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은 다 먹었으니 이제 본론으로 들어가 볼까?”하수진이 와인 잔을 쥐고 입을 열었다.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그럴 줄 알았어. 단순한 밥 한 끼로 끝나지 않을 줄 알았다니까.”“왜? 오전 중에 벌써 약혼자의 일을 다 파악하기라도 한 거야?”‘약혼자'라는 세 글자에 하수진의 얼굴에 분노의 빛이 떠올랐다.이어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완전히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대충은 짐작이 가.”“우리 이걸윤 선생은 정말이지 예측할 수 없는 사람이야.”“내가 노국에 있는 몇몇 친구들을 통해 확인했는데, 지난 6년 동안 이걸윤이 외부에 드러난 소문만큼 그렇게 조용하게 산 건 아니더라고.”“3년 동안 몇천억 되는 그룹을 직접 만들었대.”“그리고 3년이 더 걸려 지금은 노국의 성전 기사단에 가입해 부단장이 되었어. 아마 전신급일 가능성이 높다고 해.”“장장 6년이 걸려 노국의 상류층으로 진입한 셈이지.”“노국 황실 후계자 1순위인 빅토리아 공주까지 직접 접견했다고 해!”“저번에는 성전 기사단 사람들이 전투기를 몰고 호위했대!”“그가 도착하는 시간에 항성의 거의 모든 거물들이 마중 나온다고 들었어!”“진정한 왕의 귀환이지!”하현은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말했다.“어째서 이런 등장이 왠지 낯익지?”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을 이었다.“몇 년 전 항성에서 쫓겨났던 어린 왕이 당당한 왕이 되어 다시 돌아온다!”“소설이나 드라마의 주인공 같은데!”“약혼녀가 버선발로 뛰어가서 그의 허벅지라도 껴안아야 하는 거 아니야?”“그래야 같이 상위로 올라가지?”하수진은 냉소를 날리며 천천히 입을 움직였다.“이걸윤은 대단한 사람이지만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게 없는 사람이야.”“불과 6년 만에 모든 지위와 권력을 얻었어. 오직 대하에 맞서야겠다는 일념으로 힘을 기른 사람이야!”“대하인이지만 기꺼이 총을 들어 대하를 상대하려 하다니! 이런 사람은 하구천보다 더 지독해!”“그 외에도 그는 몇 년 동안 온갖
왕의 귀환!전신의 귀환!농담으로 하는 말이 아니라 이 말들은 정말로 이걸윤의 막강함을 방증하는 말이었다.“어떻게 할 생각이야?”하현은 생각에 잠겼다가 먼 수평선을 바라보았다.“지금까지 입수한 자료들을 보면 이걸윤이 돌아온 목적은 그리 간단하지 않은 것 같아.”“괜찮아. 내 손에는 대단한 카드가 있거든.”하수진은 묘하게 웃으며 하현의 얼굴에 시선을 던졌다.“나?”하현이 웃었다.“이걸윤과 확실하게 얘기할 게 있긴 하지.”“예를 들어, 대구 엔터테인먼트의 일.”“뭐 그리고 숏폼에서 망신당한 진소흔의 일이라든가.”“다만 내가 손을 쓰기 전에 당신도 확실히 각오해야 할 거야.”“수년 안에 전쟁의 신으로 거듭난 사람이야. 절대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고.”하수진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항도 하 씨 가문의 최고 자리에 앉기 전에는 거쳐야 할 관문이었다.하구천의 음모에 대비해 그녀도 나름의 준비를 단단히 해야 했던 것이다.그렇지 않고 하현에게 의지해 그가 최전선에서 싸우게 된다면 정말로 하현이 상석을 장악할지도 모르는 일 아니겠는가?“펑!”하수진이 이걸윤의 일로 고뇌하고 있을 때 갑자기 식당 입구가 소란스러웠다.그리고 누군가 문을 밀고 들어와 하현과 하수진이 있는 룸을 향해 거침없이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하수진의 경호원이 손을 써 보기도 전에 상대는 이미 룸 입구에 들어와 ‘퍽’하고 무릎을 꿇었다.사람들의 시선이 무릎을 꿇은 사람에게 온통 쏠렸다.하현과 하수진은 깜짝 놀라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올렸다.방금 도망치듯 떠났던 진소흔이 다시 돌아온 것이다.그러나 그녀의 얼굴에는 더 이상의 원망이나 노기가 없었고 그 자리에 두려움과 공포로 가득 차 있었다.미간에는 온갖 두려움과 황망함으로 주름져 있었다.진소흔의 뒤에는 그녀의 매니저와 경호원 몇 명이 있었다.그들도 하나같이 창백하고 핏기 잃은 얼굴로 말없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영문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저 의아한 눈빛으로
경악할 만한 진소흔의 행동에 많은 구경꾼들은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다는 듯 눈살을 찌푸렸다.어찌 되었건 그녀는 미녀였다.미녀가 곤경에 처하는 것을 보면 동정도 할 법하다.그러나 하현은 언짢은 듯 얼굴을 찡그렸다.진소흔이 자신을 하 선생님이라 칭할 때부터 그는 이미 누군가가 그녀 뒤에서 이런 행동을 코치했음을 알아차렸다.연기하러 온 건가?아니면 울상을 지으며 동정을 바라고 온 건가?“아까 꺼지라고 했잖아. 이미 끝난 일이야.”하수진은 냉랭한 얼굴로 말했다.“연예계에서 퇴출된 거, 그 누구와도 관계없어. 자업자득이야!”“하현이 아니었더라도 조만간 누구라도 나타나 당신을 봉쇄할 참이었어.”“하 선생님, 아가씨.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정말 잘못했어요.”진소흔은 두 발을 옮겨 하수진과 하현에게 가까이 다가와 애원하는 표정으로 그들을 바라보았다.“이번에 항성에 온 건 처음으로 콘서트를 열기 위해서였어요. 대하가 처음 콘서트를 여는 곳이라고요. 내 연예계 인생 최고의 순간이에요!”“저에게는 정말 소중한 기회예요!”“제발, 한 번만 봐주세요!”“제발 한 번만 기회를 주세요!”“그렇지 않으면 내 앞날이 망쳐지는 것뿐만 아니라 이영돈 선생님이 날 가만두지 않을 거예요!”“내가 당신들한테 용서를 받지 못하면 그는 아마도 날 죽여버릴 거라구요!”“물론 당신들한테 사과하는 제 마음은 진심이에요. 진심으로 두 분이 절 용서해 주시길 바라고 있어요!”“어찌 되었건 당신들 같은 거물들 눈에는 그저 한낱 딴따라일 뿐이잖아요. 이런 딴따라와 굳이 따질 필요는 없지 않겠어요, 네?”“이렇게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드릴게요!”“집에 돌아가면 당신들의 무병장수를 위해 위패라도 만들어 모실게요!”말을 하는 동안 진소흔은 다시 ‘쿵쿵쿵'하며 머리를 조아리기 시작했다.게다가 처량하게 울부짖는 그녀의 모습은 진상을 모르는 군중들의 동정심을 자극하기 충분해 보였다.많은 사람들은 하현과 하수진이 너무 사람을 몰아붙인다고
경호원이 몸을 붙잡자 진소흔은 몸부림치며 애원 섞인 목소리로 울부짖었다.“한 번만 봐주세요.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봐주세요!”“잘못했어요. 정말 잘못했어요!”진소흔이 애원하기 시작하자 매니저와 그녀를 따르던 사람들도 덩달아 울부짖기 시작했다.진상을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의 눈에는 진소흔이 남자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끌려가는 줄 알 것이다.진소흔 무리들의 모습이 사라지자 하수진은 비로소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이 여자도 참 보통 인물은 아니야. 처음에는 그렇게 당당하고 의기양양하게 콧대를 세우더니 지금은 스스로 무릎을 꿇고 용서를 빌다니.”“뻗을 땐 뻗더라도 굽힐 때는 확실히 넙죽 엎드리는 걸.”“꼭 그렇지만은 않아.”하현이 일어서며 문쪽으로 향했다.“내가 나가 볼게.”말을 하는 사이 하현의 몸은 어느새 문밖으로 사라졌다.하수진은 의아한 듯 미간에 살짝 주름을 지었고 생각에 잠긴 눈동자에 뜻 모를 빛이 스쳐 지나갔다....빅토리아 항 광장에 버려진 진소흔은 식당 쪽을 향해 무릎을 꿇고 있었다.그녀는 하염없이 비를 맞으며 여전히 하늘을 찌를 듯 울부짖으며 땅을 쳤다.용서해 달라는 말이 빗속을 뚫고 하수진에게 닿기라도 바라는 듯 소리쳐 용서를 빌었다.이 장면을 본 지나가는 행인들은 소스라치게 놀라며 의아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그중 몇몇은 핸드폰을 꺼내 동영상을 찍기 시작했다.진소흔의 유명세는 아주 대단했으므로 이 영상은 업로드되자마자 바로 핫이슈가 되었다!얼마 지나지 않아 항도 하 씨 가문 하수진이 진소흔을 제압했다는 소문이 빠른 속도로 돌았다.특히 동영상 속에 팩트가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아름다운 외모를 장착한 진소흔을 동정하기 시작했다.어찌 되었건 네티즌들의 기억력은 3분짜리다.진소흔의 동영상이 업로드된 후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녀가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를 비하하며 서양을 찬양했던 사실을 깡그리 잊어버렸다.눈앞의 이 연극은 더욱 흥미진진하게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며 순식
잘생긴 남자는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진소흔, 잘했어. 이번에 고생했어!”“이 선생님, 별말씀을요. 당신을 위해, 그리고 이걸윤 선생님을 위해 일하게 되어 제가 영광이죠!”진소흔은 수줍은 표정으로 말했다.“하현과 하수진이 감히 날 이렇게 괴롭히고 게다가 대하에서 내 입지를 봉쇄시키다니. 뿌린 대로 거둔다는 게 뭔지 꼭 보여줄 거예요!”“그런데 이해가 안 되는 게 있어요. 왜 내게 하현보다 하수진을 겨냥하라고 말씀하신 거예요?”“제가 잘못 본 게 아니라면 이번에 날 SNS에서 퇴출시킨 사람은 내륙에서 온 하현이라는 작자일 텐데 말이에요!”“우리는 그 사람을 겨냥했어야 해요!”진소흔은 자신이 한 짓이 하수진 쪽을 골치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지만 그보다 하현에게 복수하고 싶었던 것이다.그녀는 자신의 인기로 해피톡 플랫폼이 떴다고 자부했다.그녀가 없었다면 오늘날 대하 연예계 절반을 차지하고 있는 대성그룹은 없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래서 진소흔은 누구보다 하현에게 복수하고 싶었다.“일에도 순서가 있어. 차근차근 진행해야지. 우선해야 할 것과 나중에 해야 할 것들을 충돌없이 처리해야 하는 거라고.”커피를 한 모금 마신 후 이영돈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하현이라는 사람의 속내를 내가 대충 짐작해 보았어. 그는 상대하기 쉽지 않은 인물이야. 가장 중요한 것은 이번에 우리의 첫 번째 목표는 그가 아니라는 거야!”“이번에 우리가 항성에 온 첫번째 목표는 하수진과 항도 하 씨 가문이야.”“하수진을 항도 하 씨 가문의 핵심에서 몰아내야만 해. 그렇게 된다면 그녀는 이 소주의 여자가 될 수밖에 없어.”“그 여자를 해결하고 나면 콧대가 센 하구천을 해결하는 데는 별 어려움이 없을 거야.”“이 소주의 능력으로 하수진을 이용하여 항도 하 씨 가문을 통제한다면 항성과 도성의 왕이 되는 거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테니까!”“그때가 되면 이 소주가 당신의 든든한 뒷배가 될 테니 당신이 누구를 괴롭히든 복
”이러다간 며칠 뒤면 정말 카지노를 손에 넣게 되겠는 걸요.”진소흔은 설레발을 치며 이영돈의 어깨를 감싸주었다.이 남자는 정말 대단하다고밖에 할 말이 없다.항성과 도성에 온 지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완전히 판세를 몰아붙이다니 정말 수완이 대단한 남자다.도성 화 씨 가문을 무너뜨리려 할 뿐만 아니라 이제는 항도 하 씨 가문에 불을 지르려는 것이다.진정한 남자라면 무릇 이래야지!이영돈은 덤덤하게 말했다.“도성 화 씨 가문은 이 소주가 깔아뭉개려고 했던 집안이야.”“하지만 이 소주가 말하기를 화 씨 가문을 상대할 때는 도박판에서 완전히 그들을 탄복하게 해서 어쩔 수 없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어.”“그러니 대구 엔터테인먼트라는 카지노는 시작에 불과해.”“난 화 씨 집안이 그들의 손에 가진 카지노와 재산을 순순히 다 내놓게 만들 거야.”“그래야 재미있거든.”진소흔이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이 선생님 오늘 밤에도 깡그리 다 무찔러 버릴 거죠?”“나도 가서 그 좋은 구경 좀 하면 안 돼요?”“오늘 밤? 아니. 오늘은 그러지 않으려고.”이영돈은 희미한 눈빛으로 말했다.“어젯밤 도박왕 화풍성이 SNS에 떠들썩하게 발표했어”“지금 그 집안은 온통 적개심으로 불타오르고 있겠지!”“오늘이 그들의 사기가 가장 충천할 때라고 할 수 있는 거야.”“다만 사기라는 건 처음에는 단숨에 치고 올라갔다가 그다음엔 쇠퇴했다가 어느 순간 사라져 버리지.”“난 삼일 동안 그들을 내버려둘 거야. 그리고 삼일 후에 그들과 생사를 건 한 판을 벌일 생각이야!”“이번에는 반드시 그들에게 이기고 지는 게 어떤 건지 알려주고야 말겠어!”“삼일 후면 대구 엔터테인먼트의 카지노가 완전히 내 손에 넘어오는 거지!”“그 모습을 보여주려고 당신을 초대했는데 당신이 하프 주인공이 될 줄은 몰랐네.”이영돈은 옅은 미소를 보이며 진소흔에게 과일을 집어 주며 그녀를 달콤하게 했다.“단판 승부!”진소흔이 감탄하며 놀라워했다.
이영돈은 빙긋 웃으며 진소흔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진소흔, 당신 역시 인물은 인물이야.”“당신 같은 사람은 딴따라가 아니라 이 소주의 핵심 측근으로 들어가 진정한 여전사가 되어야 해!”“바다에 뛰어드는 시늉이라니, 난 생각지도 못했어.”“그런데 당신은 그런 방법을 생각해낸 거지!”“좋은 방법이야! 최고 인플루언서가 항도 하 씨 가문의 딸에게 괴롭힘을 당하다 견디지 못해 바다에 뛰어들 수밖에 없었다는 뉴스가 나오면 아주 인터넷이 난리가 날 거야.”진소흔은 간드러지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선생님, 그럼 우리 어느 정도까지 연기하면 될까요? 어디서 뛰어드는 게 가장 효과적일까요?”“개인적으론 빅토리아 항구가 좋을 것 같은데요.”“관광객도 많아서 제가 뛰어내리면 금세 SNS에도 퍼질 거구요.”“그때 선생님이 관광객인 척 지나가다가 나를 구해주고 난 울며불며 서럽게 하소연을 하는 거예요. 정말 완벽하지 않아요?!”이영돈은 손바닥을 마주치며 크게 웃다가 손을 뻗어 손가락을 튕겼다.“진소흔, 당신의 계획은 완벽하지만 좀 더 완벽해야 해.”“예를 들어 아무도 구조하지 않는다든가...”“뛰어내린 당신의 생사는 그냥 운명에 달렸고 부귀영화는 하늘에 달린 거지.”진소흔은 갑자기 그 자리에서 얼어버린 듯 멍한 눈동자로 이영돈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그러면 내가 죽잖아요.”“죽으면 좋지. 당신이 죽어야 불타오르는 데 확실히 기름을 부을 수가 있지.”이영돈은 아무렇지 않은 듯 미소를 머금고 입을 열었다.“어느 군주 아래서든 신하들의 희생은 필요한 거야.”“이 소주를 위해 희생한 것이니 당신한테는 행운이나 마찬가지야, 안 그래?”“결국 선비는 자기를 알아주는 자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기를 기쁘게 하는 자를 위해 용서해야 해...”진소흔은 더욱 의아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그럼 좀 더 확실하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이영돈은 나른하고 권태로운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떠난 후 당신은
저녁 6시.화려한 존재감을 뽐내며 저마다 불을 밝히는 시간.항성 빅토리아 항의 야경은 저승길 가는 저승사자도 홀릴 만큼 매혹적이었다.화려한 웨딩드레스로 갈아입은 진소흔은 동영상을 무사히 찍고 핸드폰을 손에 쥔 채 멍한 표정으로 한 발짝 한 발짝 등대로 향했다.자칫 고결하여 범접하기 어려운 기운마저 풍기는 것은 그녀의 화려한 의상 때문일 것이다.그녀를 알아본 많은 사람들은 그녀가 촬영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그래서 아무도 그녀를 방해하지 않았고 사람들은 저마다 스쳐 지나갈 찰나의 순간들을 카메라에 저장하기 바빴다.6시 15분이 지날 무렵, 의아해하는 많은 사람들의 시선 속에 진소흔은 빅토리아 항에서 가장 높은 등대 꼭대기에 올랐다.그녀는 전망대 가장자리에 서서 두 손으로 난간을 잡고 있었다.바닷바람은 놀랍도록 시렸고 마치 비련의 여주인공 같은 그녀의 뺨에 촉촉하고 짭짭한 바다 내음을 실어 날랐다.진소흔의 그림 같은 얼굴이 서서히 일그러졌고 그녀의 화려한 웨딩드레스는 밤하늘에 달무리처럼 흐릿하게 흐르고 있었다.그제야 사람들은 뭔가 이상함을 느끼고 등대 꼭대기에 서 있는 진소흔을 향해 소리치기 시작했다.하지만 진소흔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그대로 등대에서 아래로 몸을 날렸다.그러나 그녀가 몸을 날리던 순간 전망대 기둥에서 사람 그림자가 나타나 그녀를 잡아당겨 안쪽으로 사정없이 던졌다.둔탁한 소리와 함께 진소흔은 땅바닥에 세게 부딪혔다.그러나 그녀는 계속해서 버둥거리고 일어서 바다로 뛰어들려고 했다.바로 그때 하현은 냉엄한 표정으로 걸어 나와 진소흔의 뺨을 세차게 내리쳤다.‘찰싹'하는 소리와 함께 진소흔은 넋이 나간 사람처럼 허공을 바라보다가 처절한 비명을 질렀다.“아!”진소흔은 바닥에 주저앉았고 마침내 희미하게 정신을 차렸다.어두컴컴하고 좁은 공간이 흐릿한 기억을 뚫고 시야에 들어왔다.누군가가 뺨을 때렸고 진소흔은 온몸이 두들겨 맞은 것처럼 여기저기 쑤셨다.“개자식!”진소흔은 맞은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