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아...”하현이 막 입을 열려고 했을 때 맞은편에서 갑자기 냉소가 전해졌다.상상 속 설은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아니라 끝 모를 비아냥과 악의에 찬 목소리였다.“하현, 맞지?”“이 뻔뻔한 놈. 분명히 전화할 줄 알았어. 내 진작에 알아봤다구!”“오늘 우리가 습격당한 걸 다 알고 있는 모양이군. 왜?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사람을 보냈다고 직접 알려주려고 전화했어?”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사실이잖습니까?”“야! 네가 언제 그랬어?”“내 앞에서 시치미 뗄 생각하지 마. 나 이미 다 알고 있어!”최희정은 냉소를 연발했다.“그래 해 봐! 아주 오만방자하기가 끝이 없군!”“네가 항성에서 넷째 공주를 모욕했기 때문에 무슨 성전 기사인지 원탁의 기사인지 그들이 날 괴롭히러 왔다는 사실을 누군가가 얘기해 주지 않았더라면 난 완전히 너한테 속아넘어갈 뻔했지 뭐야!”“너 이렇게 쓰레기 같은 사람이었어?”“자기가 밖에서 일을 저질러 놓고 그 피해를 아내한테 뒤집어씌우다니!”“중요한 건 너 때문에 나까지 된통 당했다는 거야!”“잘 들어! 난 진작에 너란 놈의 진면목을 알아봤어. 우릴 보호한답시고 전신이네 병왕이네 그딴 놈들 절대 보내지 마! 알았어?”“허세를 부리고 싶으면 어디 한번 부려 봐! 내가 당장에 네 실체를 다 까발려 줄 거니까!”다짜고짜 퍼붓는 최희정의 말에 하현은 눈밑이 차가워졌고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이 모든 것이 용천오가 장모님께 말한 겁니까?”최희정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뾰로통하게 말했다.“그렇다면 어쩔 건데?”“잘 들어. 적어도 용천오 그 사람은 예의를 차려서 날 아주 깍듯이 대해!”“사건이 발생한 후 30분 만에 그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서 이 일을 조사하고 있어!”“모든 증거와 추측은 차고 넘쳐. 어떻게 해서든 네가 우리 모녀를 죽이려 했다는 걸 증명해 보이고 말 거야!”“그리고 네가 용천오를 알고 있다면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알아야 할 거야!
전화를 끊고 난 하현이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최문성이 공손한 얼굴로 나타났다.“조사는 해 봤어?”최문성이 고개를 끄덕였다.“네. 확인해 보니 그 사람들의 신원이 베일에 가려져 있었고 여러 경로를 통해 그들의 신원을 알아냈지만 이를 입증할 수 있는 강력한 증거를 제시할 수는 없는 실정입니다.”“하지만 그들이 성전 기사단 소속인 것은 확실합니다. 앞장섰던 사람은 아마도 성전 기사일 거구요.”“결과적으로 이번 습격은 99% 넷째 공주가 계획한 것임이 틀림없습니다.”“그녀는 항성과 도성에서 우리한테 대적할 수 없게 되자 형수님 쪽을 위협하려고 했을 겁니다.”“이제 어떻게 할까요?”하현이 일어서며 담담하게 말했다.“역시 넷째 공주의 행동은 내가 예상한 대로군.”“절대 가만히 있을 사람이 아니야.”“겉으로는 잔잔한 호수처럼 미동도 없지만 속으로는 강풍을 동반한 회오리가 몰아치고 있는 사람이지!”“안타깝게도 대하의 피가 절반만 섞여 있어서 그런지 대하의 예의를 전혀 배우지 못했구만.”최문성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그럼 우리는 이제...”하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조용히 말했다.“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는 거지.”“원래 이런 더러운 수법은 쓰기 싫었는데 말이야.”“하지만 남들이 다 뻔뻔스럽게 더러운 수법으로 덤벼드는데 나 혼자 너무 도덕성만 중시하면 안 되지.”“어찌 되었든 상대가 이렇게 나온다면 절대 나도 가만있을 수 없지.”여기까지 말하고 난 뒤 하현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었다.“내가 시킨 건 준비 잘 되어 가? 어때?”전화기 맞은편에서 맑고 서늘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모든 건 다 준비되었어. 딱 하나만 빼고.”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으며 나지막이 말했다.“노국의 내무부에 전화하는 거 알고 있지?”“이런 황실 추문은 일단 그들한테 먼저 던져 주고 난 다음에 해결이 안 되면 그때 만나자고 하면 돼.”...그 시각 태평산 중턱에 있는 별
”극동의 강대국이면 뭐?”넷째 공주의 얼굴에 언짢은 기색이 역력했다.“내가 꼼꼼히 추려봤는데 설은아 주변 쪽 방어가 제일 약했어.”“그리고 우리 말고도 그녀를 죽이려는 세력이 있어. 그들이 우리를 도와줬다고.”“이런데도 우리가 실패할 이유가 뭐 있겠어?”“말도 안 되지!”“게다가 원탁의 기사들은 성전 기사들 중에서도 엄선된 강자들이야!”“그들은 저마다 실력이 쟁쟁하고 모두 최고의 병왕인데 어떻게 놓칠 수 있겠어?”“설은아 하나를 치는 게 뭐 그리 위험한 일이냐구?”넷째 공주의 말에는 분노가 가득 서려 있었다.“다시 연락해서 그들한테 말해. 반드시 죽여야 한다고!”“나한테 좋은 소식 가져오지 않으면 내가 그들에게 본때를 보여 줄 거야!”잘생긴 남자 비서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얼른 핸드폰을 집어들고 재빨리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몇 통의 통화를 한 후 남자 비서는 안색이 어두워진 채 조심스럽게 넷째 공주의 곁으로 다가왔다.“넷째 공주님,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임무는 이미 실패했다고 합니다.”“우리가 보낸 성전 기사들은 전멸했고 팀을 인솔하던 원탁 기사들도 단칼에 찔려 죽었다고 합니다.”“대구 경찰서에서 그들의 신원을 철저히 조사하고 있다고 합니다. 비록 그들이 입국할 때 신원을 여러 번 세탁하긴 했지만 대구 경찰서 쪽에서 신원을 알아내는 건 시간문제라고 생각합니다.”“최대한 빨리 계획을 세우셔야 할 것 같습니다.”“외부에 이 일이 알려지기라도 한다면 넷째 공주님이 이 사람들을 보낸 게 드러날 것입니다.”“그렇게 되면 앞으로 높은 자리에 앉는 데 불리할 게 틀림없습니다.”“어쨌든 지금 국제적으로 극동 강대국인 대하한테 미움을 사고 싶은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겁니다.”“미국이라도 직접 대하를 들어오지 못하고 섬나라를 통해 은밀히 대하와 접촉하지 않습니까?”“만약 우리 노국 황실이 대구 같은 국제 대도시에서 누군가를 습격했다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대하 외교부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입니다. 대하 외
남자 비서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조심스럽게 말했다.“공주님, 큰일이 있을 때마다 침착하셔야 합니다. 그건 공주님이 저희한테 매번 하시던 말씀입니다. 제발 자중하시길 바랍니다...”“찰싹!”넷째 공주는 손바닥을 들어 올려 다시 남자 비서의 뺨을 후려갈겼다.“지금 날 가르치는 거야?”“빨리 꺼져! 명령이야!”“머뭇거리면 거세할 거니까 어서!”남자 비서가 허둥지둥 그 자리를 떠나려는데 갑자기 밖에서 자동차 엔진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곧이어 차가 대문을 들이받는 소리가 들렸다.초목이 무성한 집주변이 갑자기 사람들 목소리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순간 호위병들이 튀어나와 대문 쪽으로 몰려들었다.“개자식! 여기가 어딘지 몰라?”“감히 넷째 공주의 행궁에 와서 행패를 부리다니! 당신들 간덩이가 부었어?”넷째 공주는 어안이 벙벙했다.순간 벌떡 일어선 그녀는 손을 뻗어 탁자 밑에서 총 한 자루를 꺼냈다.“하현 그 자식 일당들이야?”“그렇다면 잘 들어. 명령이야! 보이면 바로 죽여!”넷째 공주는 화가 나서 눈에 보이는 것이 없었다.그도 그럴 것이 하현에게 매번 당하던 참이어서 도저히 분노가 솟구쳐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가장 참을 수 없었던 것은 그녀가 어렵게 데려온 원탁의 기사를 하현 때문에 잃었다는 것이다.이렇게 된 이상 누가 참을 수 있겠는가?!그녀는 지금 온몸에 살기가 들끓어 올랐다.호위대 한 무리는 모두 총을 꺼내 직접 상대를 겨누었다.양측의 분위기는 그야말로 일촉즉발의 팽팽한 긴장감 속에 둘러싸였다.“넷째 공주님, 큰일 났습니다. 하현이 아닙니다!”바로 그때 성전 기사 한 명이 허둥지둥 달려왔다.딱 보아도 안색이 말이 아니었다.“노국 황실 사람들이 왔습니다...”“내무부의 덩컨 후작입니다.”황실 사람?내무부?덩컨 후작?부하들의 보고를 들은 넷째 공주는 넋이 나간 듯했다.내무부와 후작이 감히 자신의 거처를 찾아와 총을 겨누다니?!자신을 해치려고
”넷째 공주님, 오늘 저는 공작대인의 부탁을 받고 여기 온 것입니다.”“황실의 명성, 황실의 권위가 걸린 일이라 공작께서 가문의 휘장도 내려주셨습니다.”덩컨 후작이 말하는 공작대인은 노국 내무부의 장관으로 여왕의 최측근이다.일언이 중천금인, 말 그대로 권위가 높은 사람이다.노국에서의 권위는 총리보다 더 클 가능성도 있다.이런 이유로 넷째 공주는 공작대인이라는 말을 듣자 갑자기 긴장하기 시작했다.그제야 오늘 덩컨 후작이 여기 온 것이 결코 작은 일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챈 것이다.설마 대하가 노국 황실에 대구 사건의 진상을 파헤쳐 달라고 공문을 보낸 건 아니겠지?넷째 공주는 마음에 떠오르는 여러 의혹을 뿌리치고 입을 열었다.“덩컨 후작, 만약 당신이 대구의 사건에 대해 말하고 싶은 거라면 나중에 내가 따로 내무부에 가서 설명하겠어요.”“하지만 그것은 항성과 도성을 제압하기 위한 일종의 계획이었어요. 지금은 따로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대구의 사건이요?”덩컨 후작은 약간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정신을 다잡으며 말했다.“넷째 공주님 걱정하지 마세요. 그 일은 아직 거론할 단계가 아닙니다. 당분간은 공주님께 아무 영향도 미치지 않을 거고요.”“물론 공주님이 만약 일을 저질렀다면 황실을 난처하게 만들지 않도록 가능한 한 빨리 손을 좀 써 주시길 바랍니다.”“오늘 전 황실에서 가장 중요한 명성을 위해서 여기 온 것입니다.”“넷째 공주님이 무슨 짓을 하셨는지 본인이 잘 알고 계시겠죠?”“내무부에 가서 어떻게 설명하실 생각이십니까?”덩컨 후작의 말에 넷째 공주는 눈살을 살짝 찌푸렸다가 목소리를 낮추며 말했다.“무슨 말씀이신지 모르겠군요.”덩컨 후작은 한숨을 내쉬며 암호화된 태블릿 PC를 꺼낸 뒤 ‘휙'하고 넷째 공주 앞에 내던지듯 놓았다.“어제 오후 8시 런셀 최대 신문사 5곳의 헤드라인 사진입니다.”“내무부 쪽에서도 이 헤드라인을 접했고요.”“사진을 본 순간 내무부는 엄청난 돈과 에너지를 들여
”이 사진들, 당신이 제보한 거지?”하현이 웃으며 입을 느물댔다.“네, 맞아요. 앵글이 좀 괜찮았는지 공주님 마음에 드셨는지 모르겠습니다.”“유치하게 이런 짓을 하다니! 이렇게 뉴스에 폭로한다고 해도 내 얼굴에 살짝 먹칠만 할 뿐 나한테 실질적인 피해가 뭐가 있을까?”“하현, 당신도 성인이고 권세가 있는 사람인데 이런 저급한 짓을 하는 건 좀 웃기지 않아?”넷째 공주는 냉소를 연발했다.하현이 참 찌질하다고 생각한 것이다.그녀가 하현의 아내를 공격했다는 사실을 알고 이런 식으로 복수하려 하다니!결국 복수는 제대로 하지도 못하고 이런 잔꾀나 부리다니!정말 찌질한 소인배나 다름없다고 생각했다.“실질적인 피해? 제가 왜 공주님께 실질적인 피해를 주어야 합니까? 뭐 그렇게까지 할 이유가 있겠습니까?”하현은 엷은 미소를 지었다.“게다가 공주님은 황녀이신데 제가 공주님을 죽이면 뭐 하겠습니까?”“노국 황실의 미움이나 된통 받겠지요.”“빅토리아 공주님이 일을 수습하러 절 만나러 오시거나 하겠고요.”“난 넷째 공주님을 건드릴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하지만 그냥 가만히 놔두기도 좀 불쾌하죠. 결국 넷째 공주님은 제 아내를 죽이려 했으니까요.”“그렇다면 전 당신의 심기를 건드릴 수밖에 없죠.”“내일 고귀하신 넷째 공주님이 대하인에게 무릎을 꿇는 영상이 국내외 언론에 퍼질 겁니다.”“아, 걱정은 하지 마세요.”“제가 많은 버전으로 준비해 뒀기 때문에 많은 관심과 호응을 받는다면 바로 다음 버전으로 연달아 폭로해 한 달은 거뜬히 인기를 유지할 수 있을 겁니다.”“이 스캔들이 당신을 계속 옥죄어 결국 모든 기회를 다 잃게 될 거라고 장담할 수 있습니다.”“간단히 말해서 넷째 공주님은 이제 아웃인 겁니다...”“무릎을 꿇은 황녀는 여왕이 될 수 없죠...”계속 옥죈다고?여왕이 될 수 없다고?많은 버전을 준비해 뒀다고?한 달 동안이나 올릴 수 있을 정도로?넷째 공주의 고운 얼굴이 한순간에
덩컨 후작의 뒷모습을 보며 넷째 공주는 폭발하려던 분노를 애써 누르며 냉정을 되찾았다.그녀는 잘 알고 있다.하현에게 손을 쓰지 않는 한 그녀에게 다른 선택은 없다는 것을.그렇지 않으면 하현은 그녀를 가만히 두지 않을 것이다.지금 그녀는 운명을 스스로 인정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다.그러자 넷째 공주는 심호흡을 하고 손을 흔들어 남자 비서를 불러들였다.“하현에게 사람을 보내서 이걸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을 풀어주라고 해.”“그가 원하는 대로 하겠다고.”“부디 그가 자신이 한 말을 지키길 바랄 뿐이야!”...도성, 대구 엔터테인먼트.하현은 서재에서 탁자를 바라보며 이후의 국면에 대해 생각하고 있었다.그때 하수진이 옅은 미소를 띠며 들어왔다.“방금 넷째 공주가 사람을 보내서 대구 엔터테인먼트에 억류되어 있는 사람들을 풀어주라고 했다면서?”“그녀가 움직이기로 한 모양이야.”“당신이 약속을 지켜주길 바라겠지.”하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보아하니 우리 넷째 공주는 이 지경이 되어서도 아직 자신의 찌질함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모양이야. 한 수를 남겨두는 걸 보면.”“무슨 말이야?”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넷째 공주가 항성에 온 가장 큰 목적은 이걸윤을 금의환향하게 하고 나아가 항성을 노국의 품에 다시 안기려는 것이었어.”“이런 일들은 이걸윤 단 한 사람만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야.”“누군가는 천하를 다스려야 하고 누군가는 천하를 지켜야 해.”“간단히 말해서 이걸윤 외에 그녀는 항성에 많은 첩자를 심어 놓은 거지. 대부분 과거 명문가들이겠지.”“그녀가 이 중요한 때에 나와 거래를 한 것은 단지 한 수를 남겨 두기 위해서일 뿐이야.”“심지어 하구천을 죽이는 데 성공하면 그녀는 그 모든 죄를 우리 두 사람한테 뒤집어씌울 거야.”“어쨌든 손을 쓴 사람은 원래 우리 손에 있던 사람이니 그때 가서 우리한테 오물을 뒤집어씌워 씻을 수 없게 만들려는 수작이지.”하수진은 고개를 살
”그놈이 정말 그렇게 말했어?”“아직 풀어줄 준비가 안 됐다고?”넷째 공주는 손에 들고 있던 청화 자기 찻잔을 쥐고 부들부들 떨었다.“네, 그렇습니다.”남자 비서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넷째 공주님, 이제 어떻게 할까요? 각 방면에 있는 사람들을 끌어모아야 할까요?”“점심시간이 이미 지났으니 빨리 하지 않으면 곤란할 수도 있습니다.”넷째 공주는 심호흡을 한 뒤 침착하게 입을 열었다.“당초 이걸윤이 준비했던 플랜 B, 지금도 있어?”남자 비서는 어리둥절해하다가 얼른 말했다.“플랜 B는 계속 준비되어 있었으니 필요하시면 언제든지 쓸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하지만 항성과 도성 상류층 안의 반역자들을 죽이는 데 쓸려고 했었던 건데 지금 써도 큰 문제는 되지 않을까요?”“네가 뭘 알아?”“당장 이 시국을 해결하지 못하면 플랜 B는커녕 플랜 A도 아무 소용없어!”넷째 공주는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져서는 핸드폰을 꺼내 천천히 전화번호를 눌렀다.“여보세요. 하구천?”“당신을 만나 이걸윤을 구출해 내는 방안에 대해 의논하고 싶은데.”전화기 맞은편에서 하구천은 여유로운 표정으로 소파에 누워 담담하게 말했다.“아, 넷째 공주님이시군요.”“도성 대구 엔터테인먼트에 있을 때 이걸윤 그 작자가 나를 쏴서 하마터면 내가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걸 잊으셨나 보군요.”“그것에 대한 대갚음도 아직 안 했는데 나보고 지금 그놈을 구하라고요?”“무슨 농담하시는 겁니까?”하지만 하구천은 지금 누군가에게 빠르게 손짓을 하고 있었다.24시간 대기하는 IT 기술자 몇 명이 빠르게 움직이며 넷째 공주의 핸드폰을 감청하기 시작했고 금세 넷째 공주의 위치를 파악했다.곧이어 넷째 공주가 머무는 별장 주변으로 아주 은밀히 감시 차량 몇 대가 도착했다.소형 드론은 소리 없이 그 주변 상공을 맴돌고 있었다.넷째 공주의 전화를 기다리며 하구천도 나름의 많은 준비를 한 것이 틀림없었다.넷째 공주는 잠시 침묵한 후에야 조용
순간 장천중의 얼굴엔 제대로 영글지 못한 모자란 손자를 향한 한탄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그 후로도 그는 장용호의 얼굴을 계속 때렸다.어느새 장용호은 피범벅이 된 채 얼굴이 볼썽사납게 부풀어 올랐다.장촌중은 장용호의 멱살을 잡고 바로 하현 앞에 내동댕이치며 무릎을 꿇었다.“대사, 용서해 주게.”“내가 잘못 가르쳤네.”“내가 이놈에게 화자결을 알려줬어!”“배움이 부족한 이놈이 자네 앞에서 이런 무례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용서해 주게.”“제발 한 번만 봐줘!”대사?!황보동이든 장용호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장천중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진홍민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라 불리며 대하 풍수계에서 지위가 상당한 만세당 장천중이 하현을 대사라 칭하며 무릎을 꿇을 줄은!이 소식이 금정 전체에 퍼진다면 아마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이놈아, 잘 들어!”“화자결은 하 대사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가르쳐 주신 거야!”이때 장천중은 손을 들어 또다시 장용호의 얼굴을 내리쳤다.장용호는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하현은 내 스승일 뿐만 아니라 네 조상님이나 마찬가지인 분이야!”“넌 지금 조상님에게 대드는 하극상을 보인 거야! 오만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한 거라고! 얼른 용서를 빌어!”장천중은 배움이 모자란 손자가 황보정의 몸을 살피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손자가 목숨을 잃을까 봐 얼른 달려온 것이다.역시나 모자란 자신의 손자는 잘난 척 기고만장해서는 도리어 하현에게 비법을 도둑질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이 광경을 본 장천중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안하무인한 짓을 할 수 있는가?이런 행동을 하면 만세당의 그 수많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거라는 걸 모르
황보정은 온몸이 약간 회복된 듯 보였으나 갑자기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약간의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용호는 이를 보고 매우 흡족해하며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자세를 보였다.“자, 이제 마지막 한 수를 쓰겠습니다.”“화자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거기, 당신은 좀 나가주지. 내가 하는 방법을 몰래 훔쳐볼 생각하지 말고!”“이건 우리 만세당의 독점술이나 마찬가지니까!”“검은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걸 배우면 곤란하지!”말을 마친 뒤 장용호는 팔짱을 낀 채 거만한 자세를 보였다.하현이 떠나지 않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독점술?”하현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흘렸다.“장천중이 알려줬어?”“개자식! 어디서 함부로 내 할아버지 함자를 입에 올리는 거야?”“게다가 우리 독점술을 누가 알려줬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장용호는 하현과 실랑이를 벌였다.“아무튼 간에 난 당신 같은 나쁜 놈은 보고 싶지 않아!”“여기서 당장 꺼져 주지 않으면 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야!”옆에 있던 진홍민도 나서서 장용호의 말을 거들었다.“하현, 당신은 그냥 나쁜 사기꾼일 뿐이야!”“당신이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면 장용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을 거야!”“왜냐하면 당신이 몰래 촬영해서 그 영상을 누구한테 팔지 모르는 일이니까!”“당신 같은 사람이 못 할 짓이 뭐야?”간민효는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이 손을 가로저으며 그녀를 만류했고 이어 장용호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따가 기운을 풀어주려고 마지막 한 수로 침을 놓을 때 꼭 명심해. 반드시 주사 광물을 찍어야 해.”“풀어진 기운은 몸 안에 유입되어야 해. 공중에 함부로 흩어져서는 안 돼.”“그렇지 않으면 황보정은 숨이 막혀서 바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그렇게 되면 당신은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오
장용호는 진홍민의 눈빛을 알아듣고 헛기침을 하며 희미한 미소를 보이다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친한 사이일수록 돈 관계는 확실히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요즘 그런 소문이 들리더라고요.”“누군가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이 집복당을 무료로 준다고요, 사실입니까?”황보동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진홍민을 쳐다본 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당신이 내 손녀를 구해 줄 수만 있다면 이 집복당을 가져도 돼.”“게다가 우리 황보 집안을 잇게 되는 거야.”황보동의 말을 듣고 진홍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장용호, 걱정하지 마. 우리 이모할아버지는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지키는 사람이야!”“그래도 당신이 안심을 못 하겠다면 내가 나서서 보증할게!”“퍽!”황보동은 다른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귀찮아 서가에서 계약서 한 장을 꺼내 장용호 앞에 내던지듯 내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이미 계약서까지 다 준비해 두고 있었어.”“누구라도 내 손녀를 구해 낸다면 바로 이 계약서를 가져갈 수 있어.”진홍민은 흥분된 표정으로 계약서를 얼른 낚아채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았다.“맞아. 이 계약서는 원본이고 유효해. 양측이 여기 서명만 하면 돼.”“좋아요. 황보대사님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모든 걸 다 쏟아 보겠습니다!”“여러분들에게 주역에서 가장 뛰어난 풍수술과 화자결을 보여드리죠!”말을 마치며 장용호는 호탕한 웃음을 보인 뒤 들고 있던 꾸러미에서 은침 한 개와 붉은 주사 광물을 꺼냈다.“우선 황보정의 온몸에 가득 찬 살기를 제거하여 그녀의 몸을 회복시킨 다음 기력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하현은 장용호의 말을 듣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장용호는 바로 은침을 쥐고 소독한 후 약간의 주사 광물을 묻힌 후 천천히 황보정의 눈썹 위에 찍었다.이를 지켜보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작부터 틀렸어.”장용호는 이 말을 듣고 미간
서류 뭉치에는 하현의 사진과 철인도 완벽하게 찍혀 있었다.진홍민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허! 가짜 증명서인 게 틀림없어!”그녀는 냉소를 연발했다.“이모할아버지, 정말로 이 사기꾼을 믿기로 하신 건 아니죠?”“야! 사기 치려고 별짓을 다하는구나!”진홍민의 비아냥거림에 줄곧 입을 열지 않았던 장용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이며 앞으로 나왔다.“황보대사님, 어디서 이런 사기꾼을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요.”“왜 이런 사기꾼을 믿게 된 거예요? 도저히 모르겠어요.”“전 단지 지금 황보정의 상황은 우리 만세당 말고는 절대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실히 말해 두고 싶어요.”황보동은 자신감 넘치는 장용호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유가 뭔가?”“이유요?”장용호는 팔짱을 진 채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주역의 ‘화자결’을 전수받았기 때문이죠.”“세상의 모든 재앙을 다 물리칠 수 있다고요!”‘화자결’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황보동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뭐라고? 주역?”“그럴 리가 없는데. 주역은 오래전에 전수가 끊겼는데.”“자네 날 속일 셈인가?”황보동이 의아한 눈빛으로 몰아붙이자 장용호는 더욱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얼마 전 진정한 고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셨죠. 쉬쉬하며 음성적으로 전해지던 주역의 ‘화자결’을 몽땅 전수해 받았다고요!”“이걸 전수받은 풍수지리사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가 있어요!”여기까지 말한 장용호는 세상을 발아래 둔 사람처럼 기고만장하게 턱을 치켜들었다.“내가 보기엔 황보정은 천기를 누설한 죄로 이런 벌을 받은 거예요!”“내가 그녀를 그 업보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이 말을 듣고 진홍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이모할아버지, 어서 장 대사님을 오라고 하세요!”“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속이거나 하지 않을 거예요!”주역의 화자결?하현은 이를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
진홍민이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자 하현은 그녀를 상대하기조차 싫어졌다.하지만 진홍민은 여전히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하현을 문밖으로 내쫓을 태세를 보였다.그때 황보동이 황급히 그녀를 가로막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홍민아, 진정해. 함부로 이러지 마!”황보정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 나 괜찮아.”“괜찮다니?”“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야!”진홍민은 거만한 얼굴로 황보동의 손을 뿌리치며 하현 앞으로 걸어갔다.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 그녀의 행보는 거셌다.“개자식! 지난번 일은 아직 계산도 안 했어!”“우리 오빠의 일을 다 망쳐 놓고 이제는 감히 내 사촌동생한테까지 손을 쓰려고 해?”“흥! 사는 게 귀찮아?”“퍽!”하현이 손을 쓰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간민효가 갑자기 한 발짝 내디디며 손바닥으로 진홍민을 후려갈겼다.“하현한테 이 무슨 무례한 짓이야! 죽고 싶어?”간민효의 노기 어린 말투와 간 씨 가문이라는 신분에 진홍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간민효를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방금 진홍민의 관심은 온통 하현에게 쏠려 있어서 옆에 있던 간민효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간민효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거친 숨을 씩씩거렸지만 진홍민은 감히 간민효에게 뭐라고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진홍민은 얼굴을 가리고 표독스럽게 말했다.“이모할아버지, 보셨죠?”“감히 내가 한마디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이런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되잖아요?!”지금 진홍민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조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만약 정말로 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한다면?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눈독을 들이던 집을 엄한 놈이 차지하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정말로 이백억 집을
간민효 일행은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회랑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중 무도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하현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체구가 약간 왜소했지만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 묻어났다.자세히 보니 그의 생김새가 장천중과 비슷했다.황보동을 본 젊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안녕하세요.”다만 인사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오만한 기운이 가득 풍겼다.“진홍민, 만세당 사람들을 데려왔구만?”황보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젊은 남자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당신이 장 대사의 손자, 장용호인가?”장용호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황보대사님, 기억력이 아주 좋으십니다. 그저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절 기억하시다니요!”그러자 진홍민이 희미한 미소를 내걸며 입을 열었다.“이모할아버지, 장용호는 정말 좋은 친구예요!”“그는 풍수지리로는 금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예요!”“무엇보다 최근 내공이 훨씬 더 강하고 깊어졌어요!”“내가 정이를 생각해서 특별히 모셔온 사람이라고요.”여기까지 말한 진홍민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이 친구한테 정이를 한번 보라고 해 보세요. 어차피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황보동은 오만한 미소로 당당하게 서 있는 장용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하자면 자네 할아버지가 이미 손을 써 보았다네.”“하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더는 어떻게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네.”“그리고 자네, 할아버지의 재주를 90% 이상을 전수받았다고 해도 아마 내 손녀를 치료할 수는 없을 거야.”황보동은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미 하 대사를 불렀거든.”“하 대사가 나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황보동은 분명 만세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금정 제일의 풍수사라 불리는 장천중은 아무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 집을 산다고요?”황보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황보동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바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아무리 총명한 황보정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반신반의하던 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숨결과 목소리를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 이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제압한 풍수대사라고?무슨 그런 농담을?!하지만 황보정은 평소 도도한 할아버지의 성품으로 봤을 때 하현이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할아버지의 눈에 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황보정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하현은 더 이상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하현이라고 합니다.”황보정은 하현에게 말했다.“하 대사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다만 하 대사님은 절대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저는 천기를 누설해서 이런 벌을 받았어요.”황보정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천기누설? 그래서 벌을 받았다고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부담 느끼지 않으니까요.”황보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그게 무슨 뜻이에요?”하현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이건 업보나 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황보동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대사, 정말 할 수 있겠는가?’예전 같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무당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국내외 내로라하는 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에게 방법이 있다고?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하지만 하현이 조금 전까지 보인 행동으로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
하현의 몇 마디에 모든 문제가 줄줄이 해결되었다.손님들은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서 하현이 자신의 문제도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들이 믿고 떠받들던 황보동은 한켠에 방치되었다.하현은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등을 빠른 속도로 설명하며 근본적인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한 번에 술술 늘어놓았다.다들 놀란 표정으로 하현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문제가 해결되자 감격스러운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하현이 붉은 주사 광물을 가지고 각종 부적을 그려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이웃들은 모두 집복당에 젊은 신선이 왔다고 말하며 달려 나갔다.심지어 일부 아줌마들은 자기 딸이 몇 년 동안 시집도 못 가는 일까지 하현에게 도움을 청하고 나섰다.하현은 한 명 한 명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많은 의견과 해결책들을 제시했다.즉석에서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당사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았다.소위 풍수지리사들이 대부분 이와 같은 일을 한다.이 과정에서 황보동은 옆에서 하현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그는 들으면 들을수록 표정이 엄숙하고 경건해졌다.하현이 하는 말들은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서로 다 알고 지내는 이웃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평소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누구보다 황보동이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침착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황보동의 눈빛은 어느새 그에 대한 경의로 가득 찼다.황보동의 기억 속에 그가 이런 광경을 본 적은 어린 시절뿐이었던 것 같았다.그래서 하현의 모습을 보자 황보동은 아련한 설렘마저 느끼게 되었다.결국 황보동은 자발적으로 책상 옆으로 가서 하현의 조수로 변신해 부적 그리는 것을 도왔다.“하 대사, 당신이 진정한 대사일세!”손님들이 모두 떠난 뒤에야 황보동은 하현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자네는 나를 훨씬 능가하는 재주를 가졌어!”“자네가 이 집복당을 이어간다면 그건 모든 사람들이 복을 얻는 것과 같아!”그의 인생에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