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솨아! 솨아!”바람이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동리아는 이미 예상한 듯 아무런 표정 변화 없이 덤덤하게 하현을 쳐다보았다.마치 하현이 허둥지둥거리는 모습을 기대하는 표정이었다.하지만 결국 그녀는 예상하는 그림을 얻지 못했다.하현은 무덤덤한 표정으로 손을 들고 그 자리에서 나뭇가지가 자신을 스쳐 지나가도록 내버려두었고 이후 나뭇가지가 땅에 떨어지는 소리만 들렸다.하현은 눈을 가늘게 뜨고 멀지 않은 곳에 있는 동정감을 바라보았다.아직은 알려지지 않은 동정감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가늠할 수 있었다.역시 보통 인물이 아니야!하현이 마음속으로 감탄하고 있는 동안 동정감은 쓰고 있던 선글라스를 옆에 있던 아내에게 건네주었다.그리고 나서 그는 손수건을 꺼내 손바닥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좋아! 좋아!”“눈앞에서 태산이 무너져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젊은 나이에 그런 마음가짐을 가졌으니 어젯밤 당신이 내 큰 코를 다치게 할 만하구만.”“내가 어제 당한 일이 그리 억울해 보이지는 않는군.”동정감은 하현에 대한 감정을 솔직하게 말했다.방금 일어난 일은 분명 동정감이 하현의 실력을 가늠해 보기 위해 시도한 것이다.어젯밤 자신의 뒤통수를 친 젊은이가 얼마나 위세가 대단한지 두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그런데 하현이 얼굴빛 하나 변하지 않고 이런 일격을 무심히 감당할 줄 아는 것에 동정감은 적잖이 놀랐다.역시 자신이 잘못 보지 않았음을 알고 동정감은 하현을 더욱 높이 평가하게 되었다.적어도 항성과 도성에 이 정도 실력과 담력의 젊은이는 그리 많지 않다.하현은 동정감의 말을 듣고 웃으며 말했다.“칭찬의 말씀 감사합니다.”“다만 어르신께 손해를 끼쳤다는 말은 어디를 두고 하시는 말씀이신지요?”“어젯밤 제가 신고한 일을 말씀하시는 거라면 전 시민으로서 관청이 공정하고 정의롭게, 합당하고 합법적으로 처리해 줄 거라 생각해서였습니다.”동정감은 잠시 어리둥절해하다가 입을 열었다.“재미있
동정감은 서서히 언짢은 기색을 내비치며 계속 힘을 주었다.나중에는 거의 모든 힘을 다 쏟아 하현의 손을 꽉 쥐었다.그러나 그는 자신이 가한 힘이 아무런 효과가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의 손아귀가 희미하게 아파지기 시작하면서 곧이어 찢어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는 걸 깨달았다.“나쁘지 않아. 좋아, 좋아.”동정감은 드디어 손을 거두었다.그는 하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말을 이었다.“머리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몸놀림과 심성도 모두 최상급이군. 이제 더 이상 당신을 원망하지 않겠네!”말을 마치며 동정감이 하인에게 손짓을 하자 하인은 재빠른 몸놀림으로 탁자와 의자를 두 사람 가까이로 옮겨왔다.하현에게 앉으라고 손짓한 후 동정감은 하현에게 직접 차를 따라주었고 뒤이어 맛깔스러운 항성식 다과가 탁자 위에 놓였다.동리아는 자신의 아버지가 하현에게 하는 모습을 보고 적잖이 놀랐다.원래 계획대로라면 오늘 아침은 분명 동정감이 하현을 염탐하기 위해 마련한 자리였는데 갑자기 이제야 만나게 된 걸 아쉬워하는 듯한 분위기로 흘러간 것이다.동정감은 찻잔에 입을 갖다 대고 한 모금 음미한 다음 줄곧 의아해하는 표정을 하고 서 있는 동리아를 힐끔 보며 웃었다.“리아야, 내가 오늘 하현을 때려죽이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예의 바르게 대접하는 걸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 거지?”동리아는 눈썹을 찌푸리며 고개를 끄덕였다.동정감은 싱긋 웃으며 말했다.“내가 원래 하현과 밥 한 끼를 하고 싶었던 이유는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어서였단다. 내가 가까이 소중하게 두어도 될 사람인지 어떤지 알고 싶었거든.”“이 사람이 가까이 소중하게 둘 깜냥이 안 되는 사람이고 어젯밤 사건은 그냥 운이 좀 나빴다고 치더라도 난 이 사람에게 식사를 대접했을 거야.”“그랬다면 아마 그냥 밥 한 끼에 불과했겠지.”동정감의 말을 듣고 동리아는 생각에 잠겼다.그리고 나서 그녀는 하현을 깊은 시선으로 바라보았다.방금 보석으로 풀려난 사람을 자신
”둘째, 항도 하 씨 가문이 홍성을 뒤에서 움직여 항독을 압박했다는 소문이 돌고 있습니다.”“지금 각 방면으로 알아보고 있는 중인데 이 자리에서 안절부절못하는 모습을 보이신다면 그들은 당장 항독을 이 자리에서 끌어내리려고 할 겁니다.”“그리고 오늘 이 식사를 빌어 다른 사람들에게 아직 항독이 건재하다는 걸 보여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전혀 흔들림이 없다는 것도 보여줄 수 있구요.”“셋째는 동맹할 사람을 찾기 위한 것입니다. 어쨌든 제가 항성과 도성에 온 후 용전 항도 지부를 흔들어 놓았을 뿐만 아니라 하구천을 여러 번 공격하게 되었죠.”“항독께서는 제가 도대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그 저력은 얼마나 탄탄한지 손을 잡아도 될 사람인지 가늠하고 싶으셨던 겁니다.”예리하게 분석한 하현의 말을 듣고 동리아는 정신이 혼미해졌다.어젯밤 사건으로 자신의 아버지가 이렇게 큰 소용돌이에 직면할 줄은 몰랐다.뜻밖에 외부인의 입을 통해 사건의 이면을 듣게 될 줄이야.하현의 빈틈없는 분석에 동리아는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동정감은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하현을 유심히 바라보며 말했다.“앞의 두 가지는 확실히 내 생각과 일치하네만 세 번째는 나도 잘 몰랐던 것이네. 어떻게 그런 생각을 하게 되었는가?”“하현, 나한테도 좀 가르쳐 주세요”어느새 하현에 대한 동리아의 말투가 공손하게 바뀌어 있었고 이는 하현에 대한 그녀의 생각이 바뀌었다는 걸 의미한다.동정감은 이미 하현을 자신과 동등하게 대화할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있었다.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하늘에는 두 개의 태양이 있지 않습니다. 백성에게는 두 왕이 있을 수가 없죠.”“이전의 항도 하 씨 가문은 상대적으로 조용했지만 하구천은 다릅니다.”“용전의 떠오르는 전쟁의 신으로 불릴 뿐만 아니라 항성과 도성의 젊은 세대 중 일인자에 9대 병부 총교관감이라는 말도 있죠.”“하지만 항독께서는 하구천이 9대 병부 총교관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실 겁니다. 하구천은 바로 항독
정오가 되어서야 하현은 동정감의 집을 나왔다.동정감은 직접 하현을 문밖까지 배웅했다.동 씨 집안에선 보기 드문 일이었다.줄곧 집에서 조용히 지내던 항독이 직접 나와서 배웅을 하다니!도대체 하현에게 어떤 매력이 있길래 이러는 것인가?동 씨 집안사람들은 모두 하나같이 의아한 눈빛으로 하현을 쳐다보았다.어떻게 해서라도 하현과 친해질 기회를 찾느라 보이지 않는 신경전이 오갔다.어쨌든 그들이 보기에 동정감이 이렇게 극진히 대접하는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이다.동정감이 저택으로 다시 돌아왔을 때 아까 뾰로통해 있던 동리아가 그에게 커피 한 잔을 가져다주며 작은 소리로 말했다.“아버지, 저도 아버지가 하현을 왜 집까지 이렇게 초대한 건지는 이제 알겠는데요.”“마음에 들면 그냥 마음에 든다고 하면 되지 뭘 이렇게 크게 벌이세요? 지지한다니요? 그럴 필요까지 있어요?”“항도 하 씨 가문에서 아버지 태도를 눈치챈다면 분명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항도 하 씨 가문은 항성과 도성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주시하고 있어요. 그들에게 미움을 사면 우리 집안도 시끄럽게 될 거라구요!”동리아는 여전히 못마땅한 얼굴이었다.동 씨 집안사람이 항독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이 생각만큼 그리 수월한 일이 아니었다.항도 하 씨 가문은 항성과 도성을 손아귀에 넣고 쥐락펴락하고 있었다.몇 년 동안 동정감이 이 깊은 산속 같은 집에 칩거하고 있는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했다.“우리 동 씨 집안도 거북이처럼 움츠린 채 조용히 지낼 수 있었다구요.”“그런데 어젯밤 일로 인해 우리 집안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이 터지게 생겼어요.”동정감은 커피를 한 모금 마시고는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하현은 경찰서에 신고를 한 뒤 바로 언론에 제보했어.”“우리 집안을 수면 위로 끌어올린 거지.”“우리 동 씨 집안이 권력자의 편에 서서 그와 같은 선량한 시민에게 칼을 들이댄다면 어떻게 되겠니? 그러니 날 믿어 봐. 오늘 이 자리가 우리
”설령 그가 본토에서 이룬 것이 보잘것없는 일이라고 해도 너 생각을 해 봐. 하현이 항성과 도성에 온 지 얼마나 되었니?”“그가 손을 뻗자 항성과 도성은 완전히 국면이 바뀌었어. 화 씨 집안은 더 이상 왕이 아니야.”“대립각을 세워야 할 화 씨 집안과 최 씨 집안은 서로 악수는 하지 않았지만 모두 하현의 편에 서 있어.”“최 씨 가문은 말할 것도 없고 하현을 등에 업은 최영하는 용전 항도 지부장 자리를 꿰찼어. 그 순간 최 씨 가문은 하현과 생사를 같이 할 수밖에 없다고!”“그리고 화 씨 집안은 말이야. 화풍성이 무슨 생각을 품고 있든 간에 어젯밤 하현은 영웅처럼 화풍성의 딸을 구했어.”“화풍성이 금이야 옥이야 아끼는 딸을 두 번이나 구해줬다고.”“화풍성이 어떻게 하현의 편에 서지 않을 수가 있겠니?”“하현이 아직 도성에서 이렇다 할 만한 일을 벌이진 않았지만 이 두 집안의 지지가 있는 한 그리 멀지 않았어.”“지금까지 애비의 말을 듣고도 아직 하현이 평범한 사람처럼 여겨지느냐?”동리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무슨 생각이 떠오른 듯 흠칫 놀랐다.하현이 항성과 도성에 온 후 여기저기서 미움을 사는 일을 벌였다.그렇지만 불과 한두 주 만에 그는 은밀하고 치밀하게 무서운 세력으로 떠올랐다!아주 무서운 속도로 강력한 회오리를 일으키며 폭풍우를 만들어 낸 것이다.“그런 이유로 우리 집안이 하현의 편에 서는 건 알겠어요. 그런데 그가 정말 하구천을 상대할 만한 능력이 된다고 보세요?”동정감은 남은 커피를 홀짝이고는 의미심장하게 동리아를 쳐다보았다.동리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그럼 우리 집안은 앞으로 뭘 해야 하죠?”“선명하게 깃발을 그에게 꽂는 건가요?”동정감은 동리아의 원색적인 표현에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누가 이런 일에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드러낸다더냐?”“리아야, 잘 기억해 둬. 어젯밤 일을 조사한 후 하현이 섬나라 사람들을 자극했다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으면 그
동 씨 집안 조카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입을 열었다.“맞아요. 살해당했어요. 그의 목에 칼자국이 있었다니까요.”“아마 당도 자국인 것으로 추정됩니다.”“다른 단서는 아직 없어서 계속 찾고 있는 중이에요.”“하지만 현재 수사선상으로 볼 때 어젯밤 사건도 있고 해서 모든 추적의 화살이 하현을 향해 있어요.”동정감의 안색이 일순 어두워졌다.그는 항도 하 씨 가문에서 손을 쓸 줄은 알았지만 이렇게 빨리 시작할 줄은 몰랐다.그는 방금 하현에게 좋은 시민상을 주려고 궁리하고 있었는데 갑자기 이런 날벼락 같은 일이라니.항도 하 씨 가문은 분명 하현에게 누명을 씌우려는 계략을 꾸몄을 것이다.이런 일을 저지른 가장 큰 이유는 동정감에게 항도 하 씨 가문과 하구천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한지 보여주기 위함이니라.상대가 손을 쓰지 않았을 뿐 손을 쓰기 시작한다면 그 결과는 반드시 죽음으로 끝나야 한다는 메시지였다.간단히 말해 무카이 나오토의 죽음은 결국 하현이 진범이라는 올가미를 단단히 씌운 셈이다.동정감이 직접 나서서 하현의 증언을 받은들 아무 소용이 없다.증거만큼 분명한 단서는 없다.동정감은 시름에 잠긴 얼굴로 손을 들어 양미간을 문질렀다.그리고 동리아에게 시선을 돌리며 조용히 말했다.“하구천한테 갔다 와.”“왜요?”동리아가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가서 우리 동 씨 집안의 입장을 알려.”동정감은 깊은 한숨을 쉬며 마당 너머로 보이는 바다 위로 시선을 내렸다.저 멀리 지평선과 수평선이 거의 맞닿은 곳에서 구름이 몽글몽글 엉키고 있었다.항성에 또 한 번 폭풍우가 몰아칠 기세였다.이번 폭풍우가 지나간 후에 과연 이 항성에는 뭐가 남아 있을지 동정감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퍽!”오후 3시 정각 빅토리아 항구의 고급 오피스텔 문이 소란스러운 빗소리를 뚫고 거칠게 소리를 내며 열렸다.동리아는 긴 다리를 뻗으며 프런트에 있던 직원들을 무시하고 바로 안쪽 사무실로 들어갔다.이곳은 항도
동리아는 허민설의 도발을 무시한 채 눈살을 찌푸리며 유유히 차를 마시고 있는 하구천을 바라보았다.“하구천, 당신한테 듣고 싶은 말이 있어서 왔어요!”“동리아, 여차하면 날 경찰서로 데려가서 취조라도 할 태세군, 어? 난 어젯밤 일에 대해 이미 분명히 설명했다고 생각하는데. 뭐 그러나저러나 잘 왔어.”“쌍방의 갈등을 중재하는 데 전념하는 것도 항성의 치안을 위해서 좋은 일이지.”“좋은 시민상을 줘도 모자랄 판에 나한테 누명을 씌우진 않겠지, 안 그래?”자신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는 듯 하구천은 담담하게 말했다.평소 같으면 하구천의 말에 화가 났을 테지만 동리아는 지금 당장 그것을 따져 물을 수 없었다.지금은 상황이 달라진 것이다.그녀는 심호흡을 하고 천천히 말했다.“하구천, 내가 묻고 싶은 건 왜 무카이를 죽이고 하현에게 누명을 씌우는 거냐는 거예요.”“무카이가 죽었다고?”하구천은 깜짝 놀라는 얼굴을 했다.그 얼굴엔 조금의 거짓도 보이지 않았다.“어젯밤 이미 항도 하 씨 가문에서 많은 의사들을 에드워드 병원에 보냈는데 어떻게 죽어? 치료되지 않았어?”“어떻게 그가 죽을 수 있어?”동리아는 하구천을 유심히 쳐다보다가 잠시 후 침착하게 말했다.“내 말은 무카이가 호흡이 멎어서 숨이 끊어진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살해당했다는 거예요.”“아무리 의사가 많아도 죽은 사람을 살릴 수는 없죠.”“탁!”“말도 안 돼!”화가 난 하구천은 벌떡 일어나 손에 들고 있던 찻잔을 테이블 위에 거칠게 내려놓았다.“내가 무카이를 살리려고 그렇게 많은 의사와 간호사들을 보냈는데 어떻게 그가 죽을 수 있어?”“동리아, 이 일은 당신네 항성 경찰서에서 반드시 명명백백히 밝혀내야 해! 섬나라 대사관에 제대로 설명해야 한다고!”“그렇지 않으면 내가 반드시 당신들에게 그 죄를 물을 거야!”노발대발하는 하구천의 얼굴은 아무리 보아도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오히려 법을 공정하게 집행하고 정의를 실현하는 관청 사람 같
그러나 지위가 아무리 높다고 해도 하민석 앞에서는 겸손할 수밖에 없다.허지강은 사람 좋은 미소로 일어서며 말했다.“하구천, 이 일은 내가 이미 우리 허 씨 집안 경로를 통해 섬나라 음류 쪽에 알렸어.”“섬나라 음류 장로인 무카이 마키가 오늘 밤 항성에 도착한다고 해.”“그는 자신의 혈육인 무카이 나오토를 위해 정의를 되찾으려고 할 거야.”하구천은 능청스럽게 허지강의 말을 되받았다.“에이 너무 안 됐어. 원래 정의를 되찾는 일은 관청이 나서서 해 줘야 하는 건데, 스스로 되찾으려 하다니.”“섬나라 친구들한테 좀 미안해지는군.”“허지강, 날 대신해서 섬나라 손님들을 잘 대접해 줘. 그들이 원하는 대로 해 주고. 아, 물론 뒷수습은 분명히 깨끗하게 처리해야 해. 절대 아무런 단서도 남겨서는 안 돼.”허지강은 간특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하구천, 걱정하지 마. 우리 허 씨가 운송으로 가세를 키운 집안이야. 어떤 것이 유출되었다손 치더라도 절대 그 경로를 알 수 없어.”하구천은 살며시 고개를 끄덕인 후 일어서서 하민석을 힐끔 보고는 입을 열었다.“하민석, 정말 하현이 무카이를 죽인 것이 확실하지?”하민석은 사악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물론이지. 오늘 아침 병원 CCTV에 그의 모습이 찍혔고 현장에 남은 칼에 그의 지문이 확실히 찍혔어.”“하지만 실증이 아니라서 살인자를 감옥에 가게 할 수는 없어.”“그래도 섬나라 손님들의 마음속 울분을 가라앉혀 주기에는 충분한 복수야.”하구천은 담담하게 말했다.“그렇게 말하면 안 돼. 증거는 증거일 뿐이야. 그게 실증인지 아닌지 무슨 상관이야?”“우리가 할 일은 섬나라 손님들에게 알고 있는 것을 알릴 뿐이지 어떤 선택을 할지는 그들의 몫이야.”“참, 한 가지 더.”하구천은 곽영준을 보며 말했다.“곽 씨 가문 수하에 거물급 변호사가 여럿 있지 않았어?”“그들이 함께 나서서 진홍두를 보석으로 좀 빼왔으면 좋겠는데.”“섬나라 손님이 왔는데 우리 진홍두가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