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풍성, 똑똑히 들으세요! 능력이 있으면 뜻대로 해 보시죠. 능력이 안 되거든 여기서 함부로 짖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하현 이 개자식은 이미 며칠 전에 내 손을 부러뜨렸다구요!”“오늘 한술 더 떠서 내 뺨까지 때렸어요!”“내가 특별히 체면을 봐서 도박왕이라고 불러드리죠! 그러니 지금 내 체면을 세워 주지 않으면 당신은 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의 하인이 될 겁니다!”“잊지 마세요. 아무리 도성에서 날아다니는 귀족이라도 우리 항도 하 씨 가문 눈엔 피라미 새끼로 보이니까!”“우리 가문은 오늘 당신을 도박왕으로 만들었다가 내일은 알거지로 만들 수도 있어요!”“그러니 여기서 꺼지세요!”하유곤이 자신의 면전에서 완전히 미쳐 날뛰자 화풍성을 비롯한 그의 일행들의 얼굴에 험악한 기운이 감돌았다.그들은 여차하면 덤벼들 태세였다.그러나 화풍성은 옅은 미소를 지었고 담담하게 손을 내저으며 그들을 제지했다.그런 다음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유곤을 바라보며 헛웃음을 지었다.“항도 하 씨 가문은 확실히 항성과 도성의 지배자이긴 하지. 우리 같은 최고 가문들도 항도 하 씨 가문에 의존해서 밥을 벌어먹고 산다고 할 수 있어.”“그래서 당신네 항도 하 씨 가문 앞에서는 우리 도성 화 씨 집안도 명함을 못 내밀긴 하지.”“이 도박왕 늙은이도 마찬가지야. 별로 가치가 없겠지.”“하지만 하유곤, 잊지 말고 잘 들어두게. 난 당신 아버지 연배야.”“만약 우리가 여기서 소란을 피우면 모르는 사람들은 나더러 어린 애송이와 실랑이를 벌인다는 말을 할 거야.”“하지만 잊지 말게. 자네는 어른을 공경하지 못하고 열등하다는 평판을 얻게 될 거라는 걸.”“지금은 자네가 상석에 올라갈 가능성이 없지만 자네한테 그런 기회가 혹시라도 찾아왔을 때 이 일이 자네의 발목을 잡게 될지도 모르네.”“무엇보다 중요한 건 일이 어떻게 되었건 간에 스스로 생각이 있냐 없냐 하는 거야. 자네 생각이 있는 건가?”“일을 이리 크게 만들다니. 노부인이 자네
화풍성의 말투는 온화했지만 분명 본질을 가리키는 말이었다.하유곤은 자신의 힘을 믿고 하현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려는 듯 보였던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노부인이 아무리 막무가내로 나온다고 해도 온 세상 사람들 앞에서 옳고 그름을 가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만약 그렇다면 오늘 이 생신날 큰 웃음거리가 될 것이다.주변의 구경꾼들은 상황이 돌아가는 것을 보고 수군거리며 반응하기 시작했다.자세히 보다 보니 그들은 하유곤이 남에게 죄를 뒤집어씌우고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레 알게 되었다.어쩐지 처음부터 끝까지 하현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침착하더라니.진작에 하유곤의 계략을 눈치챈 것임이 틀림없었다.“좋아요. 화풍성 당신의 호의 고맙게 받을게요. 만약 항도 하 씨 가문이 당신한테 이 은혜를 갚지 않으면 공작산장에서 반드시 갚을 겁니다!”하유곤은 이를 깨물며 음흉한 눈빛을 반짝였다.순간 그는 손을 뻗어 자신의 얼굴을 만졌다.그리고 나서 분노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하현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말했다.“하 씨! 오늘은 이분이 당신을 살렸군. 이분의 체면을 봐서 오늘은 봐주겠어!”말을 마치자마자 그는 몸을 돌려 얼른 차 안으로 들어갔다.“가자.”하유곤의 부하들과 일행들은 모두 하현을 향해 노려보는 것을 잊지 않으며 과격한 몸짓을 보이다가 차 안으로 들어갔다.하현은 뒷짐을 지고 그 모습을 바라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가도 된다고 했어?”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화풍성이 다가와 하현 앞을 가로막으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아직 갈 길이 멀어. 이럴 때는 통 크게 보내는 게 나아. 노부인의 체면을 세워 줄 필요도 있잖아, 안 그래?”“게다가 오늘은 큰일이 예정되어 있지 않은가?”“우리들은 구경꾼일 뿐이야. 굳이 주인공이 될 필요는 없지.”“나서 봐야 본전도 못 뽑아.”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며 잠시 후 고개를 끄덕였다.오늘은 정말 중요한 날이었다.만약 자신이 하문준의 거사를 망치게 된다면 하구
하현은 조심스레 선물 포장을 뜯어보았다.안에는 원래 표구된 격자무늬 그림이 들어 있었다.그런데 열어 보니 그림 뒷면에 오래된 당도 한 자루가 들어 있었다.이를 본 하현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며 입을 열었다.“총교관이 차던 칼?”“이건 이미 그때 누가 가져가지 않았나?”“어떻게 여기 들어와 있지?”이 칼은 예전에 삼계호텔 경매장에서 장묵빈 일행이 큰돈을 주고 낙찰받은 것이었다.나중에 그들이 떠났을 때 누군가에게 칼을 빼앗겼다고 들었는데 오늘 여기에서 볼 줄 누가 알았겠는가?화풍성은 얼굴이 굳어지며 조용히 말했다.“하현, 우리가 속은 것 같아.”“하유곤이 방금 생트집을 잡아 난리를 피운 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어 동정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주의를 분산시켜 우리를 유인한 다음에 훔친 물건을 여기 놓고 자네한테 그 죄를 뒤집어씌우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이 칼이 가진 가장 큰 상징성은 총교관의 칼이었다는 점이야. 상징하는 바가 너무 커.”“그리고 누군가 칼을 훔쳐 가고 나서 계속 행방이 묘연했었지!”“만약 자네가 미처 발견하지 못하고 노부인에게 그대로 선물을 전달했다면!”“아마 자네는 황하에 뛰어들어도 다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되는 거야!”“심지어 노부인은 그것을 핑계로 자네한테 참수에 버금가는 큰 벌을 내릴 수도 있어!”여기까지 말한 후 화풍성의 눈빛이 갑자기 험악하게 변했다.“개자식! 어린 나이에 악랄한 수법만 익혀 가지고는!”하수진도 옆에서 화풍성의 얘기를 듣다가 화를 참지 못하게 눈썹을 잔뜩 찡그리며 입을 열었다.“이제 이걸 어떻게 처리해야 하면 좋을까요?”“잠시 차에 두고 가도 될까요? 그러다 혹시라도 들키면...”하수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멀지 않은 곳에서 갑자기 굉음을 울리며 차량이 돌진해 왔다.경찰차였다.경찰차는 맹렬한 기세로 달려들어 순식간에 롤스로이스 앞을 가로막았다.차 문이 열리는 순간 장묵빈이 싸늘한 모습으로 걸어 나왔다.이번 판은 분명 그들이 하
하수진은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라 멍한 눈을 껌뻑이고 있는 하수진을 두고 갑자기 하현은 차창을 열고 손을 살짝 흔들며 손바닥 안에 있던 산산조각 난 칼 조각들을 흩뿌렸다.다른 이들에게는 상징하는 바도 크고 가치도 높아 우러러보는 총교관의 칼을 날려 버린 것이다!그러나 하현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칼이었다!이 칼은 당시 망가져서 전쟁터에 아무렇게나 버린 칼이었다.누가 주워왔는지 모르지만 자신을 모함하기 위해 가져온 것임에 틀림없다고 그는 생각했다.정말 헛웃음이 나오는 광경이었다.아무런 흔들림 없는 담담한 하현의 얼굴을 보고 하수진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가 깊은숨을 내쉬었다.그녀는 하현이 총교관의 칼을 산산조각 낸 순간 자신들이 이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두 사람은 담담한 표정으로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장묵빈 일행에게 다가간 화풍성은 그들 앞에 서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장묵빈, 이게 무슨 뜻인가?”“말했다시피 이 차는 내 차야.”“당신들이 내 차에 올라와 수색까지 하려 들다니 날 뭘로 보고 이러는 건가?”“언제부터 장 씨 집안이 우리와 얼굴 붉히는 일을 이렇게 자처하고 나섰지?”장묵빈은 냉랭한 기색을 띠며 냉소를 흘렸다.“화풍성 어르신, 우린 모두 항성과 도성에서 뿌리를 박은 사람들인데 평소라면 이럴 일이 없죠.”“하지만 총교관이 누굽니까? 어르신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총교관의 칼은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있는 물건입니다.”“만약 누군가가 총교관의 칼을 빼앗았다면 그 죄가 어디 가볍다 할 수 있겠습니까?”“그래서 저희는 정확한 첩보를 입수했고 전에 우리가 잃어버린 총교관의 칼이 이 차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경찰차를 대동해 여기 온 겁니다!”“어서 수색하세요! 어르신께서는 기껏해야 체면을 좀 잃게 되는 것뿐입니다.”“하지만 총교관의 칼을 훔친 자가 어르신의 방해로 도망을 쳤다면 말이죠.”“그건 총교관에 대한 불경을 저지르는 일입니다
화풍성이 모든 일을 떠맡으려 할 때였다.차에 타고 있던 하현이 갑자기 차창을 내리고는 입을 열었다.“화풍성 어르신, 우린 선량한 시민입니다. 저는 표창장도 있어요.”“경찰서에서 수색을 하겠다니 수색을 하도록 내버려 두시죠. 우린 떳떳하니까요!”“선량한 시민으로서 경찰의 수사에 협조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차창을 내린 하현을 보고 화풍성은 어리둥절했다.하현이 먼저 나서서 수사를 받겠다고 자처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하지만 화풍성은 하현을 매우 신뢰하고 있었다.하현이 이렇게 말한 이면에는 뭔가 궁리를 다 해 두었을 거라 짐작했고 결국 화풍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런데 말이야. 당신들이 수사를 하기에 앞서 내가 한마디 할게.”“당신들이 소위 총교관의 칼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나한테 어떻게 이 일을 설명할 거야?”하현은 차에서 나와 두 손을 뒷짐진 채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어쨌든 난 항도 하 씨 가문 귀빈이고 밖에서는 문주를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어.”“내 차를 수색한다는 것은 문주의 차를 수색하는 거나 마찬가지야.”“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냥 막 수색을 할 수는 없지 않아?”장묵빈은 조곤조곤 따지고 드는 하현을 바라보다 눈썹을 치켜세우며 언짢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만약 물건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당신은 결백하다는 뜻이 돼!”“당신은 입만 열면 선량한 시민이네 어쩌네 하는데 경찰의 수색에 협조하는 게 선량한 시민으로서 가장 마땅한 일 아니겠어?”“더 이상 할 말 있어?”하현은 싱긋 웃으며 되받아쳤다.“찾아내면 날 도둑이라 몰 것이고 안 나오면 그냥 결백하다는 게 증명이 되었다? 그걸로 끝?”“어쩐지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은데?”“게다가 난 어쨌든 항도 하 씨 가문 귀빈이야. 내 시간, 내 명성, 내 정신적인 피해에 대해 만족스러운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내가 그렇게 만만해?”“당신의 이론대로라면 당신이 내 가보를 훔쳤다고 생각해서 내가 사
십여 분 만에 롤스로이스는 거의 분해되다시피 되었다.그러나 피비린내를 맡은 구미호처럼 달려들던 경찰들의 얼굴이 점점 창백하게 변했다.가장 선두에 서 있던 수사팀장은 장묵빈에게 돌아와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저기, 안에 아무것도 없는데요!”장묵빈은 눈썹을 날카롭게 치켜세웠다.“말도 안 돼!”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묵빈은 직접 차로 달려들어 하현의 격자무늬 그림을 집어 들었다.한바탕 소란스럽게 뒤적거리던 장묵빈은 화가 나서 하현을 향해 소리쳤다.“총교관의 칼은?”“칼은 어디 있는 거야?”“없을 리가 없어!”장묵빈에게 있어 총교관의 칼은 이제 가치를 넘어서서 그 자리에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한 물건이 되었다.하현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이유 외에도 잠시 후에 벌어질 일에 대한 또 다른 역할이 있었던 것이다.정말로 칼을 찾지 못한다면 그는 머리가 날아갈 각오를 해야 했다.“내가 말했잖아. 난 당신이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칼은 무슨 칼! 난 아무것도 몰라! 관심도 없어!”“내가 그림 속에 물건을 숨겼다는 게 웃기지 않아, 안 그래?”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일관했다.“아침에 나왔을 때 골동품 가게에 들러 그림을 샀을 뿐이야. 설마 골동품 가게에서 그런 좋은 물건을 덤으로 줄 리 없잖아?”“자, 이제 당신들은 내 차를 분해하다시피 해서 뒤졌지만 원하는 걸 찾지 못했어.”“장묵빈, 이제 나한테 설명해 보시지?”화풍성은 의아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그러다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방금 하현이 차창 밖으로 뭔가를 날리던 모습이 떠올랐다.순간 화풍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그게 가능하다고?그는 벌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하현, 이 개자식아!”“당신은 내 총교관의 칼을 훔쳤어!”“그런데 설명은 무슨 설명?”장묵빈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연신 고함을 질렀다.“어서 물건 내놔!”“그렇지 않으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총교관의 칼은 분명히 아침까
”개자식! 거기 서!”하현이 붉은 카펫이 깔린 문으로 들어가려 하자 화려한 옷차림을 한 하백진이 걸어 나왔다.그녀는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을 대동하고 냉담한 표정으로 하현의 길을 막았다.“하 씨, 과거의 원한은 말하지 않겠어.”“하지만 오늘은 우리 노부인의 생신이야.”“당신은 하객으로서 조금도 신중하지 못하고 우리 항도 하 씨 가문 구역에서 소란을 벌였어!”“아는 사람은 생신을 축하하러 참석한 줄 알겠지만.”“모르는 사람은 일부러 잔칫날을 망치러 온 줄 알겠어.”“오늘 당신이 여기에 무슨 마음으로 왔는지, 전에 다른 사람들과 왜 싸웠는지 일체 상관하지 않겠어!”“하지만 오늘 당신이 우리 항도 하 씨 가문 체통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한다면 우리도 당신의 체면 따위 안중에 둘 필요없지!”“지금 당신은 우리의 블랙리스트에 올랐어! 그러니 썩 꺼져! 더 이상 한 발짝도 들여놓지 마!”“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은 당신을 환영하지 않아!”하백진은 겨울바람이 쌩쌩 부는 얼굴로 말했다.그녀의 뒤에는 항도 하 씨 가문 큰 아들네와 둘째 아들 가족이 서 있었다.모두들 하현을 바라보는 눈에 가시가 가득 돋쳐 있었다.항도 하 씨 가문 사람들에게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았다.그들은 오로지 체면을 중시할 뿐이었다.이전에 한 짓이든 오늘 한 짓이든 하현이 한 모든 행동은 항도 하 씨 가문에 반항하는 것이었다.간단히 말해 항도 하 씨 가문 사람들은 제멋대로 함부로 구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하현처럼 이렇게 위아래 없이 아무 거리낌 없이 반기를 드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하 씨! 아주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야!”“문주가 뒤에서 받쳐주고 귀빈 대접해 주니까 아주 함부로 날뛰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섬나라 황실, 중동 왕자, 북유럽의 공주님도 우리 가문에선 함부로 날뛰면 안 되는 거 몰라?”“무학의 성지, 10대 최고 가문, 5대 문벌들도 모두 오늘 같은 날은 공손히 참석해야 한다고!”“네까짓 게
양측이 팽팽한 기싸움을 계속 벌이고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하수진이 갑자기 앞으로 나와 웃으며 말했다.“고모님, 오늘은 하현이 생일잔치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왜냐하면 오늘부터 하현은 항도 하 씨 가문 사위가 되었거든요. 항도 하 씨 가문 소주가 된 거죠!”하수진의 말은 천둥소리처럼 장내를 울렸다.사람들은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져서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항도 하 씨 가문 사위?! 소주?!”하백진은 눈 밑이 파르르 떨렸고 눈앞의 모든 것이 뒤틀려 보이기 시작했다.도저히 그녀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하문준이 감히 노부인의 생일날 이런 일을 벌이다니!어젯밤 노부인 앞에서 하문준은 하구천의 후계자 계승 건을 두고 하문성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하문성 측은 하문준이 충분한 이익을 얻기만 한다면 쉽게 모든 것을 내려놓을 거라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지금은...그렇지 않아도 하현 때문에 안색이 좋지 않던 하구천과 하유곤은 말할 수 없이 얼굴이 일그러졌고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동시에 하현에게서 말할 수 없는 위기감을 느꼈다.하구봉, 하민석, 곽영준 등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을 들은 사람처럼 홀 입구에 우두커니 서서 하현을 바라보았다.하문준만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나머지 모두는 어안이 벙벙하다 못해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항도 하 씨 가문 사람들도, 노부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온 귀빈들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 그 어떤 반응도 내놓지 못했다.하현이 항도 하 씨 가문 귀빈이라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역량을 이용해 하수진을 돕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어차피 하문준이 요즘 보였던 태도와 무관하지 않았던 일이었다.그래서 오늘 하현을 겨냥해 여기저기 도발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 것이었고 이는 모두들 진작에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던 일이었다.하지만 하문준이 하현을 사위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
여수혁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하현, 나 여수혁이야! 페낭 무맹 무맹주의 여 씨 가문 사람이라구!”“내 스승님은 남양 무맹 맹주야!”“나한테 당신 같은 사람은 목숨도 아니야!”“당신 지금 이런 행동한 거,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땅바닥에 널브러진 여수혁은 힘겨운 얼굴로 남은 힘을 끌어모아 내뱉었다.“퍽!”“저리 꺼져!”하현은 여수혁을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그러자 여수혁은 벽에 몸을 부딪혔고 입에서는 봇물 터지듯 핏물이 솟구치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배후에 누가 있든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어.”하현은 앞으로 나가 손을 뻗어 여음채의 창백한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당신한테 기회를 주겠어. 잠시 문을 닫고 정리하면서 잘 생각해 봐.”“다음에도 또 이런 일로 사기를 치고 있다는 얘기가 내 귀에 들어오면 정말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땐 인정사정없이 완전히 풍비박산을 만들어 버릴 테니까!”...궁지에 빠진 여음채와 여수혁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하현은 길을 막고 있는 페낭 무맹 제자들을 발로 걷어차고 원가령을 부축하며 양유훤의 차에 올라탔다.양유훤은 사람들을 양 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데려갔고 원가령을 응급실 침대에 눕힌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현, 오늘 밤 가령이 일로 귀찮게 해서 미안해.”“어떻게 된 건지 들어서 잘 알고 있어.”“당신이 없었다면 오늘 밤 가령이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하현이 병원 대기실 소파에 앉자 하이힐을 신은 양유훤이 그에게 다가와 생수 한 병을 건넸다.“당연한 일을 한 걸 가지고 뭐. 마침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야.”하현은 어깨를 으쓱하고 난 뒤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오늘 밤 원가령의 일은 아마 십중팔구 당신을 노리고 한 짓일 거야.”“조심하는 게 좋아.”양유훤도 의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나 때문에 온 게 분명해.”“이번에 내가 천억 대금을 순조롭게 회수해서 적자에 허덕이
”퍽!”여수혁은 무맹 사람이고 남양 무맹의 맹주에게서 수련을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 맹주였다.뼈대 있는 집안 자손이었고 천부적인 재능을 겸비했다.그래서 그가 하현과의 거리가 좁힌 지금 한 번에 몸을 날리자 무서운 기세가 펼쳐졌다.방금 양유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던가!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의 계산대로라면 지금 이 주먹으로 하현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대하 촌놈! 죽어!”여수혁은 섬뜩한 미소로 쏜살같이 덤벼들었다.이런 벼락같은 기세라면 소 한 마리도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광경을 보고 여음채와 부일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수혁의 대담한 기세에 깜짝 놀란 것이다.“양유훤, 봤지?!”“이게 당신이 선택해야 할 남자의 모습이야! 이 정도는 되어야 양 씨 가문 데릴사위가 되지!”“입으로만 떠드는 남자가 무슨 소용있어?”“여수혁 같은 고수를 만나면 바로 무릎을 꿇을 거야!”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비아냥거리는 기색을 띠며 하현을 주제넘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주변 구경꾼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왜 여수혁을 감히 도발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이 모든 게 자업자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장내에 오직 양유훤과 하구봉만이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그들은 모두 하현의 실력을 본 적이 있었다.만약 여수혁 같은 사람 한 명도 수습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하현은 헛수고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퍽퍽퍽퍽!”여수형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온몸을 덜덜 떨며 비명을 질렀다.동시에 하현은 그의 두 손을 짓밟아 부러뜨렸다.“이럴 수가?!”여음채와 부일민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여수혁 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그리고 소위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도 지금은 눈가
그러자 여수혁의 옆에 있던 여음채가 얼굴을 가리고 노기를 띠며 말했다.“하 씨! 당신 뭐가 좋은지 나쁜지 몰라?”“양유훤의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과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살길을 마련해 준 거라고!”“좋게 끝났을 때 그만해야 한다는 것도 몰라? 나중에 얼굴이 찢겨 봐야 아는 거야?”여음채의 마음속에는 불쾌함으로 가득 차올랐다.하현은 계속 자신의 뺨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이빨이 부러지도록 만신창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콧대 높은 여음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하현이 도발하며 여수혁을 추궁하는 것을 보고 여음채는 도저히 화를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그녀가 특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자가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쉽게 살려는 자들이다.양유훤을 믿고 호랑이처럼 위세를 부릴 뿐만 아니라 아주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모습이라니!여음채의 상식으로 어떻게 하현 같은 사람을 여수혁과 동급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운이 좋아서 양유훤의 치마폭에 싸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하현은 벌써 수십 번은 죽었을 것이다.“좋은 게 좋은 거라고?”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잘난 척 기고만장한 여음채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여음채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렇지 않아? 똑똑히 들어. 양 씨 가문의 호가호위만 믿고 설치는 짓,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당신이 정말로 양유훤의 남자인 줄 알아? 당신이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도 된 줄 알아?”“당신이 정말로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해도 여자 치마폭에 싸인 남자가 얼마나 대단하겠어?”여음채는 엄청 호의를 베풀 듯이 호기롭게 훈계를 했다.“당신이 어떤 속셈이 있고 무슨 실력이 있든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하현은 여음채가 하는 말을 더는 듣기 귀찮아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자, 닥쳐! 쓸데없는 소린 그만해!”“재잘재잘 너무 시끄럽군!”“뭐?!”여음채는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입에 차가운 재갈을 물리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
남양 무맹 사람들이 나섰음에도 양유훤은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여수혁의 안색이 일그러졌다.그는 자신이 오늘 하현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하 씨, 오늘은 내가 운이 나빴군. 하지만 아직 기회는 많아!”“능력이 있으면 어디 이 여자가 영원히 당신을 비호하도록 만들어 봐!”“이 여자가 당신을 얼마나 지켜줄 수 있는지 얼마나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그는 하현을 노려보다 냉소를 흘리며 돌아섰다.여음채도 한껏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외지인 남자가 여자한테 기대서 큰소리치는 꼴이라니!세상은 좁아서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법이다.이 남자가 괴로워할 때가 분명 올 것이다!“거기 서!”바로 그때 침묵하고 있던 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순간 하현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강하게 감돌았다.비록 양유훤이 나서서 자신을 비호하도록 가만히 놔두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긴 했지만 하현은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현재 양유훤의 처지를 거의 파악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양유훤의 어깨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하현이 한 걸음 내디디며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하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그들은 하현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다.여수혁 같은 거물이 그를 벌하려는 걸 양유훤이 겨우 구해줬는데 뭘 또 바란단 말인가?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여수혁은 발걸음을 뚝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오늘은 운이 나쁜 걸로 친다고 했는데 뭘 또 바라는 거야?”하현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정말 이렇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돈을 받고도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은 권세로 사람들을 자꾸만 괴롭히려고 해.”“날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내 다리를 부러뜨리고 무릎을 꿇게 만들려고 했어.”“이 모든 것에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