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건 내 딸이 빨리 왔기 때문이야. 1초만 더 늦었으면 난 아마 저놈 손에 죽었을 거야!”최희정은 이를 갈며 소리쳤다.“참, 내 가방은? 내 가방 안에 이혼 합의서가 있어. 빨리 저 살인범한테 서명하라고 해!”“이게 내 유언이야. 난 죽어도 너희 둘 함께 있는 꼴은 못 봐!”“빨리, 누가 이혼 합의서 좀 가져다줘요!”최희정의 으르렁거림에 곽영준이 못내 손짓을 했다.그의 사람들은 쏜살같이 구석진 곳으로 흩어져 에르메스 가방을 찾아냈고 그 안에서 꼬깃꼬깃한 이혼 합의서를 찾아서 가져왔다.이혼 합의서를 붙잡고 잠시 괴로워하던 설은아는 떨리는 손으로 이혼 합의서에 서명했다.이혼 합의서가 하현에게 건네지자 설은아는 이를 갈며 매정한 목소리로 말했다.“하현, 어서 서명해!”“이혼하면 더 이상 이 일에 대해 책임은 묻지 않을게.”하현은 명치에서 끌어올린 듯한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당신, 날 그렇게 못 믿겠어?”“곽영준이 결정적인 순간에 당신을 여기로 데려온 게 무슨 까닭에서 그랬는지 당신 생각해 본 적 없어?”“당신은 도성에 있었어. 곽영준이 당신을 데리고 왔고 마침 내가 장모님의 몸에 칼을 찌르는 장면을 목격했어.”“세상에 이런 우연이 흔하다고 생각해?”“역시 당신은 나한테 기본적인 믿음조차 없어, 그렇지?”“3년 동안 살아왔으니 지금쯤 당신 마음속에 내 자리가 조금은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 보니 내가 너무 나 자신을 과대평가한 모양이야.”하현은 자조적으로 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내가 곽영준보다도 못 해?”“그래, 맞아. 네가 어떻게 곽영준과 비등할 수 있겠어? 가당치도 않지!”들것에 누워 상황을 지켜보던 최희정은 이미 곽영준의 정체를 파악한 모양이었다.“곽영준 이 사람은 항성 S4 중 한 사람인데 자기 마누라한테 의지해 편하게 얻어먹은 너 같은 놈이랑 비교를 해?!”“이혼 합의서에 서명이나 하고 어서 꺼져. 어디서 허풍을 떨고 있어!”“어서 사인하고 가!”하현은 최희정의 말을
”말 나온 김에 나도 한번 물어봅시다. 이번에 당신네 항성 사람들이 나를 납치하고 이 꼴로 만든 데 대해 병원비뿐만 아니라 위자료도 배상해야죠!”“적어도 100억은 될 거예요!”설은아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최희정이 무사히 돌아왔으니 그걸로 되었다.게다가 지금은 하현과의 이혼까지 생각해야 해서 머리가 너무 복잡했다.경찰관은 최희정이 늘어놓는 말을 끊으며 말했다.“여사님, 모든 것은 우리 항성의 법에 따라 처리될 겁니다. 여사님을 납치한 강도들은 마땅히 처벌받을 것이고 그에 따른 보상도 받을 거예요...”“그리고 우리가 하 선생님하고 연락을 좀 하고 싶은데요. 지금 핸드폰이 꺼져 있어서 연락이 안 되는데 혹시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설은아 씨의 남편이라고 들었는데...”“전남편이에요!”최희정이 발끈하며 말을 끊었다.“만약 그놈이 나쁜 짓이라도 저질렀다면 그건 우리랑 아무 상관없는 일이에요. 이미 내 딸과 이혼했거든요!”“게다가 일이 이렇게 된 데는 그의 책임이 가장 커요!”“나쁜 짓이요?”경찰이 눈썹을 들썩이며 말했다.“아니 아니에요. 우린 그저 고맙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 연락을 한 겁니다.”“이번에 하 선생님이 여사님을 구했을 뿐만 아니라 악행을 저지르는 무리들을 잡는 데 일조를 했어요. 몇몇 놈들의 진술과 현장 증거에 근거해서 우리는 사건의 모든 경위를 파악했습니다. 지금은 하 선생님을 찾아 다시 한번 확인하는 일만 남았을 뿐이에요.”최희정은 쌀쌀맞은 목소리로 말했다.“내가 당사자인데 사건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요? 나한테 물어보세요. 경찰이 알고 있는 것과 전혀 달라요.”경찰은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여사님, 여사님은 사건 당사자라서 지금 감정이 많이 격해져 있습니다. 여사님이 보는 것이 반드시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있어요.”“하 선생님이 여사님을 죽이려 한다고 여사님이 신고한 일도 잘 알고 있어요.”“하지만 여사님의 상처 위치와 현장의 핏자국을 보면...”
최희정도 그때 상황을 모르진 않았지만 어쨌든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하현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그런 행동을 했다는 걸 인정하면 그건 그녀 스스로 체면을 깎는 일이었다.게다가 그녀는 줄곧 하현과 설은아의 이혼을 원했다.오늘 전화위복이 되어 이제야 목적을 달성했는데 자신이 오해했다는 사실을 순순히 인정할 수 있겠는가?그녀는 하현이 다시는 설은아 앞에 나타나지 않길 바랐다.서로 보지 않는 것이 좋다.“엄마, 그만해...”설은아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밀려오는 막심한 후회를 떨쳐보려 했다.“하현에 대해 그렇게 말하지 마. 하현은 우리 모두를 위해서 그런 거야...”설은아의 마음은 후회로 가득 차 있었다.하현이 자신의 엄마를 구하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이 모든 일을 감수할 줄은 몰랐다.그런 줄도 모르고 하현을 오해했을 뿐만 아니라 이혼까지 강요했다.설은아는 다시는 하현을 볼 수 없을까 봐 두려웠다.“왜? 날 죽이려고 했다니까. 내 말 틀렸니?”최희정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사실 그놈은 너의 재산이 탐나서 너랑 이혼하지 않으려고 날 죽이려고 했어. 날 제거하고 널 완전히 조종하려는 거지.”“잘 헤어졌어. 그놈은 아주 쓰레기야!”“그놈은 널 살살 꼬드긴 뒤 네 지위를 이용할 생각밖에 없는 놈이야!”“설마 너 그놈이랑 이혼한 거 후회하는 거니?”“됐어. 우린 내일 남원으로 돌아가서 먼저 천일 그룹의 지배권을 되찾아오는 거야!”“그놈은 이미 너랑 이혼했으니 이젠 천일 그룹을 계속 관장할 자격이 없어.”설은아는 어리둥절해했다.“엄마, 엄마가 지금 뭘 잘못 알고 있는 것 같은데.”“천일 그룹은 하현의 회사지 나랑은 아무 상관없어.”“그럴 리가!?”최희정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천일 그룹은 대구 정 씨 집안 아홉 번째 안주인의 재산이 아니라 그놈 회사라고?”“말도 안 돼!”옆에서 아직 떠나지 않고 두 모녀의 대화를 듣고 있던 경찰이 입을 열었다.“최 여사님, 최근에 상장된 천일 그
흰옷을 입은 남자는 하 씨 가문 4대 문호의 우두머리이자 항성 S4 중 한 명인 하민석이었다.그는 어두운 표정을 지으며 곽영준의 말에는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입을 열었다.“하현이 어쩔 수 없이 이혼 합의서에 서명한 것이 확실해?”“확실합니다! 게다가 설은아의 태도로 봤을 때 이제부터 대구 정 씨 집안 아홉 번째 방주는 하현에게 조금도 힘을 실어주지 않을 것입니다!”“내가 딱 예상했던 그런 결말이로군!”하민석은 얼굴을 약간 찡그리며 말했다.“곽영준, 하현을 얕보면 안 돼.”“예전에 남원에서 우리 하 씨 가문이 그를 얕잡아봤기 때문에 그놈한테 일격을 당한 거야.”“지난번에도 우리가 얕잡아봤다가 큰코다쳤잖아.”“이번에 그를 죽이려면 우리가 좀 더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해.”“만약 하 세자가 다루기 쉬운 상대였다면 우리가 번거롭게 그를 항성까지 데려올 필요가 없었겠죠.”곽영준이 계속 말을 이었다.“하 세자는 누가 보더라도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이죠. 내 얼굴에 있는 이 손바닥 자국이 그 증거 아니겠어요?”“하지만 그를 죽이는 데 우리가 나서지 않아도 돼요. 도성 화 씨 집안이 있고 게다가 항성의 다른 두 집안까지!”“그는 죽을 수밖에 없어요!”보아하니 하현을 죽이기 위해, 그리고 남원에서의 원한을 갚기 위해 곽영준은 오랫동안 치밀한 계획을 세운 모양이었다.하현에게 뺨을 한 대 더 얻어맞았다고 해도 그는 자신의 계획을 의연하게 진행시킬 각오가 되어 있었다.곽영준이 굳은 표정으로 말하는 동안 하민석의 핸드폰이 갑자기 울리기 시작했다.하민석은 핸드폰을 꺼내 얼른 받았다.잠시 후 그의 표정이 일그러졌다.“왜? 무슨 일 있어요?”곽영준이 하민석을 힐끔 보았다.하민석은 평소 자신의 감정을 좀체 드러내지 않는 사람이었다.그러나 오늘 그의 표정이 왠지 심상치 않아 보였다.“뭔가 일이 일어난 것 같아.”하민석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방금 하현이 도성 최고 권력자
붓놀림은 평범했지만 거침이 없는 유려하고 당당한 화풍이었다.사람들은 이 그림을 보고 도성 최고 실세인 최양주의 마음속에 이미 모든 구상이 끝났다는 걸 알 수 있었다.마음속에서 모든 구상이 끝나지 않은 사람은 거침없이 솟구치는 이런 그림을 그릴 수가 없는 것이었다.왜냐하면 이런 호탕한 기백은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마지막 한 획에 그의 온 정신이 쏠리며 산수화 한 점이 거의 완성되려는 찰나였다.붓이 종이에서 떨어지려는 그 순간 최양주의 곁눈으로 하현의 모습이 보였다.살짝 보았을 뿐인데 최양주는 그에게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꼈다.잠시 어리둥절해하던 최양주는 하현의 기운에 충격을 받은 듯 마무리하려던 그림에서 손을 내려놓았다.자신이 이 그림을 완성할 수 없다는 걸 깨달았다.얼굴을 살짝 찡그리던 최양주는 잠시 후 붓을 탁 내려놓더니 돌아서서 하현을 바라보았다.차가운 시선이 하현의 몸을 쓸어내렸고 최양주는 오른손을 내밀며 말했다.“최양주라 하네.”뒤편 멀지 않은 곳에서 가만히 손을 모으고 있던 최영하와 최문성 두 사람은 어안이 벙벙했다.그들은 자신의 아버지가 젊은이를 이렇게 깍듯하게 대하는 것을 처음 보았기 때문이다.당황스러운 건 하현도 마찬가지였다.도성 최고 실세인 분이 자신을 이렇게 따뜻하게 맞이해 줄 거라고는 상상하지도 못했다.잠시 어리둥절해하던 하현은 정신을 다잡고 손을 뻗어 최양주의 손에 살짝 닿았다.“하현이라고 합니다!”“이름은 평범한데 사람은 평범하지 않군그래!”최양주는 웃으며 하현을 칭찬하는 말을 했다.“이틀 전 우리 영하가 자네 얘기를 꺼냈어. 우리 문성이랑 잘 아는 사이라며 날 찾아와 인사드리고 싶다고 했다지.”“모자란 내 아들이 무슨 나쁜 짓이라도 했나 하고 나도 지난 이틀 동안 조사를 좀 해 봤지.”“짧은 시간이었는데도 아주 대단한 일을 하셨더구먼.”“그렇지 않았다면 내가 자네의 방문을 허락하지도 않았을 거야.”담백하게 말했지만 최 씨 집안의 아우라
청천벽력과도 같은 말이었다!하현의 말을 듣는 순간 최영하와 최문성은 깜짝 놀라 눈이 튀어나올 것 같았다.도성에서 카지노 사업은 돈과 권력, 인맥 그 모든 것을 다 아우르는 강력한 것이었다.도성 화 씨 집안이 도성을 장악하고 있는 이유는 화 씨 집안 네 아들이 모두 각각 카지노를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었다.하현이 지금 한 말은 화 씨 가문과 전면전을 벌이겠다는 뜻이었다.화 씨 집안의 뿌리를 통째로 뽑아버리겠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최영하와 최문성은 불안한 기색으로 최양주의 표정을 살폈다.그러나 최양주는 화를 내지 않았다.“하 대표, 하 세자, 하 지회장. 자네의 신분과 자네 집안의 힘으로 카지노를 넘볼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도성에서야 카지노는 힘이 될 만한 사업이지만 자네 같은 인물한테는 그렇게 큰 가치가 없잖아?”“아닙니다. 충분히 가치가 있습니다.”하현의 말투는 위엄 있으면서도 차분했다.“카지노 하나는 대하의 힘 있는 두 곳에 대한 발언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도성에 손을 뻗을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연간 몇 조의 매출도 올릴 수 있습니다.”“제가 관심을 갖는 게 정상 아닌가요?”“게다가 지금 화 씨 집안 넷째 아들은 이 카지노를 이용해 대구 정 씨 집안 아홉 번째 방주를 협박하고 있습니다.”“화 씨 집안의 기세를 꺾지 않고서야 어떻게 제 아내에게 떳떳할 수 있겠습니까?”최양주는 이를 듣고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하 대표, 내가 들은 바로는 설은아는 이제 당신 부인이 아니라더군. 말하자면 전부인인 셈이지.”하현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설은아는 제 여자입니다. 명분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최양주는 잠시 멋쩍은 미소를 보였다.“내가 너무 케케묵은 관습에 빠졌었나 보군. 그렇지. 명분은 아무 의미가 없지.”“그리고 화 씨 집안 넷째 아들이 카지노를 이용해 당신의 신분을 압박하려는 건 그들로선 당연한 처사지.”하현은 더 이상 최양주의 말에 반박하지 않고 정중하게 물었
바닥에 쓰러진 사람은 얼굴이 벌개진 채 숨을 헐떡이고 있었다.몸은 끊임없이 떨고 있었고 일어설 기력조차 없는 것 같았다.그녀의 옷이 여기저기 찢겨져 있었고 스스로도 놀라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 것 같았다.차를 마시고 있던 하현은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마자 얼굴빛이 확 변했다.방재인!?그녀는 이미 연경으로 돌아가지 않았던가?어떻게 이곳에 나타난 거지?“당신들 참견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요.”하현이 일어서기도 전에 문밖에서 악랄하고 음흉한 웃음소리가 들렸다.“그 여자는 홍성 태자 진태유가 데리고 노는...”“방재인!”하현이 찻잔을 내동댕이치고는 재빨리 달려가 방재인을 부축하며 조용히 말했다.“왜 그래?”하현은 방재인의 맥을 짚어보고는 순간 얼굴빛이 어두워졌다.누군가가 방재인에게 약을 먹인 것이다.독약은 아니었지만 뭔가 이상한 흥분제 같은 것을 먹은 듯했다.방재인은 온몸이 뜨겁고 정신이 혼미했다.하현이 방재인을 일으켜 세우려 하자 그녀는 몸부림을 치며 벗어나려고 하다가 낯익은 하현의 얼굴을 보았다.“하현...”방재인은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헐떡거리고 있었다.“말하지 말고 물이나 마셔.”하현은 그곳에 있던 소파에 자리를 잡았다.“걱정하지 마. 내가 있으니 아무 일도 없을 거야.”고개를 끄덕이며 물 한 모금을 마신 방재인은 눈을 감았다 떴다.놀라고 두려워하던 그녀의 얼굴이 조금 진정이 되었다.“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하현이 재차 물었다.“어제 돌아가려고 했는데 갑자기 화소붕한테 전화가 왔어요. 그의 동생 화옥현이 나와 다시 계약하고 싶다고 한다고.”“이번에는 감히 함부로 할 수 없겠지 하고 내가 너무 쉽게 생각했어요. 사업이 성사되면 가족들과의 약속도 지킬 수 있겠다는 마음에 그만...”방재인의 얼굴에 자조적인 후회가 감돌았다.자신이 너무 순진했음을 탓하는 것 같았다.하현은 한숨을 내쉬었다.빨리 돈을 벌고 싶었던 방재인의 마음이
분명 화옥현은 홍성 태자 진태유를 뒷배로 두었으니 최문성인들 안중에도 없을 것이다.최문성은 뺨을 한 대 얻어맞고 안색이 싹 변했지만 진태유의 정체를 분명히 알고 있었기에 지금은 아무런 응수도 하지 않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진태자, 오늘 이곳은 이미 우리가 점유했으니 진태자께서는 우리 아버지의 체면을 생각해서 좀 봐 주십시오.”최문성의 태도를 본 그의 사람들은 모두 침묵한 채 그 자리에 서서 앞으로 나서지 않았다.“최문성, 방금 내가 한 말 못 들었어?”“당장 꺼져!”“당장 꺼지라구!”말이 떨어지자마자 화옥현은 다시 손을 휘두르며 최문성의 뺨을 후려갈겼다.연거푸 몇 차례나 얻어맞은 최문성의 눈빛이 돌변했으나 순간적으로 되받아칠 엄두가 나지 않았다.화옥현은 한껏 거만해진 자세로 최문성을 노려보았다.홍성 태자 진태유가 든든히 뒷배가 되어 주고 있으니 최문성 따위 안중에 있을 리가 없었다.심지어 화옥현의 몇몇 무리들은 화옥현이 때리기 쉽도록 최문성을 양쪽에서 붙잡으려고 했다.진태유는 담배를 입에 문 채 아무 움직임도 없었다.그는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방재인에게 물을 주고 있는 하현을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있었다.그러나 그의 시선은 여전히 방재인에게 쏠려 있었다.항성이나 도성에서 본 닳고 닳은 여자들과는 다른 방재인의 청순한 매력에 그는 상당한 흥미를 느끼는 것 같았다.“그만해!”최문성은 뒤로 물러나며 차가운 눈빛으로 말했다.“화옥현, 내가 진태자님의 체면을 봐서 지금은 당신한테 따지지 않는 것뿐이야.”“하지만 더 건방지게 굴면 각오해. 그때 가서 원망해도 소용없어!”“자! 지금 때려 봐! 시작해 보라구! 감히 나한테 손찌검을 해? 확 죽여 버릴 거야!”화옥현이 건방진 표정을 지으며 다가와 최문성 앞에 얼굴을 들이밀었다.진태자 앞에서 최문성이 감히 손을 쓰지 못한다는 걸 알고 덤비는 것이었다.최문성은 못마땅한 듯 얼굴을 일그러뜨렸다.화옥현은 두렵지 않았지만 홍성 태자는 신경 쓰지 않을
허탈해하는 하현의 표정을 살피며 설은아가 입을 열었다.“하현, 뭘 선물하는지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아.”“당신이 우리 결혼기념일을 기억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해.”하현은 고개를 살며시 끄덕였다.“하현, 오늘 내가 당신한테 전화를 한 것은 더 이상 우리의 과거 일을 언급하지 말라고 말해 주고 싶어서였어.”“김탁우와의 사이는 이미 멀어졌어.”“엄마 기분이 좀 나아지면 내가 직접 말씀드릴 거야.”“당신이랑 재혼할 거라고.”“그러니 더 이상 우리 엄마랑 싸우지 마, 알았지?”설은아는 하현을 무척이나 아끼고 있는 게 분명했다.게다가 그녀는 간민효를 마주했을 때 하현을 빼앗길까 봐 상당한 위기감을 느꼈다.하현은 쓴웃음을 지었다.다른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다만 최희정은 아마 두 사람의 재혼을 승낙하지 않을 것이다.하현이 그리 강하지 못한 것이 아니라 최희정이라는 여자는 혼자서 모래폭풍도 무찌를 사람이었기 때문이다.두 사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 동안 나박하는 어느새 설 씨 집안에 도착했다.하현이 머뭇거리며 말했다.“먼저 들어가. 난 요즘...”“내려! 여긴 당신 집이야!”설은아는 억지로 하현을 차에서 끌어내렸다.“오늘 밤 여기서 자.”하현은 한숨을 내쉬며 설은아의 손에 이끌려 들어갈 수밖에 없었다.집안에 들어가니 식탁에는 이미 음식이 그득하게 차려져 있었다.최희정과 설재석 외에 그들의 양아들 이영산과 며느리 장리나도 함께 모여 있었다.네 사람이 82년산 라피트를 마시며 얼굴이 볼그레한 채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었다.그리고 테이블 위에는 십여 개의 선물 상자가 쌓여 있었는데 그중 몇 개의 상자에는 김 씨 가문 로고가 박혀 있었다.김탁우가 방문한 것이 틀림없었다.그런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하현이 나타나자 최희정의 낯빛이 일그러지며 순식간에 찬바람이 쌩쌩 불었다.“자네, 여긴 어쩐 일이야?”“와서 밥 먹어.”로열 회관의 일로 설재석은 여전히 약간의 죄책감을 느끼고
”하 대사가 아니었다면 당신은 아마 지금쯤 감옥에서 죽었을 거야!”“당신한테 하루의 시간을 주겠어! 우리 왕 씨 가문의 돈 일억을 갚지 않으면 바로 경찰서에 신고할 거야!”“감옥에 들어갈 준비나 하라고!”“그럼 그만 꺼져!”왕부인이 다시 손을 휘둘러 우소희의 얼굴을 날려 버렸다.망했다!완전히 망했다!우소희는 땅바닥에 주저앉아 얼굴을 가리며 끊임없이 통곡했다....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설은아는 하현의 차에 앉아 의문에 가득 찬 얼굴로 물었다.“도대체 우소희한테 무슨 짓을 한 거야?”“어떻게 하다가 왕 씨 가문에 일억을 빚진 거냐고?”하현은 담담하게 말했다.“왕 씨 가문 딸 왕자혜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었는데 마침 내가 그녀를 구해 주게 되었어...”설은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뭐? 당신이 어떻게 사람을 구해? 당신이 의술을 알아?”하현이 차분하게 입을 열었다.“모르지. 난 단지 차에서 그녀를 빼내서 폭발하기 직전의 차에서 구해 준 것뿐이야...”“그때 마침 우소희가 구급차 간호사로 왔는데 내가 한 일을 자신이 한 것으로 둔갑시켜 공을 가로챘지.”“그래서 왕 씨 가문에선 고마움의 뜻으로 그녀에게 일억을 준 거야.”“나중에 왕문빈의 부인이 진실을 알게 되었고 우소희의 잘못이 드러났지.”“하지만 부인은 우선은 딸의 부상이 더 염려되어서 잠시 우소희 일은 따지지 않았던 거야. 그런데 뜻밖에도 우소희가 그 돈을 먹고 튈 줄은 몰랐지.”“게다가 그 돈으로 사기를 쳐 돈 많은 거물을 낚은 거야...”하현은 기가 차다는 듯한 얼굴로 자초지종을 설명했다.“그렇게 된 거구나.”설은아는 그제야 모든 걸 이해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쩐지 우다금 모녀가 휘룡만 집을 산다며 뛰어다니더라니.”“우소희가 아주 눈먼 거물을 잘 속인 거였군!”하현이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다만 안타깝게도 운이 조금 모자랐던 거야. 여기서 부인을 만났으니.”“집도 날아가고
”저는 왕 사장님이 주신 휘룡만 1호를 보러 왔습니다.”하현은 담담한 표정으로 말했다.“그런데 휘룡만의 문턱이 이렇게 높은 줄은 몰랐습니다. 매니저가 다짜고짜 절 도둑놈으로 몰 줄은 상상도 못했거든요.”“왕 사장님이 저한테 뭐라고 해명이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요?”하현의 말을 듣고 왕문빈의 부인은 눈꺼풀이 펄쩍 뛰었다.그녀는 순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바로 손을 휘둘러 남자 매니저의 얼굴을 때렸다.“퍽!”“개자식! 눈이 멀었군!”“하 대사님은 우리 왕 씨 가문 귀빈이야!”“그런데 도둑이라니?!”“네가 뭔데 함부로 그딴 소리를 해?!”“경찰에 신고를 한다고?”“감옥에 가둔다고?”“죽고 싶은 거야?”“꺼져! 당장 내 눈앞에서 꺼지라고!”“옳고 그름도 가리지 않고 다짜고짜 사람을 얕보는 당신 같은 직원은 필요없어!”왕문빈의 부인은 화가 머리끝까지 났다.하현이 누구인가?왕자혜의 생명을 구해 준 은인이다.주 씨 가문 귀빈이자 풍수의 대가, 무도의 고수였고 심지어 자신도 그에게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를 해야 했던 사람이었다.그런데 감히 매니저 따위가 하현을 건드려?살기가 싫은 건가?왕문빈의 부인은 가까스로 하현의 용서를 얻은 상태였다.하현이 자칫 기분이 언짢기라도 한다면 왕문빈이 자신을 내칠 수도 있었다.남자 매니저는 일그러진 얼굴을 가리며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고모님, 어떻게 저한테...”“촥!”왕문빈의 부인은 또 한 번 세차게 그의 얼굴을 때렸다.“꺼지라고!”“못 들었어?”“내가 다시 한 번 말해야 알겠어?”“내가 직접 널 끌어내야 속이 시원하겠어?!”남자 매니저는 얼굴을 가린 채 아무 반박도 못하고 멍하니 서 있었다.혹시라도 반박했다간 어떤 지경이 될지 그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그는 왕문빈의 부인이 어떤 스타일인지 익히 잘 알고 있었다.순간 장내는 찬물을 끼얹은 듯 고요해졌다.일이 이렇게 될 줄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하물며 하현이 정
”그가 훔쳤든 아니든, 내가 여기 있는 한 그는 훔친 겁니다!”“왕 사장님 머리가 어떻게 되셨더라도 절대 휘룡만 1호를 파실 분이 아닙니다!”“두 분이 솔직히 인정하는 게 좋을 겁니다. 제가 용서할 기회를 드리죠!”“그렇지 않으면 정말 경호원을 불러 경찰서로 데리고 가라고 할 거예요!”남자 매니저는 색기가 가득 흐르는 눈빛으로 설은아를 바라보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어깨를 두드리며 음흉한 속내를 슬쩍 비쳤다.설은아는 기겁하며 그의 손길을 피했다.그러자 남자 매니저는 더욱 불쾌한 얼굴로 말했다.“여사님, 제가 여사님 얼굴을 봐서 특별히 두 분께는 기회를 드리겠습니다!”“안 그러면 두 분도 같이 경찰서 가서 조사를 받아야 할지 모릅니다. 쓸데없는 피해를 입을 수도 있고요.”“공범으로 몰려 죄를 피할 수 없을지도 몰라요!”남자 매니저가 이렇게 말하자 우소희는 순간 거만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설은아, 우리 모두 피차 내막을 잘 아는 사람들이잖아?”“체면 때문에 일부러 하현한테 이런 뻔뻔한 일을 시킬 필요는 없는 거 아니야?”설은아는 그녀의 말에 기절할 뻔했다.“뭐라고?”이때 하현이 냉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휘룡만 1호는 내가 산 게 아닌 건 확실하지만 그렇다고 주운 것도 아니에요.”“훔친 건 더더욱 아니고요.”“왜냐하면 왕 사장님이 저한테 주신 거니까요.”이 말을 들은 설은아는 약간 어리둥절해하며 믿기 어려워하는 표정을 지었다.“무슨 소리예요?”“무슨 농담을 그렇게 하냐고요?!”“왕 사장님이 당신을 어떻게 안다고 그래요?”“어떻게 천억짜리 집을 당신한테 주냐고요?!”남자 매니저는 하현의 말을 듣고 ‘피식’하고 냉소를 흘리며 얼굴 가득 혐오의 빛을 띠었다.“당신은 정말 날 바보로 아는군요!”예쁘장한 여자 영업사원들도 모두 경멸하는 눈빛으로 하현을 노려보았다.나이도 많지 않은데 허풍이나 떨며 잘못을 인정하지 않는 모습이 못마땅했던 것이다.우소희도 입을 삐죽거리며 시큰둥한
하현은 이 말을 듣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이 집은 내가 산 것이 아닙니다...”“뭐라고요?”하현이 말을 끝맺기도 전에 남자 매니저가 눈에 한기를 가득 머금은 채 하현을 노려보았다.“이 카드키, 훔친 거죠?”이 말을 듣고 사람들은 눈이 동그래졌다가 의아한 표정으로 하현을 바라보았다.훔친 거라고?머리가 어떻게 된 건가?훔친 카드키를 들이밀며 자신이 이 집을 산 거라고? 돌았나?!방금까지 하현을 우러러보던 사람들의 눈빛은 갑자기 돌변했다.그들은 방금 하현을 그런 눈으로 본 자신들을 탓하며 3분 전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까지 생겼다.설은아는 이 말을 듣고 얼굴빛이 살짝 변하며 약간 걱정스러운 듯 하현을 쳐다보았다.하현은 미간을 찌푸리며 남자 매니저를 바라보았다.“방금 당신이 한 말, 꼭 책임져야 합니다.”“책임이라고요? 그 책임을 어떻게 지는지 제대로 알려드리죠!”남자 매니저는 손가락을 튕겨서 경호원 몇 명을 불렀다.“휘룡만 1호는 우리 휘룡만에서 가장 귀한 물건입니다!”“이 집은 외부에 판매된 적이 없었고 저당 잡힌 것도 없습니다!”“이곳은 왕문빈 사장님의 개인 별장입니다!”“카드키도 분명 왕 사장님 손에 있을 겁니다!”“그런데 그게 어떻게 외부인인 당신 손에 있단 말이죠?!”“설마 오다가 주웠다고는 말하지 마세요!”“오다 주운 게 휘룡만 1호 카드키라니요?!”“어서 말해 봐요! 이 카드키, 왕 사장님한테서 훔친 겁니까?”“솔직히 말하면 관대하게 처리해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렇지 않다면 당장 관청에 신고해서 당신을 감옥에 처넣어 버리고 말 겁니다!”남자 매니저는 위엄 있는 얼굴로 속사포처럼 하현을 향해 퍼부었다.이로써 그는 자신이 꽤 성공한 사람처럼 느껴져 우쭐해졌다.데릴사위를 호통쳤을 뿐만 아니라 설은아 같은 미녀 앞에 꽤나 멋진 모습을 보일 수 있어서였다.가장 중요한 것은 왕문빈이 잃어버린 카드키를 되찾았다는 것이다.엄청난 공로임에 틀림없다!어쩌
휘룡만 1호?!그 가치가 천억이라고?하현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벼락을 맞은 듯 멍해졌다.방금까지도 싸움에서 이긴 수탉처럼 의기양양했던 우다금은 설은아가 손에 든 카드키를 보며 온몸이 굳어 버렸다.우소희는 자신의 뺨을 때리며 이것이 꿈이 아님을 확인한 뒤 설은아를 쳐다보았다.우소희의 눈빛에는 부러움과 질투로 이글이글 타올랐다.스스로 상류층 사람이라고 자부하는 오건우조차도 이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고 있었다.천억짜리 선물이라고?그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농담을!자신의 몸값을 다 쳐도 살 수 없는 액수였다!설은아는 자신도 모르게 입을 열었다.“이게 휘룡만 1호라고?”하현이 담담하게 말했다.“맞아. 휘룡만 1호.”“당신 주려고 준비했어. 결혼 3주년 기념 선물이야.”하현의 말을 듣고 주변에 있던 많은 분양사 직원과 손님들이 몰려들었다.모두들 귓속말로 서로 속삭이며 하현을 한껏 우러러보았다.다들 돈이 있는 사람들이었지만 저렇게 쉽게 천억을 들여 집을 산 사람은 처음 보았다.이것이 진정한 토호의 모습이 아닌가!하현을 얕잡아 보던 우소희는 순간 억지로 웃음을 쥐어짰다.“설은아, 하현이 어떤 사람인지 우린 모르지만 혹시 당신도 잘 모르는 거야?”“저 사람 혼자 힘으로 천억을 덥석 내놓는다고? 허! 그렇담 암퇘지도 나무에 올라갈 수 있겠군!”우다금도 옆에서 이를 갈며 거들었다.“맞아. 하현은 데릴사위야. 한 달 동안 네가 준 용돈으로 빌붙어 사는 사람이잖아?!”“그런데 어떻게 휘룡만 1호를 살 수 있단 말이야? 농담 좀 그만해! 정말 지겨워!”“분명히 인터넷에서 카드키 하나 사 가지고 너한테 준 걸 거야!”“우리 앞에 보여 주려고 말이야!”“설은아, 내가 사람 된 도리로 하나 가르쳐 줄게.”“사람이 아무리 허풍을 떨고 싶어도 체면까지 내팽개치면 안 되지.”우다금은 세상 물정에 해박한 어른인 양 하현을 꾸짖었다.“하현, 내가 꼭 당신을 두고 하는 말은 아니지만 사람이 이렇게
하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오건우를 쳐다보았다.오건우는 왠지 얼굴이 화끈화끈거리며 통증마저 느껴지는 것 같았다.잠시 후 그는 이를 악물고 은행 카드를 테이블 위에 내놓았다.“살게요! 내가 사요!”“전액 현금으로!”“이걸로 하겠습니다!”오건우는 49호를 가리켰다.더 비싼 집은 도저히 그의 능력 밖이었다.특가 주택 정도는 그의 능력으로 어떻게 감당할 수 있었다.그러자 분양 직원은 함박미소를 띠며 말했다.“네, 그럼 수속 도와드리겠습니다.”일사천리로 구매 계약서가 준비되었고 서명하는 것으로 모든 것이 마무리되었다.“오건우, 당신 정말 대단해! 날 이렇게 사랑하다니!”우소희는 터져 나오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계약서를 들고 오건우의 얼굴을 감싸안으며 미친 듯이 웃었다.정말 사람 하나는 잘 골랐어!이렇게 비싼 집을 사 주다니!이게 웬 떡이야!오건우의 마음속에 그녀를 향한 사랑이 이렇게 크게 자리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하지만 오건우는 이 계약으로 거의 이백억을 탕진하게 되어 유동자금은 모두 없어져 버렸다.그는 화류계에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려고 했는데 그 모든 희망이 사라졌다.하지만 우소희가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가졌으니 앞으로 인맥은 비길 데 없어 넓어질 것이다.우소희가 왕문빈의 딸을 구해 주었다니 인정상 왕문빈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 틀림없다.그것만으로도 우소희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자신이 우소희와 결혼하기만 한다면 우소희의 인맥이 곧 자신의 인맥이 된다.그렇게 되면 자신도 당당하게 왕문빈 앞에 얼굴을 내밀 수 있게 되고 날개를 달고 날아오를 일만 남게 된다.그 순간을 상상하니 지금 아무리 불쾌하고 떨떠름해도 오건우는 충분히 참을 수 있었다.잠시 생각에 빠져 있던 그의 얼굴 위에 이내 환한 미소가 번졌다.우다금 모녀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원래 그녀는 이십억짜리 집이라도 사면 설 씨 집안에 충분히 체면이 서게 된다고 생각했었다.그런데 지금
”어머! 오건우, 200억이잖아?”우소희는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은 채 오건우에게 온몸을 기대어 애교를 부렸다.“당신 같은 부자한테 200억은 껌이잖아. 나 이 집 갖고 싶어!”우소희는 영리한 여자였다.오건우라는 황금거위를 이용해 거액의 집 한 채를 꿀꺽 삼키고 싶었던 것이다.어쨌든 그녀는 지금 신기에 가까운 의술을 겸비한 돈 많은 여자이지 않은가!그녀가 왕문빈 부부에게 체면이 깎인 일은 현재 병원 내부에서만 알고 있으며 온라인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여전히 여신격의 의사로 알고 있다.겉모습이 꽤나 예쁘장한 우소희는 왕문빈의 일억을 가지고 고급 장소에 출입하며 재벌 2세들의 관심을 끌었다.수많은 추파 속에 오건우를 선택한 우소희는 목적한 바를 이루기 위해 그를 단단히 붙잡아야 했다.그래야 평생 부귀영화를 누리며 살게 된다.오건우는 지금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가 새파랗게 변했다.그러나 그도 체면을 의식하며 깊은 숨을 들이마신 뒤 가식적인 모습으로 사진을 몇 번 찍어 누군가에게 보냈다.오건우의 입에서 ‘어우, 와’라는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우소희, 방금 우리 집 풍수지리사에게 특별히 물어봤어.”“그런데 이 집은 보기에는 위치도 좋아 보이고 멀끔해 보이지만 결함이 굉장히 많다고 해.”“바람길의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교살과 노살을 막고 있대.”“그러니까 말이야. 이 집은 다른 사람들의 재난을 막아주고 있는 형상이어서 들어가서 살게 되면 병들고 아플지도 모른대.”“우리 대사님 말씀에 따르는 게 좋을 것 같아. 이 집 말고 다른 집이 있는지 둘러보자.”“가격대가 다 이렇게 비슷비슷한가요?”오건우는 분양 직원에게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그 의미는 분명했다.더 저렴한 물건이 없냐는 뜻이었다.직원은 오건우의 눈짓에 웃으며 말했다.“손님, 이미 이 가격도 싼 거예요.”“이 집은 도로 입구에 위치해 있기 때문에 특가를 진행하는 거예요.”“48호 가격은 250억이에요. 그리고 다른 건...”
”됐어! 소희야, 다른 사람 상처에 소금 뿌리는 거 아니라고 했잖아!”“좋지 않은 행동이야!”이때 공작새처럼 차려입은 우다금이 나서서 원만하게 수습하려는 척 단아한 표정을 지었다.“하현이 단지 체면이 깎일까 봐 한번 해 본 소리일 뿐이야.”“우리야 이런 일이 많으니 스스로 감정을 통제할 수 있지만 저런 사람들이야 남하고 비교될까 봐 더 잘난 척하고 싶은 마음을 어떻게 통제할 수 있겠어?”“게다가 우린 지금 상류층 사람이야. 저런 데릴사위랑 실랑이를 할 필요가 뭐 있어?”“격 떨어져!”“그러니까 얼른 집이나 보자고. 빨리 수속 밟아야 하잖아?”“저런 사람과 실랑이를 하다가 좋은 집을 놓치면 우리만 손해지!”우다금은 빈정거리면서 분양 단지를 설명하는 쪽으로 시선을 돌려 흡족한 눈빛으로 대형 분양 단지들을 바라보았다.그녀는 스스로의 힘으로는 절대 이런 집을 살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예비 사위 오건우도 이런 큰집에 헛돈을 쓰지는 않을 것이다.그저 칠팔십 평짜리 방 세 개 정도 되는 집이라도 살 수 있다면 감지덕지일 것이다.“자, 설은아. 하현. 당신들은 먼저 돌아가.”“우리는 집을 산 후에 개인 모임이 있어서 식사도 해야 해.”“그곳은 너무 고급스러운 자리라 여러 명을 데리고 가긴 좀 안 맞거든. 함부로 데려갔다가 세상 물정 모르는 사람이 엄한 말이라도 하면 곤란하잖아, 안 그래?”하현은 무슨 말을 하려다가 설은아가 끌고 나오는 바람에 그대로 입을 다물었다.설은아는 돼먹지도 않은 우다금 모녀와 더는 화를 내며 상대할 이유가 없다고 느꼈다.아무런 의미없는 실랑이는 시간 낭비일 뿐이다.만약 최희정이 가라고 그녀를 등 떠밀지 않았더라면 아마 설은아는 죽어도 오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오건우는 설은아가 이렇게 떠나게 될까 봐 노심초사했다.자신의 부를 과시할 기회가 없어지기 때문이다.오건우는 헛기침을 하며 미소를 지었다.“우소희, 당신이 골라 봐. 마음에 드는 거 있는지 보자고.”오