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은아는 천천히 계약서를 작성한 뒤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하지만 얘기가 진전되기 전에는 어떤 시찰도 무의미하다고 봅니다.”용천오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비즈니스 합작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럼 사적으로 기분 전환한다고 생각하면 어떻습니까?”“참, 내가 말씀드린다는 걸 깜빡했군요. 최여사님을 무성에 초대했더니 아주 흔쾌히 수락해 주셨습니다...”“최여사님이 오실 때 같이 오셨으면 좋겠습니다.”“어쨌든 어머니 혼자 먼 길 보내시게 할 순 없잖습니까!”설은아의 매끈한 이마 위에 검은 실가닥이 언짢은 듯 떠올랐다.설은아는 용천오의 부지런함에 속으로 혀를 내두르며 어떻게 이 일을 처리해야 할지 머리가 아파왔다.한편 도성에서 있었던 일 때문에 그녀와 하현은 보름 넘게 연락을 하지 않았다.그리고 또 한편으로 최희정은 하현과의 이혼을 완전히 정리하라고 그녀에게 끊임없이 요구하며 그녀를 괴롭히고 있었다.설은아의 기분이 좋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용천오는 온화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좋아요, 설은아 씨. 오늘은 더 이상 당신을 방해하지 않을게요!”“무성에 갈지 말지는 나중에 알려줘요. 답장 기다릴게요!”“그럼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하지만 당신이 답을 주지 않더라도 우리 사이의 공적인 합작은 계속되는 거니까 부담 가질 필요없어요.”용천오는 말을 마치고서야 돌아섰다.꼿꼿한 체구에 잘생긴 얼굴, 최고 명문가 특유의 기품 넘치는 모습에 뭇여성들의 마음이 절로 녹아들었다.떠나는 용천오의 뒷모습을 보며 설은아는 계약서에 시선을 떨구었다.왠지 허한 마음 바닥에서 그네를 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대구 정 씨 가문은 그녀가 이 계약을 따내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금광 개발 사업에 발을 담근다는 건 그야말로 돈방석에 앉는 일이기 때문이다.하지만 용천오의 자신만만한 태도와 저돌적인 모습에 그녀는 고민에 빠졌다.오후 4시, 남아 있던 일을 처리하고 난 후 설은아는 사
설은아는 눈살을 찌푸렸다.“엄마,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돈은 정 씨 가문 돈이지 내 돈이 아니야.”“난 몇 억밖에 없어요. 전부 엄마한테 줬잖아.”최희정은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난 그런 거 몰라. 잘 들어. 나한테 매달 몇 십억씩 주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끝나지 않을 거야!”“날 피하면 괜찮을 거라 생각하지 마. 내가 기분이 좋아서 요즘 너한테 따지지 않았을 뿐이야.”최희정은 말을 마치며 들고 있던 에르메스 가방을 꺼내 보이며 흐뭇해하는 모습을 보였다.에르메스 가방은 몇 억을 줘야 겨우 살 수 있는 가방인데 최희정이 갖고 있어서 설은아도 놀랐다.“엄마, 이 가방 어디서 났어?”“어디서? 당연히 내가 직접 샀지!”최희정은 설은아게 눈을 흘기며 말했다.“내가 산 게 아니면 뭐 네가 사 줬겠니?”“이런 불효녀 같으니라고!”“똑똑히 들어. 만약 용천오가 아니었다면...”호기롭게 말을 늘어놓던 최희정이 갑자기 뚝 말문을 닫았다.자신이 실언한 것을 깨닫고 얼른 입을 다물어 버린 것이다.최희정은 설은아의 눈치를 살피며 머뭇거렸다.설은아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분명 용천오가 최희정에게 당부한 것이 틀림없다.“용천오가 준 거야?”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높아졌고 최희정을 흘겨보며 말했다.“엄마, 내가 이미 여러 번 말했잖아!”“나와 용천오는 지금 함께 비즈니스를 도모하는 단계일 뿐이야. 엄마가 그 사람이랑 만나서 이런 물건을 받는 건 보기 좋지 않아.”“혹시라도 누군가가 이 사실을 알게 된다면 비즈니스상 굉장히 곤란해져.”“가방 이리 줘. 비서한테 돌려주라고 해야겠어.”“다른 물건이 혹시 또 있으면 그것도 줘. 내가 같이 되돌려줄 테니까.”“원하는 게 있으면 나한테 말해. 내가 사 줄게.”최희정은 손에 든 에르메스 가방을 얼른 뒤로 숨기며 설은아를 노려보았다.“설은아! 정말 너 너무해!”“나와 용천오가 친한 게 너랑 무슨 상관이야?”“그 사람이 준 물건을 내가 왜
울그락불그락 얼굴을 붉히며 화를 내는 최희정의 모습에 설은아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그녀는 보름 동안 하현과 연락도 없었다.항성과 도성에서 일어난 일은 아직도 눈앞에 선했다.설은아는 하현이 정말로 자신의 어머니를 죽이려 했다는 것을 믿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피로 물드는 장면은 그녀의 뇌리에 남아 그녀를 계속 혼란스럽게 만들었다.그녀도 안다.이성적으로 생각했을 때 정말로 하현이 최희정을 죽이려고 했다면 분명히 깔끔하게 끝내는 게 맞다.하지만 직접 보고 직접 들었음에도 그녀는 도무지 혼란스러워서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멀어져 가던 생각을 붙잡고 설은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엄마, 우리 그 얘기 그만하면 안 될까?”계모만도 못한 최희정은 괴로워하는 설은아의 표정을 보며 오히려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그래, 그래. 알았어. 이제 그 자식 얘기는 하지 말자!”“참, 오늘 밤 용천오가 웨스틴 호텔에 새로 오픈하는 레스토랑으로 초대했어.”“너도 우리랑 같이 갈 거지?”설은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아니. 난 오늘 밤 할 일이 좀 있어...”“가야 돼! 무조건 가야 된다고!”“워라밸도 몰라? 여자애가 제대로 좋은 사람 만나서 시집가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어디 있다고 그래? 매일 그렇게 일만 하다 뭐하게?”“그리고 네가 용천오한테 시집이라도 가서 나중에 금광 개발 수익금을 우리한테 좀 준다면 우린 그 돈으로 평생 떵떵거리며 살 수 있어. 네가 이렇게 고생할 필요도 없어!”“어쨌든 오늘 밤 넌 꼭 가야 해! 내가 정했어!”“딴소리하지 마!”최희정은 횡포나 다름없는 기세로 설은아를 몰아붙였다.특히 최근에 용천오가 그녀를 추켜세우자 더욱 오만해진 터였다.최희정은 말을 마치며 운전기사에게 얼른 차를 몰라고 손짓했다.최희정과 설은아의 공방전이 일단락되자 뒷자리에 잠자코 앉아 있던 설유아가 입을 열었다.“엄마, 언니. 오늘 저녁에 우리가 뭘 먹을지 모르지만.”“일단 훠궈나 좀
설유아가 최희정의 말에 반박하려고 했을 때 앞에 앉은 운전기사가 갑자기 유리를 내리더니 뭔가 심상치 않은 표정으로 말했다.“사장님, 뒤에 차량 몇 대가 계속 우리를 따라오고 있습니다...”“서너 차례 노선을 바꿔 봤는데도 계속 따라붙고 있는 걸 보니 아무래도 우리를 미행하는 것 같습니다.”“우릴 노리는 게 분명해 보입니다.”설은아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얼른 몸을 돌려 백미러 쪽을 바라보았다.역시 로컬 번호판을 단 차량 몇 대가 어김없이 자신의 차를 따라오고 있었다.검은색 일색인 밴들은 겉으로만 보아도 그 위용이 대단해 보였다.이때 따라붙던 차량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들킨 걸 아는지 빠르게 사방으로 흩어져 쏜살같이 설은아의 차량을 따라잡았다.차 한 대가 나는 듯이 다가와 설은아 차량의 퇴로를 막았고 다른 차 몇 대는 양쪽에 늘어서서 천천히 거리를 좁혀왔다.설은아는 안색이 점점 일그러졌다.대구 정 씨 가문의 방주인 자신을, 그곳도 대구에서 대놓고 자신을 괴롭히려는 사람이 있을 줄은 몰랐다.하지만 그녀가 곰곰이 생각해 보니 있을 법한 얘기 같기도 했다.그녀는 지금의 자리에 앉은 뒤 많은 사람들과 부딪혀 왔다.이전에는 은밀하게 그녀를 공격하고 위협했지만 이젠 대놓고 공격하는 이런 방법도 하나 더 생긴 것이다.회사에서 자신을 못마땅해하는 눈빛들을 생각하면 충분히 짐작할 만한 일이었다.숨을 깊게 들이마시며 설은아는 자신의 마음을 애써 진정시켰다.도대체 상대방이 어떤 사람이든 무얼 원하든지 간에 지금은 안전이 최우선이다.운전기사 겸 보안대장은 잠시 설은아를 돌아보며 입을 열었다.“사장님, 안전벨트 꽉 매세요.”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는 무전기를 꺼내 위엄 서린 목소리로 누군가에게 말했다.“당신들 몇 명은 저 차의 행렬을 막아. 난 먼저 사장님 데리고 여길 빠져나가 향산 별장으로 갈 테니까 거기서 합류해!”비록 하현이 잠시 대구를 떠난 뒤 최희정이 향산 별장을 빼앗다시피 했지만 설은아는 내놓을 생각이 없
설은아의 운전기사가 고군분투하며 차량을 빠져나가려는 순간 방금 전복된 차 안에서 금발의 파란 눈을 한 양복 차림의 서양 남자가 튀어나왔다.충격으로 온몸을 휘청거렸지만 그들은 이내 총기를 꺼내 설은아의 운전대를 향해 총구를 겨누었다.“탕탕탕!”미친 듯이 달리던 차는 뒤쪽 바퀴가 터지면서 움찔거렸다.순간 설은아의 차는 바람 빠지는 풍선처럼 이리저리 몸체를 가누지 못하고 충돌하기 시작했다.운전기사는 창백해진 얼굴로 차가 전복되지 않도록 필사적으로 핸들을 붙잡았다.최희정은 이미 놀라서 넋이 나간 듯 눈에 흰자위가 가득한 채 금방이라도 기절할 사람 같았다.최희정만큼은 아니었지만 설유아도 지금의 상황에 너무 놀란 나머지 얼굴이 하얘졌다.그녀도 많은 일을 겪어 봤지만 이렇게 쫓기는 일은 처음이었다.설은아는 요즘 목숨이 경각에 달리는 일을 너무 많이 당해서인지 이런 상황에서도 침착을 유지하며 운전기사에게 말했다.“어서 도움 요청하세요.”“그리고 문 잠그시고!”“경찰에 신고부터 하세요!”운전기사는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관청에 신고하는 것이 경호원으로서 창피하긴 했지만 지금은 다른 것을 돌볼 겨를이 없었다.그는 재빨리 차 문을 잠그고 동시에 핸드폰을 꺼내 경찰서에 전화했다.이때 밖에는 이미 예닐곱 명의 양복 차림을 한 서양인들이 재빨리 차에서 내리는 모습이 보였다.그들의 손에는 총 외에도 특수 제작된 쇠망치가 들려 있었다.설유아 일행이 문을 열 수 없다는 걸 알게 된 그들은 쇠망치로 창문을 내리치기 시작했다.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쇠망치질을 하는 그들은 한눈에 봐도 이런 일에 프로들인 것 같았다.우두머리로 보이는 한 남자는 시가를 손에 쥐고는 서툰 대하말로 다가왔다.“어서 어서! 이 여자를 꼭 생포해야 해! 나머지 두 사람은 처리해 버려!”우두머리의 말을 듣자마자 예닐곱 명의 서양인들은 더욱 속도를 높여 특수 제작된 차량 유리를 맹렬하게 부수기 시작했다.결국 차량 앞유리에 커다란 금이 가고 말았다.
”병왕? 전쟁의 신?”자신의 부하들이 계속 픽픽 쓰러지자 앞장섰던 원탁의 기사는 안색이 확 변했다.그는 재빨리 손에 든 시가를 던져버리고 칼을 뽑아 들고 앞으로 나갔다.원탁의 기사가 든 성전 십자검은 다른 일반 성전 기사들의 것보다 훨씬 날카롭고 강력했다.“촹!”당도를 손에 든 남자가 가로로 칼을 한번 휘두르자 원탁의 기사가 들고 있던 성전 십자검이 두 동강이 나며 날아올랐다.“푹!”원탁의 기사가 정신을 못 차리고 얼이 나가 있는 눈빛을 하자 당도는 다시 원탁의 기사에게 날아와 그의 목을 관통했다.원탁의 기사는 ‘꺽'소리를 내며 고꾸라졌다.그는 노국의 고귀한 원탁의 기사였다.어떤 공격에도 결국 승리의 깃발을 휘날리던 그였다.그런데 오늘 예상치 못한 형국을 맞이하게 된 것이다...믿을 수 없다는 듯 멍한 눈빛을 하며 원탁의 기사는 그대로 주저앉았다.설유아는 얼굴을 가린 손가락 사이로 몰래 이 광경을 보고 있었다.그녀는 요즘 대구 연예계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지만 대구의 몇몇 거물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상대의 얼굴을 본 순간 설유아의 얼굴이 얼어붙었다.“전신 당천도?!”“당천도가 어떻게 우릴 구하러 왔지?”어리둥절하기는 설은아도 마찬가지였다.한 세대의 전신이 홀연히 나타나 그녀를 구하다니.그녀는 이런 일이 생길 거라고는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그러나 정말로 눈앞에 벌어진 일이었다.순간 설은아의 마음속에 어렴풋이 누군가의 모습이 떠올랐다.설마 하현이 보낸 걸까?그러나 안타깝게도 설은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갑자기 차창 밖에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났다.그들은 은빛 장총을 들고 사나운 표정으로 그녀의 심장을 옥죄듯 거리를 좁혀오고 있었다.“백주대낮에 쥐새끼 같은 놈들이 어디서 흉기를 들고 사람들을 괴롭혀?”“푹푹푹!”은빛 장총들이 땅에 떨어져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당천도는 냉랭한 표정으로 이들을 힐끔 쳐다보고는 바로 설은아 쪽을 돌아보았다.그는 하현의 명
”아유, 어떻게 이렇게 마음에 쏙 드는 말만 골라서 할 수 있담!”최희정은 흐뭇한 표정으로 용천오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그가 자신에게 준 수십억 원의 선물을 떠올렸다.순간 바라만 봐도 흐뭇한 사위를 대하듯 그녀의 눈빛에선 애정이 뚝뚝 흘러넘쳤다.보면 볼수록 마음에 쏙 드는 모양이었다.최희정은 곧바로 차에 올라 설은아를 끌어내렸다.“용천오, 감사의 표시로 우리 두 딸들과 함께 무성에 가기로 했어.”“잘 됐네요. 환영합니다...”용천오는 노국의 원탁 기사가 설은아를 습격했다는 소식을 듣고 가장 먼저 달려왔다.역시 의외의 순간에 기회는 찾아오는 것이다.“이봐, 여기 설 사장님 일행을 보호해 드려.”“이제부터 설 사장님 일가는 나 용천오의 귀한 손님이야!”“누가 감히 나의 귀빈에게 손 하나 까딱하기라도 한다면 당장 그놈의 목을 꺾어 버릴 거야!”설은아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마음 같아서는 단칼에 그의 호의를 거절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는 그녀도 도저히 입이 떨어지지가 않았다.용천오가 그녀를 구하러 와 주었기 때문이다.그런데 지금 하현은 어디에 있을까?설유아는 조심스럽게 설은아의 곁에 다가가 옷자락을 잡아당기며 말했다.“언니, 방금 그 당천도 말이야. 형부가 보낸 것 같아.”설은아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뭔가 말하려고 입을 떼려는 순간 설유아의 말을 들은 최희정이 비아냥거리는 목소리로 끼어들었다.“하 씨 그놈이 전신을 보냈다고? 우리를 보호하라고?”“설유아! 너 도대체 머리에 뭐가 들었길래 그런 생각을 하는 거야?”“그 개자식이 어떻게 전신을 움직이라 마라 할 수 있겠냐고?”“내 추측이 맞다면 아까 그 전신은 분명 용천오가 보낸 게 틀림없어.”“다만 용천오가 워낙 겸손한 사람이라 그와 전신의 관계를 드러내 놓고 싶지 않았던 것뿐이라고.”“서로 모른 척 연기하는 거 안 보였어?”“그렇지 않고서야 용맹하게 사람들을 때려눕히고도 아무 소리 없이 슥 사라질 수 있겠어?”최희정은 확신에 찬
최문성의 말을 듣고 난 하현은 고개를 약간 끄덕이고는 자료를 뒤적이며 말했다.“용천오는 또 뭐야?”최문성은 잠시 핸드폰을 살펴보다가 입을 열었다.“용천오, 대하 10대 최고 가문인 용 씨 집안 직계 제 십삼대 손입니다. 사람들은 그를 용도령이라 부릅니다.”“무성에서는 용 씨 가문 차기 후계자 중 한 명이라고 한다더군요.”“그를 제외한 나머지 두 후보는 용천진과 용천두입니다.”하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그 사람들뿐이야?”최문성이 말했다.“물론 아니죠. 용 씨 가문 문주의 또 다른 신분은 바로 용문 문주입니다.”“용문 문주인 동시에 용 씨 가문 문주인 거죠.”“말하자면 용 씨 가문 중 이 세 사람은 누가 상석에 앉든 간에 가문의 문주가 되면 자동으로 용문의 문주가 되는 겁니다.”“그래서 용 씨 집안 이 세 도련님들이 몇 년 동안 무성에서 이 자리를 놓고 죽기 살기로 싸우고 있습니다.”“그중 용천진이 용문 장로회와 옛 집법당 원로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고 합니다. 용문 서른여섯 지회장 중 절반이 그를 지지하고 있는 셈이죠.”“물론 이 사람들 중 대장님은 포함되지 않습니다.”“용천두는 용 씨 가문 내에 가장 많은 지지를 얻고 있어요. 특히 용 씨 가문 노부인의 총애가 두텁다고 합니다.”“한 마디로 용천진과 용천두는 우열을 가리기 어려운 상태입니다...”하현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그럼 용천오는 어떻게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게 된 거지?”최문성이 입을 열었다.“비즈니스로 그 자리에 올랐죠.”“대장님도 아시겠지만 무성은 특수한 곳입니다. 고원에 위치하여 과거에는 매우 황폐한 땅이었지만 대하가 건국된 후 발전하기 시작했죠.”“하지만 국가의 강력한 지원에도 불구하고 무성의 경제는 별로 좋지 않았습니다. 그곳은 일반적으로 관광업으로 발전한 도시입니다.”“하지만 약 6년 전, 용 씨 가문 용천오가 등장에 단기간에 무성의 많은 중소기업들과 소매상들을 통합하여 무성 상업연맹을 결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
여수혁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하현, 나 여수혁이야! 페낭 무맹 무맹주의 여 씨 가문 사람이라구!”“내 스승님은 남양 무맹 맹주야!”“나한테 당신 같은 사람은 목숨도 아니야!”“당신 지금 이런 행동한 거,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땅바닥에 널브러진 여수혁은 힘겨운 얼굴로 남은 힘을 끌어모아 내뱉었다.“퍽!”“저리 꺼져!”하현은 여수혁을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그러자 여수혁은 벽에 몸을 부딪혔고 입에서는 봇물 터지듯 핏물이 솟구치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배후에 누가 있든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어.”하현은 앞으로 나가 손을 뻗어 여음채의 창백한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당신한테 기회를 주겠어. 잠시 문을 닫고 정리하면서 잘 생각해 봐.”“다음에도 또 이런 일로 사기를 치고 있다는 얘기가 내 귀에 들어오면 정말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땐 인정사정없이 완전히 풍비박산을 만들어 버릴 테니까!”...궁지에 빠진 여음채와 여수혁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하현은 길을 막고 있는 페낭 무맹 제자들을 발로 걷어차고 원가령을 부축하며 양유훤의 차에 올라탔다.양유훤은 사람들을 양 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데려갔고 원가령을 응급실 침대에 눕힌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현, 오늘 밤 가령이 일로 귀찮게 해서 미안해.”“어떻게 된 건지 들어서 잘 알고 있어.”“당신이 없었다면 오늘 밤 가령이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하현이 병원 대기실 소파에 앉자 하이힐을 신은 양유훤이 그에게 다가와 생수 한 병을 건넸다.“당연한 일을 한 걸 가지고 뭐. 마침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야.”하현은 어깨를 으쓱하고 난 뒤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오늘 밤 원가령의 일은 아마 십중팔구 당신을 노리고 한 짓일 거야.”“조심하는 게 좋아.”양유훤도 의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나 때문에 온 게 분명해.”“이번에 내가 천억 대금을 순조롭게 회수해서 적자에 허덕이
”퍽!”여수혁은 무맹 사람이고 남양 무맹의 맹주에게서 수련을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 맹주였다.뼈대 있는 집안 자손이었고 천부적인 재능을 겸비했다.그래서 그가 하현과의 거리가 좁힌 지금 한 번에 몸을 날리자 무서운 기세가 펼쳐졌다.방금 양유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던가!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의 계산대로라면 지금 이 주먹으로 하현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대하 촌놈! 죽어!”여수혁은 섬뜩한 미소로 쏜살같이 덤벼들었다.이런 벼락같은 기세라면 소 한 마리도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광경을 보고 여음채와 부일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수혁의 대담한 기세에 깜짝 놀란 것이다.“양유훤, 봤지?!”“이게 당신이 선택해야 할 남자의 모습이야! 이 정도는 되어야 양 씨 가문 데릴사위가 되지!”“입으로만 떠드는 남자가 무슨 소용있어?”“여수혁 같은 고수를 만나면 바로 무릎을 꿇을 거야!”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비아냥거리는 기색을 띠며 하현을 주제넘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주변 구경꾼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왜 여수혁을 감히 도발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이 모든 게 자업자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장내에 오직 양유훤과 하구봉만이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그들은 모두 하현의 실력을 본 적이 있었다.만약 여수혁 같은 사람 한 명도 수습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하현은 헛수고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퍽퍽퍽퍽!”여수형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온몸을 덜덜 떨며 비명을 질렀다.동시에 하현은 그의 두 손을 짓밟아 부러뜨렸다.“이럴 수가?!”여음채와 부일민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여수혁 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그리고 소위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도 지금은 눈가
그러자 여수혁의 옆에 있던 여음채가 얼굴을 가리고 노기를 띠며 말했다.“하 씨! 당신 뭐가 좋은지 나쁜지 몰라?”“양유훤의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과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살길을 마련해 준 거라고!”“좋게 끝났을 때 그만해야 한다는 것도 몰라? 나중에 얼굴이 찢겨 봐야 아는 거야?”여음채의 마음속에는 불쾌함으로 가득 차올랐다.하현은 계속 자신의 뺨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이빨이 부러지도록 만신창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콧대 높은 여음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하현이 도발하며 여수혁을 추궁하는 것을 보고 여음채는 도저히 화를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그녀가 특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자가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쉽게 살려는 자들이다.양유훤을 믿고 호랑이처럼 위세를 부릴 뿐만 아니라 아주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모습이라니!여음채의 상식으로 어떻게 하현 같은 사람을 여수혁과 동급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운이 좋아서 양유훤의 치마폭에 싸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하현은 벌써 수십 번은 죽었을 것이다.“좋은 게 좋은 거라고?”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잘난 척 기고만장한 여음채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여음채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렇지 않아? 똑똑히 들어. 양 씨 가문의 호가호위만 믿고 설치는 짓,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당신이 정말로 양유훤의 남자인 줄 알아? 당신이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도 된 줄 알아?”“당신이 정말로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해도 여자 치마폭에 싸인 남자가 얼마나 대단하겠어?”여음채는 엄청 호의를 베풀 듯이 호기롭게 훈계를 했다.“당신이 어떤 속셈이 있고 무슨 실력이 있든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하현은 여음채가 하는 말을 더는 듣기 귀찮아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자, 닥쳐! 쓸데없는 소린 그만해!”“재잘재잘 너무 시끄럽군!”“뭐?!”여음채는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입에 차가운 재갈을 물리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
남양 무맹 사람들이 나섰음에도 양유훤은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여수혁의 안색이 일그러졌다.그는 자신이 오늘 하현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하 씨, 오늘은 내가 운이 나빴군. 하지만 아직 기회는 많아!”“능력이 있으면 어디 이 여자가 영원히 당신을 비호하도록 만들어 봐!”“이 여자가 당신을 얼마나 지켜줄 수 있는지 얼마나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그는 하현을 노려보다 냉소를 흘리며 돌아섰다.여음채도 한껏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외지인 남자가 여자한테 기대서 큰소리치는 꼴이라니!세상은 좁아서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법이다.이 남자가 괴로워할 때가 분명 올 것이다!“거기 서!”바로 그때 침묵하고 있던 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순간 하현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강하게 감돌았다.비록 양유훤이 나서서 자신을 비호하도록 가만히 놔두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긴 했지만 하현은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현재 양유훤의 처지를 거의 파악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양유훤의 어깨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하현이 한 걸음 내디디며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하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그들은 하현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다.여수혁 같은 거물이 그를 벌하려는 걸 양유훤이 겨우 구해줬는데 뭘 또 바란단 말인가?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여수혁은 발걸음을 뚝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오늘은 운이 나쁜 걸로 친다고 했는데 뭘 또 바라는 거야?”하현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정말 이렇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돈을 받고도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은 권세로 사람들을 자꾸만 괴롭히려고 해.”“날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내 다리를 부러뜨리고 무릎을 꿇게 만들려고 했어.”“이 모든 것에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