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요타 랜드크루저는 난폭한 소리를 내며 들어선 뒤 누군가 거칠게 문을 열고 나왔다.이십여 명의 젊은 남녀가 동시에 쏟아져 나와 앞을 향해 걸어 나왔다.그들은 허리에 칼을 차고 있었고 모두 거만하고 차가운 얼굴로 일관했다.키가 1미터 70센티미터에 육박하는 장발의 미녀가 눈에 띄었다.그녀는 조각한 듯한 유려한 이목구비를 자랑하며 마치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내려다보듯 눈을 내리깔고 도도하게 사람들을 쳐다보았다.그녀는 왼손에 태블릿 PC를 들고 하현을 향해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하현 지회장님, 당신은 대구도 아닌 항성에서 왜 이 소란을 피우는 거예요?”“용문 대구 지회장이 이렇게 날뛰는 모습을 나 공송연은 처음 보네요!”“하지만 이렇게 온 이상 마음대로 도망갈 순 없어요!”“죽기 싫으면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요!”“죽은 사람은 죄를 면할 수 있지만 산 사람은 죄를 면하기 어렵죠!”하현은 이 사람들을 힐끔 쳐다보며 담담하게 말했다.“당신들 누구야?”“용문 집법당!”공송연은 또박또박 말했다.“우리 당주께서 일찍이 제보를 해 주셨어요. 당신은 용문 대구 지회장의 안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섬나라 귀빈들을 사사로이 도발하고 있다구요!”“게다가 항성으로 달려가 사람들을 죽이고 소란을 피웠다죠!”“항성 관청에서는 당신같이 나쁜 짓을 일삼는 소인을 용납할 수 있는지 몰라도 우리 용문에선 어림도 없죠!”“뭐라고?”하현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말했다.“아! 용문 4대 장로가 후원하는 집법당 사람이었군!”“어쩐지 날뛰는 꼴이라니.”하현은 희미한 눈빛으로 그들을 쳐다보았다.그가 용문 대구 지회장을 맡은 것은 용인서의 체면을 세워 주기 위해서였다.그렇지 않으면 문주가 그에게 부탁했을 것이다.그러나 그는 관심이 없었다.몇몇 용문 집법당 제자들이 무슨 능력으로 그 앞에서 비위를 맞출 수 있겠는가?“이렇게 하지. 당신들 마침 잘 왔어. 잠시 후에 무카이 마키가 죽으면 당신들은 여기를 깨끗이 정리
공송연은 하현을 가리키며 비아냥거리는 어조로 말했다.“지금 난 집법당을 대표해서 당신한테 말하는 거예요.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요. 그리고 무카이 선생에게 용서를 빌고 우리 용문 집법당의 처분을 기다리세요!”“제멋대로 행동하다가 당신 체면도 세워 주지 않는다고 원망하지 말고 그 자리에서 멈춰요!”“어차피 당신은 무카이 나오토를 죽였고 무카이 세이이치로마저 죽였어요!”“증거도 확실하고 사실관계도 분명해요. 그러니 우리가 당신을 죽여도 누구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죠!”말을 마치며 공송연은 누군가에게 손짓을 했다.그러자 갑자기 용문 집법당 사람들이 일제히 활을 들어 하현을 향해 겨누며 경멸하듯 노려보았다.하현은 그 모습이 흥미로운 듯 입가에 옅은 미소를 지으며 공송연을 위아래로 훑어보았다.하현은 이 여자가 자신을 마뜩잖게 생각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아마 지금도 그 영향 때문에 더욱더 하현을 경멸하는 듯한 시선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하지만 그녀가 속한 집단이 집법당이라는 것을 떠올리자 그녀의 이런 태도가 조금은 이해가 되었다.자신이 용문 대구 지회장이 된 것이 아마도 기존의 기득권 사람들에게는 무척이나 언짢은 일이었을 것이다.지난번 지회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용문 집법당의 지위 높은 장로가 자신에게 맞고 스스로 모습을 감춘 일도 있었다.이런 상황에서 용문 집법당 사람들이 자신에게 좋은 감정이 있을 리 만무했다.자신이 용문 집법당의 지위 높은 장로를 일격한 상황에서 공송연이 감히 자신에게 당당히 맞서며 나타나다니!그녀가 이렇게 당당히 나선 이유는 바로 자신의 높은 신분 때문일 것이다.자신이 용문 장로의 후손임을 그녀는 무척이나 자랑스러워했다.평범한 용문 집법당 제자들은 자기 앞에서 명함도 못 내밀 처지였다.이런저런 생각들을 머릿속에 떠올리던 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공송연을 바라보며 말했다.“무카이 나오토는 내가 죽인 게 아니야. 이 점은 증거도 확실해. 게다가 난 알리바이도 확실하다구. 그런데
공송연의 편파적인 말에 무카이 마키는 얼씨구나 하고 숟가락을 얹었다.“그렇다면 제가 집법당에 가서 증언을 해 드릴 수도 있어요. 이놈이 내 자식들을 죽이고 두 나라의 우정을 파괴했는데 가만히 있을 수 없죠. 아무 죄 없는 내 자식들을 이놈이 다 죽였으니 천벌을 받아야 해요!”“이놈은 사람을 죽이는 악마라구요!”“반드시 잡아서 처넣어야 해요!”“이런 사람이 벌을 받지 않으면 우리 두 나라 사이의 우정엔 분명 금이 갈 게 뻔해요!”무카이 마키는 섬나라의 진정한 무사도 정신은 잊은 지 오래였다.아니면 원래 그들 자체가 비열하고 저속하여 이른바 무사도 정신이란 것은 애초에 허울뿐인 외침에 불과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다른 사람들은 믿어 주길 바라면서 정작 그들 자신에겐 그런 무사도 정신이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진심 어린 척 말하는 무카이 마키를 보며 공송연은 옅은 미소를 지었다.“어르신, 걱정하지 마세요. 우리 집법당에서는 반드시 당신에게 하늘의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드릴 겁니다!”“자기 사람 하나 관리 못 해서야 어떻게 우리 용문이 이 땅에 발붙일 수가 있겠어요?”공송연은 말을 마치며 싸늘한 눈동자를 하현에게 향했다.“하 지회장님, 정말 항명할 생각이에요?”하현은 웃으며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항명?”“만약 당신이 이렇게 옳고 그름을 구분하지 못하고 선악을 분간하려는 조금의 노력도 하지 않으며 진실을 은폐하려 한다면, 그리고 이것이 당신들 집법당의 정신이라면 난 내 목숨을 바쳐서라도 저항할 거야!”“정말 겁을 상실하셨군.”“하 씨, 당신 정말 간이 배 밖으로 나왔군요!”“감히 용문 집법당을 모욕하다니! 이러고도 우리가 그냥 넘어갈 거라 생각해요?”공송연은 팔짱을 낀 채 의기양양한 눈빛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당신이 지금 알아야 할 것은 이미 당신은 용서받을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는 거예요. 그것이 용문의 법이든 왕법이든 당신은 모두 어겼어요!”“순순히 죄를 인정해도 모자랄 판에, 언제까지 그
공송연 일행은 눈앞이 캄캄해졌다.그들은 많은 결말을 상상했었다.하현이 꼼짝 못하고 잡힌다든가, 하현이 완강히 저항한다든가, 하현이 그들 집법당과 맞서기 위해 자기편 사람들을 불러들인다든가...하지만 그들이 상상한 그 모든 것을 뛰어넘는 결말이 눈앞에 펼쳐졌다.용문 집법당 사람들은 눈앞의 광경에 경악하고 말았다.무카이 마키의 목숨을 살려서 섬나라 사람들의 진술만 받고 떠나게 하면 그뿐이었다.오늘 밤 당장 하현을 어떻게 할 수 없더라도 앞으로 그를 죽일 수 있는 방법이 공송연의 손에 수백 가지도 넘었다.그런데 인적 증거가 되어 줄 무카이 일행이 이렇게 하현의 손에 단숨에 사라지다니!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인적 증인이 없으면 어떻게 하현의 죄를 물을 수 있단 말인가?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하현을 감옥에 가둘 수 있단 말인가?증거가 없는데 어떻게 하현을 지회장 자리에서 끌어내릴 수 있단 말인가?무력으로?하지만 방금 하현의 수법에 현장에 있던 용문 집법당 사람들은 완전히 넋이 나가 있었다.한바탕 정적이 지난 후 공송연을 비롯한 사람들은 정신을 가다듬었지만 자신들의 온몸이 식은땀으로 흠뻑 젖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이런 수법이라면 하현이 자신들 모두를 몰살시키는 것도 그리 어렵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집법당 사람들을 더욱 움츠러들게 만들었다.하현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앞으로 나서서 진홍두를 발로 걷어차고 바닥에 넘어뜨린 후 엷은 미소를 지었다.“진홍두, 무카이 일가는 자신들이 지은 죄가 두려워 할복을 하기로 결정했어.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 거야?”“당신은 날 위해 증언해 줄 수 있겠어?”진홍두는 마른침을 꼴깍 삼키며 하현을 바라보았다.자신을 향해 의미심장한 미소를 보이는 하현을 보자 그녀는 파르르 떨리는 눈썹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그래.”“무카이 집안은 홍성의 귀한 손님인데도 불구하고 지금 홍성의 거물 진홍두도 무카이 일가가 자결했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잖아. 그들의 죄목과 나와는 아무
하현은 옆에 있던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저녁 6시가 다 되어 가고 있었다.푹 쉬고 싶은 마음에 무음으로 설정해 놓고 잠들었다 일어나 보니 동리아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열 통은 넘게 와 있었다.이렇게까지 전화를 한 것으로 보아 아마도 무슨 급한 일이 있는 듯했다.결국 통화가 되지 않자 동리아가 직접 찾아온 것이었다.동리아의 신분과 역량으로 항성에서 못 찾아낼 사람은 없었다.하현은 얼른 정신을 가다듬고 옷을 갈아입은 후 방문을 열었다.문 앞에 선 동리아는 샤넬 검은 치마를 입고 있었다.여전히 짧은 헤어스타일이었지만 검은 드레스를 입은 그녀는 누구보다 요염하고 섹시하고 이국적인 풍모까지 풍겼다.하현은 눈앞에서 반짝반짝 매력을 풍기고 있는 동리아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감탄하는 듯한 눈빛을 띠었다.“동리아, 마침 룸서비스 요청하려던 참이었어. 같이 식사나 해.”하현은 이것저것 닥치는 대로 음식을 주문했다.오래지 않아 음식이 도착했고 그는 음식을 먹으며 동리아에게 말했다.“도대체 무슨 일이야?”동리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하현, 하루 종일 잠만 자다 보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를 거예요.”“오늘 용문 집법당에서 사람이 왔어요. 제일 앞에 앞장선 사람이 당주 바로 아래 사람인 부당주였어요.”“항성의 지리적 특수성 때문에 오늘 오후에 부당주가 직접 우리 항성 관청으로 서한을 들고 왔더라구요. 그 사람이 당신을 만나길 원해요.”하현은 웃으며 말했다.“난 용문 대구 지회장이야. 그들은 왜 나한테 직접 연락하지 않고 당신한테 가서 소란을 피워?”“참, 재미있군!”“당신네 동 씨 집안은 자신의 신분을 정확히 파악하고 있으니까 어떤 스탠스를 취해야 할지 잘 알잖아?”동리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용전, 용문, 용위, 용옥의 주요 인사들이 정식으로 서한을 보내니 도저히 그들을 등한시할 수 없었어요.”“내 짐작이긴 하지만 용문 집법당은 이 기회에 우리 동 씨 집안을 철저히
저녁 8시, 항성 중심부 한 오피스텔.이곳은 동 씨 집안 소유로 매년 놀라운 임대료 상승률을 보이고 있는 곳이다.이 오피스텔 꼭대기에는 공중 정원이 있는데 사계절 내내 화려한 꽃과 녹음이 어우러져 있어서 보기만 해도 입이 쩍 벌어지는 풍경을 자랑한다.동 씨 집안의 모든 역량이 총동원된 곳이기도 해서 동리아는 이곳을 약속 장소로 삼았다.이렇게 하면 상대가 어떤 수단을 쓰든 반드시 적절한 맞대응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그녀는 확신했다.하현은 항성 관청의 업무용 차를 타고 이 오피스텔에 도착한 뒤 예리한 눈빛으로 사방을 훑어보았다.이곳은 밤이 되었는데도 많은 차량들로 붐볐다.도로에는 많은 회사원들이 삼삼오오 바쁘게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하현은 눈을 번뜩이며 미소를 지은 뒤 동리아에게 말했다.“동리아, 기가 막힌 입지로군, 돈이 저절로 모이는 곳에 위치해 있다니!”“그런 소리 하지 마세요. 그냥 우리 집안이 여기서 좀 먹고 살 뿐이에요.”동리아는 깔끔한 검은색 샤넬 드레스를 입었을 뿐인데도 지나가는 남자들은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남자들은 하나같이 얼굴이 빨개지며 힐끔힐끔 그녀를 훔쳐보았다.안타깝게도 동리아는 이 남자들에게 조금도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동리아는 공손한 자세와 상냥한 목소리로 하현에게 말했다.“하현, 다 왔어요. 오늘 8시 정각에 여기서 공송연을 만나기로 했어요. 늦어도 상관없으니 서두르지 않아도 돼요.”“쇼핑에 관심이 있다면 아래층 면세점을 천천히 둘러봐도 되고.”말을 끝내자마자 동리아는 자연스럽게 하현의 팔짱을 끼고는 다정한 한 쌍처럼 오피스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동 씨 집안사람들은 동리아의 이런 다정한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저 콧대 높은 아가씨가 언제 저렇게 상냥하고 공손했을까?“면세점은 물론이고 난 쇼핑을 좋아하지 않아.”하현은 담담하게 말하며 오피스텔 안으로 향했다.“공송연이 온다고? 그녀가 감히 내 앞에 다시 나타난다고?”“왜? 다시 나타
하현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성이 용 씨라고?”“대하 10대 가문 중 하나인 그 용 씨 가문?”“그래서 좀 일이 복잡해졌어요. 용 씨 가문일 뿐만 아니라 항렬상 용문주와 같은 연배이고 심지어 용문주가 형님이라고 불러야 한대요.”하현은 동리아의 설명을 듣고 헛웃음을 터뜨렸다.“이것 참 재미있군. 용문주의 일가 형님이 집법당의 부당주라니. 관계 한번 복잡하군.”“하지만 공송연은 이 용문주의 형님뻘 되는 사람을 앞세워 지금 우릴 상대하려 하고 있어.”“그녀는 내가 집법당의 체면을 봐 주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고 있는 거지. 정말로 이런 상황을 끝내고 싶다면 가장 먼저 이런 수작부터 멈추어야지.”“그런데 그녀는 굳이 용오정을 항성으로 오게 만들어 용오정의 신분으로 우릴 제압하려 하고 있어!”“아쉽게도 공송연은 너무 쉽게 생각했어. 용오정 같은 인물이 날 제압할 수 있었다면 난 벌써 몇 번이고 죽었을 거야.”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천천히 입을 열었다.“공송연이 그릇이 그리 큰 사람은 못 되는 모양이야.”“용문의 공송연이 이 정도밖에 안 된다니, 참.”“정말 별것 아니군.”동리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그런데 하현, 당신은 그래도 조심 또 조심해야 해요.”“공송연이 하는 짓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지만 용오정은 일찍부터 항성에서의 인맥이 두터워요.”“용문에서 출세해서 권세를 좀 잡았다 싶은 사람들은 모두 그를 존경한다고요.”“그리고 용문 항도 지부도 있으니 그들을 무시해서는 안 돼요. 항성과 도성은 지리적으로 특별한 관계에 있으니까요.”“용오정이 체면을 차리지 않고 용문 항도 지부의 인원과 역량을 뽑아 당신을 상대한다면 일이 정말 복잡해져요.”동리아는 잠시 한숨을 내쉬었다가 이내 다시 말을 이었다.“그렇지만 하현, 당신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우리 동 씨 집안이 당신 편에서 든든하게 지원해 줄 테니까.”하현은 실실 웃으며 말했다.“리아야, 너야말로 걱
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노국의 황실을 위해 일을 했다고?”“황실의 공주라고 해도 난 봐 주지 않았어. 그런데 그 밑에서 일하던 신하가 감히 내 면전에서 거만하게 행패를 부리다니. 절대 체면 따위 세워 주지 않을 거야.”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먼저 발걸음을 옮기며 걸어 나왔다.두 사람은 전용 엘리베이터를 타고 꼭대기 층에 있는 공중 정원에 도착했다.이곳은 5,600 평방미터나 되는 면적에 주변은 온통 식물로 둘러싸여 울창함을 자랑했다.가운데 자리에는 200평 정도의 응접실이 마련되어 있었는데 안쪽 벽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걸려 있었다.사방에는 정교하게 조각된 전통 문양 가구들이 병풍처럼 쭉 놓여 있었다.근래 보기 드물게 분위기가 아늑하고 고풍스러운 응접실이었다.어디서도 쉽게 볼 수 없는 인테리어 소품들과 우아한 분위기가 눈을 즐겁게 했다.그러나 원래는 있을 곳에 제자리를 지키며 안정감 있게 들어차 있던 소품과 가구들이 난장판이 되어 있었다.값비싼 소파와 테이블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고 바닥에는 깨진 유리잔 파편들이 이리저리 나뒹굴고 있었다.한가운데에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노인 두 사람이 앉아 있었다.옛풍의 옷을 입고 백발 수염을 훈장 삼아 내걸고 있는 네모난 얼굴의 노인이 용오정 같았다.그는 화도 내지 않고 아무런 위세도 부리지 않으며 가만히 앉아 있었다.다른 한 노인은 서양 턱시도를 입고 눈두덩이 깊게 패어 과도한 주색을 띠고 있었지만 몸은 다부져 보였다.아마도 이 사람은 항독으로 일하면서 제국의 황실을 위해 일했다는 그 장남백일 것이다.그들의 뒤에는 십여 명의 남녀가 서 있었고 선두에 공송연이 서 있었다.이 사람들은 모두 집법당 사람들일 것이다.다들 거만하고 기고만장한 표정에 보이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 사람들 같았다.특히 용오정을 앞세운 공송연의 표정은 안하무인 그 자체였다.“이봐, 하현과 동리아는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야?”사람들이 들어오는 것을 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