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닙니다!”구양연은 얼른 고개를 저었다.“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무학의 천재입니다!”“그럼 만점 받을 만한 겁니까?”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물론이죠! 당신이 이번 시험에서 1위입니다!”구양연은 감개무량했다.하현과 같은 무학 천재가 그들 용문 무성 지회에서 나왔으니 올해는 지회가 번창할 것이 틀림없었다.“당신은 우리 대하 전통 무학의 자랑이자 진정한 천재입니다!”“지금부터 필요한 것이 있으면 무조건 날 찾아오세요!”“내 권한과 역량 안에서 최선을 다해 도울 겁니다!”구양연은 부지회장의 권위는 이미 내려놓은 지 오래였다.그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하현에게 말했다.“앞으로 내 앞에서는 절대 예의 차릴 것 없어요.”“내 편이라 생각하고 말해도 됩니다.”다른 고수들도 모두 하현에게 호의를 표했다.하현 같은 사람이야말로 용문대회를 개최한 취지에 진정으로 부합하는 인물이란 걸 모두가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도 대회에 나가면 반드시 상위권에 들 것이다.그렇게 되면 용문 무성 지회로서는 경사가 아닐 수 없다.어쨌든 용문에는 서른여섯 개 지회가 있고 게다가 일부 다른 세력과 가문까지 합한다면 이 대회에 참가한다는 것만으로도 대단한 것인데 10위 안에 든다면 그것은 단연 무성을 빛낼 만한 일이었다.“저...”이때 이서국은 얼굴이 검붉게 변했다.당장이라도 하현의 얼굴을 때려 부수고 싶었다.김방아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고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하현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이 일이 설령 실제로 일어났다고 해도 김방아는 여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웠다.하현이 정말로 시험을 보러 여기 왔단 말인가?게다가 하현이 천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무학의 천재라고?생각이 이에 미치자 김방아는 도무지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정말이지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구양연 부지회장님, 방금 이 시험관이 낸 시험지입니다!”“하현이 다 풀었는데 이 시험관이 보고
구양연은 이서국을 그 자리에서 때려눕혔지만 하현에 대한 미안한 마음을 씻을 수가 없었다.자신이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아마 무학의 명예가 땅에 떨어졌을 것이다.이 일이 새로 부임한 집법당 당주에게 알려지면 자신은 그야말로 끝장이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구양연은 자신이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었음에 감사한 마음마저 들었다.이때 김방아는 겨우 눈을 껌뻑거리며 정신을 되찾아 하현에게 다가갔다.다만 그녀는 거만한 태도를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턱을 치켜세우고 있었다.“하현, 너 정말 대단해!”“축하해. 공식적으로 날 따라다닐 수 있는 자격을 얻은 거야!”“너한테 밥 한 끼 정도는 사 줄 수 있어.”“네가 좀 더 분발한다면 뭐 모르지! 나중에 내 남자친구가 될 수도 있고!”“참, 무성에 미슐랭 별 세 개짜리 레스토랑이 있다더라고. 나 거기 가고 싶은데...” 하현은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이 나왔다.“저리 가!”하현은 돌아서서 그 자리를 떠났다.김방아 같은 여자를 상대하는 건 이제 지긋지긋하다.도대체 생각이라는 것이 있는 여자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아직도 자신에게 고개를 빳빳이 들고 군림하려 하다니 정말 구역질이 날 지경이었다.구양연 일행의 끈질긴 연회 초대를 완곡히 거절한 하현은 핸드폰 번호를 남기고 시험장을 빠져나왔다....그러나 예선 통과는 축하할 일이었다.그래서 하현은 진주희와 한여침에게 적당한 노래방을 물색해 오랜만에 긴장을 좀 풀어보자고 제안했다.한편으로는 진주희와 한여침을 정식으로 부하 관계로 끌어들인 셈이었고 다른 한편으로는 긴장을 풀고자 하는 의도도 있었다.어쨌든 요즘 하현은 이 사람들을 데리고 무성에서 고단한 며칠을 보냈기 때문이다.하현이 준비한 작은 연회에 한여침은 매우 기뻤다.그는 무성 최고급 노래방에 직접 룸을 예약한 뒤 연식이 꽤 오래된 마오타이를 구했다.하현이 모처럼 마련한 자리는 그야말로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이어갔다.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만천우가 오지
영지루는 영 씨 가문 공주였다.그녀 같은 신분의 여자가 어떻게 이런 사람들에게 취해서 끌려갈 수가 있는가?하현의 눈 속엔 의심의 불꽃이 가득 피어올랐다.그는 더 생각할 겨를도 없이 한 걸음 내디뎌 인도 남자들을 가로막았다.“잠깐만!”몇 명의 남자가 동시에 걸음을 멈추고 의기양양한 기세로 하현을 쳐다보았다.“뭐?”“네까짓 게 뭔데 내 앞길을 막아?!”인도인은 거만하게 고개를 치켜들며 하현을 쳐다보았고 안하무인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난 고귀한 인도인이야. 뭣 때문에 내 앞길을 막냐고?!”“우리나라 같았으면 당신은 벌써 교수형에 처했을 거야!”“기회를 줄 때 얼른 무릎을 꿇고 사과해! 아니면 당신 끝장이야!”하현은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이 여자는 내 친구야. 놔줘.”하현이 가까이 가 보니 영지루한테서는 술 냄새뿐만 아니라 약 냄새도 풍겼다.분명 이 남자들이 영지루에게 먹인 것이 뻔했다.“이 자식이!”인도 남자의 눈동자가 험악하게 희번덕거렸다.“이 여자는 우리 형님이 찜한 여자야! 당신이 이 여자 친구든 남편이든 상관 말고 꺼져!”“오늘 밤 이 여자는 우리 형님 몫이야!”“눈치챘으면 이제 썩 꺼져! 어서!”“그렇지 않으면 죽을 줄 알아!”그가 입을 열자 양복 차림을 한 사나운 표정의 남자들도 앞으로 나와 매서운 눈초리로 하현을 노려보았다.그중 대머리 하나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입을 열었다.“당신이 무성 사람이라면 우릴 잘 알 텐데! 우린 패왕파야!”“우리 같은 사람 잘못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모르지 않잖아, 안 그래?”“얼른 사과하고 꺼져. 그렇지 않으면 오늘 밤 당신은 여기서 못 나갈 줄 알아!”패왕파는 무성 6대 파벌 중 우두머리였다.그 뒤에는 무성의 거물들이 든든히 받치고 있다고 했다.그런데 이 패왕파 사람들이 뜻밖에도 인도인들과 야합하여 세상 비열한 짓을 하고 있다니!하현은 냉랭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패왕파도 어쨌든 강호의 의리를 중시한다고
차손녕의 오만함과 횡포가 극에 달했다.그는 무성에서 이렇게 날뛰는 것에 익숙한 모양이었다.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를 두려워하고 무서워했으면 이런 태도를 보일까?그는 줄곧 제멋대로 남녀를 괴롭혔던 것이다.지금도 그는 하현을 안중에도 두지 않고 비아냥거렸다.대하인들은 인도의 네 번째 계급이라니!감히 인도 두 번째 계급 운운하며 대하에서 큰소리치다니!그야말로 죽기 살기로 덤비는 것이나 다름없었다!하현은 냉랭한 표정으로 천천히 앞으로 나왔다.“그 여자, 놔줘!”“퍽!”차손녕은 영지루의 뺨을 한 대 때린 뒤 음흉한 눈빛으로 말했다.“놔줘? 그럴 리가?!”“이 여자는 우리가 원하는 대로 갖고 놀 거야. 당신이 상관할 바가 아니야!”하현은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애써 화를 억누르며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그리고 영지루를 데리고 오려고 손을 뻗었다.차손녕은 영지루를 잡아당기며 냉소적으로 웃으며 뒤로 물러섰다.“야, 대머리. 이놈을 처리해! 난 형님한테 이 여자 넘기고 재미 좀 볼 테니까!”말을 마치며 차손녕은 영지루를 부축하고 떠나려고 했다.그러나 하현이 재빨리 그들을 가로막았다.대머리 남자가 한심하다는 듯 쳐다보며 말했다.“그럼 우리 같이 놀아볼까?!”몇 명의 남자들이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다가 순간 그들의 허리춤에 있던 칼을 꺼내 하현을 향해 마구 찔렀다.“퍽퍽퍽퍽!”하현은 거침없이 놈들을 향해 손바닥을 날렸다.순간 양복 차림의 남자들은 비명을 지르며 철퍼덕 땅바닥에 쓰러졌다.이 모습을 본 많은 사람들은 순간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대머리 남자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갔다.비록 그들 패왕파가 줄곧 횡포를 부리며 살아왔지만 이렇게까지 횡포를 부린 적은 없었다.대낮에 사람들을 못살게 군다든지 아니면 인도인을 도와 다른 사람의 물건을 강탈하든지 했다면 사람들 눈에 띄어 무슨 일이 일어나도 벌써 일어났을 것이다.순간 대머리 남자는 비수를 잡고 하현에게 달려들었다.“
”대하인이 무학을 조금 배웠다고 나랑 상대가 된다고 생각해?”“천하무공 소림이 인도에서 유래했다는 사실을 몰라?”“우리 인도인이랑? 가당키나 해? 목숨이 열 개라도 우리 인도인과는 안 돼!”“내 앞에서 감히 영웅 흉내라도 내려는 거야?”“장난 그만 쳐...”“아유, 예수가 와도 저 여자를 구할 수 없어! 내가 말했지!”“이제 당신을 죽이는 것도 귀찮아. 그러니 가만히 구경꾼 노릇이나 해. 인도인이 어떻게 이 여자를 건드리는지 잘 구경이나 하라고!”“브라흐마 형님이 맛있게 드시고 나면 내가 이 여자를 죽인 후 당신한테 누명을 씌워 버릴 거야!”“그렇게 되면 살인자는 당신이 되는 거지!”“하하하!”차손녕은 오만하게 웃어 젖혔다.그는 멀리 내다보고 벌써 갖은 전략을 다 짜놓은 모양이었다.그때였다.하현이 번개처럼 앞으로 걸어왔다.“퍽!”차손녕의 더러운 손이 자신을 건드리기 전에 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을 휘둘렀다.차손녕은 미처 피할 겨를도 없이 제자리에 빙빙 돌았고 빠진 이빨이 입 밖으로 툭 튕겨 나왔다.그의 몸은 벽에 세게 부딪혀 뼈가 부러진 뒤 만신창이가 된 것처럼 완전히 일어서지 못했다.“이럴 수가!”“당신은 우리 인도의 요화기독에 중독되었는데 어떻게 이렇게 멀쩡할 수가 있어?”차손녕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힘겹게 소리를 질렀다.인도의 의사들도 바로 해독할 수 없는 독을, 지금 이 대하인은 어떻게 한 거지?하현의 냉랭한 얼굴로 차손녕을 노려보았다.이런 저급한 수법으로 사람을 상대하다니!하현이 무슨 생각을 했겠는가?그는 쓸데없는 말도 더 이상 하기 귀찮아서 차손녕의 가슴팍에 발길질을 했다.차손녕은 입에서 피를 토하며 결국 의식을 잃어갔다.“기절한 척하지 마!”“그들이 누구인지 어서 말해!”하현은 영지루 앞에 가서 그녀를 안아 올린 후 대머리 남자를 매섭게 노려보았다.“당신한테는 단 한 번의 기회가 있어.”정신이 혼미한 척하던 대머리 남자는
”김 씨? 어느 김 씨?”하현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그는 다른 사람들이 무성 김 씨를 언급하는 것을 여러 번 들었고 언급할 때마다 공손하기 짝이 없는 자세였다는 걸 기억했다.하현은 무성에 어떻게 용 씨 가문보다 더 힘이 센 존재가 있을 수 있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한여침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형님, 김 씨 가문의 내력은 정말 대단해요!”“김 씨 가문은 원래 평범한 호족이었는데 무학의 최고봉을 배출했죠. 그 최고봉은 황금궁 문하에 들어갔고요.”“약 20년 전에 이 사람은 만진해 어르신을 물리치고 황금궁 궁주 자리에 올랐어요.”“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무성에서 김 씨 가문이 부상하기 시작했고요!”“황금궁을 등에 업었기 대문에 무성에선 미움을 살 만한 존재들이 없었죠. 그래서 김 씨 가문은 비록 대대로 내려오는 정상 가문은 아니지만 그들을 능가하는 존재가 되었죠.”“단 하나 부족한 것이 가문의 내력이 없다는 거예요.”“패왕파, 김 씨 가문.”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그는 방금 그 대머리가 왜 그렇게 대단하게 굴었는지 이해했다.신중을 기하기 위해 하현은 한여침에게 도끼파 패거리를 데리고 먼저 나가라고 했다.그리고 그는 진주희에게 함께 남아서 영지루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다.영지루는 술을 그리 많이 마시지는 않았지만 그 남자들이 먹인 약 때문에 완전히 인사불성이 되었다.하지만 진주희는 이 바닥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었다.그녀는 웨이터에게 끓인 생강물을 달라고 한 뒤 영지루의 입에 조심스럽게 흘렸다.잠시 후 영지루는 콜록콜록 기침을 하면서 먹은 것을 토해 내었다.쓰레기통에 한바탕 토해 낸 영지루는 겨우 깨어났지만 여전히 정신이 흐릿했다.눈앞에 한 남자가 있는 것을 느끼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몸부림치고 반항했다.“당신 누구야?!”“만지지 마!”“이러면 관청에 신고할 거야!”영지루는 소리를 지르며 테이블 위의 술병을 집어 자신을 보호하려고 했다.그러나 하현은
”맞선 보고 싶지 않았거든. 새장 속의 카타리나는 더더욱 싫었고. 그래서 대충 화장하고 조용히 밖으로 나왔지.”“기분 전환도 할 겸 혼자 술집에서 한 잔 마시고 있었어.”“그런데 몇 모금 마시기도 전에 인도 남자들이 나한테 말을 걸잖아? 반했다고 하면서. 내가 완전히 자기들 인도 스타일이라며.”“내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놈들을 상대하겠어?”“그냥 하는 말인 줄 알고 가만히 있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몇 명이 더 온 거야!”“그들은 다짜고짜 날 데리고 가더니 무슨 브라흐마 누구한테 가자고 하는 거야!”“꺼지라고 하면서 경호원들까지 불렀는데 경호원들은 감히 다가설 엄두도 못 내더라고.”“그놈들이 갑자기 달려와 억지로 내 입에 술잔을 갖다 대었어.”“그러고 나니 머리가 너무 띵하고 어지럽고 갑자기 힘이 빠져서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어.”“어쨌든 하현, 날 구해 줘서 너무 고마워.”“이 은혜는 반드시 보답할게!”영지루는 말을 하고 보니 만약 우연히 하현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자신은 완전히 더럽혀질 뻔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스치자 그녀는 인도인들을 눈앞에서 도륙 내고 싶은 심정이었다.“인도인들은 자기들이 한 수 위라고 생각하지만 그냥 흉악한 놈들일 뿐이야!”하현은 눈초리를 가늘게 뽑았다.“그리고 나쁜 인도인들을 옆에서 도와준 놈들이 스스로 패왕파라고 털어놓던데 당신 그 사람들 알아?”“몰라. 내가 무성에 온 이후로 정식으로 만난 사람은 만진해 아저씨뿐이야. 그리고 당신.”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패왕파도 무선 6대 파벌 중 하나이니 만진해 어르신에게 부탁해 그들한테 전화 한 통 넣어달라고 하면 별문제는 아니야.”“하지만 좀 더 복잡한 건 그들의 후원자가 김 씨 가문이라는 거야.”“김 씨 가문?”영지루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원래 김 씨 가문은 무성 최고 가문으로 부상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쓴 걸로 유명해.”“그들은 이미 황금궁을 손에 넣었지만
아버지의 지시에서 겨우 빠져나온 영지루였다.그녀는 이대로 자신의 행적과 골치 아픈 일을 아버지에게 들키고 싶지 않았다.그러나 한편으론 자신이 방금 겪은 끔찍한 일이 떠올라 화가 나서 온몸을 떨며 어딘가로 메시지를 보냈다.하현은 영지루를 향해 옅은 미소를 보이며 소다수 한 병을 건네주었다.“괜찮아. 내가 여기 있으니 걱정하지 말고 구경이나 해!”“인도인들은 평소 오만방자한 태도가 습관이 되어 있어. 자신들이 대하인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해.”“오늘 나를 만났으니 제대로 혼쭐을 내줘야지!”“우리 대하가 이렇게 부강하고 평화롭게 일어선 것은 그놈들이 편하게 짓밟으라고 이룩한 게 아니야.”“우리 대하를 건드린 자는 반드시 응당한 벌을 받아야지.”하현의 눈빛이 맹수의 매서운 그것과 닮아 있었다.당시 유라시아 전장에서 인도의 전신 몇 명이 자신에게 된통 당한 뒤 사선을 넘을 뻔했었다.지금 또 인도인들이 무성에서 위세를 떨치려고 하고 있다.허! 번지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것이다!...그 시각, 2층 럭셔리 룸 뒤로 대머리 남자가 비틀거리며 문을 밀고 들어섰다.의아해하는 수십 명의 시선들을 뚫고 가운데 테이블로 달려간 대머리 남자는 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테이블 맞은편에는 커다란 소파가 있었다.도도한 남녀가 소파 위에는 앉은 채 대머리 남자에게 시선을 떨구었다.남자는 하얀 옷을 입은 인도 남자였고 얼굴이 창백했지만 앉아 있는 자태만으로도 무서운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범상치 않은 신분임에 틀림없었다.인도상회 이사 중 한 명인 인도 선봉사 최고봉, 브라흐마 아샴이었다.그의 옆에는 스무 살 남짓한 묘령의 여인이 있었다.그녀의 얼굴과 몸매는 조각같이 아름다웠다.무엇보다 발렌시아가 검은 스타킹을 신고 있어 긴 다리가 유난히 사람을 유혹하고 있었다.검은 스타킹을 신은 여자는 다름 아닌 김 씨 가문 김규민이었다.대머리 남자가 얼굴이 퉁퉁 부어오른 채 모습을 드러내자 김규민은 위아래로 훑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