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영아! 내가 진작부터 신신당부하지 않았어?!”“학생들의 세 끼 식사에 영양 첨가물 추가하고 운동을 마친 후에도 건강 기능 식품을 많이 먹여야 한다고 하지 않았냐고?!”“그래야 우리가 계속 무탈하게 돈을 끌어모을 수 있다고!”“그런데 왜 이런 일이 생긴 거야?”용천오는 눈에서 폭풍우가 몰아치는 듯 포효하며 길길이 날뛰었다.불량한 교습 매뉴얼과 이를 보충해 줄 영양 보조제가 서로 한 몸처럼 엮여 있었던 것이다.이렇게 해야 학생들이 빠르게 강해질 수 있도록 할 수 있었고 그렇게 함으로써 용천오는 더 많은 돈을 벌어들일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자신의 이런 완벽한 계획에 어떻게 문제가 생길 수 있단 말인가?“설마 영양 첨가제가 잘못되었나? 아냐, 아냐. 그건 절대 불가능해. 절대로 불가능한 일이라고!”“이건 우리의 생명선이나 마찬가지야. 그래서 공장 생산 라인도 매우 엄격하게 관리하고 있다고.”“그런데 하 씨 그놈이 끼어들어 일을 망쳐놓고 이젠 사람을 구하는 구세주 노릇까지 하고 있다고? 우리는 이제 학생들을 가르칠 수도 없게 만들어 놓고? 헛!”“분명 우릴 노리고 온 거야.”“이번 일은 학생들이 쓰러지고 혼수상태에 빠져서 일어난 일이야.”“하지만 우리 무학당에서 차려주는 아침 식사는 절대로 문제 될 게 없어!”“게다가 중독성 약물까지 넣어서 그 학생들은 하루라도 먹지 않으면 몸살이 나게 되어 있어.”“건강식품도 마찬가지야.”“그런데 어떻게 문제가 생길 수 있단 말이야?!”용천오는 안색이 급변했다가 결국 심호흡을 하며 겨우 숨을 가라앉혔다.“알았어. 우리 식사에 문제가 있는 게 아니었어!”“하현 그놈이 사람을 매수해서 아침 식사 재료를 바꾼 게 틀림없어!”“우리 학생들이 만약 아침을 먹지 않고 건강 기능 식품도 보충하지 않은 채 아침 일찍부터 강도 높은 훈련을 받았다면 자연히 의식을 잃게 돼!”“그러면 모든 것이 우리 무학당의 문제인 것처럼 보이지!”“이 자식이 대체 어디서 알게 된 거지?
”용천오, 큰일 났습니다!”마영아가 어디론가 전화를 걸려고 하던 순간이었다.이번에는 마하성이 약간 흥분된 얼굴빛으로 뛰어들어왔다.“뉴스! 뉴스를 보세요!”용천오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TV를 켜고 뉴스채널로 돌렸다.그러자 순식간에 용천오의 얼굴이 새까맣게 변했다.화면에는 마스크를 쓴 수백 명의 남자가 줄지어 나타났다.이들은 손에 회칼, 쇠파이프, 각목 등을 들고 학생들과 가족들을 기세등등한 얼굴로 위협하고 있었다.그리고 국술당에 불을 지르겠다고 큰소리쳤다.더욱 경악할 사실은 이 사람들이 모두 무성 상맹 로고가 박힌 옷을 입고 있다는 것이었다.그들은 흉악한 얼굴에 난폭한 눈동자로 입만 열면 우리 용천오, 우리 용천오하고 노래를 불렀다.사람들을 보면 우선은 발로 차고 손에 닥치는 대로 물건을 부수었다.방금 인테리어를 마친 국술당의 내부는 순식간에 엉망이 되었다.다만 이 사람들도 국술당을 완전히 초토화시키지는 않았다.아마도 그들의 목적은 소란을 일으켜 사람들의 시선을 주목시키기 위함인 것 같았다.갑작스러운 소란에 주변은 무법천지로 변했다!그들은 거칠 것 없이 마구 물건을 던지며 소리쳤다.학생들의 생명을 개미 목숨 다루듯 아랑곳하지 않았다.어찌할 바를 모르며 발을 동동 구르던 남궁나연이 그들의 발길질에 피를 한 모금 뿜자 가족들은 더 이상 참지 못했다.그들은 모두 나무 의자를 들고 마스크를 한 남자들을 향해 던졌고 동시에 무성 상맹의 파렴치한들은 얼른 물러가라고 외쳤다.많은 사람들은 평생 무성 상맹에서 운영하는 쇼핑몰에는 절대 가지 않겠다고 이를 갈며 다짐했다.이 장면을 보고 구경하던 사람들도 격앙되었다.무성 상맹은 모든 대중들을 상대로 대립하게 된 셈이었다.“개자식!”TV화면을 보고 용천오는 크게 노하며 손바닥을 휘둘러 애꿎은 마하성을 넘어뜨렸다.“아주 좋은 일 났군, 어?”“말해! 누가 사람들을 보낸 거야?”“너희들 머리에 총 맞았어? 국술당을 공격해? 하 씨 그놈을 건
”국술당의 당주 하현이 죽을 작정을 한 모양이군! 겁도 없이!”용천오가 피를 토하며 포효하던 바로 다음 날.무성 종합병원에서 양손에 붕대를 감은 용천진은 벽걸이 TV에 시선을 던졌다.그의 72명 여자 중 한 명인 사청인이 그의 다리를 세심하게 주무르고 있었다.그녀는 몸에 착 달라붙는 의상을 입은 덕에 잘록한 허리와 우뚝 선 가슴이 숨 막힐 듯한 곡선을 이루었다.시스루 옷 사이로 비치는 아찔한 살갗이 진찰을 하러 온 의사들의 눈길을 여지없이 끌어모았다.그러나 의사들은 사청인에게 힐끔힐끔 눈길을 주면서도 용천진을 볼 때는 벌벌 떨며 똑바로 쳐다볼 엄두도 내지 못했다.“이 일은 100% 하현의 자작극이에요.”사청인은 살짝 웃으며 말했다.그 모습이 방금 피어난 꽃처럼 아름다웠다.“하현과 우리가 손을 잡은 관계로 용천오와 무성 상맹은 지금 벼랑 끝에 서 있어요.”“용천오는 그 총명한 머리를 가지고 지금쯤 아마 신중 또 신중해야 한다고 스스로를 담금질하고 있을 거예요.”“하현을 계속 자극하는 것은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고 멸망을 초래하는 길이라는 걸 모르지 않을 거구요.”“그런데도 일이 벌어졌고 붙잡힌 사람도 고문을 당한 뒤 그들이 무성 상맹 출신임을 자백했어요!”“어이없을 정도로 한 방에 당한 거죠!”“처음부터 용천오가 시켜서 한 짓이라고 인정했으면 경찰서에서도 의심을 했을 거예요.”“하지만 고문을 당한 뒤에 자백을 했으니 경찰은 신빙성 있는 진술이라 믿을 거구요.”“간단히 말해 하현이 아주 마음을 먹고 용천오한테 덮어씌운 거죠!”“하현 그놈이 제대로 일을 할 때는 정말로 자비가 없다니까요. 상대의 허를 찌르는 데 한 치의 오차도 없어요!”“이런 사람은 적이 아니라 영원한 친구로 두어야 해요.”“용천오는 머리가 나빠서 조한철을 뒤에서 부추기기만 하다가 하현한테 뒤통수를 제대로 맞았어요!”말을 하는 동안 사청인은 입가에 새어 나오는 미소를 숨길 수가 없었다.하현이 준 수표는 그녀가 안전한 곳에
분명 하현과 진주희는 자선 파티에서 있었던 일을 한 마디도 누설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킨 듯했다.현장에 있던 모든 하객들도 당연히 그날의 일에 대해 입을 꾹 다물었다.현장의 일을 알 리 없는 모지민은 자신이 그토록 떠받드는 용천진이 그날 하현에게 미친 듯이 맞았다는 사실을 꿈에도 상상하지 못한 것이다.그래서 지금 그녀는 하현을 아주 하찮은 존재로 말했다.“이렇게 하는 건 그가 대중 앞에 떳떳하게 나설 수 없는 하찮은 인물이라는 걸 스스로 보여주는 행동일 뿐만 아니라 사장님의 명성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구요!”“사장님이 어떻게 저런 소인배와 협력할 수 있을까 의아해할 거예요!”“그래서 말인데요. 사장님, 난 사장님이 그 하현이라는 사람과 손을 잡지 않았으면 좋겠어요.”“사장님은 장남에 장손이니 자연스럽게 상석에 앉을 거예요.”“용천오 따위 태생의 인물과는 비교도 안 되는 신분이에요!”“그러니 여론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구요!”“그렇지 않다가 만약 집안의 장로들에게 꾸지람이라도 들으면 정말 곤란해져요.”“그러니 사장님께서 지금이라도 나서서 하현 그놈의 파렴치한 행동을 막으셔야 해요.”“용천오와 무성 상맹을 직접 재정립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사장님의 명성에는 충분히 좋은 영향을 미칠 거예요!”“용천오 그놈이 은혜를 안다면 사장님이랑 싸울 생각을 접고 용천두를 칠지도 모르잖아요?!”“그게 사장님한테는 더 이득 아니에요?”모지민은 마치 자신이 대단한 존재라도 되는 양 의기양양하게 자신의 의견을 말했다.하지만 돌아가는 상황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다 안다.그녀가 일부러 사청인과 상반된 주장을 하고 싶어서 저런 발언을 한다는 걸.“그만!”용천진은 얼굴이 검붉어지며 모지민을 향해 호통을 쳤다.“머리가 있다고 다 생각이 있는 줄 알아? 딴따라가 뭘 안다고 이래라 저래라야?”“복잡하게 돌아가는 암투의 세계를 바보 같은 여자가 어떻게 이해한다는 거야?”“더 이상 쓸데없는 소리 지껄이면 그땐 정말 가만
모지민은 아연실색하며 입을 열었다.“사장님, 무성 바닥에서 양날의 칼은 고사하고 양쪽에 총이 날아와도 어찌 사장님을 다치게 할 수 있겠어요?”“넌 몰라.”“하현이 마음만 먹으면 미친 사람처럼 돌진할 뿐만 아니라 두려움이 뭔지도 몰라. 그따위 것 신경도 쓰지 않아.”“그를 곁에 두는 것은 시한폭탄, 그것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둔 거나 마찬가지야.”용천진은 모지민을 그저 가지고 노는 노리개처럼 취급하지는 않았는지 천천히 말을 이었다.“그래서 난 용천오를 해결한 후에 하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궁리하고 있는 거야...”용천진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감돌았다.하현에 대한 두려움과 존경심도 있었지만 지울 수 없는 사무친 원망도 있었다.그래서 하현을 대할 때 철저하게 냉정을 유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모지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사장님, 하현이 양날의 검이라고 하셨는데 만약 그 검이 매우 유용하다면 그를 이용해 용천오를 베고 용천두를 베어버리면 되잖아요?”“사장님이 상석에 오른 다음에 하현을 처리하고자 한다면 말 한 마디면 해결되지 않을까요?”“내가 상석에 오른 다음에?”용천진이 냉소를 흘렸다.“용천오와 용천두가 모두 목이 베이는 날, 아마도 하현은 나한테 선수를 칠지도 몰라!”“왜냐하면 내가 오르려는 상석을 하현 그놈도 원하기 때문이지!”“뭐라구요?!”모지민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하현이 무슨 자격으로 용 씨 가문의 상석에 앉으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용 씨 가문이 아니라 용문이야.”용천진은 물 한 잔을 들고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하현 그놈이 용문 집법당의 새로운 당주일 가능성이 크다는 소식을 들었어.”“게다가 그는 지금 용문대회에 출마해 최종 대회에 나갈 자격을 얻었어.”“일단 그가 모든 자리를 독차지하게 된다면 용문 집법당 당주의 신분도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용문을 차지할 수 있지. 충분히 명분이 서는 얘기니까!”
모지민은 얼떨떨해하며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용천오는 지금 사장님에 대한 원망이 극에 달했겠는데요, 안 그런가요?”“용천두 쪽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하현이 벌이고 있는 일들의 배후에 사장님이 있을 거라고 오해하고 있을 거예요.”“이런 상황에서 용천두도 뭔가 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하 씨 성을 가진 그놈은 겉으로 보기에는 사장님이 손에 쥔 검 같지만.”“실제로는 오히려 스스로를 위해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거죠.”“용천오를 해결하는 기세를 빌려 사장님과 용천두도 함께 쓸어버리려는 거 아닐까요?”“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사장님의 도구인 양 판을 벌이면서 결국 본인은 산에 앉아서 범이 싸우는 것을 구경하는 꼴이 되는 거군요.”모지민이 분석한 것을 들은 용천진의 얼굴에는 냉엄한 빛이 떠올랐다.그는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말했다.“하 씨 그놈이 물건은 물건이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스스로 판을 벌여 손을 쓰면서도 저 너머에 보이지 않는 수를 두어 전체 판을 휘감아버리려는 것이다.고수의 면모를 여지없이 풍기는 대목이었다.용천진은 하현의 수법에 혀를 내두르면서 눈가에 살의를 떠올렸다.하현이 꾸미고 있는 음흉한 계략이 그의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사장님, 그렇다면 하 씨 그놈은 정말 상종하지 못할 몹쓸 놈이에요!”“용천오가 무너지면 사장님도 덩달아 위험해질 수 있잖아요!”앞으로의 부귀영화와 관련된 일이라 모지민도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사장님은 이렇게 정직하고 좋은 사람인데 하 씨 그놈은 비열하고 파렴치한 소인배예요!”“정면으로 부딪친다면 그는 결코 사장님의 상대가 되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그놈이 음모를 꾸며 사장님을 공격할까 봐 그게 두려워요.”모지민은 자신의 남자에 대한 걱정으로 얼굴이 어두워졌다.“사장님, 우리 가능한 한 빨리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놈한테 당할 수 있어요!”“괜찮아. 방금 내가 말했잖아? 며칠 후에 하현을 식사 자리에 초대했으
하현은 그녀의 말에 더 이상 아무것도 따지지 않았다.“좋아. 사청인 당신이 그렇게 말을 하니 나도 체면을 세워 줘야지.”“이번 초대가 죽음으로의 초대이든 진심에서 우러난 초대이든 가 보지 뭐!”“용천진한테는 시간에 맞춰 가겠다고 전해줘.”“서프라이즈 기대하고 있다고도 전해주고.”하현의 말속에 들어 있는 가시를 알아차리고도 사청인은 모른 척 순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알았어. 용천진한테는 당신의 진심을 잘 전달할게.”그녀는 말을 마치며 소파에 깊숙이 허리를 묻었다.옥같이 매끄럽고 늘씬한 다리를 아찔하게 포개며 그녀는 하현에게 옆자리를 권했다.“하현, 앉아. 싸우면서 정든다고 우리고 꽤 친해진 느낌이야, 그렇지?”“그전에는 실례가 많았어. 오늘 이 자리는 내가 마련한 작은 성의로 알아줘.”“물론 당신이 다른 걸 요구한다면 성심을 다해서 만족시키도록 해 볼게.”“이건 용천진의 당부이기도 해.”사청인의 말속에 의미심장한 뜻이 담겨 있었다.좋은 술과 미인이 눈앞에 있다.남자라면 누구나 군침을 흘릴 만한 상황이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감에도 사청인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자 그녀의 담담했던 시선이 점차 의아한 빛으로 변했다.왜냐하면 하현의 눈동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고 비아냥거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녀가 예상했던 사악함도 없었다.하현의 흔들림 없는 모습에 천하의 사청인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여색 앞에서 이렇게 마음이 굳건한 남자는 연예계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이윽고 요염하고 새침한 기운이 사청인의 얼굴에서 사라졌고 그녀는 편안한 얼굴로 하현을 바라보며 겸연쩍은 듯한 미소를 보였다.“하현, 미안해. 내가 당돌했어.”“아니야. 당돌하기는. 그런 거 없었어. 그냥 내가 미인을 대하는 태도가 좀 서툴러.”하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난 사청인 당신과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아무래도 요즘은 친구라는 관계가 더 안정적이기도 하고.”“용천진과
하현이 고개를 들고 진지한 눈빛으로 사청인을 쳐다본 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청인 사장님, 당신이 이렇게 말하면 난 당신이 날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밖에 말할 수 없어.”“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며 말을 하는 자리에서 이걸 돌려줘? 이건 날 너무 무시하는 행동이지 않아?”“지금 난 무성 사람들한테 구세주라고 불리고 있는데 내 면전에서 이런 행동은 좀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안 그래?”말은 이렇게 했지만 하현의 얼굴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사청인은 누구보다 총명한 여자였고 총명한 여자였기에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혼란을 겪게 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눈앞의 여인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하현, 당신 체면은 당연히 세워 줘야지.”“다만 당신도 알다시피 난 용천진의 72명 여자 중 한 명이야.”사청인은 누구나 다 아는 핑계를 댔다.“용천진이 지금은 날 찾지만 언제 발길이 뜸해질지 몰라.”“겉으로 보기엔 내가 지금 그럴 싸한 자리에서 대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현 당신이 예상한 대로 난 가진 돈이 별로 없어.”“전 재산을 다 합쳐도 이십억이 넘지 않아.”“그래서 이 수표에 적힌 천억은 내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액수야.”“하지만 재물이 화를 초래한다는 말이 있잖아!”“내가 이 돈을 가지고 있으면 결국 어떤 식으로든 용천진한테 들킬 거야.”“그렇게 되면 난 정말 죽어서도 갈 곳이 없는 처지가 될 거야...”“그러니 하현, 날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우정을 위해서, 이 돈은 그냥 가져가 줘.”사청인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경호원을 쳐다보았다.여전히 침착하고 흔들림 없는 얼굴이었다.“사청인 사장님의 이유가 그럴싸해서 어쩔 수 없이 이 수표는 돌려받아야겠군.”하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 위의 수표를 집었다.“다만 사청인 사장님은 여전히 진실을 말하지 않는군.”“당신이 서둘러 수표를 돌려준 건 용천진
최희정은 하현이 어디서 이 명함을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맞아. 정말로 형홍익 명함인데?”우다금은 최희정의 말을 듣고 오히려 화를 버럭 내었다.“아휴! 잘난 데릴사위가 형홍익의 명함을 얻었으니 이제는 금정 최고 거물의 명함도 받을 수 있겠군그래!”“설 씨 집안도 대구 정 씨 가문과 연락이 닿아 아홉 번째 집안이 되어 꽤나 번성하고 발전했을 텐데 왜 이렇게 변한 거야?”“도와주고 싶지 않으면 그냥 말로 하면 되지 생색은 한껏 내면서 이런 핑계나 대고 있으니 원!”“정말 실망이야!”“이렇게 우릴 무시할 거면 확실히 말할 것이지! 앞으로 내가 절대 이 집안에 얼씬을 하나 봐! 절대 안 올 거야!’우다금은 노점에서 사 온 선물 꾸러미를 떠올리자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았다.그녀는 자신이 쓴 돈을 만회하기 위해 거실에 있는 찻주전자라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우다금의 말에 최희정과 설재석은 어이가 없어서 몸을 부르르 떨었고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설은아는 이 광경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손을 잡아끌었다.“하현, 당신이 좀 도와줘. 그렇지 않으면 우리 부모님이 정말...”이쯤 되니 설은아도 자신의 행동이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이 들었다.하현과 최희정은 원래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그런 하현이 최희정을 위해 나서서 우 씨 고모를 도와주려 하겠는가?설은아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듣고 하현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이런 사소한 일로 형홍익 어르신을 귀찮게 할 필요도 없어. 내 하녀한테... 그러니까 내 친구한테 말 한마디만 꺼내면 돼.”말을 마치며 하현은 핸드폰을 꺼내 형나운에게 전화를 걸어 우소희의 취업 문제를 도와달라고 했다.그는 1분도 되지 않아 전화를 끊었고 우다금 모녀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잘 해결되었습니다.”“거짓말하지 마!”“어디서 계속 장난질이야!”“데릴사위인 주제에 금정 최고 책임자라도 되는 양 허
”허! 제부! 시도도 안 해 보고 노력도 안 했는데 당신들은 처음부터 안 된다고 못 박고 있잖아요!”“그게 도와주겠다는 사람 태도예요?”우다금은 냉소적인 얼굴로 쏘아붙였다.“당신들이 우릴 친척이라고 생각했으면 어떻게 우리 소희를 도와주지 않을 수 있겠어요?”“제부, 난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이에요!”“내가 자존심도 다 버리고 도와달라고 이렇게 애원하는데 사람을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드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정말 너무 뻔뻔들 하네!”최희정은 자신보다 더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정신을 다잡고 이를 갈며 말했다.“지금 뭐라는 거야?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찾아온 언니를 내가 영광으로 생각하며 대했어야 한다는 거야?”“엄마, 아빠...”설은아는 또 말다툼이 시작되려 하자 걱정스러운 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하현을 힐끔 쳐다보았다.“하현, 혹시 이모 도와줄 수 있겠어?”설은아는 하현이 금정은행에서 형홍익의 개인 명함을 내놓은 것이 문득 떠올랐다.그렇다면 하현과 형홍익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얘기였다.그래서 하현이 방금 그런 말을 꺼낸 것이었다는 걸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허풍이 아니라 정말로 도와줄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눈앞의 난처한 상황을 보고 설은아는 어쩔 수 없이 하현에게 입을 열었다.“하현, 정말 도와줄 수 있어?”설은아의 말에 우다금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은아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면 안 되겠니?”“네 전 남편이 얼뜨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어?”“도와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면 되지!”“능력이 없다는 둥 변명만 늘어놓더니 이제는 얼뜨기를 내세워 나한테 헛바람이라도 넣으려고 그래?”“놀리는 거야? 놀리니까 재미있어?”“우린 바보가 아니야!”말을 마치며 우다금은 화가 나서 숨을 헐떡거리며 눈을 부라렸다.그녀는 설은아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이런
”제부, 희정아, 은아야. 이 일은 아무래도 너네들이 해결해 줬으면 좋겠어!”“어쨌든 너네들은 매일 친구 모임에도 다니면서 여러 거물들과 친분도 있고 인맥도 많을 거 아냐?”“너네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 같은 과부와 내 딸은 어떻게 살아?”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최희정의 식구들은 신세한탄과도 같은 말을 내뱉는 우다금을 보고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너네들, 우리 소희가 일자리도 없이 집에서 폐인이 되어 가는 걸 차마 볼 수 있겠어?”“양심에 찔리지 않겠냐고?”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우소희는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손을 놓은 뒤 못마땅한 듯 코웃음을 쳤다.“엄마, 희정이 이모나 이모부가 별로 능력이 없는 것 같아.”“이 사람들은 이제 돈이 많아서 우리 같은 가난한 친척들은 아예 상대하지 않으려고 하나 봐!”“돈푼깨나 좀 있다고 잘난 줄 알아?”“능력 있다고 자랑이나 하지 말던가!”하현은 우소희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머리가 텅텅 빈 데다 당돌하기까지 했다.이 말을 듣고 설은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모, 우리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은 금정에서 확실한 인맥이 없어요.”“게다가 형 씨 가문 그룹은 금정뿐만 아니라 전국 단위로 미술품과 골동품을 취급하는 굴지의 그룹이에요.”“매년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수천 명이 넘어요.”“그중에는 배경도 대단하고 능력도 뛰어난 사람도 널렸고요.”“그런데 형 씨 가문이 우리가 뭐라고 우리 요구를 들어주겠어요?”“형 씨 가문 고위층과 아는 사이긴 하지만 취업 청탁을 할 만한 위치는 아니에요. 그럴 능력도 없고요.”“물론 우리도 최선을 다해 볼 거예요!”설은아는 냉정하게 말했다.그녀의 성격은 최희정과는 완전히 달랐다.겉으로 매정한 말을 못 한 채 질질 끌려가지 않았다.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고 실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지금 이렇게 말한 것도 한편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
설은아와 가벼운 인사를 나눈 우다금의 시선은 계속해서 최희정에게로 향했고 결국 불쾌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저기 말이야. 내가 정말 어쩔 수 없어서 널 찾아왔지 뭐야!”“너도 알다시피 난 체면을 엄청 중시하는 사람이잖아!”“일이 없었으면 나도 이렇게 굽신거리며 찾아오지 않았을 거야!”“우리 소희가 보석 디자인을 배웠는데 아직 마음에 드는 직장을 못 잡았어.”“요즘 기업들은 정말 제대로 된 인재를 못 알아보는 거 같아.”“내가 마음먹고 그들한테 전화해서 우리 딸 진짜 인재다, 그러니 적어도 월급은 오백만 원은 되어야 하고 5성급 호텔에 해당하는 숙소와 전용차도 제공해야 한다고 했어!”“그런데 그 회사에서 우리 딸한테 삼백만 원밖에 못 주고 숙소도 다 함께 사는 기숙사형태로만 제공해 준다고 하잖아!”“아니 사람을 무시하는 것도 아니고 말이야!”우다금은 말을 하면서도 분노가 치미는지 눈물까지 글썽이며 가슴을 쳤다.반면 우소희는 마지 자신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일이라는 듯 핸드폰만 만지작거리며 미동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은 잠시 생각한 뒤 입을 열었다.“언니, 언니 마음은 이해해. 그러면 내가 은아랑 얘기해 볼 테니까 SL그룹에서 몇 달 일해 보는 건 어때?”“SL그룹?”우다금은 별로 마음에 내키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너네 SL그룹에 자금줄이 끊겨서 몇 달째 월급이 나오지 않고 있다는 걸 내가 모를 줄 알아?”“내 딸이 거기 들어가서 뭐 공짜 일이라도 해 달라는 거야?”“도대체 뭐라고 하는 거야 지금?”“게다가 내 딸은 주얼리 디자인을 전공했어. 얼마나 고급진 전공인데!”“너네 SL그룹은 지금 파산 직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어떻게 내 귀한 딸을 거기에 갖다 붙여?!”우다금은 언짢은 기색을 숨기지 않고 드러냈다.우소희도 옆에서 끼어들었다.“맞아요. 내가 신분도 이렇게 높은데 어떻게 파산 직전의 회사에 들어갈 수 있겠어요? 절대 못 가요!”“SL그룹에 가면 아무런 공부도 안 되고 그냥저
보기만 해도 끔찍한 장면이 벌어졌다.담배를 입에 물고 있던 마동수는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알이 휘둥그레졌다.그의 눈앞에서 마사영이 차 유리에 부딪혀 상처투성이가 된 것이다.이 광경을 본 뒤 마동수는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어 올라 눈이 뒤집혔다.“개자식! 감히 내 후배를 이 꼴로 만들어! 그렇게 자신 있어? 뒷감당할 자신 있냐고?”마동수는 포효하며 눈에 보이는 것이 없는 괴물처럼 커다란 주먹을 움켜쥐었다.순간 하현의 손바닥이 마동수의 얼굴을 덮쳤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거대한 마동수의 몸이 튕겨나가 트럭 좌석 위에 나가떨어졌다.그의 시야에는 하현의 매서운 표정만이 어른거렸다.“실력도 별로구만. 괜히 쓸데없는 말만 많은 놈이군.”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하나하나 닦았다.마동수는 눈앞의 상황이 도저히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이 주먹을 휘두르기도 전에 하현한테 먼저 일격을 당하다니!마사영도 이 광경을 보고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다.그녀는 헐떡거리며 몸을 일으켜 보려고 했지만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고 사장님, 이리 와서 처리 좀 해주시죠.”...고명원이 사람을 데리고 와서 현장을 처리하는 동안 하현은 설은아를 데리고 근처 병원으로 향했다.설은아의 부상은 경미했지만 심적으로 많이 놀란 상태였다.그래서 링거를 맞고 있는 설은아에게 하현은 상대 운전자가 졸음운전을 해서 사고가 난 거라고 둘러댔다.상대 운전자가 전적으로 책임지고 차를 수리해 주기로 했고 수천만 원의 의료비도 배상한다고 덧붙였다.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의심하지 않았고 자신의 몸에 별 이상이 없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병원을 떠났다.다만 가족들에게는 교통사고에 대해 말하지 말라고 하현에게 당부했다.가족들에게 쓸데없는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하현은 아무 말 없이 온화한 미소를 보이며 택시를 잡아타고 그녀와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오
”그러니 내가 지금 당신을 찾아와 따지는 게 지나친 일은 아니지, 안 그래?”마동수는 당연한 듯 입을 열었다.하현은 그의 이름을 듣고 어딘가 좀 익숙하다는 느낌이 들었는데 순간 얼마 전 엄도훈이 자신에게 한 얘기가 떠올랐다.“당신 둘은 무학의 성지인 서남 천문채에서 내쫓긴 그 마동수와 마사영이지?”“내 기억이 맞다면 서남 천문채는 당신들에게 엄청난 현상금을 걸었다던데.”이전에 엄도훈은 이 두 사람이 치명적인 권법을 터득하기 위해 동료 몇 명을 죽이는 극악무도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그래서 그들은 서남 천문채에서 제명되고 급기야 현상금이 붙은 채 쫓기는 신세가 된 것이다.하현은 고성양에게 이런 배경이 있을 줄은 몰랐다.게다가 고성양과 그의 모친은 곤경에서 벗어나자마자 사람을 시켜 이런 문제를 일으킬 줄은 더더욱 상상하지 못했다.설은아가 아직 차 안에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 하현은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정홍매와 고성양의 일은 나 때문에 일어난 일이지만 내 탓만을 할 수는 없잖아, 안 그래?”“언젠가는 드러날 일이었어.”“그러니 다른 방법으로 해결하는 게 어때?”“이를테면 내가 위자료의 의미로 당신에게 일억 정도 준다든가 말이지. 어때?”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침착한 어조로 말했다.“미안하지만 내 아내와 아들은 당신이 죽길 원해.”“그들은 당신이 죽어야만 숨을 쉴 수가 있다고 말했어.”마동수의 얼굴에 음산한 웃음이 번졌다.“하지만 걱정하지 마. 당신이 떠나는 길, 외롭지 않게 해줄 테니까.”“난 이미 다 알아봤지.”“당신을 죽인 뒤 장인 장모 일가족을 죽이고 마지막으로 고명원을 죽일 거야!”“당신 여자는 며칠 있다가 죽일 거야.”“내 아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여자거든.”“며칠 편안하게 데리고 있다가 같이 보내줄게.”덤덤한 표정으로 일관했던 하현의 얼굴이 순식간에 차가워졌다.이곳은 금정이라 그는 가능한 한 몸을 낮추려고 했다.하지만 상대는 그에게 그럴 기회를 주지 않았다.
김나나가 뭐라고 반응하기도 전에 하현은 설은아의 손을 잡고 그 자리를 떠났다.도중에 설은아는 하현에게 무슨 말을 하려고 했으나 일이 이렇게 정리되었으니 더 이상 만류할 여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입을 다물었다.차가 교외로 빠져나왔을 때 하현의 핸드폰이 갑자기 심하게 진동하기 시작했다.언뜻 눈을 들어보니 엄도훈이었다.전화를 받자마자 건너편에서 다급한 엄도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하현 형님! 큰일 났습니다!”하현은 눈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큰일 날 게 뭐가 있어?”엄도훈은 못마땅한 듯한 목소리로 말했다.“고명원 그놈이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그는 고성양이 자신의 친아들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마자 바로 그 모자를 죽이려고 했습니다!”“아주 날을 잡아 쥐도 새도 모르게 죽일 셈이었던가 봐요!”“그런데 오늘 아침에 정홍매와 고성양을 가두어 놓은 곳에 가 보니 이미 아무도 없었다는군요.”“정홍매와 고성양이 아주 사라졌어요!”“이 일은 형님과는 아무 상관이 없지만 어쨌든 폭로가 된다면...”점점 어조가 무거워진 엄도훈은 결국 말을 끝맺지 못했다.“정홍매 모자가 형님한테 폐를 끼칠까 봐 걱정스럽습니다.”하현은 엄도훈의 말을 듣고 고개를 가로저으며 나직한 목소리로 내뱉었다.“정말 쓸모없는 인간들이군!”정홍매와 고성양이 누군가에게 구출되었다면 그들의 실력이 아주 범상치 않다는 것을 뜻한다.자신을 찾아와 복수할 확률도 크다는 얘기다.자신에게 복수하는 것은 아무 상관없지만 문제는 설은아에게 손을 댄다면 조금 상황이 복잡해진다는 것이다.설은아는 옆에서 지켜보며 하현에게 무슨 일이 생긴 것이 아닌지 의아해하며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쾅!”바로 그때 뒤에서 갑자기 트럭 한 대가 무서운 속도로 돌진해 왔다.설은아는 놀라서 제대로 반응도 하지 못했는데 순간 그녀가 몰던 차의 속도가 증가하기는커녕 오히려 느려졌다.“조심해!”하현은 순간적으로 설은아의 몸을 덮친 뒤 핸
하현은 펄쩍펄쩍 뛰는 김나나를 보고 빙긋이 웃었다.“그런 말을 하면 체면이 덜 깎일 것 같아서 그래?”하현의 말을 들은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해서 급하게 그의 곁으로 다가와 손을 잡아당겼다.“하현, 그만하면 됐어. 그 정도로 해. 나나는 어쨌든 내 친구야.”“김나나, 너도 내 말 좀 들어봐. 이제 그만 하현에게 사과하고 이 일은 그냥 넘어가면 안 돼?”그녀는 하현이 이런 식으로 김나나를 몰아붙이는 건 결국 문제를 더 크게 만든다고 생각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녀의 호의가 김나나의 눈에는 하현을 비호하려는 의도로 보였다.김나나는 콧대를 한껏 치켜세우며 차갑게 말했다.“설은아, 이 쓰레기한테 사과하라고? 너 머리에 물 들어갔어?”“사과를 하라니?”“그건 절대로 있을 수 없는 일이야!”김나나의 말에 주위에 있던 예쁜 여직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다들 하현을 무시하는 기색이 역력했다.하현이 너무 잘난 척한다고 생각한 것임이 틀림없다.하현은 김나나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눈을 가늘게 뜬 채 조 행장을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보였다.“조 행장님은 끝까지 내 말을 무시할 생각인가 봅니다.”“강남에 있는 천일그룹은 멀리 떨어져 있어서 금정까지 손을 뻗칠 수 없는 건 사실이죠.”“영향력이 부족할 수 있죠.”조 행장도 이에 맞장구를 쳤다.“확실히 영향력은 떨어지죠.”“그럼 이러면 어떻습니까? 이래도 부족합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명함 한 장을 꺼내 조 행장 앞에 툭 내던졌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 장천중.조 행장의 얼굴빛에 살짝 균열이 생겼다.“이래도 부족하냐고 물었습니다.”“조 행장님, 뒷배가 아주 든든한가 봅니다.”하현은 마지막 명함을 꺼내 조 행장의 눈앞에 철썩 내리쳤다.보는 것만으로도 간담이 서늘할 그 이름, 간민효라는 석 자가 명함에 박혀 있었다.이를 본 순간 조 행장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휘청거리기까지 했다.그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