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비서님. 오늘은 제가 잘못했습니다.”“저를 고소하시든 사람을 잡아가시든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장가연은 조금 두려웠지만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든 채 이시카와 다이치 일행을 바라보았다.“모든 일은 항도 재단과 이 남자와는 무관한 일입니다.”“이 사람이 관련이 있는지 여부는 당신이 뭐라 하든, 항도 재단이 뭐라 하든 상관없어요.”“하문성 회장님이 오시든 하구천 도련님이 오시든 아무 상관이 없어요!”그러자 콧수염을 기른 이시카와 다이치가 분통을 터뜨리려는 김 비서에게 만류하는 손짓을 했다.그는 두 손을 뒷짐지고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말할 수 없는 무거운 아우라가 느껴졌다.“오늘 이 일은 오직 이시카와 다이치 나만이 결정할 수 있어.”이시카와 그룹을 대표하여 이미 여러 차례 외국에 나가 협상을 하면서 그는 많은 나라의 여자들과 잠자리를 했고 적잖은 명문가 여자들로부터 협박에 가까운 구애도 받았다.중동 지역 일부 왕자들과는 의형제도 맺었다.그의 손이 닿는 곳에는 별이 뜨고 달이 떴다.모든 사람들이 그를 에워싸고 선망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런데 항성 재단 사람들이 그를 홀대하고 받들려 하지 않는다?게다가 오늘 부임한 집행총재가 그의 체면을 무시하는 것도 참을 수 없는데 일개 직원이 그의 체면을 세워 주지 않는다?허!이시카와 다이치는 음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당신들, 잘 들어. 오늘 해 보자구. 이제부터 누구도 여기서 나갈 수 없어!’“나 이시카와 다이치가 말한 거야!”그의 말이 떨어지자 그의 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하나같이 사나운 표정으로 하현을 주시했고 당장이라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그래?”“섬나라 사람들이 감히 우리 대하 땅에서도 이렇게 날뛸 수 있는 거야?”“해 보자고?”“그래. 나 오늘 여기 서 있을 테니 사람을 부르고 싶으면 더 불러. 능력이 있으면 날 제압해 봐. 그리고 당신 앞에 무릎 꿇려 보시든가!”“날
김 비서는 울면서 세상 억울한 표정을 지었다.마치 엄청난 손해를 입은 사람처럼 서러워했다.하지만 맞은편 상대에게 주소를 알려주고 난 뒤 전화를 끊은 그녀는 아무 일도 없었던 양 원래의 표독한 모습으로 되돌아왔다.“두고 봐! 감히 날 때리다니!”“우리 소주가 오시면 당신들은 이제 죽은 목숨이야!”“내 말 잘 들어. 오늘 여기서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어!”김 비서는 이시카와 다이치를 등에 업고 으름장을 놓았다.하현이 뭐라고 말을 하려 하자 장가연은 잔뜩 겁먹은 얼굴로 나섰다.“거기, 오빠! 됐어요. 그만해요! 일이 더 이상 커지면 곤란하니 가만히 있어요!”“그렇지 않으면 우리 모두 다 잘릴 거라구요!”장가연은 이시카와 측이 부른 사람이 누군지는 모르지만 항성과 도성 전역에서 ‘하 소주'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항도 하 씨 가문 사람밖에 없다는 걸 눈치챘다.항도 하 씨 가문 사람들이 온다면 분명 자신은 물론 하현도 끝장날 것이며 하수진조차도 목이 날아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것이다.어찌 되었건 그녀도 항성 사람이었다.항도 하 씨 가문의 젊은 세대들이 얼마나 파워가 있는지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이때 하수진은 덤덤한 표정으로 다가와 맞은편 이시카와 다이치 일행을 곁눈으로 흘겨보았다.장가연은 하수진이 회사 고위층일 거라는 건 눈치챘지만 구체적인 신원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일단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사장님, 오늘 이 일은 제가 모든 책임을 지겠습니다.”“원래 섬나라 사람들을 접객하는 것이 내 일인데 오늘 이렇게 되었습니다. 모두 제 탓입니다.”“회사에서 내리는 지침대로 따르겠습니다...”하현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 아무 일 없을 테니까.”“접객 업무를 맡은 건 맞지만 막무가내인 손님을 만나면 그렇게 하는 게 맞아요.”장가연을 비롯해 주변의 다른 여직원들은 하현의 말을 듣고 어리둥절했다.그녀들은 모두 하현이 왜 이렇게 자신 있게 말하는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하, 정
하은수가 나타난 것을 보고 장가연은 얼굴색이 변했다.하은수는 때때로 연예주간지나 재경일보에 가끔 얼굴이 실리는 인물이었다.항도 하 씨 가문 고위층들 중 장가연이 얼굴을 아는 몇몇 중의 하나였다.이시카와 다이치의 비서가 건 전화 한 통에 하은수 같은 거물급 인사가 나타날 줄은 아무도 몰랐다.김 비서는 하은수가 걸어오는 것을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한 채 얼른 달려와 한껏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서 와서 내 얼굴 좀 보세요. 방금 맞아서 벌겋게 부어서 말도 아니라구요!”“항도 재단 사람들은 완전히 선을 넘었어요. 저들은 반드시 이 일에 책임을 져야 해요!”김 비서는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하는 데 열을 올렸다.하은수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차갑게 입을 열었다.“항도 재단 사람들 간이 배 밖으로 나온 거야? 정말 대단들 하시군!”“설마 이시카와 도련님의 일행이 우리 하 소주의 귀빈이란 걸 모르시나?”“당신들은 하 소주의 귀빈들을 때린 거야? 보아하니 이번 일은 절대 그냥 넘겨서는 안 되겠어!”“누가 손모가지를 함부로 놀린 거야? 스스로 무릎 꿇고 어서 나오지 못해? 어서 이시카와 도련님에게 사과하고 스스로 손모가지를 부러뜨려! 그렇지 않으면 일은 더 커지게 될 거야!”장가연 등 여직원들은 모두 겁에 질려 어쩔 줄을 몰랐다.그때 하현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당신 말이 맞아. 오늘 이 일은 무릎 꿇고 사과하고 게다가 스스로 손목을 부러뜨리지 않으면 절대 끝나지 않을 거야!”하은수는 익숙한 목소리에 미간을 살짝 찌푸리며 말했다.“누구야?”순간 그는 몸을 휙 돌렸다.하은수의 시선이 하현과 하수진에게 꽂히는 순간 그는 흠칫 놀라더니 눈가에 미친 듯이 경련이 일어났다.하현은 차가운 얼굴로 하은수를 지그시 바라보다가 앞으로 나와 오른손을 뻗어 그의 얼굴을 툭툭 건드린 후 매서운 목소리로 말했다.“하은수, 당신이 상황을 점점 더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어, 알아?”“예전에 좋은 시절에는
하현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가 죽을 건지 아닌지는 하은수한테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거야.”“아직도 허세를 부리는 거야?”김 비서가 냉소를 지으며 나섰다.“어디서 굴러먹었는지 모르겠지만 감히 하구천의 이름 앞에서 허세를 부려? 당신 죽는 게 뭔지 모르는 모양이지!”“맞아. 우리 하 소주의 귀빈을 건드렸으니 아무리 저놈이 허세를 부린다고 해도 한주먹거리밖에 안 될 거야!”“한 마디 충고하겠는데 얼른 가서 항도 재단 집행총재인지 뭔지 불러와!”“3분 안에 나오지 않으면 끝이라고 집행총재한테 전해줘!”“입 닥쳐!”이때 하은수가 결국 나섰다.그가 한바탕 고함을 지르자 바로 뒤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했다.하은수가 왜 이렇게 화를 내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하은수 도련님, 내가 먼저 저놈을 날려버릴까요? 안 그래도 최근에 손이 근질근질했는데 잘 됐죠 뭐. 내 저놈을 그냥...”“퍽!”하은수는 손바닥을 휘둘러 입을 함부로 놀리는 남자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며 험한 얼굴로 말했다.“닥치라고 했잖아! 내 말 못 들었어?”“그리고 입만 열면 개자식, 개자식!”“누가 당신한테 하 세자를 함부로 모욕해도 된다고 했어?”“맞아 죽고 싶어? 아님 내가 죽는 꼴을 보고 싶어?”하은수는 조금도 봐줄 마음이 없는 표정이었다.그때 섬뜩한 소리가 울리더니 이 남자의 다리가 그 자리에서 부러졌다.하은수는 이마에 식은땀을 흠뻑 흘리며 난감한 기색을 한껏 드러낸 얼굴로 목소리를 낮추어 말했다.“당신인지 몰랐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하 소주의 명령이라 내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이 따를 수밖에 없었습니다.”“퍽!”하현은 손바닥을 휘둘러 하은수를 바닥에 넘어뜨리며 냉랭하게 말했다.“무릎을 꿇고 사과를 해. 그리고 한 손을 잘라. 그런 다음 내 눈앞에서 꺼져!”“네, 네. 알겠습니다. 하 세자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하은수는 더는 쓸데없는 말을 보태지 않고 그대로 돌아서
이시카와 유키코는 이시카와 가문 직계로서 대구에 있는 섬나라 대사관 대표였다.이시카와 가문의 젊은이들 중 가장 뛰어나다고 정평이 나 있는 인물이었다.게다가 섬나라 대사관 대표라는 직함은 모든 사람들을 압도할 수 있을 만한 신분이었다.어쨌든 그녀에게 미움을 산 사람은 섬나라에 미움을 사는 꼴이 되는 것이다.자칫하다가는 외교적인 사건으로 번질 수도 있다.그래서 지금 전화를 거는 이시카와 다이치의 표정이 어느 때보다 득의양양한 것이다.그런데 하현은 이시카와 유키코의 이름을 듣자마자 왠지 낯이 익었다.순간 하현의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대구에 있을 때 자신이 그 여자의 뺨을 때린 것이 기억난 것이다.하지만 이시카와 다이치가 그녀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영영 잊힐 이름이었다.하현은 막을 생각도 없이 덤덤한 표정으로 이시카와 다이치가 상대방의 목소리를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았다.전화는 곧 연결되었다.이시카와 다이치가 스피커폰으로 전환하자마자 전화기 건너편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누구세요?”이시카와 다이치는 흠칫 놀라며 다급하게 입을 열었다.“유키코, 나야. 이시카와 다이치. 너한테는 먼 사촌 오빠잖아!”“내가 지금 이시카와 그룹을 대표해 항성에 와서 계약을 하려고 하는데 아니 이상한 놈이 자꾸 날 모욕하고 괴롭히려고 하잖아!”“이놈이 우리 이시카와 가문한테 지나가는 개만도 못한 취급을 하고 있어!”“어떻게 우리 가문의 체면을 이렇게 짓밟을 수 있냐고!”“유키코, 네가 와서 꼭 이 억울함을 되갚아 줘!”이시카와 다이치는 모든 잘못을 하현에게 뒤집어씌우기로 작정을 한 것 같았다.하현에게 단단히 죄를 뒤집어씌워야만 이시카와 유키코가 움직일 거라고 생각했던 것이다.그렇지 않으면 사소한 일로 한 나라의 대사관 대표를 찾은 일이 되어 버려서 여간 창피해지는 게 아니었다.“이뿐만이 아니라 내 사람들이 이놈한테 뺨을 맞았어!”“이 사람들이 우리 섬나라 사람들을
”하현?!”전화기 맞은편에서 잠시 정적이 흘렀다가 이시카와 유키코는 어리둥절한 목소리로 내뱉었다.“하 지회장?”하현이 짧게 대답했다.“맞아.”전화기 건너편에선 고요함만이 흘렀다.이시카와 유키코가 얼마나 충격을 받은 상태인지 짐작할 수 있었다.섬나라 대사관 대표인 그녀는 누구보다 정보에 빨랐다.예를 들어 음류 검객 미야타 신노스케가 항성에서 하현에게 발에 걷어차 죽임을 당한 사실이라든가 신당류 검객 텐푸 쥬시로가 하현에게 쫓겨났다든가 하는 소식을 누구보다 빨리 전해 듣고 있었던 것이다.이시카와 유키코는 대구에 있을 때부터 하현을 아주 끔찍스럽게 두려워했다.게다가 이런 소식까지 들으니 하현에 대한 그녀의 두려움은 더욱 커졌던 터였다.부득이한 상황이 아니라면 하현을 건드리지 말라고 섬나라 측에 신신당부했던 그녀였다.섬나라 측에서는 아직 하현을 상대할 만한 완벽한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었다.그런 상황에서 이유 없이 하현을 건드리면 더 치명적인 손해를 초래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순간 이시카와 유키코의 목소리에는 더 이상 냉랭함과 거만함이 사라지고 비위를 맞추려는 듯 나긋나긋 부드러운 기운이 물씬 풍겼다.“하 지회장님, 죄송합니다. 아랫사람들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지회장님의 비위를 거슬렀습니다. 이 모든 게 이시카와 가문의 잘못입니다!”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는 이시카와 유키코의 사과에는 진정성이 가득 묻어났다.이시카와 다이치 일행은 넋이 나가 그 자리에서 얼어버렸다.어떻게 이시카와 유키코가 하현에게 고개를 숙이는가?비굴하기까지 한 저 자세는 또 뭔가?하 씨 성을 가진 이놈은 도대체 정체가 뭘까?하현은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이시카와 가문은 이 일을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지?”“어쨌든 당신들도 대단해. 대리점 계약에 하는 데 늦게 나타나서는 감 놔라 배 놔라 하다니 말이야!”“왜? 우리 대하 사람들이 겁먹을 줄 알았어?”“오늘 제대로 처리하지 않으면 내가 내일 직접 이시카와 가문
이튿날 아침.가든 별장에서 막 잠에서 깬 하현은 항도 재단에서 회의 통지를 받았다.하수진이 그를 데리고 항도 재단 회의실로 왔을 때 회의실 전체가 사람들로 꽉 찬 것을 보았다.어제 만난 임원들 외에 몇 명이 더 나와 있었다.가운데 앉아 있는 사람은 항도 하 씨 가문 큰아들이자 항도 재단의 회장인 하문성이었다!하구천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전체 항도 하 씨 가문에서 상당히 중요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었다.하문성이 앉아 있는 모습에 하수진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하문성에게 전에 느껴본 적 없는 적개심이 느껴졌다.하지만 하현은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않은 채 주위를 둘러보며 인사를 했다.“좋은 아침입니다. 오늘 왜 이렇게 많이들 오신 겁니까? 누구 손목이라도 절단되는 거 구경이라도 하러 오신 건가요?”“회장님, 안녕하십니까? 제가 바로 고문으로 온 하현입니다!”하문성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맹효남이 먼저 일어나 기세등등하게 하현을 향해 손가락질을 했다.“하수진이 집행총재 자리에 앉는 바람에 내가 이시카와 그룹과 맺은 계약이 깨졌어요.”“어제 하현은 마구 생트집을 잡아 날 몰아붙였구요. 내가 일을 잘 못한다며 항도 재단에서 내쫓으려 했어요!”“난 승복하지 않고 재단의 이익을 위해 하현과 내기를 했어요. 하현이 이시카와 그룹과 계약 건에 대해 담판을 짓게 했죠.”“오늘까지 이시카와 그룹과의 계약을 따내면 내가 진 걸로 하기로 약속했어요.”“저도 원래는 재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다 괜찮다고 생각했어요.”“하지만 어제 오후 이곳에서 이시카와 다이치를 만난 하현은 제멋대로 오만방자하게 굴었을 뿐만 아니라 이시카와 다이치의 비서를 때렸어요. 결국 빈손으로 이시카와 다이치를 돌려보냈죠. 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생각이나 했겠어요?”“이제 모든 것이 끝났어요. 이시카와 다이치 같은 사람이 어떻게 우리 항도 재단이랑 협력하려고 하겠냐고요?”“그 계약 건은 분명 우리 경쟁자에게 돌아갈 거예요!”“그래서 저는 감
”콜록콜록.”오십 대 후반쯤으로 보이는 얼굴에 금테 안경을 쓰고 온몸에는 고위층의 기품을 한껏 뿜어내는 하문성은 가볍게 헛기침을 하며 주위를 환기시켰다.그리고 그는 똑바로 앉아 잠시 눈앞의 자료를 훑어본 후에야 눈을 가늘게 뜨고 하수진을 바라보았다.“수진아, 맹 부장이 방금 말한 것이 모두 사실이냐?”“해명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 해 봐.”그는 하현에게 직접 묻지 않았다.왜냐하면 이 회의장에서 당장 스포트라이트를 주기에는 하현의 위치가 약간 어정쩡했기 때문이었다.그래서 하문성은 일부러 하수진에게 물은 것이다.“맹 부장이 말한 것은 기본적으로 사실입니다.”하수진은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하지만 하현이 그렇게 한 이유를 간과했어요.”“그것은 이시카와 다이치 일행이 우리 지역에서 우리 재단의 직원을 때렸다는 거예요.”“하현이 보기에 그 행동은 분명 부적절한 것이었기 때문에 정의를 수호하기 위해 이시카와 다이치 일행에게 훈계의 일환으로 그런 행동을 한 거예요.”“이 일은 하현이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해요.”“하현이 이 일에 책임이 있다고 회장님께서 생각하신다면 저는 어떤 결과가 나오든 책임지겠습니다.”“어쨌든 그의 말은 저의 말을 대변하는 것이고 그의 행동은 저의 행동을 대변하는 거라고 제가 말했으니까요.”“제가 한 말은 책임져야죠.”하현은 흥미로운 듯 하수진을 쳐다보았다.이 여자에게 이런 박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이때 맹효남이 끼어들었다.“하 총재, 이시카와 도련님 같은 재벌 2세는 원래 제멋대로예요.”“내가 몇 번이나 그에게 뺨을 맞았는데 한 번이라도 뭐라고 했겠습니까? 직원 한둘이 뺨을 좀 맞은 걸 가지고 뭘 그래요? 그들이 나와 같은 대접을 받았다면 뭐 그 직원들에겐 영광이지요!”“이시카와 도련님이 계약만 해 준다면 내 뺨이 문제겠습니까? 날 밟아버린다고 해도 재단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감당할 수 있는 문제지요!”“어쨌든 당신도 장사꾼인데 이런 도리도 몰라요?”“이까짓 것 하
30분 후, 하현의 일행과 양호남의 일행이 양 씨 가문 장원의 대청에 모였다.양 씨 가문 장원은 산과 물을 따라 지어져 있었으며 남양 지역 특색의 건축 양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대하의 강남 스타일과 북유럽의 건축양식이 잘 어우러져 건축가의 웅장한 이상과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안타깝게도 지금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은 이미 위태로워져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대청홀은 200평방미터 가까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는 귀한 침향목 의자가 놓여 있었다.양옆에는 황화목으로 만든 의자가 늘어져 있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하현 일행이 자리를 잡자마자 뒤쪽에서 일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대여섯 명의 남녀가 백발이 성성한 노부인을 둘러싸고 걸어 나왔다.이 노부인은 몸집이 약간 작고 등이 구부러져 있었으며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전체적으로 매우 야윈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꼿꼿하게 날이 서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외부인인 하현에게 떨어졌다.마치 예리한 침으로 정곡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이라 하현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만들었다.의심할 여지없이 이 사람은 양 씨 가문 안주인이자 양제명의 아내였다.곧이어 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자손들이 나타났다.그들은 모두 구석에 서서 기웃거렸다.다만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을 바라볼 때는 눈에서 혐오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특히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 몇 명은 양유훤이 머리가 나쁘거나 안목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입을 삐죽거렸다.하현처럼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을 데려오다니!그녀들은 양 씨 가문은 절대 양유훤이 데려온 저 남자를 데릴사위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들의 고귀한 가풍이 더럽혀지면 안 될 일이다!“할머니!”양호남, 양신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노부인은 이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의자에 가서 앉았다.그런 다음
하현은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성격상 이런 굴욕적인 요구를 들어줄 리 없었다.양유훤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들은 할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날 위협하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양호남 일행에게 차가운 눈빛을 떨어뜨렸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만약 자신이 떠났더라면 양유훤 혼자 저들에게 마음대로 휘둘렸을지도 모른다.하현의 눈빛을 본 양호남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뭘 봐? 우리 집안의 손해가 이렇게 막대한데 대가를 치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당연한 거야!”“양호남의 수법이 다소 과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잘못은 양유훤이 한 거야!”염소 수염을 한 양 씨 가문 어른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우리 양 씨 가문의 위치가 예전 같지 않아!”“어렵게 페낭 무맹과의 협력을 이뤄냈는데 양유훤 때문에 망치게 생겼어!”“난 방금 전까지도 양유훤을 살짝 동정하는 마음이 있었어!”“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남자는 거리낌 없이 사람을 때렸어!”“이런 남자를 선택하다니 앞으로 양유훤이 어떻게 되겠어?”“아주 개념 없는 연놈들이야!”“우리는 어서 양유훤을 양 씨 가문에서 출가시켜 다시는 우리 가문의 체면을 구기지 못하게 해야 해!”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양유훤은 눈살을 찌푸렸다.자신 때문에 페낭 무맹의 납품권이 사라지게 된 것에는 부인하지 않았다.하지만 여수혁에게 시집가라고 강요하고 양제명을 독살하려 한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양호남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수백억의 납품권을 위해서.”“집안사람을 강제로 시집보내고.”“그것도 모자라 할아버지까지 독살하려 했어.”“양 씨 가문은 정말 단결력이 강하고 우애도 깊군.”“뭐라고!”양호남의 안색이 살짝 변하며 흠칫했다.“할아버지를 독살하려 했다니?!”“우린 사람을 보내 할아버지를 돌보게 했을 뿐이
양유훤을 다독인 후 하현은 양호남에게 냉담한 시선을 떨어뜨렸다.이제야 하현은 양유훤이 왜 자신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집안사람들의 천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여라도 하현이 위험에 빠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개자식! 어디서 튀어나온 망나니 같은 놈이 감히 우릴 때려?”이때 양신이가 정신을 차리며 얼굴을 가린 채 허우적거리며 일어나 입을 열었다.“죽여버릴 거야!”“당신 같은 연놈들은 칠흑 같은 감옥에 갇혀 평생을 고통스럽게 썩어야 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치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구!”“아하, 당신이 양유훤이 말한 그 남자 맞지?”양호남도 역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감싸쥐고 일어나 이를 갈며 울부짖었다.“이 개자식아! 여자는 수치도 모르고 남자는 제멋대로구만! 짐승만도 못한 것들!”양호남은 하현을 죽이기 위해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지만 하현의 행동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잘 알고 있어서 그저 하현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됐어! 이 개 같은 연놈들한테 쓸데없는 소리 해 봐야 소용없어. 관청에 보고하고 그들을 끌어내면 돼!”머리를 풀어헤친 양신이도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내가 저 연놈들을 가만히 두면 성을 갈겠어!”“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하현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손을 뻗어 양유훤의 몸에 몇 개의 혈을 짚으며 그녀의 상처와 통증을 완화시킨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양유훤은 잠시 망설였지만 그동안의 일들을 사실대로 말했다.그녀는 원래 하현이 이 일에 개입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하현이 이미 이곳에 나타났으니 그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이렇게 된 이상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하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어젯밤에 양유훤이 당신 같은 뻔뻔한 남자를 위해 여수혁을 다치게 했어!”“오늘 아침, 여수혁의 아버지이자 페낭 무맹의 부맹주이신 여영창 어르신이 우리 양 씨 가문을 찾
”개자식!”자신의 여동생이 뺨을 맞고 날아가는 것을 본 양호남은 욕설을 퍼부으며 반사적으로 앞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매서운 표정으로 양호남의 목을 조른 뒤 그의 머리를 눌러 가장자리에 있던 대리석 테이블 위에 찧어 버렸다.양호남은 저절로 절을 하는 꼴이 되었고 ‘퍽'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의 찻잔이 그대로 으스러졌다.양호남의 머리에선 피가 철철 흘렀다.하현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양호남을 발로 차 내동댕이쳐서 날려버렸다.한쪽에 서 있던 양 씨 가족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이때 그중 한 명이 의자를 들쳐업고 하현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눈길도 주지 않고 손바닥을 날려 그를 내동댕이쳤고 뒤이어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차례로 손바닥을 날려 쓰러뜨렸다.이 모든 것이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사람들과 그들의 경호원들이 얼굴이 붓고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어이, 젊은이, 당신이 어떤 경력이 있든 어떤 묘수가 있든 간에!”“이곳은 양 씨 가문 땅이야!”“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이라구!”“개나 소나 다 마음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구!”전통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셋째 집안 어른이 나서서 의젓한 표정으로 하현을 호통쳤다.“우리 사람을 때리고 다치게 하다니! 도대체 당신 눈엔 법도 뭣도 안 보이는 거야?”“이 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당신...”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은 셋째 집안 어른의 잔소리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손바닥을 휘갈겼다.“양호남 무리들이 손찌검을 할 때는 왜 제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나한테는 법 운운하시겠다?”“지금 뛰쳐나와서 그런 얘기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의 말에 이번에는 수염을 기다랗게 기른 또 다른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양호남은 뻔뻔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안사람들을 혼내려 했을 뿐, 그 방법이 좀 과격하다고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