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내는 쥐 죽은 듯 고요해졌다.모두들 정신이 혼미해져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눈앞에서 보고도 도저히 이 광경이 믿기지가 않았던 것이다.눈앞의 모든 일들이 도무지 현실적이지가 않았다.세상의 모든 오만함과 의기를 다 모은 듯 당당하게 등장했던 라이온 킹이 하현의 뺨 한 대에 처참한 몰골이 되었다니!라이온 킹이 누구던가?보통 사람이 아니라 바로 홍성의 고수다!도성과 항성을 종횡무진 누비고 다닌 홍성의 고수!그런 고수가 초주검이 되어 피를 흘리고 있는 것이다.이런 굴욕적인 장면이 또 있을까!하현의 뺨 한 대는 라이온 킹뿐만 아니라 홍성의 얼굴을 무참히 짓밟아 놓았다.총을 쥐고 있던 홍성 정예들은 화가 치밀어 올랐다.복수의 의지로 활활 타오르던 그들은 흥분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총을 잡고 있는 자신들의 손이 더없이 차가워지고 있음을 느꼈다.겨울바람 같은 매서운 기운이 그들을 지배했고 지금 당장이라도 하현을 향해 총알 세례를 퍼부을 참이었다.“죽여! 죽여 버려!”“마구 쏴 버려! 라이온 킹을 위해 복수해!”잠시 후 상황을 알아차린 진홍두가 이성을 잃고 소리를 질렀다.그녀는 오늘 밤 이 광경이 그녀의 인생을 망쳐 놓을 거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후루타가 죽은 것도 치명적이었는데 라이온 킹에 무카이까지 이 지경이 되다니, 그야말로 절망적이었다.오늘 일어난 일 하나하나 그녀에게는 모두 엄청난 손실이었다.하현이 죽지 않는다면 그녀 또한 죽은 목숨이 될 것이다.그러나 안타깝게도 홍성의 정예들은 온몸이 부들부들 떨려서 하현을 향해 감히 총을 겨누지 못했다.방금 라이온 킹을 제압하는 하현의 손놀림은 그들의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용전 항도 지부 사람들도 충격을 받긴 마찬가지였다.그들은 하현의 실력이 이렇게까지 무시무시할 줄은 추호도 생각지 못했다.순간 그들은 하현이 어떻게 항성과 도성을 진압하고 용전 항도 지부에서 하백진을 물러나게 했는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라이온 킹에게 휘두른
”빌어먹을 놈!”“개자식!”“감히 우리 도련님에게 그런 불손한 말을 하다니, 죽고 싶어?”하구천 뒤에 서 있던 몇 명의 화려한 복장의 남녀들은 모두 하현을 잡아먹을 듯 독기를 뿜어내었다.하현의 몸놀림이 빨라 라이온 킹을 단번에 제압했지만 항성과 도성의 상류층 거물들에게 하현은 아무리 실력이 좋다고 해도 한낱 싸움꾼에 불과했다.그들의 권력, 배경 앞에서는 별 볼일 없는 것이다!하현이 감히 관청을 움직일 수 있는 능력이나 되는가!지금은 한 사람의 칼에 의지해 강호를 헤집고 다닐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저런 몸놀림은 요즘 보기 드물지만 단지 보기 드문 것,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하구천은 사람들에게 감정을 가라앉히라는 듯 손을 흔들었다.그는 하현을 향해 깊은 시선을 던지며 말했다.“지금 날 건드리는 거야?”하현이 웃으며 말했다.“그게 무슨 말이야?”“몸이 똑바로 서 있으면 그림자가 기울 일이 없잖아. 당신은 항성과 도성의 정의를 대표하는 사람이잖아. 곧 9대 병부 총교관으로 앉게 될 사람인데 내가 어떻게 당신을 건드릴 수 있겠어?”9대 병부 총교관이라는 말을 언급하는 하현의 얼굴에는 흥미로운 듯한 기색이 역력했다.하구천이 이 직함을 듣고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 짐짓 궁금했던 터였다.하구천은 하현을 더욱더 유심히 쳐다보았지만 이에 대해서는 이렇다 저렇다 말을 하지 않았다.“모두 세간의 소문일 뿐이야.”“그래?”하현은 눈썹을 들썩이며 능청스럽게 말했다.그는 하구천이 스스로 9대 병부 총교관이 될 거라고 말하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하구천은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았다.영민한 하구천은 이 기세로 자신을 항도 하 씨 후계자 자리에 올려놓고 말 것이다.아마도 그는 가까운 시일 내에 실제로 그 자리에 올라 새로운 세대의 항도 하 씨 후계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싶었을 것이다.그의 계획과 계산에 의하면 허무맹랑할지언정 9대 병부 총교관이라는 호피를 끌어들여 자신의 자리를 공고히 하고 싶었
10여분 후, 총을 든 수사팀장 일행들이 몰려들어 모든 사람들을 통제했다.그 외에도 열두 명 이상의 언론 기자들이 몰려왔다.모두 피 냄새를 맡은 상어처럼 얼굴이 상기되어 있었다.오늘 밤 이 뉴스는 항도 하 씨 가문과 홍성, 섬나라 음류 등에 관한 것이었다.어떤 전개로 흐르는 이야기든 뉴스의 헤드라인으로 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이렇게 많은 거물들이 엮인 일이라면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기 때문이다.항성 경찰서도 감히 사익을 위해 법을 어기며 사건을 처리할 수 없었고 반드시 공적으로 일을 잘 처리해야 했다.항성과 도성에서 그 누구에게도 비길 데 없는 신분인 하구천도 꼼짝없이 걸려들고 말았다.이 순간 도저히 빠져나갈 방법이 없었다.언론의 감독 하에 항성 경찰서의 수사관은 어떤 조사든 간에 공평함과 정의를 위시해야 했다.곧이어 백여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모두 구룡성 경찰서로 보내졌다.한 사람 한 사람 심문을 시작했다.이미 중상을 입고 죽어 가는 사람들도 놓치지 않았다.하현은 구룡성 경찰서로 연행되었다.그러나 경찰서로 오는 내내 그의 표정은 흔들림이 없었다.그는 하구천에게 일격을 가하기 위해 일부러 이런 일을 벌였다.항도 하 씨 가문이 항성과 도성에서 얼마나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항성과 도성의 법이 제대로 작동하고 있는지 혹시 법 위에 또 다른 법이 존재하지는 않는지 보기 위함이었다.다음날 아침 일찍 최영하는 향기로운 차향을 풍기며 취조실로 들어왔다.하현 앞에 찻잔을 내려놓으며 그녀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하현, 어젯밤 전화 한 통으로 벌집을 쑤셔 놓았군!”“항도 하 씨 가문 사모님이 발끈해서 전화를 하셨어. 항성 관청 최고 책임자에게 전화를 걸어 하구천을 왜 억류했느냐고 몰아세웠지.”하현은 경찰서에서 제공해 준 아침을 먹으며 담담하게 말했다.“그 전설의 항성 관청 청장이 겁 좀 먹었겠는데?”“겁은 무슨 겁을 먹어? 밖에 얼마나 많은 기자들이 깔렸
최영하는 입을 가리고 가볍게 웃었다.만약 이 일이 단순히 관리자에게만 보고되었다면 흑막이 짙어졌을 것이다.하지만 천지에 이 일이 다 알려졌으니 아마 공정하게 처리될 것이다.“뚜벅뚜벅.”두 사람의 말이 거의 끝나갈 무렵 제복을 입은 항성 경찰서 형사 한 명이 걸어 들어왔다.늠름한 자태의 단발머리 여형사였다.혼혈 미인으로 오똑한 콧날과 깊은 눈두덩이가 이국적인 분위기를 자아냈다.그녀의 가슴팍에는 동리아라는 이름표가 걸려 있었다.동리아는 하현을 유심히 쳐다본 후 최영하를 곁눈질로 흘끔거리며 차갑게 말했다.“이 사람을 보석으로 풀어 주셔도 됩니다!”“하지만 보름 동안에는 이곳 항성을 떠나지 못하고 항성 경찰서에서 또 소환할 때까지 기다리십시오.”최영하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걱정하지 마세요.”“경찰서에서 철저히 조사하는데 그가 힘을 보탤 거예요.”“증거가 있으면 증거대로, 물증이 있으면 물증이 있는 대로 조사가 이루어질 겁니다.”최영하의 말에 동리아는 차갑게 대꾸했다.그녀는 하현에 대해 안 좋은 감정이 있는 것 같았다.동리아는 차가운 눈길로 그를 한번 힐끔 쳐다본 후 서류철을 하현 앞에 놓고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서명하고 돌아가시면 됩니다.”하현은 펜을 집어 들었지만 서둘러 사인하는 대신 동리아를 향해 흥미로운 듯한 시선을 보냈다.“이 경찰관님은 내가 처음 보는 것 같은데요.”“내가 당신한테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동리아는 냉담한 표정만 지을 뿐 아무런 말이 없었다.최영하가 대신 나섰다.“하현, 당신은 동리아한테 잘못한 거 없어. 미움을 산 일도 없고. 하지만 항성 관청 최고 책임자인 동리아의 아버지는 당신한테 감정이 좀 있지.”하현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었다.동리아가 왜 자신을 불쾌하게 대했는지 알 것 같았다.결국 어젯밤 일은 그와 일면식도 없는 항성 관청 일인자를 난처하게 만든 셈이었다.동리아는 차갑고 오만한 점이 없진 않았지만 교양은 있는 사람이었다.하현
십여 분 후 하현은 구룡성 경찰서를 나와 멀지 않은 곳에 시선을 떨어뜨렸다.몇몇 홍성 건달들이 자신을 바라보며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하현은 경찰서 현판을 한번 쳐다보고는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이 항성 최고 책임자 참 재미있는 사람이군.”“사람의 직위나 신분에 관계없이 저지른 일에 대해 잘 따져야지. 항도 하 씨 가문 때문에 법의 잣대를 사사로이 대지 않은 건 정말 잘한 일이야.”최영하도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이번에는 그가 공정하게 법을 집행해서 항도 하 씨 가문, 섬나라 음류, 홍성의 미움을 톡톡히 받고 있어.”“앞으로 항성 최고 책임자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없을지 몰라도 적어도 적잖은 문제가 터질 것 같아.”하현은 웃으며 말했다.“항성은 도성에 비해 훨씬 더 골이 깊은 것 같아. 그 항성 최고 책임자라는 사람이 누구야?”최영하가 바로 대답했다.“동정감.”“동정감이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은 그가 이미 얼마나 많은 뒷배를 가지고 있는지를 말해 주고 있는 거야.”“항도 하 씨 가문도 그를 쉽게 건드리지 못해.”하현은 손을 뻗어 최영하의 어깨를 두드리려 했지만 이전에 두 사람 사이에 있었던 애매한 상황이 떠올라 그대로 손을 움츠렸다.잠시 머뭇거리다가 그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기회를 봐서 그 항성 최고 책임자와 만날 수 있게 자리 좀 마련해 줘.”“아마 그 사람도 날 만나고 싶어 할 거야.”말을 마치자마자 하현은 손뼉을 치며 떠날 준비를 했다.이때 멀지 않은 주차장에서 도요타 엘파의 문이 열리며 누군가가 요란스럽게 달려들었다.“하현 오빠!”보아하니 화소혜는 어젯밤 여기서 밤을 지새운 것 같았다.심지어 많은 인맥을 동원해서 말이다.그녀는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바로 하현에게 달려들었다.“정말 나왔구나! 너무 다행이에요!”어젯밤 그녀는 하현이 홍성과 섬나라 음류들에게 당해서 죽었을까 봐 적잖이 걱정했다.어쨌든 홍성은 이곳 항성에서 뿌리가 깊은 조직이었고 항성 관청과 항
화소혜가 하현과 함께 아침식사를 하러 가려고 했을 때 구룡성 경찰서에서 오만한 걸음걸이로 누군가가 걸어 나왔다.역시 거칠 것이 없는 동리아였다.그녀는 화소혜와 이야기하며 큰소리로 웃고 있는 하현을 실눈으로 바라보며 자신도 모르게 ‘흥'하고 콧방귀를 뀌었다.“찌질이 같으니라구!”한바탕 욕을 한 후 동리아는 언짢은 기색으로 하현에게 걸어갔다.최영하와 화소혜의 시선이 동시에 동리아에게 떨어졌다.항성 관청의 일인자의 콧대 높은 딸이 왜 또 갑자기 접근해 오는 걸까 도무지 이유를 알 수가 없었다.설마 경찰서 쪽에서 하현을 보석으로 풀어준 것을 후회하는 걸까?하현도 의아한 표정으로 동리아를 쳐다보았다.그러나 그는 다시 경찰서에 들어간다고 해도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어쨌든 지금 자신은 스스로 경찰서에 들어간 거나 마찬가지였고 가장 골치가 아픈 사람은 절대 자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동리아는 유심히 하현을 쳐다본 후 입을 열었다.“하현,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하현은 웃으며 대답했다.“아니요. 여기 있는 사람은 모두 내 식구나 다름없는 사람들이니 당신이 하고 싶은 말이 있거든 여기서 말해요. 난 상관없으니까.”잠시 침묵이 흐른 뒤 동리아는 머뭇거리다가 겨우 입을 떼었다.“아버지가 당신을 좀 보고 싶어 하셔요. 괜찮으시면 아침 식사라도 같이 했으면 해요.”하현은 이 말을 듣고 조금 어리둥절했다.동정감이 스스로 자신을 만나고 싶어 할 줄은 몰랐던 것이다.그러자 하현도 거절하지 않고 최영하에게 화소혜의 안전을 부탁하고는 동리아의 포르쉐 차량에 올라탔다....30분 후 하현은 항성 태평산 기슭에 있는 저택에 도착했다.드넓은 마당을 아우르고 있는 저택은 그냥 보기에도 매우 부지가 넓었다.남태평양 바다까지도 바로 한눈에 들어왔다.묵진하고 끈적끈적한 바닷바람이 불어와 정원의 꽃들을 이리저리 흔들어 놓으며 마당 가득 은은한 향내를 풍겼다.하와이풍의 반바지와 반팔을 입은 항성 관청 최고 책임자
”솨아! 솨아!”바람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동리아는 이미 예상한 듯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덤덤하게 하현을 쳐다보았다.마치 하현이 허둥지둥거리는 모습을 기대하는 표정이었다.하지만 결국 그녀는 예상하는 그림을 얻지 못했다.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손을 들고 그 자리에서 나뭇가지가 자신을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두었고 이후 나뭇가지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동정감을 바라보았다.아직은 알려지지 않은 동정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역시 보통 인물이 아니야!하현이 마음속으로 감탄하고 있는 동안 동정감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옆에 있던 아내에게 건네주었다.그리고 나서 그는 손수건을 꺼내 손바닥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좋아! 좋아!”“눈앞에서 태산이 무너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젊은 나이에 그런 마음가짐을 가졌으니 어젯밤 당신이 내 큰 코를 다치게 할 만하구만.”“내가 어제 당한 일이 그리 억울해 보이지는 않는군.”동정감은 하현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은 분명 동정감이 하현의 실력을 가늠해 보기 위해 시도한 것이다.어젯밤 자신의 뒤통수를 친 젊은이가 얼마나 위세가 대단한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그런데 하현이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이런 일격을 무심히 감당할 줄 아는 것에 동정감은 적잖이 놀랐다.역시 자신이 잘못 보지 않았음을 알고 동정감은 하현을 더욱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적어도 항성과 도성에 이 정도 실력과 담력의 젊은이는 그리 많지 않다.하현은 동정감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칭찬의 말씀 감사합니다.”“다만 어르신께 손해를 끼쳤다는 말은 어디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신지요?”“어젯밤 제가 신고한 일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전 시민으로서 관청이 공정하고 정의롭게, 합당하고 합법적으로 처리해 줄 거라 생각해서였습니다.”동정감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입을 열었다.“재미있
동정감은 서서히 언짢은 기색을 내비치며 계속 힘을 주었다.나중에는 거의 모든 힘을 다 쏟아 하현의 손을 꽉 쥐었다.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한 힘이 아무런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손아귀가 희미하게 아파지기 시작하면서 곧이어 찢어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는 걸 깨달았다.“나쁘지 않아. 좋아, 좋아.”동정감은 드디어 손을 거두었다.그는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머리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몸놀림과 심성도 모두 최상급이군. 이제 더 이상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네!”말을 마치며 동정감이 하인에게 손짓을 하자 하인은 재빠른 몸놀림으로 탁자와 의자를 두 사람 가까이로 옮겨왔다.하현에게 앉으라고 손짓한 후 동정감은 하현에게 직접 차를 따라주었고 뒤이어 맛깔스러운 항성식 다과가 탁자 위에 놓였다.동리아는 자신의 아버지가 하현에게 하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 아침은 분명 동정감이 하현을 염탐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는데 갑자기 이제야 만나게 된 걸 아쉬워하는 듯한 분위기로 흘러간 것이다.동정감은 찻잔에 입을 갖다 대고 한 모금 음미한 다음 줄곧 의아해하는 표정을 하고 서 있는 동리아를 힐끔 보며 웃었다.“리아야, 내가 오늘 하현을 때려죽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예의 바르게 대접하는 걸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 거지?”동리아는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동정감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내가 원래 하현과 밥 한 끼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어서였단다. 내가 가까이 소중하게 두어도 될 사람인지 어떤지 알고 싶었거든.”“이 사람이 가까이 소중하게 둘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이고 어젯밤 사건은 그냥 운이 좀 나빴다고 치더라도 난 이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했을 거야.”“그랬다면 아마 그냥 밥 한 끼에 불과했겠지.”동정감의 말을 듣고 동리아는 생각에 잠겼다.그리고 나서 그녀는 하현을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방금 보석으로 풀려난 사람을 자신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