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 무렵, 용 씨 가문 저택.건너편 방의 등불이 환하게 켜져 있었다.용천오는 무성 파트너스 주요 인물 열두 명을 위로하고 모두 돌려보낸 뒤에 웅장한 필체가 쓰인 액자 앞에 섰다.소탐대실!작을 것을 탐하면 큰 것을 잃게 된다!작은 것을 참지 못하면 큰 계획을 망치게 된다!이것은 용천오가 6년 동안 마음속에 간직한 문구였다.그가 6년 동안 이렇게 빨리 성장할 수 있었던 뚝심이 여기에 있었다.그러나 오늘은 그도 어쩔 수 없었다.평소에는 잘 참아 왔던 그도 오늘만은 능력 밖이었던 것이다.무성 신시가지는 오랫동안 공들인 프로젝트였고 그가 상석에 앉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줄 포석이었다.하지만 하현이라는 놈이 와서 현장을 난장판으로 만들어 한순간에 그는 용 씨 가문 전체의 웃음거리로 전락하고 말았다.이것보다 더 뼈아픈 것은 자신이 공들여 놓은 신시가지가 하루아침에 공동묘지로 전락한 것이었다.말 그대로 무성 신시가지가 서북부 제일의 부촌에서 서북부 제일의 공동묘지로 변했다는 것을 의미한다.오늘 용천오가 부탁해서 몇 채를 산 사람들 말고는 거의 99%의 물량이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했다.재력가들은 이런 일이 생기면 집값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가장 골치 아픈 것은 그 집들을 헐지 않는다면 재력가들은 절대 눈도 돌리지 않을 거라는 사실이다.불운 앞에서 타협을 선택하는 사람은 없다.무성에는 집이 많아서 꼭 무성 신시가지를 고집해야 할 이유도 없었다.이 집들은 한 채도 팔리지 않았고 용천오와 무성 파트너스의 자금 압박은 순식간에 사상 최고가 되었다.오후에 이미 몇몇 은행 지점장이 전화를 걸어와 대출금을 제때 갚을 수 있는지 에둘러 물어보았다.이 외에도 무성 파트너스 거물들 중 많은 사람들이 조바심을 내며 투자한 금액을 회수하기도 했다.어쨌든 다들 오늘을 위해 거금을 투자한 것이었다.결국 오늘 분양이 되지 않았으니 무성 파트너스 사람들의 한쪽 다리가 부러진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마영아의 말에 용천오는 살짝 어리둥절해하더니 잠시 후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 씨 그놈이 도대체 뭐길래 황금궁 집법전에서도 이렇게 몸을 사리는 거야?”“평소에 내가 황금궁에 낸 향값이 얼만데?”“이제 와서 왜 내 손에 피를 묻히라는 거야?”마영아는 눈썹을 찡그리며 말했다.“황금궁 집법전은 아마 그날 밤에 나타난 귀인 때문일 겁니다.”“어쨌든 그때 그 귀인 곁에는 용위 사람들이 있었고 연경 번호판을 단 차를 몰고 왔으니 신분이 보통이 아니라고 생각했을 거예요.”“하현과 그 귀인과의 관계를 알기 전에는 함부로 나서려고 하지 않을 거예요.”“음, 그렇겠군...”용천오는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는 퉁명스럽게 내뱉었다.“하현 그놈 역시 보통 놈이 아니야!”“거물의 힘을 빌려서 협박하는 법도 알고.”“왜 그 많은 계약서가 그의 손에 들어갔는지도 대충 알 것 같아.”“아마 연경에서 온 그 거물이 도와줬을 거야.”“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그렇게 쉽게 하룻밤 사이에 수속을 마칠 수가 있었겠어?”“보아하니 그 귀인의 신분은 정말 보통이 아닌 모양이야.”“정말 하현 그놈 여자들 복은 타고났다니까! 흥!”“이거 원, 부러워서 살겠어!”여기까지 말하고 보니 용천오는 심경이 더욱 복잡해졌고 그의 표정은 하현을 비아냥거리는 건지 칭찬하는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었다.“용천오,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죠?”“이번 일로 우린 체면도 많이 구겼고 또 많은 돈을 잃었어요.”“빨리 해결하지 않으면 우리가 오랫동안 공들였던...”여기까지 말한 뒤 마영아는 차마 나머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하현의 행패로 오늘 용천오는 완전히 진퇴양난에 빠진 것이다.용천오는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나서 한참 뒤에야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하현 그놈의 일은 내가 직접 처리할 테니 먼저 나가 봐.”“그리고 꼭 기억해. 절대로 흥분하면 안 돼. 내가 직접 나서기 전에는 누구도 하현을 건드려서는 안 된다고, 알았어?
”용천오 쪽에서는 언제든지 사람을 보내 그 관들을 모두 뺄 수 있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의심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럴 리가 없어.”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 안에 누워 있는 사람들은 모두 인도의 두 번째 계급을 가진 높은 신분들이야. 모두 무성에서 이유 없이 죽었고.”“내가 호의를 베풀어 이렇게 격식 높은 장례를 치러 줬으니 아마 인도 쪽에서는 모르긴 몰라도 겉으로는 고마워하고 있을 거야.”“용천오가 감히 그 관들을 다 없애버린다면 인도인과 선봉사들이 그를 못살게 굴 거야, 안 그래?”“득보다 실이 많은 일에 섣불리 나설 용천오가 아니지.”“다른 방법을 강구해 상황을 타개할 수밖에 없을 거야.”“하지만 그건 우리가 신경 쓸 일이 아니야.”“우리가 신경 써야 할 일은 무성 신시가지의 자금 회수에 실패한 용천오의 무성 파트너스가 업계에서 나락으로 떨어질 거라는 거야.”“당신이 비즈니스로 무성에서 자리를 잡으려면.”“지금이 가장 좋은 타이밍이야.”설은아는 하현의 말을 듣자 눈앞이 번쩍였다.그녀가 방주로 있는 대구 정 씨 가문 상황도 지금은 많이 좋지 않다.만약 무성에서 그녀가 입지를 탄탄히 할 수 있다면 이는 분명 그녀에게 좋을 일이다.이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자 설은아는 갑자기 이불을 젖히고 벌떡 일어섰다.“하현, 나 퇴원할래.”“나 바로 회사로 나가 봐야겠어. 이제 슬슬 움직여도 될 것 같기도 하고.”하현은 환하게 웃기만 할 뿐 말리지는 않았다.한편으로는 이렇게 저렇게 설은아가 본래의 자리로 돌아가기 좋은 타이밍이기도 했고 또 한편으로는 사업상 좋은 기회이기도 했다.만약 설은아가 이 기회를 잡는다면 그녀가 짊어지고 있는 대구 정 씨 가문은 더 이상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참, 어제 유아가 회사 금고에서 차용증을 발견했는데 누군가 전에 회사에서 이천억을 빌린 것 같다고 하더라고.”설은아가 갑자기 떠오른 듯 하현에게 말했다.“만약 내가 그 이천억을 돌려받을 수 있다
하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용천진이 돈을 갚을지 어떨지는 모르지만.”“내가 아는 건 사람이 목숨을 빚지면 목숨으로 갚고 돈을 빚졌으면 돈을 갚아야 한다는 거야.”“당신은 무성 황금 회사에 절대적인 권위를 바로 세우고 이 기회를 틈타 무성에서 자리를 잡으려고 해.”“그러면 그 시작은 이 돈을 받는 것부터야.”여기까지 말한 하현은 한바탕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장모님도 지금 안 계시고 당신도 이미 몸이 어느 정도 회복되었다면 지금 백양몰에 가 보는 것도 괜찮아. 내가 같이 가 줄게.”“그 이십억 돌려받자!”설은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빙긋이 웃었다.“아니야. 사실 나 이미 브로커 구했어.”“이 브로커가 돈을 회수해 올 거라고 믿어. 그녀한테는 조금의 수수료만 주면 돼.”설은아가 이렇게까지 자신만만해하자 하현은 말없이 웃기만 할 뿐이었다.이 여자도 이미 비즈니스 업계에 몸담은 지 꽤 오래되었으니 나름의 생각이 있을 것이다.그래서 하현은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보태지 않고 설은아가 일을 처리하는 걸 조용히 지켜보기로 했다....“형부, 여기서 만나네요!”병원을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하현이 택시를 타고 도끼파 본거지로 돌아왔을 때 멋진 BMW 스포츠카 한 대가 멈추어 있는 것이 보였다.곧이어 젊고 아름다운 두 여자가 나왔는데 두 사람은 나이도 엇비슷하고 몸매도 비슷비슷했다.둘 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다웠다.앞에 선 여자는 바로 어제 하현과 함께 무성 신시가지 분양 현장에 달려간 설유아였다.설유아의 옆모습은 방금 피어난 꽃 같았다.피부가 매끈하다 못해 눈처럼 뽀얗고 보드라워 시선을 뗄 수가 없었다.하현은 그저 곁눈질로 설유아를 흘깃 보며 말했다.“왜? 언니가 이제 회사로 돌아가 모든 걸 장악하겠다고 하니까 바로 이렇게 온 거야?”설유아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형부, 전 원래 사업에는 소질이 없어요. 그래도 뭐 연기다 생각하고 했죠.”“이제 언니도 돌아왔으니 이참에 며칠
”네?”여자의 이름은 이가음이었다.그녀는 하현이 하는 말을 듣고 눈이 휘둥그레졌다.그녀는 무의식적으로 설유아의 곁으로 몇 걸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유아야, 네 형부한테 뭔가 문제 있는 거 아니야?”“왜 여자한테 저런 걸 묻는 거야?”“아니면 너 말대로 결혼 후 3년 동안 한 번도 네 언니랑 잠자리를 못 해서 변태가 된 거야?”분명 설유아와 이가음은 전에 하현에 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는 것 같았다.그래서 지금 하현을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은 의심으로 가득 찼다.설유아는 난처해하며 말을 더듬었다.“아, 가, 가음아. 우리 형부 그런 사람 아니야. 네가 오해한 거야.”“예전엔 내가 철이 없어서 이 말 저 말 막 했던 거야.”설유아는 어색함을 달래려 허둥지둥 입을 열었다.“가음아, 우리 형부 아주 능력 있는 사람이야.”“괜히 그런 걸 물어보진 않았을 거야.”“설마 형부가 말한 것처럼 너 불면증에 시달리는 건 아니지?”이가음은 망설이다가 고개를 끄덕였다.“유아야, 설마 네 형부 돌팔이 흉내 내며 돈 뜯어내려고 이러는 건 아니지?”“남의 몸 상태를 보고 겁을 줘서 돈을 뜯어내려는 사람이 있다고 들었어.”설유아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도무지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오히려 옆에서 하현이 눈살을 찌푸리며 입을 열었다.“아, 난 그런 사람은 아니에요.”“그리고 당신은 아무 병도 없어요.”“그런데 최근에 고분이나 음산한 야산의 고택 같은 곳을 드나든 적이 있어요?”이가음은 하현을 보고 변태가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의 말을 듣고 다리가 후들거렸다.“맞아요. 지난주에 촬영 오픈한다고 황폐한 마을에 있는 오래된 저택에 갔었는데 관이 하나 있었고 분위기가 너무 음산했어요.”“그런데 난 거기서 30분도 안 되어 나왔는 걸요.”“그렇긴 하지만 확실히 거기 다녀온 후부터 잠을 잘 못 자기는 해요.”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당연히 관계가 있죠.
이가음이 이렇게 떠나는 것을 보고 하현은 마뜩잖은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설유아도 싫은 티를 내며 말했다.“이가음도! 너도 참! 우리 형부 그런 사람 아니라니까!”“형부를 저렇게 못 믿다니!”하지만 이가음을 나무라던 설유아는 잠시 머뭇거리다 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형부, 방금 한 말 사실이에요?”“가음이한테 정말 그런 기운이 있어요?”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말했다.“이제 슬슬 그 불길한 기운이 재앙이 되어 올라올 거야.”“참. 처제도 가까이 있으면 불길한 기운이 전염될 수 있어. 유비무환이라잖아?”하현은 말을 마치며 티슈를 한 장 꺼내 자신의 피를 몇 방울 떨어뜨린 뒤 설유아에게 건네주었다.“아!”설유아는 고분고분 고개를 끄덕이며 약간은 안심이 되는 듯 자신의 주머니에 넣었다.“참.”뭔가가 떠오른 듯 설유아가 고개를 들었다.“형부, 방금 가음이랑 다른 대학 동기들이랑 롤플레이 놀이 하러 가기로 약속했어요.”“같이 가실래요?”“롤플레이?”이 말을 듣고 하현은 잠시 멍해졌다.“그건 뭐 하는 거야?”설유아가 세심하게 설명해 주었다.“사실 연극 같은 거 하면서 노는 거예요.”“롤플레이에 참여하는 사람마다 대본이 있어요. 다른 역할을 연기하는 것이 너무 재미있어요.”“오늘은 일제강점기 시절 첩보 시나리오예요.”하현은 무슨 얘기인지 대충 알아들을 것 같았다.롤플레이란 대형 역할 놀이였고 어른들의 소꿉놀이 정도되는 듯했다.그러자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처제, 형부가 그렇게 느긋한 팔자가 되지 못해.”“요즘 너무 바빠서 나 좀 쉬려고.”“놀고 싶으면 처제나 잘 놀고 와. 너무 늦지 말고.”“한여침한테 사람을 보내 나중에 데리러 오라고 할 테니까 꼭 기억하고.”“아, 알겠어요.”설유아는 약간은 서운한 듯 입을 삐죽거렸다.그녀는 원래 하현도 같이 이 놀이를 했으면 했었다.그렇게 되면 부부나 연인, 친구 역할도 할 수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가음의 부상은 심각하지는 않아 생명에는 지장이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놀라서 기절했다.상처를 감싸고 누워서 계속 경련을 일으켰고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반응이 없었다.설유아도 놀라서 몸을 벌벌 떨었다.총을 쏜 사람은 다름 아닌 그녀였기에 그럴 수밖에 없었다.설유아는 소품용 총이 진짜일 줄은 꿈에도 몰랐고 실탄이 들어 있을 줄은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다.방아쇠를 당겼을 때 반동이 너무 심해서 빗나가지 않았더라면 이가음은 지금쯤 죽었을지도 모른다.그 생각이 설유아를 소름 끼치게 만들었다.그래서 그녀는 큰일이 났다는 것을 알고 가장 먼저 하현에게 전화를 걸었고 하현은 자초지종을 다 들은 후 날듯이 설유아가 알려준 장소로 향했다.무성 촬영 세트장은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곳이라 곳곳에 불이 켜져 있었다.설유아는 작은 벤치에 앉아 벌벌 떨고 있었고 친구들이 생수 한 병을 건넨지만 도저히 마실 수가 없었다.현지 경찰서에서 사람이 와 이 일을 조사하고 있었고 롤플레이 놀이장은 이미 통제되었다.설유아의 대학 동기들도 모두 남아 조서를 작성해야 했다.특히 경찰관 두 명은 멀리서 설유아를 지켜보고 있었다.그들은 설유아의 행동에 고의가 없었다고 할지라도 사정상 그녀의 곁을 떠날 수는 없었다.“유아야, 그래도 운이 좋았어. 총이 빗나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사람이 죽었을 거야.”“그런데 참 이상하네. 어떻게 총알이 들어 있었지?”“누가 이가음에게 손을 대려고 했었나? 오늘 롤플레이에서 가음이가 저 역할을 할 줄 어떻게 알고?”“좀 냄새가 나. 분명 누군가 사람을 해치려는 의도로 한 짓일 거야.”“유아야, 겁내지 마. 이 일은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일이야.”“우리 모두가 피해자야.”설유아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녀의 동기들이었고 남자들도 섞여 있었다.다들 즐겁게 놀이에 열중하고 있는데 이런 일이 생길 줄은 꿈에도 몰랐다.동기들은 모두 단합된 편이었고 어느 누구도 설유아를 탓하지 않았다.어쨌
”이가음!”“괜찮아?”“가음아! 엄마야!”이때 화려한 옷을 차려입은 중년 여자가 여러 명의 여자들을 데리고 나타났다.이들은 걱정 가득한 얼굴로 한달음에 이가음 곁으로 다가와 펄쩍펄쩍 뛰며 소리를 질렀다.진 선배는 얼른 일어나 깍듯이 인사했다.진 선배는 무성 사람이 아니어서 이 부인이 누구인지 모른다.오히려 다른 동기들이 수군수군거리기 시작했다.“이가음의 어머니셔.”“무성 파트너스 일원이고 무성 신시가지 프로젝트에도 참여했대. 집안에 돈도 많다고 들었어.”“이가음 아버지가 더 대단하대.”“부잣집이래. 오늘 우리가 여기서 놀자고 가음이한테 말했는데 어떻게 해? 우린들 이런 일이 생길 줄 알았겠어?”몇몇 동기들은 모두 부러운 얼굴로 말했다.어쨌든 이가음의 집안이 너무 좋아서 그녀는 평생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부족함 없이 살 수 있었다.다른 학생들은 기본적으로 평범한 집안 출신들이었고 중산층이라고 해도 이가음의 집안과는 비교할 만한 게 아니었다.그래서 모두 그녀의 집안에 대해 부러운 시선을 보낸 것이다.이때 이가음의 엄마는 진 선배를 보자마자 꾸짖으며 뺨을 두 대 날렸다.마치 어린아이를 나무라듯 오만불손한 태도였다.진 선배는 두 대를 얻어맞고도 화를 내기는커녕 나지막이 뭐라고 설명하면서 설유아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유아야, 이건 아닌 것 같아.”“진 선배가 너한테 책임을 다 떠넘기려는 것 같아.”“내가 듣기로는 이가음 엄마가 보통이 아니라고 하더라고. 얼른 경찰관을 찾아가서 말해. 그렇지 않으면 일이 더 복잡해질 것 같아.”몇몇 동기들은 이가음의 집안에 대해 분명 잘 아는 것 같았다.그녀의 집안이 어떤 횡포를 부릴지 짐작이 가는 듯 얼른 설유아에게 말한 것이다.설유아는 그들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해하며 입을 열었다.“책임을 다 떠넘긴다고?”“이번 일에 있어서는 나도 피해자야!”“진 선배가 왜 나한테 다 떠넘기려고 하겠어?”초조해하는 동기들의 설명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