쳐다보며 이리저리 고개를 갸웃하다가 갑자기 화들짝 놀란 기색을 띠더니 다리에 힘이 빠진 사람처럼 무릎을 쿵 하고 꿇었다.그녀는 더 이상 침착함을 유지할 수가 없었다.영패가...영패가 진짜였기 때문이다.순간 석수혜의 몸이 한겨울 바람 속의 사시나무처럼 파르르 떨었다.그녀는 하현이 정확히 어떤 신분인지는 모르지만 상대가 집법당의 영패를 들고 있는 한 그의 신분이 말할 수 없이 높다는 것을 의미하며 자신이 감히 건드릴 만한 성격의 거물이 아니란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만약 그녀가 지금 무릎을 꿇지 않는다면 까딱 잘못하다간 그녀뿐만 아니라 전당 전체가 쑥대밭이 될지도 모른다.“하현, 죄, 죄송합니다. 지금까지 제가 오, 오해했습니다...”“부디 저희에게 사죄의 기회를 주십시오!”석수혜뿐만 아니라 그녀 주변에 있던 여제자들도 하나같이 얼빠진 얼굴로 고개를 숙이며 용서를 빌었다.하현은 잠시 그녀들을 실눈으로 바라본 뒤 담담하게 말했다.“당신들은 초범이고 악의적인 마음을 품고 있지는 않았어.”“누군가에게 이용당해 충동적으로 행동했을 뿐이야.”“그러니 나도 더는 문제삼지 않을 거야. 하지만 당신들이 뉘우칠 기회는 줘야지. 후원으로 가서 남선 일행을 돌봐줘. 그들 곁에 24시간 동안 딱 붙어서 시중을 들어야 해. 그런 다음엔 가도 좋아.”“하아!”여제자들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어리둥절해하다가 잠시 후 뭔가 알아차린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현은 그녀들에게 벌이라고 내렸지만 실제로 그들에게 시간과 기회를 주면서 전당 후배와 함께 할 수 있
천정국도 연거푸 고개를 끄덕였다.“하현, 며칠 전 우리가 당신을 오해했어!”“당신이 오늘 석수혜한테 하는 거 다 봤어!”“내 이 좁은 소갈머리로 군자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네!”“당신 같은 인물이 조그마한 이익을 위해 외부의 적과 내통했을 리가 있겠나?”“용문 내외 팔당을 대표해 사과할게. 부디 내일 최선을 다해 임해주길 바라.”하현은 웃으며 말했다.“구양연 부지회장님, 천 장로님. 두 분 이러지 마십시오!”“솔직히 말해서 남선 일행이 독살의 희생양이 된 것은 제 책임입니다. 제가 약속대로 그들을 돌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절 의심하고 경기에 내보내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이었어요.”“두 분이 아울러야 할 것은 대국이지 제 개인의 체면이 아닙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특수해서 저도 더 이상 물러서지 않고 출전하기로 한 것입니다.”“이번에는 두 분이 저를 믿어주셨으면 합니다.”“결국 우리 모두는 대하 사람입니다. 오로지 대하의 적을 물리치는 데 힘을 합쳐야 합니다!”“뒤에서 발목 잡는 사람만 없다면 인도의 어떤 실력자가 와도 뭉개버릴 수 있습니다!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습니다!”구양연과 천정국은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대의만을 생각했다.이런 넓은 마음이야말로 큰일을 할 사람이 가져야 할 마음가짐이었다.보통 사람들은 절대 섣불리 가질 수 없는 태도였다.보통 실력자들은 교만함이 하늘을 찌른다.그런 사람이 의심을 받고 억울한 일을 당했다면 절대로 이렇게 선뜻 나서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그러나 하현은 오해와 의심을 받았으면서도 자진해서 적을 위해 나선 것이다.이런 마음가짐 자체야말로 그가 보통 사람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존재임을 여실히 보여주었다.그러자 구양연과 천정국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본 후 입을 모아 말했다.“하현, 자네 하고 싶은 대로 하게. 아무도 자네의 발목을 잡을 사람은 없을 거야!”“잠깐!”바로 그때 줄곧 의자에 앉아 있던 조가흔이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내려놓았다
조가흔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이 상황에서 져도 상관없어요.”“하지만 만약 우리가 하현을 출전시켰다가 적과 내통했다는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면 그땐 정말로 망하는 거예요!”“그 이후로는 일이 어떻게 될지 저보다 더 잘 아실 거 아니에요?!”구양연과 천정국은 얼굴이 새까맣게 타들어갔다.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던 손엄명이 입을 열었다.“맞아요. 지금 우리가 질 것 같은 상황이긴 하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우리에겐 희망이 있어요!”“하지만 하현이 이렇게 큰 혐의를 받고 있고 그 의혹이 점점 더 커지고 있어요.”“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난 그를 믿을 수가 없어요.”“차라리 남은 두 명의 선수가 지는 게 나아요.”“하현이 나서는 걸 원치 않습니다.”“상황을 만회하기는커녕 우리 얼굴에 먹칠을 할 거예요.”“그래서 난 용문이 질지언정 하현이 출전하는 건 반대입니다.”손엄명과 조가흔은 그 어느 때보다 정의롭고 늠름한 사람처럼 굳은 얼굴을 하고 있었고 그런 두 사람을 하현이 차가운 눈빛으로 매섭게 쳐다보았다.그들은 오직 자신들의 명성을 유지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외부인이 소란을 피우는 걸 원치 않기 때문이다.그들은 용문 문주의 강력한 후보자 자리가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는 걸 원치 않았다.그래서 하현이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이 두 사람의 노력이 정말 가상하기 짝이 없었다!하현은 손엄명과 조가흔에게 뺨이라도 쳐서 정신을 차리게 하고 싶었다.그때 회의실 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렸다.뒤이어 담담하면서도 위엄 서린 목소리가 들려왔다.“난 오히려 하현이 싸워도 좋다고 생각하는데요.”하현은 무의식적으로 몸을 돌렸고 아름다운 여성의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10대 최고 가문, 영 씨 집안 공주, 영지루였다.“영지루!”영지루가 나타나자 손엄명과 천정국이 벌떡 일어섰다.분명 그들은 영지루의 정체를 잘 알고 있는 듯했다.늘 고개를 빳빳
”우리가 예라는 성을 가진 사람을 출연시키지 않은 이유는 그의 실력이 충분히 강하지 않다는 사실 외에도 있습니다.”“또 다른 이유는 그에 대한 의혹이 너무 무겁고 짙기 때문입니다!”“그런 위험을 감수할 수는 없어요.”“그가 잘못을 저지르면 우리 모두가 그의 행동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이죠.”“당신도 거기서 벗어날 순 없구요!”조가흔은 노파심이 가득 어린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동시에 그녀의 말속엔 뼈가 실려 있었다.무슨 일이 생기면 그 누구도 이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말한 것이다.영지루는 웃으며 부하들에게 문을 닫으라는 손짓을 했다.그리고 나서 조가흔, 손엄명을 쳐다보며 단호하게 말했다.“여러분, 이미 다 아는 사이니 숨기지 않고 솔직하게 말씀드리겠습니다!”“우선 한 가지 확실하게 하고 싶은 게 있어요.”“당신들이 하현의 출전을 막는 것이 하현과 용 씨 가문, 서북 조 씨 가문 사이의 원한과 무관하다고 말할 수 있어요?”이 말을 듣고 손엄명과 조가흔의 표정이 굳어졌다.그들은 영지루가 사람들 앞에서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다.두 사람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무, 물론입니다!”“그럼요!”영지루는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렇다면 우리 실리를 따져서 얘기해 보자구요!”“당신들이 하현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으니 내가 설명해 드리죠.”“하현은 남원에 천일그룹이라는 회사를 소유하고 있어요.”“대구에는 대성그룹이 있구요.”“항성과 도성에는 대구 엔터테인먼트가 있어요.”“무성에는 도끼파를 장악했고 국술당을 소유하고 있죠.”“시총이 정확히 얼마인지는 나도 잘 모르니 알아서들 인터넷으로 찾아보세요.”“하현 같은 사람을 인도인이 이천억으로 매수할 수 있겠어요?”“인도인도 정말 옹졸한 족속들이에요. 진심으로 매수를 하려고 했든 아니든 이천억은 너무 인색한 액수예요.”“하현은 여기서 이기면 용문의 강력한 문주 후보가 되는 겁니다.”“훗날 4
”민심을 거스를 수도 없다고요?”손엄명이 거듭 반대하자 영지루의 눈에 차가운 빛이 스쳐 지나갔다.“인터넷에서 떠들어대는 사람들만 국민이고 하현은 국민이 아닙니까?”“대하에 대한 충성심은 말할 것도 없고 억울한 누명을 쓴 마당에도 스스로 나라를 위해 싸우겠다고 나선 사람이에요!”“이런 사람을 두고 우리가 뭘 걱정한단 말이에요? 주저하는 게 말이 돼요?”“하현이 졌다고 해도 그가 잃는 건 고작해야 자신의 자리일 뿐이에요. 당신들은 뭐가 그렇게 두려운 거죠?”“하현은 먼저 출전시키고 당신들이 그렇게 큰 기대를 걸고 있는 두 사람을 뒤에 배치에 진을 치면 됩니다!”“게다가 하현이 반드시 이길 것이기 때문에 난 그 두 사람도 필요없다고 생각해요!”조가흔이 무거운 얼굴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영지루, 만약 닷새 전 민심이 들끓지 않았을 때 당신이 이런 말을 했다면 그건 맞았을 거예요.”“하지만 지금은 온 국민이 들끓고 있어요. 하현이 여기서 나가면 반드시 이겨야 합니다. 지면 끝장이에요!”“그가 진다면 정말 상상하지도 못할 반란이 일어날지도 몰라요!”“우리도 모두 끝장이고요!”“난 하현의 실력을 믿어요!”영지루는 단호한 얼굴로 말했다.“그는 반드시 이 경기에서 승리할 겁니다!”“반드시?!”조가흔이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영지루, 하 씨에 대한 그런 믿음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거예요?”“당신 체면을 봐서, 그리고 용문 체면을 봐서 내가 줄곧 꺼내지 않은 말이 있어요!”“하지만 당신이 이렇게 고집을 부리고 나오니 나도 더 이상 어쩔 수 없어요. 당신 체면을 건드렸다고 원망이나 하지 마세요!”“이 세상에는 ‘반드시’ 그래야 하는 일은 없어요.”“인도의 젊은 실력자들 수준을 당신도 보아서 알 거예요. 그들이 얼마나 대단한 실력자들인지 말이에요!”“하현 정도의 실력은 남은 우리 두 선수보다도 못 해요.”“실제로 출전해 보면 아마 인도인들한테 맥도 추지 못할 거예요.”“일이 그렇게 되면 모든
기고만장해하는 조가흔을 보고 하현은 손을 내저으며 무슨 말을 하려던 영지루를 말렸다.이어 무덤덤한 표정으로 조가흔을 바라보는 그의 눈동자에 희미한 비아냥거림이 담겨 있었다.조가흔은 하현의 표정을 보고 그가 겁을 먹은 줄 알고 냉소를 띠며 한 걸음 앞으로 나갔다.“하현, 자신이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걸 빨리 인정하는 게 어때?”“사람은 자신의 분수를 잘 아는 게 중요해!”“링 위에 올라 경기를 치른다는 건 평소 활개 치던 것과 달라!”“지금까지 당신은 그 대단한 최측근 여자에 의지해 여기저기 쟁쟁한 집안들과 충돌할 수 있었어!”“하지만 링 위에서는 오직 당신 자신의 실력에만 의지해야 해!”“당신의 실력이 별 볼 일 없다는 걸 알아야지.”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조가흔을 바라보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용문대회 규칙에 따르면 내가 도 대회 우승자이니까 난 출전할 수 있는 거야.”“예로부터 무술 시합에서는 항상 승패가 있지. 그건 당연한 거야.”“조 대표한테 한 가지만 묻고 싶어.”“당신이 무슨 자격으로 함부로 나한테 뭘 묻는다는 거야?”조가흔은 양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말했다.“이 개자식! 아직도 감히 고집을 부리고 있어!”“당신 같은 이름 없는 용문 나부랭이가 무슨 자격으로 인도 실력자들을 뭉개버린단 말이야?”“지금까지 상대를 무찌른 게 당신 실력 때문인 줄 알아?”“내 말 잘 들어. 당신이 나의 공격을 막는다면 내가 인정하지.”“딱 한 번만 막는다고 해도 당신 실력을 인정할게!”“그런데 조심해. 나한테 맞아서 죽을 수도 있거든!”“감히 덤빌 수 있겠어? 흥! 그럴 용기도 없거든 당장 꺼져!”하현은 이 말을 듣고 하마터면 웃다가 넘어질 뻔했다.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조 대표, 이렇게까지 번거롭게 할 필요없어.”“당신이 내 공격을 받아친다면 내가 알아서 꺼질게. 당신이 받아치지 못한다면 당신이 당장 꺼져 줘야겠어!”“하하하하! 뭐? 당신이 날 받아쳐?”조가흔이 냉소
”퍽!”“우리 손엄명 부문주는 내 실력이 형편없다고 감히 말도 하지 못하는데 외부인 따위가 감히 입을 놀리다니! 여기 어르신들은 죽었다고 생각하는 거야?”“퍽!”“내 실력도 모르면서 감히 무맹 서남 대표를 자처해? 당신 같은 사람이 무맹의 체면을 깎는 거야!”“퍽!”“이제 내 손맛을 봤으니 무릎 꿇어야 하는 거 아니야?!”하현은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조가흔을 야단치면서 손바닥을 마구 휘갈겨 그녀의 얼굴을 때렸다.조가흔은 코와 얼굴이 부풀어 오르고 정신이 없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퍽!”하현은 마지막으로 손바닥을 조가흔의 얼굴에 휘갈긴 뒤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앞으로 명심해. 사람은 겸손해야 해. 자기 자신을 잘 알아야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또 누군가가 당신한테 참된 가르침을 내릴지도 몰라.”말을 하면서 하현은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닦으며 손엄명을 향해 희미한 미소를 보냈다.“부문주님, 죄송합니다. 제가 감히 용문을 욕하는 사람을 손 좀 봐줬습니다. 괜찮으십니까?”“하현, 당신 너무 건방진 거 아니야?”손엄명이 마침내 책상을 치며 버럭 화를 냈다.“무맹 서남 대표를 감히 때리다니! 당신 하늘이 무섭지도 않아?!”“당신한테는 법도 뭣도 없어?”“무슨 뒷배라도 있는 거야?”하현이 가벼운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부문주님, 연세가 많지 않으신데 귀가 안 좋으십니까?”“자신의 공격을 받아쳐 보라는 조가흔의 말 못 들었습니까? 내가 그녀를 받아치면 내 실력을 인정해 출전을 허가해 준다는 말 못 들었냐고요?”“난 쌍방이 약속한 걸 이행했을 뿐이에요.”“뭐가 잘못됐습니까?”“설마 부문주님은 지금 와서 조가흔과 나와의 약속이 무효라고 주장할 생각입니까?”“그렇다면 부문주님도 직접 날 시험해 보세요.”“내가 출전할 자격이 있는지 확인해 보시겠습니까?”손엄명은 순간 눈꺼풀이 펄쩍 뛰며 황급히 내뱉었다.“당신이 출전하려거든 해!”“당신과 무맹 사이의 원한은 우리 용문과는
이미 나흘이 지났다.장소는 변함이 없었고 경기 규칙도 변하지 않았으며 사회자도 여전히 바뀌지 않았다.유일하게 바뀐 점은 양측의 사기가 하늘과 땅 차이가 된 것이다.몇 명 되지 않았던 인도 측 쉼터 뒤편에는 어느새 수천 명이 더 들어서 있었다.모두 인도 쪽에서 응원하러 달려온 사람들이었다.인도인이 나흘 동안 연승을 거둔 덕분에 인도인들의 패기는 하늘을 찔렀고 모두 대하를 발밑에 짓밟아 버리겠다고 아우성이었다.대하 쪽에서는 용문 일부 고위층, 무성의 일부 거물들이 와 있었고 그보다 훨씬 많은 기자와 군중들이 자리를 메우고 있었다.손엄명, 조가흔, 구양연, 천정국, 영지루, 만진해, 만천우와 만천구 등도 와 있었다.하현의 눈길을 가장 강하게 모은 사람은 장내에 앉아 있는 세 남자였다.서북 조 씨 가문 조한철.용 씨 가문 용천두.김 씨 가문 김준걸.이 세 사람은 무성, 더 나아가서는 서남 지역에서 가장 신분이 높은 사람이라고 불렸다.세 사람이 함께 나타나는 장면은 보기 드물어서 보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얼굴 가득 미소를 띠며 고개를 끄덕이는 용천두의 표정과는 달리 김준걸의 눈빛은 차갑기만 했다.서북 조 씨 가문 조한철은 더욱 오만한 표정으로 일관했다.하현이 쉼터로 들어오는 것을 본 조한철은 바로 달려와 직접 하현과 악수를 나누며 알 듯 모를 듯한 미소를 지었다.“하현, 용문의 영광, 대하의 영광은 당신한테 달렸어.”“나라를 빛내주길 바라.”“당신도 널리 이름을 알리고 말이야!”여기까지 말한 조한철은 천천히 하현에게 다가와 단둘만 들을 수 있는 목소리로 매섭게 내뱉었다.“어젯밤 내 사촌 누나 조가흔의 얼굴을 때렸다고? 우리 조 씨 가문이 화가 단단히 났어.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꼭 이겨. 이겨야 해. 그렇지 않으면 당신은 절대 국술당으로 올 수 없어. 명심해.”하현은 웃음 속에 칼을 품고 있는 조한철을 담담하게 쳐다보며 말했다.“조한철, 당신이 날 죽이고 싶어 하는 마음은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