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찍 왔다는 건 그만큼 똑똑하다는 뜻이고 이미 뭔가 특별한 냄새를 맡았다는 뜻이야.”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오늘 오후 3시까지 오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과 업무 협약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지.”“어째서?”하수진은 미간에 살짝 주름을 지으며 물었다.“당신과 맹효남의 약속에 따르면 하루 안에 이 계약 건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당신은 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해.”“애가 타는 건 당신과 내 쪽이잖아?”“누가 애가 탄대?”하현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난 계약권을 성사시킨다고 했지 언제 누구와 계약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잖아?”“만약 그가 오지 않는다면 이 일은 성사되지 않는 거야. 최악의 경우 내가 전화 한 통 하면 돼. 내일 아침 이시카와 가문 수장이 내 앞에 무릎 꿇고 계약해 달라고 애원하게 할 수도 있어.”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이런 말을 하는 하현을 보고 하수진은 기세등등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하현과 하수진은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여직원들 앞으로 다가갔다.그러자 금테 안경을 쓴 비서처럼 보이는 여자가 그들에게 다가와서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아주 낯짝이 두꺼운 걸 보니 항도 재단 책임자가 맞는 모양이군요.”“오늘 아침 이시카와 도련님에게 전화해 오늘 오후 3시에 나타나지 않으면 계약 건은 없는 걸로 한다고 한 거 맞습니까?”“당신들 농담하는 거예요?”“머리가 좀 이상하게 된 거 아니에요?”“우리 이시카와 그룹의 제품이 전 세계적으로 잘 팔리는 건 둘째치고요!”“우리 이시카와 도련님 정도의 신분이라면 당신네 일개 재단 사람들이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거 몰라요?!”“당신들 뒤에 항도 하 씨 가문이 받치고 서 있다고 해도 이럴 수는 없죠!”“오늘 우리는 당신들한테 할 말이 있어서 제시간에 여기 온 거예요!”“이 계약 건은 당신들이 하기 싫더라도 꼭 해야 해요.”“계약 내용은 오직 하나, 항도 재단이 대하 권역에서 이시
참다못한 항도 재단 여직원이 이시카와 그룹 여비서를 가리키며 대들었다.“항성은 우리 대하 땅인데 섬나라 사람들이 무슨 근거로 우리 땅에서 함부로 날뛰는 거예요?”“어? 감히 우리한테 말대꾸를 해? 이 까짓 게!”여비서의 얼굴이 매섭게 일그러졌다.“무슨 근거냐고? 우리 섬나라 사람들은 당신네들보다 잘났으니까. 우리 이시카와 그룹 제품이 전 세계적으로 잘 팔려서 말 한마디면 당신네들 매장시켜 버릴 수 있으니까!”“왜?”“불쾌해?”“불쾌하면 때려 보시든지!”“감히 날 때린다고? 그럼 정말 존경스러울 것 같은데!”여비서는 자신의 오른쪽 얼굴을 그 여직원에게 들이대며 한껏 도발적인 자세를 취했다.“퍽!”하현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직접 손바닥을 들어 여비서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이런 해괴한 요구는 처음 들어보는군. 때려 달라는 말 여기 있는 모두가 들었어.”“그래, 내가 때렸어. 이제 일이 심각해진 건가?”거칠 것 없이 당당했던 이시카와 그룹 여비서는 코와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얼굴엔 벌건 손자국이 나 있었다.그녀는 완전히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뭐라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이곳에서 감히 자신을 건드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이시카와 그룹 사람들은 자사 제품이 전 세계적으로 잘 팔린다는 자신감에 취해 마구 날뛰며 행동했다.그런데 어디 가서 이런 홀대를 받았겠는가?지금 섬나라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그들은 자신들에게 이런 일이 닥칠 줄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이시카와 그룹이 전 세계 인맥을 통해 항도 재단을 매장시켜 버릴 수도 있는데 도대체 항도 재단은 두렵지도 않단 말인가?여비서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하현을 가리키더니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개자식아! 감히 날 때려?”“퍽!”하현이 손바닥을 휘둘러 여비서의 얼굴을 쳤고 여비서는 다시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김 비서님. 오늘은 제가 잘못했습니다.”“저를 고소하시든 사람을 잡아가시든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장가연은 조금 두려웠지만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든 채 이시카와 다이치 일행을 바라보았다.“모든 일은 항도 재단과 이 남자와는 무관한 일입니다.”“이 사람이 관련이 있는지 여부는 당신이 뭐라 하든, 항도 재단이 뭐라 하든 상관없어요.”“하문성 회장님이 오시든 하구천 도련님이 오시든 아무 상관이 없어요!”그러자 콧수염을 기른 이시카와 다이치가 분통을 터뜨리려는 김 비서에게 만류하는 손짓을 했다.그는 두 손을 뒷짐지고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말할 수 없는 무거운 아우라가 느껴졌다.“오늘 이 일은 오직 이시카와 다이치 나만이 결정할 수 있어.”이시카와 그룹을 대표하여 이미 여러 차례 외국에 나가 협상을 하면서 그는 많은 나라의 여자들과 잠자리를 했고 적잖은 명문가 여자들로부터 협박에 가까운 구애도 받았다.중동 지역 일부 왕자들과는 의형제도 맺었다.그의 손이 닿는 곳에는 별이 뜨고 달이 떴다.모든 사람들이 그를 에워싸고 선망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런데 항성 재단 사람들이 그를 홀대하고 받들려 하지 않는다?게다가 오늘 부임한 집행총재가 그의 체면을 무시하는 것도 참을 수 없는데 일개 직원이 그의 체면을 세워 주지 않는다?허!이시카와 다이치는 음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당신들, 잘 들어. 오늘 해 보자구. 이제부터 누구도 여기서 나갈 수 없어!’“나 이시카와 다이치가 말한 거야!”그의 말이 떨어지자 그의 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하나같이 사나운 표정으로 하현을 주시했고 당장이라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그래?”“섬나라 사람들이 감히 우리 대하 땅에서도 이렇게 날뛸 수 있는 거야?”“해 보자고?”“그래. 나 오늘 여기 서 있을 테니 사람을 부르고 싶으면 더 불러. 능력이 있으면 날 제압해 봐. 그리고 당신 앞에 무릎 꿇려 보시든가!”“날
김 비서는 울면서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마치 엄청난 손해를 입은 사람처럼 서러워했다.하지만 맞은편 상대에게 주소를 알려주고 난 뒤 전화를 끊은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원래의 표독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두고 봐! 감히 날 때리다니!”“우리 소주가 오시면 당신들은 이제 죽은 목숨이야!”“내 말 잘 들어. 오늘 여기서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어!”김 비서는 이시카와 다이치를 등에 업고 으름장을 놓았다.하현이 뭐라고 말을 하려 하자 장가연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나섰다.“거기, 오빠! 됐어요. 그만해요! 일이 더 이상 커지면 곤란하니 가만히 있어요!”“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다 잘릴 거라구요!”장가연은 이시카와 측이 부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항성과 도성 전역에서 ‘하 소주'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항도 하 씨 가문 사람밖에 없다는 걸 눈치챘다.항도 하 씨 가문 사람들이 온다면 분명 자신은 물론 하현도 끝장날 것이며 하수진조차도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어찌 되었건 그녀도 항성 사람이었다.항도 하 씨 가문의 젊은 세대들이 얼마나 파워가 있는지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이때 하수진은 덤덤한 표정으로 다가와 맞은편 이시카와 다이치 일행을 곁눈으로 흘겨보았다.장가연은 하수진이 회사 고위층일 거라는 건 눈치챘지만 구체적인 신원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사장님, 오늘 이 일은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원래 섬나라 사람들을 접객하는 것이 내 일인데 오늘 이렇게 되었습니다. 모두 제 탓입니다.”“회사에서 내리는 지침대로 따르겠습니다...”하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일 없을 테니까.”“접객 업무를 맡은 건 맞지만 막무가내인 손님을 만나면 그렇게 하는 게 맞아요.”장가연을 비롯해 주변의 다른 여직원들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다.그녀들은 모두 하현이 왜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하, 정
하은수가 나타난 것을 보고 장가연은 얼굴색이 변했다.하은수는 때때로 연예주간지나 재경일보에 가끔 얼굴이 실리는 인물이었다.항도 하 씨 가문 고위층들 중 장가연이 얼굴을 아는 몇몇 중의 하나였다.이시카와 다이치의 비서가 건 전화 한 통에 하은수 같은 거물급 인사가 나타날 줄은 아무도 몰랐다.김 비서는 하은수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얼른 달려와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서 와서 내 얼굴 좀 보세요. 방금 맞아서 벌겋게 부어서 말도 아니라구요!”“항도 재단 사람들은 완전히 선을 넘었어요. 저들은 반드시 이 일에 책임을 져야 해요!”김 비서는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데 열을 올렸다.하은수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항도 재단 사람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야? 정말 대단들 하시군!”“설마 이시카와 도련님의 일행이 우리 하 소주의 귀빈이란 걸 모르시나?”“당신들은 하 소주의 귀빈들을 때린 거야? 보아하니 이번 일은 절대 그냥 넘겨서는 안 되겠어!”“누가 손모가지를 함부로 놀린 거야? 스스로 무릎 꿇고 어서 나오지 못해? 어서 이시카와 도련님에게 사과하고 스스로 손모가지를 부러뜨려! 그렇지 않으면 일은 더 커지게 될 거야!”장가연 등 여직원들은 모두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몰랐다.그때 하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당신 말이 맞아. 오늘 이 일은 무릎 꿇고 사과하고 게다가 스스로 손목을 부러뜨리지 않으면 절대 끝나지 않을 거야!”하은수는 익숙한 목소리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누구야?”순간 그는 몸을 휙 돌렸다.하은수의 시선이 하현과 하수진에게 꽂히는 순간 그는 흠칫 놀라더니 눈가에 미친 듯이 경련이 일어났다.하현은 차가운 얼굴로 하은수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앞으로 나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건드린 후 매서운 목소리로 말했다.“하은수, 당신이 상황을 점점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어, 알아?”“예전에 좋은 시절에는
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죽을 건지 아닌지는 하은수한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거야.”“아직도 허세를 부리는 거야?”김 비서가 냉소를 지으며 나섰다.“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르겠지만 감히 하구천의 이름 앞에서 허세를 부려? 당신 죽는 게 뭔지 모르는 모양이지!”“맞아. 우리 하 소주의 귀빈을 건드렸으니 아무리 저놈이 허세를 부린다고 해도 한주먹거리밖에 안 될 거야!”“한 마디 충고하겠는데 얼른 가서 항도 재단 집행총재인지 뭔지 불러와!”“3분 안에 나오지 않으면 끝이라고 집행총재한테 전해줘!”“입 닥쳐!”이때 하은수가 결국 나섰다.그가 한바탕 고함을 지르자 바로 뒤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하은수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하은수 도련님, 내가 먼저 저놈을 날려버릴까요? 안 그래도 최근에 손이 근질근질했는데 잘 됐죠 뭐. 내 저놈을 그냥...”“퍽!”하은수는 손바닥을 휘둘러 입을 함부로 놀리는 남자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험한 얼굴로 말했다.“닥치라고 했잖아! 내 말 못 들었어?”“그리고 입만 열면 개자식, 개자식!”“누가 당신한테 하 세자를 함부로 모욕해도 된다고 했어?”“맞아 죽고 싶어? 아님 내가 죽는 꼴을 보고 싶어?”하은수는 조금도 봐줄 마음이 없는 표정이었다.그때 섬뜩한 소리가 울리더니 이 남자의 다리가 그 자리에서 부러졌다.하은수는 이마에 식은땀을 흠뻑 흘리며 난감한 기색을 한껏 드러낸 얼굴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당신인지 몰랐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하 소주의 명령이라 내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하은수를 바닥에 넘어뜨리며 냉랭하게 말했다.“무릎을 꿇고 사과를 해. 그리고 한 손을 잘라. 그런 다음 내 눈앞에서 꺼져!”“네, 네. 알겠습니다. 하 세자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하은수는 더는 쓸데없는 말을 보태지 않고 그대로 돌아서
이시카와 유키코는 이시카와 가문 직계로서 대구에 있는 섬나라 대사관 대표였다.이시카와 가문의 젊은이들 중 가장 뛰어나다고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었다.게다가 섬나라 대사관 대표라는 직함은 모든 사람들을 압도할 수 있을 만한 신분이었다.어쨌든 그녀에게 미움을 산 사람은 섬나라에 미움을 사는 꼴이 되는 것이다.자칫하다가는 외교적인 사건으로 번질 수도 있다.그래서 지금 전화를 거는 이시카와 다이치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득의양양한 것이다.그런데 하현은 이시카와 유키코의 이름을 듣자마자 왠지 낯이 익었다.순간 하현의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대구에 있을 때 자신이 그 여자의 뺨을 때린 것이 기억난 것이다.하지만 이시카와 다이치가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영영 잊힐 이름이었다.하현은 막을 생각도 없이 덤덤한 표정으로 이시카와 다이치가 상대방의 목소리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전화는 곧 연결되었다.이시카와 다이치가 스피커폰으로 전환하자마자 전화기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이시카와 다이치는 흠칫 놀라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유키코, 나야. 이시카와 다이치. 너한테는 먼 사촌 오빠잖아!”“내가 지금 이시카와 그룹을 대표해 항성에 와서 계약을 하려고 하는데 아니 이상한 놈이 자꾸 날 모욕하고 괴롭히려고 하잖아!”“이놈이 우리 이시카와 가문한테 지나가는 개만도 못한 취급을 하고 있어!”“어떻게 우리 가문의 체면을 이렇게 짓밟을 수 있냐고!”“유키코, 네가 와서 꼭 이 억울함을 되갚아 줘!”이시카와 다이치는 모든 잘못을 하현에게 뒤집어씌우기로 작정을 한 것 같았다.하현에게 단단히 죄를 뒤집어씌워야만 이시카와 유키코가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사소한 일로 한 나라의 대사관 대표를 찾은 일이 되어 버려서 여간 창피해지는 게 아니었다.“이뿐만이 아니라 내 사람들이 이놈한테 뺨을 맞았어!”“이 사람들이 우리 섬나라 사람들을
”하현?!”전화기 맞은편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가 이시카와 유키코는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내뱉었다.“하 지회장?”하현이 짧게 대답했다.“맞아.”전화기 건너편에선 고요함만이 흘렀다.이시카와 유키코가 얼마나 충격을 받은 상태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섬나라 대사관 대표인 그녀는 누구보다 정보에 빨랐다.예를 들어 음류 검객 미야타 신노스케가 항성에서 하현에게 발에 걷어차 죽임을 당한 사실이라든가 신당류 검객 텐푸 쥬시로가 하현에게 쫓겨났다든가 하는 소식을 누구보다 빨리 전해 듣고 있었던 것이다.이시카와 유키코는 대구에 있을 때부터 하현을 아주 끔찍스럽게 두려워했다.게다가 이런 소식까지 들으니 하현에 대한 그녀의 두려움은 더욱 커졌던 터였다.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하현을 건드리지 말라고 섬나라 측에 신신당부했던 그녀였다.섬나라 측에서는 아직 하현을 상대할 만한 완벽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그런 상황에서 이유 없이 하현을 건드리면 더 치명적인 손해를 초래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순간 이시카와 유키코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냉랭함과 거만함이 사라지고 비위를 맞추려는 듯 나긋나긋 부드러운 기운이 물씬 풍겼다.“하 지회장님, 죄송합니다. 아랫사람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지회장님의 비위를 거슬렀습니다. 이 모든 게 이시카와 가문의 잘못입니다!”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시카와 유키코의 사과에는 진정성이 가득 묻어났다.이시카와 다이치 일행은 넋이 나가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어떻게 이시카와 유키코가 하현에게 고개를 숙이는가?비굴하기까지 한 저 자세는 또 뭔가?하 씨 성을 가진 이놈은 도대체 정체가 뭘까?하현은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이시카와 가문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지?”“어쨌든 당신들도 대단해. 대리점 계약에 하는 데 늦게 나타나서는 감 놔라 배 놔라 하다니 말이야!”“왜? 우리 대하 사람들이 겁먹을 줄 알았어?”“오늘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내가 내일 직접 이시카와 가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