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수진은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뭐라고 반응해야 할지 몰라 멍한 눈을 껌뻑이고 있는 하수진을 두고 갑자기 하현은 차창을 열고 손을 살짝 흔들며 손바닥 안에 있던 산산조각 난 칼 조각들을 흩뿌렸다.다른 이들에게는 상징하는 바도 크고 가치도 높아 우러러보는 총교관의 칼을 날려 버린 것이다!그러나 하현에게는 아무 의미도 없는 칼이었다!이 칼은 당시 망가져서 전쟁터에 아무렇게나 버린 칼이었다.누가 주워왔는지 모르지만 자신을 모함하기 위해 가져온 것임에 틀림없다고 그는 생각했다.정말 헛웃음이 나오는 광경이었다.아무런 흔들림 없는 담담한 하현의 얼굴을 보고 하수진은 눈썹을 살짝 찌푸렸다가 깊은숨을 내쉬었다.그녀는 하현이 총교관의 칼을 산산조각 낸 순간 자신들이 이겼다는 걸 알게 되었다.두 사람은 담담한 표정으로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장묵빈 일행에게 다가간 화풍성은 그들 앞에 서서 심드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장묵빈, 이게 무슨 뜻인가?”“말했다시피 이 차는 내 차야.”“당신들이 내 차에 올라와 수색까지 하려 들다니 날 뭘로 보고 이러는 건가?”“언제부터 장 씨 집안이 우리와 얼굴 붉히는 일을 이렇게 자처하고 나섰지?”장묵빈은 냉랭한 기색을 띠며 냉소를 흘렸다.“화풍성 어르신, 우린 모두 항성과 도성에서 뿌리를 박은 사람들인데 평소라면 이럴 일이 없죠.”“하지만 총교관이 누굽니까? 어르신께서도 잘 아시지 않습니까?”“총교관의 칼은 돈으로 헤아릴 수 없는 가치가 있는 물건입니다.”“만약 누군가가 총교관의 칼을 빼앗았다면 그 죄가 어디 가볍다 할 수 있겠습니까?”“그래서 저희는 정확한 첩보를 입수했고 전에 우리가 잃어버린 총교관의 칼이 이 차에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경찰차를 대동해 여기 온 겁니다!”“어서 수색하세요! 어르신께서는 기껏해야 체면을 좀 잃게 되는 것뿐입니다.”“하지만 총교관의 칼을 훔친 자가 어르신의 방해로 도망을 쳤다면 말이죠.”“그건 총교관에 대한 불경을 저지르는 일입니다
화풍성이 모든 일을 떠맡으려 할 때였다.차에 타고 있던 하현이 갑자기 차창을 내리고는 입을 열었다.“화풍성 어르신, 우린 선량한 시민입니다. 저는 표창장도 있어요.”“경찰서에서 수색을 하겠다니 수색을 하도록 내버려 두시죠. 우린 떳떳하니까요!”“선량한 시민으로서 경찰의 수사에 협조하는 건 당연한 일이죠.”차창을 내린 하현을 보고 화풍성은 어리둥절했다.하현이 먼저 나서서 수사를 받겠다고 자처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하지만 화풍성은 하현을 매우 신뢰하고 있었다.하현이 이렇게 말한 이면에는 뭔가 궁리를 다 해 두었을 거라 짐작했고 결국 화풍성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런데 말이야. 당신들이 수사를 하기에 앞서 내가 한마디 할게.”“당신들이 소위 총교관의 칼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나한테 어떻게 이 일을 설명할 거야?”하현은 차에서 나와 두 손을 뒷짐진 채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어쨌든 난 항도 하 씨 가문 귀빈이고 밖에서는 문주를 대표한다고도 할 수 있어.”“내 차를 수색한다는 것은 문주의 차를 수색하는 거나 마찬가지야.”“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냥 막 수색을 할 수는 없지 않아?”장묵빈은 조곤조곤 따지고 드는 하현을 바라보다 눈썹을 치켜세우며 언짢은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만약 물건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당신은 결백하다는 뜻이 돼!”“당신은 입만 열면 선량한 시민이네 어쩌네 하는데 경찰의 수색에 협조하는 게 선량한 시민으로서 가장 마땅한 일 아니겠어?”“더 이상 할 말 있어?”하현은 싱긋 웃으며 되받아쳤다.“찾아내면 날 도둑이라 몰 것이고 안 나오면 그냥 결백하다는 게 증명이 되었다? 그걸로 끝?”“어쩐지 내가 손해 보는 것 같은데?”“게다가 난 어쨌든 항도 하 씨 가문 귀빈이야. 내 시간, 내 명성, 내 정신적인 피해에 대해 만족스러운 설명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내가 그렇게 만만해?”“당신의 이론대로라면 당신이 내 가보를 훔쳤다고 생각해서 내가 사
십여 분 만에 롤스로이스는 거의 분해되다시피 되었다.그러나 피비린내를 맡은 구미호처럼 달려들던 경찰들의 얼굴이 점점 창백하게 변했다.가장 선두에 서 있던 수사팀장은 장묵빈에게 돌아와 낮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저기, 안에 아무것도 없는데요!”장묵빈은 눈썹을 날카롭게 치켜세웠다.“말도 안 돼!”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장묵빈은 직접 차로 달려들어 하현의 격자무늬 그림을 집어 들었다.한바탕 소란스럽게 뒤적거리던 장묵빈은 화가 나서 하현을 향해 소리쳤다.“총교관의 칼은?”“칼은 어디 있는 거야?”“없을 리가 없어!”장묵빈에게 있어 총교관의 칼은 이제 가치를 넘어서서 그 자리에 없으면 안 되는 중요한 물건이 되었다.하현에게 죄를 뒤집어씌우는 이유 외에도 잠시 후에 벌어질 일에 대한 또 다른 역할이 있었던 것이다.정말로 칼을 찾지 못한다면 그는 머리가 날아갈 각오를 해야 했다.“내가 말했잖아. 난 당신이 당최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니까! 칼은 무슨 칼! 난 아무것도 몰라! 관심도 없어!”“내가 그림 속에 물건을 숨겼다는 게 웃기지 않아, 안 그래?”하현은 냉담한 표정으로 일관했다.“아침에 나왔을 때 골동품 가게에 들러 그림을 샀을 뿐이야. 설마 골동품 가게에서 그런 좋은 물건을 덤으로 줄 리 없잖아?”“자, 이제 당신들은 내 차를 분해하다시피 해서 뒤졌지만 원하는 걸 찾지 못했어.”“장묵빈, 이제 나한테 설명해 보시지?”화풍성은 의아한 마음을 떨칠 수가 없었다.그러다 갑자기 그의 머릿속에 방금 하현이 차창 밖으로 뭔가를 날리던 모습이 떠올랐다.순간 화풍성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그게 가능하다고?그는 벌렁거리는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하현, 이 개자식아!”“당신은 내 총교관의 칼을 훔쳤어!”“그런데 설명은 무슨 설명?”장묵빈은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연신 고함을 질렀다.“어서 물건 내놔!”“그렇지 않으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거야!”총교관의 칼은 분명히 아침까
”개자식! 거기 서!”하현이 붉은 카펫이 깔린 문으로 들어가려 하자 화려한 옷차림을 한 하백진이 걸어 나왔다.그녀는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을 대동하고 냉담한 표정으로 하현의 길을 막았다.“하 씨, 과거의 원한은 말하지 않겠어.”“하지만 오늘은 우리 노부인의 생신이야.”“당신은 하객으로서 조금도 신중하지 못하고 우리 항도 하 씨 가문 구역에서 소란을 벌였어!”“아는 사람은 생신을 축하하러 참석한 줄 알겠지만.”“모르는 사람은 일부러 잔칫날을 망치러 온 줄 알겠어.”“오늘 당신이 여기에 무슨 마음으로 왔는지, 전에 다른 사람들과 왜 싸웠는지 일체 상관하지 않겠어!”“하지만 오늘 당신이 우리 항도 하 씨 가문 체통을 떨어뜨리는 행동을 한다면 우리도 당신의 체면 따위 안중에 둘 필요없지!”“지금 당신은 우리의 블랙리스트에 올랐어! 그러니 썩 꺼져! 더 이상 한 발짝도 들여놓지 마!”“우리 항도 하 씨 가문은 당신을 환영하지 않아!”하백진은 겨울바람이 쌩쌩 부는 얼굴로 말했다.그녀의 뒤에는 항도 하 씨 가문 큰 아들네와 둘째 아들 가족이 서 있었다.모두들 하현을 바라보는 눈에 가시가 가득 돋쳐 있었다.항도 하 씨 가문 사람들에게 옳고 그름은 중요하지 않았다.그들은 오로지 체면을 중시할 뿐이었다.이전에 한 짓이든 오늘 한 짓이든 하현이 한 모든 행동은 항도 하 씨 가문에 반항하는 것이었다.간단히 말해 항도 하 씨 가문 사람들은 제멋대로 함부로 구는 사람들은 많이 봤지만 하현처럼 이렇게 위아래 없이 아무 거리낌 없이 반기를 드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하 씨! 아주 눈에 뵈는 게 없는 모양이야!”“문주가 뒤에서 받쳐주고 귀빈 대접해 주니까 아주 함부로 날뛰어도 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지?”“섬나라 황실, 중동 왕자, 북유럽의 공주님도 우리 가문에선 함부로 날뛰면 안 되는 거 몰라?”“무학의 성지, 10대 최고 가문, 5대 문벌들도 모두 오늘 같은 날은 공손히 참석해야 한다고!”“네까짓 게
양측이 팽팽한 기싸움을 계속 벌이고 있는 결정적인 순간에 하수진이 갑자기 앞으로 나와 웃으며 말했다.“고모님, 오늘은 하현이 생일잔치에 들어가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 같은데요.”“왜냐하면 오늘부터 하현은 항도 하 씨 가문 사위가 되었거든요. 항도 하 씨 가문 소주가 된 거죠!”하수진의 말은 천둥소리처럼 장내를 울렸다.사람들은 순간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처럼 멍해져서 아무 반응도 할 수 없었다.“항도 하 씨 가문 사위?! 소주?!”하백진은 눈 밑이 파르르 떨렸고 눈앞의 모든 것이 뒤틀려 보이기 시작했다.도저히 그녀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하문준이 감히 노부인의 생일날 이런 일을 벌이다니!어젯밤 노부인 앞에서 하문준은 하구천의 후계자 계승 건을 두고 하문성과 깊은 대화를 나눴다는 사실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하문성 측은 하문준이 충분한 이익을 얻기만 한다면 쉽게 모든 것을 내려놓을 거라고 생각했었다.하지만 지금은...그렇지 않아도 하현 때문에 안색이 좋지 않던 하구천과 하유곤은 말할 수 없이 얼굴이 일그러졌고 어떤 반응도 할 수 없었다.동시에 하현에게서 말할 수 없는 위기감을 느꼈다.하구봉, 하민석, 곽영준 등도 도무지 믿을 수 없는 거짓말을 들은 사람처럼 홀 입구에 우두커니 서서 하현을 바라보았다.하문준만이 담담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나머지 모두는 어안이 벙벙하다 못해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항도 하 씨 가문 사람들도, 노부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온 귀빈들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모두 그 어떤 반응도 내놓지 못했다.하현이 항도 하 씨 가문 귀빈이라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다.그가 가지고 있는 능력과 역량을 이용해 하수진을 돕는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어차피 하문준이 요즘 보였던 태도와 무관하지 않았던 일이었다.그래서 오늘 하현을 겨냥해 여기저기 도발하는 장면이 많이 나온 것이었고 이는 모두들 진작에 어느 정도 눈치채고 있던 일이었다.하지만 하문준이 하현을 사위
하수진의 말을 듣고 하현은 약간 어리둥절했다.그가 항성과 도성에 이렇게 오랫동안 머무르는 이유는 하수진이 말한 대로 대하 남쪽 관문을 안정시키기 위해서였기 때문이다.섬나라, 노국의 야심가들을 모두 항성에서 내쫓아야만 했다.이것이 하현의 마음속에 품은 대의였기 때문에 그는 조금도 양심에 부끄럽거나 하지 않았다.하지만 어느 날 하수진이 그에게 말했었다.항도 하 씨 가문 소주 자리에 앉으면 대하의 남쪽 관문을 더욱 안전하고 공고히 만들 수 있다고.지금 그 생각이 떠오르자 하현은 왠지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심정이었다.운명이 사람을 농락했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다.하현의 표정을 살피던 하수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고 어리둥절해 있던 항도 하 씨 가문 고위층들을 힐끗 쳐다본 후 입을 열었다.“항도 하 씨 가문은 오랫동안 자격을 갖춘 후계자를 기다리고 있었어요.”“그리고 하현 당신은 가장 최고의 자격을 갖춘 후계자야.”하수진은 두 사람만이 들을 수 있는 작은 목소리로 담담하게 말했다.“우리 둘의 결혼은 허상에 불과해. 연극하는 거라 생각해.”“당신만 잘하면 대하 관문도 더없이 안정되니 수지맞은 장사 아니야?”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듯 멍한 얼굴로 하수진을 바라보았다.그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막막했다.바로 그때 옆에 있던 하백진이 마침내 반응을 보였다.그녀는 갑자기 앞으로 달려들어 하수진의 얼굴을 가리키며 말했다.“야! 하수진! 너 입 닥치지 못해!”“머리에 총 맞았어?”“넌 문주의 양녀일 뿐이야. 하현과 결혼하다고 해도 그가 소주가 될 수는 없다고! 항도 하 씨 가문 사위?”“흥! 웃기고들 있어!”“내 말 잘 들어. 오늘 이런 자리는 양딸이 함부로 입을 놀릴 수 있는 자리가 아니야!”“당장 입 닥치지 않으면 항도 하 씨 가문을 대표해서 널 가만두지 않겠어!”하백진은 살벌한 표정으로 하수진에게 으르렁거렸다.하백진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치밀한 계획을 세웠던 이유는 하구천이 하문준의
순간 분위기가 요상하게 흘렀다.자신의 말 한마디가 장내를 압도하는 것을 보고 하문성의 눈에서는 우쭐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그리고 나서 그는 냉소를 흘리며 손을 내저었다.“그래도 네가 항도 하 씨 가문 수양딸이니 네 아버지의 체면을 봐서, 그리고 오늘은 노부인의 생신이니 특별히 봐주겠어!”“이제 너한테 책임을 묻지 않겠어!”“그러니 10초 안에 당장 꺼져!”“그렇지 않으면 내가 우리 사이의 그깟 친척 관계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당장 널 칠 거야! 그때 가서 날 원망하지 마라!”말을 마치자마자 하문성은 손을 흔들었고 하민석을 비롯한 하문성 측근의 사람들이 일어나서 앞으로 나오려고 했다.그러나 하구봉이 냉소를 흘리며 자기 사람들을 데리고 나가 하문성의 사람들을 막아섰다.그는 진작에 하현의 편에 섰고 지금은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오로지 한 길로 갈 수밖에.게다가 하현이 갑자기 항도 하 씨 가문 사위가 된 것을 보고 처음에는 하구봉도 깜짝 놀라 아무 생각이 없었으나 이내 이 모든 것이 하문준의 뜻임을 깨달았다.하수진이 상석에 올라가면 가문에서 저항이 클 수 있다.하지만 최근에 항성과 도성을 발칵 뒤집어 놓은 거물이라면 그 결말이 달라질 수도 있다.게다가 하구봉도 하현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그는 하현이 정말로 항도 하 씨 가문 문주가 된다면 항도 하 씨 가문은 최하위이지만 5대 문벌로 자리잡을 것이고 앞으로 더 올라갈 기회가 아주 없는 것도 아니란 걸 깨달았다!5대 문벌이다!오랜 역사를 이어온 5대 문벌로 들어가는 것이고 그 안에서 한 계단 올라서기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그는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오직 절세의 귀인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하문성은 하구봉이 사람들을 이끌고 자신의 측근들 앞을 가로막자 안색이 험악해졌다.그는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하문천을 노려보며 말했다.“셋째야, 너희들이 언제부터 외부인과 손을 잡았냐?”“너 같은 기회주의자는 이럴 때 줄 잘 서야 해! 안 그
”너 이 자식!”하문성은 하문천의 질책에 기가 막혀 하마터면 뒷목을 잡고 쓰러질 뻔했다.그러나 하문성이 뭐라고 말을 하려고 하는 순간 어디선가 위엄 있는 목소리가 천천히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항도 하 씨 가문에서 데릴사위를 맞이한다는데 어째 난 몰랐을까?”“너희들 내 허락은 받았니?”“아니면, 내 허락 따위 필요없다는 거냐?”위엄 있는 목소리가 퍼지자 사람들이 양쪽으로 흩어지며 소리가 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홀의 가장 깊은 곳에서 흰옷을 입은 노부인의 십여 명의 사람들을 이끌고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었다.그녀의 얼굴은 바싹 말랐지만 여전히 아름다웠다.필시 젊었을 때 엄청난 미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또한 그녀의 온몸에서 풍기는 아우라는 장내를 압도하고도 남았다.그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오금이 저려 절로 무릎을 꿇고 싶은 기분이 들었다.노부인의 곁에는 흰옷을 입은 여자들 외에도 청포를 입고 냉담한 얼굴을 한 남자가 서 있었다.항도 하 씨 가문 둘째 아들 하문산이었다.하문산은 줄곧 무학에 심취해 있었다.지금은 전성기 때만큼 보여줄 실력은 없지만 관자놀이에 우뚝 솟아오른 핏줄이 아직 그가 원기왕성하다는 걸 증명해 주었다.여전히 그의 주먹은 소 한 마리도 때려잡을 정도로 건장했다.많은 사람들 한가운데 하현도 무표정한 얼굴로 노부인 일행을 쳐다보았다.노부인의 기세가 매서웠지만 그리 노여워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마치 땋은 머리를 하고 정좌해 있는 부처님처럼 근엄하면서도 온화한 모습이 풍겨 나왔다.평소에 틀림없이 고고하게 아랫사람들을 부리며 편안한 생활을 했을 것이다.게다가 신분이 신분이니만큼 하고 싶은 것은 뭐든지 거리낌 없이 하고 살았음에 틀림없다.이런 사람이야말로 가장 다루기 힘들고 무서운 사람이다.경력, 신분, 배경, 역량, 권위 모든 면에서 그녀는 사람들을 압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아마 항도 하 씨 가문 하문준도 노부인 앞에서는 공손히 예를 갖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