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든지 내 손에만 걸려 봐!”“당신이 어떤 내력이 있든!”“어떤 사람이건 감히 우리 표 선생을 이리 만들다니! 지금 우리 도끼파랑 한판 해 보겠다는거야!?”“우리한테 덤비기만 해! 아주 갈기갈기 요절을 내놓을 테니까!”“어서 덤벼!”우락부락한 건달이 고래고래 소리를 치자 패거리들은 모두 흉악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왔다.도끼파는 무성에서 그 오랜 세월을 호령하면서 지금까지 남들을 괴롭혀만 봤지 남들한테 괴롭힘을 당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그런데 지금 눈앞에 표 선생이 누군가에게 만신창이가 되어 묶여 있는 것이 아닌가?도끼파들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표 선생이 지금 그들의 손아귀에 있지만 않았더라면 벌써 공격을 퍼부었을 것이다.이미 반쯤 죽은 표 선생은 도끼파 형제들이 달려들어 자신을 위하는 것을 보고 순간 서슬 퍼런 냉소를 터뜨렸다.“이 개자식들! 이제 너희들은 다 죽었어! 뼈도 못 추리게 될 거야!”“감히 날 이렇게 만들어?”“우리 도끼파를 없애버리겠다고?”“헛소리도 정도껏이야!”“우리 도끼파들의 진면목을 아직 못 본 거지. 그러니 이렇게 간도 크게 쳐들어오지!”“어떻게 해 줄까? 머리부터 깨 줄까? 아니면 이빨로 자근자근 씹어 줄까?”“이제 너희들은 죽었어!”“더 이상 살 길이 없다구!”“사는 게 지겹다고 한탄하는 사람은 봤는데 이렇게 스스로 죽음을 자초하며 찾아온 사람은 처음 봤어!”표 선생이 광기에 휩싸여 섬뜩한 말들을 늘어놓자 최예단은 벌벌 떨며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이 개자식! 당신 때문에 나까지 죽게 생겼잖아!”“호랑이 굴에 제 발로 찾아오다니!”“세상에 당신 같은 바보가 어디 있겠어!”하현은 벌벌 떨며 자신에게 화풀이를 해대는 최예단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시큰둥하게 차창을 열며 말했다.“우리 표 선생이 귀환하셨는데 어서 데려다 드려!”하현의 말을 들은 조남헌은 바로 표 선생의 등을 걷어찼다.“쾅!”둔탁한 소리가 무섭게 울렸고 표 선생은 순
하지만 조남헌의 성격에 어떻게 이들을 가만히 놔두겠는가?그는 껄껄 웃으며 가속페달을 미친 듯이 밟아 전방을 향했다.도끼파 패거리들이 또 몇 명 날아갔다.상대방이 도끼를 들고 있든 총을 가지고 있든 조남헌은 조금도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차를 몰았다.이 부잣집 도련님은 보통 사람에게는 없는 잔인함을 지녔다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악당에게는 악당이 해결책이라는 말은 바로 이런 순간을 말하는 것이다.순식간에 백여 명에 가까운 도끼파들이 쓰러졌고 그들 진영은 모두 전투력을 잃고 비명을 질렀다.앞장섰던 올백머리 남자만 와들와들 몸을 떨고 있었다.조남헌이 차를 몰고 자신을 치려고 하는 것을 본 올백머리 남자는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이 개자식!”“운전을 하면서 사람을 이렇게 들이받는 게 무슨 재주라도 되는 줄 알아!”“자신 있으면 나와서 한판 붙어 보자구!”“탕!”올백머리 남자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조남헌은 차에서 뛰어내려 손에 들고 있던 수렵총을 들고 그대로 남자를 향해 방아쇠를 당겼다.올백머리 남자는 온몸에 경련을 일으켰다.그의 마지막 의식 속에는 강호의 규칙이고 뭐고 없는 무자비한 조남헌의 모습만 남았다.일을 끝낸 후 조남헌은 올백머리 남자에게는 시선도 두지 않고 바로 납탄을 만지작거리다가 험악한 표정으로 도끼파 패거리들 속으로 던졌다.요즘 그는 대구에서 마냥 놀기만 하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무도 수련에 진척은 많이 없었지만 조남헌은 자신의 강점을 찾았다.그것은 바로 총기 사용이 아주 능숙하다는 것이었다.게다가 제멋대로 날뛰는 거침없는 부잣집 도련님 기질까지 더해져 총을 사용한 후에는 온몸에서 풍기는 기운이 그야말로 살벌했다.하현 정도의 인물은 그를 쉽게 자기 사람으로 끌어들일 수 있었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림도 없었다.누구도 이런 성격의 조남헌을 감당하지 못했을 것이다.조남헌이 도끼파를 향해 진격하는 것을 보고 하현은 얼른 설유아를 데리고 나왔다.뒤쪽에는 진주희
도끼파 패거리 전체는 혼란에 빠졌고 누군가 경보를 울렸다.그러자 수많은 도끼파 패거리들이 달려 나왔다.하지만 조남헌은 개의치 않았다.그는 손에 든 수렵총을 끌고 한 걸음씩 앞으로 성큼성큼 나갔다.조남헌의 기개와 기질은 보통 사람들이 가질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조남헌이 거침없이 직행하는 것을 하현도 보았지만 막을 생각은 없었다.최예단은 목이 바짝바짝 타들어갔다.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그야말로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같았다.아니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도 이렇게 찍지는 않을 정도로 미친 광경이었다.너무나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순간 최예단은 참지 못하고 굳을 얼굴을 쓱 문지르며 벌벌 떨면서 한마디 내뱉었다.“하현, 저 안에는 적어도 몇 백 명은 족히 있을 거야!”“당신이란 사람은 대단하지만 당신의 두 주먹은 열 주먹을 당해내지 못해. 일단 사람이 너무 많아. 절대 당해내지 못할 거라고!”“저 한 사람이 총 한 자루에 기대어 수백 명을 상대한다는 건 바보 같은 짓이야!”“우리 무성 사람들은 모두 알고 있어. 저 안에 도끼파들이 얼마나 많이 있는지 뻔히 보인다고. 그리고 실력들도 하나같이 강해!”“내 말 좀 들어. 제발 그만둬!”“그리고 연줄이라도 찾아서 한여침한테 사죄하고 더 큰 화를 면하는 게 나아!”“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죽어!”“당신 부하가 대단하긴 하지만 총 한 자루 가지고 뭘 어쩌겠다는 거야? 아무 소용없어...”최예단은 하현 일행을 따르면서도 한편으로는 어서 조남헌을 말리라고 야단이었다.하지만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사이에 조남헌은 이미 멀리 걸어가 문을 발로 뻥 걷어찼다.사방팔방에서 백 명에 가까운 도끼파들이 이름에 걸맞게 도끼를 손에 들고 덤벼들었다.진주희는 앞으로 나가서 조남헌을 도와 도끼파 패거리들 진영으로 돌진했다.그러나 조남헌은 음흉한 미소를 떠올리며 손에 들고 있던 수렵총을 들어 올렸고 도끼파 패거리들이 뒷걸음질치는 순간 한 발짝 내디뎌 손바
최예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그녀는 갑자기 온몸이 굳어지고 안색이 나빠졌다.조남헌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문을 박차고 들어가 손에 들고 있던 수렵총으로 도끼파들을 위협했다.한 발로 걷어찼지만 문은 ‘쾅'하고 둔탁한 소리를 내며 휘청거렸고 앞에서 큰 소리가 나더니 몰려오던 도끼파들이 선두에서부터 모두 그대로 나자빠졌다.조남헌은 한 걸음 내디디며 손에 든 수렵총을 이리저리 닥치는 대로 도끼파들을 향했고 쉴 새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도끼파들은 조남헌에게 가까이 다가갈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순식간에 쓰러졌고 땅바닥에 처박혀 울부짖으며 뒹굴었다.“개자식!”선두에 선 사나이는 이 광경을 보고 화가 나서 얼른 총기를 들어 올려 조남헌을 죽이려고 했다.그러나 조남헌은 섬뜩한 미소를 떠올리며 한 발 더 디뎌 곧장 그의 앞으로 돌진했고 수렵총에서 나온 탄환은 그대로 남자의 이마에 박혔다.“툭!”선두에 선 남자가 반응할 틈도 주지 않고 조남헌은 그의 이마에 총을 겨누었고 남자는 눈앞이 캄캄해지다가 결국 쓰러졌다.날뛰는 무리들을 상대하는 데 아주 이골이 난 조남헌이었다.주색에 홀딱 빠져 있던 도끼파들이 어찌 악랄한 조남헌의 적수가 될 수 있겠는가?최예단은 굳은 표정으로 이 장면을 지켜보며 무슨 말을 하려다가 말을 잇지 못하고 입을 다물었다.그녀는 누군가가 총 한 자루에 기대어 도끼파들을 위협하고 초토화시킬 줄은 정말이지 상상도 하지 못했다.하현이라는 사람의 부하가 보통 사람이 아님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비록 최예단의 마음속에는 총에 의지하는 것이 무슨 남자고 무슨 능력인가 싶은 생각이 있었지만 조남헌이 이렇게 초인적인 능력으로 밀어붙이는 것을 보고 그녀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이어서 조남헌은 앞장서서 안쪽 뜰을 향해 밀고 나갔다.상대가 칼과 도끼로 덤비든 인해전술로 덤비든 심지어 총을 가지고 덤비든 조남헌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어차피 맞붙어도 뺨 몇 대로 상대방을 어지럽게 만든 다음 총으로 쏴 버리
단발머리에 검은 장미 한 송이를 정교하게 가슴에 새긴 여인이 다가왔다.“누가 곰의 심장과 표범의 쓸개라도 씹어 먹은 거야?”“감히 우리 도끼파의 땅에 와서 행패를 부리다니!”“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이 말을 들은 조남헌은 섬뜩한 미소를 지으며 뜻밖에도 품에서 수류탄을 하나 꺼냈다.하현은 갑자기 어리둥절했다.이 녀석이 이런 비장의 카드를 가지고 있었다니!게다가 이걸 몸에 지니고 다녔단 말인가!하지만 하현은 앞으로 나가서 수류탄의 침을 뽑으려는 조남헌을 막았다.그리고 그는 눈앞의 여인을 향해 말했다.“한여침을 나오라고 해!”“1분의 시간을 주겠어!”“1분이 넘도록 아무도 나오지 않으면.”“당신들 모두 무릎 꿇고 사죄할 각오해.”무덤덤하고 건조한 말투였다.그러나 그 말에서 풍기는 기분 나쁜 기운에 도끼파들은 화가 치밀어 올라 분노하기 시작했다.“개자식!”“네가 뭔데!”“네가 뭔데 감히 우리 도끼파더러 나오라 마라야!”선두에 서 있던 청년이 참지 못하고 소리를 버럭 지르더니 망설임 없이 바로 앞을 향해 돌진했다.손에는 여지없이 짧은 도끼 자루가 쥐어져 있었고 지금 그 도끼는 하현의 이마를 찍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솨솩!”청년의 몸놀림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안타깝게도 진주희의 손놀림이 더 빨랐다.하현이 손을 쓸 필요도 없이 진주희의 오른손이 빛처럼 청년의 몸을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순간 달려들던 도끼파 패거리 고수는 그대로 무릎을 꿇고 쓰러졌고 두 다리는 모두 못쓰게 되었다.도끼파 고위층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동시에 양쪽에서는 날카로운 도끼를 든 패거리들이 죽일 듯이 하현 일행을 노려보고 있었다.진주희는 냉담한 얼굴로 소매를 휘둘렀고 매서운 기운이 날아왔다.“솨!”도끼파 고위층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해서 온몸을 움찔하며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이런 솜씨는 보통 사람들이 도저히 흉내 낼 수 없는 것이었다.진주희는 두 명의 고수들을 쓰러뜨린 것이 아니라 마치
남자는 군림하는 자 특유의 풍채가 느껴졌고 얼굴에 노한 기운은 없었다.그러자 먼저 나왔던 도끼파 고위층들은 키가 큰 남자를 보고 하나같이 얼른 길을 비켜주며 공손한 자세로 입을 열었다.“한여침 형님!”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남자를 바라보았다.이 남자가 도끼파의 주인이자 무성 6대 패거리의 수장 중 하나인 한여침이라는 사실을 바로 안 것이다.“원한이 없다고?”하현은 냉랭한 표정으로 앞으로 나가 눈을 흘기며 한여침을 바라보았다.“당신네 도끼파는 정말 대단해!”“대낮에 내 처제를 납치한 것도 모자라 내 아내와 장모에게 없는 죄까지 뒤집어씌우려 하다니 말이야.”“이런 일이 있었는데도 우리 사이에 원한이 없다고?”“당신이 머리가 나쁜 거야, 아니면 내가 머리가 나쁜 거야?”말을 하면서 하현은 한여침 앞에서 표 선생을 발로 차버렸다.이 모습을 보고 한여침은 표 선생을 발로 차 죽일 뻔했다.그는 유유자적하게 신선 생활을 하고 있었다.얼마나 여유롭고 쾌적한 날들이었던가?그런데 그 결과가 이것인가?표 선생 이놈 때문에 까딱하다간 도끼파가 문을 닫을 지경에 처한 것이다.순간 한여침은 표 선생을 밟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불쑥 치솟았다.하현같이 무서운 사람한테 미움을 사는 놈이 누구란 말인가?표 선생도 억울한지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그는 단지 여자를 잡았을 뿐인데 이렇게 독한 사람한테 걸릴 줄 누가 알았겠는가?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형님, 성원효가 나한테 시켰어요.”“퍽!”하현은 손바닥을 내던져 바로 표 선생의 얼굴을 후려쳤다.“당신이 다른 사람을 위해 했다고?”“당신이 한 짓이니 당신부터 조져야겠어. 당신들을 먼저 죽이고 나서 성원효를 찾아가야지!”개자식!쓸모없는 인간 같으니라고!순간 한여침은 표 선생을 목 졸라 죽이고 싶은 충동이 목구멍까지 올라왔다.이미 상대한테 미움을 샀는데 왜 성원효까지 건드리게 만드는 거야?성원효는 용 씨 가문의 외척
”그래서 당신한테 기회를 주려고.”“당신은 당신의 최선을 다하면 돼. 어떤 병기도 다 써도 돼. 당신이 내 손바닥을 막을 수 있다면.”“그렇게 된다면 오늘 일은 여기서 끝내기로 할게. 그 이후는 당신의 처분에 맡길게.”“하지만 만약 당신이 내 손바닥을 막지 못한다면 말이야.”“그러면 지금부터 당신은 나의 개가 되는 거야.”“알겠어?”한여침은 순간 잠시 멍해졌다고 잠시 후 얼굴빛이 일그러졌다.이윽고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온몸을 뒤덮었다!“이 개자식! 난 도끼파의 수장인데 감히 날 모욕하다니!”“사는 게 지겨워! 죽고 싶어 환장했냐고?”한여침은 분을 삭이지 못하고 한 걸음 앞으로 나왔고 두 손을 흔들자 셔츠가 툭 터져버렸다.순간 그의 보기 좋은 근육 라인이 드러났고 온몸이 탄탄하게 그을려져 있는 게 보였다.보기만 해도 전통 무학에서부터 온갖 기술을 수련한 다부진 몸임을 알 수 있었다.한여침은 불같이 화를 내며 소리쳤다.“이 개자식!”“오늘 내가 단단히 네놈을 교육시켜 놔야겠군!”“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법이야! 하늘 위에도 급이 달라!”“내 손으로 네놈을 요절내고 말 테야!”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주먹을 날렸다.“죽어!”공기가 찢어지는 듯한 날카로운 소리가 울렸고 많은 사람들은 순간 고막에 찢어지는 것 같았다.“어서 덤벼! 내가 네놈에게 늑대도 때려눕힐 수 있는 진수를 보여주겠어!”“물소 한 마리도 이 한 주먹이면 때려눕힐 수 있다고!”“우리 도끼파에게 도전했던 그 많은 고수들도 이 한 방에 이슬처럼 사라졌지!”“이 개자식, 넌 이제 죽었어!”도끼파 패거리들은 모두들 의기양양했고 흥분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도끼파 수장이 직접 손을 쓴다는 건 전설 속에나 존재하던 일이었다.오늘 그 전설이 열리고 무적의 신이 눈앞에서 향연을 펼칠 것이다.“솩!”하지만 하현에게 날아들던 한여침의 주먹은 하현 앞에 있던 문 위에 떨어졌다.하현은
모든 사람들이 다 무릎을 꿇은 후에야 한여침은 하현을 향해 웃음을 짜내었다.“형님, 아랫사람들이 규칙을 잘 몰랐습니다. 어서 벌을 내려 주십시오!”이 광경을 보고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정신이 아찔했다.한여침이라는 도끼파 수장이 무릎을 꿇었을 뿐만 아니라 더없이 공손하고 굴욕적인 모습을 보이며 존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을 만큼 굽신거렸기 때문이다.최예단은 더더욱 충격에 휩싸였다.그녀의 상식선에서 볼 때 한여침이라는 사람은 무성에서 무서울 것이 없는 절대적인 인물 중 하나였다!무성의 보통 사람들은 감히 그에게 미움을 살 엄두도 내지 못했다.까닥 밉보였다가는 죽음을 직면할지도 모르는 일이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한여침이 무릎을 꿇었다!?그것도 빛의 속도로?하현은 쥐뿔도 없는 데릴사위가 아니었던가?그가 무슨 능력이 있어 한여침을 무릎 꿇게 만들었단 말인가?조금 전까지 최예단은 오늘 이 충돌로 하현과 설유아는 끝났다고 생각했었다.그러나 한여침이 무릎을 꿇을 줄이야!그녀는 아무리 백 번 양보하고 또 양보해도 눈앞의 장면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오직 설유아만이 당연한 일이라는 듯 당당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형부가 오면 모든 일이 다 해결될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무릎을 꿇은 한여침에게 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마당 한가운데 있는 의자에 털썩 앉았다.“무릎 꿇는 것만으로는 부족해.”“촥촥촥!”한여침은 스스로의 뺨을 연달아 후려쳤다.그리고 도끼파의 고수들을 향해 걸어가 아무 말없이 뺨을 때리기 시작했다.이어 다시 무릎을 꿇은 한여침이 입을 열었다.“이제부터 형님이 도끼파의 진정한 주인입니다.”“도끼파 모든 사람들은 주인을 귀하게 섬길 것입니다!”“지금부터 도끼파는 형님 마음대로 하셔도 됩니다.”하현은 잠시 실눈으로 한여침을 바라보다 천천히 일어서서 단호한 발걸음으로 한여침을 발로 밟은 뒤 입을 열었다.“기왕에 개가 되고자 했으면 개가 되었다는 생
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설은아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정말 해결할 수 있어?”설은아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응. 할 수 있어.”해결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하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 않았다.이번이야말로 하현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고 싶었다.“알았어. 해결할 수 있으면 됐어.”하현도 설은아가 허투루 말을 하는 가벼운 입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해결이 잘 안 되면 억지로 버티지 말고 꼭 말해. 내가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 볼게.”하현의 말을 듣고 이시운은 더욱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보아하니 데릴사위가 말주변이 아주 좋을 뿐만 아니라 허세 부리는 것도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붕!”바로 그때 사람이 드문 도로에 번호판 없는 승합차 여러 대가 포르쉐 앞에 나타났다.뒤이어 승합차 몇 대가 나타나 하현 일행을 태운 포르쉐를 에워쌌다.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길이 없는 설은아와 이시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착!”이때 문이 열렸고 러닝셔츠를 입은 십여 명의 사람들이 손에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를 들고 걸어 나왔다.그때 승합차 한 대의 문이 스르르 열리며 우민은과 이국흥 두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이 개자식들!”설은아는 이 두 사람을 보자마자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차렸다.“이런 치졸한 방법을 쓰다니!”하현은 이런 일을 너무 많이 겪어 봐서 그저 냉담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이시운은 이런 광경이 처음이라 온몸을 부르르 떨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대표님, 이제 어떻게 해요?”“어서 신고해!”설은아는 무서울 정도로 침착했다.“내가 가서 시간을 벌어 볼 테니까!”“그래도 내가 대구 정 씨 가문 사람이니까!”“날 건드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들도 모르진 않을 거야.”“그러니 날 함부로 하진 못 하겠지!”“하현, 당신은 차 안에 있어. 나오지 말고 여기 있어. 괜히 나와서 일 크게 만들지 말고!”설은아는 상대가
설은아는 이시운을 데리고 포르쉐에 올라탔고 하현을 조수석에 앉혔다.액셀을 밟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아침에 대출받느라 바빴고 점심때는 직원들 월급 해결하고 회사 일도 다 처리했어. 이제 아무 문제없어.”“자, 이제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한테 말해 봐, 아직도 아무 말 안 할 거야?”하현이 웃으며 말했다.“무슨 일?”“당신과 나천우의 일.”설은아는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나천우와 아는 사이였다고 해도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어차피 하현도 성공한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나천우가 어떻게 그처럼 그를 깍듯하게 모실 수 있냐는 것이다.하현을 위해 나천우는 은행 고위직 두 명을 바로 해고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곧바로 이천억이란 거금을 대출해 주었다.하현은 금정에 온 지 겨우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나천우는 은둔가 나 씨 가문 사람인데 어떻게 그가 하현에게 이렇게 극진한 대우를 할 수 있는가?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하현이 나천우를 안다는 말을 듣고 이시운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못마땅한 표정으로 비웃었다.나천우가 설은아의 미모에 흑심을 품고 하현의 체면을 세워 준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하현은 우쭐대고 있는 건가?참, 같잖은 꼴이라니!하현은 설은아가 무엇을 물어보는 것인지 간파한 뒤 입을 열었다.“나천우가 나한테 마침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었거든.”“무슨 부탁? 중요한 일이야?”설은아는 호기심에 눈빛이 반짝반짝거렸다.“나천우 같은 사람이 웬만한 일로 부행장과 부장을 해고하지는 않았을 거야.”이 말을 듣고 이시운은 깜짝 놀라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그런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러나 그녀는 점점 더 자신의 추측이 맞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단지 데릴사위인 하현이 주제도 모르고 설칠 뿐이라고 생각했다.“날 속일 생각하지 마. 도대체 어떻게 나천우의 신임을 얻게 된 거야
”참, 여기 사인 좀 해 줘.”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나천우는 발걸음을 옮기려던 하한을 붙잡았다.그는 재빨리 옆방으로 가서 서류철을 가져와 하현에게 사인하라고 했다.하현이 서류를 받아들고 힐끔 쳐다보다가 나천우에게 눈길을 돌렸다.“이게 뭐예요?”“작은 거지만 내가 준비했어. 거절하면 안 돼!”말을 하면서 나천우는 직접 하현의 손을 잡고 지장을 찍은 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까지 쳤다.하현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형님, 도대체 이게 뭐예요?”나천우는 웃으며 말했다.“이건 당신 형수가 우리 집안에 시집오고 나서 일으킨 회사야. 금정개발이라고 집을 짓고 파는 부동산업이지.”“이제 당신 형수는 아이를 낳는 데 전념해야 하니 이 땅과 회사 일에 쏟을 시간이 없어.”“이걸 팔거나 혹은 다른 사람한테 좌지우지하는 것도 보기 불편할 거야. 혼수나 다름없는 거였으니까.”“이제 당신 손에 넘어갔으니 아마 당신 형수도 분명 기뻐할 거야.”“지금부터 당신은 주식을 90% 가진 금정개발 대주주이며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진 사람이야!”“나머지 10%는 우리 부부의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셈으로 치자고.”“회사가 크지는 않아. 직원도 100명 남짓이고.”“회사에서 최근 몇 필지를 분양받아 개발하려고 사전 준비 작업을 하고 있어!”“하현, 마음에 드는 땅이 있거나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공과 사는 분명히 구분해야 하니까 이자는 꼬박꼬박 내야 해. 하지만 우대금리로 잘 해줄게.”말을 마치며 나천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속으로 부자들은 역시 스케일이 다른 건가 잠시 생각할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부동산 개발 회사가 보너스라니!이렇게 되면 자신이 금정 제일 부동산 개발업자가 되는 게 아닌가?만약 최희정이 이 사실을 안다면 피를 토하며 분노를 뿜을 것이다.하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는 이것이 나천우 부부의 호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만
하현은 나천우에게 담요를 가져와 임단의 몸에 덮어 주라고 일렀다.그다음 그녀를 푹 쉬게 해 두고 조용히 나천우에게 따라나오라고 했다.바깥으로 나온 나천우는 하현을 깍듯이 대하며 옆에 있는 응접실로 데리고 와서 허리를 굽혀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하현, 이제 다 해결된 거죠?”“우리 아이를 극락으로 잘 보내 준 거죠?”그의 얼굴에는 기대와 긴장감이 가득했다.하현은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나천우를 쳐다본 뒤 옅은 미소를 지었다.“나 사장님, 세상에 귀신이 있다고 믿습니까?”나천우는 적잖이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하현, 세상에 귀신이 없다면 방금 그 말은 도대체...”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나 사장님, 아침에 제가 한 말 기억하세요?”“마음의 병은 마음의 약으로 고쳐야 합니다.”“사모님은 사실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아이를 잃었다는 상실감 때문에 마음에 응어리가 졌던 것뿐입니다.”“그래서 사모님의 몸은 일종의 가임신 상태에 빠진 거죠.”“이런 상황에서는 두 분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가질 수 없습니다.”“하지만 방금 제가 사모님 앞에서 보인 모습 때문에 사모님은 비로소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겁니다. 죽은 아이가 좋은 것으로 갔다는 안도감이 사모님의 마음을 위로한 거죠.”“마지막으로 사모님의 몸에 숨을 불어넣어 사산했을 때 감염되었던 약간의 풍한을 제거했어요.”“이제 사모님은 멀쩡한 사람입니다.”“두 분이 이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거죠.”하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물론 내가 사장님한테 이렇게 다 털어놓고 말씀드리는 건 사장님이 문화인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거예요.”“하지만 사모님은 여자이기 때문에 이 일은 아마 사장님과 나 사이의 비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아이를 무사히 출산한 뒤에 말씀드려도 늦지 않습니다.”“나중에 두 분이 날 너무 사기꾼으로 몰아붙이지나 마세요. 하하.”하현이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말을 마친 후 하현은 얼른 종이와 붓을 꺼내 그 위에다 뭔가를 쭉 쓴 뒤 담담하게 말했다.“나 사장님,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이 물건들을 빨리 준비해 달라고 이르세요.”“이 물건들은 부인의 체내에 음흉한 기운을 모두 뽑아줄 겁니다.”“그렇게 해야 완전히 문제가 해결됩니다.”“음흉한 기운이 다 제거된다면 두 분은 자연스럽게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예요.”나천우는 종이에 적힌 물건들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고맙습니다. 바로 준비하라고 이르겠습니다.”순간 나천우의 마음속엔 하현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올랐다.나천우는 하현이 엄청난 돈이나 물질적인 것을 터무니없이 요구할까 봐 살짝 걱정이 되었었다.그런데 하현이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단칼에 승낙할 줄은 몰랐다.그래서 나천우는 하현을 완전히 높이 평가하게 된 것이다.잠시 후 나천우의 측근들은 하현이 지시한 물건을 모두 준비해 왔다.닭 피 한 그릇과 종이돈 한 묶음, 종이돈을 태우는 양동이.이를 본 임단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하현,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하현은 테이블을 가리켰다.“부인, 죄송하지만 여기 누우시고 배가 보이게 옷을 살짝 위로 올려 주세요.”하현의 말에 임단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이어 그녀는 코트를 벗은 뒤 셔츠를 살짝 걷어 올려 새하얀 아랫배를 드러낸 채 테이블 위에 누었다.나천우는 이 광경을 보며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건...”하현이 천천히 나천우에게 설명했다.“부인은 뱃속에서 아이가 죽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음흉한 기운이 여기 가득 들어 있습니다.”“예로부터 뱃속에서 죽은 아기는 엄마의 품을 떠나기 싫어 그 영혼이 떠돈다고 합니다.”“그래서 두 분이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죠.”“오늘 저는 죽은 아이의 영혼을 잘 달래서 보내주려는 거고요.”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와 임단은 동시에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벌린 입을
하현은 냉랭하게 말했다.“미안하다고 할 필요 없습니다.”“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나한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만 들으면 됩니다.”“나머진 당신이 알아서 하면 되죠.”“난 아무 이견도 달지 않을 테니까요.”하현의 말은 마치 이 모든 것이 그와 무관한 일처럼 가볍게 들렸다.그러나 가볍게 들리는 그 말속에 숨어 있는 어조는 서늘한 기운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원래 하현이 어떻게 망신을 당하나 구경이나 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놀라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눈알을 땅바닥으로 떨구었다.결국 그의 어조로 보아하니 그가 가볍게 말하면 말할수록 더욱 화가 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그리고 우민은과 이국흥 두 사람은 이 일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나천우는 하현을 향해 빙긋 웃으며 허리를 곧게 펴고 시선을 뒤로 돌렸다.그의 눈빛 속에 찬바람이 가득 휘몰아쳤다.우민은과 이국흥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왔고 무릎을 꿇으려 했지만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아 그대로 힘없이 풀썩 주저앉았다.“일어서세요!”나천우는 폭풍 전야의 고요한 태풍의 눈처럼 차분한 목소리였다.단지 손가락을 까닥이며 경호원에게 쇠 파이프를 건네받아 직접 두 사람의 다리를 한쪽씩 부러뜨렸다.그리고 나서 활을 들고 두 사람의 손바닥을 향해 활을 쏘았다.“휙!”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매섭게 울렸다.두 사람이 손바닥이 떨구어지자 나천우는 두 사람을 문 바깥으로 걷어차며 말했다.“잘 들어. 다시는 당신들 두 얼굴을 금정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아.”“감히 이 두 사람을 거두는 자는 나 나천우에게 도전하는 거라 생각할 거야!”“사람들을 교외로 내쫓아 스스로 빌어먹고 살게 해!”...10분 만에 설은아가 그토록 골머리를 앓던 이천억 대출이 순조롭게 실행되었다.무이자일 뿐만 아니라 담보 물건도 없이 진행되었다.다만 각종 수속이 복잡해서 설은아는 VIP실에 남아 서류 처리를 해야 했다.나천우는 하현을 깍듯이 모시고 행
”좋아, 당신이 그렇게 잘난 척을 하니 한 명이라도 어디 해고해 봐!”우민은은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비아냥이 가득한 얼굴로 하현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자! 어서 해 보라니까!”“퍽!”바로 그때 은행 로비의 문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차여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 열 명이 나타났다.선두에 선 사람은 양복 차림이었는데 그냥 보기에도 부티가 좔좔 흘렀다.그는 바로 금정은행 은행장, 은둔가 나 씨 가문 나천우였다.나천우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우민은과 이국흥은 모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려 굽신거렸다.“행장님!”“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우민은과 이국흥은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나천우 앞에서 입이 찢어져라 환한 미소를 보였다.그런데 평소에는 친근하게 그들을 대했던 나천우가 오늘 이렇게 차가운 얼굴로 들이닥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나천우는 그들에겐 눈길도 돌리지 않고 하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하현의 손을 잡고 힘껏 흔들었다.“하현,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이 말을 듣고 장내의 분위기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해졌다.모두 어안이 벙벙해지다 못해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곳곳에서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잠시 후 예쁘장한 여직원들이 자신의 뺨을 세차게 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그러나 눈앞의 광경은 잘못 본 것도 아니고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놀라움과 의아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연스럽게 하현에게 쏠렸다.몇몇 여자 고객들도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가 않는지 입을 막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어버렸다.우민은은 마치 사지가 마비된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이국흥은 더했다.사지가 그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쉼 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이게 무슨 상황인가?그들은 하현
이국흥은 염치도 체면도 안중에 없는 사람 같았다.그는 없던 일을 있었던 일처럼 꾸몄다.그의 목적은 단 하나, 우민은이 하현을 혼내 주길 바랐던 것이다.이때 설은아가 얼른 입을 열었다.“부행장님, 그게 아닙니다...”우민은은 이국흥에게 힘을 실어 주러 온 상사였기 때문에 당연히 설은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감히 우리 은행에서 사람을 때려요?”“간이 배밖에 나왔어요?”“지금부터 당신은 우리 은행 블랙리스트에 오를 거예요!”“이봐! 어서 관청에 신고해!”그녀의 카랑카랑한 말투는 오만하기 그지없었다.그러자 설은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분명 그녀는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될 줄은 몰랐다.설은아가 이끄는 회사의 자금줄이 빠듯한 건 사실이었다.그런데 결국 이렇게 완전히 파산하게 되었다.자신이 아홉 번째 집안을 맡은지 얼마나 되었는가?이렇게 빨리 파산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훗날 대구 정 씨 가문의 수장이 되겠다는 것인가?그야말로 허황된 꿈이었다!“하하하! 이게 바로 당신의 최후야!”“이제 알겠어?”이국흥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개자식! 이 개새끼야! 너 방금 정말 미친놈처럼 날 치더라? 정말 대단했지, 안 그래?”“자, 다시 한번 더 해 보시지?!”“당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디 한번 보자고!”“퍽!”하현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그의 요구에 답하며 앞으로 걸어가다가 또 한 번 손바닥을 휘둘렀다.이국흥은 하현이 감히 자신에게 또 손을 쓸 줄은 몰랐다.뺨을 맞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그는 가까스로 우민은의 몸에 기댄 덕분에 쓰러지지는 않았다.“미친 거야?!”“당신들 여기가 무법천지인 줄 알아?”우민은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이봐, 어서 신고해!”“은행 협회에 통보해서 설은아한테 대출 다 막으라고 해!”이때 하현은 싸늘한 표정으로 우민은과 이국흥을 바라보며 말했다.“두 사람이야말로 내 블랙리
하현을 말리는 설은아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국흥은 험상궂은 얼굴로 이를 갈며 일어섰다.그는 입가의 피를 닦고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개자식! 당신 누구야?!”“당신이 뭔데 감히 이러는 거야?”“날 때려? 감히 날 때렸어?”“내가 뭐?”하현은 앞으로 나서면서 또 손바닥을 올려 이국흥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감히 내 아내한테 그런 모욕감을 주다니! 나한테 누구냐고 물었어?”“내가 누군지 당신 눈엔 안 보여?”“혹시 설 대표가 당신 부인이야?”이국흥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뭔가 떠오른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신이 그 소문으로만 듣던 그 쓰레기 같은 놈?”“그런데 감히 날 때려?!”“죽여버릴 거야!”하현은 또 그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퍽!”“날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그렇지만 내 여자를 건드리는 놈은...”“절대 용서할 수 없어! 오늘이 당신 제삿날인 줄 알아!”퉁퉁 부은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은 이국흥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벌벌 떨었다.“하현, 그만해! 그만하라고!”설은아는 한사코 하현을 말리며 붙잡았다.“또 때리면 정말 사람이 죽겠어!”그녀는 마음속으로는 그를 고맙고 든든하게 여겼지만 불똥이 그에게 튈까 봐 걱정도 되었다.오래된 도시 금정의 은둔가 가문이 뒷배에 있는 금정은행 부장을 누가 건드릴 수 있겠는가?금정은행의 뒷배인 나 씨 가문은 금정 금융계의 거물이었다.“개자식! 감히 날 때리다니?!”“흥! 넌 이제 죽었어! 내가 반드시 널 죽여버릴 거야!”이국흥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러나 그는 감히 하현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입만 떠들썩하게 떠벌렸다.“반드시 관청에 보고해서 감옥에 처넣어 버릴 거야!”“그리고 제멋대로 날뛰는 네놈 때문에!”“이 여자도 상상하기 힘든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블랙리스트에 올라 금융계에선 다시는 일 원 한 푼 빌릴 수 없게 만들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