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음의 엄마는 한기 어린 눈빛으로 매섭게 설유아를 쳐다보며 말했다.“내가 널 왜 때렸는지 몰라서 물어?”“천한 것! 나 이미 다 알고 왔어!”“네가 방아쇠를 당겨서 내 딸을 죽이려 했잖아?!”“일부러 그런 거 다 알아! 우리 딸이 부러워서 그런 거잖아!”“소품이지만 총알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내 딸한테 총을 쐈잖아! 그러면서 지금 무슨 억울한 척을 해? 이러고도 내가 널 왜 때렸는지 모르겠어?”이가음의 엄마는 기세등등하여 앞으로 나와 설유아를 향해 또 뺨을 때리려고 했다.“툭!”이번에는 마음의 준비가 된 설유아가 부인의 손을 막으며 말했다.“어머니, 말씀은 제대로 하셔야죠!”“우린 그냥 놀러 왔을 뿐이에요.”“여기 있는 모든 건 그냥 소품이에요!”“시나리오에 있는 대로 그냥 했을 뿐이라구요!”“이런 일이 생겨서 정말 죄송하게 생각해요!”“하지만 그건 절대 고의가 아니었어요. 저도 피해자라고요!”설유아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그 총안에 진짜 총알이 들어 있다는 걸 알았다면 내가 어떻게 방아쇠를 당겼겠어요?”“저도 후회하고 있고 무거운 죄책감을 느끼지만 이 일의 모든 책임을 전부 저한테 떠넘기는 건 말이 안 돼요!”“어머님이 화가 나고 기분이 나쁘신 건 알겠지만 제대로 아셔야 할 것 같아서 말씀드린 거예요!”설유아는 자신의 억울함을 설명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이가음의 엄마는 못마땅한 듯 얼굴을 부르르 떨며 천천히 말했다.“이년아! 네가 천 번 만 번 말해 봐도 네가 총을 쐈다는 사실은 바꿀 수가 없어!”“내 딸이 너 때문에 죽을 뻔했어!”“내 딸이 너보다 조건도 더 좋고 예쁜 게 부러워서 일부러 방아쇠를 당겨 죽이려고 한 게 틀림없어!”“내 말 똑똑히 들어. 사람을 죽이면 목숨으로 빚을 갚아야지! 이건 당연한 이치야!”“스스로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고! 알았어?”“내가 방금 네 뺨을 때린 건 단지 세상을 좀 알라고 교훈 차원에서 한 훈계일 뿐이야!”
몇몇 동기들이 올라와서 싸움을 말리려고 했지만 결국 이가음의 엄마의 흉악한 모습을 보고 그들 모두는 겁을 먹고 설유아가 당하는 걸 그대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이년아! 넌 분명히 내 딸한테 빌붙어 있는 게 틀림없어!”“내 딸이 사주는 거 먹고, 내 딸을 이용해서 득을 보려고 한 거지! 그러다 질투가 나서 내 딸을 죽이려고 한 거야, 맞지?”“너 같은 사람은 죽어 마땅해!”이가음의 엄마는 또 설유아의 뺨을 때렸다.결국 이가음의 엄마는 지쳤고 그때 설유아의 에르메스 가방이 눈에 들어왔다.설유아의 에르메스 가방을 움켜쥐고 이가음의 엄마는 냉랭한 표정을 지었고 설유아 같은 여자가 이런 비싼 가방을 살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이 가방은 수천만 원에 달하는 비싼 물건이었다.틀림없이 자신의 딸에게서 돈을 뜯어 산 것이 분명했다.그러자 이가음의 엄마는 더욱더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설유아의 가방 안에 있는 모든 물건을 다 쏟아냈고 지나가던 사람들에게 다 줘 버렸다.“이 노트북 가져요!”“핸드폰도 여기 있네!”“지갑도 여기 있고!”“이년 대신 내가 좋은 일이나 해야겠어!”이가음의 엄마는 설유아의 물건을 모두 다른 사람들한테 줘 버린 뒤 스스로 설유아의 에르메스 가방을 챙겼다.에르메스 가방만은 다른 사람들에게 주기 아까웠던 모양이었다.이를 본 설유아는 화난 얼굴로 말했다.“내 물건에 손대지 마세요! 모두 내 형부가 사 준 거라고요!”“어서 돌려주세요!”설유아의 값비싼 물건들을 받은 사람들은 싱글벙글하며 얼른 물건을 숨겼다.롤플레이 놀이 하러 왔다가 이런 횡재를 맞을 줄은 몰랐다.그들은 부인의 호탕함에 감사하기만 할 뿐 설유아의 억울함에는 관심이 없었다.“형부가 줬다고?”“너 같은 여자한테 형부가 왜 줬을까? 잠이라도 잔 거야?”“나이도 어린 년이 어디서 못된 짓만 배워 가지고!”“퉤!”“그러고도 대학생이냐?”“참,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르겠군!”말을 마치며 이가음의
이가음의 엄마는 화를 참지 못하고 앞으로 나와 설유아를 발로 걷어차 넘어뜨렸다.“감히 내 딸을 죽이려 하다니!”“죽어라, 이년!”“아비도 없는 이 천한 년!”“아무도 가르쳐 주지 않으니 내가 가르쳐 줄 수밖에 없지!”“너 같은 건 내 딸이랑 어울려선 안 된다는 걸 알았어야지! 어른을 공경하고 마음을 곱게 먹었어야지!”이가음의 엄마는 흉측한 얼굴로 마구잡이로 설유아에게 달려들었다.설유아의 예쁘장한 얼굴을 보니 더욱 화가 치밀어 올라 스스로도 제어가 안 되는지 이가음의 엄마는 하이힐로 설유아의 얼굴을 밟으려 했다.“이년! 죽어라! 어서 죽어!”설유아는 얼굴만은 밟히지 않으려고 온몸을 웅크리며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결국 설유아의 온몸은 상처투성이가 되었고 여기저기 피가 흘러내려 보기 딱할 지경이었다.“흥! 감히 내 손을 막아?!”“오늘이 네 제삿날인 줄 알아!”“어디서 그따위 행동을 해?!”“어서 이 여자 옷을 벗기고 기념으로 사진도 몇 장 찍어!”이가음의 엄마와 함께 온 남자들이 이 말을 듣고 음흉한 미소를 지으며 앞으로 나왔다.설유아 같은 청순한 여대생은 여태껏 한 번도 손대 보지 못한 그들은 이 기회를 절대 놓칠 수가 없었다.“퍽!”설유아는 이런 치욕을 당할지언정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해서 바로 머리를 땅바닥에 찧었고 그대로 기절하고 말았다.이 모습을 본 이가음의 엄마는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가 이내 사나운 미소를 내걸며 설유아의 동기들에게 시선을 던졌다.“기절했다고 내가 이대로 넘길 줄 알아? 천만에! 난 절대 이 일을 여기서 끝내지 않을 거야!”“너희들! 이 여자 잘 보고 있다가 깨어나면 나한테 말해!”“난 내 딸부터 챙겨야겠어!”...하현이 무성 촬영 세트장에 도착했을 때 설유아는 이미 임시 진료실로 옮긴 상태였다.설유아의 동기들은 본인들도 무서움에 벌벌 떨었지만 설유아를 우선 임시 진료실로 보낸 것이다.그러나 임시 진료실 의사와 간호사들은 모두 이가음의 엄마 비위를
”말도 안 되는 소리 좀 하지 마세요!”한 학생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분명히 유아도 피해자예요. 이가음 엄마가 분풀이를 할 데가 없으니까 유아를 잡은 거라고요!”말을 시작한 김에 이 학생은 방금 일어난 모든 일을 털어놓았다.이가음의 엄마가 설유아의 옷을 벗기고 사진을 찍으라고 한 것도 포함되었다.이 학생들은 하현이 설유아를 보호해 줄 사람이라고 추측한 것이다.하현은 이가음의 엄마라는 사람이 도대체 어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끓어오르는 화를 참을 수가 없었다.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하현은 점차 냉정을 되찾았다.“야, 너희들 이가음 엄마가 누군 줄 알기나 해? 알고나 이렇게 비난하고 드는 거야?”의리 있는 동창들에게 눈을 흘기며 한 학생이 냉랭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너희들 어쩌려고 그래? 겁도 안 나?”“방금 너희들이 이렇게 말한 거 내가 이가음 엄마한테 다 말하면 너네 어쩌려고 그래? 너희들도 옷이 찢긴 채로 저렇게 당하고 싶어서 그래?”롤플레이를 하던 다른 사람들도 냉소를 흘리며 학생들의 몸을 훑어보았다.그들은 이 친구들의 몸까지 샅샅이 털고 나면 얼마나 많은 콩고물이 떨어질까 벌써부터 기대가 되는 모양이었다.사실을 털어놓았던 설유아의 친구들은 하나같이 겁을 먹고 눈이 움츠러든 채 자신들도 모르게 하현의 뒤로 몸을 숨겼다.벌써부터 겁을 먹은 게 분명해 보였다.하현은 이 학생들을 뒤에 두고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내가 온 이상 누구도 당신들을 괴롭힐 수 없을 테니까.”사팔뜨기 여자는 하현의 말을 듣고 하현을 위아래로 쓱 훑어보며 말했다.“어쭈! 이분은 허풍 떠는 게 직업이신가?”“아직도 정신 못 차린 거예요?”“당신이 뭐라도 되는 줄 알아요?”“뭐? 지구를 구한 아이언맨이라도 돼요? 배트맨이라도 되는 거예요?”“정의의 사도로 빙의라도 할 거예요?”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 여자를 곁눈으로 힐끔 쳐다보았다가 그녀의 손에 있는 핸드폰에 시선을 돌리며
하현은 사팔뜨기 여자는 상대하지 않고 진료실에 있는 도구들을 이용해 얼른 설유아의 응급처치를 도왔다.다행히 설유아가 다친 곳은 모두 외상이었고 하현은 전장에서 이런 경험들이 많았던 터라 순조롭게 처치할 수 있었다.10분 후 무성 촬영 세트장 입구에 경찰차 10여 대가 번쩍거리며 멈춰 섰다.차 문이 열리고 무성 경찰서 소대장이자 설유아의 대학 동창인 목영신이 경찰들을 대동하고 싸늘한 표정으로 걸어왔다.무성 촬영 세트장 경비원 두 명이 막아 보려고 했지만 힘도 써보지 못하고 땅바닥에 넘어졌다.곧이어 경찰관들이 줄지어 의료실로 들어왔다.목영신은 복잡미묘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하현, 당신이 신고한 사람입니까?”10분 만에 경찰들이 들이닥치자 사팔뜨기 여자는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일이 이렇게 급변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 같았다.아무런 힘도 권력도 없어 보이는 하현이 순식간에 이렇게 많은 경찰들을 불러들일 줄은 아무도 몰랐다.“설유아는 핸드폰, 노트북, 지갑, 현금, 화장품 등 모든 소지품을 다 빼앗겼어요...”하현은 이미 설유아의 친구로부터 빼앗긴 물건들을 조사했고 거림낌 없이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난 이 물건들이 원래 주인에게 돌아가길 바랄 뿐이에요!”“강도짓에 가담한 자는 모두 잡아들여 법에 따라 처벌해야죠!”하현은 사팔뜨기 여자를 가리키며 냉담하게 말했다.“저 여자부터 시작하시죠!”사팔뜨기 여자는 눈꺼풀이 갑자기 움찔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나 아니에요! 정말 나 아니라구요! 물건들은 모두 저 부인이 나한테 준 거라고요!”목영신은 냉랭한 표정으로 하현이 건네준 물건들 리스트를 쓱 보고는 사팔뜨기 여자에게 다시 눈길을 돌렸다.“잡아!”경찰관 몇 명이 쏜살같이 달려들어 도망치려던 사팔뜨기 여자를 발로 차 넘어뜨렸다.다른 여자들은 얼굴이 사색이 된 채 어쩔 줄을 모르다가 모두 그 자리에서 잡혔다.사팔뜨기 여자는 끝까지 고개를 빳빳이 들고 큰소
”왜 이러시는 거예요?”“뭐 하는 거냐구요?”“영장 있어요?”“아무렇게나 여기 들어와서 사람을 잡아가도 돼요? 여기 CCTV 많아요!”“당신들 함부로 행동하다간 나중에 큰 코 다칠 거예요!”이때 바깥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예닐곱 명의 남녀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선두에 선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진 선배였다.방금 이가음의 엄마 앞에서 비굴하게 굽실거리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노기 어린 얼굴로 목영신 일행을 가리키며 무서운 기세로 돌진했다.“경찰서 사람들은 머리도 없어요?”“여기가 무성 촬영 세트장인 거 몰라요?”“영장 없이, 우리의 동의 없이 경찰서 사람들은 이곳에 한 걸음도 들여놓을 수 없어요!”“3분만 시간을 줄 테니 어서 다 풀어주세요!”“그리고 모두 철수하세요!”“그렇지 않으면 각오하세요. 전화 한 통이면 모두 그 제복들 벗게 될 테니까!”진 선배는 아까 롤플레이 놀이에서 사장 역할을 해서인지 아니면 정말로 여기 무성 촬영 세트장에 지분이 있는 건지 정말로 주주처럼 행동했다.마치 지금 무성 촬영 세트장의 사장처럼 굴었다.그래서 경찰관들 앞에서도 그는 여전히 기세등등하고 사람들을 잡어 먹을 듯 호통쳤다.“퍽!”하현은 무덤덤한 얼굴로 다가가 진 선배의 뺨을 한 대 갈겼다.진 선배는 갑자기 하현에게 뺨을 맞아 비틀거리다가 겨우 중심을 잡았다.자칫하다간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그는 벌건 손자국이 선명한 얼굴을 감싸쥔 채 피가 섞인 이빨을 툭 뱉은 후 발끈 화를 내며 말했다.“개자식! 감히 나를 쳐?!”몇몇 동기들은 진 선배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아까 이가음의 엄마 앞에서는 배알도 없는 사람처럼 굽신거리더니 갑자기 사람이 탈을 바꿔 쓴 것처럼 격분해서 날뛰는 것이었다.분명 별것 없는 보통 사람인데 왜 이렇게 버럭 하는 거지?“퍽!”“그래. 내가 당신 때렸어? 어쩔 건데?”“퍽!”“당신이 감히 사장이라도 돼서 경찰한테 영장 어쩌구 하는
”당신 말 다 했어요?”진 선배는 하마터면 목영신에게 쌍욕을 할 뻔했다.화가 치밀어 오른 나머지 그는 오른손을 들어 목영신을 가리키며 부르르 떨었다.하현은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닦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설유아를 이렇게 만든 일, 어떻게 설명할 거예요?”진 선배는 얼굴을 가리고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설명은 무슨 설명! 설명할 게 뭐 있어요?!”“설유아가 이가음한테 총을 쐈으니 이가음 엄마한테 그렇게 맞은 거죠, 뭐. 누굴 탓해요? 자업자득이지!”“자식이 그 꼴을 당하는 데 가만히 있을 엄마가 어디 있겠어요?”“그리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있어요?”“퉤! 내 말 똑똑히 들어요!”“경찰서에 아는 사람 좀 있다고 거들먹거리지 마세요!”“내 전화 한 통이면 당신들은 바로 끝장이에요!”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뺨을 맞았으니 진 선배는 어떻게 해서든 무너진 체면을 일으켜 세워야 했다.지금 제대로 반격하지 않으면 절대로 뼈아픈 이 순간을 만회할 수 없을 것 같았다.“그래요? 정말 한 번 해 보자는 건가?”하현은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그럼 전화하세요. 내가 30분 동안 기다려 드리지.”“무성에서 누가 감히 당신을 지지하고 나서는지 보자구요!”진 선배는 잠시 어리둥절하며 당황스러워했다.하현이 이렇게 당당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그러나 지금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그러면 지는 것이다.그래서 진 선배는 이를 악물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진 선배가 전화를 끊은 뒤 한 15분 정도 지났을 때 문밖에서 위엄 서린 목소리가 들렸다.“나이도 어린 사람이 함부로 날뛰면 어쩌자는 거야?”“어느 낯짝이 그리 겁도 없는지 한번 구경 좀 하지! 어디서 온 놈인데 무성 촬영 세트장 규칙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내 말 잊었어?”“내 명령 없이는 누구도 무성 촬영 세트장에 들어올 수 없다고 말했을 텐데?!”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십여 명의 사람들이 거만한 자태로 걸어 들어왔
방금까지 우격다짐으로 좌중을 압도하던 성경무는 망설임 없이 무릎을 꿇고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진 선배 일행은 모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거대한 태산 같던 성경무 서장이 어떻게 하현을 보자마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을 수가 있는가?하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다니!하현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이었다.그의 기억이 맞다면 성경무는 이미 날개 꺾인 처지가 되었다.하지만 성경무는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여전히 밖에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악한 짓을 도맡아 하고 있었던 것이다.오늘 하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왔으면 서슬 퍼런 성경무의 기세에 완전히 짓눌렸을지도 모른다.“이리 와 봐!”하현은 성경무에게 검지를 까딱거리고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성경무는 머리가 쭈뼛쭈뼛 섰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방금 자신이 내뱉은 말과 경고를 떠올리자 그는 눈앞이 캄캄해져 왔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어쩔 수 없이 그는 한껏 비위를 맞춘 얼굴로 하현에게 다가갔다.그러자 진 선배 일행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성경무를 바라보았다.“하현, 미안해.”“모든 게 다 내 잘못이야.”“내가 이러면 안 되는...”“무릎 세워.”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어 성경무의 말을 끊었다.성경무는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면서도 이를 악물고 몸을 꼿꼿이 세우고 가슴을 편 뒤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어 보였다.“퍽!”하현은 손바닥으로 그의 왼쪽 뺨을 때렸다.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모든 사람들의 고막을 무섭게 때렸다.성경무의 몸이 사정없이 뒤흔들렸고 얼굴에는 커다란 손바닥 자국이 생겼다.하지만 그는 조금도 화난 기색 없이 무릎을 꿇고 비위를 맞추었다.하현은 검지를 빙글 돌리며 무표정하게 말했다.“오른쪽 얼굴.”성경무는 급히 자신의 오른쪽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퍽!”하현은 세차
우다금은 욕지거리를 퍼부으며 일어서더니 하현에게 달려왔다.“당신 여기 뭐 하러 왔어? 어?”“설마 당신 장모가 우릴 미행이라도 하라고 시켰어?”“떠도는 소문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어. 당신 처가는 이제 파산이야!”“그래서 우리를 따라다니며 어떻게든 우리 덕을 보려고 하는 거지!”우다금은 최희정 일가에 대한 미움이 최고조로 달한 것 같았다.도움이 필요할 때는 그렇게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더니 이제 자기 딸이 탄탄대로를 걸을 것 같으니까 사위를 대동해 뭐라도 덕을 보려고 치근덕거리다니!무슨 말도 안 되는 짓거리야!“썩 꺼져! 꺼지라고!”우다금은 먹이를 앞에 두고 다툼을 벌이는 사자처럼 포효했다.“어쨌든 형 씨 가문 그룹에서 너 같은 놈을 경비로 부를 일은 없어!”“형 씨 가문 그룹이 어떤 곳인지나 알아?”“제대로 된 졸업장이 없으면 발도 들이지 못할 그룹이야!”“모두가 우리 딸처럼 능력이 뛰어난 줄 알아?”하현은 무지막지하게 퍼붓는 우다금의 억지에는 대꾸하고 싶은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하현이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자 우소희는 옆에서 비아냥거리는 미소를 한껏 떠올리며 말했다.“하 씨! 들었어?”“이곳은 당신 같은 데릴사위가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니야!”“빨리 꺼져! 안 꺼져?!”“어서 꺼지라고! 우리가 당신 같은 사람을 안다는 걸 무 팀장님이 알기라도 한다면 우리 품위가 완전히 떨어진다고!”말을 하면서 그녀는 하현을 밀치려고 했다.하현의 존재가 그녀들에게는 피나 빨아먹는 거머리처럼 보였던 것이다.이렇게 된다면 앞으로 그녀가 형 씨 가문 그룹에서 어떻게 잘생긴 갑부들을 낚을 수 있겠는가?하현이 한 발짝 물러서며 우소희의 손을 피했다.그녀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혐오스러워서였다.그는 소위 말하는 몰상식한 사람들과는 조금도 접촉하고 싶지 않았다.하현이 감히 자신의 손을 피하는 것을 보고 우소희는 자존심이 확 상했다.뭔가 모욕당한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그녀는 프런트 데스크 직원
두 모녀를 본 하현은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예정대로라면 우소희는 오늘 아침 일찍 출근 보고를 하러 올라갔을 텐데 왜 로비에 이렇게 있는 것인가?결국 하현은 우다금이 전화기에 대고 울먹거리며 누군가와 통화하는 소리를 듣게 되었다.“인사팀 팀장님 맞으시죠?”“안녕하세요. 저는 우소희 엄마, 우다금입니다.”“아, 맞아요. 맞아요. 바로 오늘 출근하려던 우소희예요! 좋은 연봉으로 입사하게 된 우소희요!”“사실은 어제 너무 기뻐서 온 가족이 축하하느라 우리 딸이 술을 너무 먹어서 오늘 알람 맞추는 걸 깜빡했지 뭐예요!”“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어쨌든 우리 소희는 인재잖아요! 그러니 좀 너그럽게 봐주시면 어떨까 해서요.”하현은 어이가 없었다.정말로 가지가지 하는 진상 모녀였다.어렵게 형 씨 가문 그룹에 취직을 시켜줬더니 지각을 해?그러고도 자신들이 아주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거야?“아, 그렇다고 너무 걱정은 마세요.”“우리 딸이 여기 입사하겠다고 했으니 다른 데 가지는 않을 거예요.”우다금은 여전히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우리가 여기 로비에 있는데 팀장님이 좀 내려와서 데려가 주면 안 될까요?”“아, 그리고 점심은 너무 오버할 필요없이 고위층 몇 명과 자리를 마련해서 인사시켜 주면 됩니다.”“참고로 우리 딸은 82년산 라피트만 마셔요. 피부가 상할까 봐 고급술만 마시죠.”“그럼 기다리고 있겠습니다.”말을 마친 우다금은 의기양양한 얼굴로 전화를 끊은 뒤 우소희를 쳐다보았다.“걱정하지 마. 그렇다고 많이 늦은 것도 아니잖아?”“우리 딸 같은 출중한 인재를 모셔가는 형 씨 가문 그룹이 이 정도도 못 참으면 어쩌겠다는 거야?”“네가 이 회사에 오지 않는다면 형 씨 가문 그룹은 석 달도 안 되어서 문을 닫을 거야!”“아마 무 팀장이 곧 내려와서 우릴 맞이할 거야.”우다금의 말에 프런트 데스크의 예쁜 직원과 잘생긴 경비원은 서로 눈을 마주 보며 어이없다는 눈빛을 주고받았
한바탕 휘몰아치고 맞이한 밤은 모두에게 평온함을 쉽사리 가져다주지 못했다.최희정은 가끔 이를 악물었다가 화가 나서 헐떡거렸다가 도저히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였다.이튿날 아침 하현은 일찌감치 일어나 동네를 한 바퀴 돌고 난 뒤 옷을 갈아입고 간민효와 풍수관 일을 상의하기 위해 나서려고 했다.그런데 그가 대문을 나서자마자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하현이 전화를 받자마자 형나운의 간드러지는 목소리가 들려왔다.“사기꾼...”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또 맞고 싶어?”하현의 말속에 은근하게 퍼지는 매서운 기운을 감지한 형나운은 자신도 모르게 긴장했고 목소리를 가다듬은 뒤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시간 좀 있어요?”하현은 무심하게 내뱉었다.“시간 없어. 가게를 보러 가야 해. 바빠.”“당신이 원하는 가게, 나한테 없을 것 같아요?”형나운은 어이가 없다는 말투로 계속 말을 이었다.“당신이 원하는 걸 말해 봐요. 내가 삼백 개는 더 보여줄 수 있어요.”“아니야. 필요없어. 내가 찾을 수 있어.”하현은 단칼에 거절했다.“무슨 일로 전화했어? 할 말 없으면 끊어.”“아, 정말 이럴 거예요? 당신이 어제 나한테 부탁한 일 다 처리해 줬는데 이제 와서 입 싹 닦을 거예요?”형나운은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목소리를 높였다.하현은 이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역시 그냥 넘어갈 여자가 아니지.하현이 뭐라고 말을 하기도 전에 형나운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바로 말했다.“나의 주인님, 지금 하녀를 도와줄 시간이 좀 있을까요?”“오늘 아침에 일어나 무술을 연마하는 데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어요. 왜 그런지 알 수가 없어요.”“지금은 머리도 아프지 않고 잠잠해졌지만 불안해서 이대로 있을 수가 없어요.”“이러다 어느 날 갑자기 숨이 멎고 식물인간으로 살게 되면 어떻게 해요?”“그래서 이렇게 부탁하는 거예요. 주인님, 오늘 잠시 와서 나 좀 봐주면 안 돼요? 주인님이라면 날 구해 줄 수 있
”너희들은 기껏해야 대구 정 씨 가문 아홉 번째 집안이야. 형홍익 같은 사람이 봐줄 사람들이 아니라고!”“데릴사위 따위가 중간에서 역할을 했다고? 그렇게 잘났다고?”“허풍을 떨어도 좀 그럴싸하게 해야지! 흥!”우다금은 이 일에 하현이 중간 역할을 했을 리가 없다고 철석같이 믿었다.“아니, 언니!”우다금이 펄쩍 뛰는 모습을 보고 최희정은 화가 나서 몸을 부르르 떨었다.비록 그녀도 하현이 그런 능력이 있을 거란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우다금의 말엔 참을 수가 없었다.“자네, 어서 자네가 도와줬다고 말해!”최희정은 우소희의 그 정도 능력으로는 SL그룹에도 못 들어올 거라 생각했다.그런데 어떻게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갈 수 있겠는가?그래서 하현이 정말로 형홍익과 잘 알고 지내는 사이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특히 무성에서의 일을 떠올리자 최희정은 하현이 확실히 어떤 거물과 인연을 있는 것이 틀림없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비록 죽일 듯이 하현을 싫어하는 최희정이지만 우다금이 뻔뻔스럽게 모든 일을 자신들의 공으로 돌리는 걸 가만히 두고 볼 수는 없었다.설은아의 난처한 표정을 본 하현은 한숨을 내쉬었다.“이모님...”“이, 이모라니?!”하현이 뭐라고 해명을 하기도 전에 우다금은 앞뒤 따져 보지도 않고 무지막지한 얼굴로 퍼부었다.“이모라니? 내가 어떻게 당신 이모야? 누가 당신 이모냐고?”“데릴사위 주제에 함부로 입 놀리지 마!”“그렇지 않으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쓸데없는 말 하지 마!”“우리 소희가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게 되었으니 나도 이제 너네들같이 속물 덩어리들과는 상대하지 않을 거야!”“아까는 온갖 이유를 대며 도와주지 않으려고 데릴사위 하나까지 핑계를 갖다 붙이더니 이제 와서 내 딸이 좋은 곳에 들어간다니까 어떻게든 생색내려는 거잖아?”“정말 이렇게 뻔뻔한 사람들은 처음 봐!”“내가 다시는 이 집에 발을 들이나 봐!”“우리 소희가 이제 탄탄대로를 걷게 되었다고 절
말을 하면서 우소희는 득의양양한 미소를 보였다.결국 형 씨 가문 그룹에서는 그녀의 체면을 세워 주며 높은 급여를 제시한 것이다.이만큼의 연봉을 받는다는 건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우다금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을 크게 떴다.“소희야. 정말 형 씨 가문 그룹이래? 잘못 들은 거 아니지?”“맞아, 똑똑히 들었어. 인사팀 사람들을 만났었는데 틀림없이 그 목소리가 맞아.”우소희는 만면에 자랑스러운 미소를 띠며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형 씨 가문이 정말 눈치 하난 빠르네.”이 광경을 보고 설은아는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과 형 씨 가문의 관계가 이렇게 공고하고 깊은 줄은 몰랐다.전화 한 통으로 이런 번거로운 일을 해결하다니!설마 간민효 때문은 아니겠지?그녀는 방금 하현이 전화할 때 건너편에서 여자 목소리를 어렴풋이 들은 것 같았다.금정에서 형 씨 가문을 이렇게 좌지우지할 수 있는 여자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하현은 질투의 그림자가 설은아의 얼굴에 드리워진 것을 눈치채고 쓴웃음을 지었다.그렇다고 형나운에게 전화했다고 털어놓을 수는 없지 않겠는가?자신이 또 다른 여자를 알게 되었다는 사실을 그녀가 안다면 질투의 화신이 모든 것을 집어삼키려 할지도 모른다!하현과 설은아가 서로 무언의 묘한 눈빛을 주고받는 동안 우다금은 이미 자신의 딸의 운명을 점찍었다.“잘됐어! 정말 잘됐어! 형 씨 가문에 들어가는 일만 남았어!”“하늘이 도왔어!”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일을 기회로 삼아 그녀는 친척들 사이에서 한껏 콧대를 세울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었다!“언니! 하늘이 도운 게 아니야!”최희정이 어떻게 자신의 체면이 구겨지는 일을 참을 수가 있겠는가?“하현이 언니를 도와준 거야!”이 말을 듣고 하현은 깜짝 놀랐다.최희정의 승부욕이 이토록 강할 줄은 몰랐다.“하현? 그 데릴사위가?”최희정의 말을 들은 우다금은 곁눈으로 하현을 흘겨보면서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귀가
최희정은 하현이 어디서 이 명함을 구했는지는 모르지만 자신도 모르게 시선이 쏠릴 수밖에 없었다.“맞아. 정말로 형홍익 명함인데?”우다금은 최희정의 말을 듣고 오히려 화를 버럭 내었다.“아휴! 잘난 데릴사위가 형홍익의 명함을 얻었으니 이제는 금정 최고 거물의 명함도 받을 수 있겠군그래!”“설 씨 집안도 대구 정 씨 가문과 연락이 닿아 아홉 번째 집안이 되어 꽤나 번성하고 발전했을 텐데 왜 이렇게 변한 거야?”“도와주고 싶지 않으면 그냥 말로 하면 되지 생색은 한껏 내면서 이런 핑계나 대고 있으니 원!”“정말 실망이야!”“이렇게 우릴 무시할 거면 확실히 말할 것이지! 앞으로 내가 절대 이 집안에 얼씬을 하나 봐! 절대 안 올 거야!’우다금은 노점에서 사 온 선물 꾸러미를 떠올리자 화가 나서 피가 거꾸로 솟을 것 같았다.그녀는 자신이 쓴 돈을 만회하기 위해 거실에 있는 찻주전자라도 가져가야겠다고 생각했다.우다금의 말에 최희정과 설재석은 어이가 없어서 몸을 부르르 떨었고 하마터면 피를 토할 뻔했다.설은아는 이 광경을 보고 자신도 모르게 하현의 손을 잡아끌었다.“하현, 당신이 좀 도와줘. 그렇지 않으면 우리 부모님이 정말...”이쯤 되니 설은아도 자신의 행동이 무리한 요구라는 생각이 들었다.하현과 최희정은 원래도 사이가 좋지 않았다.그런 하현이 최희정을 위해 나서서 우 씨 고모를 도와주려 하겠는가?설은아가 자신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것을 듣고 하현은 오히려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괜찮아. 이런 사소한 일로 형홍익 어르신을 귀찮게 할 필요도 없어. 내 하녀한테... 그러니까 내 친구한테 말 한마디만 꺼내면 돼.”말을 마치며 하현은 핸드폰을 꺼내 형나운에게 전화를 걸어 우소희의 취업 문제를 도와달라고 했다.그는 1분도 되지 않아 전화를 끊었고 우다금 모녀를 향해 고개를 들었다.“잘 해결되었습니다.”“거짓말하지 마!”“어디서 계속 장난질이야!”“데릴사위인 주제에 금정 최고 책임자라도 되는 양 허
”허! 제부! 시도도 안 해 보고 노력도 안 했는데 당신들은 처음부터 안 된다고 못 박고 있잖아요!”“그게 도와주겠다는 사람 태도예요?”우다금은 냉소적인 얼굴로 쏘아붙였다.“당신들이 우릴 친척이라고 생각했으면 어떻게 우리 소희를 도와주지 않을 수 있겠어요?”“제부, 난 관청에서 일하는 사람이에요!”“내가 자존심도 다 버리고 도와달라고 이렇게 애원하는데 사람을 이렇게까지 비참하게 만드는 건 좀 아니지 않아요?!”“정말 너무 뻔뻔들 하네!”최희정은 자신보다 더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처음이었기 때문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아무 말도 하지 못하다가 정신을 다잡고 이를 갈며 말했다.“지금 뭐라는 거야?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찾아온 언니를 내가 영광으로 생각하며 대했어야 한다는 거야?”“엄마, 아빠...”설은아는 또 말다툼이 시작되려 하자 걱정스러운 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자신도 모르게 하현을 힐끔 쳐다보았다.“하현, 혹시 이모 도와줄 수 있겠어?”설은아는 하현이 금정은행에서 형홍익의 개인 명함을 내놓은 것이 문득 떠올랐다.그렇다면 하현과 형홍익이 개인적인 친분이 있다는 얘기였다.그래서 하현이 방금 그런 말을 꺼낸 것이었다는 걸 그녀는 그제야 깨달았다.허풍이 아니라 정말로 도와줄 능력이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눈앞의 난처한 상황을 보고 설은아는 어쩔 수 없이 하현에게 입을 열었다.“하현, 정말 도와줄 수 있어?”설은아의 말에 우다금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은아야,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 그만하면 안 되겠니?”“네 전 남편이 얼뜨기라는 걸 모르는 사람이 세상에 누가 있어?”“도와주기 싫으면 그냥 싫다고 말하면 되지!”“능력이 없다는 둥 변명만 늘어놓더니 이제는 얼뜨기를 내세워 나한테 헛바람이라도 넣으려고 그래?”“놀리는 거야? 놀리니까 재미있어?”“우린 바보가 아니야!”말을 마치며 우다금은 화가 나서 숨을 헐떡거리며 눈을 부라렸다.그녀는 설은아가 자신을 속이기 위해 이런
”제부, 희정아, 은아야. 이 일은 아무래도 너네들이 해결해 줬으면 좋겠어!”“어쨌든 너네들은 매일 친구 모임에도 다니면서 여러 거물들과 친분도 있고 인맥도 많을 거 아냐?”“너네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나 같은 과부와 내 딸은 어떻게 살아?”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던 최희정의 식구들은 신세한탄과도 같은 말을 내뱉는 우다금을 보고 더욱 어찌할 바를 몰랐다.“너네들, 우리 소희가 일자리도 없이 집에서 폐인이 되어 가는 걸 차마 볼 수 있겠어?”“양심에 찔리지 않겠냐고?”핸드폰을 만지작거리던 우소희는 핸드폰 배터리가 얼마 없다는 것을 아쉬워하면서 손을 놓은 뒤 못마땅한 듯 코웃음을 쳤다.“엄마, 희정이 이모나 이모부가 별로 능력이 없는 것 같아.”“이 사람들은 이제 돈이 많아서 우리 같은 가난한 친척들은 아예 상대하지 않으려고 하나 봐!”“돈푼깨나 좀 있다고 잘난 줄 알아?”“능력 있다고 자랑이나 하지 말던가!”하현은 우소희를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머리가 텅텅 빈 데다 당돌하기까지 했다.이 말을 듣고 설은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이모, 우리 부모님이 도와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아직은 금정에서 확실한 인맥이 없어요.”“게다가 형 씨 가문 그룹은 금정뿐만 아니라 전국 단위로 미술품과 골동품을 취급하는 굴지의 그룹이에요.”“매년 들어가려는 사람들이 수천 명이 넘어요.”“그중에는 배경도 대단하고 능력도 뛰어난 사람도 널렸고요.”“그런데 형 씨 가문이 우리가 뭐라고 우리 요구를 들어주겠어요?”“형 씨 가문 고위층과 아는 사이긴 하지만 취업 청탁을 할 만한 위치는 아니에요. 그럴 능력도 없고요.”“물론 우리도 최선을 다해 볼 거예요!”설은아는 냉정하게 말했다.그녀의 성격은 최희정과는 완전히 달랐다.겉으로 매정한 말을 못 한 채 질질 끌려가지 않았다.안 되는 건 안 되는 것이었고 실제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했다그녀가 지금 이렇게 말한 것도 한편
”나도 형 씨 가문 그룹에 들어가는 게 어렵다는 건 잘 알고 있죠. 그래서 우리가 이렇게 굽신거리며 여기 온 거잖아요!”우다금은 맡겨둔 물건을 찾으러 온 것처럼 아주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희정아, 긴말하지 않겠어.”“너네 아홉 번째 집안은 곧 파산하겠지만 속담에도 그런 말이 있잖아? 부자가 망해도 3대는 먹고산다고.”“은아가 우리를 형 씨 가문에 다리를 좀 놔주면 되지! 잠시 인사한다고 안면을 트고 물 한 모금 마시는 건데 그게 그렇게 어려워?”우다금은 아주 노골적으로 의도를 드러내며 야릇한 미소를 지었다.“물론 너네가 혹시라도 그쪽에 신세지는 게 두려워서 우릴 도와주지 않겠다고 한다면...”“솔직하게 말해!”“난 그럼 친척들한테 가서 그대로 전할 테니까!”최희정과 설재석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쳐다보며 할 말을 잃었다.특히 최희정은 더욱 눈알이 휘둥그레졌다.재물을 탐하는 것 외에 그녀가 가장 중시하는 것이 바로 체면이었기 때문이다.그녀는 가방 하나를 사도 SNS에 올려 자랑하는 사람이었다.그런데 만약 자신이 우다금을 도와주지 않은 일이 사람들한테 알려진다면 앞으로 그녀는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는가?하지만 이 일은 어떤 방법으로도 도와줄 수가 없는 일이었다.그녀가 돕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라 능력 밖의 일이라는 말이다.금정처럼 오래된 도시에 토박이들이 깊이 뿌리를 내린 곳의 은둔가 형 씨 가문은 금정 간 씨 가문이나 김 씨 가문과도 비견될 만한 존재였다.대구 정 씨 가문도 확실히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이긴 했지만 문제는 설은아가 아홉 번째 집안이고 그것도 파산 직전 상태라는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녀가 형 씨 가문과 조금 친분이 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형 씨 가문 그룹에서 이 정도 알량한 친분 때문에 체면을 봐주며 뒷거래를 하겠는가?가능성이 너무나 희박하다는 건 알지만 체면 때문에 최희정은 천천히 설은아의 얼굴에 시선을 돌렸다.최희정은 설은아가 먼저 이 일을 승낙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