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러시는 거예요?”“뭐 하는 거냐구요?”“영장 있어요?”“아무렇게나 여기 들어와서 사람을 잡아가도 돼요? 여기 CCTV 많아요!”“당신들 함부로 행동하다간 나중에 큰 코 다칠 거예요!”이때 바깥쪽에서 발자국 소리가 들렸고 이어서 예닐곱 명의 남녀가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선두에 선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그 진 선배였다.방금 이가음의 엄마 앞에서 비굴하게 굽실거리던 모습은 전혀 보이지 않고 오히려 노기 어린 얼굴로 목영신 일행을 가리키며 무서운 기세로 돌진했다.“경찰서 사람들은 머리도 없어요?”“여기가 무성 촬영 세트장인 거 몰라요?”“영장 없이, 우리의 동의 없이 경찰서 사람들은 이곳에 한 걸음도 들여놓을 수 없어요!”“3분만 시간을 줄 테니 어서 다 풀어주세요!”“그리고 모두 철수하세요!”“그렇지 않으면 각오하세요. 전화 한 통이면 모두 그 제복들 벗게 될 테니까!”진 선배는 아까 롤플레이 놀이에서 사장 역할을 해서인지 아니면 정말로 여기 무성 촬영 세트장에 지분이 있는 건지 정말로 주주처럼 행동했다.마치 지금 무성 촬영 세트장의 사장처럼 굴었다.그래서 경찰관들 앞에서도 그는 여전히 기세등등하고 사람들을 잡어 먹을 듯 호통쳤다.“퍽!”하현은 무덤덤한 얼굴로 다가가 진 선배의 뺨을 한 대 갈겼다.진 선배는 갑자기 하현에게 뺨을 맞아 비틀거리다가 겨우 중심을 잡았다.자칫하다간 바닥에 넘어질 뻔했다.그는 벌건 손자국이 선명한 얼굴을 감싸쥔 채 피가 섞인 이빨을 툭 뱉은 후 발끈 화를 내며 말했다.“개자식! 감히 나를 쳐?!”몇몇 동기들은 진 선배의 행동에 깜짝 놀랐다.아까 이가음의 엄마 앞에서는 배알도 없는 사람처럼 굽신거리더니 갑자기 사람이 탈을 바꿔 쓴 것처럼 격분해서 날뛰는 것이었다.분명 별것 없는 보통 사람인데 왜 이렇게 버럭 하는 거지?“퍽!”“그래. 내가 당신 때렸어? 어쩔 건데?”“퍽!”“당신이 감히 사장이라도 돼서 경찰한테 영장 어쩌구 하는
”당신 말 다 했어요?”진 선배는 하마터면 목영신에게 쌍욕을 할 뻔했다.화가 치밀어 오른 나머지 그는 오른손을 들어 목영신을 가리키며 부르르 떨었다.하현은 티슈를 꺼내 손가락을 닦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설유아를 이렇게 만든 일, 어떻게 설명할 거예요?”진 선배는 얼굴을 가리고 언짢은 표정으로 말했다.“설명은 무슨 설명! 설명할 게 뭐 있어요?!”“설유아가 이가음한테 총을 쐈으니 이가음 엄마한테 그렇게 맞은 거죠, 뭐. 누굴 탓해요? 자업자득이지!”“자식이 그 꼴을 당하는 데 가만히 있을 엄마가 어디 있겠어요?”“그리고 그게 나랑 무슨 상관있어요?”“퉤! 내 말 똑똑히 들어요!”“경찰서에 아는 사람 좀 있다고 거들먹거리지 마세요!”“내 전화 한 통이면 당신들은 바로 끝장이에요!”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뺨을 맞았으니 진 선배는 어떻게 해서든 무너진 체면을 일으켜 세워야 했다.지금 제대로 반격하지 않으면 절대로 뼈아픈 이 순간을 만회할 수 없을 것 같았다.“그래요? 정말 한 번 해 보자는 건가?”하현은 소파에 앉아 다리를 꼬았다.“그럼 전화하세요. 내가 30분 동안 기다려 드리지.”“무성에서 누가 감히 당신을 지지하고 나서는지 보자구요!”진 선배는 잠시 어리둥절하며 당황스러워했다.하현이 이렇게 당당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그러나 지금 여기서 물러날 수 없다.그러면 지는 것이다.그래서 진 선배는 이를 악물고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진 선배가 전화를 끊은 뒤 한 15분 정도 지났을 때 문밖에서 위엄 서린 목소리가 들렸다.“나이도 어린 사람이 함부로 날뛰면 어쩌자는 거야?”“어느 낯짝이 그리 겁도 없는지 한번 구경 좀 하지! 어디서 온 놈인데 무성 촬영 세트장 규칙조차 이해하지 못하는 거야?!”“내 말 잊었어?”“내 명령 없이는 누구도 무성 촬영 세트장에 들어올 수 없다고 말했을 텐데?!”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십여 명의 사람들이 거만한 자태로 걸어 들어왔
방금까지 우격다짐으로 좌중을 압도하던 성경무는 망설임 없이 무릎을 꿇고 안절부절못하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진 선배 일행은 모두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아무리 생각해도 눈앞의 상황이 이해되지 않았다.거대한 태산 같던 성경무 서장이 어떻게 하현을 보자마자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무릎을 꿇을 수가 있는가?하현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다니!하현은 여전히 냉랭한 표정이었다.그의 기억이 맞다면 성경무는 이미 날개 꺾인 처지가 되었다.하지만 성경무는 아무런 교훈도 얻지 못하고 여전히 밖에서 사람들을 괴롭히고 악한 짓을 도맡아 하고 있었던 것이다.오늘 하현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왔으면 서슬 퍼런 성경무의 기세에 완전히 짓눌렸을지도 모른다.“이리 와 봐!”하현은 성경무에게 검지를 까딱거리고 싸늘한 표정을 지었다.성경무는 머리가 쭈뼛쭈뼛 섰고 온몸이 부들부들 떨렸다.방금 자신이 내뱉은 말과 경고를 떠올리자 그는 눈앞이 캄캄해져 왔다.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그가 할 수 있는 것이 뭐가 있겠는가?어쩔 수 없이 그는 한껏 비위를 맞춘 얼굴로 하현에게 다가갔다.그러자 진 선배 일행은 눈이 휘둥그레져서 성경무를 바라보았다.“하현, 미안해.”“모든 게 다 내 잘못이야.”“내가 이러면 안 되는...”“무릎 세워.”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어 성경무의 말을 끊었다.성경무는 곧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면서도 이를 악물고 몸을 꼿꼿이 세우고 가슴을 편 뒤 고개를 들어 미소를 지어 보였다.“퍽!”하현은 손바닥으로 그의 왼쪽 뺨을 때렸다.소리가 어찌나 우렁찬지 모든 사람들의 고막을 무섭게 때렸다.성경무의 몸이 사정없이 뒤흔들렸고 얼굴에는 커다란 손바닥 자국이 생겼다.하지만 그는 조금도 화난 기색 없이 무릎을 꿇고 비위를 맞추었다.하현은 검지를 빙글 돌리며 무표정하게 말했다.“오른쪽 얼굴.”성경무는 급히 자신의 오른쪽 얼굴을 가까이 가져갔다.“퍽!”하현은 세차
”아, 아니야. 아니야!”“하현, 내 내가 농담한 거야!”성경무는 부르르 몸을 떨며 고개를 떨구고 황송한 얼굴로 겨우 입을 열었다.이 무슨 말도 안 되는 농담인가?하현을 혼낸다고?하현을 가르친다고?어디서 그런 능력이 나온단 말인가?“못하겠어?”하현은 성경무의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내 기억이 맞다면 지난번에도 그렇게 말했었는데, 맞지?”“똑똑히 기억을 하라고 그렇게 혼을 내줬더니!”“그 결과가 지금 이거야? 당신은 여전히 위세를 부리며 남들을 괴롭히고 속이려 하고 있어!”“아직도 혼이 덜 난 건가?”“하현, 미안해.”“내가 오늘 일 제대로 반성할게.”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어떻게 반성할 건데?”성경무는 갑자기 안색이 변했고 순간 오른손으로 자신의 왼손을 움켜쥐고 힘껏 부러뜨렸다.‘촤칵'하는 소리와 함께 왼손 뼈가 부러졌다.성경무는 온몸을 덜덜 떨었고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로 하현의 눈치를 살폈다.하현은 무덤덤한 얼굴로 그 모습을 지켜보며 한마디 툭 내뱉었다.“그걸로는 부족해!”“아, 알겠어.”성경무는 굽실거리다가 부하를 가리키며 말했다.“이리 와!”“내 오른손도 부러뜨려!”곧이어 성경무의 부하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성경무에게 다가왔고 하현의 눈치를 살피다가 눈을 질끈 감으며 성경무의 오른손을 부러뜨렸다.두 손을 모두 못 쓰게 된 성경무는 식은땀을 흘리며 하현 앞에 무릎을 꿇었다.하현이 만족할 때까지 굽신거려야 한다는 걸 성경무도 모르지 않았다.“좋아. 이번에는 지난번보다 성의가 좀 있어 보이는군.”하현은 한 발로 성경무를 발로 걷어차 넘어뜨린 뒤 입을 열었다.“이제 당신 부하들을 데리고 나가!”“다음에 또 한 번 이런 일이 있었다가는 그땐 두 손만으론 안 될 거야!”성경무는 고개를 끄덕이며 돌아섰고 원망스러운 눈빛으로 진 선배를 힐끔 쳐다보았다.이 개자식의 전화 한 통이 아니었더라면 자신이 어떻게 이런 꼴을 당했겠는가?성경무 일행들이
”상관 선생님 오셨습니까?”“죄송합니다. 쉬시는 걸 방해하고 싶지 않았는데 어쩔 수 없었습니다.”“이 개자식이 감히 우리 동네에 와서 소란을 피우지 뭡니까?!”진 선배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낮은 목소리로 그간의 일을 털어놓았다.“게다가 저놈이 선생님을 지목하고는 선생님이 와도 아무 소용없을 거라고 떵떵거리지 않겠어요?”“저놈 눈에는 선생님도 아주 하찮은 인물로 보이나 봅니다!”진 선배는 일부로 경홍근을 자극하기 위해서 없던 말을 지어낸 것이다.그래야 화가 치밀어 오른 경홍근이 하현을 완전히 짓밟아 줄 것이기 때문이다.“퍽!”진 선배가 말을 하는 도중 경홍근은 이미 손바닥을 돌려 그를 땅에 넘어뜨렸다.진 선배는 갑자기 들어온 경홍근의 손바닥에 얼굴이 벌게지고 입가에서는 피가 흘렀다.그는 잠시 와들와들 떨다가 나지막이 말했다.“죄, 죄송합니다. 저도 일부러 이런 소란을 만든 건 아닙니다!”“정말 의도한 게 아니라고요!”진 선배는 경홍근이 왜 자신을 때렸는지 알 수 없었다.그렇지만 벌벌 떨면서 우선은 잘못을 빌어야 했다.“퍽!”경홍근이 또 손바닥을 들어 진 선배를 내리쳤다.진 선배는 다시 이를 악물고 일어나 경홍근 앞에 무릎을 꿇고 덜덜 떨며 말했다.“죄송합니다. 정말 죄송합니다!”“잘못했습니다!”“퍽!”경홍근은 거침없이 진 선배를 발로 차서 바닥에 넘어뜨렸다.그리고 나서 그는 발을 내디디며 말했다.“내 구역에서 당신이 문제를 일으키는 건 아무 상관없어. 당신이 남자를 괴롭히건 말건 아무 상관없다고!”“그런데 문제는 이런 사소한 일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거지!”“내 구역에서 행패를 부렸을 뿐만 아니라 경찰까지 끌어들였어!”“무엇보다 뒷배랍시고 부른 사람이 얼굴이 떡이 되도록 맞았어!”“만약 이 일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내가 어떻게 얼굴을 들고 다니겠어?”“내 체면 따위는 아무 상관없는 거야?”“앞으로 개나 소나 나한테 와서 짖어 댈 거 아니야?”경홍근은 사
”개자식!”하현이 경홍근 앞에서 이렇게 당당하게 행동하는 것을 보고 진 선배는 눈을 희번덕거렸다.마음 같아서는 하현을 때려죽이고 싶은 심정이었다.하지만 경홍근은 손을 내저으며 사람들에게 조급해하지 말라고 했다.그는 다른 사람에게 의자를 하나 가져오게 한 다음 하현을 앉힌 뒤 천천히 담배를 꺼내 불을 붙여 한 모금 깊이 빨았다.뿌연 연기가 묘하게 띠를 이루자 경홍근은 비로소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당신 지금 말끝마다 소명 어쩌고 해명 어쩌고 하는데.”“차라리 당신이 직접 말하는 게 어때? 뭘 어떻게 해야 당신이 만족하겠는지 말해 봐?”하현은 경홍근을 보고 당당하게 입을 열었다.“첫째, 위자료 오십억입니다.”“둘째, 난 저 소품용 총에 왜 총알이 들어 있었는지 알고 싶습니다.”“셋째, 이 사건의 관련자들은 모두 경찰서로 데려가 조사해야 합니다. 죄가 있으면 벌을 받으면 되는 거구요!”“넷째, 이가음의 엄마는 설유아에게 차를 대접하고 직접 사과해야 합니다! 그리고 두 손을 끊고 용서를 빌어야 합니다.”“이 네 가지를 다 마치면 됩니다.”하현은 충격적인 발언을 해 놓고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처럼 느긋하게 차를 마셨다.경홍근은 하현의 말에 조금도 놀라는 기색 없이 담배를 크게 한 모금 빨아당긴 다음 퉁명스럽게 내뱉었다.“젊은이, 그건 너무 터무니없는 요구인데!”“일이 어떻게 된 건지는 나도 잘 알고 있어.”“그런데 내가 말하는 걸 한번 들어봐.”“설유아는 비록 맞긴 했지만 살갗이 찢어진 정도야.”“그 부인이 사람을 때리기는 했지만 딸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간절해 그런 것이니 이해할 만도 하지.”“게다가 천 번 만 번 생각해도 설유아가 총을 쏜 건 사실이잖아? 지금 이가음은 아직도 멍한 표정만 짓고 있어. 이런 상황에서 그 부인이 어찌 제정신일 수가 있겠어?”“그러니 설유아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어.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하는 거 아닌가?”“그런데 당신은 지금 사
하현은 찻잔을 쥐고 담담하게 말했다.“만약 내가 거절한다면요?”“거절한다고?”경홍근은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젊은이, 거절할 여지가 있다고 생각하는가?”“여기가 어디인지 정확히 알아야 할 걸세.”“여기는 무성 촬영 세트장이야. 내 구역이라고.”“내 뒤에는 무성 파트너스, 용천오, 무학의 성지인 황금궁이 있어...”“5대 문벌, 10대 가문 출신이라고 해도 이런 사소한 일로 우리들과 척을 지려 하지 않아. 잘 생각해!”“어쨌든 지금은 당신과 나 사이에만 국한된 일이니 이렇게 간단히 처리할 수 있는 거야.”“그렇지 않았더라면 벌써 관청과 방송국에서 들이닥쳤을 거야!”“그러면 앞으로 무슨 일이 어떻게 벌어질지 몰라.”“그리고 그럴 경우 절대 당신 혼자 감당할 수 없을 거야. 혼자 감당할 수 있는 게 아니거든. 당신 뒤에 있는 가족들, 모든 세력을 다 끌어서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거야!”“사람 일 모르는 거야. 그래서 적당한 선을 남겨두라는 말이 있잖는가? 다음에 어떤 일로 만날지 모르는 게 사람 일이라네.”“당신은 전도유망한 젊은이니, 적당히 나쁘지 않으면 여기서 끝내는 게 순리야, 안 그래?”경홍근은 바닥의 수표를 가리키며 냉담하게 말했다.“젊은이, 수표를 주워. 그래야 나랑 좋게 끝날 수 있어.”“그리고 당신은 어서 설유아를 데리고 돌아가서 치료나 잘 해. 만약 어떤 의사가 좋을지 잘 모르겠다면 내가 소개해 줄 수도 있어.”“자, 그러면 악수하고 여기서 끝내지. 문제없지?”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만약 이 일이 상관 선생님 일이라면 이렇게 끝낼 수 있겠어요?”“그걸 말이라고 하는 건가? 지금 어디다 비교를 하고 있는 거야?”경홍근이 놀란 얼굴로 눈을 치켜떴다.“당신과 난 하늘과 땅 차이야.”“내가 이렇게 끝내려는 건 당신을 두려워해서가 아니라 오늘 내 기분이 좋아서 특별히 기회를 준 거야.”“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지금 뭐라고?”경홍근의 말을 듣고
경홍근은 차가운 표정으로 담배를 한 모금 들이마셨고 그가 내뿜은 담배 연기는 하현에게 향했다가 스르륵 바람에 날렸다.경홍근은 말없이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자신의 말이 먹힌 것 같아 지금의 상황이 짐짓 만족스러운 것 같았다.그는 하현이라는 어쭙잖은 젊은이가 결국은 자기 앞에서 무릎을 꿇고 비굴하게 십억을 받아 챙길 것이라는 걸 굳게 믿었다.하현은 경홍근이 내뿜는 담배 연기에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찻잔을 쥐고 침착하게 말했다.“상관 선생님, 말씀하시는 게 좀 듣기 거북하군요.”“당신은 내가 당신 뜻대로 해주길 바라겠지만.”“난 흥정을 할 마음이 없어요.”경홍근은 미소를 지으며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젊은이, 자네는 아직 많이 어려.”“좋게 좋게 끝내야 돈도 챙기고 사람도 챙긴다는 걸 알아야지.”“체면이라는 것은 상호적인 거야.”“자네가 내 체면을 세워 줘야 나도 자네 체면을 세워 주는 거 아닌가?”하현은 옅은 미소를 띤 후 단호하게 말했다.“아쉽게도 상호 간의 체면 차리기는 저한테 아무런 가치가 없어요.”“적어도 그것은 나한테 정의로 이름 지을 수 있는 게 아니거든요.”경홍근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가 툭 내뱉었다.“내가 자네한테 방금 한 행동 보았지 않은가? 그게 바로 정의야.”“정말로 마음에 안 들고 억울한 마음만 든다면 지금 당장 그 수표를 찢어버리고 어디 직접 받아내 봐!”“요즘 젊은이들이 얼마나 능력이 있는지 한번 보자구!”경홍근은 결국 싸늘한 얼굴이 되었다.성경무의 얼굴을 때리는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다.성경무는 보통 사람에게는 우락부락하고 거칠게 보이지만 거물들의 눈에는 그저 허세 부리는 헛똑똑이일 뿐이었다.하현이 성경무의 얼굴을 때린 건 그가 정말 대단하다는 방증일 수 있다.그러나 이건 다른 문제였다.경홍근을 굴복시킨다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어쨌든 그는 6대 파벌 중 한 명이고 무학의 성지 황금궁을 등에 업고 있는 인물이었다.“그럼 보여드리죠!”
”여수혁?”하현은 여음채를 쳐다보며 차가운 미소를 띠었다.“그가 이 병원 대주주인 동시에 당신의 뒷배라고?”“그래! 알고 나니 이제야 겁이 나?”“무서운 줄 알면 이제 무릎 꿇고 내 신발 밑창을 핥아!”“그리고 다리를 부러뜨리고 이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여수혁도 당신한테 살길을 열어줄지도 모르지!”“그렇지 않으면 당신 오늘 재수 없을 줄 알아!”여음채는 경멸하는 기색을 한껏 드러내었다.하현이 남양 무맹과 여수혁이라는 단어 앞에서는 전혀 별 볼 일 없는 존재라고 여겼던 것이 분명했다.강옥연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여수혁은 남양 무맹주가 총애하는 제자야. 그리고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의 부문주라서 건드리기가 쉽지 않아.”하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어릿광대일 뿐이야.”“뭐? 어릿광대?”하현의 말에 여음채는 ‘피식'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누가 당신한테 그런 용기를 줬는지 모르겠군! 흥!”“우리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이 사람은 페낭 무맹의 부맹주 아들이야!”“이 사람은 페낭 무맹 장로가 아주 아끼는 제자라구!”“게다가 남양 무맹이 페낭 무맹에 파견한 제자라고!”“우리 같은 사람들은 어딜 가나 거칠 것이 없는 사람들이야. 그뿐만 아니라 실력도 비할 데 없어!”화려한 옷차림의 남녀 예닐곱 명이 걸어와 소리치며 하현을 향해 멸시하는 눈빛을 보이며 비아냥거렸다.“야, 너 오늘 큰일 났어! 아주 재수 옴 붙은 날이라고! 우리가 당신 목숨뿐만 아니라 가죽까지 싹 벗겨버릴 거거든! 하하하!”이 사람들은 하현이 무슨 도마 위에 올려진 생선처럼 여기는 것 같았다.원하는 대로 칼질을 해도 된다고 생각했는지 험한 말을 마구 내뱉었다.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은 더욱 경멸하는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하현 같은 외지인이 감히 그들 같은 거물들한테 입을 놀리다니 정말 주제도 모르고 날뛰는 망나니가 따로 없다고 생각했다.하현이 뭐라고 하기도 전에
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외지인 관광객 주제에 너무 오만하고 포악하지 않는가?진 반장이 이미 잘못을 인정하고 물러나려는데 여전히 권세를 믿고 남을 괴롭히려고 하다니, 이건 지나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진 반장은 얼굴을 가리고 일어나 하현의 의기양양한 얼굴을 잠시 뚫어져라 쳐다보았다.도대체 이놈의 정체가 뭔지 알 길이 없어 진 반장은 순간 분노했지만 애써 마른침을 삼키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젊은이, 당신 너무 심한 거 아니야?”“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또다시 뺨을 때리며 냉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대단하게 나한테 큰소리쳤다는 건 잘못을 하면 그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도리도 잘 안다는 뜻 아니셨나?”“이렇게 간단한 이치도 몰라?”진 반장은 주먹을 불끈 쥐고 이를 갈았다.생각 같아서는 하현을 죽이고 싶었지만 결국 그는 소리 없이 탄식할 수밖에 없었다.“미안해! 잘못했어!”그는 하현이 두려운 것이 아니라 하구봉이 전화를 건 정종화 총경이 두려운 것이 분명했다.감히 이런 상황에서 어찌 그가 하현을 상대로 싸울 수 있겠는가?상대방의 사과를 들은 후에야 하현은 앞으로 나와 그의 오른쪽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꺼져!”진 반장은 그의 무리들을 데리고 쏜살같이 꽁무니를 뺐다.그리고 이 광경을 지켜보던 사람들은 그야말로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그들은 하현이 진 반장을 내쫓을 만큼 강력한 힘이 있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진 반장 일행이 꽁무니를 빼게 했을 뿐만 아니라 진 반장의 얼굴까지 때렸다.“내가 당신을 얕잡아 본 것 같군. 당신이 이렇게 큰 뒷배를 뒀을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어.”진 반장이 황급히 도망치는 모습을 보고 여음채는 못마땅한 표정을 지으면서 냉소를 흘렸다.“그렇지만 똑똑히 들어. 당신 뒤에 얼마나 큰 거물이 있든 간에!”“페낭 병원의 뒷배가 훨씬 강할 거야!”“날 건드려?! 흥! 두고 봐! 당신은 죽
선두에 선 남자를 보자 여음채는 안색이 환해졌다.그리고 나서 얼른 다정하게 남자의 팔짱을 끼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진 반장님, 마침 잘 오셨어요. 바로 저 자식이에요. 저 자식은 우리가 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사람을 때린다고 호도하고 있어요.”“게다가 내 아랫배까지 걷어찼다구요!”“저놈을 반드시 감옥에 가둬 주세요. 그 안에서 제대로 반성할 수 있게요.”여음채는 하현을 가리키며 기세등등한 표정을 지었다.부일민 일행도 모두 큰소리로 맞장구를 치며 하현이 억지를 부린다고 한마디씩 보탰다.“뭐? 감히 병원에서 원장님을 때려요?”“대낮에 그런 짓을 한단 말이에요?”“법도 뭣도 없답니까?”진 형사는 하현의 얼굴을 주시했고 곧바로 그가 남양인이 아니란 걸 눈치챘다.그러자 얼굴이 싸늘하게 바뀌며 비아냥거렸다.“이봐, 어서 저놈을 데려가! 모질게 심문해! 지독하게 조사해!”“감히 반항한다면 그 자리에서 바로 법으로 다스려!”하현은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눈을 가늘게 뜨고 진 형사를 쳐다보았다.“당신은 어쨌든 형사반 반장이면 경찰서를 대표해서 일을 해야죠. 무슨 일이 생겼으면 제대로 조사를 해야 하는 거 아닙니까?”“일을 어떻게 하든 당신 같은 사람이 날 가르칠 건 아니지!”“당신이 먼저 사람을 치고 법을 어겼어. 그러니 법 집행자로서 당신을 연행하는 건 당연한 거야!”“물론 당신도 저항하는 길을 택할 수 있어!”“하지만 저항한 결과는 내가 당신을 한 방에 죽이는 거야!”진 반장은 언성을 높였고 눈을 부릅뜨고 하현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려고 손을 내밀었다.하현은 손을 들어 진 반장의 오른손을 막은 뒤 담담하게 하구봉을 쳐다보며 말했다.“전화 걸어.”하구봉은 어리둥절해하다가 곧바로 하현이 말하는 뜻을 알아차리고 얼른 핸드폰을 꺼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전화기 건너편에 냉랭한 목소리가 전해오자 하구봉은 핸드폰을 진 반장에게 건네주었다.“당신의 직속 상사가 전화를 받아
하현은 여음채의 말을 듣고 얼굴을 살짝 찡그렸다.페낭은 정말 법보다 주먹이 가까운 곳이라는 걸 새삼 깨달았다.이렇게 공공연하게 정경유착이 만연할 줄이야!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여음채는 순간 하현이 겁을 먹은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러자 여음채는 다시 의기양양한 기운을 내뿜으며 이를 악물고 하현을 냉소적으로 바라보았다.“왜? 무서워?”“이제야 자신이 무슨 짓을 했는지 알겠어?”“지금이라도 용서를 빌면 봐줄 수도 있어. 아직 늦지 않았다구.”“그렇지 않으면 당신을 기다리는 건 억세게 불행한 일들뿐일 거야!”말을 하는 동안 여음채는 부일민에게 손짓을 하며 다른 의료진과 경호원들을 모두 불러들여 하현 일행을 겹겹이 에워쌌다.기세등등하게 하현 일행을 노려보고 있는 그들 무리는 당장이라도 덤벼들 듯 사나운 모습이었다.이 광경을 본 여음채는 더욱 득의만만해져 싸늘한 미소를 지었다.“이봐, 이제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려. 어서 사과하고 내 신발 밑창을 개처럼 깨끗이 핥아!”“그렇지 않으면 당장 오늘 밤부터 감옥에서 썩어야 할 거야!”강옥연의 얼굴에 긴장한 기색이 떠올랐다.하구봉은 콧방귀를 뀌며 시큰둥한 반응으로 일관했다.주위의 구경꾼들은 모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하현에게 다가올 불운을 생각하며 탄식했다.아무리 거세게 싸운다고 해도 경찰관들 앞에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설마 하현 일행은 법이라도 어기려는 건가?하현은 냉담한 얼굴로 여음채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가 이내 평온한 표정이 되었다.“내가 감옥에 갈 필요가 있는지 없는지는 잘 모르겠지만.”“의료 윤리를 중시하지 않는 건 그렇다 쳐. 그런데 어떻게 이익만 챙기고 인명을 돌보지 않는 거야?”“멀쩡한 병원이 사기꾼 소굴이 되어 관광객을 속이는 걸 당연하게 여기는군.”“당신들 오늘 잘 만났어. 당신들은 이제 좋은 날 끝났어.”“이 병원, 망하게 해 줄게.”하현의 말을 들은 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코웃음을 쳤다.그녀들은 허
잠시 후 넋이 나간 듯 멍하던 여음채는 겨우 제정신을 차렸다.그녀는 배를 움켜쥐고 일어나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개자식! 감히 날 걷어차?”“내 엄마가 누군지 알아?”“당신은 누구야? 의료 윤리를 저버린 원장 아니야?”하현이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했다.“때린 건 당신이야.”“뭐?”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하현의 목소리와 행동에 여음채는 화가 치밀어 올라 하현을 가리키며 호통쳤다.“모두 저놈을 죽여!”“일이 터지면 내가 다 수습할 거야!”그녀의 말에 수십 명의 건장한 경호원들이 사납게 웃으며 하현을 에워쌌다.강옥연은 이런 막무가내 인사를 본 적이 없었다.병원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막무가내라니 정말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결국 강옥연은 걱정스러운 마음에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조심해!”그녀의 말을 들은 부일민은 냉소를 흘리며 입을 열었다.“우리 원장님한테 미움을 산 사람은 살아남지 못해!”예쁘장한 간호사들은 앳된 얼굴로 눈을 흘기며 거들었다.“흥! 조심해 봤자 소용없어! 죽어야 해!”주위를 둘러보던 환자와 의료진들도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탄식하듯 깊은 한숨을 쉬었다.여음채의 인품이 별로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었지만 그녀의 영향력과 인맥은 도저히 무시할 수 없었다.이 페낭 병원에서 누가 감히 그녀한테 대들 수 있겠는가?아무 물정 모르는 외지에서 온 관광객이 하필 여음채를 건드리다니!이게 무슨 바보 같은 짓인가?이때 선두에 선 경호원은 음흉한 미소를 흘리며 하현에게 다가왔다.그는 고개를 옆으로 까딱까딱 꺾으며 광분한 사냥개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이놈아! 감히 여기서 소란을 피워? 여기가 어디라고? 눈을 어디다 둔 거야?”“퍽!”“앗!”경호원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하현은 듣기 귀찮다는 듯이 손바닥을 휘둘러 그를 내동댕이쳤다.맨 앞에 있던 경호원은 눈앞이 캄캄해졌고 그대로 바닥에 널브러져 기절하고 말았다.기절했어?!이 광경을 보고 놀
앞뒤 사리를 가리지 않고 막무가내로 행동하는 여음채의 모습에 강옥연이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뭐가 모욕이에요?”“당신들은 환자를 구하고 비용을 청구해야 하는데 환자를 구하기는커녕 무슨 스타가 나타났다고 부리나케 쫓아다니지 않았냐구요?!”“응급실에 30분씩이나 방치해 놓고 이제 와서 보증금은 돌려주지 못하겠다니요?”“당신들 같은 병원이 무슨 의료 윤리 의식이 있겠어요?”“병원이 아니라 사기 소굴이에요!”강옥연은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식약청에 고소할 거예요!”하현은 침착한 눈빛으로 여음채의 표정을 살피다가 하구봉에게 원가령의 안전을 보호하라는 손짓을 했다.아마도 강옥연의 강경함에 여음채는 일을 처리하기가 좀 곤란해졌다고 느꼈을 것이다.여음채는 눈빛이 서늘해지더니 달려오는 수십 명의 경비원들에게 하현 일행을 포위하라고 손짓하며 지시했다.이어 그녀는 경멸하는 표정으로 긴 다리를 뻗으며 다가와 말했다.“우리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고 잘못을 하면 응당한 대가를 치러야 해.”“무릎을 꿇고 잘못을 인정해. 그리고 내 신발 밑창을 깨끗이 핥아. 그뿐만 아니라 우리 부일민 의사에게 십억을 배상해. 그러면 이 일은 이대로 덮어 두겠어!”“더 이상 일을 크게 만들지 마.”“내 말대로 하지 않으면 당신들은 칠흑 같은 남양 감옥에 갇히게 될 거야!”“1년 반 동안 안에서 통곡만 하다가 세월을 보내게 될 거라고!”분명 이런 일이 한두 번이 아닌 듯했다.여음채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아주 능수능란했다.어떤 외국인이라도 감히 페낭 병원에서 소란을 피우는 자는 모두 이런 꼴을 당했을 것이다.부일민 일행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린 채 고소하다는 듯 히죽거렸다.큰소리 뻥뻥 치더니 하현이 아주 제대로 걸렸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페낭 거물도 아닌데 감히 페낭 병원에 와서 행패를 부려?하늘이 얼마나 높고 땅이 얼마나 두꺼운지 모르는 거지!강옥연은 한기를 가득 품은 목소리로 소리쳤다.“당신들은 아주 법도 뭣도
응급실에 있던 원가령은 아직도 술에 취한 듯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그녀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원래 같았으면 벌써 위를 씻고 상처를 치료해야 했었지만 의료진은 그녀를 병상에 눕혀만 놓고 방치한 것이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손을 뻗어 원가령의 위를 몇 번 누른 다음 그녀를 일으켜 세우고 하구봉에게 쓰레기통을 가져오라고 지시했다.원가령은 술을 모두 토한 뒤에야 비로소 조금은 편안해진 얼굴이 되었다.강옥연에게 응급실의 소독약으로 간단하게 원가령의 상처 부위만 소독한 뒤 휠체어를 구해 원가령을 실었다.그리고 하현 일행은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문밖에서 다급한 발자국 소리와 함께 남양 말로 뭔가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분명 경비원들이 들어오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었다.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하구봉에게 눈빛을 보냈고 하구봉은 지체 없이 한 걸음 내디디며 한 발로 세게 문을 걷어찼다.‘퍽'하는 소리와 함께 응급실 문이 벌컥 열렸다.예닐곱 명의 건장한 경비원이 뛰어들려다가 튕겨나가는 부일민과 부딪혀 난장판이 되었다.비슷한 시각 복도 끝 쪽에서는 기세등등한 모습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이 있었다.어딘가 낯이 익어 보이는 여자가 맨 앞에 서 있었다.그녀는 몸매가 유려했고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를 뿜으며 걸어왔다.앳된 간호사 몇 명은 이 여자를 보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 중년 여자는 페낭 병원에서 제일 영향력이 센 원장, 여음채였기 때문이다.여음채는 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위엄있는 목소리로 말했다.“누가 우리 병원에서 소란을 피워? 눈도 없어?”“원장님, 외지 사람들이 와서 억지를 부리고 있어요. 우리가 의술의 도리를 저버렸다고 하면서 사람을 때리고 응급실 문을 발로 차고 있어요.”“우리는 모두 들어가서 환자를 치료하려고 하는데 환자를 마음대로 데려가려고 합니다!”“이건 아주 우릴 무시하는 거죠!”넘어져 있던 부일민은 여음채를 보자마자 벌떡 일어나 하현 일행의 행동을 가리키며 고자질
부일민은 더욱 냉소적으로 말했다.“하지만 우리 앞에서 귀에 거슬리는 그런 말은 해도 되지만 이것만은 알고 가세요. 한번 지불한 돈은 환불되지 않아요.”“사람이야 얼마든 데려가도 되지만 보증금 천만 원은 돌려주지 않습니다!”“그럼 어서 물러가세요!”“여기서 방해하지 말구요!”의사의 오만방자한 말에 강옥연은 얼굴이 싸늘해졌다.“살리기는커녕 환불도 안 된다구요?!”“내가 당신들 고소할 거예요!”“고소?!”부일민은 여간호사 몇 명과 눈을 마주 보며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어떤 사람은 손거울을 꺼내 화장을 고치기 시작했고 어떤 사람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강옥연이 고소라는 말을 꺼내도 그녀들은 전혀 안중에 두지 않는 게 분명했다.어차피 페낭 병원은 불만을 제기할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고소? 그래 하세요!”부일민은 눈썹을 치켜세운 뒤 벽에 붙은 전화번호를 가리켰다.“국민신문고, 식약처, 경찰서, 등등, 전화번호들이 여기 다 있으니까!”“아무데나 전화해서 아무나 불러 보세요!”“사람을 불러서 날 고소해 보세요! 그럼 내가 당신들을 할아버지라고 부를게요!”“대하 촌놈들이 감히 우리 남양 땅에 와서 거드름을 피우며 위세를 부리고 있어?! 흥!”“당신들이 전화를 해 봤자 아무도 들어주지 않을 거예요!”부일민은 한껏 코웃음을 쳤다.그들은 이미 관광객들을 등쳐먹는 데 아주 익숙한 것 같았다.관광객이 신고해도 결국 팔이 안으로 굽는 법이었다.“당신들 제정신이에요!”강옥연은 눈을 부라렸다.이런 몰상식한 사람들은 정말이지 처음이었다.이때 하현이 앞으로 나와 강옥연의 어깨를 툭툭 치며 담담하게 말했다.“강옥연, 어쨌든 당신은 용문 사람인데 어떻게 기본적인 도리도 몰라?”“뭐라고?”강옥연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도무지 하현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어떤 사람들은 말로 하면 못 알아들어. 그냥 얼굴을 두들겨 맞아야 알아듣지.”
황천화 일행을 해결하고 하현은 강옥연에게 전화를 한 뒤 택시를 타고 페낭 병원으로 향했다.페낭 병원은 사립 병원으로 규모가 큰 편은 아니었지만 인테리어가 호화로웠다.거리마다 홍보 간판이 걸려 있는 병원다웠다.다만 의술은 아직 그에 미치지 못했고 보감 그룹 병원에 속하며 페낭 현지에서 평판이 별로 좋지 않았다.보통은 관광객을 속이고 사기를 쳐서 이익을 남기는 병원이었다.그리고 해외에서 온 관광객들은 이곳에서 사기를 당해도 신고할 길이 없어 결국 흐지부지될 수밖에 없었다.하현은 오는 길에 이런 정보들을 알게 되었다.강옥연도 현지인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병원에 가게 된 것을 그녀의 잘못만이라고 탓할 수가 없었다.하현과 하구봉은 곧바로 병원에 도착해 응급실 복도에서 강옥연을 찾았다.“하현.”하현이 나타난 것을 보고 강옥연은 급히 다가와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상황은 어떻게 되어 가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물었다.“응급실에 들어가긴 했지만...”강옥연이 말끝을 흐렸다.하현은 얼굴을 찡그리며 응급실 문틈을 살짝 들여다보았다.대여섯 명의 환자가 병상에 누워 있었고 그중 두세 명은 외상을 입고 낮은 소리로 신음하고 있었다.그러나 응급실 안에는 의료진이 하나도 보이지 않았다.“내가 원가령을 데리고 왔을 때 의료진은 어떤 유명 연예인이 다쳐서 나간다고 했어.”“이곳의 한 인플루언서 스타가 영화를 찍다가 손가락을 다쳐서 급하게 응급실 의료진이 갔어!”“곧 돌아오겠다고 하면서 보증금 천만 원을 먼저 내라고 했어.”“그래서 보증금을 내고 30분째 이렇게 기다리고 있는데도 아직 아무도 안 와...”강옥연의 얼굴에 긴장감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현은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보감 그룹 산하 병원의 평판이 좋지 않다는 걸 알았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그가 다른 의료진을 찾아보려고 하자 강옥연이 그를 멈춰 세우며 말했다.“하현, 내가 가서 재촉해 볼게.”강옥연은 혼자서 달려가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