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풀썩!”후루타는 무릎을 꿇었다.온몸의 움직임은 무뎌졌고 심장을 뛰게 했던 생기는 썰물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그는 도무지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자신은 너무도 당당한 음류 외부 장로로서 병왕급 검객이었다.그런데 어떻게 대하 젊은이의 칼놀림 몇 번에 사지 육신이 처참히 짓밟혔는지 이해하려야 할 수가 없었다.그의 마음은 끓어오르는 울분으로 가득 찼지만 아무리 울분을 토해내어도 지금의 현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사방은 쥐 죽은 듯 조용했고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소리만이 고요하게 정적 속으로 빠져들었다.모두가 최문성의 칼놀림에 충격에 빠져 허우적거렸다.몇몇 섬나라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 상황이 꿈이 아님을 확인하려고 애썼다.세상 거칠 것이 없던 강력한 후루타 타카이치가 뜻밖에도 대하 젊은이에게 일격을 당하다니!하구천은 눈동자를 부릅떴다.자신도 전신급 고수였기 때문에 단번에 최문성의 능력을 알아볼 수 있었다.그의 몸놀림은 분명 고수의 가르침을 받은 것이 틀림없다.그렇지 않았다면 어떻게 이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단 말인가?생각이 이에 미치자 하구천의 시선은 자연스럽게 하현에게로 쏠렸다.설마 이놈이 최문성을 가르친 건가? 설마!그래, 결국 최 씨 가문은 기꺼이 하현의 앞잡이가 되기로 한 건가?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자 하구천은 하현을 죽이고 싶은 마음이 더욱더 용솟음쳤다.항도 하 씨 가문 후계자 자리는 하구천에게 있어 가장 큰 카드였다.누구에게도 양보할 수 없고 그 누구도 자신의 위치를 넘봐서도 안 되는 것이다.절대 용납할 수 없는 단 하나였다.하현을 죽이지 않고도 하구천 자신이 후계자 자리에 앉는다고 해도 반드시 자신의 손으로 하현을 죽이고 말 것이다!“최문성! 하현! 감히 네놈들이!”진홍두는 충격에서 깨어나 이를 갈며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보아하니 당신들 오늘 반드시 우리 홍성을 상대해야 할 것 같군. 그리고 섬나라 음류와도 반드시 한 판을 벌여야 할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나 버렸다!병왕급인 최문성 앞에서 이런 홍성 건달들은 아무 힘도 쓰지 못했다.무덤덤한 표정으로 총을 뽑아든 몇몇 용전 항도 지부 사람들이 손을 쓸 여지도 주지 않고 상황은 종료되었다!진홍두의 얼굴은 순식간에 일그러졌고 어기적거리며 룸을 빠져나가려고 했다.“진홍두, 아직 날 죽이지도 않았는데 도망부터 가려고?”“너무 예의 없는 거 아니야?”“게다가 여기가 당신이 오고 싶다면 오고 가고 싶다면 갈 수 있는 데인 줄 알아?”하현은 진홍두를 향해 한 걸음 앞으로 다가갔고 동시에 오른손을 뻗어 진홍두의 얼굴을 가볍게 툭툭 쳤다.진홍두는 온몸이 뻣뻣해졌다.마치 뭔가에 홀린 것처럼 정신이 혼미했고 몸은 마음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그녀는 분한 듯 하현을 노려보며 말했다.“그래, 이제 어떻게 할 건데?”“재주가 있으면 날 건드려 보시든가!”이때 밖에서는 또 수십 명의 홍성 건달들이 쳐들어오려고 시도하고 있었다.이번에는 최문성과 몇몇 용전 항도 지부 사람들이 총으로 그들을 막아섰다.“당신 하나쯤 어떻게 하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인가?”하현은 엄지와 검지로 진홍두의 뾰족한 턱을 치켜들었고 사정없이 그녀의 뺨을 후려갈겼다.“촥촥!”하현은 그녀의 뺨을 두 번 내려쳤고 진홍두의 얼굴은 금세 벌겋게 부어올랐다.그럼에도 진홍두의 섬세한 이목구비는 여전히 아름다웠다.“내가 당신을 건드리면 어떻게 할 건데?”진홍두는 부득부득 이를 갈며 분통해했다.홍성 바닥을 쥐락펴락하던 그녀였다.누구에게 뺨이라는 걸 맞아 봤겠는가?“하 씨, 이놈! 내 손으로 반드시 널 죽여 버릴 거야!”“촥!”하현은 여전히 무덤덤한 표정으로 한 번 더 그녀의 뺨을 후려쳤다.“날 죽여? 지금 당신의 생사가 내 손에 달렸어. 지금 상황이 이해가 안 되는 거야?”“촥!”“이 바닥에서 몇 년을 놀았는데 아직도 이 상황이 파악이 안 되는 거야? 이쯤 되면 손이 발이 되도록 빌어야 한다는 거 몰라?”“지금
음침하고 차가운 소리가 무겁게 깔리며 룸 안에 울려 퍼졌다.모든 사람들은 오싹한 느낌에 휩싸여 자신도 모르게 주변을 두리번거렸다.잘날 척하던 많은 사람들은 모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숨죽이고 있었다.진홍두는 이 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라이온 킹! 어르신을 뵐 면목이 없어요.”“이놈이 우리 홍성을 무시하며 협박을 했어요!”“어르신께서 혼을 좀 내주시면 좋겠습니다.”라이온 킹!?항성과 도성 사람들이라면 모두 숨을 헐떡이며 입에 올릴 극강의 인물, 라이온 킹!라이온 킹은 홍성의 최고 고수였다!듣자 하니 홍성이 큰 대가를 지불하고 해외에서 초빙한 고수라고 했다.외부의 습격으로부터 홍성의 고위층을 보호하기 위해서 초빙했다는 말을 들었다.그런 라이온 킹이 진홍두의 편에 서 있을 줄이야!라이온 킹의 비호로 진홍두는 절대적 안전을 확보했던 것이다.전설에 따르면 이 라이온 킹은 절정의 병왕이며 거의 전쟁의 신급 경지에 가깝다고 했다.그는 하 씨 성을 가진 사람을 반드시 죽일 수 있다고 생각했다.아무리 최문성이 옆에서 지킨다고 해도 결국 지키지 못하게 될 것이다.어차피 같은 병왕이라고 하더라도 실력 차이란 것은 엄연히 존재하는 법이었다.라이온 킹 앞에서 최문성이라는 신진 병왕은 그저 한낱 피라미에 불과한 것이다.홍성의 와호장룡을 그리 만만히 봐서는 큰 코 다칠 일만 남는다.“어이, 젊은이. 홍성과 섬나라 음류 사람들은 당신 같은 피라미가 건드릴 수 있는 사람이 아니야.”“지금 기회를 줄게. 네 뺨 열 대 때리고 무카이를 살려낸다면 내가 당신 살려줄게.”“만약 당신이 거절한다면 이 몸이 직접 나서서 먼지가 나도록 패 줄 수밖에 없어.”말투는 담백했지만 내용은 섬뜩했다.마치 저승에서 온 저승사자가 매서운 눈으로 그와 황천길을 갈 사람을 물색하는 것 같았다.이 광경을 보던 사람들은 저절로 손에 땀이 났다.곧이어 라이온 킹은 사람들 속을 헤집고 모습을 드러
”이런 방자한 놈!”라이온 킹의 얼굴이 어두워졌다.항성과 도성을 종횡무진 누빈 그녀였다.최고의 가문도 라이온 킹이라는 이름 앞에서는 겸손한 태도를 보여왔다.그 이름만으로 항성과 도성에서는 거칠 것이 없었던 것이다.그런데 젊은 애송이 같은 놈 따위가 감히 눈앞에서 자신을 모욕하다니!라이온 킹도 더 이상 쓸데없는 말을 하기 싫어서 바람처럼 곧장 앞으로 달려 나와 하현 앞에 섰다.동시에 그녀는 하현의 멱살을 잡고 부숴버리려고 했다.그러나 하현은 조금도 흔들림 없는 눈빛으로 그녀를 똑바로 쳐다보았다.라이온 킹이 발톱을 드러내며 하현의 목에 가까이하려는 순간 날카로운 기운이 솟아올랐다.생각지도 못한 날카로운 기운에 그녀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움찔 놀라 몸을 돌렸고 허공으로 날아올라 오른손으로 칼을 막았다.“촤창!”무서운 파동이 장내로 퍼지면서 모든 사람들의 옷과 머리카락이 펄럭였다.사람들은 순식간에 일어난 상황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최문성이라는 부잣집 도련님이 이렇게 대단할 줄은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다.역시 모든 사람이 병왕이라고 불릴 만하다고 정평이 나 있는 전설의 당도대다웠다.도성의 부잣집 도련님이 당도대에 갔다 온 지가 언제인데 아직도 이런 대단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칼 솜씨가 이 정도일 줄은 정말 아무도 몰랐다.최문성은 세 걸음 뒤로 물러난 뒤 하현 앞에 몸을 세우며 당당한 눈빛을 보였다.라이온 킹이 손을 흔들자 그녀의 손에 있던 금장갑이 날카롭고 거북한 마찰음을 내었다.그러자 그녀는 눈을 가늘게 뜨고 하현을 바라보며 말했다.“젊은이, 병왕을 믿고 그를 당신의 경호원으로 삼았나 본데, 자신이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해?”“내가 이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최 씨 가문을 멸망시킨 다음에 네놈의 뼈도 가루로 내 주지!”라이온 킹도 분명 하현의 실력을 모르는 것 같았다.그녀는 젊은 애송이가 무슨 힘이 있으랴 생각했다.최문성의 비호에 의지해 감히 분수도 모르고 날뛰는 애
하현의 뒤편에는 몇몇 용전 항도 지부 정예들이 매서운 눈초리로 홍성을 향해 총구를 겨누고 있었다.만약 정예들이 한꺼번에 발사를 시작한다면 상대는 아마 80% 이상 피해를 입을 것이다.하지만 지금 용전 항도 지부 정예들은 사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처지다.저들은 속으로 하현을 건방지고 오만한 사람이라고 은근히 비방하고 있었다.그들은 홍성이 용전과 같이 규칙과 이치를 따지는 집단이라고 생각했다.그런데 이 총 몇 자루로 홍성을 제압하려고 하다니?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탕탕탕!”양측에서 동시에 수십 발의 총성이 마주쳤다.라이온 킹은 갑자기 얼굴빛이 변하며 몸에 지니고 있던 칼을 꺼냈다.그녀는 땅바닥에 몸을 굴려 최문성 쪽으로 다가갔고 매서운 눈빛에는 살기가 가득 솟구쳤다.이윽고 그녀는 단번에 휘둘렀다.그녀의 칼은 아무렇게나 공격하는 것 같지만 최문성의 가장 큰 허점을 노리며 공중에서 칼춤을 추었다.서슬 퍼런 살기가 뱀의 혓바닥처럼 칼 위에 넘실거렸다.날카로운 칼은 최문성의 목숨을 앗아갈 수도 있을 정도였다.라이온 킹은 극강의 스피드로 최문성에게 칼을 휘두른 것이다.보통 사람들은 이 수법을 피할 수도 없을 뿐만 아니라 놀라서 그저 혼비백산할 것이다.하지만 최문성은 더욱 침착한 표정을 지으며 양손에 칼을 쥔 채 단칼에 내려쳤다.그래, 함께 죽어 보자구!만약 라이온 킹이 계속 이런 식으로 공격해 나온다면 그녀가 최문성을 죽임과 동시에 최문성의 칼이 그녀를 두 동강 낼 것이다.현란하지 그지없는 최문성의 칼솜씨에 라이온 킹은 소름이 끼쳤고 순간 안색이 급변하며 하현을 힐끔 쳐다보았다.그녀의 눈에 이글이글 살의가 불타올랐다.최문성은 이전에 이 정도 실력까지는 아니었다.그러나 하현이 몇 가지 충고해 준 것을 제대로 파악하자 최문성은 훨씬 어마어마한 능력을 가지게 된 것이다.최문성은 지금 죽기로 덤비고 있지만 그녀는 그렇지 못했다.그녀는 홍성의 고수였다.매일 호화로운 차와 유람선
장내는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모두들 정신이 혼미해져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눈앞에서 보고도 도저히 이 광경이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다.눈앞의 모든 일들이 도무지 현실적이지가 않았다.세상의 모든 오만함과 의기를 다 모은 듯 당당하게 등장했던 라이온 킹이 하현의 뺨 한 대에 처참한 몰골이 되었다니!라이온 킹이 누구던가?보통 사람이 아니라 바로 홍성의 고수다!도성과 항성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닌 홍성의 고수!그런 고수가 초주검이 되어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이런 굴욕적인 장면이 또 있을까!하현의 뺨 한 대는 라이온 킹뿐만 아니라 홍성의 얼굴을 무참히 짓밟아 놓았다.총을 쥐고 있던 홍성 정예들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복수의 의지로 활활 타오르던 그들은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총을 잡고 있는 자신들의 손이 더없이 차가워지고 있음을 느꼈다.겨울바람 같은 매서운 기운이 그들을 지배했고 지금 당장이라도 하현을 향해 총알 세례를 퍼부을 참이었다.“죽여! 죽여 버려!”“마구 쏴 버려! 라이온 킹을 위해 복수해!”잠시 후 상황을 알아차린 진홍두가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렀다.그녀는 오늘 밤 이 광경이 그녀의 인생을 망쳐 놓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후루타가 죽은 것도 치명적이었는데 라이온 킹에 무카이까지 이 지경이 되다니,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오늘 일어난 일 하나하나 그녀에게는 모두 엄청난 손실이었다.하현이 죽지 않는다면 그녀 또한 죽은 목숨이 될 것이다.그러나 안타깝게도 홍성의 정예들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서 하현을 향해 감히 총을 겨누지 못했다.방금 라이온 킹을 제압하는 하현의 손놀림은 그들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용전 항도 지부 사람들도 충격을 받긴 마찬가지였다.그들은 하현의 실력이 이렇게까지 무시무시할 줄은 추호도 생각지 못했다.순간 그들은 하현이 어떻게 항성과 도성을 진압하고 용전 항도 지부에서 하백진을 물러나게 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라이온 킹에게 휘두른
”빌어먹을 놈!”“개자식!”“감히 우리 도련님에게 그런 불손한 말을 하다니, 죽고 싶어?”하구천 뒤에 서 있던 몇 명의 화려한 복장의 남녀들은 모두 하현을 잡아먹을 듯 독기를 뿜어내었다.하현의 몸놀림이 빨라 라이온 킹을 단번에 제압했지만 항성과 도성의 상류층 거물들에게 하현은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한낱 싸움꾼에 불과했다.그들의 권력, 배경 앞에서는 별 볼일 없는 것이다!하현이 감히 관청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나 되는가!지금은 한 사람의 칼에 의지해 강호를 헤집고 다닐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저런 몸놀림은 요즘 보기 드물지만 단지 보기 드문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하구천은 사람들에게 감정을 가라앉히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그는 하현을 향해 깊은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지금 날 건드리는 거야?”하현이 웃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야?”“몸이 똑바로 서 있으면 그림자가 기울 일이 없잖아. 당신은 항성과 도성의 정의를 대표하는 사람이잖아. 곧 9대 병부 총교관으로 앉게 될 사람인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건드릴 수 있겠어?”9대 병부 총교관이라는 말을 언급하는 하현의 얼굴에는 흥미로운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하구천이 이 직함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짐짓 궁금했던 터였다.하구천은 하현을 더욱더 유심히 쳐다보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 않았다.“모두 세간의 소문일 뿐이야.”“그래?”하현은 눈썹을 들썩이며 능청스럽게 말했다.그는 하구천이 스스로 9대 병부 총교관이 될 거라고 말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하구천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영민한 하구천은 이 기세로 자신을 항도 하 씨 후계자 자리에 올려놓고 말 것이다.아마도 그는 가까운 시일 내에 실제로 그 자리에 올라 새로운 세대의 항도 하 씨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그의 계획과 계산에 의하면 허무맹랑할지언정 9대 병부 총교관이라는 호피를 끌어들여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하고 싶었
10여분 후, 총을 든 수사팀장 일행들이 몰려들어 모든 사람들을 통제했다.그 외에도 열두 명 이상의 언론 기자들이 몰려왔다.모두 피 냄새를 맡은 상어처럼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오늘 밤 이 뉴스는 항도 하 씨 가문과 홍성, 섬나라 음류 등에 관한 것이었다.어떤 전개로 흐르는 이야기든 뉴스의 헤드라인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이렇게 많은 거물들이 엮인 일이라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기 때문이다.항성 경찰서도 감히 사익을 위해 법을 어기며 사건을 처리할 수 없었고 반드시 공적으로 일을 잘 처리해야 했다.항성과 도성에서 그 누구에게도 비길 데 없는 신분인 하구천도 꼼짝없이 걸려들고 말았다.이 순간 도저히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언론의 감독 하에 항성 경찰서의 수사관은 어떤 조사든 간에 공평함과 정의를 위시해야 했다.곧이어 백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구룡성 경찰서로 보내졌다.한 사람 한 사람 심문을 시작했다.이미 중상을 입고 죽어 가는 사람들도 놓치지 않았다.하현은 구룡성 경찰서로 연행되었다.그러나 경찰서로 오는 내내 그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그는 하구천에게 일격을 가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일을 벌였다.항도 하 씨 가문이 항성과 도성에서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항성과 도성의 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혹시 법 위에 또 다른 법이 존재하지는 않는지 보기 위함이었다.다음날 아침 일찍 최영하는 향기로운 차향을 풍기며 취조실로 들어왔다.하현 앞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하현, 어젯밤 전화 한 통으로 벌집을 쑤셔 놓았군!”“항도 하 씨 가문 사모님이 발끈해서 전화를 하셨어. 항성 관청 최고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하구천을 왜 억류했느냐고 몰아세웠지.”하현은 경찰서에서 제공해 준 아침을 먹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그 전설의 항성 관청 청장이 겁 좀 먹었겠는데?”“겁은 무슨 겁을 먹어? 밖에 얼마나 많은 기자들이 깔렸
”좋아, 당신이 그렇게 잘난 척을 하니 한 명이라도 어디 해고해 봐!”우민은은 거만하게 팔짱을 끼고 비아냥이 가득한 얼굴로 하현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했다.“자! 어서 해 보라니까!”“퍽!”바로 그때 은행 로비의 문이 누군가의 발길질에 차여 둔탁한 소리를 내며 열렸다.곧이어 화려한 옷차림을 한 남녀 열 명이 나타났다.선두에 선 사람은 양복 차림이었는데 그냥 보기에도 부티가 좔좔 흘렀다.그는 바로 금정은행 은행장, 은둔가 나 씨 가문 나천우였다.나천우 일행들이 모습을 드러내자마자 우민은과 이국흥은 모두 화들짝 놀라며 몸을 돌려 굽신거렸다.“행장님!”“여긴 어떻게 오셨습니까?!”우민은과 이국흥은 무릎을 꿇다시피 하며 나천우 앞에서 입이 찢어져라 환한 미소를 보였다.그런데 평소에는 친근하게 그들을 대했던 나천우가 오늘 이렇게 차가운 얼굴로 들이닥칠 줄 누가 알았겠는가?나천우는 그들에겐 눈길도 돌리지 않고 하현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고 하현의 손을 잡고 힘껏 흔들었다.“하현, 아까는 정말 죄송했습니다...”“부디 너그러이 용서해 주시길 바랍니다.”이 말을 듣고 장내의 분위기는 갑자기 찬물을 끼얹은 것처럼 고요해졌다.모두 어안이 벙벙해지다 못해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곳곳에서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잠시 후 예쁘장한 여직원들이 자신의 뺨을 세차게 때리는 소리가 여기저기 들렸다.마치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었던 것이다.그러나 눈앞의 광경은 잘못 본 것도 아니고 꿈을 꾸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많은 사람들의 시선은 놀라움과 의아함으로 가득 차 있었고 자연스럽게 하현에게 쏠렸다.몇몇 여자 고객들도 눈앞의 광경이 믿기지가 않는지 입을 막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얼어버렸다.우민은은 마치 사지가 마비된 듯 그 자리에서 꼼짝도 할 수 없었다.이국흥은 더했다.사지가 그의 통제 영역을 벗어나 쉼 없이 덜덜 떨리고 있었다.이게 무슨 상황인가?그들은 하현
이국흥은 염치도 체면도 안중에 없는 사람 같았다.그는 없던 일을 있었던 일처럼 꾸몄다.그의 목적은 단 하나, 우민은이 하현을 혼내 주길 바랐던 것이다.이때 설은아가 얼른 입을 열었다.“부행장님, 그게 아닙니다...”우민은은 이국흥에게 힘을 실어 주러 온 상사였기 때문에 당연히 설은아의 말을 귓등으로도 듣지 않았다.“감히 우리 은행에서 사람을 때려요?”“간이 배밖에 나왔어요?”“지금부터 당신은 우리 은행 블랙리스트에 오를 거예요!”“이봐! 어서 관청에 신고해!”그녀의 카랑카랑한 말투는 오만하기 그지없었다.그러자 설은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분명 그녀는 일이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될 줄은 몰랐다.설은아가 이끄는 회사의 자금줄이 빠듯한 건 사실이었다.그런데 결국 이렇게 완전히 파산하게 되었다.자신이 아홉 번째 집안을 맡은지 얼마나 되었는가?이렇게 빨리 파산하게 되었는데 어떻게 훗날 대구 정 씨 가문의 수장이 되겠다는 것인가?그야말로 허황된 꿈이었다!“하하하! 이게 바로 당신의 최후야!”“이제 알겠어?”이국흥은 얼굴에 묻은 피를 닦으며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개자식! 이 개새끼야! 너 방금 정말 미친놈처럼 날 치더라? 정말 대단했지, 안 그래?”“자, 다시 한번 더 해 보시지?!”“당신이 얼마나 대단한지 어디 한번 보자고!”“퍽!”하현은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그의 요구에 답하며 앞으로 걸어가다가 또 한 번 손바닥을 휘둘렀다.이국흥은 하현이 감히 자신에게 또 손을 쓸 줄은 몰랐다.뺨을 맞아 비틀거리며 뒤로 물러난 그는 가까스로 우민은의 몸에 기댄 덕분에 쓰러지지는 않았다.“미친 거야?!”“당신들 여기가 무법천지인 줄 알아?”우민은은 얼굴이 울그락불그락해졌다.“이봐, 어서 신고해!”“은행 협회에 통보해서 설은아한테 대출 다 막으라고 해!”이때 하현은 싸늘한 표정으로 우민은과 이국흥을 바라보며 말했다.“두 사람이야말로 내 블랙리
하현을 말리는 설은아의 다급한 목소리에 이국흥은 험상궂은 얼굴로 이를 갈며 일어섰다.그는 입가의 피를 닦고 하현을 가리키며 말했다.“개자식! 당신 누구야?!”“당신이 뭔데 감히 이러는 거야?”“날 때려? 감히 날 때렸어?”“내가 뭐?”하현은 앞으로 나서면서 또 손바닥을 올려 이국흥을 바닥에 내동댕이쳤다.“감히 내 아내한테 그런 모욕감을 주다니! 나한테 누구냐고 물었어?”“내가 누군지 당신 눈엔 안 보여?”“혹시 설 대표가 당신 부인이야?”이국흥은 잠시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가 뭔가 떠오른 듯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당신이 그 소문으로만 듣던 그 쓰레기 같은 놈?”“그런데 감히 날 때려?!”“죽여버릴 거야!”하현은 또 그의 얼굴을 때리기 시작했다.“퍽!”“날 업신여기고 무시하는 건 얼마든지 참을 수 있어. 그렇지만 내 여자를 건드리는 놈은...”“절대 용서할 수 없어! 오늘이 당신 제삿날인 줄 알아!”퉁퉁 부은 얼굴을 감싸고 바닥에 주저앉은 이국흥은 온몸에 경련을 일으키며 벌벌 떨었다.“하현, 그만해! 그만하라고!”설은아는 한사코 하현을 말리며 붙잡았다.“또 때리면 정말 사람이 죽겠어!”그녀는 마음속으로는 그를 고맙고 든든하게 여겼지만 불똥이 그에게 튈까 봐 걱정도 되었다.오래된 도시 금정의 은둔가 가문이 뒷배에 있는 금정은행 부장을 누가 건드릴 수 있겠는가?금정은행의 뒷배인 나 씨 가문은 금정 금융계의 거물이었다.“개자식! 감히 날 때리다니?!”“흥! 넌 이제 죽었어! 내가 반드시 널 죽여버릴 거야!”이국흥은 이를 갈며 말했다.그러나 그는 감히 하현에게 접근하지 못하고 얼굴을 가린 채 입만 떠들썩하게 떠벌렸다.“반드시 관청에 보고해서 감옥에 처넣어 버릴 거야!”“그리고 제멋대로 날뛰는 네놈 때문에!”“이 여자도 상상하기 힘든 대가를 치르게 될 거야!”“블랙리스트에 올라 금융계에선 다시는 일 원 한 푼 빌릴 수 없게 만들 거라고!”“
설은아는 얼굴이 굳어진 채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이 부장님, 다시 한번 말씀드리겠습니다!”“부장님이 이천억, 아니 이조를 준다고 해도 난 이런 파렴치한 요구를 들어줄 수 없어요!”“설 대표님, 왜 그렇게 고지식하게 굴어요!”“아니 그냥 잠 한 번 자는 것 가지고 뭘 그래요? 결국 서로 윈윈하는 거 아닙니까?”“다른 사람들은 이런 기회가 없어서 꿈도 못 꾼다고요!”“그런데 왜 이렇게 딱딱하게 굴어요?”“그리고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이혼도 한 번 했겠다 잠 한 번 자는 거, 그게 그렇게 어렵습니까?”“남의 편의를 봐주고 내 이익을 챙기면 되는 거죠.’“이번에 잘 하면 앞으로도 대표님은 육 씨 도련님의 사람이 되어서 금정에서 편하게 사업할 텐데, 그런 기회를 발로 차버려요?”“대표님이 이 기회를 놓친다면 앞으로 다른 어느 곳에서도 돈을 빌릴 수 없게 될 것이고 그러면 금정에선 사업하기 힘들어져요!”“왜 돈을 앞에 두고 내팽개치려는 거예요?”이국흥은 이 바닥에서 닳을 대로 닳은 인물이었다.이런 일에 경험도 많고 비열함 따위 쉽게 무시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그는 상대를 앞에 두고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쓰며 이리저리 이로울 대로 몰아가고 있었다.정신력이 보통인 여자가 아니라면 그의 능수능란한 언변과 뻔뻔스러운 행동에 쉽게 넘어가고도 남았다.설은아는 눈살을 찌푸리며 일어섰다.“이 부장님, 내가 돈이 필요하긴 해요!”“하지만 돈 때문에 내 몸과 영혼을 팔진 않을 겁니다!”설은아에겐 분명 지켜야 할 선이란 게 있었다.“좋아요, 안 받으셔도 됩니다!”“없던 일로 하죠!”이국흥은 테이블을 탁 치며 노기등등한 표정을 지었다.“게다가 대표님의 아홉 번째 집안은 우리 금정은행에 따로 오백억 빚이 있습니다!”“계약대로 다음 달에 갚아야 하고요!”“기한이 지나면 우리 금정은행은 대표님의 아홉 번째 집안 자산을 몰수할 권리가 있습니다!”“그렇게 되면 대표님도 자리를 보전할 수 없을 겁니다!”
”대출이 갱신이 안 되어서 우리 회사가 두 달째 월급을 못 주고 있어요.”“직원들의 사기도 말이 아니고 공장 생산도 중단되었어요.”“부장님이 도와주지 않으면 우리 회사는 정말 파산할 거예요.”설은아는 조심스럽게 담배 한 개비를 건네며 말했다.“이 부장님, 우리 회사랑 거래하는 게 처음도 아니잖아요.”“부장님도 우리 집안에 대해 잘 알고 계시고요. 우리 뒤에는 10대 최고 가문 중 하나인 대구 정 씨 가문이 있어요.”“도와주신다면 그 은혜 꼭 보답하겠습니다.”이국흥은 웃는 듯 마는 듯한 얼굴로 설은아를 바라보았다.“설 대표님, 제가 이미 말씀드렸잖아요!”“대표님 회사는 지금 장부에 돈이 하나도 없어서 위험평가를 통과할 수가 없어요!”“내가 직업상의 위험을 무릅쓰고 직업윤리를 어겨 가면서까지 대표님을 도와드릴 순 없잖습니까?!”“안타깝지만 우리 은행에서 이번 대출 연장은 아마 불가능할 겁니다.”“하지만 우리 은행에서 대표님께 기회를 안 드리는 건 아닙니다...”말을 마치며 이국흥은 미리 준비해 둔 서류 한 장을 꺼내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서남 천문채 육 씨 도련님이 당신한테 돈을 빌려줄 수 있다고 하는군요.”“이건 이천억을 빌린다는 차용증입니다. 대표님이 여기 서명만 하면 당장 효력이 발생하고요.”“언제든지 돈을 가져갈 수 있습니다.”“하지만 육 씨 도련님이 말씀하셨어요. 하룻밤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한다고.”육 씨 도련님?!설은아는 낯빛이 싸늘하게 변했다.그녀는 분명 그 사람이 누군지 아는 모양이었다.그래서 그녀의 눈빛에선 겨울 칼바람 같은 매서운 기운이 넘실거렸다.“부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직업윤리도 없고 염치도 없으세요?”어깨를 으쓱해 보이며 이국흥은 뻔뻔스럽게 입을 열었다.“당연히 무슨 말씀인지 알 텐데요.”“난 대표님이 육 씨 도련님의 요구대로 했으면 합니다!”“그분이 누굽니까? 서남 천문채에서 어마어마한 지위에 있지 않습니까? 잘 아시면서 왜 그러
”아, 아니...”“대, 대사님! 대사님!”이때 나천우는 정신을 차리고 울부짖으며 하현을 쫓아가려고 발버둥쳤다.임단은 마치 꿈에서 막 깨어난 사람처럼 멍한 얼굴로 나천우를 뒤따랐다.하지만 안타깝게도 하현은 그들에겐 신경도 쓰지 않은 채 엘리베이터로 들어가 사람들 속으로 사라졌다.나천우 부부가 급한 마음에 부하들에게 전화를 걸어 얼른 하현을 뒤쫓으라고 하려던 참이었다.나천우를 뒤쫓아온 형나운은 나천우의 전화기를 툭 쳤다.“천우 오빠, 또 일을 그르치려고 그래?!”그녀는 따끔하게 주의를 주었다.“지금 하현이 화가 나서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게 생겼는데 부하들이 쫓아간들 어쩌겠어?”“하현이 돕지 않겠다고 하는데 억지로 어떻게 할 수 있겠어?”나천우는 얼굴이 온통 땀범벅이 되었다.“형나운, 우리가 잘못했어.”“우리가 눈이 멀었나 봐. 눈앞에 사람을 두고도 제대로 볼 줄 몰랐으니 말이야!”“하지만 너랑 나랑 오랜 인연을 생각해서 부디 지금이라도 전화해서 잘 좀 봐달라고 말 좀 해 줘!”“돈은 얼마든지 줄 테니까!”“돈 문제는 절대 신경 쓰지 마!”“맞아.”이때 임단도 울상이 된 얼굴로 말했다.“형나운, 그러면 주소라도 알려줘. 우리가 가서 삼고초려라도 해 볼게!”“좀 진정해. 이렇게 쫓아가 봐야 아무 소용없어.”형나운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미간을 살짝 찡그리며 말했다.“조금 있다가 내가 전화해 볼게.”그 시각 진회강 강변에 위치한 금정은행 본사 앞.설은아는 머뭇거리다가 뭔가 결연한 표정을 지으며 은행 로비로 발걸음을 옮겼다.마침 택시를 타고 지나가던 하현이 설은아의 모습을 보았고 자금난에 허덕이는 그녀의 사정을 급히 떠올리며 운전기사에게 차를 세우라고 한 뒤 빠른 걸음으로 그녀를 뒤따랐다.하현이 로비에 들어가자마자 마침 그의 핸드폰이 진동하기 시작했다.전화를 받아보니 형나운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나 사장 부부가 잘못을 깨닫고 직접 사과드리고 싶다고 해요.”“내 얼
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그는 형나운도 틀림없이 이 사기꾼에게 속았다고 생각했다.자격증이 없는 사람이 감히 자신을 풍수대사라 할 수 있겠는가?장난하는 건가?이런 사람이 사기꾼이 아니라면 누가 사기꾼이란 말인가?임단이 참지 못하고 옆에서 끼어들었다.“그럼 당신은 음양학을 배운 학생이에요?”하현은 거리낌 없이 대답했다.“아니요. 난 굴착기를 배웠어요. 기술도 좋고 자격증도 있어요.”“지금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예요?”하현의 말을 들은 나천우는 갑자기 표정이 냉랭해졌다.“지금 뭐라는 거예요?”“굴착기를 배운 사람이 무슨 풍수를 본단 말이에요?”“지금 나랑 장난하자는 거예요?”“대하에서 풍수지리가 얼마나 큰 위상을 차지하는지 몰라요?”“우리를 속이려 들다니 후환이 두렵지도 않아요?”나천우의 말에 형나운의 안색이 새까맣게 일그러졌다.그녀는 다급하게 나천우에게 눈길을 돌리며 나지막하게 말했다.“오빠, 그만하면 안 돼!”“우리 두 집안의 친분이 하루 이틀도 아닌데 내가 이런 중요한 일을 두고 오빠를 속였을 거라고 생각해?”“내가 바보야?!”“너 나 속이는 거 아냐?”나천우의 얼굴은 냉랭하게 식었다.“너도 자세히 봐 봐. 이 젊은 사람은 풍수라는 두 글자도 모르는 것 같은데 어떻게 믿으란 얘기야?!”“이 사기꾼을 만나려고 내가 금정은행 투자 포럼도 안 나가고 여기 왔겠냐고!”임단도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비난에 열을 올렸다.“형나운, 당신 정말 경솔했어!”예전 같았으면 두 집 사이에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그런데 문제는 형나운이 하현에 대해 거의 신처럼 말했다는 것이다.나천우와 임단은 자신들의 문제가 완전히 해결될 줄로 알고 커다란 희망을 품고 여기 왔다.다만 희망이 크면 실망도 큰 법이고 분노는 걷잡을 수 없다는 걸 몰랐을 뿐이다.“나 사장님?”형나운은 하현의 목소리에 그에게 눈길을 떨구며 손을 내저었지만 하현은 이에 굴하지 않고 담담한 눈
”형나운, 정말 축하해!”“우릴 속이지 않았군!”“그런데 그 대사님은 어디에 계셔?”“얼른 좀 소개해 줘!”나 사장은 초조한 얼굴로 말했다.“우리 병은 이미 수많은 국내외 명의들한테 보여줬어. 국수인 장북산 선생님도 보셨지!”“어르신은 우릴 보고 병이 아니라 악에 부딪힌 것이라고 하셨어.”“풍수에 정통한 사람만이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대.”“하지만 수많은 풍수지리사를 만나봤지만 도저히 해결되지 않았어.”“어쨌든 형나운, 당신이 대사님한테 말 좀 잘 해 줘!”나 사장의 부인도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형나운, 우리를 살릴지 말지 여부는 전적으로 당신의 손에 달려 있어.”“이 일이 잘 해결되면 최고 가문에서 기가 막힌 남편감을 물색해 줄게. 정말 섭섭하지 않게 해 줄 거야!”옆에 살짝 비켜서 있던 하현의 이마에 주름살이 잔뜩 드리워졌다.기가 막힌 남편감?뭐가 기가 막히다는 거지?형나운은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어색한 미소를 보였다.“나 사장님, 그 대사님은 바로 가까운 곳에 있어요.”“하현, 소개할게요. 이 분은 나천우 사장님, 그리고 이쪽은 나 사장님 사모님, 임단.”“나 사장님은 나 씨 가문 출신이에요.”“나 씨 가문은 형 씨 가문과 마찬가지로 금정에 토박이로 아주 뿌리가 깊은 가문이죠.”“예로부터 은행업을 해 왔고 지금도 금정에서 가장 큰 은행인 금정은행을 움직이는 가장 큰 지주이자 실세죠.”“나 사장님 부부는 결혼한 지 여러 해가 지났지만 자식이 없어요. 그래서 온갖 치료를 받았지만 성과가 없어서 결국 풍수지리술에 기대 보려고 하고 있어요.”“할아버지 얘기를 듣고 여기까지 오셨고요.”“우리 형 씨 가문과 나 씨 가문은 사이가 좋아서 내가 마음이 급해서 그만 당신한테 말도 없이 여기로 오라고 했어요.”형나운은 조금 찔리는지 불안한 시선으로 말을 이었다.“하현, 이렇게 불쑥 말을 꺼내면 당신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거라는 거 잘 알지만 제발 나 사장님 부부를 좀 도와줬으면
하현은 이맛살을 구기며 말했다.“말로 하면 되지! 당신 왜 이러는 거야? 이런 행동을 왜 하는 거냐고?”“내가 그런 사람이야?”“하현, 치료해 주겠다고 하지 않았어요? 도와주겠다고 했잖아요?”형나운은 미안한 듯 겸연쩍어하며 말했다.“그래서 내가 주동적으로 이런 자세를 보인 거예요. 언제든지 와도 상관없다고.”“아무튼 당신이 날 고쳐 줄 수만 있다면 어떻게 하든 상관없어요.”“강하면 강할수록 난 더 좋아요.”“당신 정말...”“마초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니겠죠?”하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고 순간 더는 참을 수가 없어서 주먹으로 테이블을 ‘퍽’하고 내리쳤다.“이렇게 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누가 말했어?”“지난번에 난 기혈과 두통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줬어.”“그런데 지금 당신 문제는 완전히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하지 않으면 절대 호전되지 않아!”하현의 말을 들은 형나운은 순간 얼굴이 벌게졌다.그녀는 얼른 엉덩이를 내리고 똑바로 선 다음 서랍 속에서 노란 가죽으로 싼 고서적 한 권을 꺼내 하현에게 건네주었다.하현이 힐끔 쳐다보니 ‘영춘’이라는 두 글자가 쓰여 있었다.집안을 다스리는 처세술에 관한 책인 ‘영춘’은 여자아이의 수련에 안성맞춤이었다.하지만 진짜 ‘영춘’은 기본적으로 무학의 성지에서 내려오는 비법서 같은 것이고 방금 형나운이 꺼낸 책은 남은 자투리 책이라고 할 수 있다.그녀는 자투리 잡서에 가까운 책으로 수련을 하는 바람에 자주 숨이 막히는 증상이 생긴 것이다.하현은 그제야 뭔가를 알아차리며 빠진 부분을 보충해서 써 준 뒤 그녀에게 책을 던져주며 말했다.“이 책은 영춘의 상반부에 불과해. 그래서 내가 상반부만 보충해 줬어. 이렇게 한다면 별일 없을 거야.”“후반부는 당신이 기회를 봐서 오매 도교 사원에 가서 문의해 봐.”“만약 내가 당신한테 준다면 오매 도교 사원이 아마 날 죽이려고 들 거야.”“아, 알겠어요.”형나운은 흥미로운 눈빛으로 하현이 보충해 놓은 부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