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콰광!”하늘에서 먹구름들이 충돌하는 소리가 고요한 밤하늘을 울렸다.15분 만에 도요타 랜드크루저 여덟 대가 태평산 기슭 쓰러져 가는 집 앞으로 돌진했다.집 앞 마당에는 머리를 알록달록하게 물들이고 몸 여기저기 피어싱을 한 채 온몸을 문신으로 뒤덮은 건달들이 어른거리고 있었다.하지만 평소에는 거만하게 굴던 양아치들도 차 문을 열고 검은 옷을 입은 터프한 남자들이 들이닥치자 얼른 몸을 낮추며 길을 비켰다.어찌 보면 당연한 광경이었다.눈앞에 검은 옷을 입은 남자들은 누가 봐도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아우라가 풀풀 풍겼다.누가 감히 그들에게 반항이란 걸 하겠는가?그들이 옆구리에 차고 있는 총의 위용은 말할 것도 없었다.불과 3분 만에 주변은 완전히 통제되었다.이 지역의 건달 우두머리조차도 이 사람들의 신분을 안다면 절대 함부로 몸을 놀릴 수가 없을 것이다.이 상황에서 그들을 막아서는 사람이 있겠는가?항도 하 씨 가문 후계자가 하는 일에 감히 건달들이 뭐라고 하겠는가?항성과 도성 두 도시는 말할 것도 없고 홍성 길바닥이나 남양 길바닥도 마찬가지였다.이곳은 마침 홍성이 점령하고 있는 구역이었다.현장 통제가 거의 다 된 순간 세 대의 도요타 센추리가 바람처럼 나타났다.“들어가지 마! 나가지도 말고!”하구천은 냉랭한 표정으로 뒷좌석에서 내려 측근 몇 명에게 지시를 내렸고 이곳을 책임지고 있는 건달 두목을 끌고 와 자기 앞에 무릎을 꿇게 했다.이 건달놈은 감히 저항하지도 못하고 하구천을 가만히 쳐다보았다.많은 건달들 눈에 하구천은 그야말로 하늘과도 같은 사람이었던 것이다.“짝짝!”하구천이 손뼉을 치자 측근 중 한 명이 항성 달러가 가득 든 알록달록한 상자를 가져와 그대로 바닥에 쏟았다.그러자 하구천의 측근은 손을 뻗어 그 양아치의 얼굴을 툭툭 건드리며 담담하게 말했다.“엊그제 밤 여기서 무슨 이상한 일이 일어났지?”“한 자도 빠뜨리지 말고 다 말해.”“다 말하고 나면 이게 다 당신 게 되
”끼이익.”적막을 깨고 문을 여는 소리가 울렸다.하구천은 지하실 문을 차고 발을 들이밀었다.기분 나쁜 매캐한 화약 냄새가 코를 찔렀다.“개자식!”하구천은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뒤따라오는 부하들에게 별다른 경고의 손짓을 하지는 않았다.지금 그의 새로운 전투 세력들은 적진을 향한 기개가 최고조에 달했다.눈앞에 적이 나타나면 바로 번개처럼 달려들 태세였다.“펑!”바로 그때 지하실 전체를 울리며 굉음이 들렸다.이윽고 거대한 집채가 순식간에 폐허로 변했다.“펑펑펑!”커다란 폭발이 연이어 터지면서 눈앞을 하얗게 만들었다.얼마나 많은 화약이 묻혀 있었는지 가늠하기 어려울 만큼 위력이 셌다.분기탱천하던 하구천 일행은 깜짝 놀라 혼비백산했다!산이 흔들리고 대지가 뒤틀려 금방이라도 땅이 무너질 것 같았다.하구천이 데리고 왔던 측근 몇 명은 그 자리에서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숨이 끊어졌다.건물 전체가 폐허로 변해 버렸다.하구천도 재빨리 물러나지 않았더라면 그 자리에서 송장이 되었을 것이다.자갈이 깔려 있던 마당은 무수한 건물 잔해들이 산을 이루었고 부상당한 사람들까지 이리저리 널브러져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얼굴에 잔해를 뒤집어쓴 하구천 일행의 얼굴은 모두 잿빛으로 변했고 몸에는 여기저기 핏자국이 선명하게 드러났다.심지어 하구천은 온몸이 쑤시고 눈가에 경련이 일 정도로 통증이 밀려왔다.하지만 그는 아픈 몸보다 상대의 계략에 빠졌다는 사실 때문에 더 뼈가 아리고 화가 났다.방금 그의 동작이 1초만 늦었어도 그는 아마 지금쯤 저세상 귀신이 되었을 것이다!어떤 의미로 싸움은 이미 승패가 가려진 꼴이 되었다.“하 소주!”밖에 있던 십여 명의 검은 옷을 입은 사내들이 이 광경을 보고 소리를 지르며 달려왔다.무너진 건물들을 보며 그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눈이 휘둥그레졌고 하구천이 혹여 목숨을 잃은 게 아닌 건 아닌지 절망에 가득한 얼굴이 되었다.십여 명의 사내들은 자갈을 헤치면서 하백
옆에 있던 부하가 미처 몸을 움직이기도 전에 총알 하나가 ‘퍽'하고 그의 가슴팍에 꽂혔다.하구천의 뒤에 서 있던 검은 옷을 입은 사내는 가슴을 부여잡고 땅바닥에 고꾸라져 그대로 숨을 거두었다.“저격수!”검은 옷을 입은 사내는 모두 항도 하 씨 가문 정예 부대이며 하구천의 호위병이었다.누구보다 신속하고 용맹하게 대응했던 그가 숨을 거두자 하구천은 화를 낼 겨를도 없이 무의식적으로 벽 쪽으로 굴러갔다.“펑!”방금 숨은 거둔 부하가 쓰러진 자리에 거대한 구덩이가 생겼다.조금만 더 천천히 움직였더라면 자신의 몸이 산산조각이 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하 소주를 보호해야 한다!”나머지 항도 하 씨 가문 정예들은 안색이 급변했고 모두 하구천을 에워싸기 시작했다.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누구도 죽음을 피해 갈 순 없지만 하구천은 죽을 수 없다.“푹!”또 다른 총알이 날아와 이번에는 최전방을 막고 서 있던 정예의 머리에 박혔다.순식간에 하늘에 선명한 피가 튀었다.항도 하 씨 가문 정예들은 하나같이 비분강개했다.비록 쏟아지는 탄알에 얼굴이 창백해지긴 했지만 그들은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다.죽음의 위험이 난무하는 상황에서도 흩어지지 않고 하구천을 끝까지 보호했다.하구천은 얼굴 가득 분노가 치솟았지만 침착하게 행동하며 계속 몸을 피했고 결국 한쪽 도랑으로 몸을 숨겼다.악취가 진동했지만 총알이 두어 번 날아왔을 때도 하구천은 위험을 피할 수 있었다.그러나 항도 하 씨 가문 정예 두 명이 총에 맞아 쓰러졌다.하구천은 분노에 휩싸여 이를 갈았다.이들은 모두 그의 측근들이고 정예 부대에서 책임자급들이었는데 오늘 이들을 잃고 만 것이다.큰 손실이 아닐 수 없는 일이었다.가장 중요한 사실은 이렇게 하구천 일행이 큰 손실을 입었음에도 상대방이 어디에 있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는 것이다.이 사실이 하구천을 미치게 만들었다.자신을 겨냥한 암살은 인생에서 처음 겪는 일이 아니었지만 이렇게 낭패스럽고 위험한 순
하구천은 자신이 태어나서 이 자리에 앉기까지 처음으로 죽음의 압박에 직면했다는 사실을 똑똑히 느꼈다.지금 그의 곁에는 아무도 그를 보호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5분 동안 오로지 자기 자신에게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탕탕탕!”하구천이 도랑을 타고 기어 나올까 어쩔까 망설이고 있을 때 총소리가 울렸다.곧이어 원래도 견고하지 않았던 시멘트 판이 진동하며 떨어지기 시작했다.하구천의 안색은 더욱 흙빛이 되었고 한껏 움츠린 채 꼼짝도 하지 못했다.그가 지금처럼 진흙탕 속에 웅크리고 있었던 적이 있었던가?이것은 하구천의 일생일대 가장 큰 수치였다.이를 악물며 눈썹을 찡그리던 하구천은 순간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이 저격수는 왜 이런 쓸모없는 저격을 할까?그가 지금 숨어 있는 곳은 절대적인 사각지대였다.상대방은 그가 어디에 있는지 알고 있지만 단기간에 그를 어찌할 수는 없다.일반적으로 그의 옆에 있는 시멘트 벽은 모든 공격을 막을 수 있는 단단한 생명의 부적이었다.그러나 순간 하구천의 눈빛이 어두워졌다.그는 상대방의 사격에 시멘트 벽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을 알아차렸다.“제기랄!”순간 시멘트 벽이 흔들리며 떨어졌고 하구천을 향해 덮치려 하고 있었다.“개자식!”하구천은 자신의 정체가 드러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고함을 지르며 뛰쳐나왔다.무너지는 시멘트 벽을 피해 밖으로 나온 하구천을 맞이한 것은 오싹한 죽음의 공포였다.죽음의 그림자가 그에게 다가와 끊임없이 위험하다고 외치는 것 같았다.“탕탕탕!”총알이 빗발쳤다.하구천은 그 자리에서 굴렀다.위험한 상황에서 그는 극적으로 총알 세 발을 피했다.지하실에서의 폭격과 빗발치는 총알 속에 하구천의 전투력은 이미 반쯤은 상실한 상태였다.원래의 그였다면 이 포탄 속에서도 어떻게든 역추격할 수도 있었다.하지만 안타깝게도 일이 이렇게 되어 버렸고 무슨 생각을 한들 아무 소용이 없었다.그는 최선을 다해 필사적으로 피하면서 지원군이 올 때까지 버텨
항성 마리아 병원.급히 달려온 하백진은 수술 중인 하구천을 기다리며 이를 갈았다.“개자식! 그 혼혈 여자가 감히 우리 구천이를 함정에 몰아넣다니!”“죽여 버릴 거야!”“반드시 내 손으로 죽이고 말 거야!”하백진은 하구천이 넷째 공주의 계략에 말려들어 이걸윤마저 목숨을 잃을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하지만 서로에게 유리해 보이는 단 한 번의 동맹도 결국 언제든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죽음의 함정이 될 수 있다.하구천의 측근 수십 명이 목숨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하구천도 거의 죽을 뻔했다.오매도관 사람들이 제일 먼저 현장에 오지 않았더라면 하구천은 수년간 공들이기만 하다가 하루아침에 주검으로 발견되었을 것이다.상대에 대한 두려움도 없지 않았지만 그보다 지금 하백진에겐 분노가 더 앞섰다.“하현 이 개자식! 하수진 이 나쁜 년! 그들이 다른 사람의 칼을 빌려 사람을 죽이려 하지 않았다면 넷째 공주도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고 함부로 움직이진 않았을 거야!”“개 같은 연놈들! 다 죽여 버릴 거야!”“이봐, 중병들을 소집해! 하현 그 개자식에게 피맺힌 원한을 꼭 되갚아 주어야겠어!”하백진이 이를 갈며 병력을 동원하고 있을 때였다.드디어 수술실 문이 ‘찰칵'하고 열렸다.“고모, 흥분하지 마세요. 전 괜찮아요.”휠체어에 앉은 하구천을 몇몇 측근들이 밀고 나왔다.그는 다소 초췌한 얼굴로 미소를 지었다.“우린 하현과 하수진에게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게 없어요.”“그 두 연놈이 한 짓이라는 걸 알지만 아무런 증거가 없다는 게 문제죠.”“잊으시면 안 돼요. 지금 하현은 문주의 가장 귀한 손님이고 하수진은 항도 재단 집행총재라는 걸 말이에요.”“둘 다 항도 하 씨 가문의 핵심 권력에 들어 있는 인물이죠.”“아무런 확실한 증거도 없이 사람을 잡으려고 하면 결국 하구봉처럼 자기 등골만 부러지게 될 거예요.”방금 죽을 고비를 넘긴 그였다.비록 수술 때문에 방금 마취에서 깨어나긴 했지만 오히려 지금 그의 머릿속
하구천의 얼굴에 원망의 빛이 살짝 스쳐 지나갔다.그는 설마 이대로 끝나길 원하는 걸까?절대!그는 절대로 이대로 끝나길 원하지 않는다!하지만 문제는 그도 지금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증거도 없이 움직이면 오히려 상대방에게 역습을 당할 수가 있다.다들 신중한 여우들이다.아무것도 할 수 없는 때도 많다.하백진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녀의 마음은 깊은 원망과 독기로 가득 들어찼고 절대로 이대로 화를 삼키며 물러서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하구천의 말처럼 지금 섣불리 하현과 넷째 공주를 찾아가 문제를 일으킨다면 오히려 괜한 문제를 일으키는 꼴이 될 수도 있다.이런 일은 단순히 이치로만 따질 수 있는 일이 아니다.까딱하다가는 상대방에게 역습을 맞아 곤혹을 치를 수도 있는 것이다.닭 한 마리 훔치려다가 손에 있는 쌀 한 줌마저 잃을 수도 있다.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하백진은 가슴속에 들끓었던 분노가 조금은 가라앉았고 서서히 냉정을 찾아갔다.“설마 이 일을 정말 이대로 넘어갈 거야?”“넌 죽을 뻔했다구! 네가 죽을 수도 있었어!”하구천은 한숨을 내쉬며 생각에 잠겼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고모, 이 일이 전부 쓸모없는 일이 된 건 아니에요. 지금 병원 안팎은 모두 우리 사람들이잖아요.”“난 지금 병원에 누워 무고한 피해자인 척해야 해요.”“그렇게 해서 한편으로는 상대의 경계심을 늦추게 하고 외세를 현혹시킬 수 있죠.”“또 한편으로는 동정을 얻어 불쌍한 피해자의 탈을 쓸 수 있는 거예요. 우린 그 카드를 아주 잘 쓰면 되는 거구요.”“항도 하 씨 가문 노부인이 가장 좋아하는 게 바로 이런 거 아닌가요?”“하루에 세 번 위독하다는 소식을 노부인에게 알린다면 노부인이 가만히 있을 수 있겠어요?”“우리가 일을 저질러 큰 손실을 입고 남에게 빌미를 주긴 했지만 그 일로 노부인은 노발대발하시며 우리 쪽에 동정을 일으키지 않을까요?”“우리는 그 여세를 몰아 기세를 잡는 거예요.”“대구 엔터테인먼트
”참, 고모. 나 대신 후한 선물을 골라 오매도관에 좀 보내주세요.”하구천의 눈빛이 뜨거워졌다.생각만으로도 마음이 설레이는 것 같았다.“이번 일 외에도 그동안 오매도관의 몇 가지 일들을 틀어쥐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툭툭 털고 신세도 좀 갚으려고요.”“오매도관께 나 하구천이 목숨을 구해 주신 성녀의 은혜에 감사드린다고 좀 전해주세요.”“오매도관은 강남 지역의 영원한 무학 성지예요.”“누구도 그들의 권위에 도전할 수 없어요!”하백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한눈에 하구천의 마음을 알아챈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나지막이 말했다.“구천아, 걱정하지 마.”“오매도관은 늘 너의 든든한 후원자 중 하나였어.”“설령 얼굴을 숙이고 찾아가더라도 난 오매도관이 계속해서 너의 가장 큰 후원자가 되도록 할 수 있어.”하백진은 온화한 표정으로 눈앞에 있는 하구천을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을 솟구쳤다.“하지만 어떤 경우에도 현실에 맞지 않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된다는 걸 명심해.”“오매도관의 다른 여자들과 친하게 지내는 건 괜찮아.”“하지만 성녀 사비선한테는 절대 관심을 가지지 마.”“그녀는 오매도관이 심혈을 기울여 키운 사람이야. 오매도관 관장도 항상 관심을 쏟는 사람이라고.”“그녀는 훗날 후계자가 될 사람이니까.”“그녀에게 관심을 가진다는 건 오매도관의 뿌리를 흔들려는 것과도 같아.”“오매도관 관장이 알면 널 죽이려고 들 거야.”“그렇게 되면 너의 가장 큰 후원자와 끈끈한 동맹을 잃게 되는 거야. 큰 적이 하나 더 생기는 거라고.”하백진의 얼굴에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그녀는 마음이 아팠지만 하구천이 불가능한 마음을 접어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하구천은 한숨을 내쉬며 담담하게 말했다.“고모, 걱정하지 마세요. 말씀하신 점은 잘 알아들을게요.”“난 그저 성녀에게 존경의 마음만 있을 뿐 다른 뜻은 없어요...”“성녀는 너의 칼이 되고 방패가 되는 사람이야. 후원자이기도 하고 널
하백진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에 빠졌던 하구천이 입을 열었다.“고모, 당분간은 그런 먼 훗날 얘기는 하지 마세요.”“우선 눈앞의 골칫거리부터 해결하자고요.”“제대로 상석을 차지하지 않으면 항도 하 씨 가문 문주가 될 수 없어요.”“부마 자리는 생각할 필요도 없어요...”“자, 우선 우리가 퍼뜨려야 할 소문들을 하나씩 내보내죠...”하백진은 숨을 깊게 들이마셨다.하구천이 무슨 말을 하는지 금방 이해한 눈치였다.지금 가장 시급한 일은 여세를 몰아 노부인의 생신날 일을 잘 처리하는 것이다.노부인을 화나게 하든 마음을 아프게 하든 자리에 오를 수만 있다면 뭐든 다 상관없었다....하백진과 하구천이 여생을 위한 원대한 계획을 짜는 데 고심하던 그 시각, 하현은 최문성에게 상황을 보고받고 있었다.“대장님, 넷째 공주가 하구천을 건드린 모양입니다.”“또한 항성과 도성에 비밀요원들을 풀어 많은 일들을 폭로했습니다.”“누나가 이미 사람을 보내 그쪽을 조사하고 있습니다.”“곧 항성과 도성에서 노국과 내통한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최문성이 그동안의 일들을 보고했다.총교관은 비록 직접 움직이지는 않았지만 말 그대로 앉아서 모든 판세를 뒤집은 것이다.영상 하나와 사진 몇 장으로 멀리 떨어져 있는 런셀의 무리들을 불안에 떨게 만들어 자발적으로 수면 위로 나오게 했다.일이 어떻게 되든 간에 항성과 도성에서 넷째 공주로 대표되는 노국의 세력은 하구천과 죽기 살기로 싸울 것이다.하구천도 큰 타격을 입었다.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위신도, 역량도, 지위도 모든 면에서 연쇄 타격을 입은 것이다.간단히 말해서 하현은 간단한 계략으로 천군만마보다 더한 것을 얻었다.“아쉽게도 하구천은 죽지 않았어.”하현은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말했다.“하지만 그 역시 전신급의 역량을 가진 사람이야. 어쨌든 전장을 누빈 사람이니까 쉽게 죽지는 않을 거야.”“정말 하구천도 보통 사람은 아니야. 일이 이렇게 되었는데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
여수혁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하현, 나 여수혁이야! 페낭 무맹 무맹주의 여 씨 가문 사람이라구!”“내 스승님은 남양 무맹 맹주야!”“나한테 당신 같은 사람은 목숨도 아니야!”“당신 지금 이런 행동한 거,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땅바닥에 널브러진 여수혁은 힘겨운 얼굴로 남은 힘을 끌어모아 내뱉었다.“퍽!”“저리 꺼져!”하현은 여수혁을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그러자 여수혁은 벽에 몸을 부딪혔고 입에서는 봇물 터지듯 핏물이 솟구치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배후에 누가 있든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어.”하현은 앞으로 나가 손을 뻗어 여음채의 창백한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당신한테 기회를 주겠어. 잠시 문을 닫고 정리하면서 잘 생각해 봐.”“다음에도 또 이런 일로 사기를 치고 있다는 얘기가 내 귀에 들어오면 정말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땐 인정사정없이 완전히 풍비박산을 만들어 버릴 테니까!”...궁지에 빠진 여음채와 여수혁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하현은 길을 막고 있는 페낭 무맹 제자들을 발로 걷어차고 원가령을 부축하며 양유훤의 차에 올라탔다.양유훤은 사람들을 양 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데려갔고 원가령을 응급실 침대에 눕힌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현, 오늘 밤 가령이 일로 귀찮게 해서 미안해.”“어떻게 된 건지 들어서 잘 알고 있어.”“당신이 없었다면 오늘 밤 가령이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하현이 병원 대기실 소파에 앉자 하이힐을 신은 양유훤이 그에게 다가와 생수 한 병을 건넸다.“당연한 일을 한 걸 가지고 뭐. 마침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야.”하현은 어깨를 으쓱하고 난 뒤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오늘 밤 원가령의 일은 아마 십중팔구 당신을 노리고 한 짓일 거야.”“조심하는 게 좋아.”양유훤도 의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나 때문에 온 게 분명해.”“이번에 내가 천억 대금을 순조롭게 회수해서 적자에 허덕이
”퍽!”여수혁은 무맹 사람이고 남양 무맹의 맹주에게서 수련을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 맹주였다.뼈대 있는 집안 자손이었고 천부적인 재능을 겸비했다.그래서 그가 하현과의 거리가 좁힌 지금 한 번에 몸을 날리자 무서운 기세가 펼쳐졌다.방금 양유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던가!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의 계산대로라면 지금 이 주먹으로 하현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대하 촌놈! 죽어!”여수혁은 섬뜩한 미소로 쏜살같이 덤벼들었다.이런 벼락같은 기세라면 소 한 마리도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광경을 보고 여음채와 부일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수혁의 대담한 기세에 깜짝 놀란 것이다.“양유훤, 봤지?!”“이게 당신이 선택해야 할 남자의 모습이야! 이 정도는 되어야 양 씨 가문 데릴사위가 되지!”“입으로만 떠드는 남자가 무슨 소용있어?”“여수혁 같은 고수를 만나면 바로 무릎을 꿇을 거야!”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비아냥거리는 기색을 띠며 하현을 주제넘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주변 구경꾼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왜 여수혁을 감히 도발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이 모든 게 자업자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장내에 오직 양유훤과 하구봉만이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그들은 모두 하현의 실력을 본 적이 있었다.만약 여수혁 같은 사람 한 명도 수습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하현은 헛수고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퍽퍽퍽퍽!”여수형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온몸을 덜덜 떨며 비명을 질렀다.동시에 하현은 그의 두 손을 짓밟아 부러뜨렸다.“이럴 수가?!”여음채와 부일민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여수혁 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그리고 소위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도 지금은 눈가
그러자 여수혁의 옆에 있던 여음채가 얼굴을 가리고 노기를 띠며 말했다.“하 씨! 당신 뭐가 좋은지 나쁜지 몰라?”“양유훤의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과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살길을 마련해 준 거라고!”“좋게 끝났을 때 그만해야 한다는 것도 몰라? 나중에 얼굴이 찢겨 봐야 아는 거야?”여음채의 마음속에는 불쾌함으로 가득 차올랐다.하현은 계속 자신의 뺨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이빨이 부러지도록 만신창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콧대 높은 여음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하현이 도발하며 여수혁을 추궁하는 것을 보고 여음채는 도저히 화를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그녀가 특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자가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쉽게 살려는 자들이다.양유훤을 믿고 호랑이처럼 위세를 부릴 뿐만 아니라 아주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모습이라니!여음채의 상식으로 어떻게 하현 같은 사람을 여수혁과 동급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운이 좋아서 양유훤의 치마폭에 싸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하현은 벌써 수십 번은 죽었을 것이다.“좋은 게 좋은 거라고?”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잘난 척 기고만장한 여음채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여음채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렇지 않아? 똑똑히 들어. 양 씨 가문의 호가호위만 믿고 설치는 짓,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당신이 정말로 양유훤의 남자인 줄 알아? 당신이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도 된 줄 알아?”“당신이 정말로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해도 여자 치마폭에 싸인 남자가 얼마나 대단하겠어?”여음채는 엄청 호의를 베풀 듯이 호기롭게 훈계를 했다.“당신이 어떤 속셈이 있고 무슨 실력이 있든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하현은 여음채가 하는 말을 더는 듣기 귀찮아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자, 닥쳐! 쓸데없는 소린 그만해!”“재잘재잘 너무 시끄럽군!”“뭐?!”여음채는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입에 차가운 재갈을 물리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
남양 무맹 사람들이 나섰음에도 양유훤은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여수혁의 안색이 일그러졌다.그는 자신이 오늘 하현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하 씨, 오늘은 내가 운이 나빴군. 하지만 아직 기회는 많아!”“능력이 있으면 어디 이 여자가 영원히 당신을 비호하도록 만들어 봐!”“이 여자가 당신을 얼마나 지켜줄 수 있는지 얼마나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그는 하현을 노려보다 냉소를 흘리며 돌아섰다.여음채도 한껏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외지인 남자가 여자한테 기대서 큰소리치는 꼴이라니!세상은 좁아서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법이다.이 남자가 괴로워할 때가 분명 올 것이다!“거기 서!”바로 그때 침묵하고 있던 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순간 하현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강하게 감돌았다.비록 양유훤이 나서서 자신을 비호하도록 가만히 놔두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긴 했지만 하현은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현재 양유훤의 처지를 거의 파악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양유훤의 어깨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하현이 한 걸음 내디디며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하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그들은 하현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다.여수혁 같은 거물이 그를 벌하려는 걸 양유훤이 겨우 구해줬는데 뭘 또 바란단 말인가?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여수혁은 발걸음을 뚝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오늘은 운이 나쁜 걸로 친다고 했는데 뭘 또 바라는 거야?”하현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정말 이렇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돈을 받고도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은 권세로 사람들을 자꾸만 괴롭히려고 해.”“날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내 다리를 부러뜨리고 무릎을 꿇게 만들려고 했어.”“이 모든 것에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