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아는 눈살을 찌푸렸다.“엄마,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돈은 정 씨 가문 돈이지 내 돈이 아니야.”“난 몇 억밖에 없어요. 전부 엄마한테 줬잖아.”최희정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난 그런 거 몰라. 잘 들어. 나한테 매달 몇 십억씩 주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끝나지 않을 거야!”“날 피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 마. 내가 기분이 좋아서 요즘 너한테 따지지 않았을 뿐이야.”최희정은 말을 마치며 들고 있던 에르메스 가방을 꺼내 보이며 흐뭇해하는 모습을 보였다.에르메스 가방은 몇 억을 줘야 겨우 살 수 있는 가방인데 최희정이 갖고 있어서 설은아도 놀랐다.“엄마, 이 가방 어디서 났어?”“어디서? 당연히 내가 직접 샀지!”최희정은 설은아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내가 산 게 아니면 뭐 네가 사 줬겠니?”“이런 불효녀 같으니라고!”“똑똑히 들어. 만약 용천오가 아니었다면...”호기롭게 말을 늘어놓던 최희정이 갑자기 뚝 말문을 닫았다.자신이 실언한 것을 깨닫고 얼른 입을 다물어 버린 것이다.최희정은 설은아의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렸다.설은아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분명 용천오가 최희정에게 당부한 것이 틀림없다.“용천오가 준 거야?”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고 최희정을 흘겨보며 말했다.“엄마, 내가 이미 여러 번 말했잖아!”“나와 용천오는 지금 함께 비즈니스를 도모하는 단계일 뿐이야. 엄마가 그 사람이랑 만나서 이런 물건을 받는 건 보기 좋지 않아.”“혹시라도 누군가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비즈니스상 굉장히 곤란해져.”“가방 이리 줘. 비서한테 돌려주라고 해야겠어.”“다른 물건이 혹시 또 있으면 그것도 줘. 내가 같이 되돌려줄 테니까.”“원하는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사 줄게.”최희정은 손에 든 에르메스 가방을 얼른 뒤로 숨기며 설은아를 노려보았다.“설은아! 정말 너 너무해!”“나와 용천오가 친한 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그 사람이 준 물건을 내가 왜
울그락불그락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는 최희정의 모습에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보름 동안 하현과 연락도 없었다.항성과 도성에서 일어난 일은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설은아는 하현이 정말로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려 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피로 물드는 장면은 그녀의 뇌리에 남아 그녀를 계속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그녀도 안다.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정말로 하현이 최희정을 죽이려고 했다면 분명히 깔끔하게 끝내는 게 맞다.하지만 직접 보고 직접 들었음에도 그녀는 도무지 혼란스러워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멀어져 가던 생각을 붙잡고 설은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엄마, 우리 그 얘기 그만하면 안 될까?”계모만도 못한 최희정은 괴로워하는 설은아의 표정을 보며 오히려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래, 그래. 알았어. 이제 그 자식 얘기는 하지 말자!”“참, 오늘 밤 용천오가 웨스틴 호텔에 새로 오픈하는 레스토랑으로 초대했어.”“너도 우리랑 같이 갈 거지?”설은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 난 오늘 밤 할 일이 좀 있어...”“가야 돼! 무조건 가야 된다고!”“워라밸도 몰라? 여자애가 제대로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다고 그래? 매일 그렇게 일만 하다 뭐하게?”“그리고 네가 용천오한테 시집이라도 가서 나중에 금광 개발 수익금을 우리한테 좀 준다면 우린 그 돈으로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어. 네가 이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어!”“어쨌든 오늘 밤 넌 꼭 가야 해! 내가 정했어!”“딴소리하지 마!”최희정은 횡포나 다름없는 기세로 설은아를 몰아붙였다.특히 최근에 용천오가 그녀를 추켜세우자 더욱 오만해진 터였다.최희정은 말을 마치며 운전기사에게 얼른 차를 몰라고 손짓했다.최희정과 설은아의 공방전이 일단락되자 뒷자리에 잠자코 앉아 있던 설유아가 입을 열었다.“엄마, 언니. 오늘 저녁에 우리가 뭘 먹을지 모르지만.”“일단 훠궈나 좀
설유아가 최희정의 말에 반박하려고 했을 때 앞에 앉은 운전기사가 갑자기 유리를 내리더니 뭔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사장님, 뒤에 차량 몇 대가 계속 우리를 따라오고 있습니다...”“서너 차례 노선을 바꿔 봤는데도 계속 따라붙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우리를 미행하는 것 같습니다.”“우릴 노리는 게 분명해 보입니다.”설은아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얼른 몸을 돌려 백미러 쪽을 바라보았다.역시 로컬 번호판을 단 차량 몇 대가 어김없이 자신의 차를 따라오고 있었다.검은색 일색인 밴들은 겉으로만 보아도 그 위용이 대단해 보였다.이때 따라붙던 차량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들킨 걸 아는지 빠르게 사방으로 흩어져 쏜살같이 설은아의 차량을 따라잡았다.차 한 대가 나는 듯이 다가와 설은아 차량의 퇴로를 막았고 다른 차 몇 대는 양쪽에 늘어서서 천천히 거리를 좁혀왔다.설은아는 안색이 점점 일그러졌다.대구 정 씨 가문의 방주인 자신을, 그곳도 대구에서 대놓고 자신을 괴롭히려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하지만 그녀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있을 법한 얘기 같기도 했다.그녀는 지금의 자리에 앉은 뒤 많은 사람들과 부딪혀 왔다.이전에는 은밀하게 그녀를 공격하고 위협했지만 이젠 대놓고 공격하는 이런 방법도 하나 더 생긴 것이다.회사에서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눈빛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짐작할 만한 일이었다.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설은아는 자신의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다.도대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든 무얼 원하든지 간에 지금은 안전이 최우선이다.운전기사 겸 보안대장은 잠시 설은아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사장님, 안전벨트 꽉 매세요.”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무전기를 꺼내 위엄 서린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말했다.“당신들 몇 명은 저 차의 행렬을 막아. 난 먼저 사장님 데리고 여길 빠져나가 향산 별장으로 갈 테니까 거기서 합류해!”비록 하현이 잠시 대구를 떠난 뒤 최희정이 향산 별장을 빼앗다시피 했지만 설은아는 내놓을 생각이 없
설은아의 운전기사가 고군분투하며 차량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방금 전복된 차 안에서 금발의 파란 눈을 한 양복 차림의 서양 남자가 튀어나왔다.충격으로 온몸을 휘청거렸지만 그들은 이내 총기를 꺼내 설은아의 운전대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탕탕탕!”미친 듯이 달리던 차는 뒤쪽 바퀴가 터지면서 움찔거렸다.순간 설은아의 차는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이리저리 몸체를 가누지 못하고 충돌하기 시작했다.운전기사는 창백해진 얼굴로 차가 전복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핸들을 붙잡았다.최희정은 이미 놀라서 넋이 나간 듯 눈에 흰자위가 가득한 채 금방이라도 기절할 사람 같았다.최희정만큼은 아니었지만 설유아도 지금의 상황에 너무 놀란 나머지 얼굴이 하얘졌다.그녀도 많은 일을 겪어 봤지만 이렇게 쫓기는 일은 처음이었다.설은아는 요즘 목숨이 경각에 달리는 일을 너무 많이 당해서인지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을 유지하며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어서 도움 요청하세요.”“그리고 문 잠그시고!”“경찰에 신고부터 하세요!”운전기사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관청에 신고하는 것이 경호원으로서 창피하긴 했지만 지금은 다른 것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그는 재빨리 차 문을 잠그고 동시에 핸드폰을 꺼내 경찰서에 전화했다.이때 밖에는 이미 예닐곱 명의 양복 차림을 한 서양인들이 재빨리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그들의 손에는 총 외에도 특수 제작된 쇠망치가 들려 있었다.설유아 일행이 문을 열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그들은 쇠망치로 창문을 내리치기 시작했다.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쇠망치질을 하는 그들은 한눈에 봐도 이런 일에 프로들인 것 같았다.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남자는 시가를 손에 쥐고는 서툰 대하말로 다가왔다.“어서 어서! 이 여자를 꼭 생포해야 해! 나머지 두 사람은 처리해 버려!”우두머리의 말을 듣자마자 예닐곱 명의 서양인들은 더욱 속도를 높여 특수 제작된 차량 유리를 맹렬하게 부수기 시작했다.결국 차량 앞유리에 커다란 금이 가고 말았다.
”병왕? 전쟁의 신?”자신의 부하들이 계속 픽픽 쓰러지자 앞장섰던 원탁의 기사는 안색이 확 변했다.그는 재빨리 손에 든 시가를 던져버리고 칼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갔다.원탁의 기사가 든 성전 십자검은 다른 일반 성전 기사들의 것보다 훨씬 날카롭고 강력했다.“촹!”당도를 손에 든 남자가 가로로 칼을 한번 휘두르자 원탁의 기사가 들고 있던 성전 십자검이 두 동강이 나며 날아올랐다.“푹!”원탁의 기사가 정신을 못 차리고 얼이 나가 있는 눈빛을 하자 당도는 다시 원탁의 기사에게 날아와 그의 목을 관통했다.원탁의 기사는 ‘꺽'소리를 내며 고꾸라졌다.그는 노국의 고귀한 원탁의 기사였다.어떤 공격에도 결국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던 그였다.그런데 오늘 예상치 못한 형국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한 눈빛을 하며 원탁의 기사는 그대로 주저앉았다.설유아는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몰래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그녀는 요즘 대구 연예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지만 대구의 몇몇 거물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상대의 얼굴을 본 순간 설유아의 얼굴이 얼어붙었다.“전신 당천도?!”“당천도가 어떻게 우릴 구하러 왔지?”어리둥절하기는 설은아도 마찬가지였다.한 세대의 전신이 홀연히 나타나 그녀를 구하다니.그녀는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러나 정말로 눈앞에 벌어진 일이었다.순간 설은아의 마음속에 어렴풋이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다.설마 하현이 보낸 걸까?그러나 안타깝게도 설은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갑자기 차창 밖에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났다.그들은 은빛 장총을 들고 사나운 표정으로 그녀의 심장을 옥죄듯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백주대낮에 쥐새끼 같은 놈들이 어디서 흉기를 들고 사람들을 괴롭혀?”“푹푹푹!”은빛 장총들이 땅에 떨어져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당천도는 냉랭한 표정으로 이들을 힐끔 쳐다보고는 바로 설은아 쪽을 돌아보았다.그는 하현의 명
”아유, 어떻게 이렇게 마음에 쏙 드는 말만 골라서 할 수 있담!”최희정은 흐뭇한 표정으로 용천오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그가 자신에게 준 수십억 원의 선물을 떠올렸다.순간 바라만 봐도 흐뭇한 사위를 대하듯 그녀의 눈빛에선 애정이 뚝뚝 흘러넘쳤다.보면 볼수록 마음에 쏙 드는 모양이었다.최희정은 곧바로 차에 올라 설은아를 끌어내렸다.“용천오, 감사의 표시로 우리 두 딸들과 함께 무성에 가기로 했어.”“잘 됐네요. 환영합니다...”용천오는 노국의 원탁 기사가 설은아를 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달려왔다.역시 의외의 순간에 기회는 찾아오는 것이다.“이봐, 여기 설 사장님 일행을 보호해 드려.”“이제부터 설 사장님 일가는 나 용천오의 귀한 손님이야!”“누가 감히 나의 귀빈에게 손 하나 까딱하기라도 한다면 당장 그놈의 목을 꺾어 버릴 거야!”설은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마음 같아서는 단칼에 그의 호의를 거절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그녀도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용천오가 그녀를 구하러 와 주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하현은 어디에 있을까?설유아는 조심스럽게 설은아의 곁에 다가가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언니, 방금 그 당천도 말이야. 형부가 보낸 것 같아.”설은아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뭔가 말하려고 입을 떼려는 순간 설유아의 말을 들은 최희정이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끼어들었다.“하 씨 그놈이 전신을 보냈다고? 우리를 보호하라고?”“설유아! 너 도대체 머리에 뭐가 들었길래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그 개자식이 어떻게 전신을 움직이라 마라 할 수 있겠냐고?”“내 추측이 맞다면 아까 그 전신은 분명 용천오가 보낸 게 틀림없어.”“다만 용천오가 워낙 겸손한 사람이라 그와 전신의 관계를 드러내 놓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라고.”“서로 모른 척 연기하는 거 안 보였어?”“그렇지 않고서야 용맹하게 사람들을 때려눕히고도 아무 소리 없이 슥 사라질 수 있겠어?”최희정은 확신에 찬
최문성의 말을 듣고 난 하현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고는 자료를 뒤적이며 말했다.“용천오는 또 뭐야?”최문성은 잠시 핸드폰을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용천오, 대하 10대 최고 가문인 용 씨 집안 직계 제 십삼대 손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용도령이라 부릅니다.”“무성에서는 용 씨 가문 차기 후계자 중 한 명이라고 한다더군요.”“그를 제외한 나머지 두 후보는 용천진과 용천두입니다.”하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그 사람들뿐이야?”최문성이 말했다.“물론 아니죠. 용 씨 가문 문주의 또 다른 신분은 바로 용문 문주입니다.”“용문 문주인 동시에 용 씨 가문 문주인 거죠.”“말하자면 용 씨 가문 중 이 세 사람은 누가 상석에 앉든 간에 가문의 문주가 되면 자동으로 용문의 문주가 되는 겁니다.”“그래서 용 씨 집안 이 세 도련님들이 몇 년 동안 무성에서 이 자리를 놓고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습니다.”“그중 용천진이 용문 장로회와 옛 집법당 원로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용문 서른여섯 지회장 중 절반이 그를 지지하고 있는 셈이죠.”“물론 이 사람들 중 대장님은 포함되지 않습니다.”“용천두는 용 씨 가문 내에 가장 많은 지지를 얻고 있어요. 특히 용 씨 가문 노부인의 총애가 두텁다고 합니다.”“한 마디로 용천진과 용천두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상태입니다...”하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그럼 용천오는 어떻게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지?”최문성이 입을 열었다.“비즈니스로 그 자리에 올랐죠.”“대장님도 아시겠지만 무성은 특수한 곳입니다. 고원에 위치하여 과거에는 매우 황폐한 땅이었지만 대하가 건국된 후 발전하기 시작했죠.”“하지만 국가의 강력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무성의 경제는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곳은 일반적으로 관광업으로 발전한 도시입니다.”“하지만 약 6년 전, 용 씨 가문 용천오가 등장에 단기간에 무성의 많은 중소기업들과 소매상들을 통합하여 무성 상업연맹을 결
최문성이 그다음 말을 하지 않아도 하현은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뻔히 알 것 같았다.탐욕스러운 최희정이 돈도 많고 설은아에게 관심을 보이는 용천오를 그냥 넘길 리 없다.게다가 최희정은 지금 하현에게 악감정이 가득한 사람이었으니 아마 용천오와 설은아를 이어주는 일에 열을 울리고 있을 것이다.“당천도한테는 연락했어? 용천오의 실력은 어때?”하현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다시 입을 열었다.최문성은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당통령께서 말씀하시길 용천오는 아마 예측할 수 없을 만큼 실력이 만만치 않을 거라고 하셨습니다. 그의 곁에는 병왕급 고수도 많고요.”“그리고 상대가 별로 적대적으로 나오지 않자 대장님의 지시를 받고 바로 물러났습니다.”하현은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그의 본뜻은 당천도와 자신의 관계가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하지만 지금 가서 설명하면 오히려 최희정에게 당천도를 보낸 일이 제 발 저런 사람의 행동쯤으로 보일지도 모른다.용천오를 마음에 들어 하는 최희정은 이미 사위가 된 것 마냥 그를 대할 것이다.“또 무슨 일이 있었어?”하현은 찻잔을 천천히 돌리며 한 모금 마시려다가 마음이 심란한지 찻잔을 내려놓고 툭 내뱉었다.최문성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대구의 소식통에 따르면 지금 용천오와 대구 정 씨 방주가 금광 개발 건에 협업하기로 논의 중이라고 합니다.”“합작이 어느 정도 진전되었는지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하지만 용천오가 최 여사님과 형수님을 무성으로 초대했다고 합니다.”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역시 대단하신 장모님답군. 아직도 그렇게 머리에 아무 생각이 없으시다니. 마냥 즐거운 잔치도 마냥 즐거운 회합도 없다는 걸 아직도 모르시나?”“남들이 에르메스 가방 몇 개 쥐여주고 밥 몇 끼 대접하면 덮어 놓고 좋은 사위라고 생각하시다니!”“대구에서는 대구 정 씨 가문이 그의 큰 뒷배가 되어 줄 것 같으니까 그가 이렇게 점잖고 온화하게 구는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