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들이 다 무릎을 꿇은 후에야 한여침은 하현을 향해 웃음을 짜내었다.“형님, 아랫사람들이 규칙을 잘 몰랐습니다. 어서 벌을 내려 주십시오!”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정신이 아찔했다.한여침이라는 도끼파 수장이 무릎을 꿇었을 뿐만 아니라 더없이 공손하고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며 존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굽신거렸기 때문이다.최예단은 더더욱 충격에 휩싸였다.그녀의 상식선에서 볼 때 한여침이라는 사람은 무성에서 무서울 것이 없는 절대적인 인물 중 하나였다!무성의 보통 사람들은 감히 그에게 미움을 살 엄두도 내지 못했다.까닥 밉보였다가는 죽음을 직면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한여침이 무릎을 꿇었다!?그것도 빛의 속도로?하현은 쥐뿔도 없는 데릴사위가 아니었던가?그가 무슨 능력이 있어 한여침을 무릎 꿇게 만들었단 말인가?조금 전까지 최예단은 오늘 이 충돌로 하현과 설유아는 끝났다고 생각했었다.그러나 한여침이 무릎을 꿇을 줄이야!그녀는 아무리 백 번 양보하고 또 양보해도 눈앞의 장면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오직 설유아만이 당연한 일이라는 듯 당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형부가 오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무릎을 꿇은 한여침에게 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마당 한가운데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무릎 꿇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촥촥촥!”한여침은 스스로의 뺨을 연달아 후려쳤다.그리고 도끼파의 고수들을 향해 걸어가 아무 말없이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이어 다시 무릎을 꿇은 한여침이 입을 열었다.“이제부터 형님이 도끼파의 진정한 주인입니다.”“도끼파 모든 사람들은 주인을 귀하게 섬길 것입니다!”“지금부터 도끼파는 형님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하현은 잠시 실눈으로 한여침을 바라보다 천천히 일어서서 단호한 발걸음으로 한여침을 발로 밟은 뒤 입을 열었다.“기왕에 개가 되고자 했으면 개가 되었다는 생
요 며칠 동안의 일을 직접 겪은 후에야 설유아는 자신에게는 어렵고 막중했던 일을 하현이 깔끔하게 처리하는 것을 보고 새삼 그의 능력에 감탄했다.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대구가 되었든 남원이 되었든 어디에나 법이란 게 있어.”“하지만 무성이란 곳은 너무 달라.”“이곳에도 법이란 게 있긴 하지만 오랜 역사가 축적되어 온 만큼 주먹의 힘이 곧 도리가 된 곳이야.”“그래서 주먹으로 응수한 거야.”“그렇지 않았으면 아내와 장모님을 구하는 것은 고사하고 무성에서 발도 붙이기 어려웠을 거야.”“자, 이제 숨 좀 돌렸으니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봐.”“무성에는 황금 광산을 보러 온 거잖아. 그런데 왜 갑자기 사기 사건에 연루된 거야?”하현이 이 사건을 꺼내자 설유아는 자신의 찻잔에 차를 따르며 지난 일을 회상했다.“형부, 내가 지금 생각해 보니 모든 과정이 누군가가 미리 계획한 거 같아요.”“용 씨 가문 용천오는 대구에 온 후 언니에게 끈질긴 구애를 펼쳤고 엄마한테 사치품을 많이 안겨 드리면서 완전히 넘어오게 만들었죠!”“나중에 그는 엄마와 언니를 황금 광산에 초대했고 언니는 한사코 거절했지만 결국 엄마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따라왔어요!”“그때 마침 난 무성 영화진흥청에서 제작하는 공연 계약을 따냈고 무성으로 같이 따라오게 된 거예요.”“그러다가 엊그제 엄마와 언니가 금광 구경에 초대받았어요.”“엄마는 금광에 들어가자마자 미친 듯이 열광했대요. 들어보니까 현장에 있던 광석을 끌어안고 자기 것인 양 흐뭇해했다고 하더라고요.”“그리고 용천오 쪽은 계약서를 꺼냈고 여러 가지 서명을 했대요. 그런데 계약서 안에는 엄마가 언니를 용천오한테 시집보내면 이 황금 광산을 엄마한테 주겠다는 조항이 있었대요...”“하지만 무성의 금광은 크고 작은 세력들이 연루되어 있었어요.”“엄마는 아무것도 모르고 서명을 했고 그 후에 바로 사기 누명을 쓰게 된 거예요!”“그리고 바로 엄마와 언니는 붙잡혀 들어갔고요.”“그러
”형부, 엄마와 언니는 정말 억울해요.”“그들을 구할 방법을 찾아야 해요!”깊은 한숨을 내쉬던 설유아가 긴장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최희정이건 설은아건 모두 어릴 때부터 응석받이로 자란 사람들이었다.그런 그녀들이 어떻게 혹독하다는 옥고를 치를 수 있겠는가?하현은 설유아의 어깨를 툭툭 치며 말했다.“이럴 때일수록 침착해야 해.”“분명히 우릴 노리고 한 짓이야. 음모가 있는 게 분명해.”“그러니 이럴 때일수록 충동적으로 행동하면 안 되는 거야.”“방금 난 한여침을 앞세워 그들 도끼파의 역량으로 사람을 구출할 수 있는지 없는지 알아보라고 했어.”설유아는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도끼파는 무성 6대 파벌 중 하나지만 황금궁과 용 씨 가문에서는 눈도 깜빡하지 않을 거예요.”“한여침이 나서서 사람을 구출해 낼 수 있을까요?”하현은 단호하게 뚝 잘라 말했다.“해보지 않고 어떻게 알아?”“한편으론 한여침의 역량을 가늠해 볼 수 있고.”“또 한편으로는 잔잔한 무성 바닥에 돌멩이를 던져 그 물이 얼마나 깊은지 가늠해 볼 수도 있지.”하현이 일찌감치 계획을 세워 놓은 걸 보고 설유아는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참, 형부. 이제야 생각난 게 있어요.”“내가 이번에 무성에 와서 여러 개의 공연 계약을 했는데요. 모두 무성 엔터테인먼트와 맺은 계약이에요.”“그런데 만약 계약을 어기고 공연을 하지 않으면 많은 위약금을 물어줘야 해요. 계약서대로라면요.”“무성 엔터테인먼트?”“성원효?”하현은 가볍게 실소를 터뜨렸고 눈에는 차가운 빛이 감돌았다.“내일 처제가 공연을 하게 되면 내가 조남헌을 곁에 붙여둘게.”“무슨 일이 생기면 제일 먼저 연락해, 알았지?”“형부가 있어서 너무 안심이에요.”...다음날 이른 아침, 설유아는 걱정이 앞섰지만 조남헌을 대동하고 결국 공연에 참석했다.한편 한여침은 하현에게 와서 공손한 자세로 보고했다.그의 말에 따르면 그는 어젯밤 무성 경찰서의 2인자를
하현은 무덤덤하게 말했다.“괜찮아. 내가 있으니 이제 무성은 조만간 당신의 무대가 될 거야.”“다만 당신은 나에게 당신의 가치를 보여줘야 해, 안 그래?”“나 하현이 사람들을 도울 수 있지만 쓸모없는 사람을 도울 수는 없잖아?”하현의 담담한 말에 한여침은 흥분하며 몸을 떨었다.하현의 실력은 그가 직접 눈으로 보고 몸소 겪었다.그런 사람이 자신을 도와준다면 앞으로 무성 다른 6대 파벌도 도끼파를 우러러보게 될지도 모른다.이런 생각을 하니 한여침은 더욱 힘이 불끈 솟아올랐다.“자, 아직 무성 경찰서 이인자가 아직 오지 않았군.”“뭐 이렇게 된 김에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들어나 보자구, 응?”하현은 진주희에게 찻물을 바꾸라고 지시한 후 의자에 편안하게 기대어 나른하게 입을 열었다.하현이 화를 내지 않자 한여침은 한시름 놓으며 비로소 공손한 자세로 말했다.“형님, 무성 경찰서의 이인자 이름은 성경무입니다...”“성 씨? 용 씨 가문 외척? 성원효의 친척이군.”하현이 흥미로운 눈빛으로 말했다.“맞습니다. 성경무는 성원효의 친척입니다.”“성 씨 가문은 비록 최고 가문급은 아니지만 용 씨 가문과의 관계 때문에 무성에서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집안입니다.”“게다가 용 씨 가문의 외척이라는 신분 때문에 성경무는 경찰서에서도 막강한 권력을 지닌 인물이라고 합니다.”“무성 경찰서 수장조차 함부로 하지 못한다구요.”“어젯밤 성원효를 통해 그를 찾아갔습니다.”“하지만 제가 그 사기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성경무는 저한테 긍정적인 답변을 주지 않고 오늘 형님이랑 얘기 나눠 보겠다고만 했습니다.”“얘기를 나눠 보겠다?”하현은 점점 더 흥미로운 듯 눈꼬리를 살짝 치켜 올렸다.“아마 그 성경무라는 사람은 단순히 나와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만나려는 건 아닐 거야.”“당신이 이렇게 발 벗고 나서서 돕는 사람이 얼마나 무게가 나가는 놈인지 가늠해 보고 결정하겠다는 거지?”“용 씨 가문도 아마 그의 손
”용 씨 집안?”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용 씨 가문이 이렇게 대놓고 당당하게 이 일에 개입할 줄은 몰랐다.보아하니 이 사람은 용천오가 보낸 사람인 것 같았다.한여침은 바로 물었다.“그 사람 어디 있어?”단발머리 여자는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지금 정문에 있습니다. 안색이 좀 안 좋아 보입니다. 한여침이 마중도 안 나오는 것 보니 간이 배 밖에 나왔나 보다 하셨어요.”“그리고 뭔가 많이 언짢은 듯한 표정이었습니다...”한여침은 눈살을 살짝 찌푸린 뒤 입을 열었다.“형님, 내 추측이 맞다면 지금 온 그 사람은 용목단인 것 같습니다.”“그는 용천오의 주변 인물로서 인기가 많은 사람입니다.”“무성 관청 사람들과도 사이가 좋구요.”“이번에 따라온 건 분명 용천오의 뜻일 겁니다.”“생각보다 일이 더 꼬일 것 같아요.”하현은 찻잔을 움켜쥐고 담담하게 말했다.“용천오든 용천오의 사람이든 감히 내 앞에서 함부로 으쓱댄다면 절대 체면 따위 봐주지 않을 거야.”“들어오라고 해.”“무슨 낯짝으로 나더러 마중을 나오네 안 나오네 하는 거야?”한여침은 이 말을 듣고 눈썹을 파르르 떨었다.성경무 일행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인물이지만 자신의 주인도 만만찮은 인물임을 다시 한번 느꼈다.오늘 이 만남은 첨예한 대립의 현장이 될 것이 분명해 보였다.시간은 1분 1초 흘렀고 약 5분 후 하현이 차를 채우려 했을 때 정원 앞에서 분노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그런 다음 ‘쾅'하는 소리와 함께 정교하게 문양이 새겨진 문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벌컥 열렸다.정장을 입은 말끔한 50대 남자가 성큼성큼 들어왔다.그의 옆에는 당나라풍 옷을 입은 한 노인이 따라다녔다.머리는 희끗희끗하고 얼굴은 주름이 많이 져 있었지만 자신감으로 똘똘 뭉쳐 있는 인물임이 표정에서 드러났다.그리고 그 두 사람의 뒤편에는 예닐곱 명의 남녀가 따라왔다.이 남녀들은 모두 화려한 옷을 입었고 자태가 상당히 도도하고 거만했다.보기에 따
”개자식!”“당신 누구야?”“아직 핏기도 안 마른 것 같은데 감히 그런 말을 해?”“누가 너한테 그런 배짱을 줬어?”누군가가 감히 용목단을 나무라는 소리를 하자 예쁘장한 여자가 차갑게 입을 열었다.“죽고 싶어?”다른 사람들도 모두 살기등등한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한 마디만 더 하면 바로 손을 쓸 것 같았다.“용소설, 무례하게 굴지 마!”하현을 노려보던 용문단은 어리둥절해졌다.하현은 가시 돋친 듯 꼿꼿하게 앉아 있고 한여침은 옆에서 공손하게 시중을 드는 모습에 하현의 신분이 보통이 아닌 걸 알았기 때문이다.그와 동시에 성경무를 보자고 한 사람이 하현임을 알아차렸다.전통 복장을 한 용소설을 나무란 뒤 용목단은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이분은 어디서 온 사람이길래 6대 파벌 중 하나인 도끼파 수장 한여침에게 차 시중을 들게 한 거지?”“간이 부었군!”“당신이 대단한 사람인지 한여침이 요 몇 년 동안 점점 더 쓸모 없어져서 아예 사람이 썩어 버린 건지 모르겠군.”한여침의 뒤를 받치고 있는 하현이 소위 거물이라는 걸 알아챈 용소설 일행은 모두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한마디도 하지 않고 이 상황을 지켜보던 성경무도 힐끔 하현을 바라보는 눈치였다.왜냐하면 그는 눈앞의 이놈이 경찰서에 억류된 두 여자와 얽혀 있고 십중팔구 대구에서 온 것이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하지만 이치상 대구에서 온 거물이라면 뭔가 특별한 점이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하지만 하현이 그에게 준 인상은 너무나 평범했다.말로만 듣던 그 패기와 기운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설마 돈으로 한여침을 매수한 건 아니겠지?용소설 일행은 위아래로 하현을 힐끔 보고서 저렇게 허여멀건하게 생긴 남자는 무성에서 결코 어깨를 펴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결국 무성은 주먹이 가장 큰 원칙이다.하현은 아직 젊고 여려 보였다.아무리 봐도 소위 고수의 냄새가 풍기지 않았다.그러자 용소설은 하현을
”용 어르신, 성 서장님, 진정하세요. 진정하세요...”쌍방이 주고받는 말들이 격렬해지자 한여침은 두 남자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을 보고 얼른 진화에 나섰다.그는 무성 길바닥에서 반평생을 빈둥거리며 살다가 이런 국면은 처음 겪는 터라 어떻게든 두 사람의 환심을 사려고 애썼다.“두 분께서도 제 체면을 좀 세워 주십시오!”“대승적으로 생각해 주십시오!”“얘기가 끝난 후에 저를 벌하셔도 늦지 않습니다.”“퍽!”“체면?”“당신이 내 앞에서 무슨 내세울 체면이 있다고?”용목단은 일어서서 앞으로 나와 한여침의 얼굴을 그대로 후려쳤다.한여침의 얼굴은 순간 벌겋게 부어올랐고 그의 눈에는 노기가 가득했지만 용목단의 신분을 떠올리며 그는 끓어오르는 노기를 참아야만 했다.어쨌거나 용목단의 배후는 용 씨 가문, 용천오였기 때문이다.한여침이 아무리 소인배에 마구 날뛰는 인물이어도 용 씨 가문을 건드릴 수는 없었다.“용 어르신, 성 서장님, 두 분이 이렇게 여기까지 오셨으니 어서 오르시지요.”“우리가 여기서 일을 하자고 만난 거지 싸우자고 만난 건 아니잖습니까?”“이런 사실이 알려지면 서로가 보기 좋지 않겠죠.”“그러니 두 어르신은 소인의 잘못을 따지지 마시고 일단 얘기부터 나눠 보시는 게 어떻겠습니까?”한여침이 굽신거리는 모습을 보고 용목단은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래, 좋아. 도끼파의 체면을 봐서, 그리고 자네가 한 인물하는 사람이라는 걸 봐서 이번엔 내가 참지!”“하지만 또 이러면 그땐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인정머리 없다고 날 탓하지 말게!”그러자 용목단은 하현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이놈, 넌 오늘 운이 좋은 거야!”“한여침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네놈의 뺨을 몇 대는 후려갈겼을 것이고 무릎도 꿇렸을 거야.”“무릎을 꿇고 기어도 시원찮아!”말을 마친 용목단은 자신의 주먹까지 불끈 쥐며 우쭐대었다.하현은 그 모습을 보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쓸데없는 말이 너무 많군요.”“내가 만
”말을 잘 해 줘요?”하현의 얼굴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성 서장님,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요.”“전 그런 거 하지 않습니다.”“그러나 반드시 그 사람들은 보석해 주어야 합니다.”“한 시간 드리겠습니다.”하현은 왼손을 들어 손목에 찬 롤렉스 시계를 보더니 표정이 더욱 어두워졌다.“한 시간 뒤 두 사람을 만나지 못한다면요.”“죄송하지만 계약서를 사실로 만들 수밖에 없습니다.”하현은 말을 마치며 손뼉을 쳤다.진주희는 옆에서 계약서 사진 몇 장을 꺼내 성경무 앞에 던졌다.성경무는 얼른 계약서 사진을 보더니 얼굴이 까맣게 변했다.그 사진은 최희정이 ‘사기'를 쳤다고 뒤집어쓴 그 계약서를 찍은 것이었다.하지만 이 계약서는 지금 무성 경찰서에 소장되어 있을 텐데 어떻게 다른 사람이 사진을 찍을 수가 있었지?성경무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매섭게 쏘아보았다.성경무의 코앞에서 이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하현 쪽 한여침밖에 없다.그는 무성 6대 파벌 중 하나인 도끼파의 수장이니 뒤로 내통하는 수사팀장을 찾아가서 사진 몇 장 찍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일 것이다.성경무는 잠시 동안 사진을 뚫어져라 본 후에 냉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하 씨, 사실대로 말하자면 우리 경찰서에서 이미 이 계약서를 감정해 봤어. 가짜로 판명 났고.”“그걸 진짜처럼 만들고 싶어?”“당신도 감옥에 들어가 썩고 싶은 거야?”하현이 담담한 얼굴로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성경무 서장님, 우리는 그런 나쁜 취미 없어요.”“하지만 사진을 입수한 후 저도 이미 대구, 남원, 항성의 몇 개 기관에 의뢰하여 감정을 했습니다.”“그런데 서명도 날인도 모두 진짜 계약서였습니다.”“계약 내용은 어처구니없어 보였지만 말이죠.”“내가 원하기만 한다면 난 이 계약을 실제로 이행 가능하게 만들 수 있어요.”“당신네 무성의 황금 광산을 정말로 최희정 여사의 소유로 만들 수 있다 이 말입니다.”하현의 표정은 냉담했다.
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설은아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정말 해결할 수 있어?”설은아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응. 할 수 있어.”해결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하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 않았다.이번이야말로 하현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고 싶었다.“알았어. 해결할 수 있으면 됐어.”하현도 설은아가 허투루 말을 하는 가벼운 입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해결이 잘 안 되면 억지로 버티지 말고 꼭 말해. 내가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 볼게.”하현의 말을 듣고 이시운은 더욱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보아하니 데릴사위가 말주변이 아주 좋을 뿐만 아니라 허세 부리는 것도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붕!”바로 그때 사람이 드문 도로에 번호판 없는 승합차 여러 대가 포르쉐 앞에 나타났다.뒤이어 승합차 몇 대가 나타나 하현 일행을 태운 포르쉐를 에워쌌다.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길이 없는 설은아와 이시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착!”이때 문이 열렸고 러닝셔츠를 입은 십여 명의 사람들이 손에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를 들고 걸어 나왔다.그때 승합차 한 대의 문이 스르르 열리며 우민은과 이국흥 두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이 개자식들!”설은아는 이 두 사람을 보자마자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차렸다.“이런 치졸한 방법을 쓰다니!”하현은 이런 일을 너무 많이 겪어 봐서 그저 냉담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이시운은 이런 광경이 처음이라 온몸을 부르르 떨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대표님, 이제 어떻게 해요?”“어서 신고해!”설은아는 무서울 정도로 침착했다.“내가 가서 시간을 벌어 볼 테니까!”“그래도 내가 대구 정 씨 가문 사람이니까!”“날 건드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들도 모르진 않을 거야.”“그러니 날 함부로 하진 못 하겠지!”“하현, 당신은 차 안에 있어. 나오지 말고 여기 있어. 괜히 나와서 일 크게 만들지 말고!”설은아는 상대가
설은아는 이시운을 데리고 포르쉐에 올라탔고 하현을 조수석에 앉혔다.액셀을 밟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아침에 대출받느라 바빴고 점심때는 직원들 월급 해결하고 회사 일도 다 처리했어. 이제 아무 문제없어.”“자, 이제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한테 말해 봐, 아직도 아무 말 안 할 거야?”하현이 웃으며 말했다.“무슨 일?”“당신과 나천우의 일.”설은아는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나천우와 아는 사이였다고 해도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어차피 하현도 성공한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나천우가 어떻게 그처럼 그를 깍듯하게 모실 수 있냐는 것이다.하현을 위해 나천우는 은행 고위직 두 명을 바로 해고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곧바로 이천억이란 거금을 대출해 주었다.하현은 금정에 온 지 겨우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나천우는 은둔가 나 씨 가문 사람인데 어떻게 그가 하현에게 이렇게 극진한 대우를 할 수 있는가?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하현이 나천우를 안다는 말을 듣고 이시운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못마땅한 표정으로 비웃었다.나천우가 설은아의 미모에 흑심을 품고 하현의 체면을 세워 준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하현은 우쭐대고 있는 건가?참, 같잖은 꼴이라니!하현은 설은아가 무엇을 물어보는 것인지 간파한 뒤 입을 열었다.“나천우가 나한테 마침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었거든.”“무슨 부탁? 중요한 일이야?”설은아는 호기심에 눈빛이 반짝반짝거렸다.“나천우 같은 사람이 웬만한 일로 부행장과 부장을 해고하지는 않았을 거야.”이 말을 듣고 이시운은 깜짝 놀라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그런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러나 그녀는 점점 더 자신의 추측이 맞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단지 데릴사위인 하현이 주제도 모르고 설칠 뿐이라고 생각했다.“날 속일 생각하지 마. 도대체 어떻게 나천우의 신임을 얻게 된 거야
”참, 여기 사인 좀 해 줘.”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나천우는 발걸음을 옮기려던 하한을 붙잡았다.그는 재빨리 옆방으로 가서 서류철을 가져와 하현에게 사인하라고 했다.하현이 서류를 받아들고 힐끔 쳐다보다가 나천우에게 눈길을 돌렸다.“이게 뭐예요?”“작은 거지만 내가 준비했어. 거절하면 안 돼!”말을 하면서 나천우는 직접 하현의 손을 잡고 지장을 찍은 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까지 쳤다.하현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형님, 도대체 이게 뭐예요?”나천우는 웃으며 말했다.“이건 당신 형수가 우리 집안에 시집오고 나서 일으킨 회사야. 금정개발이라고 집을 짓고 파는 부동산업이지.”“이제 당신 형수는 아이를 낳는 데 전념해야 하니 이 땅과 회사 일에 쏟을 시간이 없어.”“이걸 팔거나 혹은 다른 사람한테 좌지우지하는 것도 보기 불편할 거야. 혼수나 다름없는 거였으니까.”“이제 당신 손에 넘어갔으니 아마 당신 형수도 분명 기뻐할 거야.”“지금부터 당신은 주식을 90% 가진 금정개발 대주주이며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진 사람이야!”“나머지 10%는 우리 부부의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셈으로 치자고.”“회사가 크지는 않아. 직원도 100명 남짓이고.”“회사에서 최근 몇 필지를 분양받아 개발하려고 사전 준비 작업을 하고 있어!”“하현, 마음에 드는 땅이 있거나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공과 사는 분명히 구분해야 하니까 이자는 꼬박꼬박 내야 해. 하지만 우대금리로 잘 해줄게.”말을 마치며 나천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속으로 부자들은 역시 스케일이 다른 건가 잠시 생각할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부동산 개발 회사가 보너스라니!이렇게 되면 자신이 금정 제일 부동산 개발업자가 되는 게 아닌가?만약 최희정이 이 사실을 안다면 피를 토하며 분노를 뿜을 것이다.하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는 이것이 나천우 부부의 호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만
하현은 나천우에게 담요를 가져와 임단의 몸에 덮어 주라고 일렀다.그다음 그녀를 푹 쉬게 해 두고 조용히 나천우에게 따라나오라고 했다.바깥으로 나온 나천우는 하현을 깍듯이 대하며 옆에 있는 응접실로 데리고 와서 허리를 굽혀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하현, 이제 다 해결된 거죠?”“우리 아이를 극락으로 잘 보내 준 거죠?”그의 얼굴에는 기대와 긴장감이 가득했다.하현은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나천우를 쳐다본 뒤 옅은 미소를 지었다.“나 사장님, 세상에 귀신이 있다고 믿습니까?”나천우는 적잖이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하현, 세상에 귀신이 없다면 방금 그 말은 도대체...”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나 사장님, 아침에 제가 한 말 기억하세요?”“마음의 병은 마음의 약으로 고쳐야 합니다.”“사모님은 사실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아이를 잃었다는 상실감 때문에 마음에 응어리가 졌던 것뿐입니다.”“그래서 사모님의 몸은 일종의 가임신 상태에 빠진 거죠.”“이런 상황에서는 두 분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가질 수 없습니다.”“하지만 방금 제가 사모님 앞에서 보인 모습 때문에 사모님은 비로소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겁니다. 죽은 아이가 좋은 것으로 갔다는 안도감이 사모님의 마음을 위로한 거죠.”“마지막으로 사모님의 몸에 숨을 불어넣어 사산했을 때 감염되었던 약간의 풍한을 제거했어요.”“이제 사모님은 멀쩡한 사람입니다.”“두 분이 이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거죠.”하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물론 내가 사장님한테 이렇게 다 털어놓고 말씀드리는 건 사장님이 문화인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거예요.”“하지만 사모님은 여자이기 때문에 이 일은 아마 사장님과 나 사이의 비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아이를 무사히 출산한 뒤에 말씀드려도 늦지 않습니다.”“나중에 두 분이 날 너무 사기꾼으로 몰아붙이지나 마세요. 하하.”하현이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말을 마친 후 하현은 얼른 종이와 붓을 꺼내 그 위에다 뭔가를 쭉 쓴 뒤 담담하게 말했다.“나 사장님,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이 물건들을 빨리 준비해 달라고 이르세요.”“이 물건들은 부인의 체내에 음흉한 기운을 모두 뽑아줄 겁니다.”“그렇게 해야 완전히 문제가 해결됩니다.”“음흉한 기운이 다 제거된다면 두 분은 자연스럽게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예요.”나천우는 종이에 적힌 물건들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고맙습니다. 바로 준비하라고 이르겠습니다.”순간 나천우의 마음속엔 하현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올랐다.나천우는 하현이 엄청난 돈이나 물질적인 것을 터무니없이 요구할까 봐 살짝 걱정이 되었었다.그런데 하현이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단칼에 승낙할 줄은 몰랐다.그래서 나천우는 하현을 완전히 높이 평가하게 된 것이다.잠시 후 나천우의 측근들은 하현이 지시한 물건을 모두 준비해 왔다.닭 피 한 그릇과 종이돈 한 묶음, 종이돈을 태우는 양동이.이를 본 임단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하현,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하현은 테이블을 가리켰다.“부인, 죄송하지만 여기 누우시고 배가 보이게 옷을 살짝 위로 올려 주세요.”하현의 말에 임단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이어 그녀는 코트를 벗은 뒤 셔츠를 살짝 걷어 올려 새하얀 아랫배를 드러낸 채 테이블 위에 누었다.나천우는 이 광경을 보며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건...”하현이 천천히 나천우에게 설명했다.“부인은 뱃속에서 아이가 죽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음흉한 기운이 여기 가득 들어 있습니다.”“예로부터 뱃속에서 죽은 아기는 엄마의 품을 떠나기 싫어 그 영혼이 떠돈다고 합니다.”“그래서 두 분이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죠.”“오늘 저는 죽은 아이의 영혼을 잘 달래서 보내주려는 거고요.”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와 임단은 동시에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벌린 입을
하현은 냉랭하게 말했다.“미안하다고 할 필요 없습니다.”“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나한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만 들으면 됩니다.”“나머진 당신이 알아서 하면 되죠.”“난 아무 이견도 달지 않을 테니까요.”하현의 말은 마치 이 모든 것이 그와 무관한 일처럼 가볍게 들렸다.그러나 가볍게 들리는 그 말속에 숨어 있는 어조는 서늘한 기운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원래 하현이 어떻게 망신을 당하나 구경이나 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놀라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눈알을 땅바닥으로 떨구었다.결국 그의 어조로 보아하니 그가 가볍게 말하면 말할수록 더욱 화가 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그리고 우민은과 이국흥 두 사람은 이 일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나천우는 하현을 향해 빙긋 웃으며 허리를 곧게 펴고 시선을 뒤로 돌렸다.그의 눈빛 속에 찬바람이 가득 휘몰아쳤다.우민은과 이국흥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왔고 무릎을 꿇으려 했지만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아 그대로 힘없이 풀썩 주저앉았다.“일어서세요!”나천우는 폭풍 전야의 고요한 태풍의 눈처럼 차분한 목소리였다.단지 손가락을 까닥이며 경호원에게 쇠 파이프를 건네받아 직접 두 사람의 다리를 한쪽씩 부러뜨렸다.그리고 나서 활을 들고 두 사람의 손바닥을 향해 활을 쏘았다.“휙!”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매섭게 울렸다.두 사람이 손바닥이 떨구어지자 나천우는 두 사람을 문 바깥으로 걷어차며 말했다.“잘 들어. 다시는 당신들 두 얼굴을 금정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아.”“감히 이 두 사람을 거두는 자는 나 나천우에게 도전하는 거라 생각할 거야!”“사람들을 교외로 내쫓아 스스로 빌어먹고 살게 해!”...10분 만에 설은아가 그토록 골머리를 앓던 이천억 대출이 순조롭게 실행되었다.무이자일 뿐만 아니라 담보 물건도 없이 진행되었다.다만 각종 수속이 복잡해서 설은아는 VIP실에 남아 서류 처리를 해야 했다.나천우는 하현을 깍듯이 모시고 행
”좋아, 당신이 그렇게 잘난 척을 하니 한 명이라도 어디 해고해 봐!”우민은은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비아냥이 가득한 얼굴로 하현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자! 어서 해 보라니까!”“퍽!”바로 그때 은행 로비의 문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차여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 열 명이 나타났다.선두에 선 사람은 양복 차림이었는데 그냥 보기에도 부티가 좔좔 흘렀다.그는 바로 금정은행 은행장, 은둔가 나 씨 가문 나천우였다.나천우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우민은과 이국흥은 모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려 굽신거렸다.“행장님!”“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우민은과 이국흥은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나천우 앞에서 입이 찢어져라 환한 미소를 보였다.그런데 평소에는 친근하게 그들을 대했던 나천우가 오늘 이렇게 차가운 얼굴로 들이닥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나천우는 그들에겐 눈길도 돌리지 않고 하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하현의 손을 잡고 힘껏 흔들었다.“하현,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이 말을 듣고 장내의 분위기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해졌다.모두 어안이 벙벙해지다 못해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곳곳에서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잠시 후 예쁘장한 여직원들이 자신의 뺨을 세차게 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그러나 눈앞의 광경은 잘못 본 것도 아니고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놀라움과 의아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연스럽게 하현에게 쏠렸다.몇몇 여자 고객들도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가 않는지 입을 막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어버렸다.우민은은 마치 사지가 마비된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이국흥은 더했다.사지가 그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쉼 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이게 무슨 상황인가?그들은 하현
이국흥은 염치도 체면도 안중에 없는 사람 같았다.그는 없던 일을 있었던 일처럼 꾸몄다.그의 목적은 단 하나, 우민은이 하현을 혼내 주길 바랐던 것이다.이때 설은아가 얼른 입을 열었다.“부행장님, 그게 아닙니다...”우민은은 이국흥에게 힘을 실어 주러 온 상사였기 때문에 당연히 설은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감히 우리 은행에서 사람을 때려요?”“간이 배밖에 나왔어요?”“지금부터 당신은 우리 은행 블랙리스트에 오를 거예요!”“이봐! 어서 관청에 신고해!”그녀의 카랑카랑한 말투는 오만하기 그지없었다.그러자 설은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분명 그녀는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될 줄은 몰랐다.설은아가 이끄는 회사의 자금줄이 빠듯한 건 사실이었다.그런데 결국 이렇게 완전히 파산하게 되었다.자신이 아홉 번째 집안을 맡은지 얼마나 되었는가?이렇게 빨리 파산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훗날 대구 정 씨 가문의 수장이 되겠다는 것인가?그야말로 허황된 꿈이었다!“하하하! 이게 바로 당신의 최후야!”“이제 알겠어?”이국흥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개자식! 이 개새끼야! 너 방금 정말 미친놈처럼 날 치더라? 정말 대단했지, 안 그래?”“자, 다시 한번 더 해 보시지?!”“당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디 한번 보자고!”“퍽!”하현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그의 요구에 답하며 앞으로 걸어가다가 또 한 번 손바닥을 휘둘렀다.이국흥은 하현이 감히 자신에게 또 손을 쓸 줄은 몰랐다.뺨을 맞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그는 가까스로 우민은의 몸에 기댄 덕분에 쓰러지지는 않았다.“미친 거야?!”“당신들 여기가 무법천지인 줄 알아?”우민은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이봐, 어서 신고해!”“은행 협회에 통보해서 설은아한테 대출 다 막으라고 해!”이때 하현은 싸늘한 표정으로 우민은과 이국흥을 바라보며 말했다.“두 사람이야말로 내 블랙리
하현을 말리는 설은아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국흥은 험상궂은 얼굴로 이를 갈며 일어섰다.그는 입가의 피를 닦고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개자식! 당신 누구야?!”“당신이 뭔데 감히 이러는 거야?”“날 때려? 감히 날 때렸어?”“내가 뭐?”하현은 앞으로 나서면서 또 손바닥을 올려 이국흥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감히 내 아내한테 그런 모욕감을 주다니! 나한테 누구냐고 물었어?”“내가 누군지 당신 눈엔 안 보여?”“혹시 설 대표가 당신 부인이야?”이국흥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뭔가 떠오른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신이 그 소문으로만 듣던 그 쓰레기 같은 놈?”“그런데 감히 날 때려?!”“죽여버릴 거야!”하현은 또 그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퍽!”“날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그렇지만 내 여자를 건드리는 놈은...”“절대 용서할 수 없어! 오늘이 당신 제삿날인 줄 알아!”퉁퉁 부은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은 이국흥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벌벌 떨었다.“하현, 그만해! 그만하라고!”설은아는 한사코 하현을 말리며 붙잡았다.“또 때리면 정말 사람이 죽겠어!”그녀는 마음속으로는 그를 고맙고 든든하게 여겼지만 불똥이 그에게 튈까 봐 걱정도 되었다.오래된 도시 금정의 은둔가 가문이 뒷배에 있는 금정은행 부장을 누가 건드릴 수 있겠는가?금정은행의 뒷배인 나 씨 가문은 금정 금융계의 거물이었다.“개자식! 감히 날 때리다니?!”“흥! 넌 이제 죽었어! 내가 반드시 널 죽여버릴 거야!”이국흥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러나 그는 감히 하현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입만 떠들썩하게 떠벌렸다.“반드시 관청에 보고해서 감옥에 처넣어 버릴 거야!”“그리고 제멋대로 날뛰는 네놈 때문에!”“이 여자도 상상하기 힘든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블랙리스트에 올라 금융계에선 다시는 일 원 한 푼 빌릴 수 없게 만들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