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 되었든 간에 무카이 마키는 영웅급 인물이었다.비바람과 큰 파도를 수없이 겪었다.그런데 자신의 친아들이, 자신이 지정한 후계자가 자신의 면전에서 죽는 모습을 보았을 때 그의 기백과 냉철함, 그리고 담담함은 사라지고 극도의 분노만 가득 남았다.그는 무카이 세이이치로가 느꼈던 것처럼 자신의 신분을 밝히고 적당히 선을 그으면 하현이 자신의 체면을 봐 줄 줄 알았다.이렇게 무참히 자신의 아들을 죽일 거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다.무카이 마키는 온몸이 끓어올라 분노로 전율했다.눈앞에 있는 하현을 산 채로 목 졸라 죽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수십여 명의 섬나라 남녀가 짐승처럼 으르렁거렸고 그들의 손에 있는 섬나라 장도는 언제든 칼집에서 나와 하현에게 달려들 준비를 하고 있었다.오직 하현만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최문성은 일찌감치 칼을 휘두르며 하현의 앞을 비호하고 나섰다.진홍두는 온몸을 부르르 떨었고 한시라도 빨리 빈소를 나가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얼른 발걸음을 떼려고 했다.홍성 정예들도 모두 얼굴이 창백해져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었다.하늘도 땅도 두려울 것이 없던 이들은 이 상황을 어찌 감당해야 할지 막막한 모양이었다.그때 진홍두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지만 그녀는 알아차리지 못한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미친놈, 저놈은 미치광이야. 절대 건드릴 수 없어! 절대 건드릴 수 없다구!”그녀는 차라리 자신이 항성 감옥에 있는 편이 더 나았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감옥에 갇혀 있었다면 이런 상황을 겪지 않아도 될 것이었다.“빌어먹을 놈!”“하현, 감히 내 앞에서 내 아들을 죽이다니!”“네 가족을 모두 멸하고 말 것이야!”“네 조상 무덤을 모조리 파헤쳐 이 수모를 반드시 되갚아 주고야 말겠어!”“뼈를 태워 천지 사방에 네놈의 재를 날려 버릴 거야!”무카이 마키가 섬나라 장도를 뽑아 들고 뛰쳐나오려고 했다.하현은 섬나라 장도를 들고 당당하게 말했다.“자식이 아비를 잘못
무카이 마키는 음흉한 미소를 떠올리며 하현을 쏘아보았다.과연 하현의 식견은 생각보다 넓었다.그러나 무카이 마키는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섬나라 장도를 뽑아 들고 순식간에 하현이 있는 곳을 향해 달려갔다.나머지 수십 명의 섬나라 고수들은 함성을 지르며 최문성이 있는 곳을 향해 죽일 듯이 달려들었다.최문성은 눈을 가늘게 뜨고 방금 진홍두가 땅바닥에 떨어뜨린 총을 재빨리 집어 들고 바로 방아쇠를 당겼다.“탕탕탕!”여러 명의 섬나라 고수들이 피바다 위에 쓰러졌다.그러나 나머지 섬나라 고수들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고 함성을 지르며 달려들었다.진홍두는 밖에서 이 장면을 지켜보며 도망쳐 나가려고 했지만 발바닥이 땅에 붙었는지 전혀 움직이질 않았다.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얼른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도움을 청할 수밖에 없었다.지금 이 순간 무카이 마키와 하현이 정면으로 맞붙었다.“솩!”무카이 마키의 칼이 날카로운 은빛 광채를 뽐내며 하현을 향해 허공을 갈랐다.하현은 칼을 휘두르며 무카이 마키의 칼을 되받았다.‘쨍그랑'하는 쇳소리와 함께 섬나라 장도가 서로 부딪히며 귀에 거슬리는 소리를 냈다.무카이 마키는 세 걸음 물러서며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그러나 하현은 그 자리에서 꿈쩍도 하지 않고 예리한 눈을 반짝이며 무카이 마키를 바라보았다.“전신급이군.”하현도 조금은 놀랐다.무카이 마키가 방금 그 검은 종이를 이용해 음양술을 부린 이후 그의 실력은 전쟁의 신급으로 탈바꿈한 것이다.비록 그 기운은 오래가지 못할 수도 있지만 실로 대단한 실력이었다.전신급 실력은 확실히 병왕급 실력과는 차원이 다른 개념이었다.예를 들어 변백범과 최문성은 모두 그들 세대에서는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인물들이었다.그러나 하현이 옆에서 내리는 지시를 그들이 그대로 따라 한다고 해도 단기간에 돌파구를 마련해 전쟁의 신이 될 수는 없었다.무카이 마키가 이 정도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섬나라 음양술이 아주 오랜 세월 존재해 왔으며
다른 사람들 눈에는 마치 환각이 보이는 듯했다.무카이 마키는 하얀 이빨을 드러낸 귀신을 등에 업은 채 장도를 들고 정면을 향해 날카로운 바람 소리를 내며 허공을 갈랐다.웬만한 장수가 와도 도저히 그의 칼을 당해내지 못할 정도였다.마침 밖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진홍두는 그야말로 오금을 저렸다.“솨솩!”어둠 속에서 도깨비불 같은 한 점의 빛이 반짝였다.그 짧은 순간 한 점의 빛은 어느새 서슬 퍼런 칼날이 되어 귀신을 등에 업은 듯한 무카이 마키의 칼을 막아내었다.“촤랑!”하현은 몸을 뒤로 젖히며 땅에 착지했고 무카이 마키는 세 걸음 뒷걸음질치며 칼에 쏟았던 절정의 에너지를 다시 거두었다.“점점 재미있어지는군. 이건 단순히 전신급의 실력이 아니야.”하현은 호기심이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음양술에 의지해 여기까지 오다니. 당신 섬나라 병부의 전신들도 지금은 당신의 상대가 되지 못할 거야.”“하지만 병왕에서 전신급으로 실력이 상승했고 강력한 전력도 가지고 있는데 그 실력으로 죽음을 뒤쫓고 있다니!”“아마 이 전투가 끝나면 당신의 육신은 무너져 있지 않을까?”하현은 호기로운 표정으로 무카이 마키를 바라보았다.그는 이 사악한 방법의 말로를 조금이나마 알고 있는 듯했다.음양술, 주술 등으로 무리하게 자신의 실력을 끌어올리는 것은 사실 자신의 잠재력을 미리 다 써 버리는 셈이다.특히 무리하게 실력을 끌어올리면 그 후환은 더욱 무시무시한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무카이 마키의 지금 상황으로 볼 때 이 전투가 끝나면 아마도 그의 육신은 바로 무너져 버릴 것이 분명했다.죽지 않더라도 폐인의 몰골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하 씨, 당신을 죽일 수만 있다면 난 죽어도 아무 상관없어!”무카이 마키가 노기를 가득 띤 눈으로 소리쳤다.그의 얼굴은 무자비하고 음산한 기운에 휩싸였다.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을 안 그는 다시 칼을 들고 죽자고 덤볐다.“솨솩!”또 한 번의 총력전을 펼쳤고 무
”철퍼덕!”무카이 마키는 땅바닥에 풀썩 주저앉았다.몸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써 보았지만 피만 토해낼 뿐 온몸의 힘이 다 빠져나간 듯 도무지 움직일 수 없었다.순간 그는 바람 빠진 고무공처럼 원래 자신의 모습으로 돌아갔다.더 늙고 초췌한 모습에 힘이라곤 하나도 남아 있지 않은 패잔병의 모습만이 남았다.창백하게 가라앉은 무카이 마키는 험상궂은 표정을 지었지만 몸부림치거나 소리 지르지 않고 천천히 무릎을 꿇은 채 섬나라 장도를 움켜쥐고 있었다.죽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살아 있는 것도 아니었다.그의 목숨은 지금 하현의 손에 넘어간 것 같았다.하현의 손바닥 한 방이면 그대로 저세상 문턱을 넘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안 돼!”이 모습을 보고 있던 섬나라 고수들은 마치 그들 마음속에 있던 커다란 태산이 무너진 것처럼 큰소리로 외쳤다.아무런 표정 없이 물끄러미 무카이 마키를 바라보는 하현의 모습에 섬나라 남녀들은 이를 갈았다.그러나 태산이 무너지는 듯 원통해하던 그들은 섬나라 장도를 쥐고 있을 힘조차 잃은 듯 땅바닥에 힘없이 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동력을 잃은 듯 허망해하는 섬나라 사람들을 보면서 진홍두는 도무지 이 광경이 믿기지가 않았다.정신이 혼미하다 못해 넋이 나갈 지경이었다.하현이 무카이 마키까지 이렇게 쉽게 무너뜨릴 줄이야!온갖 치장을 한 섬나라 여자들은 자신들의 입을 가리고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일단 무슨 소리라도 내면 하현에게 당할까 봐 두려움에 벌벌 떨었다.“당신, 졌어!”하현이 무덤덤한 표정으로 무카이 마키를 바라보며 옅은 미소를 지었다.“내가 말했잖아, 가만히 있으면 체면치레라도 한다고.”“물론 지금도 늦진 않았지만.”“퍽!”하현은 오른발로 길이가 짧은 칼을 걷어찼고 그 칼은 무카이 마키 앞에 떨어졌다.하현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섬나라 무사가 싸움터에서 패하면 그 자리에서 자결한다는 말을 들었어.”“당신들 섬나라 사람들이 들고 다니는 칼 두 자루 중 긴 것은
도요타 랜드크루저는 난폭한 소리를 내며 들어선 뒤 누군가 거칠게 문을 열고 나왔다.이십여 명의 젊은 남녀가 동시에 쏟아져 나와 앞을 향해 걸어 나왔다.그들은 허리에 칼을 차고 있었고 모두 거만하고 차가운 얼굴로 일관했다.키가 1미터 70센티미터에 육박하는 장발의 미녀가 눈에 띄었다.그녀는 조각한 듯한 유려한 이목구비를 자랑하며 마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내려다보듯 눈을 내리깔고 도도하게 사람들을 쳐다보았다.그녀는 왼손에 태블릿 PC를 들고 하현을 향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하현 지회장님, 당신은 대구도 아닌 항성에서 왜 이 소란을 피우는 거예요?”“용문 대구 지회장이 이렇게 날뛰는 모습을 나 공송연은 처음 보네요!”“하지만 이렇게 온 이상 마음대로 도망갈 순 없어요!”“죽기 싫으면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요!”“죽은 사람은 죄를 면할 수 있지만 산 사람은 죄를 면하기 어렵죠!”하현은 이 사람들을 힐끔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들 누구야?”“용문 집법당!”공송연은 또박또박 말했다.“우리 당주께서 일찍이 제보를 해 주셨어요. 당신은 용문 대구 지회장의 안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섬나라 귀빈들을 사사로이 도발하고 있다구요!”“게다가 항성으로 달려가 사람들을 죽이고 소란을 피웠다죠!”“항성 관청에서는 당신같이 나쁜 짓을 일삼는 소인을 용납할 수 있는지 몰라도 우리 용문에선 어림도 없죠!”“뭐라고?”하현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아! 용문 4대 장로가 후원하는 집법당 사람이었군!”“어쩐지 날뛰는 꼴이라니.”하현은 희미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그가 용문 대구 지회장을 맡은 것은 용인서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해서였다.그렇지 않으면 문주가 그에게 부탁했을 것이다.그러나 그는 관심이 없었다.몇몇 용문 집법당 제자들이 무슨 능력으로 그 앞에서 비위를 맞출 수 있겠는가?“이렇게 하지. 당신들 마침 잘 왔어. 잠시 후에 무카이 마키가 죽으면 당신들은 여기를 깨끗이 정리
공송연은 하현을 가리키며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말했다.“지금 난 집법당을 대표해서 당신한테 말하는 거예요.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요. 그리고 무카이 선생에게 용서를 빌고 우리 용문 집법당의 처분을 기다리세요!”“제멋대로 행동하다가 당신 체면도 세워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멈춰요!”“어차피 당신은 무카이 나오토를 죽였고 무카이 세이이치로마저 죽였어요!”“증거도 확실하고 사실관계도 분명해요. 그러니 우리가 당신을 죽여도 누구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죠!”말을 마치며 공송연은 누군가에게 손짓을 했다.그러자 갑자기 용문 집법당 사람들이 일제히 활을 들어 하현을 향해 겨누며 경멸하듯 노려보았다.하현은 그 모습이 흥미로운 듯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공송연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하현은 이 여자가 자신을 마뜩잖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아마 지금도 그 영향 때문에 더욱더 하현을 경멸하는 듯한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그녀가 속한 집단이 집법당이라는 것을 떠올리자 그녀의 이런 태도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자신이 용문 대구 지회장이 된 것이 아마도 기존의 기득권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언짢은 일이었을 것이다.지난번 지회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용문 집법당의 지위 높은 장로가 자신에게 맞고 스스로 모습을 감춘 일도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용문 집법당 사람들이 자신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 리 만무했다.자신이 용문 집법당의 지위 높은 장로를 일격한 상황에서 공송연이 감히 자신에게 당당히 맞서며 나타나다니!그녀가 이렇게 당당히 나선 이유는 바로 자신의 높은 신분 때문일 것이다.자신이 용문 장로의 후손임을 그녀는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평범한 용문 집법당 제자들은 자기 앞에서 명함도 못 내밀 처지였다.이런저런 생각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던 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공송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무카이 나오토는 내가 죽인 게 아니야. 이 점은 증거도 확실해. 게다가 난 알리바이도 확실하다구. 그런데
공송연의 편파적인 말에 무카이 마키는 얼씨구나 하고 숟가락을 얹었다.“그렇다면 제가 집법당에 가서 증언을 해 드릴 수도 있어요. 이놈이 내 자식들을 죽이고 두 나라의 우정을 파괴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아무 죄 없는 내 자식들을 이놈이 다 죽였으니 천벌을 받아야 해요!”“이놈은 사람을 죽이는 악마라구요!”“반드시 잡아서 처넣어야 해요!”“이런 사람이 벌을 받지 않으면 우리 두 나라 사이의 우정엔 분명 금이 갈 게 뻔해요!”무카이 마키는 섬나라의 진정한 무사도 정신은 잊은 지 오래였다.아니면 원래 그들 자체가 비열하고 저속하여 이른바 무사도 정신이란 것은 애초에 허울뿐인 외침에 불과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다른 사람들은 믿어 주길 바라면서 정작 그들 자신에겐 그런 무사도 정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진심 어린 척 말하는 무카이 마키를 보며 공송연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집법당에서는 반드시 당신에게 하늘의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드릴 겁니다!”“자기 사람 하나 관리 못 해서야 어떻게 우리 용문이 이 땅에 발붙일 수가 있겠어요?”공송연은 말을 마치며 싸늘한 눈동자를 하현에게 향했다.“하 지회장님, 정말 항명할 생각이에요?”하현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항명?”“만약 당신이 이렇게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고 선악을 분간하려는 조금의 노력도 하지 않으며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면, 그리고 이것이 당신들 집법당의 정신이라면 난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저항할 거야!”“정말 겁을 상실하셨군.”“하 씨, 당신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요!”“감히 용문 집법당을 모욕하다니! 이러고도 우리가 그냥 넘어갈 거라 생각해요?”공송연은 팔짱을 낀 채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당신이 지금 알아야 할 것은 이미 당신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는 거예요. 그것이 용문의 법이든 왕법이든 당신은 모두 어겼어요!”“순순히 죄를 인정해도 모자랄 판에, 언제까지 그
공송연 일행은 눈앞이 캄캄해졌다.그들은 많은 결말을 상상했었다.하현이 꼼짝 못하고 잡힌다든가, 하현이 완강히 저항한다든가, 하현이 그들 집법당과 맞서기 위해 자기편 사람들을 불러들인다든가...하지만 그들이 상상한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결말이 눈앞에 펼쳐졌다.용문 집법당 사람들은 눈앞의 광경에 경악하고 말았다.무카이 마키의 목숨을 살려서 섬나라 사람들의 진술만 받고 떠나게 하면 그뿐이었다.오늘 밤 당장 하현을 어떻게 할 수 없더라도 앞으로 그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 공송연의 손에 수백 가지도 넘었다.그런데 인적 증거가 되어 줄 무카이 일행이 이렇게 하현의 손에 단숨에 사라지다니!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인적 증인이 없으면 어떻게 하현의 죄를 물을 수 있단 말인가?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하현을 감옥에 가둘 수 있단 말인가?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하현을 지회장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단 말인가?무력으로?하지만 방금 하현의 수법에 현장에 있던 용문 집법당 사람들은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한바탕 정적이 지난 후 공송연을 비롯한 사람들은 정신을 가다듬었지만 자신들의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런 수법이라면 하현이 자신들 모두를 몰살시키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집법당 사람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하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앞으로 나서서 진홍두를 발로 걷어차고 바닥에 넘어뜨린 후 엷은 미소를 지었다.“진홍두, 무카이 일가는 자신들이 지은 죄가 두려워 할복을 하기로 결정했어.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 거야?”“당신은 날 위해 증언해 줄 수 있겠어?”진홍두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하현을 바라보았다.자신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는 하현을 보자 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눈썹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그래.”“무카이 집안은 홍성의 귀한 손님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홍성의 거물 진홍두도 무카이 일가가 자결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잖아. 그들의 죄목과 나와는 아무
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설은아를 바라보며 눈살을 찌푸렸다.“정말 해결할 수 있어?”설은아는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응. 할 수 있어.”해결이 안 된다고 하더라도 하현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 않았다.이번이야말로 하현에게 자신의 능력을 보여 주고 싶었다.“알았어. 해결할 수 있으면 됐어.”하현도 설은아가 허투루 말을 하는 가벼운 입이 아니란 걸 잘 알고 있었다.“하지만 해결이 잘 안 되면 억지로 버티지 말고 꼭 말해. 내가 해결할 방법을 생각해 볼게.”하현의 말을 듣고 이시운은 더욱 비아냥거리는 표정을 지었다.보아하니 데릴사위가 말주변이 아주 좋을 뿐만 아니라 허세 부리는 것도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았다.“붕!”바로 그때 사람이 드문 도로에 번호판 없는 승합차 여러 대가 포르쉐 앞에 나타났다.뒤이어 승합차 몇 대가 나타나 하현 일행을 태운 포르쉐를 에워쌌다.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알 길이 없는 설은아와 이시운의 얼굴이 순식간에 굳어졌다.“착!”이때 문이 열렸고 러닝셔츠를 입은 십여 명의 사람들이 손에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를 들고 걸어 나왔다.그때 승합차 한 대의 문이 스르르 열리며 우민은과 이국흥 두 사람이 지팡이를 짚고 내려오는 것이 보였다.“이 개자식들!”설은아는 이 두 사람을 보자마자 어떻게 된 상황인지 알아차렸다.“이런 치졸한 방법을 쓰다니!”하현은 이런 일을 너무 많이 겪어 봐서 그저 냉담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이시운은 이런 광경이 처음이라 온몸을 부르르 떨며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대표님, 이제 어떻게 해요?”“어서 신고해!”설은아는 무서울 정도로 침착했다.“내가 가서 시간을 벌어 볼 테니까!”“그래도 내가 대구 정 씨 가문 사람이니까!”“날 건드리면 어떤 일이 벌어질지 그들도 모르진 않을 거야.”“그러니 날 함부로 하진 못 하겠지!”“하현, 당신은 차 안에 있어. 나오지 말고 여기 있어. 괜히 나와서 일 크게 만들지 말고!”설은아는 상대가
설은아는 이시운을 데리고 포르쉐에 올라탔고 하현을 조수석에 앉혔다.액셀을 밟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아침에 대출받느라 바빴고 점심때는 직원들 월급 해결하고 회사 일도 다 처리했어. 이제 아무 문제없어.”“자, 이제 아침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한테 말해 봐, 아직도 아무 말 안 할 거야?”하현이 웃으며 말했다.“무슨 일?”“당신과 나천우의 일.”설은아는 호기심이 가득 담긴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나천우와 아는 사이였다고 해도 그녀가 이해하지 못할 일은 없었다.어차피 하현도 성공한 사람이니 그럴 수 있다.그녀가 이해하지 못하는 건 나천우가 어떻게 그처럼 그를 깍듯하게 모실 수 있냐는 것이다.하현을 위해 나천우는 은행 고위직 두 명을 바로 해고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곧바로 이천억이란 거금을 대출해 주었다.하현은 금정에 온 지 겨우 며칠밖에 되지 않았다.나천우는 은둔가 나 씨 가문 사람인데 어떻게 그가 하현에게 이렇게 극진한 대우를 할 수 있는가?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았다!하현이 나천우를 안다는 말을 듣고 이시운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이내 못마땅한 표정으로 비웃었다.나천우가 설은아의 미모에 흑심을 품고 하현의 체면을 세워 준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그런데 그것도 모르고 하현은 우쭐대고 있는 건가?참, 같잖은 꼴이라니!하현은 설은아가 무엇을 물어보는 것인지 간파한 뒤 입을 열었다.“나천우가 나한테 마침 한 가지 부탁할 일이 있었거든.”“무슨 부탁? 중요한 일이야?”설은아는 호기심에 눈빛이 반짝반짝거렸다.“나천우 같은 사람이 웬만한 일로 부행장과 부장을 해고하지는 않았을 거야.”이 말을 듣고 이시운은 깜짝 놀라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이 그런 능력이 있을 줄은 몰랐다.그러나 그녀는 점점 더 자신의 추측이 맞다고 확신하게 되었다.단지 데릴사위인 하현이 주제도 모르고 설칠 뿐이라고 생각했다.“날 속일 생각하지 마. 도대체 어떻게 나천우의 신임을 얻게 된 거야
”참, 여기 사인 좀 해 줘.”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나천우는 발걸음을 옮기려던 하한을 붙잡았다.그는 재빨리 옆방으로 가서 서류철을 가져와 하현에게 사인하라고 했다.하현이 서류를 받아들고 힐끔 쳐다보다가 나천우에게 눈길을 돌렸다.“이게 뭐예요?”“작은 거지만 내가 준비했어. 거절하면 안 돼!”말을 하면서 나천우는 직접 하현의 손을 잡고 지장을 찍은 뒤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박수까지 쳤다.하현은 무슨 상황인지 몰라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형님, 도대체 이게 뭐예요?”나천우는 웃으며 말했다.“이건 당신 형수가 우리 집안에 시집오고 나서 일으킨 회사야. 금정개발이라고 집을 짓고 파는 부동산업이지.”“이제 당신 형수는 아이를 낳는 데 전념해야 하니 이 땅과 회사 일에 쏟을 시간이 없어.”“이걸 팔거나 혹은 다른 사람한테 좌지우지하는 것도 보기 불편할 거야. 혼수나 다름없는 거였으니까.”“이제 당신 손에 넘어갔으니 아마 당신 형수도 분명 기뻐할 거야.”“지금부터 당신은 주식을 90% 가진 금정개발 대주주이며 절대적인 지배권을 가진 사람이야!”“나머지 10%는 우리 부부의 자식들에게 물려주는 셈으로 치자고.”“회사가 크지는 않아. 직원도 100명 남짓이고.”“회사에서 최근 몇 필지를 분양받아 개발하려고 사전 준비 작업을 하고 있어!”“하현, 마음에 드는 땅이 있거나 돈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말해!”“공과 사는 분명히 구분해야 하니까 이자는 꼬박꼬박 내야 해. 하지만 우대금리로 잘 해줄게.”말을 마치며 나천우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속으로 부자들은 역시 스케일이 다른 건가 잠시 생각할 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부동산 개발 회사가 보너스라니!이렇게 되면 자신이 금정 제일 부동산 개발업자가 되는 게 아닌가?만약 최희정이 이 사실을 안다면 피를 토하며 분노를 뿜을 것이다.하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그는 이것이 나천우 부부의 호의라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만
하현은 나천우에게 담요를 가져와 임단의 몸에 덮어 주라고 일렀다.그다음 그녀를 푹 쉬게 해 두고 조용히 나천우에게 따라나오라고 했다.바깥으로 나온 나천우는 하현을 깍듯이 대하며 옆에 있는 응접실로 데리고 와서 허리를 굽혀 고맙다는 인사를 했다.“하현, 이제 다 해결된 거죠?”“우리 아이를 극락으로 잘 보내 준 거죠?”그의 얼굴에는 기대와 긴장감이 가득했다.하현은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나천우를 쳐다본 뒤 옅은 미소를 지었다.“나 사장님, 세상에 귀신이 있다고 믿습니까?”나천우는 적잖이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하현, 세상에 귀신이 없다면 방금 그 말은 도대체...”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나 사장님, 아침에 제가 한 말 기억하세요?”“마음의 병은 마음의 약으로 고쳐야 합니다.”“사모님은 사실 건강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아이를 잃었다는 상실감 때문에 마음에 응어리가 졌던 것뿐입니다.”“그래서 사모님의 몸은 일종의 가임신 상태에 빠진 거죠.”“이런 상황에서는 두 분이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가질 수 없습니다.”“하지만 방금 제가 사모님 앞에서 보인 모습 때문에 사모님은 비로소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겁니다. 죽은 아이가 좋은 것으로 갔다는 안도감이 사모님의 마음을 위로한 거죠.”“마지막으로 사모님의 몸에 숨을 불어넣어 사산했을 때 감염되었던 약간의 풍한을 제거했어요.”“이제 사모님은 멀쩡한 사람입니다.”“두 분이 이제 아이를 가질 수 있다는 거죠.”하현은 웃으며 말을 이었다.“물론 내가 사장님한테 이렇게 다 털어놓고 말씀드리는 건 사장님이 문화인이란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실대로 말씀드리는 거예요.”“하지만 사모님은 여자이기 때문에 이 일은 아마 사장님과 나 사이의 비밀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아이를 무사히 출산한 뒤에 말씀드려도 늦지 않습니다.”“나중에 두 분이 날 너무 사기꾼으로 몰아붙이지나 마세요. 하하.”하현이 이렇게 허심탄회하게
말을 마친 후 하현은 얼른 종이와 붓을 꺼내 그 위에다 뭔가를 쭉 쓴 뒤 담담하게 말했다.“나 사장님,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이 물건들을 빨리 준비해 달라고 이르세요.”“이 물건들은 부인의 체내에 음흉한 기운을 모두 뽑아줄 겁니다.”“그렇게 해야 완전히 문제가 해결됩니다.”“음흉한 기운이 다 제거된다면 두 분은 자연스럽게 아이를 가질 수 있을 거예요.”나천우는 종이에 적힌 물건들을 보고 어리둥절해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고맙습니다. 바로 준비하라고 이르겠습니다.”순간 나천우의 마음속엔 하현에 대한 존경심이 솟아올랐다.나천우는 하현이 엄청난 돈이나 물질적인 것을 터무니없이 요구할까 봐 살짝 걱정이 되었었다.그런데 하현이 아무런 조건도 달지 않고 단칼에 승낙할 줄은 몰랐다.그래서 나천우는 하현을 완전히 높이 평가하게 된 것이다.잠시 후 나천우의 측근들은 하현이 지시한 물건을 모두 준비해 왔다.닭 피 한 그릇과 종이돈 한 묶음, 종이돈을 태우는 양동이.이를 본 임단은 의아한 눈빛으로 물었다.“하현, 제가 어떻게 하면 되는 거예요?”하현은 테이블을 가리켰다.“부인, 죄송하지만 여기 누우시고 배가 보이게 옷을 살짝 위로 올려 주세요.”하현의 말에 임단은 잠시 머뭇거렸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이어 그녀는 코트를 벗은 뒤 셔츠를 살짝 걷어 올려 새하얀 아랫배를 드러낸 채 테이블 위에 누었다.나천우는 이 광경을 보며 조금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가 결국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하현, 이건...”하현이 천천히 나천우에게 설명했다.“부인은 뱃속에서 아이가 죽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음흉한 기운이 여기 가득 들어 있습니다.”“예로부터 뱃속에서 죽은 아기는 엄마의 품을 떠나기 싫어 그 영혼이 떠돈다고 합니다.”“그래서 두 분이 아이를 가질 수 없었던 것이죠.”“오늘 저는 죽은 아이의 영혼을 잘 달래서 보내주려는 거고요.”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와 임단은 동시에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벌린 입을
하현은 냉랭하게 말했다.“미안하다고 할 필요 없습니다.”“일을 어떻게 처리할지, 나한테 어떻게 설명할 것인지만 들으면 됩니다.”“나머진 당신이 알아서 하면 되죠.”“난 아무 이견도 달지 않을 테니까요.”하현의 말은 마치 이 모든 것이 그와 무관한 일처럼 가볍게 들렸다.그러나 가볍게 들리는 그 말속에 숨어 있는 어조는 서늘한 기운을 가감 없이 드러내고 있었다.원래 하현이 어떻게 망신을 당하나 구경이나 하려고 했던 사람들은 놀라서 온몸을 부르르 떨며 눈알을 땅바닥으로 떨구었다.결국 그의 어조로 보아하니 그가 가볍게 말하면 말할수록 더욱 화가 난 상태라는 걸 알 수 있었다.그리고 우민은과 이국흥 두 사람은 이 일에 대해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말해 주었다.나천우는 하현을 향해 빙긋 웃으며 허리를 곧게 펴고 시선을 뒤로 돌렸다.그의 눈빛 속에 찬바람이 가득 휘몰아쳤다.우민은과 이국흥은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 왔고 무릎을 꿇으려 했지만 도저히 말을 듣지 않아 그대로 힘없이 풀썩 주저앉았다.“일어서세요!”나천우는 폭풍 전야의 고요한 태풍의 눈처럼 차분한 목소리였다.단지 손가락을 까닥이며 경호원에게 쇠 파이프를 건네받아 직접 두 사람의 다리를 한쪽씩 부러뜨렸다.그리고 나서 활을 들고 두 사람의 손바닥을 향해 활을 쏘았다.“휙!”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매섭게 울렸다.두 사람이 손바닥이 떨구어지자 나천우는 두 사람을 문 바깥으로 걷어차며 말했다.“잘 들어. 다시는 당신들 두 얼굴을 금정에서 마주하고 싶지 않아.”“감히 이 두 사람을 거두는 자는 나 나천우에게 도전하는 거라 생각할 거야!”“사람들을 교외로 내쫓아 스스로 빌어먹고 살게 해!”...10분 만에 설은아가 그토록 골머리를 앓던 이천억 대출이 순조롭게 실행되었다.무이자일 뿐만 아니라 담보 물건도 없이 진행되었다.다만 각종 수속이 복잡해서 설은아는 VIP실에 남아 서류 처리를 해야 했다.나천우는 하현을 깍듯이 모시고 행
”좋아, 당신이 그렇게 잘난 척을 하니 한 명이라도 어디 해고해 봐!”우민은은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비아냥이 가득한 얼굴로 하현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자! 어서 해 보라니까!”“퍽!”바로 그때 은행 로비의 문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차여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 열 명이 나타났다.선두에 선 사람은 양복 차림이었는데 그냥 보기에도 부티가 좔좔 흘렀다.그는 바로 금정은행 은행장, 은둔가 나 씨 가문 나천우였다.나천우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우민은과 이국흥은 모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려 굽신거렸다.“행장님!”“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우민은과 이국흥은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나천우 앞에서 입이 찢어져라 환한 미소를 보였다.그런데 평소에는 친근하게 그들을 대했던 나천우가 오늘 이렇게 차가운 얼굴로 들이닥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나천우는 그들에겐 눈길도 돌리지 않고 하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하현의 손을 잡고 힘껏 흔들었다.“하현,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이 말을 듣고 장내의 분위기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해졌다.모두 어안이 벙벙해지다 못해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곳곳에서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잠시 후 예쁘장한 여직원들이 자신의 뺨을 세차게 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그러나 눈앞의 광경은 잘못 본 것도 아니고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놀라움과 의아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연스럽게 하현에게 쏠렸다.몇몇 여자 고객들도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가 않는지 입을 막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어버렸다.우민은은 마치 사지가 마비된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이국흥은 더했다.사지가 그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쉼 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이게 무슨 상황인가?그들은 하현
이국흥은 염치도 체면도 안중에 없는 사람 같았다.그는 없던 일을 있었던 일처럼 꾸몄다.그의 목적은 단 하나, 우민은이 하현을 혼내 주길 바랐던 것이다.이때 설은아가 얼른 입을 열었다.“부행장님, 그게 아닙니다...”우민은은 이국흥에게 힘을 실어 주러 온 상사였기 때문에 당연히 설은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감히 우리 은행에서 사람을 때려요?”“간이 배밖에 나왔어요?”“지금부터 당신은 우리 은행 블랙리스트에 오를 거예요!”“이봐! 어서 관청에 신고해!”그녀의 카랑카랑한 말투는 오만하기 그지없었다.그러자 설은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분명 그녀는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될 줄은 몰랐다.설은아가 이끄는 회사의 자금줄이 빠듯한 건 사실이었다.그런데 결국 이렇게 완전히 파산하게 되었다.자신이 아홉 번째 집안을 맡은지 얼마나 되었는가?이렇게 빨리 파산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훗날 대구 정 씨 가문의 수장이 되겠다는 것인가?그야말로 허황된 꿈이었다!“하하하! 이게 바로 당신의 최후야!”“이제 알겠어?”이국흥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개자식! 이 개새끼야! 너 방금 정말 미친놈처럼 날 치더라? 정말 대단했지, 안 그래?”“자, 다시 한번 더 해 보시지?!”“당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디 한번 보자고!”“퍽!”하현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그의 요구에 답하며 앞으로 걸어가다가 또 한 번 손바닥을 휘둘렀다.이국흥은 하현이 감히 자신에게 또 손을 쓸 줄은 몰랐다.뺨을 맞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그는 가까스로 우민은의 몸에 기댄 덕분에 쓰러지지는 않았다.“미친 거야?!”“당신들 여기가 무법천지인 줄 알아?”우민은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이봐, 어서 신고해!”“은행 협회에 통보해서 설은아한테 대출 다 막으라고 해!”이때 하현은 싸늘한 표정으로 우민은과 이국흥을 바라보며 말했다.“두 사람이야말로 내 블랙리
하현을 말리는 설은아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국흥은 험상궂은 얼굴로 이를 갈며 일어섰다.그는 입가의 피를 닦고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개자식! 당신 누구야?!”“당신이 뭔데 감히 이러는 거야?”“날 때려? 감히 날 때렸어?”“내가 뭐?”하현은 앞으로 나서면서 또 손바닥을 올려 이국흥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감히 내 아내한테 그런 모욕감을 주다니! 나한테 누구냐고 물었어?”“내가 누군지 당신 눈엔 안 보여?”“혹시 설 대표가 당신 부인이야?”이국흥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뭔가 떠오른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신이 그 소문으로만 듣던 그 쓰레기 같은 놈?”“그런데 감히 날 때려?!”“죽여버릴 거야!”하현은 또 그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퍽!”“날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그렇지만 내 여자를 건드리는 놈은...”“절대 용서할 수 없어! 오늘이 당신 제삿날인 줄 알아!”퉁퉁 부은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은 이국흥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벌벌 떨었다.“하현, 그만해! 그만하라고!”설은아는 한사코 하현을 말리며 붙잡았다.“또 때리면 정말 사람이 죽겠어!”그녀는 마음속으로는 그를 고맙고 든든하게 여겼지만 불똥이 그에게 튈까 봐 걱정도 되었다.오래된 도시 금정의 은둔가 가문이 뒷배에 있는 금정은행 부장을 누가 건드릴 수 있겠는가?금정은행의 뒷배인 나 씨 가문은 금정 금융계의 거물이었다.“개자식! 감히 날 때리다니?!”“흥! 넌 이제 죽었어! 내가 반드시 널 죽여버릴 거야!”이국흥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러나 그는 감히 하현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입만 떠들썩하게 떠벌렸다.“반드시 관청에 보고해서 감옥에 처넣어 버릴 거야!”“그리고 제멋대로 날뛰는 네놈 때문에!”“이 여자도 상상하기 힘든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블랙리스트에 올라 금융계에선 다시는 일 원 한 푼 빌릴 수 없게 만들 거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