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지민은 아연실색하며 입을 열었다.“사장님, 무성 바닥에서 양날의 칼은 고사하고 양쪽에 총이 날아와도 어찌 사장님을 다치게 할 수 있겠어요?”“넌 몰라.”“하현이 마음만 먹으면 미친 사람처럼 돌진할 뿐만 아니라 두려움이 뭔지도 몰라. 그따위 것 신경도 쓰지 않아.”“그를 곁에 두는 것은 시한폭탄, 그것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둔 거나 마찬가지야.”용천진은 모지민을 그저 가지고 노는 노리개처럼 취급하지는 않았는지 천천히 말을 이었다.“그래서 난 용천오를 해결한 후에 하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궁리하고 있는 거야...”용천진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감돌았다.하현에 대한 두려움과 존경심도 있었지만 지울 수 없는 사무친 원망도 있었다.그래서 하현을 대할 때 철저하게 냉정을 유지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모지민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사장님, 하현이 양날의 검이라고 하셨는데 만약 그 검이 매우 유용하다면 그를 이용해 용천오를 베고 용천두를 베어버리면 되잖아요?”“사장님이 상석에 오른 다음에 하현을 처리하고자 한다면 말 한 마디면 해결되지 않을까요?”“내가 상석에 오른 다음에?”용천진이 냉소를 흘렸다.“용천오와 용천두가 모두 목이 베이는 날, 아마도 하현은 나한테 선수를 칠지도 몰라!”“왜냐하면 내가 오르려는 상석을 하현 그놈도 원하기 때문이지!”“뭐라구요?!”모지민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하현이 무슨 자격으로 용 씨 가문의 상석에 앉으려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용 씨 가문이 아니라 용문이야.”용천진은 물 한 잔을 들고 침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하현 그놈이 용문 집법당의 새로운 당주일 가능성이 크다는 소식을 들었어.”“게다가 그는 지금 용문대회에 출마해 최종 대회에 나갈 자격을 얻었어.”“일단 그가 모든 자리를 독차지하게 된다면 용문 집법당 당주의 신분도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용문을 차지할 수 있지. 충분히 명분이 서는 얘기니까!”
모지민은 얼떨떨해하며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용천오는 지금 사장님에 대한 원망이 극에 달했겠는데요, 안 그런가요?”“용천두 쪽에서도 마찬가지예요. 하현이 벌이고 있는 일들의 배후에 사장님이 있을 거라고 오해하고 있을 거예요.”“이런 상황에서 용천두도 뭔가 대비를 하고 있을지도 몰라요.”“하 씨 성을 가진 그놈은 겉으로 보기에는 사장님이 손에 쥔 검 같지만.”“실제로는 오히려 스스로를 위해 칼날을 휘두르고 있는 거죠.”“용천오를 해결하는 기세를 빌려 사장님과 용천두도 함께 쓸어버리려는 거 아닐까요?”“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사장님의 도구인 양 판을 벌이면서 결국 본인은 산에 앉아서 범이 싸우는 것을 구경하는 꼴이 되는 거군요.”모지민이 분석한 것을 들은 용천진의 얼굴에는 냉엄한 빛이 떠올랐다.그는 입꼬리를 실룩거리며 말했다.“하 씨 그놈이 물건은 물건이야. 인정하지 않을 수 없군.”스스로 판을 벌여 손을 쓰면서도 저 너머에 보이지 않는 수를 두어 전체 판을 휘감아버리려는 것이다.고수의 면모를 여지없이 풍기는 대목이었다.용천진은 하현의 수법에 혀를 내두르면서 눈가에 살의를 떠올렸다.하현이 꾸미고 있는 음흉한 계략이 그의 눈앞에 선명하게 보이는 듯했다.“사장님, 그렇다면 하 씨 그놈은 정말 상종하지 못할 몹쓸 놈이에요!”“용천오가 무너지면 사장님도 덩달아 위험해질 수 있잖아요!”앞으로의 부귀영화와 관련된 일이라 모지민도 걱정스럽지 않을 수 없었다.“사장님은 이렇게 정직하고 좋은 사람인데 하 씨 그놈은 비열하고 파렴치한 소인배예요!”“정면으로 부딪친다면 그는 결코 사장님의 상대가 되지 못할 거예요. 하지만 그놈이 음모를 꾸며 사장님을 공격할까 봐 그게 두려워요.”모지민은 자신의 남자에 대한 걱정으로 얼굴이 어두워졌다.“사장님, 우리 가능한 한 빨리 방법을 생각해 내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그놈한테 당할 수 있어요!”“괜찮아. 방금 내가 말했잖아? 며칠 후에 하현을 식사 자리에 초대했으
하현은 그녀의 말에 더 이상 아무것도 따지지 않았다.“좋아. 사청인 당신이 그렇게 말을 하니 나도 체면을 세워 줘야지.”“이번 초대가 죽음으로의 초대이든 진심에서 우러난 초대이든 가 보지 뭐!”“용천진한테는 시간에 맞춰 가겠다고 전해줘.”“서프라이즈 기대하고 있다고도 전해주고.”하현의 말속에 들어 있는 가시를 알아차리고도 사청인은 모른 척 순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알았어. 용천진한테는 당신의 진심을 잘 전달할게.”그녀는 말을 마치며 소파에 깊숙이 허리를 묻었다.옥같이 매끄럽고 늘씬한 다리를 아찔하게 포개며 그녀는 하현에게 옆자리를 권했다.“하현, 앉아. 싸우면서 정든다고 우리고 꽤 친해진 느낌이야, 그렇지?”“그전에는 실례가 많았어. 오늘 이 자리는 내가 마련한 작은 성의로 알아줘.”“물론 당신이 다른 걸 요구한다면 성심을 다해서 만족시키도록 해 볼게.”“이건 용천진의 당부이기도 해.”사청인의 말속에 의미심장한 뜻이 담겨 있었다.좋은 술과 미인이 눈앞에 있다.남자라면 누구나 군침을 흘릴 만한 상황이었다.그러나 시간이 지나감에도 사청인의 예상과는 다른 방향으로 흐르자 그녀의 담담했던 시선이 점차 의아한 빛으로 변했다.왜냐하면 하현의 눈동자는 조금도 흔들림이 없었고 비아냥거림도 없었기 때문이었다.그녀가 예상했던 사악함도 없었다.하현의 흔들림 없는 모습에 천하의 사청인도 감탄을 금치 못했다.여색 앞에서 이렇게 마음이 굳건한 남자는 연예계 데뷔 때부터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이윽고 요염하고 새침한 기운이 사청인의 얼굴에서 사라졌고 그녀는 편안한 얼굴로 하현을 바라보며 겸연쩍은 듯한 미소를 보였다.“하현, 미안해. 내가 당돌했어.”“아니야. 당돌하기는. 그런 거 없었어. 그냥 내가 미인을 대하는 태도가 좀 서툴러.”하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하지만 난 사청인 당신과 좋은 친구가 되고 싶어.”“아무래도 요즘은 친구라는 관계가 더 안정적이기도 하고.”“용천진과
하현이 고개를 들고 진지한 눈빛으로 사청인을 쳐다본 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사청인 사장님, 당신이 이렇게 말하면 난 당신이 날 친구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밖에 말할 수 없어.”“좋은 친구가 되고 싶다며 말을 하는 자리에서 이걸 돌려줘? 이건 날 너무 무시하는 행동이지 않아?”“지금 난 무성 사람들한테 구세주라고 불리고 있는데 내 면전에서 이런 행동은 좀 받아들이기 어려운데, 안 그래?”말은 이렇게 했지만 하현의 얼굴에는 큰 변화가 없었다.사청인은 누구보다 총명한 여자였고 총명한 여자였기에 결단을 내리지 않으면 나중에 반드시 혼란을 겪게 된다는 것쯤은 잘 알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눈앞의 여인을 조금 더 좋아하게 되었다.“하현, 당신 체면은 당연히 세워 줘야지.”“다만 당신도 알다시피 난 용천진의 72명 여자 중 한 명이야.”사청인은 누구나 다 아는 핑계를 댔다.“용천진이 지금은 날 찾지만 언제 발길이 뜸해질지 몰라.”“겉으로 보기엔 내가 지금 그럴 싸한 자리에서 대권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현 당신이 예상한 대로 난 가진 돈이 별로 없어.”“전 재산을 다 합쳐도 이십억이 넘지 않아.”“그래서 이 수표에 적힌 천억은 내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액수야.”“하지만 재물이 화를 초래한다는 말이 있잖아!”“내가 이 돈을 가지고 있으면 결국 어떤 식으로든 용천진한테 들킬 거야.”“그렇게 되면 난 정말 죽어서도 갈 곳이 없는 처지가 될 거야...”“그러니 하현, 날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우정을 위해서, 이 돈은 그냥 가져가 줘.”사청인은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은 채 자신의 경호원을 쳐다보았다.여전히 침착하고 흔들림 없는 얼굴이었다.“사청인 사장님의 이유가 그럴싸해서 어쩔 수 없이 이 수표는 돌려받아야겠군.”하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테이블 위의 수표를 집었다.“다만 사청인 사장님은 여전히 진실을 말하지 않는군.”“당신이 서둘러 수표를 돌려준 건 용천진
”이 돈은 지금 무성 황금 회사의 주식으로 바꿀 수 있어.”“사청인 당신도 무성 황금 회사의 미래가 얼마나 밝은지 알고 있을 거야.”“무성 황금 회사의 주식이 있으면 앞으로 해외로 나가든 국내 어느 도시에서 정착하든 평생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을 거야.”“이름 없는 여자로 사는 것보다 훨씬 낫지 않아?”하현은 자신의 의중을 조금도 숨기지 않았다.그의 목적은 사청인을 무성 황금 회사라는 전차에 묶는 것이었다.설은아든 자신이든 어차피 무성에 오래 있을 수 없다는 것을 하현은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사청인 같은 사람이 무성 황금 회사에 있다면 회사 운영에는 절대 문제가 없을 것이다.사청인은 하현의 말을 듣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화사한 미소를 입가에 내걸며 말했다.“하현, 당신이 내민 조건은 사람을 회사로 끌어들이는 것이 아니라 무슨 내연녀를 몰래 키우려는 것 같아!”그녀는 하현이 무성 황금 회사의 운영만을 위해 자신을 끌어들이려는 게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자신을 용천진의 끄나풀로 삼아 곁에 두기 위함일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그녀는 용천진의 곁에서 오랫동안 그와 함께 했기 때문에 무성의 위아래 인맥들을 잘 알고 있었다.그녀가 있으면 무성의 여러 국면들을 타개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사청인, 난 당신을 내연녀로 키울 수가 없어! 내 아내가 날 찢어 죽이려고 할 거야!”하현은 웃으면서 사청인이 은근슬쩍 내비쳤던 묘한 감정을 단번에 물리쳤다.“하지만 난 진심으로 사청인 당신을 데려오고 싶어.”“무성 황금 회사 집행총재 자리가 계속 비어 있었는데 내 생각에는 당신을 위해 지금까지 이 자리가 공석이지 않았나 싶어.”말을 하면서 하현은 잔을 들었다.그러자 사청인도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하현, 그런 말을 하면 용천진이 당신을 오해할 수도 있는데 그건 두렵지 않아?”“어쨌든 난 아직 그의 여자니까.”“사실 난 당신이 그의 여자가 아니라 그의 도구라고 생각해...”“도구?”
”탕탕탕!”인도인들은 쓸데없는 말 대신 냉담한 표정으로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총탄이 사방으로 날아다녔고 삽시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일반인이었다면 벌써 온몸에 총상을 입었을 것이다.“하현, 조심해!”사청인도 무의식중에 입을 열었다.하지만 하현은 재빠른 몸놀림으로 사청인의 가느다란 몸을 그대로 안고 귀빈실 구석으로 밀어 넣었다.그러면서 그는 뒤로 물러서지 않고 몸을 비틀어 전방을 향해 돌진했다.그는 빗발치는 총탄을 가까스로 피하며 어느새 인도인들 앞에 몸을 드러내었고 닥치는 대로 손바닥을 휘둘렀다.“촥촥촥촥!”얼굴을 맞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고 총을 든 인도인들은 하현에게 덤벼드는 족족 얼굴을 맞고 땅바닥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다.도무지 감당할 수 없는 위력이었다!너무나 강력한 한 방이었다!이 광경을 보고 용 씨 가문 경호원들이 모두 아연실색했다.그들은 하현의 실력이 이렇게 무시무시할 줄은 몰랐다.총탄이 빗발치는 곳에서 몸을 피해 어느새 인도인들을 기습해 그들을 날려버린 것이다.이게 사람이 한 짓이란 말인가?귀신이 곡할 만큼 무서운 실력이었다!그러나 용 씨 가문 경호원들을 더욱 놀라게 한 건 벌벌 떨고 있는 사청인에게 다가간 하현이 그녀의 머리를 감싸주자 그녀가 안정을 되찾은 듯 진정하는 모습이었다.십여 분 만에 사청인은 겨우 진정할 수 있었다.그녀도 이런 험악한 총탄 앞에서는 여자였다.심호흡을 몇 번 하던 사청인은 하현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하현이 제때 반응하지 않았다면 사청인도 이미 죽은 사람이 되었을 것이다.천성이 차가운 사청인도 하현에게 연신 고마움을 표했고 한편으로는 눈에 살의를 떠올리며 주변을 둘러보았다.“이 인도인들이 어떻게 여기에 나타났지?”“누가 보낸 걸까?”“누가 나한테 이따위 짓을 했을까?”“이들이 이렇게 가까이까지 오도록 어떻게 안 들킬 수가 있었지?”“다들 밥만 먹고 뭐 했어?”사청인은 경호원들에게 싸늘한 눈빛을 돌
경호원은 하현의 말을 듣고 갑자기 발끈했다.“개자식! 함부로 날 헐뜯지 마!”“만약 당신이 여기서 함부로 날뛰지 않았더라면! 우리 황소를 죽이고 투우장을 엉망으로 만들지 않았더라면!”“내가 이런 일을 했겠어?”“결국 이 모든 일은 당신이 만든 거야! 당신 때문이라고!”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인도인들이 장비부터 지프차까지 병부용이 아닌 것들이 어디 있어? 한번 봐 봐!”“이런 것들을 보고도 당신은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어?”“게다가 훈련하러 왔다면서 이렇게 장소를 빌리는데 많은 돈을 쓰겠어?”“누군가에게 충분히 대가를 받지 않았다면 이렇게 위험한 일을 감수했겠어?”“보니까 이 인도인들이 나타난 타이밍과 장소가 모두 치밀하게 계산된 게 분명해 보이는데.”“만약 내가 그들을 처리하지 못했다면 나와 사청인 사장님뿐만 아니라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당신을 제외하고는 다 죽었을 거야.”“우리가 죽은 후에 당신은 모든 흔적을 다 지운 뒤 인도인이 나에게 복수를 하고 사청인을 함께 죽였다고 용천진에게 보고하면 큰 몫을 챙기고 멀리 도망가면 되는 거지. 평생 돈 걱정 없이 사는 건 덤이고 말이야.”“변명은 할 수 있어. 하지만 내가 증거를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는 걸 알아야 할 거야.”“당신 같은 사람은 조심성이 많아서 아마도 인도인에게 현금을 직접 보내지 말라고 했을 거야.”“은닉하기도 좋고 휴대하기도 좋게 아마 십중팔구 수표로 달라고 했을 거야. 안전을 위해 다른 곳에 놔두지도 않았을 테고. 그러면 딱 하나지! 그 수표는 지금 당신이 지니고 있다는 거!”“나와 사청인이 죽으면 바로 마무리 짓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 거야...”하현의 말을 들은 경호원은 안색이 급변했다.“말도 안 되는 소리!”“내가 용천진 사장님과 사모님한테 얼마나 충성스럽게 했는데 그런 짓을 할 수가 있겠어?”하현은 냉담하게 말했다.“그래? 그건 뭐 당신 몸을 수색해 보면 알게 될 일이고.”사청인은 굳
”어쩌지 못할 거라고?”“왜? 날 지금 협박하고 싶어서 그래? 뒷배가 아주 든든해? 하늘을 찌를 듯 무서운 게 없어?”“아니면 당신 성이 용 씨라도 된다고 생각했어?”경호원의 말을 듣고 하현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하현의 말에 남자는 별다른 대답 없이 냉소만 흘리다가 입을 열었다.“사모님은 이미 마음속으로 알고 계셨을 거야. 내가 용천진 사장님이 사모님 곁에 심어 둔 사람이라는 걸. 사모님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하고 보고할 책임이 있지.”“그리고 난 용 씨 집안과는 먼 친척 사이야.”“희박하긴 하지만 혈연관계라고!”“날 건드리면 용천진 사장님의 신임을 단번에 잃게 될 뿐만 아니라 엄청난 골칫거리를 안게 될 거야!”여기까지 이야기하고는 남자는 아쉬운 표정을 잔뜩 지으며 말을 이었다.“오늘 밤 일은 여기서 끝나는군.”“하지만 하 씨! 잘 들어. 앞으로 수없이 많은 날이 있어. 우리 사이는 앞으로도 함께 놀 시간이 아주 많다는 거지!”“다음번엔 오늘처럼 이렇게 운이 좋지는 않을 거야! 각오해!”순간 남자는 하현을 향해 눈을 부라리며 사나운 미소를 보였고 하현은 그 모습을 보고 싱긋 웃었다.“왜? 용 씨 가문과 혈연관계라면서 뭐 그렇게 가깝고 두터운 사이는 아닌가 보지?”“무슨 소리! 난 용천진의 친위대야!”“지위도 권위도 높고 신임도 두터워!”“용 씨 가문의 방계라고 해도 권력이나 실력이나 날 앞설 수 없어!”“나 같은 사람은 밖에서 용천진을 대표해서 일을 처리할 수도 있다고!”“뭐? 두렵지 않냐고? 헛!”남자는 기세등등한 표정으로 말했다.그의 말을 들은 다른 경호원들은 자신도 모르게 남자를 붙잡고 있던 손을 슬그머니 놓았다.이런 사람을 건드릴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남자는 자신의 말이 다른 경호원들에게 먹히는 것 같자 더욱 날뛰며 말했다.“사모님은 총명한 분이니 진작에 나에 대해 잘 알고 있었을 거예요!”“평소 전 사모님에게 공손하게 대했습니다. 하지만 내가 뭘 하든 사모님은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
”퍽!”하현이 뭐라고 입을 떼기도 전에 줄곧 무릎을 꿇고 있던 황천화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이신욱의 뺨을 그대로 날려버렸다.“개자식!”이신욱은 얼굴을 가리고 버둥거리며 일어섰다.“황천화, 감히 날 건드려?!”“죽고 싶어?!”“차칵!”황천화는 이신욱이 하는 말은 듣는 둥 마는 둥 곧바로 앞으로 나가 이신욱의 오른손을 움켜잡고 세게 꺾었다.이신욱은 죽자 살자 덤볐지만 황천화는 그렇지 않았다.페낭 무맹인으로서 감찰관이라는 직위의 무게를 잘 알고 있었다.이럴 때 무엇을 해야 하는지,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 누구보다 꿰뚫고 있었다.“아!”이신욱은 처절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황천화는 그제야 단호하게 이신욱을 다시 한번 꺾었다.‘차칵'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잠시 후 이신욱은 사지를 쓰지 못하고 땅바닥에 주저앉아 계속 경련을 일으켰다.그는 극심한 고통 때문에 화를 내고 싶어도 도무지 화를 낼 수가 없었다.오로지 땅바닥에 널브러져 돼지 멱따는 소리만 울부짖을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사방팔방에서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부잣집 도련님들, 유명한 미녀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머리카락이 쭈뼛 곤두서며 두려움이 온몸을 전율시켰다.이신욱이 소리쳐 반항을 한 끝에 결국 이 꼴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다.말하자면 이신욱은 오늘 밤 하현을 세 번이나 공격한 것이다.그 결과는 처참한 자신의 몰골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털썩!”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린 후 황천화는 망설이지 않고 바로 바닥에 무릎을 꿇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오늘 밤 일어난 이 모든 일은 다 내 불찰이고 이신욱의 잘못이야. 난 이미 당신 뜻에 따라 이신욱의 사지를 부러뜨렸어.”“당신이 만족할지 모르겠지만 말이야.”하현은 무덤덤한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내가 한 말은 모든 사람들이 다 한 손씩은 부러뜨려야 한다는 거였어.”“당신은 말귀를 좀 알아듣는 것 같으니 왼손으로 하지.”황천화는 눈
”내 두 손을 자르라고?!”자신의 뒷배는 이미 무릎을 꿇었는데 하현이 자신의 두 손을 자르라는 말을 듣고 이신욱은 두려움도 잊고 어느새 숨겨 두었던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하현! 당신이 무슨 대표든 무슨 감찰관이든 난 상관하지 않아. 하지만 당신, 이것만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나 이신욱!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아!”“난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이 씨 가문 사람이야. 우리 이 씨 가문은 원 씨 가문과 운명을 같이 하는 집안이야!”“나한테 미움을 사고 해를 입히는 사람은 남양에서 수많은 적을 만드는 것과 같아!”“그리고 나 이신욱! 당신을 평생 기억할 거야!”“오늘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언젠간 당신을 가루로 만들어 버리고 말 거야!”“1년 안에 당신을 무릎 꿇리지 못한다고 해서 5년, 10년 후에도 못하라는 법은 아니거든!”“지금 내 두 손을 끊는다면 절대 좋은 결말은 없을 거야! 두고 봐!”이신욱이 이를 갈며 하현에게 소리쳐 경고했다.감찰관이라는 하현의 신분이 무맹 사람들한테는 먹힐지 모르지만 이 씨 가문에는 하등의 위협도 되지 않는다는 걸 말한 것이다.호랑이 가죽을 뒤집어쓴다고 해도 하현은 외지인일 뿐인데 어떻게 남양에서 이 씨 가문의 끝없는 복수를 견뎌낼 수 있겠는가?이 씨 가문은 엄연히 남양 3대 가문의 하나다!황천화는 이를 듣고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이신욱!”“닥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닥치라고!”이신욱은 황천화의 말을 거칠게 끊었다.“내가 매년 당신한테 몇 억씩 갖다 바쳤던 이유는 이럴 때 나에게 힘이 되어 달라고 그랬던 거예요!”“그런데 어떻게 되었죠? 당신은 무릎을 꿇고 뺨을 맞기만 할 뿐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당신 같은 사람 키워봐야 아무 소용이 없어요!”“앞으로 당신 같은 바보 등신 앞에서 누가 머리를 조아리며 공손히 굴겠어요?”“퉤! 당신한테 그럴 자격이 있어요?”이신욱은 황천화가 아무리 하현의 신분이 두렵더라도 무도 정신을 잃지 말
황천화는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말했다.“하현, 이건 너무 심하잖아...”“정말로 내가 당신을 두려워하는 줄 알아?”“잘 들어. 당신 신분이 가짜인지 진짜인지는 제쳐두고, 설령 진짜 감찰관이라고 해도...”애써 침착하며 여기까지 말하던 황천화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갑자기 하현의 주먹이 날아와 그의 얼굴을 ‘퍽'하고 쳤기 때문이다.황천화는 이번 문제가 커진다면 자신이 곤란한 상황에 직면할 뿐만 아니라 페낭 무맹도 같이 곤란해질 거라는 걸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남양 무맹 감찰관이 말이 쉽지 엄청난 자리라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황천화가 뺨을 맞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정신이 혼미해져서 도저히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그는 페낭 무맹에서 호령하는 사람이었고 이신욱을 도우러 온 것일 뿐이었다.그런데 결과는 어떻게 되었는가?몇 마디 말로 하현이라는 외지인 앞에 무릎을 꿇게 생긴 것이다!황천화가 무능한 것인가?아니면 하현이 대단한 것인가?하현은 황천화에게 다가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치며 말했다.“황천화, 왜 갑자기 무릎을 꿇었지?”“무릎까지 꿇었는데 내가 어떻게 당신 얼굴을 때리겠어?”황천화는 눈가에 경련을 일으키며 더듬거리며 입을 열었다.“감찰관님께 뺨을 얻어맞게 되어 영광입니다.”“좋아, 그렇게 말하다니 소원을 들어줘야지.”하현은 조금도 사양하지 않고 오른손을 치켜들고 세차게 손바닥을 내리쳤다.“퍽!”“이건 당신이 제멋대로 날뛰고 무맹의 얼굴에 먹칠한 대가야!”“퍽!”“이건 약자를 괴롭히고 힘들게 한 대가야!” 하현은 하나하나 낱낱이 열거해 가며 황천화의 얼굴을 뒤흔들었다.비록 황천화도 고수 중의 고수였지만 하현이 뺨을 때릴 때는 아무런 저항도 분노도 표출하지 못하고 억지로 견뎠다.하현이 손바닥을 휘두를 때마다 황천화의 눈빛은 아프게 이리저리 흔들렸다.이 광경을 지켜보는 사람들의 눈빛이 점점 초점을 잃어갔다.페낭 무맹의 실력자가 무릎을 꿇고 다른
원청산?원 대표님?황천화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문득 그가 누군지 떠올랐다.이 사람은 남양 무맹의 대표이다.페낭 무맹의 맹주는 그를 보면 넙죽 엎드려야 한다.그런데 이 어른이 방금 뭐라고?하현이 남양에 있을 때는 남양의 감찰관 임무를 맡기겠다고?맹주를 감찰하고 만인을 순찰한다고?원청산의 말이니 하현이 대하무맹 대표가 된 것이 거짓은 아닐 것이다.대하무맹 대표가 되고 세계무맹에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고 남양에서는 감찰관이라...순간 황천화는 갑자기 호흡이 가빠졌다.두 다리는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얼굴에 가득했던 거만한 표정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그 자리에 깊이를 알 수 없는 두려움이 채워졌다.그를 따르던 무맹의 고수들도 모두 손발이 얼얼하고 팔다리는 저릿저릿 아파서 서 있을 힘조차 없었다.다른 사람들은 이런 신분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모르지만 그들 무맹인들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아주 높은 자리에 앉아 대표자로서 만인의 뜻을 전달하는 사람이 되었다.아무도 그의 말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이다.황천화 일행이 위세를 떨치다가 갑자기 전전긍긍하며 어쩔 줄을 모르자 이신욱은 속이 타서 참을 수가 없었다.“형님, 이런 놈한테 속으면 안 돼요!”“대표라니요? 감찰관이라니요?”“이놈이 능청스러운 연기로 우릴 속이려는 게 틀림없어요!”“저런 놈이 무슨 대표고 무슨 감찰관이랍니까? 형님은 분명히 알고 계시잖아요?”이신욱의 말을 듣고 주위의 많은 동료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의 말에 동의했다.몇몇 아리따운 여자들은 화들짝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다시 조롱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감히 능청스럽게 연기를 하면서 황천화를 속이려고 하다니?“연기? 그래?”“내 연기가 아마 연기대상감인가 보지? 유명 배우 뺨칠 정도로 뛰어났던가 봐.”하현은 담담하게 웃으며 한 발짝 앞으로 나와 페낭 무맹 제자들 앞으로 가더니 사정없이 손바닥을 후려갈겼다.“퍽!”페낭 무맹 제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을
당당하고 거침없는 황천화의 모습에 사람들은 가소롭다는 듯 하현을 비꼬아 보았다.다들 하현이 겁을 먹고 도망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이 아무리 대단하다고 해도 황천화와 대적할 수야 있겠는가?그건 정말 목숨을 거는 짓이고 스스로 무덤을 파는 행위였다.하현은 손을 뻗어 제멋대로 입을 놀리는 황천화의 뺨을 후려치려고 했지만 갑자기 뒤에 있던 하구봉의 핸드폰이 심하게 진동하는 것을 느끼며 흠칫 뒤를 돌아보았다.순간 하구봉의 얼굴에 의아한 빛이 떠올랐다.이어 하구봉은 하현에게 공손히 다가가 조용히 말했다.“하현, 무성에서 온 전화야.”“대하무맹을 대표해 의견을 전달한다더군.”“방금 만진해 맹주의 강력한 추천으로 대하무맹에서 치열한 토론을 펼쳤어. 그래서 당신이 대하무맹 대표로 확정되었대!”“대하무맹을 대표해 세계 무맹에서 상임이사로서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어!”“간단히 말해 앞으로 당신은 대하무맹의 대표로서 만진해 맹주와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야.”“만약 만진해 맹주가 물러난다면 당신은 그다음 맹주가 되는 거야.”말을 하는 동안 하구봉의 입술이 계속 떨리고 있었다.그도 이 엄청난 소식에 적잖이 놀란 것이 틀림없었다.그러면서 그는 핸드폰을 켜고 방금 메신저를 통해 온 메시지 한 장을 보여주었다.대하무맹?대표?세계 무맹의 거부권?한마디 한마디 융단 폭격과도 같은 엄청난 단어에 황천화는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하지만 그는 무의식적으로 하현이 자기 앞에서 허세를 부리고 있다고 생각했다.황천화가 불같이 화를 내려 했을 때 하현의 부하들이 일부러 이런 말을 꺼낸 것만 봐도 뻔한 가짜임이 틀림없다고 생각했다.“거짓말하지 마!”“세계 무맹이라니? 거부권이라니?”“그게 무슨 뜻인지 알기나 해?”“뻔한 거짓말로 위기를 모면할 수 있을 줄 알았어?”“순진하기는!”황천화는 심호흡을 한 뒤 냉소를 흘렸다.그도 무맹 사람이다.만약 대하무맹에서 하현이라는 대표가 나왔다면 어떻게 그가 모
”옳고 그름?”“잘잘못을 따지자는 거야?”“하여튼 약자들은 이런 허무맹랑한 것을 정말 중요하게 생각한단 말이지.”황천화는 두 손을 뒷짐진 채 앞으로 당당하게 발걸음을 옮겼다.걸음을 옮길 때마다 매서운 기운이 파장을 일으키며 사람들을 압도했다.“나 같은 강자들은 그런 걸 알 필요가 없지.”“난 말이야. 신분에 따라 편들지 이치에 따라 편들지 않아.”“내 후배가 사람을 죽이고 나쁜 짓을 했어도 그건 옳은 일이야.”“당신이 무수히 많은 도리를 가지고 법을 운운한다고 해도 내 후배를 건드린 당신은 나한테 여전히 나쁜 놈이야.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하지.”옆에 있던 이신욱은 황천화의 강력한 지지를 얻은 순간 없던 힘까지 솟아오르는 것 같아 큰소리로 선동하고 나섰다.“형님, 이 개자식이 방금 아주 큰소리를 쳤어요. 형님이 온다고 해도, 페낭 무맹 맹주가 온다고 해도 절대 자기를 건드릴 수 없다고요!”다른 부하들도 모두 입을 모아 말했다.“맞습니다. 이놈이 아주 기고만장하게 말했어요.”“날 무시하는 거야? 맹주를 무시해? 아님 우리 페낭 무맹을 무시하는 거야?”황천화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요즘 세상에 그런 얼빠진 놈이 있어?”“자기가 뭔지도 모르고 설치는 꼴이라니!”“무슨 자격으로 우리 동네에 와서 함부로 굴어!”“이봐, 당신 대하 사람이지?”“자자, 당신의 내력을 말해 봐. 당신이 5대 문벌 출신이라도 돼? 아니면 10대 가문 출신이야?”“분명히 말해 두겠는데, 당신이 그런 사람이라면 내가 체면을 봐 줘서 죽이지는 않겠어. 몸은 좀 상하게 하겠지만.”하현이 덤덤하게 말했다.“다 아니야.”“아니라고?”황천화가 입을 크게 벌리며 웃었다.“다 아니라면서 감히 페낭에 와서 위세를 떨치려는 거야? 정말 세상 물정 모르는 놈이군!”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난 페낭이 법과 규율, 그리고 도리를 중시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는데 황천화 당신을 보니 도리를 거론할 동네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