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 씨, 이거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다른 사람한테 부탁해서 방금 확인해봤어요. 당신 수표를 현금으로 바꾸지 못한대요.”이때, 설 씨 어르신이 전화를 끊고 걸어갔다. 그는 손을 흔들며 이준의 얼굴에 차갑게 수표를 던졌다.설 씨 어르신은 처음에 자신이 백억 원가량 운전자본을 손에 넣은 줄 알았다. 뜻밖에도, 백범의 말이 그를 방금 깨우쳤다. 어르신은 재빨리 다른 사람에게 이 일에 대해 문의를 했다. 그제야 그는 사실을 알았다.설 씨 어르신은 인생에서 자기 체면을 제일 중요시해서 그는 이제 이준이 너무 미웠다. 어르신의 선택인 이준이 파산하고 쓸모없는 사람이 되었다.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마주해야 할까…이준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아내며 마지못해 미소를 지었다. “설 씨 어르신, 잊지 마세요. 저는 아직 하엔 그룹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제가 파산했다고 해도 언제든지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이준이 그 말을 하자 설 씨 어르신은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찌푸렸다. 이준이 그를 협박하고 있었다!강남의 상위권 집안인 하 씨 집안이 하엔 그룹을 운영하고 있었다. 일류 집안들도 그들을 감히 자극하지 못했다. 일반인보다도 그들의 개가 더 공격적이었다.이런 강력한 집안이 이준을 지원하고 있으니 그가 다시 일어서는 건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아니나 다를까, 설 씨 어르신은 이준이 하엔 그룹에서 쫓겨난 줄 몰랐다. 안 그랬으면 어르신은 이준을 두려워할 이유가 없다.“그렇다면, 백억 원이 내 손에 들어올 때까지 기다리고, 그제야 너의 청혼을 다시 고려해보겠다.” 설 씨 어르신은 깊은 눈으로 이준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어르신은 손을 흔들며 떠났다.“쳇, 알고 보니 거지면서, 감히 우리 앞에서 연기를 해!”“어쩐지 백범이 저 사람을 찾아왔다고 했네. 나도 가지고 놀고 싶었는데.”“뭐, 따지고 보면 여전히 하 씨 집안의 개인 셈이네.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되겠어.”그를 이준 씨라고 부르던 설 씨 집안 사람들이 이제는 그를 조롱하고 비웃는 걸 보니
희정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녀는 하현에게 달려가 그를 꾸짖었다. “들었어? 얼른 인질이 돼. 너 같은 쓰레기가 인질을 하지 않으면 쓸모없어. 너는 3년 동안 설 씨 집안에 있었고 우리는 너에게 음식을 주고 너를 친절하게 대했어. 근데 지금 우리를 너랑 같이 끌어내리고 있잖아. 그래도 인질이 되지 않겠다면 너를 가만히 놔두지 않을 거야!”하현은 차가워 보였지만, 은아의 창백한 얼굴을 보자 그의 마음은 약해졌다. 누가 그렇게 막막하게 그녀와 사랑에 빠지라고 했나?“알았어요!” 하현은 숨을 깊게 들이쉬고 희정을 무시했다. 그는 이준을 향해 걸어가 작게 말했다. “강이준, 내가 네 인질이 될게, 내 아내는 놓아줘.”은아는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녀는 하현을 믿기지 않는 듯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 “안 돼, 오지 마…”“걱정하지 마, 너는 내 아내이고, 내가 널 지킬 거야.” 하현은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며 이준에게 걸어갔다. 그는 이준이 자신의 목에 칼을 대게 했다. “이제 은아를 놓아줘도 되겠지?”은아는 자신의 두 눈에 눈물이 살짝 고인 것을 느꼈다. 비록 이 남자는 대단한 재력과 권력이 없고 쓸모없었지만, 그는 그녀 대신 인질을 자처했다.“은아야, 괜찮아?” 희정은 냉큼 달려왔다. 그녀는 긴장한 채 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엄마, 저는 괜찮아요. 하지만 하현이…” 은아는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그러나, 그녀는 멀지 않은 곳에서 인질로 붙잡혀있는 하현을 힐끗 쳐다보더니 걱정스러워졌다.희정은 그쪽을 아예 쳐다보지도 않고 차갑게 말했다. “쟤한테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거야. 이준이의 화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려봐, 그럼 쟤는 괜찮을 거야. 너는 그냥 빠져있어.”“엄마, 그렇지만…”“괜찮아. 쟤는 우리 집안 데릴사위야. 지금까지 3년 동안 키워주지 않았니? 왜 아직도 쟤를 신경 쓰는 거야?” 희정은 차갑게 말했다.“그래, 가자!” 유아도 은아를 말렸다. 유아는 은아가 충동적으로 무슨 일을 저지를까 봐 무서웠다.
“왜?” 이준은 돌아버릴 지경이었다. 그는 오늘 밤 전화가 와 아무 이유 없이 그가 파산했다고 전해졌다. 이준도 이유를 알고 싶었다.하현은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 어떤 번호로 다시 전화를 했다. 슬기는 아까 이미 하현에게 전화번호를 보내주었다.전화는 얼른 연결이 되었고, 전화 건너에서 슬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대표님, 지시에 따라 이미 강이준을 해고했습니다. 동시에, 그가 횡령한 회사 프로젝트 자금을 변호사들이 조사하게 했습니다.”"슬… 슬기 씨…” 익숙한 목소리를 듣자 이준은 화들짝 놀랐다. 그는 순간 어지러움을 느껴 시야가 흐릿해졌다.이준의 손에 있던 칼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는 중얼거렸다. “이게 어떻게 가능해? 당신같이 쓸모없는 사람이 어떻게 신임 대표야? 이건 불가능해! 불가능하다고!”“불가능한 일이야! 하 씨 집안 젊은 세대는 다 유명해. 당신이 그럴 리가…” 이준은 끊임없이 고개를 흔들었다. 그는 지금 미칠 지경이었다. 이준은 이미 이 사실을 예상했지만, 그는 믿기를 거부했다. 자신이 깔보던 쓰레기가 마치 개미를 으스러뜨리는 것처럼 손쉽게 그를 망가뜨릴 수 있었다.“제발, 제발 당신이 누군지 알려주면 안 돼? 내가 죽기를 바란다고 해도, 당신이 누구인지도 모른 채 나를 무덤으로 보내지 말아줘.” 이준은 멘탈이 무너져 울려고 했다.“전에 하 씨 집안에 후계자가 있었던 거 몰라?” 하현은 침착하게 말했다.“당신은… 도련님…” 이준은 완전히 무너져 내렸다. 그는 무릎 꿇고 머리를 조아렸다. “도련님, 제발 저를 용서해주세요. 도련님을 알아보지 못한 저의 잘못입니다. 저를 봐주실 수 있을까요? 제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봐주세요.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도련님의 아내분을 괴롭히지 않겠습니다. 다시는 도련님 앞에 나타나지 않겠습니다. 제발 저를 살려주세요. 제발 저에게 기회를 주세요.”하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내일 내가 해를 못 보게 한다고 하지 않았어?”“도련님, 도련님, 제가 박쥐처럼 눈이 멀었
“생각보다 쉽진 않을 거예요…” 동수는 살짝 얼굴을 찌푸렸다. 만약 그렇게 쉬웠다면 이준에 관한 그런 생각들을 애초에 하지 않았을 것이다.설 씨 어르신이 테이블을 가볍게 탁 쳤다. 그리고 그는 말했다. “이만큼의 자금을 마련해오는 자는 쇼핑몰 건설 프로젝트의 팀장이 될 것이다!”쇼핑몰 프로젝트는 현재 설 씨 집안의 가장 거대하고 중요한 프로젝트이다.그 프로젝트의 팀장 자리를 맡게 된 자는 설 씨 집안의 뒤를 이어 설 씨 일가의 우두머리가 될 가능성도 있다.설 씨 어르신께서 그 말을 한 순간, 많은 사람이 이상해 보였다.하지만 모두가 하엔 그룹과 관계를 맺기에는 너무 어려웠다.“할아버지.” 민혁이 느닷없이 일어섰다. “최근에 제가 하엔 그룹에 미녀 한 분을 알게 되었는데, 그분이 거기 부장님이세요. 그분이 회사 내에서도 위치가 꽤 높은 듯했고, 다른 사람들이 그분 말을 따르더라고요. 제가 한번 여쭤봐서 이야기해볼게요.”설 씨 어르신은 미간을 찡그리며 말했다. “그 사람은 일개 부장이야. 어떻게 다른 사람들이 그 사람 말을 들어?”“할아버지, 부장은 당연히 그럴 능력이 없죠. 근데 그분이 조만간 사장으로 승진한다고 들었어요. 그럼 회사 내에서 두 번째로 권위 있는 위치에 자리하게 될 거예요. 그런 분이면 충분히 다른 사람들이 따르게 되겠죠.”민혁은 희미하게 웃었다. 지금 설 씨 집안의 상황이 꽤 복잡했다. 민혁은 이 틈을 타 집안 내에서 우위를 점하려고 했다. 그러면 그는 향후에 회장으로 선출될 수 있었다.동수는 그의 아들을 힐끗 쳐다보더니 아무 말도 안 했다. 만약 자신의 아들이 그 거대한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다면, 그의 가족은 설 씨 어르신에게 조금 더 예쁨 받을 수 있다.다른 사람들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보자, 민혁은 기쁘게 웃으며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다. 그는 심지어 스피커 모드로 전환했다.“여보세요!” 전화 건너의 사람은 꽤 불안해하는 듯 들렸지만 목소리는 상당히 상냥했다.
“네, 그냥 제가 아는 사람이에요. 왜 갑자기 전화했는지 모르겠어요.” 겨울은 손으로 핸드폰을 가리며 조심스럽게 말했다.하현은 살짝 미소를 지었다. “꺼지라고 전해.”“네!” 겨울은 핸드폰을 들고 사무실 밖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그녀는 차갑게 외쳤다. “우리 대표님께서 당신보고 꺼지래요!”그러고 나서 겨울은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 ‘민혁 씨는 정말로 어리석어!’***전화 건너의 민혁은 처음에 의기양양했었다. 그러나 지금 그는 순식간에 어안이 벙벙해졌다. 잠시 후, 그는 거의 벌떡 일어설 뻔했다. “젠장! 일개 부장 주제에! 감히 내 앞에서 건방지게 굴다니! 자기가 뭐라도 되는 줄 아나? 어떻게 나보고 꺼지라고 할 수 있어? 어떻게 우리 설 씨 집안을 이렇게 무시해!”설 씨 집안 사람들은 체념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 ‘방금 민혁은 똑똑히 듣지 않았는가?”‘너한테 꺼지라고 한 사람이 대표님이라고 했잖아.’“할아버지, 하엔 그룹은 지나치게 선을 넘었어요!” 민혁은 이를 악물었다. “어쩜 이리 뻔뻔하게 우리 설 씨 집안에 이런 취급을 해요. 누가 봐도 우리를 무시하고 있어요. 누가 가서…”“닥쳐!” 민혁이 말을 끝마치기도 전에 설 씨 어르신이 그의 말을 바로 끊었다. “헛소리 지껄이지 마. 하엔 그룹 신임 대표가 20대 초반이라는 말을 들었어. 그 대표는 꽤 젊지만 능력 있어. 그러니까 대표가 좀 건방져도 정상이야.”“내가 생각을 해봤어. 대표가 이전의 투자 안건들을 전부 철회하고 1조 원을 추가했으니, 분명 높은 수준의 뛰어난 프로젝트들에 관심을 가진 거야. 이건 어때? 우리 중에서 누가 설씨 집안을 대표해서 신임 대표를 만나 시도를 한번 해볼 텐가?”‘네?’그들은 서로를 속수무책으로 바라보았다. ‘방금 겨울 씨가 전화 건너로 한 말을 설 씨 어르신께서도 듣지 않으셨나? 그녀는 대표님이 민혁에게 꺼지라고 한 말을 똑똑히 전했다.‘이렇게 가서 투자금을 구걸한다면, 그냥 가서 망신만 당하고 오는 거 아닌가?’설 씨
설 씨 어르신은 깊은 생각에 잠겼다. 그리고 어르신은 고개를 끄덕였다. 또래 아이 중에서는 민혁을 제일 아꼈으니, 어르신은 그 말을 듣자 은아를 향해 뒤돌아보았다. 이어서 어르신은 말했다. “은아야, 한번 가봐. 시간을 고를 필요도 없어. 지금같이 좋은 때는 없어. 그냥 내일 가서 하엔 그룹이랑 사업 거래 협상을 해봐. 반드시 성공해야 해. 어떠한 실패도 용납하지 않아!”“할아버지, 제 생각에는…” 은아는 언짢았다. 하엔 그룹에 혼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 그런데 바로 다음 날에 가서 그 기업과 거래 협상을 하라니. 마치 본인들이 굴욕을 당하고 싶어 하는 것 같지 않나?설 씨 어르신은 은아에게 더 말할 기회를 주지 않았다. 이윽고 어르신은 단호하게 말했다. “이제 결정됐어. 너는 맡은 임무만 잘 완수하면 돼, 핑계를 찾지만 말고!”그 후, 현장에 있던 설 씨 집안 사람들 모두가 고개를 조아리며 일어섰다. 그들은 운이 좋았다고 느꼈다. 그것은 분명 불행한 임무였다. 그 임무에 뽑힌 사람은 실로 운이 없었다.집에 도착했을 때, 희정의 표정은 매우 나빴다. 그녀의 가족은 설 씨 어르신에게 좋은 인상을 남기지 못했었다. 그런데 지금 불가능에 가까운 임무가 그들에게 주어졌다. 그들은 상당한 무력감에 빠졌다.쾅 소리가 났다. 희정은 컵을 던져 부시더니 곧장 야단을 쳤다. “그 쓸모없는 하현! 빨리 들어와서 이 난장판을 정리하고 밥이나 하라고 하지 그래? 나보고 굶어 죽으라는 거야 뭐야?”은아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잊으셨어요? 그이는 저 대신 인질이 되었어요. 아직 집에 안 왔어요. 무슨 일이 생긴 건지 모르겠어요…”희정은 차가운 웃음을 터뜨렸다. “걔한테 퍽이나 무슨 일이 생겼겠다. 밤새 밖에서 싸돌아다니고 집에도 안 와. 원래 걔랑 이혼할 핑계가 없었는데. 이제 무슨 일이든 꼭 그래야만 할 거야. 이런 쓰잘머리 없는 놈! 그 놈이 우리 집 데릴사위가 되고 나서부터 우리 집에는 좋은 일이 있었던 적이 없어!”은아는 하현이 살짝
SL 빌라의 오후.설 씨 집안 사람들은 또다시 모였다.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이 서로를 무력하게 바라보았다.조금 전에 그들은 소식을 접했다. 그래서 그들은 식사도 하지 못한 채 집으로 달려와 회의를 진행하게 되었다. 결국 그들은 하엔 그룹이 투자에 동의했다는 소식뿐만 아니라, 하엔 그룹이 직접 투자금을 늘렸다는 소식까지 들었다.이 전날 밤 하엔 그룹이 어떻게 반응했는지 그들은 매우 잘 알고 있었다. 거의 모든 이가 그 얘기를 똑똑히 들었다. 사람들은 이 임무가 불가능하다고 여겼지만, 지금 은아가 그걸 완수했다. 왜?은아는 설 씨 집안 셋째 아들의 딸이었다. 그녀는 평소에 크게 예쁨 받지 못했다. 게다가 은아의 회사는 막대한 손해를 봤다. 설 씨들은 곧 그녀와 연을 끊을지도 모른다.하지만, 은아는 지금 계약을 따내었다. 그럼 그녀도 예쁨 받는 것인가? 은아도 드디어 꽃길을 걷는 건가?민혁이야말로 지금 이 상황이 제일 믿기지 않았다. 만약 은아가 성공했다면, 그건 민혁이 쓸모없었다는 뜻이다.“누나, 마음대로 계약서를 작성하고 하엔 그룹과의 거래를 성사했다니요. 심지어 누나는 600억 원의 투자금을 마련했다고 주장했어요. 여기서 누굴 속이려는 거예요? 분명 하엔 그룹 대표를 만나지도 못했을 거예요. 내 말이 맞죠?” 민혁은 무시하는 말투로 말했다.“맞아. 대표님을 만나지 못했어.”은아는 그걸 숨길 의도가 없었다. 그녀는 분명 그날 오후에 대표님을 만나지 못했다. 은아를 대접한 건 슬기였다.하지만 은아가 말을 마치자, 설 씨 집안 사람 모두가 서로를 화난 얼굴로 쳐다보았다. 그들은 식사하지도 못했는데, 억지로 가서 은아의 헛소리를 들어야 했다.“은아야, 너무 갔다! 네 쓸모없는 남편은 자기가 대표라고 하더니. 그 자식한테 배워서 가짜 계약서나 만들고 우리한테 거짓말을 하다니!”“우리가 바보인 줄 알아? 어딜 감히 가짜 계약서를 꺼내!”“너는 이혼을 안 하는 게 낫겠다. 그냥 짐 싸서 네 데릴남편이랑 꺼져!”그 순간, 모
이때, 상석에 앉아있던 설 씨 어르신이 계약서를 다 읽었다. 어르신은 돋보기를 꺼내 도장을 자세히 관찰했다. 잠시 후, 그는 말했다. “그만해. 이 계약서는 진짜가 맞아. 그런데 민혁이 한 말은 맞아. 이 계약서는 급조한 게 아닌 듯 해. 어제 작성한 것 같아.”“물론 그곳에 갔다 온 사람은 은아니까 은아의 공도 있어. 하지만 어제 민혁이는 설 씨들을 위해 수모를 견뎠어. 민혁이의 공이 더 커."이 말을 들으며, 민혁은 오만한 자세로 은아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민혁은 설 씨 어르신에게 고개 숙이며 말했다. "할아버지, 설 씨 집안의 일원으로써, 저는 SL 그룹을 위해 온갖 시련을 다 겪을 자신 있습니다. 그깟 굴욕 좀 당하면 어때요? SL 그룹이 돈을 벌기 위해 제가 맞아야 한다면, 저는 그보다 더한 것도 할 수 있습니다!""할아버지, 신임 대표가 SL 그룹이 소유한 상업용 토지의 가치를 알아서 우리에게 이런 어마어마한 자금을 주는 것 같아요. 성의의 표시로 가능한 빨리 계약서에 서명하고 내일 전달해줘야겠어요.""제가 이 일을 맡을게요. 내일 안전하게 계약서를 하엔 그룹 대표에게 전하겠습니다. 그리고 저희 집으로 대표님을 초대하겠습니다!"민혁은 마치 그 일을 이룰 수 있다는 듯했다. 이제 계약서를 손에 넣었으니, 신임 대표가 설 씨 집안을 높게 사는 것을 증명하고도 남는다. 그래서 민혁은 그런 사소한 일을 할 수 있었다.이 밖에도, 만약 자신이 계약서를 하엔 그룹에 전달해주면, 프로젝트 팀장은 본인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은아의 공을 기억하겠나?"좋아! 너는 내 훌륭한 손자야!" 설 씨 어르신이 고개를 살짝 끄덕였으며, 민혁을 인정했다. "민혁아, 그럼 내일 우리가 널 하엔 그룹으로 데려다 줄게."은아는 실망한 듯한 눈치였다. 계약서를 집에 가지고 온 사람은 분명 은아였는데, 지금 민혁이 혼자 그 공을 차지하고 있었다.하엔 그룹은 계약서에 서명했고 도장을 찍었다. 확실히 그 다음 날에 거기로 간다면 민혁은 성공적일
하현 일행이 집복당으로 돌아왔을 때 문 앞에는 이미 십여 대의 관용차가 서 있었다.이 차들은 경찰서 소속인 것도 있었고 주택건설부 소속인 것도 있었고 동사무소 소속인 것도 있었다.말하자면 정부 차원의 합동 집행부가 다 모인 것이다.수십 명의 제복을 입은 남녀들이 집복당을 둘러싸고 저마다 삿대질을 하며 기세등등한 모습을 보였다.채굴기를 몰고 와서 위세를 부리는 사람도 있었다.맨 앞에 서 있는 두 사람은 대머리 남자였고 한 사람은 키가 좀 크고 다른 한 사람은 좀 뚱뚱했다.키가 큰 사람은 주택건설부 유니폼을 입고 있었으며 가슴에 새겨진 명패에는 이홍파라는 세 글자가 적혀 있었다.뚱뚱한 사람은 경찰서의 황택호 형사였다.두 사람은 관청 동기로 알려져 있으며 항상 함께 출동해 각종 불법 건축물과 불법 매장을 소탕했다.오늘 그들의 목표는 바로 집복당이었다.고명원은 앞에 나서진 않았지만 부하들을 시켜 집복당 문을 막도록 하여 이홍파와 황택호 두 사람이 이끌고 있는 사람들이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합동 단속반은 기세가 등등해서 뭐라도 하나 걸리기만 한다면 내부 인테리어 전부를 깡그리 부술 태세였다.이렇게 되면 일이 더 커진다.고명원은 연합 단속반에게 미움을 사는 것은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오직 하현의 집복당이 잘못되어 뭐라고 설명할 말이 없게 될까 그것이 두려웠다.그리고 멀지 않은 곳에는 왕인걸도 와 있었다.그는 집복당에 와서 아첨이라도 좀 해 볼까 했는데 마침 이런 상황을 맞닥뜨리게 된 것이다.하현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왕인걸과 고명원이 뭐라고 설명하려고 했지만 하현은 얼른 손을 흔들며 그들을 제지했다.하현이 입을 열기도 전에 나박하가 합동 단속반에서 나온 두 사람의 손을 잡고 인사를 건넸다.“아이고, 이거 이홍파 팀장님과 황택호 형사님 아닙니까?”“무슨 바람이 불어서 두 분이 함께 우리 집복당엘 다 오셨습니까?”“이 누추한 곳에 두 분이 자리를 빛내주시니 영광입니다.”말을 하면서 나박하
”전부?”이 말을 듣고 강우금의 얼굴에는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역력했다.“여자한테 빌붙어 살면서 꼴에 자기가 재벌 2세인 줄 아나?”“정말 요즘 사람들은 자기 분수를 너무 몰라!”“전부는 고사하고 그의 전 재산을 다 부어도 소남가인 옷 한 벌 못 살 거야. 아니, 양말 한 켤레라도 산다면 내가 손에 장을 지지겠어!”금정의 스타트업 사장이나 재벌 2세들도 소남가인 브랜드의 옷을 함부로 사지 못한다.그런데 한낱 한량에 불가한 하현이 돈이 어디 있어서 저런 비싼 옷을 산단 말인가?매장의 직원들과 손님들이 좋은 구경거리를 보려고 시선을 집중했다.소남가인 직원들은 서로의 눈을 마주 보며 살짝 망설였지만 결국 황보정에게 세심한 서비스를 제공해 주었다.곧 황보정은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옷을 모두 골랐다.수십 개의 옷 가방들이 순식간에 매장에 늘어섰다.이게 다 얼마인가?몇십억은 되어 보였다!“삑!”하현은 별일 아닌 듯 단번에 카드를 긁었다.그러자 승인되었다는 소리가 나면서 영수증이 좌르륵 쏟아져 나왔다.“어머?!”순간 소남가인 매장 안팎에선 수군거리는 소리로 소란스러워졌다.주변에 있던 직원들과 손님들은 하현을 쳐다보면서도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황보정에게는 질투와 부러움의 시선들이 쏟아졌다.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벌어진 것이다.하현이 저 많은 옷을 한 번에 결제하다니!그야말로 거부라 하지 않을 수 없었다!“이, 이럴 수 없어! 절대로! 이건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강우금과 그녀의 매장 직원들은 모두 넋이 나간 듯 멍해졌다.뒤늦은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와 그녀들을 단번에 쓰러뜨렸다.그들은 도저히 제대로 서 있을 수가 없었다.방금까지 그들은 입만 열면 하현을 비난하는 말을 퍼부었다.노점상에나 가서 옷을 사라고 쫓아냈다.그런데 지금 어떻게 되었는가?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들의 얼굴이 화끈화끈거렸다.역시 가장 난처해하는 사람은 강우금이었다.그녀는 도저히 믿기지
강우금의 말을 들은 손님들은 하나같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옷도 안 사고 민폐만 끼치다니!덜떨어진 저런 사람이 이런 가게를 드나들 수는 없다!정말 재수없어!황보정은 슬쩍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강우금, 당신 같은 점장이 어디 있어요?”“정말로 이런 식으로 사람을 대우할 거예요?”“우리가 정말로 못 살 거라고 생각해요?”“이런 식으로?”강우금은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황보정, 자신을 너무 과대평가하는 거 아니에요?”“내가 일부러 이러는 거예요? 당신이 그럴 자격이나 된다고 생각해요?”“난 금정 쇼핑몰 판매율 10위 안에 드는 사람이에요! 연봉이 일억이 넘는다고요!”“흥! 그런데 당신은 뭐죠? 하얗게 세탁한 싸구려 티셔츠 한 장 입고 와서 무슨 부자 행세를 하고 그래요?”“그리고 정말로 옷을 사고 싶으면 다른 데 가서 사세요! 여긴 당신이 살 수 있는 옷이 없어요!”말을 하면서 강우금은 바깥을 가리키며 냉소를 흘렸다.“1킬로미터 정도 나가면 많은 노점상들이 있을 거예요!”“거기 가면 한 벌에 몇 천 원짜리가 널렸을 거라고요!”“그래도 당신이 우리 가게에서 옷을 사고 싶다면 내가 특별히 기회를 주겠어요. 당신이 그래도 집복당 아가씨니만큼 이월된 재고 상품들 중 쓸 만한 것을 권해 줄 수는 있어요.”“하지만 문제는 살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아무리 이월 상품이라고 해도 값이란 게 있는 건데 당신이 살 수 있겠어요?”하현은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한 걸음 앞으로 나가 손을 뿌리치며 물건을 카운터에 올렸다.그리고 나서 황보정의 손을 잡고 말했다.“다른 데 가서 사자고!”황보정은 조금도 망설임 없이 바로 하현을 따라 가게를 나섰다.강우금은 이 광경을 보고 냉소적인 목소리로 직원들을 불렀다.“그들이 만진 물건들과 지나간 자리 얼른 소독하고 방향제 뿌려!”“저런 싸구려 인간들이 우리 가게를 더렵히게 놔두면 안 되지!”“뭐라고?”“다른 가게에 가서 산다고? 흥! 아무리 둘러
강우금의 말을 듣고 갑자기 재미난 구경거리라도 찾은 듯 주변에서 쇼핑하던 사람들이 하현에게 눈을 힐끔거렸다.남자가 돈을 벌어서 가족들 부양할 생각은 하지 않고 부잣집 여자 뒤꽁무니나 쫓아다니다니?!정말 염치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남자야!“강우금?”황보정은 순간 누군가가 하현을 조롱하는 소리를 듣고 낯빛을 흐리며 말했다.“우리는 여기 옷을 사러 온 것이지 당신의 비아냥 따위를 들으러 온 게 아니에요!”“이런 식으로 손님을 대한다면 당장 당신 회사에 불만을 제기할 거예요!”황보정에게 있어 자신이 모욕당하는 건 아무 일도 아니었다.하지만 하현이 모욕당하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불만을 제기한다고요?” 강우금은 어이없다는 듯 입꼬리를 들썩였다.“황보정, 머리가 어떻게 된 거예요?”“내가 금정 쇼핑몰에서 판매율 10위 안에 드는 점장이라는 걸 몰라서 그래요?”“불만을 제기한다고요? 그게 무슨 소용이라도 있을 것 같아요?”“문제가 뭔지 알아요? 여자한테 빌붙어서 사는 이런 남자들이 너무 많다는 거예요! 흥! 당신이 어떻게 불만을 제기하는지 어디 한번 두고 볼게요!”“난 당신을 위해서 이러는 거예요!”“아마 당신이 이 사실을 안다면 나한테 불만을 제기하기는커녕 잘했다고 상이라도 줄 거예요!”“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집복당은 이제 한물간 거 아니에요? 내 앞에서 이럴 자격이나 돼요?”“이 옷, 정말 살 수 있어요?”이를 듣던 몇몇 손님들은 더욱 비아냥거리는 눈빛으로 황보정 일행을 쳐다보았다.그녀들은 하현이 여자한테 빌붙어 있는 것뿐만 아니라 몰락해 가는 집안의 여자의 고혈을 쪽쪽 빨아먹고 있을 줄은 몰랐다.아마 오늘 그의 작전은 십중팔구 실패로 끝날 거라고 생각했다.하현은 강우금 같은 여자와 쓸데없는 입씨름을 하며 기분 상하기 싫어서 황보정의 손을 붙잡고 그녀가 마음에 들어 했던 옷을 집어 냉랭하게 말했다.“이 옷으로 합시다. 다른 건 나중에 사죠.”강우금은 하현의 손에
”손님, 아무렇게나 만지면 안 됩니다. 이 옷은 너무 비싸서 더러워지면 팔 수가 없거든요!”황보정이 옷을 꺼내 보려고 손을 뻗었을 때 점장으로 보이는 거만한 여자가 하이힐을 앞세우며 다가와 눈을 내리깔고 말했다.황보정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정신을 번쩍 차리며 말했다.“아, 죄송합니다. 저 옷 사고 싶은데 좀 꺼내 봐 주세요.”“꺼내 봐 달라고요?”점장은 황보정을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깨끗하게 세탁한 셔츠에 눈길을 모으며 말했다.“정말 살 수 있어요? 꺼내 봐 달라고요?!”“그게 무슨 말이에요?”“우리 황보정이 집복당 손녀인 걸 몰라요?!”황보정 곁에서 가방을 들고 있던 나박하가 불쾌한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버럭 했다.“집복당 손녀?”점장이 살짝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가 이내 얼굴 가득 미소를 떠올렸다.부자가 망해도 삼 년은 간다고 했던가!비록 집복당 명성이 예전만 못했지만 점장은 함부로 황보정을 건드릴 용기는 없었다.점장의 목소리를 듣고 하현은 약간 귀에 익다는 생각이 들어 무심결에 고개를 들었다.그는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진홍민의 절친 중 한 명인 게 분명했다.예전에 진홍헌이 대대적으로 고백했을 때도 이 여자는 현장에 있었다.하현이 자세히 살펴보니 그녀의 가슴에 ‘강우금’이라는 명찰이 붙어 있었다.하지만 이 여자는 자신을 못 알아보는 것을 눈치채고 하현도 더는 쓸데없는 말씨름을 하기 싫어 아예 입을 다물었다.“손님, 어떤 색이 마음에 드시는데요?”“우리 매장에는 다양한 색상들이 있어서 선택할 수 있어요.”강우금은 미소를 지으며 한껏 판매에 열을 올렸다.황보정은 강우금의 말을 듣고 돌아서서 하현의 옷자락을 끌어당겼다.“하현, 여기 와서 좀 봐줘요. 어떤 색이 더 예쁜지.”“예?”“하현?!”강우금은 그제야 하현을 알아보았고 처음에는 살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지만 이내 냉소 가득한 얼굴을 보였다.비록 그날 하현이 진홍헌의 청혼식에서 크게 한판 벌였지만 나중에
황보정은 알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하현은 앞에 놓인 다과를 말끔하게 먹은 뒤 따뜻한 차를 한 모금 마신 후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좋아. 그럼 이 일은 이렇게 잘 마무리되었으니 나중에 쇼핑몰에 가서 옷이나 몇 벌 사자고!”“앞으로 내 대변인이 될 사람이니 말끔하게 보여야지.”“우리가 하려는 프로젝트는 대단히 수준 높은 프로젝트거든. 당신이 앞으로 접촉할 사람들은 모두 부유하거나 지위가 높거나 하니까 절대 무시당하지 않도록 준비를 단단히 해야지!”하현은 오늘의 이 결정을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내린 것이 아니었다.현재 임단은 이미 금정 화원에 있는 쓰레기 매립장 인수 일을 착수했다.비록 세간에서는 임단이 머리가 나쁘다는 소문이 돌고 있지만 하현은 금정 화원의 유적지가 발굴되는 순간 프로젝트 전체가 사람들의 이목을 끌 것이라는 걸 확신했다.이러한 전제하에 황보정이 자신의 대변인이 되어 일하겠다는데 멋진 옷 몇 벌 사 주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황보정이 비록 풍수사로서 인정은 받았지만 방값이 꽤나 비쌌고 수입은 별로 없었다는 것이다.이전에 저축해 두었던 돈은 의사를 구하는 데 거의 써 버렸기 때문에 정말로 수중에 남은 돈이 얼마 되지 않았다.황보정은 한참 예쁘게 꾸밀 나이였지만 제대로 된 번듯한 옷도 몇 벌 없었다.하현은 이 기회를 빌어 황보정에게 옷도 몇 벌 장만해 주고 살아갈 발판도 마련해 주고 싶었다.황보정은 공손하게 머리를 숙여 나지막이 말했다.“하현, 아직 입을 만한 옷이 있어요. 살 필요까진 없다고 생각하는데요...”“왜? 안 사게?”옆에 있던 나박하는 차를 마시며 껄껄 웃었다.“하현이 옷을 사 준다고 하잖아!”“우리가 말끔하게 차려입지 않으면 하현의 체면이 깎여!”“이제 하현은 금정 제일의 풍수지리사로 불리게 되었어!”“그런데 우리 같은 사람들이 너무 허름하게 입으면 손님들이 우리 대사님의 실력을 의심할 거야!”“그러니 사양하지 마. 잠시 후에 우
다음날 아침 일찍 하현은 방을 나섰다.설은아의 방문을 지나칠 때 그는 잠시 머뭇거렸지만 두 사람이 또다시 다투는 일을 피하기 위해서 문을 두드리지 않았다.거실에 와 보니 최희정은 핸드폰을 들고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하현이 지나가자 그녀는 눈을 흘기며 슬쩍 곁눈질할 뿐 똑바로 쳐다보지도 않았다.미간에는 그를 향한 마뜩잖은 기색이 가득했다.최희정은 어젯밤 설은아와 하현의 말다툼을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그래서 그의 뻔뻔함과 노여움을 눈빛으로 드러낸 것이다.하현도 최희정을 힐끗 쳐다보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문을 나서려는 순간 최희정이 우다금의 이름을 입에 올리는 소리를 들었다.하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최희정이 우다금과 연락을 하고 있다고?지난번 저지른 일로 우다금은 따끔하게 혼이 나야 했었다.하지만 그다지 큰일이 아니라서 하현은 크게 신경 쓰지 않고 바로 차를 타고 집복당으로 갔다.“하현, 아침은 먹었어요?”집복당 입구에 도착해 보니 언제 일어났는지 벌써 황보정이 나와 있었다.그녀의 눈은 이미 완전히 회복되었고 이제는 집복당 일을 하기 시작했다.하현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황보정은 방긋 웃으며 말했다.“다과를 좀 만들었는데 한번 먹어 볼래요?”황보정은 오늘 짧은 잔꽃 무늬 치마를 입고 긴 머리를 단정하게 빗어 넘긴 고운 자태였고 걸을 때 슬쩍슬쩍 보이는 하얀 다리는 눈부시게 빛났다.특히 그녀가 가까이 다가왔을 때 하현은 싱그러운 젊은의 기운을 물씬 느꼈다.아찔해지는 마음을 다잡으며 그가 말했다.“그럼 감사히 먹어 볼게.”“감사할 사람은 나예요. 내 눈을 낫게 해 주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몸도 정상으로 돌려놓았잖아요!”황보정은 동작이 재빨랐다.“안타깝게도 할아버지는 내가 남들 관상을 봐주는 일을 허락하지 않으세요. 내가 박명해서 다른 사람들의 관상을 계속 봐준다면 결국 내가 천기를 누설할 거라고 하셨어요.”“이번엔 다행히 당신을 만나서 살았지만 다
”풍수?”“하 대사?”“풍수관?”설은아는 명함을 움켜쥐고 노기 어린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 도대체 이게 무슨 뜻이야?”“제대로 된 일을 하지는 않고 강호의 사기꾼이 되겠다는 거야?”“내가 당신을 이렇게나 오래 알고 지냈는데 당신이 풍수지리술을 안다는 걸 어떻게 몰랐을까?”“풍수를 보는 일이 얼마나 진지하고 엄숙한 일인지 알아?”“몇 마디 말로 사람들을 속이며 돈을 벌 수 있는 게 아니야!”“자칫 잘못하다간 많은 사람들을 죽게 하기도 하는 거야! 알기나 해?”하현의 명함에 적힌 직함을 보면서 설은아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집복당, 아홉 대째 내려오는 대단한 실력, 주역 대사...하현은 자신의 본업에는 조금도 신경 쓰고 있지 않았다!남원이나, 무성, 대구에서는 하현이 정말로 실력이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금정에 와서 하현과 간민효가 친밀하게 지내더니 지금 눈앞에 내놓은 명함이라는 것을 보고 설은아는 슬슬 의심이 들기 시작했다.이전에 하현이 보여준 모든 것은 자신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닐까?지난 모든 것은 하현이 설 씨 가문을 설득하기 위해 만든 일종의 허상 같은 것이었다!그리고 이 허상을 만든 장본인은 하현이 밖에서 만나고 있는 간민효임이 틀림없다!금정 간 씨 가문의 간민효는 이 모든 것을 해낼 능력이 있는 여자이다.바닥에 널브러진 사진들이 그것들을 보여주는 가장 좋은 증거들이다!분노한 설은아를 보며 하현은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우선, 그런 눈빛으로 날 쳐다볼 필요가 없어.”“난 당신한테 말할 수 있어. 나와 간민효는 금정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처음 알게 되었어.”“과거의 모든 일은 그녀와 아무 상관이 없어.”“둘째, 그녀와 난 그저 평범한 친구일 뿐이야. 당신한테 하나하나 말하긴 어렵지만 지금 함께 몇 가지 일을 처리하고 있어.”“셋째, 내가 풍수관을 연 것은 나름의 목적이 있어서야. 내가 개업을 할 수 있다는 건 나 스스로에 대한 절대적인 확신이 있다는 걸 의
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가만히 그녀를 바라보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만약 내가 간민효랑 그냥 평범한 친구 사이라고 한다면 당신 믿겠어?”설은아의 두 눈에 찬서리가 내려앉았다.“그럼 내가 김탁우랑 그냥 친구 사이일 뿐이라고 한다면 당신 믿겠어?”“그거랑 이거랑은 달라.”설은아의 말을 듣자마자 하현이 되받아쳤다.“뭐가 달라?”설은아도 지지 않고 희미한 미소를 떠올리며 긴장감을 올렸다.“김탁우가 이 사진을 주었을 때 우리 부부간의 감정을 해칠 수 있다며 약간 망설였었어.”“하지만 지금 보니 이 사진들이 아니었어도 우리 두 사람 사이에는 더 이상 훼손될 감정도 없는 것 같아!”“그리고 한 가지 더 말해 둘 게 있어!”“내 차는 정비한다고 당신 비서 이시운이 가져갔어.”“그래서 일이 끝난 후 김탁우가 마침 가는 길에 날 데려다준 것뿐이야!”“나와 그 사람은 결백해!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다고! 누구와는 정말 다르지!”하현은 설은아의 말에 다소 화가 치밀어 올라 냉랭하게 입을 열었다.“난 당신을 믿어. 하지만 김탁우는 믿지 않아. 그는 좋은 사람이 아니야. 설마 당신이 그것을 눈치 못 챌 리가 없을 텐데?”“하현, 함부로 말하지 마! 김탁우가 좋은 사람인지 아닌지는 내가 판단해!”설은아는 얼굴 가득 노기를 띠며 말했다.“내가 이 사진들을 당신 앞에 내놓은 것은 적어도 당신이 조금이라도 반성하길 바래서였어!”“앞으로 이 들개 같은 여자랑 엮이지 말라고 말이야!”“하지만 당신은 결국 나의 호의는 전혀 헤아리지도 못하고 이런 무의미한 질투까지 하고 있어!”“만약 당신이 조금이라도 생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어떻게 우리의 재혼에 대해 엄마한테 잘 말할 수 있는지 그런 거나 궁리해야 하는 거 아니야?!”하현은 냉정을 유지하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당신들이 조건을 내걸었잖아?”“당신을 대구 정 씨 가문 수장으로 만들어야 한다고.”“그래서 나도 그쪽으로 노력하고 있어...”“뭐?”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