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 하현은 모든 진실을 손에 다 쥐고 있었다.일련의 의혹들이 있었던 일들에 대해 하현이 증거를 제시하자 맹효남의 얼굴은 그야말로 새하얗게 핏기를 잃어갔다.그는 자신이 한 일이 매우 은밀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그런데 뜻밖에도 하현이 이 모든 일을 폭로하다니!“마케팅 매니저는 매년 수억 원의 연봉을 받아요. 다른 임원들과는 비교도 안 되는 액수죠.”“하지만 당신은 그에 만족하지 않았고 매일 유흥으로 먹고 마시며 그 경비를 회사에 청구한 셈이었죠.”“노고가 아주 많았다는 증거죠!”“인정, 인정합니다!”“그런데 그렇게 고생을 했으면 계약 건 하나쯤은 따왔어야죠, 안 그렇습니까?”“그것도 못 따내면 당신이 말하는 노고에 얼마나 많은 과오가 있었는지 의심해 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그렇게 젖과 꿀이 흐르는 자리에 앉았으면서도 잘못을 저질렀다면 그 자리는 당연히 다른 사람에게 내놓으셔야죠!”하현은 맹효남의 연봉을 까발렸을 뿐만 아니라 그의 방탕한 윤리의식까지 폭로한 것이다.그러자 모든 임원들의 눈동자가 반짝거렸다.재단에서 복지 차원으로 얼마의 카드값을 지원받은 적은 있지만 그것도 기껏해야 한 달에 몇백만 원 정도였다.지금 들어보니 자신들이 일 년 치 정도 받을 지원금을 맹효남은 하룻밤에 먹고 마신 것이었다.갑자기 모두들 너무 기분이 불쾌해졌다.왜 맹효남은 별로 하는 일도 없으면서 재단에서 이런 대우를 받으며 함부로 행동할 수 있는 것인가?수입은 또 어떤가?그들의 몇 배는 더 되었던 것이다.임원들은 복잡한 심경으로 맹효남을 떨떠름하게 쳐다보았다.어떤 사람은 이 틈새를 어떻게 비집고 들어가 저 자리를 차지할 것인가를 궁리하고 있었고 또 어떤 이는 이 혼란 중에 어디에 서야 이익이 떨어질 것인가를 저울질하기 바빴다.굶주린 늑대의 눈빛을 한 임원들의 시선에 맹효남은 어쩔 줄을 몰랐다.하 씨 성을 가진 저놈이 어디서 저런 자료를 입수했는지 도저히 알 길이
회의실에 있던 많은 사람들은 이 장면을 보고 정신이 혼미해졌다.도저히 믿으려야 믿을 수 없는 광경이었다.항도 재단에서 가장 거칠고 다루기 힘든 맹효남이 이렇게 하현에게 뺨을 맞고 머리를 숙일 줄이야!처음에는 하수진과 하현이 얼마나 위엄을 떨치며 버티나 두고 볼 심산이었다.그런데 이렇게 눈 깜짝할 사이에 전세가 역전되어 맹효남이 비굴하게 사과를 할 줄은 몰랐다.너무도 급박한 전개에 사람들은 벌린 입을 다물지 못했다.하수진을 향해 비웃던 사람들은 지금 모두 놀라서 어안이 벙벙했다.모든 사람들이 정신줄을 놓고 있던 그때 하현이 단호하게 입을 열었다.“자신이 무능하다는 걸 알았으면 그걸로 됐어요.”“당신에게 사흘을 드리겠습니다.”“사흘 안에 이시카와 그룹과의 계약을 성사시키십시오. 그러면 그에 합당한 인센티브를 드릴 겁니다.”“당신이 더 높은 연봉을 원한다면 연봉을 올려드리죠.”“하지만 이시카와 그룹을 잡지 못한다면 그만두셔야 합니다. 이의 없죠?”“물론 다른 임원들 중 혹시 이시카와 그룹과의 계약에 자신이 있는 사람은 얼마든지 시도해 봐도 좋습니다.”“누가 이기든 맹 매니저의 모든 대우를 그대로 물려받게 될 겁니다.”“제가 말한 것은 반드시 지켜질 것이니 그렇게들 아십시오!”“뭐라고?!”하현의 말이 끝나자 회의실은 여기저기서 웅성거리는 소리들로 꽉 찼다.이전에는 다들 맹효남의 연봉을 몰랐고 그런 연유로 질투하는 사람도 별로 없었다.하지만 맹효남의 연봉과 인센티브가 까발려진 지금 자신의 몇 배를 받는 맹효남을 어찌 질투하지 않겠는가?회의실에 모인 사람들은 처음 이곳에 들어올 때의 목적은 깡그리 잊어버리고 모두 이시카와 그룹과의 계약을 차지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다.하수진에게 달려들며 드러내었던 날카로운 발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맹효남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한 채 이를 부득부득 갈았다.눈앞에 서 있는 하현을 갈기갈기 찢어 죽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이 개자식! 오랑캐 같은 자식!찢
”뭐? 한 손? 손을 내놓으라고?”맹효남은 속에서 악이 솟아올라 벼락같이 화를 내었다.“지금 한 말 꼭 지켜! 그대로 약속 지키라고!”“하루 만에 계약을 따내겠다? 흥! 만약에 당신이 하루 만에 계약을 따낸다면 당신이 나한테 손을 쓸 필요도 없어. 내가 직접 당신한테 내 손목을 갖다 바칠 테니까!”“그런데 만약 당신이 계약을 따내지 못한다면 당신들 두 사람 다시는 여기서 코빼기도 보이지 않길 바라!”“딱 그대로 지켜! 여기 있는 모든 사람들이 증인이야!”“말한 대로 지키지 않는다면 그야말로 짐승 새끼야! 알았어?!”회의장 전체가 조용해졌다.처음 만남이 이런 결말로 끝날 줄은 아무도 몰랐다....30분 후 집행총재 사무실.사무실은 단지 백여 평 남짓 큰 편은 아니었다.급하게 준비한 관계로 안에는 별로 장식품도 없이 책걸상 한 벌과 소파 한 벌이 있을 뿐이었다.하지만 이곳은 바다를 향해 있고 따뜻한 봄 햇살이 가득 들어와 하현은 매우 만족스러웠다.그는 소파에 기대어 눈을 가늘게 뜨고 멀리 수평선을 담담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오늘 고마웠어.”하수진은 손수 차 한 잔을 우려내어 하현에게 건넸다.“당신이 나서지 않았다면 아마 더 큰 손해를 봤을 거야.”“당신이 손해를 본다고?”하현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하수진을 힐끔 쳐다보며 말했다.“아마 당신은 어떻게 단숨에 그들을 제압할지 진작에 생각해 두었던 것 같은데?”“내가 당신을 도운 것은 당신의 계획을 좀 더 명확하게 진행하기 위해서였어.”“노부인 생신도 얼마 안 남았고.”하수진은 소리 없이 웃으며 찻잔을 입으로 가져갔다.“내가 들은 바에 의하면 이시카와 그룹은 상대하기 쉽지 않아.”“이시카와 가문은 이시카와 그룹 전체를 장악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금 그들이 만든 제품은 세계를 휩쓸고 있어.”“게다가 이시카와 가문에는 많은 사람들이 정계에 진출해 있어. 이시카와 집안사람이 대구에서 섬나라 대사관 대표로 앉아 있다더군.”
”그게 무슨 말이야?”하수진은 눈썹을 찡그리며 어리둥절해했다.하현이 무슨 생각을 가지고 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오늘 오후에 이시카와 그룹 사람들과 만나기로 약속 잡자고.”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이시카와 사람들이 올 거라고 생각해?”“꼭 올 거야.”하현은 단호하게 말했다.“내가 이미 말하지 않았어? 이시카와 그룹은 줄곧 대하에 진출하려고 했지만 기회를 찾지 못했을 뿐이라고.”“박리다매라는 건 본질적으로 덤핑으로 물건을 내다판다는 거야.”“국가 차원에서도 기업 차원에서도 허용되지 않지.”“한 나라의 상품 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야.”“가전제품은 생필품인데 외세 상품이 덤핑으로 몰려오면 자국의 기업들이 불안해지고 민생과 사회도 불안해져.”“간단히 말해 이시카와 그룹이 우리 대하 시장에 뛰어든 것은 좋은 마음에서 하려는 게 아니라고.”“그래서 이시카와 측도 대하 쪽 일을 도모했을 때 이시카와 정도의 가문이나 기업이 덤핑과도 같은 이런 사업을 성사시키는 데는 스스로 힘이 부족하다는 걸 잘 알고 있었어.”“그들에게 그런 힘과 권력을 부여해 줄 사람은 대하에서 몇 집 안 돼.”“이런 상황에서 항도 하 씨 가문이 그들에게 손을 내밀자 이시카와 그룹은 속으로 쾌재를 불렀을 거야.”“계약을 계속 미루고 있는 것은 자꾸 이렇게 질질 끌면서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을 더 붙이려는 속셈인 거지.”“안타깝게도 맹효남은 먹고 마시고 계집질하는 것 외엔 아무것도 아는 게 없어.”“멍청한 맹효남이 아직 계약서에 사인을 하지 않은 게 오히려 다행이야.”“그렇지 않았다면 항도 재단에 아주 불리한 계약을 체결했을지도 몰라.”“하나가 잘못되면 항도 하 씨 가문이 모든 화살을 다 받게 되어 있어. 그러면 훗날 항도 하 씨 가문은 만인의 멸시를 받게 될 거야.”하현의 말을 들은 하수진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놀라고 당황스러워했다.“그럼 우린 이 계약을 어떻게 해야 해? 그래도 성사시켜야 해?”“물론
오후 3시 정각.하수진과 하현 두 사람은 항도 재단 회의실에 도착했다.하현은 섬나라 사람들과 기싸움을 할 의도는 없었지만 3시에 만나기로 약속했으니 반드시 제시간에 도착하고 싶었다.그것이 비즈니스의 가장 기본적인 규칙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회의실에 들어서기도 전에 안에서 맑고 찰진 소리가 울려 퍼졌다.“촥!”“개자식! 감히 우리 이시카와 대표님을 여기서 5분이나 기다리게 하다니!”“항도 재단 사람들은 시간 개념도 없어?”“3시에 만나기로 했으면 최소 한 시간 전에는 도착해 있어야 한다는 거 몰라?”“당신들이 이렇게 시간 개념이 없기 때문에 우리 섬나라에 영원히 눌릴 수밖에 없는 거야! 알아?”“만약 그 여자가 제때에 도착하지 못한다면 그 여자와 당신들 항도 재단은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할 거야!”하현과 하수진은 눈살을 가득 찌푸렸다.하현의 추정에 의하면 이시카와 그룹은 항도 재단과 계약을 맺고 싶어 한다.통상적으로 봤을 때 이시카와 사람들의 이런 태도는 납득하기 어려운 불손하기가 이루 말할 데 없는 것이었다.어쨌든 궁한 쪽은 이시카와 그룹이었다.그런데 이런 태도를 보인다니!이시카와 그룹 사람들이 얼마나 제멋대로인지 말하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회의실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하현은 항도 재단 여직원 십여 명이 얼굴을 맞아 벌겋게 된 것을 보았다.여직원들은 고개를 숙이고 감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서 있었다.맞은편에는 의기양양하고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가 일곱여덟 명쯤 있었다.화려한 옷을 입은 이 남녀들은 콧수염이 난 섬나라 남자를 에워싸고 있었다.이 섬나라 남자는 기껏해야 스물서너 살쯤 되어 보였다.몸집은 그리 크지 않지만 그의 얼굴에는 천하를 발아래 두고 있는 듯한 안하무인의 기운이 가득 드리워져 있었다.하수진은 재빨리 자료를 훑어보며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시카와 다이치, 이시카와 가문의 직계 계승자 중 한 명으로 이번 계약의 업무 책임자야. 젊은 세대 중
”일찍 왔다는 건 그만큼 똑똑하다는 뜻이고 이미 뭔가 특별한 냄새를 맡았다는 뜻이야.”하현이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오늘 오후 3시까지 오지 않으면 우리는 그들과 업무 협약을 완전히 끊을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다는 거지.”“어째서?”하수진은 미간에 살짝 주름을 지으며 물었다.“당신과 맹효남의 약속에 따르면 하루 안에 이 계약 건을 성사시키지 못하면 당신은 이 자리에서 물러나야 해.”“애가 타는 건 당신과 내 쪽이잖아?”“누가 애가 탄대?”하현이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난 계약권을 성사시킨다고 했지 언제 누구와 계약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잖아?”“만약 그가 오지 않는다면 이 일은 성사되지 않는 거야. 최악의 경우 내가 전화 한 통 하면 돼. 내일 아침 이시카와 가문 수장이 내 앞에 무릎 꿇고 계약해 달라고 애원하게 할 수도 있어.”표정 하나 변하지 않고 이런 말을 하는 하현을 보고 하수진은 기세등등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새삼 깨닫게 되었다.하현과 하수진은 잠시 이야기를 나눈 후 여직원들 앞으로 다가갔다.그러자 금테 안경을 쓴 비서처럼 보이는 여자가 그들에게 다가와서 거만하게 입을 열었다.“아주 낯짝이 두꺼운 걸 보니 항도 재단 책임자가 맞는 모양이군요.”“오늘 아침 이시카와 도련님에게 전화해 오늘 오후 3시에 나타나지 않으면 계약 건은 없는 걸로 한다고 한 거 맞습니까?”“당신들 농담하는 거예요?”“머리가 좀 이상하게 된 거 아니에요?”“우리 이시카와 그룹의 제품이 전 세계적으로 잘 팔리는 건 둘째치고요!”“우리 이시카와 도련님 정도의 신분이라면 당신네 일개 재단 사람들이 함부로 이래라저래라 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거 몰라요?!”“당신들 뒤에 항도 하 씨 가문이 받치고 서 있다고 해도 이럴 수는 없죠!”“오늘 우리는 당신들한테 할 말이 있어서 제시간에 여기 온 거예요!”“이 계약 건은 당신들이 하기 싫더라도 꼭 해야 해요.”“계약 내용은 오직 하나, 항도 재단이 대하 권역에서 이시
참다못한 항도 재단 여직원이 이시카와 그룹 여비서를 가리키며 대들었다.“항성은 우리 대하 땅인데 섬나라 사람들이 무슨 근거로 우리 땅에서 함부로 날뛰는 거예요?”“어? 감히 우리한테 말대꾸를 해? 이 까짓 게!”여비서의 얼굴이 매섭게 일그러졌다.“무슨 근거냐고? 우리 섬나라 사람들은 당신네들보다 잘났으니까. 우리 이시카와 그룹 제품이 전 세계적으로 잘 팔려서 말 한마디면 당신네들 매장시켜 버릴 수 있으니까!”“왜?”“불쾌해?”“불쾌하면 때려 보시든지!”“감히 날 때린다고? 그럼 정말 존경스러울 것 같은데!”여비서는 자신의 오른쪽 얼굴을 그 여직원에게 들이대며 한껏 도발적인 자세를 취했다.“퍽!”하현이 한 걸음 앞으로 다가와 직접 손바닥을 들어 여비서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이런 해괴한 요구는 처음 들어보는군. 때려 달라는 말 여기 있는 모두가 들었어.”“그래, 내가 때렸어. 이제 일이 심각해진 건가?”거칠 것 없이 당당했던 이시카와 그룹 여비서는 코와 입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얼굴엔 벌건 손자국이 나 있었다.그녀는 완전히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뭐라고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이곳에서 감히 자신을 건드릴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것이다.이시카와 그룹 사람들은 자사 제품이 전 세계적으로 잘 팔린다는 자신감에 취해 마구 날뛰며 행동했다.그런데 어디 가서 이런 홀대를 받았겠는가?지금 섬나라 사람들은 하나같이 정신이 혼미해졌다.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그들은 자신들에게 이런 일이 닥칠 줄은 한 번도 상상하지 못했다.이시카와 그룹이 전 세계 인맥을 통해 항도 재단을 매장시켜 버릴 수도 있는데 도대체 항도 재단은 두렵지도 않단 말인가?여비서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비틀거리며 일어나 하현을 가리키더니 화를 참지 못하고 버럭 소리를 질렀다.“개자식아! 감히 날 때려?”“퍽!”하현이 손바닥을 휘둘러 여비서의 얼굴을 쳤고 여비서는 다시 비틀거리며 넘어졌다.“
”김 비서님. 오늘은 제가 잘못했습니다.”“저를 고소하시든 사람을 잡아가시든 제가 다 책임지겠습니다.”장가연은 조금 두려웠지만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든 채 이시카와 다이치 일행을 바라보았다.“모든 일은 항도 재단과 이 남자와는 무관한 일입니다.”“이 사람이 관련이 있는지 여부는 당신이 뭐라 하든, 항도 재단이 뭐라 하든 상관없어요.”“하문성 회장님이 오시든 하구천 도련님이 오시든 아무 상관이 없어요!”그러자 콧수염을 기른 이시카와 다이치가 분통을 터뜨리려는 김 비서에게 만류하는 손짓을 했다.그는 두 손을 뒷짐지고 한 걸음 앞으로 나왔다.말할 수 없는 무거운 아우라가 느껴졌다.“오늘 이 일은 오직 이시카와 다이치 나만이 결정할 수 있어.”이시카와 그룹을 대표하여 이미 여러 차례 외국에 나가 협상을 하면서 그는 많은 나라의 여자들과 잠자리를 했고 적잖은 명문가 여자들로부터 협박에 가까운 구애도 받았다.중동 지역 일부 왕자들과는 의형제도 맺었다.그의 손이 닿는 곳에는 별이 뜨고 달이 떴다.모든 사람들이 그를 에워싸고 선망의 시선으로 그를 바라보았다.그런데 항성 재단 사람들이 그를 홀대하고 받들려 하지 않는다?게다가 오늘 부임한 집행총재가 그의 체면을 무시하는 것도 참을 수 없는데 일개 직원이 그의 체면을 세워 주지 않는다?허!이시카와 다이치는 음산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당신들, 잘 들어. 오늘 해 보자구. 이제부터 누구도 여기서 나갈 수 없어!’“나 이시카와 다이치가 말한 거야!”그의 말이 떨어지자 그의 주변에 있던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하나같이 사나운 표정으로 하현을 주시했고 당장이라도 못 잡아먹어서 안달인 듯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그래?”“섬나라 사람들이 감히 우리 대하 땅에서도 이렇게 날뛸 수 있는 거야?”“해 보자고?”“그래. 나 오늘 여기 서 있을 테니 사람을 부르고 싶으면 더 불러. 능력이 있으면 날 제압해 봐. 그리고 당신 앞에 무릎 꿇려 보시든가!”“날
30분 후, 하현의 일행과 양호남의 일행이 양 씨 가문 장원의 대청에 모였다.양 씨 가문 장원은 산과 물을 따라 지어져 있었으며 남양 지역 특색의 건축 양식으로 가득 차 있었다.대하의 강남 스타일과 북유럽의 건축양식이 잘 어우러져 건축가의 웅장한 이상과 포부를 엿볼 수 있었다.안타깝게도 지금 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은 이미 위태로워져서 언제 무너질지 모른다.대청홀은 200평방미터 가까운 넓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었고 그 한가운데는 귀한 침향목 의자가 놓여 있었다.양옆에는 황화목으로 만든 의자가 늘어져 있어 고급스러움을 더하고 있었다.하현 일행이 자리를 잡자마자 뒤쪽에서 일련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대여섯 명의 남녀가 백발이 성성한 노부인을 둘러싸고 걸어 나왔다.이 노부인은 몸집이 약간 작고 등이 구부러져 있었으며 손에는 지팡이를 들고 있었다.전체적으로 매우 야윈 모습이었지만 눈빛만은 꼿꼿하게 날이 서 있었다.그녀의 시선은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외부인인 하현에게 떨어졌다.마치 예리한 침으로 정곡을 찌르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이라 하현의 눈살을 절로 찌푸리게 만들었다.의심할 여지없이 이 사람은 양 씨 가문 안주인이자 양제명의 아내였다.곧이어 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자손들이 나타났다.그들은 모두 구석에 서서 기웃거렸다.다만 하현과 양유훤 두 사람을 바라볼 때는 눈에서 혐오스러운 기색이 역력했다.특히 예쁘장하게 생긴 여자들 몇 명은 양유훤이 머리가 나쁘거나 안목이 형편없는 사람이라고 여기며 입을 삐죽거렸다.하현처럼 어디에도 내놓을 수 없는 사람을 데려오다니!그녀들은 양 씨 가문은 절대 양유훤이 데려온 저 남자를 데릴사위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그녀들의 고귀한 가풍이 더럽혀지면 안 될 일이다!“할머니!”양호남, 양신이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앞으로 나와 인사를 했다.노부인은 이 사람들을 아랑곳하지 않고 혼자 의자에 가서 앉았다.그런 다음
하현은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성격상 이런 굴욕적인 요구를 들어줄 리 없었다.양유훤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들은 할아버지의 목숨을 가지고 날 위협하고 있어.”하현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양호남 일행에게 차가운 눈빛을 떨어뜨렸다.양 씨 가문 사람들이 정말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만약 자신이 떠났더라면 양유훤 혼자 저들에게 마음대로 휘둘렸을지도 모른다.하현의 눈빛을 본 양호남이 눈을 부라리며 말했다.“뭘 봐? 우리 집안의 손해가 이렇게 막대한데 대가를 치르고 문제를 해결하는 건 당연한 거야!”“양호남의 수법이 다소 과격한 것은 사실이지만 모든 잘못은 양유훤이 한 거야!”염소 수염을 한 양 씨 가문 어른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우리 양 씨 가문의 위치가 예전 같지 않아!”“어렵게 페낭 무맹과의 협력을 이뤄냈는데 양유훤 때문에 망치게 생겼어!”“난 방금 전까지도 양유훤을 살짝 동정하는 마음이 있었어!”“하지만 그 결과 어떻게 되었어? 이 버르장머리 없는 남자는 거리낌 없이 사람을 때렸어!”“이런 남자를 선택하다니 앞으로 양유훤이 어떻게 되겠어?”“아주 개념 없는 연놈들이야!”“우리는 어서 양유훤을 양 씨 가문에서 출가시켜 다시는 우리 가문의 체면을 구기지 못하게 해야 해!”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고개를 저으며 저마다 수군거리기 시작했다.양유훤은 눈살을 찌푸렸다.자신 때문에 페낭 무맹의 납품권이 사라지게 된 것에는 부인하지 않았다.하지만 여수혁에게 시집가라고 강요하고 양제명을 독살하려 한 것은 도저히 참을 수가 없었다.하현은 차가운 눈빛으로 양호남 일행을 바라보며 말했다.“수백억의 납품권을 위해서.”“집안사람을 강제로 시집보내고.”“그것도 모자라 할아버지까지 독살하려 했어.”“양 씨 가문은 정말 단결력이 강하고 우애도 깊군.”“뭐라고!”양호남의 안색이 살짝 변하며 흠칫했다.“할아버지를 독살하려 했다니?!”“우린 사람을 보내 할아버지를 돌보게 했을 뿐이
양유훤을 다독인 후 하현은 양호남에게 냉담한 시선을 떨어뜨렸다.이제야 하현은 양유훤이 왜 자신에게 이곳을 떠나라고 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그녀는 자신의 집안사람들의 천성을 너무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행여라도 하현이 위험에 빠질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개자식! 어디서 튀어나온 망나니 같은 놈이 감히 우릴 때려?”이때 양신이가 정신을 차리며 얼굴을 가린 채 허우적거리며 일어나 입을 열었다.“죽여버릴 거야!”“당신 같은 연놈들은 칠흑 같은 감옥에 갇혀 평생을 고통스럽게 썩어야 해.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을 만큼 치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한다구!”“아하, 당신이 양유훤이 말한 그 남자 맞지?”양호남도 역시 피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를 감싸쥐고 일어나 이를 갈며 울부짖었다.“이 개자식아! 여자는 수치도 모르고 남자는 제멋대로구만! 짐승만도 못한 것들!”양호남은 하현을 죽이기 위해 당장이라도 달려들고 싶었지만 하현의 행동이 얼마나 공포스러운지 잘 알고 있어서 그저 하현을 노려볼 수밖에 없었다.“됐어! 이 개 같은 연놈들한테 쓸데없는 소리 해 봐야 소용없어. 관청에 보고하고 그들을 끌어내면 돼!”머리를 풀어헤친 양신이도 미친 여자처럼 소리를 질렀다.“내가 저 연놈들을 가만히 두면 성을 갈겠어!”“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야?”하현은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손을 뻗어 양유훤의 몸에 몇 개의 혈을 짚으며 그녀의 상처와 통증을 완화시킨 후 조용히 입을 열었다.양유훤은 잠시 망설였지만 그동안의 일들을 사실대로 말했다.그녀는 원래 하현이 이 일에 개입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았다.하지만 하현이 이미 이곳에 나타났으니 그녀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다.이렇게 된 이상 사실을 제대로 알려야 하현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손해를 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어젯밤에 양유훤이 당신 같은 뻔뻔한 남자를 위해 여수혁을 다치게 했어!”“오늘 아침, 여수혁의 아버지이자 페낭 무맹의 부맹주이신 여영창 어르신이 우리 양 씨 가문을 찾
”개자식!”자신의 여동생이 뺨을 맞고 날아가는 것을 본 양호남은 욕설을 퍼부으며 반사적으로 앞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매서운 표정으로 양호남의 목을 조른 뒤 그의 머리를 눌러 가장자리에 있던 대리석 테이블 위에 찧어 버렸다.양호남은 저절로 절을 하는 꼴이 되었고 ‘퍽'소리와 함께 테이블 위의 찻잔이 그대로 으스러졌다.양호남의 머리에선 피가 철철 흘렀다.하현은 이에 그치지 않고 양호남을 발로 차 내동댕이쳐서 날려버렸다.한쪽에 서 있던 양 씨 가족들은 모두 어안이 벙벙해졌다.이때 그중 한 명이 의자를 들쳐업고 하현을 향해 돌진했다.하현은 눈길도 주지 않고 손바닥을 날려 그를 내동댕이쳤고 뒤이어 달려오는 사람들에게 차례로 손바닥을 날려 쓰러뜨렸다.이 모든 것이 채 1분이 걸리지 않았다.수십 명의 양 씨 가문 사람들과 그들의 경호원들이 얼굴이 붓고 코에서 피가 흘러내렸고 끊임없이 경련을 일으켰다.“어이, 젊은이, 당신이 어떤 경력이 있든 어떤 묘수가 있든 간에!”“이곳은 양 씨 가문 땅이야!”“남양 3대 가문 중 하나인 양 씨 가문이라구!”“개나 소나 다 마음대로 행패를 부릴 수 있는 곳이 아니라구!”전통옷을 단정하게 차려입은 셋째 집안 어른이 나서서 의젓한 표정으로 하현을 호통쳤다.“우리 사람을 때리고 다치게 하다니! 도대체 당신 눈엔 법도 뭣도 안 보이는 거야?”“이 일로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 당신...”그가 말을 마치기도 전에 하현은 셋째 집안 어른의 잔소리는 전혀 관심이 없다는 듯 손바닥을 휘갈겼다.“양호남 무리들이 손찌검을 할 때는 왜 제지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이제 와서 나한테는 법 운운하시겠다?”“지금 뛰쳐나와서 그런 얘기하는 거 부끄럽지도 않습니까?”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하현의 말에 이번에는 수염을 기다랗게 기른 또 다른 사람이 나서서 말했다.“양호남은 뻔뻔한 짓을 하고도 부끄러움을 모르는 집안사람들을 혼내려 했을 뿐, 그 방법이 좀 과격하다고
”빨리 대답해!”양신이가 또 채찍을 휘둘러 양유훤을 때렸다.양신이의 눈에는 질투와 원한이 가득 서려 있었다.어렸을 때부터 그녀는 자신보다 뛰어나고 예쁜 양유훤을 미워했다.오늘 이렇게 양유훤을 혼내줄 기회를 잡았으니 양신이가 어찌 사정을 봐주겠는가?“어서!”또 한 번 채찍에 맞아 비틀거리던 양유훤은 거의 똑바로 설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그러나 그녀는 여전히 또박또박 대꾸했다.“난 여수혁과 결혼하지 않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뒤뜰을 둘러보았다.양제명이 뒤에서 안정을 취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 이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 양제명의 회복을 방해라도 한다면 결과는 정말로 예측할 수 없게 된다.“왜? 아직도 저 늙은이 걱정할 시간이 있어? 그럴 시간에 당신 자신이나 걱정하는 게 어때?”양신이는 양유훤의 눈빛을 보고 그녀의 마음을 바로 알아차리고 냉소를 흘렸다.그리고 양유훤에게 다가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 곧 누군가가 노인네한테 약을 먹일 거야.”“늙은이가 죽은 뒤 우린 그 누명을 당신한테 뒤집어씌우면 돼. 하하하!”양신이가 악마처럼 웃어젖혔다.“네가 승낙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노인네의 말로가 그렇게 되는 거야. 이게 다 너, 양유훤 너 때문이라고!”양유훤은 처음으로 당황한 표정을 지었고 어금니를 지그시 깨물며 강경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들, 함부로 행동하지 마. 당신들 할아버지이기도 한 사람이야!”“할아버지?”양호남은 코웃음을 지으며 포악한 얼굴로 양유훤을 향해 또 한 번 채찍을 휘둘렀다.“노인네가 이미 폐인이 되었는데 무슨 자격으로 할아버지가 된단 말이야?”“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은 전신이지 폐인이 아니야!”“우리 양 씨 가문은 당신을 포함해 폐인은 다 버릴 수밖에 없어!”“자, 승낙을 할 거야? 말 거야? 승낙하지 않는다면 노인네는 이대로 죽을 거야!”말을 하면서 양호남은 핸드폰을 꺼내 누군가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전
양유훤의 얼굴이 벌겋게 부어오르도록 그 이후에도 양호남은 손바닥을 몇 번이고 휘날렸다.이 광경을 보고 양호남이 데리고 온 화려한 옷차림의 남녀들은 모두 한마디씩 거들었다.“양유훤은 정말 남한테 피해를 입힌다니까. 이전에도 시집가기 싫어 멀리 항성과 도성에 가서 우리 양 씨 가문을 곤란하게 했지!”“이제 와서 또 우리 가문을 죽이려 하다니! 절대 가만둘 수 없지!”“여영창 어르신도 이번엔 단단히 화가 나셨어. 만약 그가 우리 가문과 페낭 무맹의 모든 거래를 끊는다면 우리 집안의 손실은 어마어마할 거야!”“양유훤이 이 일을 다 책임질 수 있겠어?”“집안 큰집이라고 아주 떠받들어 줬더니 아주 기고만장해져서 결국 이렇게 우리 집안을 함정에 빠뜨리고 말았어!”양 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고개를 내저으며 비난했다.가문의 권력을 대표하는 몇몇 장로들은 양유훤의 행동에 단단히 실망한 듯 차디찬 눈빛을 보냈다.양유훤은 심호흡을 하며 입을 열었다.“양호남, 납품권은 내가 해결할 테니 사람들을 풀어줘.”“당신이?”“어떻게 해결한다는 거야? 당신 얼굴로? 아니면 몸으로?”양유훤이 두 손이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양호남은 아주 기고만장해진 모양이었다.그는 양유훤의 머리채를 덥석 잡았고 옥처럼 고운 양유훤의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절대 가져서는 안 될 생각이 스쳐 지나간 것이었다.결국 그는 생각을 떨쳐버리고 입을 열었다.“이번에 당신이 남양으로 돌아왔을 때 우리 양 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매우 기뻐했어. 당신이 큰집을 대표하여 우리 가문의 권세를 되찾고 다시 남양 3대 가문의 영광을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그런데 당신은? 여전히 예전과 마찬가지로 제멋대로 행동하고 있어!”“우리 양 씨 가문을 위해 최선을 다하지도 않고 오히려 우리 가문을 불구덩이로 밀어 넣으려 하고 있어!”“이 일에 대한 해결책은 내가 이미 다 생각해 뒀어!”“당신이 여수혁한테 시집가겠다고 약속만 한다면 여 씨 가문은
”야비한 남자 때문에 여수혁에게 미움을 사다니!”“야비한 놈을 우리 양 씨 가문 데릴사위라고 감히 말하고 다녀?!”“당신 부끄러움도 몰라?!”“어떻게 그렇게 뻔뻔할 수가 있어?!”양호남이 함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당신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페낭의 웃음거리가 된 걸 알기나 해?!”여기까지 말하며 양호남은 더는 못 참겠는지 양유훤 앞으로 나서며 그녀의 뺨을 때렸다.양호남의 말에 당황해 어안이 벙벙한 가운데 양유훤은 갑자기 뺨까지 맞게 되었다.조각처럼 정교한 그녀의 얼굴에 금세 손바닥 자국이 크게 생기더니 붉게 부어오르기 시작했다.이를 본 양신이와 몇몇 그의 사람들은 말리기는커녕 한결같이 통쾌해하는 표정이었다.“양호남, 내 일은 내가 알아서 책임질 거니까 당신이 일부러 나서서 날 가르칠 필요는 없어.”양유훤은 밀려오는 고통과 분노를 억누르며 숨을 깊이 들이마셨다.비록 그녀는 자신이 어젯밤에 한 일이 분명 양 씨 가문 둘째와 셋째에게 비난의 빌미를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양호남이 이렇게 기세등등하게 나올 줄은 몰랐다.“우리는 당신을 가르치는 게 아니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려주는 것뿐이야!”양호남은 이를 악물고 말을 이었다.“잘 들어. 오늘 아침 여 씨 집안사람이 우릴 찾아왔어!”“페낭 무맹 부맹주 여영창 어르신이 직접 사랍들을 이끌고 우리 양 씨 가문을 찾아와 해명을 하라고 했어!”“똑똑히 들어. 이 일은 네가 우리 양 씨 가문을 대표해 반드시 여 씨 가문에 해명을 해야 해!”“그렇지 않으면 이 일은 절대 이대로 끝나지 않을 거야!”양유훤은 위엄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이 일은 순전히 나를 노리고 한 일이니 여 씨 가문은 나를 직접 찾아와 결판내면 될 일이야.”“셋째 집안과는 무슨 상관있어?”“뭐 더 할 말 있어?”양호남은 화가 나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입을 열었다.“여 씨 가문은 이 일 때문에 우리 양 씨 가문이 가지고 있는 페낭 무맹 납품권을 끊어버리려고 한다고!
하현은 그윽한 눈동자로 양유훤을 바라보다가 한참 후에야 옅은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돌아가는 정세가 그렇게 복잡해? 복잡해서 날 지킬 자신이 없는 거야? 그래서 날 내쫓으려는 거고?”“아니면 내가 페낭에 남아서 당신 밥그릇이라도 한몫 챙길까 봐 그러는 거야?”양유훤은 하현을 바라보고 잠시 후 담담하게 말했다.“상황이 복잡한 게 아니라 당신이 복잡한 일에 얽히는 걸 싫어한다는 걸 알기 때문이야.”“할아버지를 이 정도로 회복시켜 준 것만으로도 당신한테는 너무 감사할 따름이야.”“다른 소소한 일은 더 이상 당신한테 폐를 끼치고 싶지 않아.”“일등석 세 장이야. 내일 아침 8시 비행기.”“내가 일을 다 처리한 후 당신한테 페낭에 한 번 더 오라고 초대하면 그때 반드시 이 은혜를 다 갚을게.”말을 하면서 양유훤은 하현 앞에 봉투를 놓으며 깊은 시선으로 하현을 바라보다 돌아섰다.양유훤의 뒷모습을 지켜보던 하현은 손을 뻗어 봉투에 손을 올렸다가 잠시 후 미소를 떠올리며 말했다.“보아하니 당신이 날 여기 두고 싶지 않은가 봐. 정말 재미있군. 내일 아침에 우리 같이 어르신 뵈러 가자구. 그때 모든 게 다 정상이라면 돌아갈게.”말이 끝나자마자 하현도 돌아서서 성큼성큼 병원을 나섰다....다음날 정오, 양 씨 가문 별채.별채 입구에 선 양유훤은 페낭 국제공항 쪽을 희미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그곳에는 수많은 비행기가 뜨고 내렸다.수없이 뜨고 내리는 비행기가 마치 갈피를 잡지 못하는 자신의 마음 같았다.바로 그때 양 씨 가문 별채 정문 앞에 자동차 엔진 소리가 들렸다.굳게 닫혀 있던 문이 육중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이어 짙은 녹색 랜드로버 오프로드 차량이 선두에 섰고 뒤따라온 여러 대의 차량들이 정문 앞으로 무작정 돌진해 와 정성껏 가꾸어 놓았던 화단을 으스러뜨렸다.그러자 수십 명의 건장한 남자가 깔끔한 양복차림으로 나왔다.딱 봐도 만만치 않아 보였다.양유훤이 뭐라고 입을 열기도 전에 선두에 선 남자
양유훤의 눈동자에 희미한 실망이 순식간에 스쳐 지나갔다.그녀는 이내 표정을 바꾸고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남들은 당신을 쓰레기네 뭐네 하지만 난 원래부터 믿지 않았어.”“그런데 지금 보니 당신은 정말 구제불능이야!”“사람을 꼬시고는 이내 도망쳐 버리니 나도 어쩔 도리가 없군!”하현은 입가를 쌜쭉거리며 양유훤을 힐끔 쳐다보았다.양유훤의 놀림에는 대처할 방법이 없었다.모두들 아름다운 여자의 친절함과 관심에는 참아낼 재간이 없다고 말한다.양유훤같이 싫고 좋음이 분명한 타입은 하현이 절대 함부로 대응할 수 없는 것이다.그러자 하현은 애써 이 상황을 모면하고자 급히 화제를 전환했다.“방금 여수혁과 당신이 하는 대화를 대충 들었는데 양 씨 가문이 지금 어떻게 되어 가는 거야?”“남양지역에서 페낭을 중심으로 양 씨 가문은 남양국 황실 다음으로 가장 뿌리가 깊은 3대 가문이야.”양유훤도 더는 숨길 뜻이 없었다.“이 씨 가문, 원 씨 가문 그리고 우리 양 씨 가문.”“이 외에도 무맹과 수많은 일류 가문들, 그리고 기타 중소 세력들이 남양에서 혼란스러운 국면을 형성하고 있어.”“수십 년 전에는 우리 양 씨 가문과 이 씨 가문, 원 씨 가문의 3파전으로 남양국은 확고한 구도를 형성하고 있었어.”“각 세력도 이 세 가문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각축을 벌였지.”“고고한 황실은 이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었고.”“우리 세 가문이 무너지지 않는 한 황실도 무너지지 않고 공고하게 군림할 수 있었던 거지.”“우리 세 가문이 계속 각축을 벌이는 한 황실의 막대한 이익을 누가 건드리지는 않으니까.”“그런데 이 모든 게 우리 할아버지가 전신이 되고 나서 달라졌어.”하현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양 씨 가문이 치고 나왔군, 그렇지?”양유훤이 한숨을 쉬며 말했다.“비슷해.”“하지만 그때 우리 집안은 위기를 눈치채지 못했고 양 씨 가문에서 전신이 나왔으니 당연히 이 씨 가문과 원 씨 가문을 제압해야 한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