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다 먹었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하수진이 와인 잔을 쥐고 입을 열었다.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럴 줄 알았어. 단순한 밥 한 끼로 끝나지 않을 줄 알았다니까.”“왜? 오전 중에 벌써 약혼자의 일을 다 파악하기라도 한 거야?”‘약혼자'라는 세 글자에 하수진의 얼굴에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이어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대충은 짐작이 가.”“우리 이걸윤 선생은 정말이지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야.”“내가 노국에 있는 몇몇 친구들을 통해 확인했는데, 지난 6년 동안 이걸윤이 외부에 드러난 소문만큼 그렇게 조용하게 산 건 아니더라고.”“3년 동안 몇천억 되는 그룹을 직접 만들었대.”“그리고 3년이 더 걸려 지금은 노국의 성전 기사단에 가입해 부단장이 되었어. 아마 전신급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장장 6년이 걸려 노국의 상류층으로 진입한 셈이지.”“노국 황실 후계자 1순위인 빅토리아 공주까지 직접 접견했다고 해!”“저번에는 성전 기사단 사람들이 전투기를 몰고 호위했대!”“그가 도착하는 시간에 항성의 거의 모든 거물들이 마중 나온다고 들었어!”“진정한 왕의 귀환이지!”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어째서 이런 등장이 왠지 낯익지?”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몇 년 전 항성에서 쫓겨났던 어린 왕이 당당한 왕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소설이나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데!”“약혼녀가 버선발로 뛰어가서 그의 허벅지라도 껴안아야 하는 거 아니야?”“그래야 같이 상위로 올라가지?”하수진은 냉소를 날리며 천천히 입을 움직였다.“이걸윤은 대단한 사람이지만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없는 사람이야.”“불과 6년 만에 모든 지위와 권력을 얻었어. 오직 대하에 맞서야겠다는 일념으로 힘을 기른 사람이야!”“대하인이지만 기꺼이 총을 들어 대하를 상대하려 하다니! 이런 사람은 하구천보다 더 지독해!”“그 외에도 그는 몇 년 동안 온갖
왕의 귀환!전신의 귀환!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이 말들은 정말로 이걸윤의 막강함을 방증하는 말이었다.“어떻게 할 생각이야?”하현은 생각에 잠겼다가 먼 수평선을 바라보았다.“지금까지 입수한 자료들을 보면 이걸윤이 돌아온 목적은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것 같아.”“괜찮아. 내 손에는 대단한 카드가 있거든.”하수진은 묘하게 웃으며 하현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나?”하현이 웃었다.“이걸윤과 확실하게 얘기할 게 있긴 하지.”“예를 들어, 대구 엔터테인먼트의 일.”“뭐 그리고 숏폼에서 망신당한 진소흔의 일이라든가.”“다만 내가 손을 쓰기 전에 당신도 확실히 각오해야 할 거야.”“수년 안에 전쟁의 신으로 거듭난 사람이야. 절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고.”하수진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항도 하 씨 가문의 최고 자리에 앉기 전에는 거쳐야 할 관문이었다.하구천의 음모에 대비해 그녀도 나름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던 것이다.그렇지 않고 하현에게 의지해 그가 최전선에서 싸우게 된다면 정말로 하현이 상석을 장악할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펑!”하수진이 이걸윤의 일로 고뇌하고 있을 때 갑자기 식당 입구가 소란스러웠다.그리고 누군가 문을 밀고 들어와 하현과 하수진이 있는 룸을 향해 거침없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하수진의 경호원이 손을 써 보기도 전에 상대는 이미 룸 입구에 들어와 ‘퍽’하고 무릎을 꿇었다.사람들의 시선이 무릎을 꿇은 사람에게 온통 쏠렸다.하현과 하수진은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올렸다.방금 도망치듯 떠났던 진소흔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더 이상의 원망이나 노기가 없었고 그 자리에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미간에는 온갖 두려움과 황망함으로 주름져 있었다.진소흔의 뒤에는 그녀의 매니저와 경호원 몇 명이 있었다.그들도 하나같이 창백하고 핏기 잃은 얼굴로 말없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의아한 눈빛으로
경악할 만한 진소흔의 행동에 많은 구경꾼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어찌 되었건 그녀는 미녀였다.미녀가 곤경에 처하는 것을 보면 동정도 할 법하다.그러나 하현은 언짢은 듯 얼굴을 찡그렸다.진소흔이 자신을 하 선생님이라 칭할 때부터 그는 이미 누군가가 그녀 뒤에서 이런 행동을 코치했음을 알아차렸다.연기하러 온 건가?아니면 울상을 지으며 동정을 바라고 온 건가?“아까 꺼지라고 했잖아. 이미 끝난 일이야.”하수진은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연예계에서 퇴출된 거, 그 누구와도 관계없어. 자업자득이야!”“하현이 아니었더라도 조만간 누구라도 나타나 당신을 봉쇄할 참이었어.”“하 선생님, 아가씨.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진소흔은 두 발을 옮겨 하수진과 하현에게 가까이 다가와 애원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이번에 항성에 온 건 처음으로 콘서트를 열기 위해서였어요. 대하가 처음 콘서트를 여는 곳이라고요. 내 연예계 인생 최고의 순간이에요!”“저에게는 정말 소중한 기회예요!”“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그렇지 않으면 내 앞날이 망쳐지는 것뿐만 아니라 이영돈 선생님이 날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내가 당신들한테 용서를 받지 못하면 그는 아마도 날 죽여버릴 거라구요!”“물론 당신들한테 사과하는 제 마음은 진심이에요. 진심으로 두 분이 절 용서해 주시길 바라고 있어요!”“어찌 되었건 당신들 같은 거물들 눈에는 그저 한낱 딴따라일 뿐이잖아요. 이런 딴따라와 굳이 따질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네?”“이렇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드릴게요!”“집에 돌아가면 당신들의 무병장수를 위해 위패라도 만들어 모실게요!”말을 하는 동안 진소흔은 다시 ‘쿵쿵쿵'하며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했다.게다가 처량하게 울부짖는 그녀의 모습은 진상을 모르는 군중들의 동정심을 자극하기 충분해 보였다.많은 사람들은 하현과 하수진이 너무 사람을 몰아붙인다고
경호원이 몸을 붙잡자 진소흔은 몸부림치며 애원 섞인 목소리로 울부짖었다.“한 번만 봐주세요.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봐주세요!”“잘못했어요. 정말 잘못했어요!”진소흔이 애원하기 시작하자 매니저와 그녀를 따르던 사람들도 덩달아 울부짖기 시작했다.진상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진소흔이 남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끌려가는 줄 알 것이다.진소흔 무리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하수진은 비로소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이 여자도 참 보통 인물은 아니야. 처음에는 그렇게 당당하고 의기양양하게 콧대를 세우더니 지금은 스스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다니.”“뻗을 땐 뻗더라도 굽힐 때는 확실히 넙죽 엎드리는 걸.”“꼭 그렇지만은 않아.”하현이 일어서며 문쪽으로 향했다.“내가 나가 볼게.”말을 하는 사이 하현의 몸은 어느새 문밖으로 사라졌다.하수진은 의아한 듯 미간에 살짝 주름을 지었고 생각에 잠긴 눈동자에 뜻 모를 빛이 스쳐 지나갔다....빅토리아 항 광장에 버려진 진소흔은 식당 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었다.그녀는 하염없이 비를 맞으며 여전히 하늘을 찌를 듯 울부짖으며 땅을 쳤다.용서해 달라는 말이 빗속을 뚫고 하수진에게 닿기라도 바라는 듯 소리쳐 용서를 빌었다.이 장면을 본 지나가는 행인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그중 몇몇은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진소흔의 유명세는 아주 대단했으므로 이 영상은 업로드되자마자 바로 핫이슈가 되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항도 하 씨 가문 하수진이 진소흔을 제압했다는 소문이 빠른 속도로 돌았다.특히 동영상 속에 팩트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외모를 장착한 진소흔을 동정하기 시작했다.어찌 되었건 네티즌들의 기억력은 3분짜리다.진소흔의 동영상이 업로드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를 비하하며 서양을 찬양했던 사실을 깡그리 잊어버렸다.눈앞의 이 연극은 더욱 흥미진진하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순식
잘생긴 남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진소흔, 잘했어. 이번에 고생했어!”“이 선생님, 별말씀을요. 당신을 위해, 그리고 이걸윤 선생님을 위해 일하게 되어 제가 영광이죠!”진소흔은 수줍은 표정으로 말했다.“하현과 하수진이 감히 날 이렇게 괴롭히고 게다가 대하에서 내 입지를 봉쇄시키다니.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게 뭔지 꼭 보여줄 거예요!”“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요. 왜 내게 하현보다 하수진을 겨냥하라고 말씀하신 거예요?”“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번에 날 SNS에서 퇴출시킨 사람은 내륙에서 온 하현이라는 작자일 텐데 말이에요!”“우리는 그 사람을 겨냥했어야 해요!”진소흔은 자신이 한 짓이 하수진 쪽을 골치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지만 그보다 하현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것이다.그녀는 자신의 인기로 해피톡 플랫폼이 떴다고 자부했다.그녀가 없었다면 오늘날 대하 연예계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대성그룹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진소흔은 누구보다 하현에게 복수하고 싶었다.“일에도 순서가 있어. 차근차근 진행해야지. 우선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들을 충돌없이 처리해야 하는 거라고.”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이영돈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하현이라는 사람의 속내를 내가 대충 짐작해 보았어. 그는 상대하기 쉽지 않은 인물이야.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에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그가 아니라는 거야!”“이번에 우리가 항성에 온 첫번째 목표는 하수진과 항도 하 씨 가문이야.”“하수진을 항도 하 씨 가문의 핵심에서 몰아내야만 해. 그렇게 된다면 그녀는 이 소주의 여자가 될 수밖에 없어.”“그 여자를 해결하고 나면 콧대가 센 하구천을 해결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을 거야.”“이 소주의 능력으로 하수진을 이용하여 항도 하 씨 가문을 통제한다면 항성과 도성의 왕이 되는 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니까!”“그때가 되면 이 소주가 당신의 든든한 뒷배가 될 테니 당신이 누구를 괴롭히든 복
”이러다간 며칠 뒤면 정말 카지노를 손에 넣게 되겠는 걸요.”진소흔은 설레발을 치며 이영돈의 어깨를 감싸주었다.이 남자는 정말 대단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항성과 도성에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완전히 판세를 몰아붙이다니 정말 수완이 대단한 남자다.도성 화 씨 가문을 무너뜨리려 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항도 하 씨 가문에 불을 지르려는 것이다.진정한 남자라면 무릇 이래야지!이영돈은 덤덤하게 말했다.“도성 화 씨 가문은 이 소주가 깔아뭉개려고 했던 집안이야.”“하지만 이 소주가 말하기를 화 씨 가문을 상대할 때는 도박판에서 완전히 그들을 탄복하게 해서 어쩔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어.”“그러니 대구 엔터테인먼트라는 카지노는 시작에 불과해.”“난 화 씨 집안이 그들의 손에 가진 카지노와 재산을 순순히 다 내놓게 만들 거야.”“그래야 재미있거든.”진소흔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 선생님 오늘 밤에도 깡그리 다 무찔러 버릴 거죠?”“나도 가서 그 좋은 구경 좀 하면 안 돼요?”“오늘 밤? 아니. 오늘은 그러지 않으려고.”이영돈은 희미한 눈빛으로 말했다.“어젯밤 도박왕 화풍성이 SNS에 떠들썩하게 발표했어”“지금 그 집안은 온통 적개심으로 불타오르고 있겠지!”“오늘이 그들의 사기가 가장 충천할 때라고 할 수 있는 거야.”“다만 사기라는 건 처음에는 단숨에 치고 올라갔다가 그다음엔 쇠퇴했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지.”“난 삼일 동안 그들을 내버려둘 거야. 그리고 삼일 후에 그들과 생사를 건 한 판을 벌일 생각이야!”“이번에는 반드시 그들에게 이기고 지는 게 어떤 건지 알려주고야 말겠어!”“삼일 후면 대구 엔터테인먼트의 카지노가 완전히 내 손에 넘어오는 거지!”“그 모습을 보여주려고 당신을 초대했는데 당신이 하프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네.”이영돈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진소흔에게 과일을 집어 주며 그녀를 달콤하게 했다.“단판 승부!”진소흔이 감탄하며 놀라워했다.
이영돈은 빙긋 웃으며 진소흔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진소흔, 당신 역시 인물은 인물이야.”“당신 같은 사람은 딴따라가 아니라 이 소주의 핵심 측근으로 들어가 진정한 여전사가 되어야 해!”“바다에 뛰어드는 시늉이라니, 난 생각지도 못했어.”“그런데 당신은 그런 방법을 생각해낸 거지!”“좋은 방법이야! 최고 인플루언서가 항도 하 씨 가문의 딸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견디지 못해 바다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아주 인터넷이 난리가 날 거야.”진소흔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선생님, 그럼 우리 어느 정도까지 연기하면 될까요? 어디서 뛰어드는 게 가장 효과적일까요?”“개인적으론 빅토리아 항구가 좋을 것 같은데요.”“관광객도 많아서 제가 뛰어내리면 금세 SNS에도 퍼질 거구요.”“그때 선생님이 관광객인 척 지나가다가 나를 구해주고 난 울며불며 서럽게 하소연을 하는 거예요. 정말 완벽하지 않아요?!”이영돈은 손바닥을 마주치며 크게 웃다가 손을 뻗어 손가락을 튕겼다.“진소흔, 당신의 계획은 완벽하지만 좀 더 완벽해야 해.”“예를 들어 아무도 구조하지 않는다든가...”“뛰어내린 당신의 생사는 그냥 운명에 달렸고 부귀영화는 하늘에 달린 거지.”진소흔은 갑자기 그 자리에서 얼어버린 듯 멍한 눈동자로 이영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러면 내가 죽잖아요.”“죽으면 좋지. 당신이 죽어야 불타오르는 데 확실히 기름을 부을 수가 있지.”이영돈은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어느 군주 아래서든 신하들의 희생은 필요한 거야.”“이 소주를 위해 희생한 것이니 당신한테는 행운이나 마찬가지야, 안 그래?”“결국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자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하는 자를 위해 용서해야 해...”진소흔은 더욱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럼 좀 더 확실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이영돈은 나른하고 권태로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떠난 후 당신은
저녁 6시.화려한 존재감을 뽐내며 저마다 불을 밝히는 시간.항성 빅토리아 항의 야경은 저승길 가는 저승사자도 홀릴 만큼 매혹적이었다.화려한 웨딩드레스로 갈아입은 진소흔은 동영상을 무사히 찍고 핸드폰을 손에 쥔 채 멍한 표정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등대로 향했다.자칫 고결하여 범접하기 어려운 기운마저 풍기는 것은 그녀의 화려한 의상 때문일 것이다.그녀를 알아본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촬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아무도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스쳐 지나갈 찰나의 순간들을 카메라에 저장하기 바빴다.6시 15분이 지날 무렵, 의아해하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 진소흔은 빅토리아 항에서 가장 높은 등대 꼭대기에 올랐다.그녀는 전망대 가장자리에 서서 두 손으로 난간을 잡고 있었다.바닷바람은 놀랍도록 시렸고 마치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그녀의 뺨에 촉촉하고 짭짭한 바다 내음을 실어 날랐다.진소흔의 그림 같은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고 그녀의 화려한 웨딩드레스는 밤하늘에 달무리처럼 흐릿하게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사람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등대 꼭대기에 서 있는 진소흔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하지만 진소흔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대로 등대에서 아래로 몸을 날렸다.그러나 그녀가 몸을 날리던 순간 전망대 기둥에서 사람 그림자가 나타나 그녀를 잡아당겨 안쪽으로 사정없이 던졌다.둔탁한 소리와 함께 진소흔은 땅바닥에 세게 부딪혔다.그러나 그녀는 계속해서 버둥거리고 일어서 바다로 뛰어들려고 했다.바로 그때 하현은 냉엄한 표정으로 걸어 나와 진소흔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찰싹'하는 소리와 함께 진소흔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허공을 바라보다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아!”진소흔은 바닥에 주저앉았고 마침내 희미하게 정신을 차렸다.어두컴컴하고 좁은 공간이 흐릿한 기억을 뚫고 시야에 들어왔다.누군가가 뺨을 때렸고 진소흔은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여기저기 쑤셨다.“개자식!”진소흔은 맞은편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
여수혁은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하현, 나 여수혁이야! 페낭 무맹 무맹주의 여 씨 가문 사람이라구!”“내 스승님은 남양 무맹 맹주야!”“나한테 당신 같은 사람은 목숨도 아니야!”“당신 지금 이런 행동한 거, 톡톡히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땅바닥에 널브러진 여수혁은 힘겨운 얼굴로 남은 힘을 끌어모아 내뱉었다.“퍽!”“저리 꺼져!”하현은 여수혁을 발로 차서 날려버렸다.그러자 여수혁은 벽에 몸을 부딪혔고 입에서는 봇물 터지듯 핏물이 솟구치더니 이내 정신을 잃고 말았다.“배후에 누가 있든 어떤 권력을 가지고 있든 상관없어.”하현은 앞으로 나가 손을 뻗어 여음채의 창백한 얼굴을 툭툭 건드렸다.“당신한테 기회를 주겠어. 잠시 문을 닫고 정리하면서 잘 생각해 봐.”“다음에도 또 이런 일로 사기를 치고 있다는 얘기가 내 귀에 들어오면 정말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그땐 인정사정없이 완전히 풍비박산을 만들어 버릴 테니까!”...궁지에 빠진 여음채와 여수혁은 대꾸할 말이 없었다.하현은 길을 막고 있는 페낭 무맹 제자들을 발로 걷어차고 원가령을 부축하며 양유훤의 차에 올라탔다.양유훤은 사람들을 양 씨 가문에서 운영하는 병원으로 데려갔고 원가령을 응급실 침대에 눕힌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하현, 오늘 밤 가령이 일로 귀찮게 해서 미안해.”“어떻게 된 건지 들어서 잘 알고 있어.”“당신이 없었다면 오늘 밤 가령이는 정말 어떻게 되었을지 몰라.”하현이 병원 대기실 소파에 앉자 하이힐을 신은 양유훤이 그에게 다가와 생수 한 병을 건넸다.“당연한 일을 한 걸 가지고 뭐. 마침 만나게 되어서 다행이야.”하현은 어깨를 으쓱하고 난 뒤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하지만 오늘 밤 원가령의 일은 아마 십중팔구 당신을 노리고 한 짓일 거야.”“조심하는 게 좋아.”양유훤도 의심에 가득 찬 눈빛으로 입을 열었다.“나 때문에 온 게 분명해.”“이번에 내가 천억 대금을 순조롭게 회수해서 적자에 허덕이
”퍽!”여수혁은 무맹 사람이고 남양 무맹의 맹주에게서 수련을 받았으며 그의 아버지는 페낭 무맹 맹주였다.뼈대 있는 집안 자손이었고 천부적인 재능을 겸비했다.그래서 그가 하현과의 거리가 좁힌 지금 한 번에 몸을 날리자 무서운 기세가 펼쳐졌다.방금 양유훤 앞에서 얼마나 많은 수모를 당했던가!여수혁은 하현에게 자신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을 만반의 준비가 되어 있었다.그의 계산대로라면 지금 이 주먹으로 하현을 죽이지는 못하더라도 온몸이 으스러지도록 만들 수는 있을 것이다.“대하 촌놈! 죽어!”여수혁은 섬뜩한 미소로 쏜살같이 덤벼들었다.이런 벼락같은 기세라면 소 한 마리도 때려죽일 수 있을 것 같았다.이 광경을 보고 여음채와 부일민은 눈이 번쩍 뜨였다.여수혁의 대담한 기세에 깜짝 놀란 것이다.“양유훤, 봤지?!”“이게 당신이 선택해야 할 남자의 모습이야! 이 정도는 되어야 양 씨 가문 데릴사위가 되지!”“입으로만 떠드는 남자가 무슨 소용있어?”“여수혁 같은 고수를 만나면 바로 무릎을 꿇을 거야!”부일민과 예쁘장한 간호사들은 모두 비아냥거리는 기색을 띠며 하현을 주제넘은 사람이라고 비꼬았다.주변 구경꾼들도 하나같이 고개를 내저으며 한숨을 내쉬었다.왜 여수혁을 감히 도발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모습이었다.이 모든 게 자업자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장내에 오직 양유훤과 하구봉만이 전혀 개의치 않는 얼굴이었다.그들은 모두 하현의 실력을 본 적이 있었다.만약 여수혁 같은 사람 한 명도 수습하지 못한다면 지금까지 하현은 헛수고를 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퍽퍽퍽퍽!”여수형은 순식간에 피투성이가 된 채 바닥에 널브러져 온몸을 덜덜 떨며 비명을 질렀다.동시에 하현은 그의 두 손을 짓밟아 부러뜨렸다.“이럴 수가?!”여음채와 부일민은 보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이루 말할 수 없는 충격이었다.여수혁 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 그리고 소위 고수라 불리는 사람들도 지금은 눈가
그러자 여수혁의 옆에 있던 여음채가 얼굴을 가리고 노기를 띠며 말했다.“하 씨! 당신 뭐가 좋은지 나쁜지 몰라?”“양유훤의 체면을 봐서라도 당신과 더 이상 따지지 않고 살길을 마련해 준 거라고!”“좋게 끝났을 때 그만해야 한다는 것도 몰라? 나중에 얼굴이 찢겨 봐야 아는 거야?”여음채의 마음속에는 불쾌함으로 가득 차올랐다.하현은 계속 자신의 뺨을 때렸을 뿐만 아니라 이빨이 부러지도록 만신창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콧대 높은 여음채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었다.그래서 하현이 도발하며 여수혁을 추궁하는 것을 보고 여음채는 도저히 화를 억누를 수 없었던 것이다.그녀가 특히 못마땅하게 여기는 남자가 여자의 치마폭에 싸여 쉽게 살려는 자들이다.양유훤을 믿고 호랑이처럼 위세를 부릴 뿐만 아니라 아주 기세가 하늘을 찌르는 모습이라니!여음채의 상식으로 어떻게 하현 같은 사람을 여수혁과 동급으로 비교할 수 있겠는가?운이 좋아서 양유훤의 치마폭에 싸였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하현은 벌써 수십 번은 죽었을 것이다.“좋은 게 좋은 거라고?”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미소를 지었다.잘난 척 기고만장한 여음채의 말에 할 말을 잃은 모습이었다.여음채는 냉소를 흘리며 말했다.“그렇지 않아? 똑똑히 들어. 양 씨 가문의 호가호위만 믿고 설치는 짓, 그만하는 게 좋을 거야!”“당신이 정말로 양유훤의 남자인 줄 알아? 당신이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도 된 줄 알아?”“당신이 정말로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해도 여자 치마폭에 싸인 남자가 얼마나 대단하겠어?”여음채는 엄청 호의를 베풀 듯이 호기롭게 훈계를 했다.“당신이 어떤 속셈이 있고 무슨 실력이 있든 뭐 얼마나 대단하겠어?”하현은 여음채가 하는 말을 더는 듣기 귀찮아서 냉랭한 목소리로 말했다.“자, 닥쳐! 쓸데없는 소린 그만해!”“재잘재잘 너무 시끄럽군!”“뭐?!”여음채는 갑자기 누군가가 자신의 입에 차가운 재갈을 물리는 것 같은 수치스러움
남양 무맹 사람들이 나섰음에도 양유훤은 전혀 체면을 세워 주지 않자 여수혁의 안색이 일그러졌다.그는 자신이 오늘 하현을 건드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하 씨, 오늘은 내가 운이 나빴군. 하지만 아직 기회는 많아!”“능력이 있으면 어디 이 여자가 영원히 당신을 비호하도록 만들어 봐!”“이 여자가 당신을 얼마나 지켜줄 수 있는지 얼마나 당신을 먹여 살릴 수 있는지 지켜보겠어!”그는 하현을 노려보다 냉소를 흘리며 돌아섰다.여음채도 한껏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외지인 남자가 여자한테 기대서 큰소리치는 꼴이라니!세상은 좁아서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만날 수 있는 법이다.이 남자가 괴로워할 때가 분명 올 것이다!“거기 서!”바로 그때 침묵하고 있던 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순간 하현의 몸에서 보이지 않는 아우라가 강하게 감돌았다.비록 양유훤이 나서서 자신을 비호하도록 가만히 놔두는 것이 가장 쉽고 편한 방법이긴 했지만 하현은 지금의 상황을 지켜보면서 현재 양유훤의 처지를 거의 파악했기 때문에 모든 책임을 양유훤의 어깨에 올려놓을 수 없었다.하현이 한 걸음 내디디며 앞으로 나서는 모습을 보고 주변 사람들은 의아한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의사들과 간호사들은 모두 놀란 얼굴로 하현의 행동을 지켜보았다.그들은 하현이 머리가 어떻게 된 게 아닌가 의심하기까지 했다.여수혁 같은 거물이 그를 벌하려는 걸 양유훤이 겨우 구해줬는데 뭘 또 바란단 말인가?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여수혁은 발걸음을 뚝 멈추고 눈살을 찌푸리며 하현을 쳐다보았다.“오늘은 운이 나쁜 걸로 친다고 했는데 뭘 또 바라는 거야?”하현은 뒷짐을 지고 천천히 앞으로 나서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은 정말 이렇게 끝날 거라고 생각했어?”“돈을 받고도 아무것도 치료하지 않았어. 그리고 당신은 권세로 사람들을 자꾸만 괴롭히려고 해.”“날 잡아서 감옥에 가두고 내 다리를 부러뜨리고 무릎을 꿇게 만들려고 했어.”“이 모든 것에 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