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오늘 당신이 한 말 책임질 수 있냐구요?”“말하기는 쉬워도 거두기는 어렵다는 것쯤 잘 알겠죠.”진소흔은 오만한 표정을 지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당신이 노국 황실을 모욕한 일부터 먼저 해결한 후에 나한테 와서 따져요.”“나처럼 수천만 명이 넘는 팔로워를 거느린 인플루언서가 이런 식당에 와서 식사를 하면 당신 식당의 명성을 크게 높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곳을 인플루언서 체크포인트로도 만들 수 있어요.”“광고료 같은 건 안 받을 테니 넣어둬요.”“식당 좀 차지한 게 뭐 어때서요?”“다른 손님들 좀 막은 게 뭐 어떻다구요?”“어쩔 수 없잖아요. 난 팬이 너무 많으니까요!”“내가 그 사람들을 막지 않으면 손님인 척 가장하고 나한테 와서 사진 좀 찍자고 하고 사인해 달라고 할 텐데 내가 어떻게 밥을 먹겠어요?”“그리고 그 사람들이 내 팬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내가 밥 먹느라 그들을 좀 불편하게 한들 그 조차도 그들한테 나쁠 건 없죠!”“날 볼 수 있다는 건데, 그들의 조상이 아주 많은 은덕을 쌓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알겠어요?”“내가 유명해진 이후 어디서든 이랬어요.”“식사를 하는 건 둘째치고 화장실 가는 것도 항상 조심해야 해요.”“어쨌든 우리 같은 고귀한 인플루언서들의 숙명 같은 거니까 당신이 이해를 하든 하지 않든 상관없지만요!”“내 말 알겠어요?”말을 마친 진소흔은 한껏 고개를 빳빳이 든 채 의기양양했다.하수진은 냉담한 표정으로 말했다.“돈을 내고 미리 대절하는 것이 전제 조건이죠.”“그렇게 못하겠으면 당장 꺼져요.”“그렇지 않으면 당장 당신을 여기서 끌어내고 항성 일간지에 사진을 뿌려 버릴 테니까. 그들이 아주 재미난 헤드라인을 뽑아줄 거예요.”“아무리 그들이 강심장이라 해도 나에 대한 좋지 않은 정보를 감히 폭로하진 못할 거예요.”진소흔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하수진, 당신의 그 알량한 신분이 다른 사람들한테는 먹혔을지 몰라도 나한테는 안 통해요!”
분명 진소흔은 하수진과 이걸윤 사이의 일을 잘 아는 듯 보였다.이영돈이 먼저 항성과 도성에 온 것도 하수진을 굴복시키기 위한 것이었다는 걸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다.진소흔의 눈에는 하수진이 조만간 이걸윤의 노리개가 되어 항도 하 씨 가문 핵심 인물에서 내동댕이쳐질 운명으로 보였다.진소흔은 하수진에게 조금도 두려움을 느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심지어 그녀는 자신이 여기서 하수진에게 충고를 하는 것이 하수진의 체면을 세워 주고 있는 것이라고 여겼다.하수진은 여전히 차가운 표정을 지으며 손목에 있는 시계를 힐끔 보았다.“10초 더 드리죠. 당장 꺼지지 않으면 사람들이 당신을 끌어낼 겁니다.”곧 노리개로 전락할 하수진이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충고를 해 준 공도 모르고 감히 함부로 떠들어대는 것을 보고 진소흔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녀는 하수진을 향해 비아냥거리며 말했다.“내가 당신을 맞받아치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진소흔은 냉소를 흘리며 말을 이었다.“내가 가진 돈과 영향력은 모두 내륙에서 왔어요. 대성그룹이라고요. 대성그룹의 해피톡 플랫폼. 항도 하 씨 가문과는 아무 관계도 없어요.”“그런데 어떻게 당신네 항도 하 씨 가문에서 대구 연예계에 이러쿵저러쿵 개입을 하려고 하죠? 무슨 자격으로?”“항성과 도성에서 위세 좀 떨친다고 당신이 무슨 대단한 능력이라도 있는 줄 알아요?”“내 눈에 하수진 당신은 날 비난할 자격이 조금도 없어요!”“당신이 대성그룹과 무슨 관계가 있지 않다면요!”이때 하현이 진소흔의 말을 반박하며 나섰다.“당신은 노국 사람이잖아? 노국이 당신 뒷배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니야?”“그런데 당신이 싫어하는 대하인이 차린 대성그룹이 당신의 뒷배라니 이게 말이 돼?”이때 하현이 앞으로 한 걸음 나와 진소흔을 바라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띠었다.“야! 허여멀건한 게!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내가 어떤 신분인지 알아?”“해피톡에서 제일 잘나가는 1위 인플루언서야. 대성그룹의 간판스타
하현의 행동을 본 진소흔은 마치 세상에서 가장 웃기는 광경을 본 듯 작은 입을 가리며 말했다.“어이, 당신 아직 잠이 덜 깼지?”“3분 안에 나를 봉쇄해?”“자자, 그래. 무슨 메시지를 보냈는지 한 번 보기나 해?”“연예계에서 완전히 봉쇄된다고?”“아이고, 너무 패기가 넘치는군. 정말 무서워 죽겠어!”“누가 나를 봉쇄할 수 있는지 한번 보자구!”“당신이 보낸 메시지가 날 봉쇄할 수 있다면 난 오늘 당신한테 무릎을 꿇겠어!”진소흔은 낄낄거리며 가소롭다는 듯 웃었다.그녀뿐만 아니라 그녀를 따르는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도 하나같이 비아냥거리는 웃음을 지었다.그들은 모두 연예계 신인들로 항상 진소흔의 곁에서 함께했다.그래서 그들은 노국의 영주권을 가진 진소흔이 연예계에서 얼마나 어마어마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었다.대성그룹이 함부로 진소흔의 비위를 상하게 할 수 없다는 것은 조금 과장이다.하지만 대성그룹이 돈을 벌고 싶다면 진소흔과 척을 질 필요는 없다.그녀는 그룹의 진정한 캐시카우였으니까.특히 최근 그녀의 발언이 인터넷을 뜨겁게 달구고 있었다.연예계에 별로 관심이 없던 사람들, 안티팬이라도 지금은 모두 진소흔에게 관심을 두고 있었다.이런 인물을 대성그룹이 무덤까지 껴안고 가도 모자랄 판에 어떻게 그녀를 봉쇄하겠는가?대성그룹 뒤에는 떡하니 용문이 버티고 있었다!대성그룹이 진소흔을 받치고 있는 한 국내외에서 누가 감히 그녀를 봉쇄할 수 있단 말인가?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들은 하나같이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고 있었다.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들을 많이 만났지만 이렇게 머리가 아플 정도로 꽉 막힌 사람은 처음이었다!시간은 1분 1초가 빠르게 흐르고 있었다.진소흔의 얼굴에는 빈정거리는 웃음이 더욱 짙어졌고 잠시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본 후에야 피식하고 웃으며 입을 열었다.“허풍쟁이 씨, 3분 지났어.”“봉쇄는 어떻게 됐어?”“왜 나한텐 안 보이지?”“잘 들어. 센 척하다가
모두가 경악했다!진소흔을 비롯해 그 자리에 있던 연예계 스타들은 하나같이 충격을 받았다.달랑 메시지 하나뿐이었다.그런데 3분 만에 진소흔이 업계에서 완전히 퇴출당하다니!대성그룹뿐만이 아니었다!해피톡 플랫폼을 포함한 모든 업체들이 진소흔을 완전히 차단한 것이다.간단히 말해서 진소흔은 이제 망했다!그녀가 비록 국내 최고이지만 대하 시장을 떠나면 누가 그녀를 인정하겠는가?대하 시장을 잃었으니 연예계에서는 더 이상 발붙일 수가 없게 된 것이다.어찌 되었건 연예계에는 진소흔 같은 미녀들이 수두룩하다.끝났다!이 생각이 진소흔의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순간 진소흔은 온몸을 부르르 떨며 겨우 입을 열었다.“저기 선생님, 저랑 지금 장난하시는 거죠?”“방금 그 전화들, 다 가짜죠?”하현은 무심하게 툭 내뱉었다.“무릎 꿇어도 돼.”진소흔은 다시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이때 자신의 핸드폰도 미친 듯이 진동했고 몇 통의 전화를 겨우 받은 후 진소흔은 그야말로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그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하현 앞에 털썩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였다.“선생님, 저는 당신이 누구인지 모르지만 사과드리겠습니다.”“모두가 제 잘못입니다.”“다시는 이런 일이 없도록 하겠습니다.”하현은 차가운 미소를 띠며 허리를 숙여 앉아 오른손을 뻗어 진소흔의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당신이 뭘 잘못했는지 알아?”진소흔은 불안하게 눈을 깜빡거리며 더듬거렸다.“서, 선생님한테 대들지 말았어야 했어요.”“대들어?”하현은 입꼬리를 살짝 치켜올리며 말했다.“나한테 대드는 건 별로 큰일이 아니야.”“다시 한번 생각해 봐.”진소흔은 불안한 마음으로 곰곰이 생각해 보았지만 딱히 떠오르지 않아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레스토랑을 점거했기 때문에요?”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이 식당을 점거하든 무례하게 말을 하든 누구에게 대들든 그건 아무 상관없어. 솔직히 말하면 그건 모두 당신의 위
”비록 당신의 파워가 놀랍고 내 신세는 일개 딴따라일 뿐이지만!”“그리고 당신의 말 한마디로 날 퇴출시킬 수 있다고 해도!”“내 뒤에 누군가 있다는 걸 잊지 마!”“당신이 내 체면을 이렇게 짓밟아 버리고 옴짝달싹도 못하게 하는 거 너무하다고 생각하지 않아?”“그리고 세상 일은 언제나 그 운이 돌고 돌아. 올해는 우리 집에 그 운이 도달할 거야!”“세상사는 다 돌고 도는 법이거든!”“훗날 당신들은 오늘 이 일로 반드시 대가를 톡톡히 치르게 될 거야!”지금은 하현을 어떻게 할 수 없다는 걸 진소흔도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어쨌든 그녀는 대스타였다.용서를 빌어도 먹히지 않는다면 어떻게 의기소침한 채 그대로 물러설 수 있겠는가?독설이라도 한 방 날려야 하지 않겠는가?하현은 아무런 표정 없이 말했다.“끌어 내!”이런 사람들을 대할 때 그는 손을 쓰면 쓸수록 자신의 손만 더러워진다고 생각했다.순간 십여 명의 경호원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개자식, 당신들 나한테 손댈 필요 없어!”“내 발로 나갈 거야!”진소흔은 화가 나 일그러진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이 일, 절대 이렇게 끝나지 않을 거야!”“이걸윤에게 똑똑히 말할 거야. 그의 약혼자가 누군가와 함께하고 있다고!”“이걸윤이 당신을 반드시 죽여 버릴 거야!”말을 마친 진소흔은 숨을 헐떡이며 사람들을 데리고 떠날 준비를 했다.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그냥 이렇게 간단하게 갈 수 있다고 생각해?”“식당을 점거한 지도 한참 되었는데 몇 천만 원이라도 줘야지 않겠어?”“당신은 나와 하수진을 모욕했어. 어서 당신 손으로 당신 뺨 열 대를 때려!”“그렇지 않으면 여기서 못 나가!”하현은 빈 공기를 내뱉듯 툭 던졌지만 그의 말속에 희미하게 묻은 살의가 주변의 공기를 얼려버렸다.“짝짝짝짝!”진소흔은 억울하기 짝이 없었지만 지금은 하현에게 반항할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녀는 억울한 표정으로 자신의 뺨을 열 대 때린 후
”밥은 다 먹었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하수진이 와인 잔을 쥐고 입을 열었다.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럴 줄 알았어. 단순한 밥 한 끼로 끝나지 않을 줄 알았다니까.”“왜? 오전 중에 벌써 약혼자의 일을 다 파악하기라도 한 거야?”‘약혼자'라는 세 글자에 하수진의 얼굴에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이어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대충은 짐작이 가.”“우리 이걸윤 선생은 정말이지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야.”“내가 노국에 있는 몇몇 친구들을 통해 확인했는데, 지난 6년 동안 이걸윤이 외부에 드러난 소문만큼 그렇게 조용하게 산 건 아니더라고.”“3년 동안 몇천억 되는 그룹을 직접 만들었대.”“그리고 3년이 더 걸려 지금은 노국의 성전 기사단에 가입해 부단장이 되었어. 아마 전신급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장장 6년이 걸려 노국의 상류층으로 진입한 셈이지.”“노국 황실 후계자 1순위인 빅토리아 공주까지 직접 접견했다고 해!”“저번에는 성전 기사단 사람들이 전투기를 몰고 호위했대!”“그가 도착하는 시간에 항성의 거의 모든 거물들이 마중 나온다고 들었어!”“진정한 왕의 귀환이지!”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어째서 이런 등장이 왠지 낯익지?”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몇 년 전 항성에서 쫓겨났던 어린 왕이 당당한 왕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소설이나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데!”“약혼녀가 버선발로 뛰어가서 그의 허벅지라도 껴안아야 하는 거 아니야?”“그래야 같이 상위로 올라가지?”하수진은 냉소를 날리며 천천히 입을 움직였다.“이걸윤은 대단한 사람이지만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없는 사람이야.”“불과 6년 만에 모든 지위와 권력을 얻었어. 오직 대하에 맞서야겠다는 일념으로 힘을 기른 사람이야!”“대하인이지만 기꺼이 총을 들어 대하를 상대하려 하다니! 이런 사람은 하구천보다 더 지독해!”“그 외에도 그는 몇 년 동안 온갖
왕의 귀환!전신의 귀환!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이 말들은 정말로 이걸윤의 막강함을 방증하는 말이었다.“어떻게 할 생각이야?”하현은 생각에 잠겼다가 먼 수평선을 바라보았다.“지금까지 입수한 자료들을 보면 이걸윤이 돌아온 목적은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것 같아.”“괜찮아. 내 손에는 대단한 카드가 있거든.”하수진은 묘하게 웃으며 하현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나?”하현이 웃었다.“이걸윤과 확실하게 얘기할 게 있긴 하지.”“예를 들어, 대구 엔터테인먼트의 일.”“뭐 그리고 숏폼에서 망신당한 진소흔의 일이라든가.”“다만 내가 손을 쓰기 전에 당신도 확실히 각오해야 할 거야.”“수년 안에 전쟁의 신으로 거듭난 사람이야. 절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고.”하수진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항도 하 씨 가문의 최고 자리에 앉기 전에는 거쳐야 할 관문이었다.하구천의 음모에 대비해 그녀도 나름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던 것이다.그렇지 않고 하현에게 의지해 그가 최전선에서 싸우게 된다면 정말로 하현이 상석을 장악할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펑!”하수진이 이걸윤의 일로 고뇌하고 있을 때 갑자기 식당 입구가 소란스러웠다.그리고 누군가 문을 밀고 들어와 하현과 하수진이 있는 룸을 향해 거침없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하수진의 경호원이 손을 써 보기도 전에 상대는 이미 룸 입구에 들어와 ‘퍽’하고 무릎을 꿇었다.사람들의 시선이 무릎을 꿇은 사람에게 온통 쏠렸다.하현과 하수진은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올렸다.방금 도망치듯 떠났던 진소흔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더 이상의 원망이나 노기가 없었고 그 자리에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미간에는 온갖 두려움과 황망함으로 주름져 있었다.진소흔의 뒤에는 그녀의 매니저와 경호원 몇 명이 있었다.그들도 하나같이 창백하고 핏기 잃은 얼굴로 말없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의아한 눈빛으로
경악할 만한 진소흔의 행동에 많은 구경꾼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어찌 되었건 그녀는 미녀였다.미녀가 곤경에 처하는 것을 보면 동정도 할 법하다.그러나 하현은 언짢은 듯 얼굴을 찡그렸다.진소흔이 자신을 하 선생님이라 칭할 때부터 그는 이미 누군가가 그녀 뒤에서 이런 행동을 코치했음을 알아차렸다.연기하러 온 건가?아니면 울상을 지으며 동정을 바라고 온 건가?“아까 꺼지라고 했잖아. 이미 끝난 일이야.”하수진은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연예계에서 퇴출된 거, 그 누구와도 관계없어. 자업자득이야!”“하현이 아니었더라도 조만간 누구라도 나타나 당신을 봉쇄할 참이었어.”“하 선생님, 아가씨.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진소흔은 두 발을 옮겨 하수진과 하현에게 가까이 다가와 애원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이번에 항성에 온 건 처음으로 콘서트를 열기 위해서였어요. 대하가 처음 콘서트를 여는 곳이라고요. 내 연예계 인생 최고의 순간이에요!”“저에게는 정말 소중한 기회예요!”“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그렇지 않으면 내 앞날이 망쳐지는 것뿐만 아니라 이영돈 선생님이 날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내가 당신들한테 용서를 받지 못하면 그는 아마도 날 죽여버릴 거라구요!”“물론 당신들한테 사과하는 제 마음은 진심이에요. 진심으로 두 분이 절 용서해 주시길 바라고 있어요!”“어찌 되었건 당신들 같은 거물들 눈에는 그저 한낱 딴따라일 뿐이잖아요. 이런 딴따라와 굳이 따질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네?”“이렇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드릴게요!”“집에 돌아가면 당신들의 무병장수를 위해 위패라도 만들어 모실게요!”말을 하는 동안 진소흔은 다시 ‘쿵쿵쿵'하며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했다.게다가 처량하게 울부짖는 그녀의 모습은 진상을 모르는 군중들의 동정심을 자극하기 충분해 보였다.많은 사람들은 하현과 하수진이 너무 사람을 몰아붙인다고
순간 장천중의 얼굴엔 제대로 영글지 못한 모자란 손자를 향한 한탄과 분노가 뒤섞인 표정이 떠올랐다.그 후로도 그는 장용호의 얼굴을 계속 때렸다.어느새 장용호은 피범벅이 된 채 얼굴이 볼썽사납게 부풀어 올랐다.장촌중은 장용호의 멱살을 잡고 바로 하현 앞에 내동댕이치며 무릎을 꿇었다.“대사, 용서해 주게.”“내가 잘못 가르쳤네.”“내가 이놈에게 화자결을 알려줬어!”“배움이 부족한 이놈이 자네 앞에서 이런 무례한 짓을 할 줄은 몰랐어!”“용서해 주게.”“제발 한 번만 봐줘!”대사?!황보동이든 장용호든 그 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은 장천중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서 할 말을 잃고 말았다.진홍민은 자신의 입을 틀어막으며 새어 나오려는 비명을 억지로 밀어 넣었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금정 제일 풍수지리사라 불리며 대하 풍수계에서 지위가 상당한 만세당 장천중이 하현을 대사라 칭하며 무릎을 꿇을 줄은!이 소식이 금정 전체에 퍼진다면 아마 모두들 깜짝 놀랄 것이다.“이놈아, 잘 들어!”“화자결은 하 대사가 나에게 자비를 베풀어 가르쳐 주신 거야!”이때 장천중은 손을 들어 또다시 장용호의 얼굴을 내리쳤다.장용호는 눈앞에서 불꽃이 튀었고 머리가 어질어질했다.“하현은 내 스승일 뿐만 아니라 네 조상님이나 마찬가지인 분이야!”“넌 지금 조상님에게 대드는 하극상을 보인 거야! 오만하기 그지없는 행동을 한 거라고! 얼른 용서를 빌어!”장천중은 배움이 모자란 손자가 황보정의 몸을 살피러 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손자가 목숨을 잃을까 봐 얼른 달려온 것이다.역시나 모자란 자신의 손자는 잘난 척 기고만장해서는 도리어 하현에게 비법을 도둑질했다고 뒤집어 씌우고 있었던 것이다.이 광경을 본 장천중은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것 같았다.정신이 어떻게 되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안하무인한 짓을 할 수 있는가?이런 행동을 하면 만세당의 그 수많은 명성이 하루아침에 무너질 거라는 걸 모르
황보정은 온몸이 약간 회복된 듯 보였으나 갑자기 오돌오돌 떨기 시작했다.약간의 추위를 느끼는 것 같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장용호는 이를 보고 매우 흡족해하며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들어 뭔가 대단한 일을 한 것 같은 자세를 보였다.“자, 이제 마지막 한 수를 쓰겠습니다.”“화자결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거기, 당신은 좀 나가주지. 내가 하는 방법을 몰래 훔쳐볼 생각하지 말고!”“이건 우리 만세당의 독점술이나 마찬가지니까!”“검은 속내를 가진 사람들이 이런 걸 배우면 곤란하지!”말을 마친 뒤 장용호는 팔짱을 낀 채 거만한 자세를 보였다.하현이 떠나지 않으면 손 하나 까딱하지 않겠다는 표시였다.“독점술?”하현은 이 말을 듣고 냉소를 흘렸다.“장천중이 알려줬어?”“개자식! 어디서 함부로 내 할아버지 함자를 입에 올리는 거야?”“게다가 우리 독점술을 누가 알려줬건 당신이랑 무슨 상관이 있어?”장용호는 하현과 실랑이를 벌였다.“아무튼 간에 난 당신 같은 나쁜 놈은 보고 싶지 않아!”“여기서 당장 꺼져 주지 않으면 난 손 하나 까딱하지 않을 거야!”옆에 있던 진홍민도 나서서 장용호의 말을 거들었다.“하현, 당신은 그냥 나쁜 사기꾼일 뿐이야!”“당신이 여기서 지켜보고 있다면 장용호는 손가락 하나 움직이지 않을 거야!”“왜냐하면 당신이 몰래 촬영해서 그 영상을 누구한테 팔지 모르는 일이니까!”“당신 같은 사람이 못 할 짓이 뭐야?”간민효는 불쾌한 듯 얼굴을 찡그리며 뭐라고 말을 하려고 했다.하지만 하현이 손을 가로저으며 그녀를 만류했고 이어 장용호를 향해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이따가 기운을 풀어주려고 마지막 한 수로 침을 놓을 때 꼭 명심해. 반드시 주사 광물을 찍어야 해.”“풀어진 기운은 몸 안에 유입되어야 해. 공중에 함부로 흩어져서는 안 돼.”“그렇지 않으면 황보정은 숨이 막혀서 바로 목숨을 잃을지도 몰라.”“그렇게 되면 당신은 사람을 구하기는커녕 오
장용호는 진홍민의 눈빛을 알아듣고 헛기침을 하며 희미한 미소를 보이다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친한 사이일수록 돈 관계는 확실히 하라는 말이 있습니다.”“요즘 그런 소문이 들리더라고요.”“누군가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해 준다면 이 집복당을 무료로 준다고요, 사실입니까?”황보동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진홍민을 쳐다본 뒤 흔들림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맞아, 당신이 내 손녀를 구해 줄 수만 있다면 이 집복당을 가져도 돼.”“게다가 우리 황보 집안을 잇게 되는 거야.”황보동의 말을 듣고 진홍민은 정신이 번쩍 들었고 옅은 미소를 띠며 말했다.“장용호, 걱정하지 마. 우리 이모할아버지는 한번 내뱉은 말은 절대로 지키는 사람이야!”“그래도 당신이 안심을 못 하겠다면 내가 나서서 보증할게!”“퍽!”황보동은 다른 쓸데없는 말을 늘어놓기 귀찮아 서가에서 계약서 한 장을 꺼내 장용호 앞에 내던지듯 내놓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이미 계약서까지 다 준비해 두고 있었어.”“누구라도 내 손녀를 구해 낸다면 바로 이 계약서를 가져갈 수 있어.”진홍민은 흥분된 표정으로 계약서를 얼른 낚아채 눈을 반짝이며 살펴보았다.“맞아. 이 계약서는 원본이고 유효해. 양측이 여기 서명만 하면 돼.”“좋아요. 황보대사님이 이렇게 성의를 보이시니 저도 모든 걸 다 쏟아 보겠습니다!”“여러분들에게 주역에서 가장 뛰어난 풍수술과 화자결을 보여드리죠!”말을 마치며 장용호는 호탕한 웃음을 보인 뒤 들고 있던 꾸러미에서 은침 한 개와 붉은 주사 광물을 꺼냈다.“우선 황보정의 온몸에 가득 찬 살기를 제거하여 그녀의 몸을 회복시킨 다음 기력을 보충하도록 하겠습니다.”하현은 장용호의 말을 듣고 흥미로운 눈빛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러자 장용호는 바로 은침을 쥐고 소독한 후 약간의 주사 광물을 묻힌 후 천천히 황보정의 눈썹 위에 찍었다.이를 지켜보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시작부터 틀렸어.”장용호는 이 말을 듣고 미간
서류 뭉치에는 하현의 사진과 철인도 완벽하게 찍혀 있었다.진홍민은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허! 가짜 증명서인 게 틀림없어!”그녀는 냉소를 연발했다.“이모할아버지, 정말로 이 사기꾼을 믿기로 하신 건 아니죠?”“야! 사기 치려고 별짓을 다하는구나!”진홍민의 비아냥거림에 줄곧 입을 열지 않았던 장용호가 자신만만한 미소를 보이며 앞으로 나왔다.“황보대사님, 어디서 이런 사기꾼을 찾아왔는지 모르겠지만요.”“왜 이런 사기꾼을 믿게 된 거예요? 도저히 모르겠어요.”“전 단지 지금 황보정의 상황은 우리 만세당 말고는 절대로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실히 말해 두고 싶어요.”황보동은 자신감 넘치는 장용호의 모습을 보며 입을 열었다.“이유가 뭔가?”“이유요?”장용호는 팔짱을 진 채 도도한 표정으로 말했다.“난 주역의 ‘화자결’을 전수받았기 때문이죠.”“세상의 모든 재앙을 다 물리칠 수 있다고요!”‘화자결’이라는 세 글자를 듣고 황보동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뭐라고? 주역?”“그럴 리가 없는데. 주역은 오래전에 전수가 끊겼는데.”“자네 날 속일 셈인가?”황보동이 의아한 눈빛으로 몰아붙이자 장용호는 더욱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말했다.“우리 할아버지는 얼마 전 진정한 고수에게서 가르침을 받으셨죠. 쉬쉬하며 음성적으로 전해지던 주역의 ‘화자결’을 몽땅 전수해 받았다고요!”“이걸 전수받은 풍수지리사는 죽은 사람도 살릴 수가 있어요!”여기까지 말한 장용호는 세상을 발아래 둔 사람처럼 기고만장하게 턱을 치켜들었다.“내가 보기엔 황보정은 천기를 누설한 죄로 이런 벌을 받은 거예요!”“내가 그녀를 그 업보에서 벗어나게 해 주면 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입니다.”이 말을 듣고 진홍민이 재빨리 끼어들었다.“이모할아버지, 어서 장 대사님을 오라고 하세요!”“그는 명문가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절대로 남을 속이거나 하지 않을 거예요!”주역의 화자결?하현은 이를 듣고 어이가 없다는 듯 헛
진홍민이 적반하장의 자세를 보이자 하현은 그녀를 상대하기조차 싫어졌다.하지만 진홍민은 여전히 기고만장한 모습으로 하현을 문밖으로 내쫓을 태세를 보였다.그때 황보동이 황급히 그녀를 가로막고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홍민아, 진정해. 함부로 이러지 마!”황보정도 희미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언니, 나 괜찮아.”“괜찮다니?”“마침 내가 왔기에 망정이지 내가 아니었다면 넌 이미 죽은 목숨이 되었을 거야!”진홍민은 거만한 얼굴로 황보동의 손을 뿌리치며 하현 앞으로 걸어갔다.뺨이라도 한 대 때릴 듯 그녀의 행보는 거셌다.“개자식! 지난번 일은 아직 계산도 안 했어!”“우리 오빠의 일을 다 망쳐 놓고 이제는 감히 내 사촌동생한테까지 손을 쓰려고 해?”“흥! 사는 게 귀찮아?”“퍽!”하현이 손을 쓰기도 전에 옆에 있던 간민효가 갑자기 한 발짝 내디디며 손바닥으로 진홍민을 후려갈겼다.“하현한테 이 무슨 무례한 짓이야! 죽고 싶어?”간민효의 노기 어린 말투와 간 씨 가문이라는 신분에 진홍민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분명 간민효를 잘 알고 있는 게 틀림없었다.방금 진홍민의 관심은 온통 하현에게 쏠려 있어서 옆에 있던 간민효의 존재를 발견하지 못했다.간민효가 왜 거기에 있었는지 영문을 알 수 없어 거친 숨을 씩씩거렸지만 진홍민은 감히 간민효에게 뭐라고 대거리를 할 수가 없었다.진홍민은 얼굴을 가리고 표독스럽게 말했다.“이모할아버지, 보셨죠?”“감히 내가 한마디했다고 사람을 때리다니!”“이런 사람을 가만히 두면 안 되잖아요?!”지금 진홍민의 마음은 말할 수 없이 초조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까 봐 걱정되어서 그런 게 아니다.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할까 봐 두려운 것이다.만약 정말로 하현이 황보정의 문제를 해결한다면?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눈독을 들이던 집을 엄한 놈이 차지하면 그녀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하현이 정말로 이백억 집을
간민효 일행은 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이 회랑에서 걸어오는 것을 보았다.화려한 옷을 입은 남녀들 중 무도복을 말끔하게 차려입은 남자가 선두에 서 있는 것이 하현의 눈에 들어왔다.남자는 체구가 약간 왜소했지만 얼굴에는 자신만만함이 가득 묻어났다.자세히 보니 그의 생김새가 장천중과 비슷했다.황보동을 본 젊은 남자는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황보대사님, 안녕하세요.”다만 인사를 하는 그의 표정에는 오만한 기운이 가득 풍겼다.“진홍민, 만세당 사람들을 데려왔구만?”황보동은 눈을 가늘게 뜨고 이 젊은 남자를 잠시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입을 열었다.“당신이 장 대사의 손자, 장용호인가?”장용호는 미소를 지으며 담담하게 말했다.“황보대사님, 기억력이 아주 좋으십니다. 그저 몇 년 전에 우연히 만났을 뿐인데 절 기억하시다니요!”그러자 진홍민이 희미한 미소를 내걸며 입을 열었다.“이모할아버지, 장용호는 정말 좋은 친구예요!”“그는 풍수지리로는 금정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대단한 실력자예요!”“무엇보다 최근 내공이 훨씬 더 강하고 깊어졌어요!”“내가 정이를 생각해서 특별히 모셔온 사람이라고요.”여기까지 말한 진홍민의 눈동자에 의미심장한 빛이 스치고 지나갔다.“이 친구한테 정이를 한번 보라고 해 보세요. 어차피 지금은 다른 방법도 없잖아요?”황보동은 오만한 미소로 당당하게 서 있는 장용호를 바라보며 말했다.“솔직히 말하자면 자네 할아버지가 이미 손을 써 보았다네.”“하지만 실력이 모자라서 더는 어떻게 할 수 있다며 스스로의 부족함을 인정했네.”“그리고 자네, 할아버지의 재주를 90% 이상을 전수받았다고 해도 아마 내 손녀를 치료할 수는 없을 거야.”황보동은 자신감에 가득 찬 눈빛으로 말을 이었다.“내가 이미 하 대사를 불렀거든.”“하 대사가 나서면 모든 게 다 해결될 거야.”황보동은 분명 만세당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듯했다.금정 제일의 풍수사라 불리는 장천중은 아무것도
”돈 한 푼 안 들이고 우리 집을 산다고요?”황보정은 약간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할아버지, 그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이에요?”황보동은 쓸데없는 말은 집어치우고 바로 좀 전에 있었던 일을 말했다.아무리 총명한 황보정이라고 해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반신반의하던 그녀는 하현의 얼굴을 볼 수는 없지만 그의 숨결과 목소리를 들어 보면 어떤 사람인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 이 젊은 남자가 할아버지를 제압한 풍수대사라고?무슨 그런 농담을?!하지만 황보정은 평소 도도한 할아버지의 성품으로 봤을 때 하현이 정말 능력이 뛰어나지 않았더라면 절대 할아버지의 눈에 들었을 리가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이런 생각이 스치자 황보정의 표정이 변하기 시작했다.하현은 더 이상 가타부타 설명하지 않고 미소를 지으며 손을 내밀었다.“안녕하세요. 하현이라고 합니다.”황보정은 하현에게 말했다.“하 대사님을 알게 되어 기쁩니다.”“다만 하 대사님은 절대 부담 가지지 마세요. 전 이미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으니까요.”“저는 천기를 누설해서 이런 벌을 받았어요.”황보정은 자신의 상황을 잘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천기누설? 그래서 벌을 받았다고요?”하현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담담하게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절대 부담 느끼지 않으니까요.”황보정은 잠시 할 말을 잃은 듯 뜸을 들였다가 입을 열었다.“하현, 그게 무슨 뜻이에요?”하현은 온화한 얼굴로 말했다.“그러니까 내 말은 이건 업보나 벌이 아니라는 거예요. 내가 해결할 수 있다는 거죠.”황보동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얼떨떨한 표정으로 말했다.“하 대사, 정말 할 수 있겠는가?’예전 같았으면 절대 믿지 않았을 것이다.심지어 무당이 아닌가 의심했을 것이다.국내외 내로라하는 대사들에게 조언을 구했지만 결과는 처참할 정도로 속수무책이었다.그런데 하현에게 방법이 있다고?이게 정말 가능한 일인가?하지만 하현이 조금 전까지 보인 행동으로
집복당 후원과 앞뜰을 잇는 긴 회랑.회랑 양옆에는 연못이 있었고 연꽃 사이를 숨바꼭질하는 금붕어들이 평화롭게 헤엄치고 있었다.이곳은 비록 오래되었지만 유명한 정원과도 맞먹는 유려한 풍광과 격조가 느껴졌다.아름드리나무가 테두리를 따뜻하게 감싸고 있었고 연못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작은 다리,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고즈넉한 정자, 단단한 선비의 기상이 넘치는 바위 정원, 그 사이를 유유히 유람하는 맑고 고요한 물줄기.더운 여름에도 이곳에서는 상쾌하고 서늘한 바람이 일렁거려서 무릉도원과도 같은 편안함을 느낄 수 있었다.가운데 있는 정자에는 흰색 긴 치마를 입고 단정하게 하나로 머리를 묶은 화장기 없는 여자가 있었다.그녀는 손에 나침반을 들고 있었는데 뭔가를 골똘히 생각하는 모습이었다.그녀의 곁에는 오래된 죽간이 있었는데 그 위에는 촉감으로 글을 읽을 수 있도록 칼로 빼곡하게 글자를 새겨 놓았다.눈이 멀고 온몸에 힘이 빠져도 글과 그림을 향한 열정은 조금도 사그라들지 않은 것 같았다.이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하현의 눈에서는 절로 뜨거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요즘 젊은 여자들 대부분은 겉모습을 꾸미는 데에만 혈안이 되어 있어서 미인이란 미인은 도처에 널렸다.하지만 이렇게 기품 있고 우아한 여자는 찾기 어렵다.“할아버지, 정말 우리 집복당을 팔 생각이세요?”발자국 소리를 들은 듯 뭔가를 눈치챈 황보정이 한숨을 내쉬며 어두운 표정을 말했다.“저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 천기를 누설한 업보로 이렇게 된 거라고 말했잖아요?”“조상님들이 물러주신 이 집복당을 판다고 해도 내 병을 고쳐줄 사람을 구할 수 없어요. 다 헛수고라고요.”“그러니까 할아버지, 나중에 죽어서 조상님 뵐 낯도 없어서 전전긍긍하시지 말고 이쯤에서 그만두세요. 제발 부탁이에요.”황보정은 글과 그림에 대한 열정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가장 중요한 착한 마음씨와 효를 심성에 장착하고 있었다.그래서 하현은 그녀를 더욱 좋아하게 되었다.“정아, 넌 내 하나밖에
하현의 몇 마디에 모든 문제가 줄줄이 해결되었다.손님들은 갑자기 우르르 몰려와서 하현이 자신의 문제도 해결해 주기를 바라고 있었다.그들이 믿고 떠받들던 황보동은 한켠에 방치되었다.하현은 그들이 어떤 어려움을 겪었는지 등을 빠른 속도로 설명하며 근본적인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한 번에 술술 늘어놓았다.다들 놀란 표정으로 하현의 말을 주의 깊게 들었고 문제가 해결되자 감격스러운 얼굴로 자리를 떠났다.놀라운 것은 이 모든 과정에서 하현이 붉은 주사 광물을 가지고 각종 부적을 그려 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이다.이웃들은 모두 집복당에 젊은 신선이 왔다고 말하며 달려 나갔다.심지어 일부 아줌마들은 자기 딸이 몇 년 동안 시집도 못 가는 일까지 하현에게 도움을 청하고 나섰다.하현은 한 명 한 명 침착하게 대응하면서 많은 의견과 해결책들을 제시했다.즉석에서 해결되지는 않더라도 당사자에게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도 많았다.소위 풍수지리사들이 대부분 이와 같은 일을 한다.이 과정에서 황보동은 옆에서 하현이 하는 말을 잠자코 듣고 있었다.그는 들으면 들을수록 표정이 엄숙하고 경건해졌다.하현이 하는 말들은 그저 놀라움의 연속이었다.서로 다 알고 지내는 이웃들이었기 때문에 그들이 평소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 누구보다 황보동이 잘 알고 있었다.하현이 침착하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고 황보동의 눈빛은 어느새 그에 대한 경의로 가득 찼다.황보동의 기억 속에 그가 이런 광경을 본 적은 어린 시절뿐이었던 것 같았다.그래서 하현의 모습을 보자 황보동은 아련한 설렘마저 느끼게 되었다.결국 황보동은 자발적으로 책상 옆으로 가서 하현의 조수로 변신해 부적 그리는 것을 도왔다.“하 대사, 당신이 진정한 대사일세!”손님들이 모두 떠난 뒤에야 황보동은 하현에게 다가와 공손하게 두 손을 모아 인사했다.“자네는 나를 훨씬 능가하는 재주를 가졌어!”“자네가 이 집복당을 이어간다면 그건 모든 사람들이 복을 얻는 것과 같아!”그의 인생에서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